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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도(生徒) 제군(諸君)들은 우리 조선 역사상 최초의 정식 사관 교육을 받게되는
자랑스런 육군사관생도로서 그에 걸맞는 품성과 자질을 연마함에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모든 교육 과정을 충실히 이수하여, 4년
후 다시 이 자리에서 한 사람의 낙오하는 자 없이, 모든 생도들이 여가 수여하는
계급장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오늘 이렇게 너희 생도 제군들을 바라보는 여의 마음은 한없이 기껍기 그지없으니
그것은 너희들의 부모 형제 처자들도 모두 마찬가지 일 것이다. 너희 생도 제군
개개인은 장차 이 나라 조선군의 간성(干城)이 될 몸임을 명심하고, 주상전하의
충성스런 신하로서 앞으로 4년 간의 모든 교육 과정을 충실히 이수하여 우리 조선의
기둥이 될 지어다."
때는 삼월도 중순에 접어든 15일이라 따뜻하게 내리쬐는 봄볕은 따사롭다 못해
따갑기까지 했다. 그래서 봄볕에는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는 딸내미 내보낸다는
말이 생겼던가?
어제 있었던 성균관대학의 입학식과 그제 있었던 한성사범학교의 입학식에도
참석하여 어린 임금을 대신하여 치사(致謝)를 낭독하느라 목이 잔뜩 쉰 김영훈은
이렇게 말을 마치며 서둘러 단상을 내려왔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한성의학교의
입학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에 목을 아껴야 하는 이유도 있었다.
김영훈이 단상을 내려오자 단하에 있던 한 교관 하나가 "주상전하 천세!"를 선창하자,
어린 임금의 주위에 포진한 대소신료들과 사관학교 대 연병장에 도열한 짧은 머리가
이채로운 생도들과 그 대 연병장 한 쪽에 자리잡고 있던 생도들의 가족들이 쌍수를
들어 "주상전하 천세!"를 따라서 외친다.
단하로 내려온 김영훈은 어린 임금의 곁으로 가서,
"전하, 이제 안으로 드시지요. 이용희 사관학교장이 사관학교의 기숙사와 시설에
대한 안내를 한다고 하옵니다."
대 연병장을 가득 메운 350여명의 신입 생도들을 뿌듯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던
어린 임금은 김영훈의 이와 같은 말이 있자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 연병장의 생도들을
향해 손을 한 번 흔들어 주고는 김영훈이 있는 쪽으로 오더니 갑자기 김영훈의 손을
잡으며 이렇게 말한다.
"숙부! 정말 고마워요. 이 모든 공이 숙부와 천군들에게 있음이에요."
갑자기 잡아온 어린 임금의 손을 차마 뿌리치지는 못하고 살며시 마주 잡으며
김영훈이 말한다.
"당치않사옵니다. 전하. 신과 천군은 모두가 전하의 충성스러운 신하에 지나지
않사옵니다. 그나저나 어서 가시지요. 이용희 대감이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그래요. 어서 가요."
아직은 어린애에 불과한 어린 임금은 이렇게 활달하게 말하며 김영훈의 손을 꼭 잡고
이용희가 있는 쪽으로 앞장을 선다.
어린 임금과 김영훈이 이렇게 움직이자 임금의 경호를 맡고 있는 추밀원의 위사들과
김영훈의 경호원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태릉에 지어진 육군사관학교는 지난 1년 동안 천군 공병중대의 일부와 조선의 건축
기술자들이 지은 전통 조선식과 현대식이 어우러진 건물로, 총 3개 동의 건물은
각각의 용도에 따라 교무실과 교장실, 대강당, 그리고 학급과 기숙사로 나뉘어져
있는데, 학급과 교무실 교장실이 한 건물을 차지하고 대강당이 또 한 건물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숙사가 마지막 한 건물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 기숙사는 2층의
건물로 중앙난방식의 석탄보일러와 목욕탕이 완비된 당시로서는 가장 현대식의
건물이자, 철근과 콘크리트, 붉은 벽돌로 지어진 조선 최초의 양식 건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사관학교의 입학 자격은 16세 이상 30세 이하의 남자에 한글을 읽고 쓸 줄 알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다. 단 한가지의 단서 조항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단발(斷髮)
을 한 남자에 한하여 주어진 응시자격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의 조선군에게 시행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의 느낌이 없잖아 있는 단발에 대한
단서 조항은 새로 충원되는 조선군에서 의무적으로 단발을 함으로써 나중에 시행할
단발령에 대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으로 시행된 조항이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장발의
조선인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이와 벼룩을 비롯한 각종 피부 질환을 유발하는
해충의 유해성에 대한 교화시킬 목적으로 둔 조항이기도 했다.
무과가 폐지되고 나서 오직 사관학교 출신의 생도들로만 무관을 충원한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나서 처음 입학하는 사관학교의 입학 자격시험에는 단발령이란 단서 조항이
붙었음에도 1200명이 넘는 엄청난 인원이 응시를 하여 그 중에서 350여명을 추리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존의 전통 무가(武家)의 후손이거나 새롭게 무관으로서
입신을 꿈꾸는 수많은 중인의 자제와 상민, 천민의 자제들, 여기에 근위, 친위천군
소속 조선군의 자제들이 대거 응시를 하는 바람에 사관학교 응시자격시험은 엄청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총 1200명이 넘는 응시자 중에 기골이 장대하며, 두뇌가 우수하고, 무예가 출중한
350명의 신입생도가 추려졌다. 이들 생도들은 앞으로 4년 동안 각종 군사학과 역사,
국어, 한문, 수학, 과학, 물리, 화학, 등의 기초 과학과 영어를 비롯한 여러
외국어를 배우게 된다.
"전하, 이곳이 생도들이 머물게 되는 내무반이옵니다."
초대 육군사관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된 이용희는 어린 임금과 김영훈을 모시고
기숙사로 들어가 그 중에 한 방을 공개했다.
그 방은 한 가운데에 통로가 있고 양쪽으로 콩기름이 잘 발라진 장판지로 마감한
마루가 있었는데 그곳에 이불과 모포가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게 아마도 침상인 것
같았다.
그리고 침상 위에는 각자의 개인 물품을 보관할 관물대가 있는 것이 20세기에서
한국군이 사용하던 내무반의 모습과 아주 흡사했다.
"그럼, 이런 내무반 하나에는 모두 몇 명의 생도가 생활하지요?
"모두 열 명이 생활하게 되옵니다. 전하."
"그렇군요. 이번에 입학한 생도의 총원이 350여명이라고 했지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매해 350여명의 생도들이 입학을 할 것이옵니다."
이용희의 말에 빙긋이 웃어 보이던 어린 임금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진다.
"그럼 앞으로 들어오게 될 신입 생도들을 위한 기숙사는 따로 짓고 있나요?"
"그것이 걱정이었사옵니까?"
"그래요. 과인은 새로 들어올 신입생도들을 위한 기숙사가 모자라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였답니다."
"하하하...그런 걱정은 당치도 않사옵니다. 이미 새로운 기숙사는 착공에
들어갔사옵니다."
이용희의 이와 같은 말이 있자 어린 임금은 그제서야 안심을 하였다는 듯 내무반
여기 저기를 둘러보면서 모포를 만지기도 하고 장판을 쓰다듬기도 한다.
또 보일러의 뜨거운 관을 맨손을 만지다가 살짝 데기도 하여 수행하던 수행원들과
내관들을 놀라게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