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우레시노에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도착한 정운두와 토마스는 일단 우레시노에서 가장
전통 있다는 와타야 벳소 온천여관(和多屋 別莊 溫泉旅館)에 묵기로 하고 왜인
종업원에게 와타야 벳소 온천여관 쪽으로 갈 것을 지시한다. 토마스는 이미 온천을
즐기기 위해 우레시노에 몇 번 온 경험이 있었기에 거리낌이 없었다.
와타야 벳소 온천여관에 들어서자 왜국의 기모노를 입은 여관의 안주인으로 보이는
여인과 종업원으로 보이는 여인이 정중히 일행에게 인사를 하면 맞는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서 여관으로 들어간 정운두와 토마스는 다다미 10조로 이루어진
넓은 방을 한 채 배정 받았는데, 방안에 들어선 정운두가 미닫이로 돼있는 창문을
열자 우레시노 천(川)이 한 눈에 보인다.
그리고 다다미방의 중앙에는 조그만 탁자가 놓여있는데, 그 위에는 우레시노의
특산인 우레시노 차가 놓여있었고, 양갱을 비롯한 왜국 과자가 몇 개 소담스럽게
놓여있다.
전체적으로 소담하고 깔끔한 여관이다.
왜국식 여관이 처음인 정운두는 이런 생각을 하며 다다미방을 서성거리는데 이미
왜국의 문화에 익숙한 토마스는 벽장에 걸려 있는 유까다를 꺼내서 정운두에게
건네주며,
"갈아입으시죠. 왜국의 여관에서는 이 옷을 입는 것이 편합니다."
"응? 그래? 어디...?"
이렇게 말하고 토마스가 건네준 유까다를 이리저리 둘러본 정운두는 토마스에게
이렇게 말한다.
"뭐 이딴 것이 다 있지? 이게 옷이란 말야?"
"왜요? 어색합니까? 처음에는 어색해도 이 옷이 편합니다."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는 말했지만 얇은 홑옷의 유까다는 정운두가 보기에 영 어색하고 이상했다.
토마스가 계속 쳐다보고 있기에 할 수 없이 입고 있던 생활한복을 벗고 유까다로
갈아입기는 했지만 어색하고 이상한 느낌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근데 이 지방의 차 재배농가의 사람들은 어떻게 만나지?"
우레시노에 도착할 때만해도 일단 밥부터 먹자고 성화를 했던 정운두였으나 막상
우레시노에 도착하고 나자 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막막한 마음에 이렇게
말한다.
정운두도 어쩔 수 없이 장사꾼이었던 것이다.
정운두의 걱정을 아는지 토마스는 빙그레 웃으며,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제가 우리 종업원들을 시켜 재배농가의 주인들을
만나보라고 시켰습니다. 막부의 행정청에서 발급한 추천장이 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래? 이럴 때는 행정청의 추천장이 좋기는 좋구만..."
"일단 뭐 좀 먹고 온천을 하든지 하시죠?"
"그럴까?"
토마스는 정운두에게 무엇을 먹을 것이냐고 묻지도 않고 밖에 무릎을 꿇고 있던 여관
종업원에게 뭔가를 주문하는데 정운두는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런 정운두에게 토마스는 자신이 알아서 이 여관의 유명 음식을 시켰다고 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는 정운두였다.
이어서 나온 우레시노의 명물 요리인 온천수를 이용한 두부요리와 밥을 맛있게 먹은
두 사람은 차 재배 농가의 대표를 만나기 전에 먼저 온천을 하기로 하고 유까다
차림으로 노천온천으로 향한다.
우레시노는 나가사끼에서 후쿠오카를 거쳐 기타큐슈까지 이어지는 나가사끼 가도의
주요한 역참(驛站)이 있는 곳이다.
평균 해발 고도가 약 500미터 미만의 나지막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아래의 구릉에는 푸른 차밭이 펼쳐져 있는 왜국의 명품 우레시노 차의 본 고장이
바로 우레시노였다. 또한 우레시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이 또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온천이다.
우레시노의 온천은 그 역사가 천년 이상으로 왜국의 왜곡(歪曲) 역사서의 표본인
왜국서기(倭國書紀)에 나오는 신공왜후(神功倭后)와 관계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신공왜후가 우레시노의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겼다나 어쨌다나...
우레시노의 온천은 왜국의 3대 미용온천(토치기겐의 키츠레가와(喜連川) 온천,
시마네겐의 히노우에(斐乃上) 온천)으로 꼽히면서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당시 정운두가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온천여관에서 운영하는 온천탕 말고도
막부에서 운영하던 온천탕이 있어, 군주탕, 무사탕, 상인탕으로 구분되어 이용되었다.
정운두와 토마스가 우레시노 천(川)이 한 눈에 보이는 노천 온천에서 온천욕을 하고
나오자 쥬신상사의 왜인 종업원이 와서 우레시노의 차 재배농가 주인들이 와서
기다린다는 전갈을 한다. 정운두와 토마스는 일단 방으로 가서 봇짐 속에 있는
생활한복으로 갈아입고 차 재배농가의 대표들이 기다리고 있는 방으로 갔다.
정운두와 토마스가 들어서자 왜인 종업원을 비롯하여 여러 명의 늙고, 젊은 왜인들이
일어서며 허리를 굽히고 분분히 인사를 한다.
당시 왜국은 엄격한 신분제가 유지되던 전제 사회였다.
따라서 막부 행정관의 추천장을 소지하고 자신들을 찾아온 정운두와 토마스는
자신들이 감히 쳐다볼 수 없는 높은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였다.
정운두와 토마스가 자리에 앉자 농가의 대표들도 천천히 두 사람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먼저 토마스가 왜국말이 서투른 정운두를 대신하여 자신들이 누구며 찾아온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우리들은 나가사끼에 있는 조선인 상회 쥬신상사에서 왔습니다. 여기 계신 이 분은
쥬신상사의 부 사장님이시며 저는 이 분의 비서입니다."
토마스가 이렇게 쥬신상사와 자신들에 대한 소개를 하자 농가의 대표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지들끼리 웅성웅성 하는데 정운두는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태반이다.
웅성거리는 우레시노의 차 재배농가 대표 중에서 한 노인이 눈물을 글썽거리며
정운두와 토마스가 입고 있는 옷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든
정운두는 토마스의 말을 제지시키고 눈물이 글썽거리는 그 노인에게 더듬거리는
왜국말로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정운두의 말에 그 노인은 뭐라고 말을 하는데 정운두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토마스는 정운두가 못 알아듣는 눈치이자 그 노인의 말을 통역하는데,
"정말 조선에서 오셨습니까?"
하고 노인이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가 정운두의 말을 받아 그렇다고 하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눈물을 짓느냐고 묻자 그 노인은,
"혹시 분로쿠 게이초노 에키 라고 아십니까?"
"분로쿠 게이초노 에키요?
"그렇습니다."
토마스의 통역을 들은 정운두는 노인이 무슨 말을 하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운두가 미간을 찌푸리면 이해를 하지 못하는 듯 하자 노인은 세부적인 설명을
곁들인다.
노인의 설명을 들은 토마스는 다시 정운두에게,
"혹시 지금으로부터 이백 몇 십 년 전에 조선과 왜국과의 7년 전쟁을 아시냐고
묻는데요?
"알지. 임진왜란(壬辰倭亂)을 말하는 것이었군... 그런데, 노인장이 임진왜란을 왜
들먹이는 거지?"
"이 노인이 그 때 조선에서 왜국으로 끌려온 조선도공(陶工)의 후예랍니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야?"
정운두는 깜짝 놀랐다.
머나먼 왜국까지 와서 몇 백년 전에 조선에서 왜국으로 끌려간 조선도공의 후예를
만나다니 어디 생각이나 했던 일인가.
정운두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 노인의 음성이 잔잔하게 이어진다.
"저의 이름은 9대 이삼평(李參平·가네가에 쇼헤이)이라고 합니다. 저의 조상 중에서
분로쿠 케이초노 에키 때 조선에서 왜국으로 끌려온 이삼평이라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의 이름을 제가 9대 째 계승해서 쓰고 있지요."
이미 언급했듯이 16세기, 17세기 때 세계적으로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드는 나라는
중국과 조선 밖에 없었다.
그러던 차에 임진왜란 때에 많은 수의 조선도공들이 왜국으로 끌려갔는데, 그 중에서
이삼평이라는 조선도공이 사가현 아리타(有田) 마을에서 도자기의 원료가 되는
고령토(高嶺土)를 발견하여 도자기를 빚음으로 인해 왜국에서는 이삼평을 도조(陶祖)
로 추앙하며 당시의 지방영주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왜국의 도자기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게 된다. 지금 왜국에서 도자기를 빚는 유명한 6대
가문이 있는데 아리타의 이삼평 가문과 사쓰마의 심수관(沈壽官) 가문 등이
대표적인데, 지금도 그들은 왜국에서 내노라 하는 도예 가문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조선인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사가현 아리타 마을에 가면 초대 이삼평을 기리는 거대한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
그의 이름 앞에는 영광스럽게도 도예의 조상으로 추앙하는 도조(陶祖)라는 말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다. 이삼평 기념비로 오르는 언덕길에는 무궁화가 피어 있다.
4백년 전의 조선인 이삼평을 기리며 꽃마저 그의 조국의꽃 무궁화를 심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산 정상에 거대하게 '도조 이삼평 기념비'를 세우고 또한 신사(神社)까지
만들어 이삼평을 추앙하고 있다.
제 9대 이삼평 노인은 아리타와 가까운 우레시노에서 가장 큰 차 농장을 소유하고
있는데 마침 오늘 자신의 차밭에서 수확할 햇차를 둘러보기 위해 왔다가 조선에서 온
상인이 차 재배농가의 대표들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와 봤다가 몇 백년 만에 이렇게 조선사람 정운두와 감격의 해후를 하게 되니 참으로
하늘의 뜻은 오묘할 뿐이다.
제 9대 이삼평 노인의 주선으로 예상 밖의 수확을 거둔 정운두와 토마스는 다음 날
우레시노의 차 재배농가와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아울러 빠른 시일 내에 쥬신상사의 우레시노 제다 공장을 설립하기로 약속을 하고,
서둘러 전준호가 기다리는 나가사끼로 돌아온다.
어차피 나가사끼에서 우레시노까지는 겨우 100리 정도 밖에 떨어지지 않았기에 겨우
1박만 하고 돌아왔으니, 우레시노에서 나긋나긋한 왜녀의 시중을 받으며 객고(客苦)
를 풀 생각을 했던 정운두로서는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