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80화 (78/318)

75.

"합하, 이것이 이번 대책회의에서 논의된 사항들입니다. 한번 보시지요."

한상덕은 대정원에서의 관계기관 대책회의가 끝나자 김영훈이 머물고 있는

아재당으로 와서 대책회의에서 논의되었던 사항을 보고한다.

편안한 생활한복을 입은 말끔한 모습의 김영훈은 한상덕이 내민 보고서를 한 참을

훑어보더니,

"수고했어요, 이제 토지개혁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개혁은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올라선다고 봐도 무방하겠군요."

"그렇습니다. 합하. 그런데 신분제도의 타파는 언제나 하실 생각이신 지...?"

"신분제도의 개혁은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그러나 각 분야에서 서서히 신분의 벽을

없애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그 효과는 차츰 나타나게 될 겝니다."

김영훈의 말이 맞았다.

이제 겨우 개혁의 첫 발을 내딛은 것이나 마찬가지의 상황에서 신분제도까지

타파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는 주문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군에서부터 신분상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는 현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군요, 헌데 이최응 일당은 어떻게 처리하실 지...?"

"이최응 일당요?"

"그렇습니다. 합하."

"음..."

그렇지 않아도 그게 고민이었다.

이미 한상덕의 대정원에서는 이최응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었고,

이최응이 누구를 만나며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영훈은 천성이 피를 보기를 원하지 성격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난 계해년(1863년)에 있었던 흥성대원군의 시해 사건을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잘 나타났으니, 그때 어린 임금을 비롯한 대부분의 천군 지휘부에서 김씨

일파의 씨를 말려버릴 것을 원하였으나, 김영훈이 강력하게 주장하여 15세 이상의

남자들만 벌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연루되어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간 사람의 숫자가 100명이 넘을 정도로 많았기는 했지만... 그래서

김영훈은 그 점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군인이 그것도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성격으로는 약간은 여린 측면이 없지

않았으나 그것이 김영훈의 매력이기도 했다.

김영훈은 어머니를 닮아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았다.

어려서 어머니와 같이 연속극을 볼 때도 연속극에서 약간 마음 아픈 장면이 나올

때면 두 모자는 저절로 눈물을 흐렸다. 그러면서 어린 김영훈이 "엄마, 왜 울어?"

하고 물으면 김영훈의 생모는 눈물을 훔치며 "그러는 너는 왜 우냐?" 할 정도로 두

사람은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은 점이 닮았다.

커가면서 약하고 여린 심성을 개조할 생각으로 군문에 투신한 김영훈이었지만 어디

천성이 그렇게 변하기가 쉬운가. 여린 심성은 군에 있을 때도 그대로였으니, 그것은

조선으로 시간여행을 온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겉으로는 근엄한 섭정공의 신분이었지만 혼자 잠자리에 들 때는 가끔씩 한국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 흘릴 때가 많았다.

그런 심성을 지닌 김영훈에게 정적(政敵)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최응 일당을

잡아들이고, 죄를 묻고, 결국에는 목을 자르라는 것은 어려운 주문이었다.

물론 김영훈도 때에 따라서는 피를 봐야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의 개혁이 완수할 때까지는 자신을 비롯한 천군이 정권을 꽉 움켜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야만 낯선 땅, 낯선 세계로,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생각하고

무모하다면 무모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여행에 자원한 1500여 천군의 바램이

이루어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더 두고볼 생각이었다.

"아직 저들의 세력은 미미합니다. 겨우 종친부 몇 사람과 여흥 민문의 젊은이들이

모여서 큰 일을 도모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좀 더 두고 봅시다."

"으...음, 알겠습니다."

한상덕은 김영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의 정책을 따르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혹시 조성하에게서 올라온 보고는 없었습니까?"

"조성하라면...혹시 러시아의 동태에 대한 보고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통상을 요구하는 서한이 온 후에 특별한 움직임이 없는 것 같소만..."

"러시아의 움직임에 대한 더 이상의 보고는 없었습니다."

"음..."

김영훈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인상이 어두워진다.

뭔가를 한참을 생각하던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새로운 지시를 내린다.

"우리 대정원 요원 중에 가장 뛰어난 요원으로 몇 명을 선발하여 러시아의 동태를

감시하라고 이르세요, 저들과 접촉할 수 있으면 더욱 좋구요."

"러시아와 말입니까? 갑자기 러시아는 왜...?"

한상덕이 이런 의구심을 나타내자 김영훈은 한상덕에게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뭔가를

얘기하는데 그것을 듣고서야 김영훈의 뜻을 파악하는 한상덕이었다.

"알겠습니다. 빠른 시일 내로 저들과의 접촉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초청작품*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47 개혁(改革)의 첫걸음...18

번호:54  글쓴이:  yskevin

조회:286  날짜:2003/11/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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