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75화 (73/318)

71.

"이제 가장 중요한 토지개혁 문제를 처리하도록 하겠소. 누구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이 계시면 의견을 개진해 보시오."

"합하, 신 상공대신 박규수 아뢰오."

"오! 환재 대감, 말씀해 보세요."

상공대신 박규수가 김영훈의 명이 떨어지자, 그동안 생각했던 토지개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기 시작한다.

"합하, 정다산이 지은 전론(田論)을 살펴보면 使農者得田(사농자득전)

不爲農者不得之(불위농자부득지) 則其可矣(칙기가의) 均田限田者(균전한전자)

將使農者得田(장사농자득전) 使不爲農者(사불위농자) 亦得之(역득지)...

是率天下而敎之遊也(시율천하이교지유야) 其法固不能盡善也(기법고불능진선야)라

하였사옵니다."

"호-- 그 말은 [농사를 짓는 사람은 토지를 얻도록 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토지를 얻지 못하도록 한다면, 그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균전(均田)과 한전(限田)

은 농사를 짓는 사람도 토지를 얻도록 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도 토지를 얻도록

하며,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토지를 얻게 한다. 무릇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에게 토지를 얻게 하는 것은 세상 사람을 이끌고 그들에게

놀고 먹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세상 사람을 이끌고 그들에게 놀고 먹도록 가르친다면,

그 법은 진실로 좋은 것일 수 없다.] 라는 정다산의 토지관(土地觀)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오?"

김영훈의 이 물음에 오히려 정신이 없는 것은 박규수였다.

자신보다 어린 김영훈을 내심으로 존경하고, 그가 하는 일이 조선에 이로운 것을

인정하고 따르기는 하였지만 설마 정약용의 전론까지 읽었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당황한 박규수는, 다음 할 말을 잊고 있다 겨우 말을 한다.

"정다산은 전론에서 또 이런 말을 하였지요. [하늘이 백성을 낳고 먼저 그들을

위하여 토지를 마련해서 그들로 하여금 먹고살도록 하였다. 그리고 또 그들을 위해

임금과 관리를 세워 그들로 하여금 백성들의 부모가 되어 백성들의 재산을 균등하게

해서 다같이 잘 살도록 하였다. … 그 재산을 균등하게 하여 다같이 잘 살도록 하는

사람은 임금과 관리 노릇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고, 그 재산을 균등하게 하여 다같이

잘 살도록 하지 못하는 사람은 임금과 관리 노릇을 저버린 사람이다.]"

"그렇죠. 그 말은 곧 궁극적으로 한 나라의 통치를 맡고 있는 임금과 관리는

백성에게 땅을 골고루 나누어주고 골고루 잘 살게 했을 때,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이라는 의미가 아닙니까?"

"그러하옵니다. 합하. 정다산은 신도 존경하옵는 선배 실학자이온데 실로 어마어마한

저술을 남기기고 했거니와 그가 주장한 개혁안은 우리 조선을 밝은 세상으로

인도하려는 합하의 이상과도 일치한다고 사료되옵니다. 정다산이 전론에서

주장한데로 모든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되 오직,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에게 한해서

토지를 분배한다면 합하께서 원하시는 이상적인 토지개혁이 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박규수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정약용은 유형원이 주장했던 균전제(均田制)와 이익이 주장했던 한전제(限田制)의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두 제도가 내포하고 있던 단점과 한계까지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이것은 "대저 선비란 어떤 사람인가. 선비는 어찌하여 놀면서 남의 토지를 차지하고

남의 힘으로 먹고사는가? 대저 놀고 먹는 선비가 있기 때문에 땅의 수확량이 최대가

되지 않는다. 놀고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직업을 바꾸어 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라는 전론의 언급에서 확인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정약용의

토지개혁안은 균등의 원칙 이외에 "농사를 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얻을 수 있다"는

원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의 여전제(閭田制)는 바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토지를 얻도록 하고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토지를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제도인 셈이다.

여전제의 기본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농사짓는 사람만이 토지를 얻고 농사짓지 않는 사람은 토지를 얻을 수 없다.

② 자연적인 지형에 따라 30호 안팎을 기준으로 한 개의 ‘여’(閭)를 만든다.

③ 1려의 토지는 여 안의 사람들이 여장(閭長)의 지휘 밑에서 공동으로 경작하고,

여장은 매일 여민(閭民)들의 일역(日役)을 일역부에 기록한다.

④ 가을에 수확하여 모두 여의 창고에 넣었다가 먼저 공세를 나라에 바치고,

다음에는 여장의 봉급을 주고 나머지를 일역에 따라 여민들에게 분배한다.

[토지에는 주인이 둘 있으니, 그 첫째가 왕이고 그 둘째가 농민이다. 시경에 이르길,

"온 천하가 왕의 땅이 아님이 없다"고 하였으니, 왕이 그 주인이다. 또 시경에서

말하길, "비가 우리 공전(公典)에 내리고 드디어 우리 사전(私田)에도 이른다"고

하였으니, 농민이 그 주인이다. 그 둘 이외에 또 누가 감히 주인일 수 있겠는가?

지금 부유하고 힘있는 백성은 겸병하기를 마음대로 하여 왕세(王稅) 이외에 사사로이

그 조세를 걷으니, 토지에 주인이 셋이 있는 것이다.]- 경세유표(經世遺表) 전서(

全書) 2권에 수록된 내용

"이처럼 우리 조선의 모든 토지와 임야는 모두 주상전하의 소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농사를 짓는 백성들이 실질적인 소유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작금 우리 조선의 실정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은 매일매일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유리걸식(流離乞食)하고 급기야는

유민으로 전락하는 일도 다반사였사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토지의 개혁이 있게

된다면 그러한 폐단은 우리 조선 땅에서 발을 못 붙이고 사리질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

박규수의 말이 떨어지자 여기저기에서 반론이 쏟아져 나왔다.

특히 전 도승지이자 현 외무부 차관인 민치상의 반대 목소리가 가장 컸으니 대대로

기호지방의 권문세가로 이름이 있던 집안이라, 그에 따른 토지도 많아서 그런

모양이다.

김영훈은 좌중의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긴다.

박규수의 말대로 모든 토지를 국유화하고 그에 따라서 일반 백성들에게 재분배한다면

제일 좋을 것이나 그렇게 하기에는 권문세가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에

주저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모두 조용히 하시오. 여는 토지개혁의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중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할 생각도 없소. 토지개혁에 대한 것은 여가 중론을

수렴하여 결정할 것이니 그렇게들 아시오."

토지개혁까지 완성하기에는 아직 힘에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처리하여야할 문제임에는 틀림없으나 일단은 서원 철폐와 군정의

문란을 바로잡는 것으로 백성들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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