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반갑다. 난 함경도 함흥에서 올라온 이제마라고 한다."
육군사관학교 기숙사의 한 내무반에서 한 젊은 생도가 같은 내무반을 쓰게 된 다른
생도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다.
이제마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생도는 말하는 품새로 봐서 한 눈에 양반 사대부
출신으로 보였다.
이제마의 인사를 받은 다른 생도 하나가 엉거주춤하면서,
"난 김춘영이라 하오. 잘 부탁드리겠소."
바로 근위천군 주임원사인 김장손의 장자 김춘영이었다.
상민의 신분으로 어려서부터 엄격한 신분사회를 경험한 김춘영으로서는 사대부
출신이 분명해 보이는 이제마에게 말을 트기가 쉽지 않았다. 하여 이렇게 엉거주춤한
반 높인 말을 사용한 것인데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신입생도 하나가,
"야! 어차피 이제부터 4년 동안 살을 부대끼며 생활하게될 같은 생도의 입장에서
존댓말이 왠 말이냐, 그냥 우리끼리 편하게 지내도록 하자, 그리고 만일 우리가
이렇게 존대를 하는 것을 교관들이 듣는 다면 경을 치게 될 것이니..."
사관학교에서의 훈련과 교육, 그리고 생도 상호간의 예의범절에 대한 것은 생도
상호간에는 서로를 친구로써 존중하고 양반이니, 상민이니, 천민이니 하는 신분에
상관없이 서로가 서로를 하나의 인격체로써 대우할 것을 입학식이 있기 전에 이미
교육받았기에 그렇게 말하는 생도의 내용은 일면 타당하다고 할 수 있었다.
만일 이를 어기고 양반임을 내세워 동료 생도를 핍박한다거나 한다면 가차없이 퇴교
조치되고 의금부에서 엄한 문초를 받게 될 것임을 이미 경고 받았기에 모두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맞다. 이제부터 우리는 한솥밥을 먹는 동지요, 친군데 그러면 쓰나..."
"제마의 말이 맞다. 난 개성에 사는 정호상이라고 한다. 잘해보자."
아까 김춘영에게 반말로 지내도록 얘기한 생도가 바로 정호상이었다.
정호상은 쥬신상사의 나가사끼 부 지점장인 정운두의 막내 동생으로 어려서부터
무예에 남다른 소질이 있던 것을 형인 정운두가 일찌감치 사관학교에 입학할 것을
권하였고, 자신도 이미 그럴 마음을 먹고 있었기에 서슴없이 사관학교
입학자격시험에 응시하였고 당당히 합격하여 이 자리에까지 올라온 생도였다.
어려서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형인 정운두 밑에서 자란 정호상은 형인 정운두가
천하의 난봉꾼 소리를 듣는 형일지라도 가장 든든한 후원자요, 보호자였다.
정호상의 위로는 스물 다섯의 나이로 아직 혼인을 하지 않은 노처녀 누나가 하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자기 소개를 한 정호상은 한 쪽에 가만히 앉아 있는 약간은 자신들보다 어려
보이는 생도에게 다가가서,
"넌 이름이 뭐냐? 보아하니 우리보다 약간 어리게 보이는데...?"
"저는 이동인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올해 열 일곱이고요..."
"그래? 반갑다. 난 정호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너는 사는 곳이 어디냐?"
의례 나이와 사는 곳을 묻고 답하였기에 이런 정호상의 물음에는 아무런 사심이
없었다.
그러나 정호상의 그런 마음과는 달리 이동인은 그런 정호상의 물음에 약간은
꺼려하는 마음이 있었으니...
"으...음..."
정호상의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한 나머지 잠시 뜸을 들이던 이동인은,
"전 원래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운현궁으로 들어가 생활했기 때문에,
운현궁이 사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동인의 이런 말이 있자 한 쪽에서 인사를 나누던 다른 생도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러면서 모두들 이동인의 옆으로 몰려와 너도나도 인사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운현궁이라고 하면 당금 조선의 최고 권력자인 김영훈이 머무는 곳이자, 천군의
실질적인 총 본산(本山) 격인 곳이지 않는가. 모든 조선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보기를 원하는 김영훈이 머무르는 운현궁에서 생활한다는 이동인의 말에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으며, 어찌 관심을 보이지 않겠는가.
이렇게 모든 10명이나 되는 생도들이 웅성거리면서 있는데 갑자기 누가 소리를
지른다.
"모두 주목!"
갑작스레 들려오는 고함 소리에 놀란 생도들이 문 앞을 바라보자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낯선 사내 하나가 서 있는데 바로 교관이었다.
"이 내무반은 왜 이리 소란스럽나! 여기가 시장 통인 줄 아나?"
모두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엉거주춤하게 서있는데 다시 그 교관의 호통이 이어진다.
"그리고 아직까지 지급된 제복으로 갈아입지 않은 놈들은 뭐냐!
교관의 이런 호통이 떨어지자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생도들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생도들을 보며 교관이 다시 말을 한다.
"모두 옷을 갈아입으면서 들어라. 지금 이 내무반의 인원은 총 열 명이다. 우리는
이것을 분대라고 칭한다. 알았나! 분대!"
"예. 분대."
"알겠소이다."
"알았구만요."
"누가 뭐래요? 분대."
아직 제대로된 군대 경험이 전무한 생도들에게 분대라는 단위는 생소하기
그지없었으니, 여기저기에서 이놈저놈이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대답하자 어이가
없어진 교관은 소리를 꽥하고 지른다.
"모두 조용! 지금부터 인원점검을 하겠다. 호명 받은 생도는 큰 소리로 대답하도록...
이제마 나이 27세, 함경도 함흥 출생, 맞나?"
"예. 맞습니다."
"다음, 정호상 나이 23세, 경기도 개성 출생, 맞나?"
"예."
"다음, 신복모... 다음, 김춘영...다음, 이종건... 다음, 한규직... 다음, 정의길...
다음, 이동인... 다음, 한규설... 다음, 강명준..."
이렇게 내무반의 열 명의 생도들을 호명하고 확인한 교관은 생도들이 옷을 모두
갈아입자,
"지금부터 이 내무반의 내무반장을 정하겠다. 누가 하겠나?"
"..."
"..."
"아무도 없나? 엉?"
누구도 내무반장을 하겠다고 나서질 않자 교관은 슬슬 짜증이 밀려오는데,
"제기 하겠습니다."
함경도 함흥 출신의 이제마가 나섰다.
이제마의 나이 올해로 스물 일곱이니 같은 내무반의 생도들 중에 가장 많았다.
이제 겨우 열 여섯, 열 일곱에 지나지 않는 한규설과 이동인, 강명준이한테는 정말
큰 형이나 다름없었다.
"좋다, 이제마, 네가 오늘부터 이 내무반의 반장이자, 이 분대의 분대장이다."
*초청작품*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조아라와 데프콘까페에 연재중인 인기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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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48 개혁(改革)의 첫걸음...19
번호:55 글쓴이: yskevin
조회:608 날짜:2003/11/12 1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