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나가사끼에서 윤정우 조선공사와 브란트 독일영사가 양국의 수교회담을 위한
준비회담을 하고 있을 때 조선에서는 또 하나의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예방 접종이었으니, 콜레라를 비롯한 장티푸스,
홍역, 천연두의 예방 접종이었다.
지난 갑자년(1864년)에 보위부가 설립되고, 보위부 산하에 신의도감(神醫都監)이
다시 설치되면서 조선에도 서서히 근대의학의 기틀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신의도감의 제조이자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 광혜원(廣惠院)의 원장인 안연
박사는 지난 1년 동안 내의원 출신의 조선 의관들과 의녀들을 교육시키고, 한국에서
가져온 각종 전염병의 백신을 배양하여 올해 을축년(1865년) 2월부터 전 조선의
백성들을 대상으로 예방 접종을 실시하기 시작한다.
지난 1년 동안 신의도감의 의약공장에서 생산된 충분한 수량의 각종 전염병(傳染病)
백신이 있었고, 조선의 의료수준과 위생수준을 충분하게 점검하였기에, 전 백성의
예방 접종이라는 원대한 사업을 시행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예방 접종은 조선 백성들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급격한 인구 감소의
주원인이었던 각종 전염병의 발생과 확산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획기적인 조치로,
실시 초반에는 가느다란 주사바늘이 사람의 살을 파고드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진 백성들이 많았으나 관에서 지속적인 홍보와 계몽, 동학의 확실한 지지가
있었기에 별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것은 어린 임금이 기거하는 대궐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오늘은 또 뭘 맞는다는 말이오?"
어린 임금은 오늘도 예방 접종을 맞아야 한다는 말에 벌컥 짜증을 내면서 소리를
질렀다.
어린 임금의 짜증은 2월부터 전국적으로 시작된 각종 전염병 예방 접종으로 인해 그
강도가 점점 더해만 갔다.
지난 2월부터 열흘 단위로 새로운 주사를 맞는 것은 어린 임금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천연두의 예방 접종을, 다음에는 콜레라, 다음에는 홍역, 이제
마지막으로 장티푸스의 예방 접종이다.
"전하, 이제 이것만 맞으시면 올해는 더 이상의 예방 접종은 없을 것이옵니다."
광혜원장이자 신의도감 제조의 임무를 맡고 있는 천군 의무대 책임자 출신의 안연
박사는 사람 좋은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어린 임금에게 아뢰었다.
임금이라 하여도 아직은 어린아이에 불과하였으니, 주사를 무서워하는 조선의 여느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커다란 주사바늘이 자신의 팔뚝에 콕하고 박히면 대개의 어린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리게 마련이다. 마찬가지 이치였다.
"제발 아프지 않게 놔주시오, 알아들었소?"
"심려 거두시옵소서 전하."
안연 박사는 이렇게 말하고 주사기에 백신을 넣고 주사기 몸통을 한 번 톡 친다.
이어서 알콜이 묻은 탈지면(脫脂綿)으로 어린 임금의 팔뚝을 문지르더니
슬그머니 주사바늘을 꼽는다.
어린 임금은 이내 울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팔뚝에 들어온 주사바늘을 보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눈을 질끈 감았다.
가느다란 바늘이 자신의 팔뚝으로 들어오더니 뭔가가 자신의 팔뚝 속으로 쑤욱 하고
들어오는 느낌에 진저리를 친다.
"이제 다 되었사옵니다. 전하, 이제 그만 눈을 뜨시옵소서."
"아...이 주사라는 것은 맞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구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과인의
몸 속으로 뭔가가 들어오는 기분이 과히 좋지만은 않소."
"하오나, 전하. 이 주사를 맞음으로써 전하를 비롯한 만 백성이 무서운 전염병의
마수(魔手)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답니다."
안연은 어린 임금의 그런 투정을 이미 많이 봤기에 별 부담 없이 얘기했다.
그런 투정이라도 부려야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어디 사람이라고 하겠는가.
"전하, 전에 소신이 올렸던 구충제(驅蟲劑)도 다 드셨겠지요?"
"과인이 그때 대감의 앞에서 구충젠지 뭔지를 먹는 것을 보고도 그런 말을 하시오?"
"그렇군요. 이제 올 한해는 사람의 몸 속에 기생하는 기생충(寄生蟲)이 더 이상
전하의 옥체를 훼손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알겠어요, 그나저나 이제 더 이상은 그 기생충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과인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오싹 돋는답니다."
"송구하옵니다. 전하."
어린 임금은 기생충 얘기만 나오면 그때 일이 생각이 나는 모양이다.
사실 어린 임금이 이렇게 기생충에 대해서 학을 떼는 이유는 따로 있지 않았다.
바로 자신이 직접 그 기생충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신의
몸 속에서 살던 놈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