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69화 (67/318)

64.

"형과 함께 이곳 나가사끼에 온 때가 5년 전인 1860년이었지요. 당시 우리는 머세슨

상회의 지원을 받으며 차근차근 돈을 벌 수 있었답니다. 2년쯤 지나자 여러 가지

무역으로 번 돈으로 나가사끼 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나미야테 언덕에 큰

저택을 구입할 정도로 사업은 번창하였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머세슨 상회의 지원을 받고 나가사끼에서 사업을 시작한 토마스 글로버와 그의 형

제임스 글로버는 한동안 나가사끼에서 큰돈을 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두 형제는

상해에 있던 아버지 토마스 벨 글로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가 죽었다는 비보(悲報)를 접한 두 형제는 나가사끼의 글로버 상회를 머세슨

상회의 나가사끼 지배인에게 잠시 맡겨두고, 상해로 떠나는데, 이 모든 것이 음모의

시작이었다.

나가사끼에서 글로버 상회가 번창하는 것을 시기하던 머세슨 상회의 운영진들은

글로버 상회를 통째로 먹으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그것이 바로 토마스 벨 글로버를

사고를 위장하여죽이고, 그 소식을 접한 두 형제가 상해로 올 때 나가사끼의 글로버

상회의 회계장부를 조작하여 글로버 상회를 통째로 삼키는 것이다.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어 결국 두 형제가 자신들에게 글로버 상회를 맡기고 상해로

간 사이에 모든 일을 진행시켜 버렸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나가사끼에 돌아온 두 형제는 이미 자신들의 모든 것이

머세슨 상회의 손에 들어간 것을 알고 격분했다.

두 형제는 머세슨 상회에 쳐들어가서 항의를 하였지만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였다.

절망한 두 형제는 나가사끼의 영국공사관에 진정도 해 보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미 머세슨 상회에서는 공사관에까지 손을 써 두었기 때문이다.

자포자기(自暴自棄)한 두 형제는 미나미야테 언덕의 저택을 팔고 남은 돈으로 한동안

연명(延命)하면서 술로 울분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지난해의 일이었다.

두 형제는 가슴속에 쌓인 울분이 복받쳐 오르면 어제와 같이 머세슨 상회를 찾아가서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소일을 하였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결국 형인 제임스 글로버가 연일 계속된 폭음과 악화된

건강으로 죽고 말았다. 울분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토마스 글로버는 더 이상 삶을 지속할 희망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머세슨 상회에 최후의 발악을 한 번 하자는 생각으로 찾아간

것이 바로 잠시 전의 일이었다.

여기까지 얘기를 한 토마스 글로버의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

삶을 체념한 자의 얼굴이랄까?

토마스 글로버의 얘기를 들은 정의의 사도(使徒) 정운두는 "저런 육시럴

것들이 있나, 내 저것들을 당장.." 하면서 흥분을 하였으나, 전준호는 그런 정운두를

말리며 생각에 잠긴다.

사실 정운두는 장사 수완도 좋고, 일도 잘하고, 사교성도 좋아 큰 상인으로서 대성(

大成)할 자질이 충분했다.

다만 여색을 밝히는 정도가 심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불의(不義)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은 흠이 아니라 장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전준호는 토마스 글로버에게 말한다.

"그렇다면 당장 어디 갈 데도 없다는 말이오? 만약 갈 데가 없다면 우리와 함께

이곳에서 일을 해 보는 것은 어떻겠소?"

"예? 그게 무슨 말인지...?"

토마스 글로버가 전준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정운두는 전준호의

표정만 보고도 전준호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단박에 이해했다.

"아따, 그것 참 좋은 생각입니다요, 이 사람을 우리 사람으로 만들기만 한다면 우리

쥬신상사가 하는 일에 큰 보탬이 될 것이구만요."

"정운두씨는 내가 영어로 하는 얘기를 알아들었나?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영어는 무슨 놈의 영업니까. 다-- 지점장 나으리의 표정만 보고 돌아가는 판세를

읽은 것이지요...헤헤헤."

정운두의 그런 눈치와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에 전준호를 혀를 내두른다.

전준호는 아직도 자신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토마스 글로버에게,

"글로버씨, 머세슨 상회에 대한 당신의 원한이 크다면 우리와 함께 일합시다. 그래서

우리 손으로 머세슨 상회를 무너뜨리고 올바른 상도(商道)가 무엇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알립시다.

그리하여 다시는 머세슨 상회 같은 악덕 기업이 이 세상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우리가 다함께 힘을 씁시다. 어떻소? 글로버씨."

전준호가 이렇게 열변을 토하며 말을 하자 그때서야 알아듣는 토마스 글로버였다.

잠시 생각을 한 토마스 글로버는,"

"정말 그렇게만 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습니까? 정말 저를 받아주시는 겁니까?"

"그렇소, 우리 모두가 함께 잘해 봅시다. 그래서 머세슨 상회와 같은 악덕기업이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본 때를 보여줍시다."

이렇게 말하며 전준호는 정운두와 토마스 글로버의 손을 꽉 움켜쥔다.

사실 자딘 머세슨 상회는 그 당시의 유럽계 상인들이 다 그렇듯이 건전한 상술을

통해서 기업을 일으킨 회사가 아니었다.

지금도 자딘 머세슨 상회는 홍콩의 스와이어 재벌과 함께 홍콩의 경제계를

좌지우지하고있지만, 당시에도 자딘 머세슨 상회는 아시아 최대의 영국계 기업이었다.

자딘 머세슨 상회는 1843년 아편전쟁이 끝난 후 영국군의 홍콩주둔을 기화로 홍콩

섬에Causeway Bay와 East Point라는 두 곳에 창고를 건설한다. 바로 아편을 보관하기

위한 창고였다. 홍콩 섬의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던 이 지역은 아편 밀무역의 선두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 자딘 머세슨 상회의 본거지로 개발되면서 점차 발전하게 된다.

아편전쟁이 끝난 후 백 오십 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홍콩 섬의Causeway Bay에서는

12시가 되면 제복을 입은 포수가 공포를 쏘아 정오를

알린다.

이것을 눈데이건(Noon day Gun) 이라고 하는데 19세기 중반 아편 무역으로 성공한

자딘 머세슨 상회의 무역선을 맞이하기 위해 쏘았던 대포가 그

유래라고 한다.

지금도 눈데이건은 홍콩 섬의 이름난 관광 명소로 자리 잡아 수많은 넋빠진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전준호는 지금 머세슨 상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뼈에 사무치는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토마스 글로버를 영입하여 머세슨 상회를

쓰러트릴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머세슨 상회로서는 실로 골치 아픈 존재의

탄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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