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쥬신상사를 출발한 정운두와 토마스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나가사끼에서 후쿠오까를
거쳐 기타큐슈까지 이어진 나가사끼 가도(長崎街道)다.
한 낮의 규슈 날씨는 따사롭다 못해 덥기까지 했다.
정운두는 오랫동안 말 위에 앉자 있어서 그런지 힘들고 지쳐있었다.
"이봐 토마스!"
"예. 형님."
"우리 좀 쉬었다 가면 안될까?"
"왜요? 힘드십니까?"
"응, 사실 말을 오랫동안 타고 있으려니까 좀이 쑤셔서 죽겠네..."
정운두가 더듬거리는 영어와 왜국말, 조선말을 섞어서 이렇게 말하자 마침 오줌이
마려웠던 토마스는 흔쾌히 동의하고 왜인 종업원에게 말을 나무 그늘이 있는 곳으로
몰도록 지시한다.
왜인 종업원이 나무그늘이 있는 곳에 말을 세우자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토마스는
한쪽으로 뛰어가서 바지춤을 까 내리고 오줌을 눈다.
약간 노란 색을 띤 오줌 줄기는 시원하게도 쏟아지는데, 갑자기 정운두의 말소리가
옆에서 들리는데,
"아따 그놈 참 늘어진 좃대가리가 크기도 크구나."
정운두가 오는 줄도 모르고 오줌을 누던 토마스는 깜짝 놀라서 옆을 보는데 어느새
왔는지 정운두가 자신의 옆에서 오줌을 누고 있는 게 아닌가.
정운두는 토마스의 옆에 서서 오줌을 누면서도 연신 토마스의 그것을 보면서 다시
말한다.
"근디 자네 좃대가리는 크기만 컸지 영 판 히마리는 없어불고만잉... 오줌발도
시원찮고..."
정운두가 씨부렁거리는 조선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토마스는 저 인간이
지금 무슨 소리를 저렇게 혼자서 중얼거린 다냐 하는 생각을 하며 오줌 줄기가
그치자 서둘러 좃을 한 번 털고 바지를 여민다.
"형님은 혼자서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뭐라고 그렇게 하십니까?
"응? 아-- 자네 좃허고 내 좃허고 비교를 헌 것 아니 것는가잉..."
"예? 무슨 말씀인지...?
토마스가 자신의 조선말을 못 알아듣는 눈치를 보이자 정운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했다.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자 정운두는 아무것도 아니네 하고 눙치고 말았지만
속으로는 양놈들 큰 좃도 하등 쓸모가 없구만 역시 조선 사람의 좃이 작기는 허지만
힘 하나는 타고 난 모양이야 암 그렇고 말고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정운두는 자신이 그동안 품고 있던 의문을 토마스에게 물어보는데,
"토마스, 자네가 주장해서 우레시논지 지랄인지에 가기는 하지만 정확히 그곳에 뭘
사러 가는 것인가? 나는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구만?"
"지점장님께 듣지 못하셨습니까? 우레시노에 왜 가는지요?"
토마스는 정운두의 궁금증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전준호에게 건의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가는 것인 줄 알고 있었는데, 정작
부지점장이라는 사람은 통 모르는 눈치가 아닌가.
토마스가 이렇게 묻자 정운두는,
"지점장님께 듣기는 들었지, 헌데 그 우레시노 차가 그렇게 좋을까? 그리고 그깟
차가 무슨 큰돈을 벌어준다는 소린지 나는 당최 모르겠네."
"제기 설명 드리겠습니다."
실상 송상의 회계담당자 출신이라고 했지만 정운두가 차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극히 적었다. 정운두가 알고 있는 차라는 것은 오직 할 일없는 양반들이 난 양반입네
하고 폼잡는 기호품에 불과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정운두가 만났던 양반들이야 봤자
기껏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에 불과했으니 그 양반들이 얼마나 차를 애지중지 하는
지 몰랐기에 과연 차를 팔아서 얼마나 이문(利文)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또한 일부에 국한된 소비층을 가지고 있는 차가 어떻게 큰돈을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정운두가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서양인들과 중국인들의
차 문화였다.
동양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건강을 위해 또는 풍류를 위해 차를 마시기 시작했지만
서양에 차가 소개된 지는 겨우 몇 백년 전의 일이다.
서양에 차가 처음 소개된 때는 1665년이었고, 영국인들이 차를 마시는 문화가
활성화한 시기는 찰스 2세(1630~1685)의 포르투갈 태생 왕비 때문이다. 그리고
1820년에 인도의 아삼(Assam) 지방에서 차가 발견된 후 영국 중 상류층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한 후 지금까지 차 마시기와 차 끓이는 것이 가장 전형적인 영국인의
행동이 되었다.
지금도 영국이 지배했던 인도의 아삼, 시킴(Sikkim), 다질링(Darjeeling) 지방에
가면 당시 재배했던 차 재배단지(Tea Plantation)가 그대로 남아 있어 그 지방의
주요 소득원으로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스리랑카도 마찬가지이다.
동양-특히 중국과 한국-에서는 차를 마시는 것이 일종의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건강을 위하여 마시는 음료에 불과하지만 서양- 특히 영국-에서의 차를 마시는
행위는 단순한 음료를 마시는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의식에 가까웠다.
차를 만드는 행위와 차를 대접하는 행위는 사교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차는 단순히 마시는 차로서 만의 의미뿐만 아니라 차와 함께 먹는 식사
내지 사교적인 음식 대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영국- 스코틀랜드-의 전통적인 생활방식이 몸에 밴 토마스에게도 차는
다를 바 없었으니, 지금 동양의 대부분을 석권하고 있는 영국으로의 차 수출길이
열린다면 이것은 큰돈을 벌 수 있는 장사임에 틀림없었다.
특히 왜국에서도 알아주는 명차(名茶)인 우레시노 차라면 충분히 그 가능성이 있었다.
더구나 아직 왜국의 차 생산은 가내 수공업 형식에 지나지 않으니 이제 햇차가
나오기 시작할 시기인 지금, 우레시노 차를 전매할 수만 있다면 큰돈을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웠다. 그리고 토마스는 우레시노의 차를 전매할 수 있다면
곧바로 우레시노 현지에 제다(製茶)공장을 설립하여 가공에 들어갈 생각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올해 생산되는 햇차를 올해 판매하여 막대한 이익을 볼 수도
있었다.
토마스의 이런 설명이 있자 정운두는 그때서야 이해를 한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을 한다.
"아-- 그런 뜻이 있었고만... 그럼 청국의 부자들에게도 그 차를 팔면 되겠네.
어떤가?"
정운두는 영국에 수출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토마스의 말이 있자 순간적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엄청난 차 소비량을 자랑하는 청국의 고관들이나 부자들에게도 팔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토마스는 영국의 차 문화만을
생각해서 오로지 영국에 수출할 길만 모색하였는데 정운두의 말도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큰 시장을 놔두고 굳이 먼 곳의 시장만 바라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토마스는 자신이 간과하고 있던 청국을 정운두가 짚어내자 감탄사를 터뜨리며,
"정말 그렇군요. 그러면 되겠네요..."
하고 동의를 한다.
토마스의 감탄 섞인 말에 정운두는 목이 뻐근해진다는 표정을 지으며 뭘 그렇게 감탄
할 것까지야?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음...음... 그럼 이제 출발할까?"
"알겠습니다. 형님,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우레시노에 도착합니다. 거기에는 온천이
유명하기도 하니 뜨거운 온천물에 몸이나 담그시지요. 일단 여관에서 온천을 하시고
점심을 먹도록 하지요."
우레노에 도착해서 온천을 즐기고 점심을 먹자는 토마스의 말에 정운두는 이게 왠
떡이냐 하는 표정으로 서둘러 말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