87.
"고생했습니다. 그래 갔던 일은 잘 되었습니까?"
우레시노로 떠난 정운두와 토마스가 떠난 지 하루만에 나가사끼의 쥬신상사로
돌아오자 전준호는 일이 잘 됐음을 직감하고 이렇게 물었다.
이미 정운두와 토마스는 쥬신상사의 문을 열고 들어 올 때부터 만면에 득의(得意)의
웃음을 짓고 들어 왔으니 어찌 그것을 짐작하지 못할까.
정운두는 오랜만에 전준호에게 뻐길 건더기가 생겼다는 듯 고개를 빳빳이 세우고
이렇게 말한다.
"지점장님은... 제가 누굽니까? 조선의 자랑스러운 남아 정운두 아닙니까? 제가 하는
일에 언제 실수가 있던 적 있습니까? 모든 일이 다 잘되었습니다."
옆에서 토마스가 듣고있는 대도 뻔뻔스럽게 자신의 공을 내세우는 정운두였으나,
그런 정운두 일지라도 한없이 예쁘게만 보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다행입니다. 잘 됐다니... 헌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일을 끝내고 올 수 있었지요?
무슨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전준호는 우레시노에서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수월하게 일을 마치고 금방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기에 이렇게 물었다.
"실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우레시노에 도착하고 그 지방의 차 재배 농가의
대표를 접견하였는데 그 지방의 유력한 차밭의 주인이 바로 조선 사람의 후예였다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 노인의 도움으로 모든 일을 수월하게 끝낼 수 있었지요..."
"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조선사람의 후예라니요?"
전준호가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왜국인들이 원래 오래 전 조선반도에서 건너간 민족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왜국인들 스스로가 조선 사람의 후예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선사람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나서 도움을 주었다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전준호가 이렇게 놀라자 정운두는 우레시노에서 있었던 일을 침을 튀기면 얘기를
하는데 전준호는 더욱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막부 행정청의 추천장이 있다고는 하지만 쉽게 성공을 장담하지 못하였는데
모든 일이 원만하게 마무리되었고, 그 일의 막후에는 조선인 도공의 후예, 제 9대
이삼평이 있다는 것을 알자 까맣게 잊고 있던 한국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평소 미술품의 관람에 관심이 많았던 전준호는 한국에서 시간원정단이 결성되고
합숙에 들어가기 얼마 전인 2003년 9월 3일 서울 종로에 위치한 금호미술관(
錦湖美術館)에서 왜국 아리타 마을에서 날아온 조선 도공의 후예들과 한국의
대표적인 도예작가들 63명이 참가한 '2003 한일 도예전-공생을 위하여'라는 주제의
전시회를 참관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전시회에서는 조선 도공 후손들인 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몬(坂
高麗左右衛門·54)ㆍ13대 다카토리 하치잔(高取八山·42)·예비 14대 이삼평(
李參平·가네가에 쇼헤이·42)씨 등 3명이 참석하였는데 전준호 자신은 직접 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몬으로부터 이런 말을 듣고 그의 친필 싸인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
그 때 12대 사카 고라이자에몬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안 선조는 조선도공 이경이다. 우리 선조께서는 영주로부터 1622년 '사카'
란 이름을 받았고 조선반도에서 왔다고 해 이름에 고려(高麗)란 말이 들어간 '
고라이자에몬' 으로 불렸다”
뿐만 아니라 예비 14대 이삼평으로부터는,
“아버지(13대 이삼평)가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름을 잇기에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1)
는 말과 함께 악수를 했던 경험까지 있었다.
이런 전준호였기에 자신이 악수를 한 그 도공의 선조가 지금 살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이 이미 과거로 넘어온
사람이로구나, 다시는 그 때로 돌아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전준호였다.
"잘 됐군요. 저도 언제 시간이 나면 그 분을 한 번 꼭 뵙고 싶네요."
이내 정신을 차린 전준호는 뭔가 설명하기 힘든 허전한 마음과 씁쓸한 마음, 또
감격스러운 마음이 교차하는 것을 느끼며 이렇게 말하고, 어제 막부 행정관과의 일을
정운두에게 설명하면서 며칠 후에 들어올 후지야마호를 쥬신상사에서 인수하기로
합의한 것과 막부에서 주문한 양식보총탄 문제 때문에 자신이 직접 조선에 급히
다녀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운두에게 몇 가지 일을 지시하고 서둘러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아무래도 전준호가 충격을 크게 받은 모양이다.
그런 전준호의 마음을 알리 없는 정운두는 오늘 저 양반이 뭘 잘못 먹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전준호의 뒷모습을 지켜보는데, 정운두의 눈에 보이는 전준호의 넓은
등이 오늘따라 한없이 외로워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초청작품*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조아라와 데프콘까페에 연재중인 인기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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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51 개혁(改革)의 첫걸음...22
번호:59 글쓴이: yskevin
조회:296 날짜:2003/11/16 1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