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63화 (61/318)

58.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오?"

나가사끼에 있는 왜국 주재 독일-프러시아-영사관의 영사 막스 폰 브란트 (Max

August Scipio von Brandt)가 이렇게 성내는 것도 얼마만 인지 모른다.

1862년 왜국 주재 독일영사로 부임한 브란트는 평소 온화하고 자상한 성격으로

나가사끼의 외교가(外交家)에서도 이름이 높았다. 올해 겨우 서른 살의 젊은

외교관이지만 청국을 비롯한 동양 권에서만 벌써 6년 이상을 지내고 있는 전문

외교관이었다.

아직은 젊은 외교관이었으나 얼굴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브란트였으나 이번 일은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브란트는 다시 묻는다.

"우리측 수병들이 이만큼 다쳤다면 상대방인 조선 공사관 직원들도 꽤 다쳤을 것

같은데 그쪽은 어떻다고 합디까?"

"...사실, 조선인들은 한 사람도 다친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뭐요? 그게 정말이요? 아니 조선인들은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다니 이게 있을 수

있다는 말이오?"

평소의 온화하고 자상한 모습은 어디 가고 앞에서 보고하는 직원에게 큰소리를

치면서 몰아세우는 것이 아무래도 브란트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

그런 브란트를 보면서 앞의 직원이 다시 말한다.

"막부의 경찰조직인 순찰조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술에 취한 우리 수병들과 역시

술에 취한 조선 공사관 직원들이 사소한 문제로 시비가 붙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 수병 한 사람이 먼저 조선인 한 사람을 밀쳐 넘어트렸고, 그렇게 해서

시비가 패싸움으로 번졌다고 합니다. 순찰조는 모든 상황이 종결된 후에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도착하여 보니 이미 우리측 수병들은 전원이 땅에 나뒹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순찰조는 그런 조선 공사관 직원들을 연행이나 조사도 하지 않고

돌려보냈단 말이오?"

"영사님도 아시다시피 막부의 순찰조가 아무리 대단한 조직이라고 해도 외국의

외교관을 어떻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가까워지기

시작한 막부와 조선의 관계를 살펴보면 그런 순찰조의 처사가 무리는 아니지요."

"충돌한 양측의 정확한 인원이 어떻게 된답니까? 당연히 조선 공사관 직원들이

숫적으로 월등히 우세했겠지요?"

"그것이... 실은... 우리측 숫자가 더 많았답니다. 저쪽은 겨우 여덟 명에 불과한

인원이었고, 우리측 수병은 그 배에 가까운 열 네 명이나 됐는데, 모조리 병원에

실려가고 말았습니다."

"이럴 수가...어떻게 이런 일이..." "

"..."

"지금 당장 조선 공사관으로 갈 것이니 준비하세요."

"그래도... 그것은 심각한 외교상의 결례인데...어떻게...?"

"지금 그런 것 따지게 생겼소?"

실상 조선 공사관이 지난해에 세워지고 나서 조선의 외교관들은 다른 나라의

외교관들과 별다른 접촉이 없었다. 이유는 조정에서 아직까지 개화에 대한 확실한

입장표명을 유보한 상태였기 때문인데, 이제 겨우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김영훈의 섭정체제가 개화를 극도로 꺼려하고, 혐오하는 기존의 수구

사대부 세력에 의해 공격받을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지난 1년 동안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이 조선의 자주적 개화를 위해

들여온 모든 공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음이었으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다만 김영훈이 왜국의 나가사끼에 공사관을 세우고, 50명이 넘는 대규모의 직원들을

상주시키고 있는 이유는 앞으로 있을 왜국의 정세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자는

목적에서였다. 그리고 왜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세밀한 정세를 파악하기

위함이었으니, 50명이 넘는 공사관 직원 가운데 무려

40명의 인원이 천군과 조선 군관 출신의 무관들로 채워진 것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그리고, 조선으로서는 앙숙인 막부와 존왕파 사이에서 최대한의 실리와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였다. 조선이 커나가기 위해서는 그 디딤돌이 필요했는데

김영훈은 그 디딤돌로 왜국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지난해 여름 조선에서 나가사끼에 공사관을 세울 때만해도, 나가사끼에 있는 유럽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은 지구상 마지막 폐쇄국인 조선도 이제는 서서히 개화의

바람이 불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조선 공사관의 동태를 예의주시 하였으나, 그것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조선의 외교관들은 특별히 개화를 한다는 징후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오로지 막부와의 친선관계에만 몰두하고 있었으니, 그동안 나가사끼의

외교가에서는 그런 조선 공사관의 행보에 대해 말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전까지만 해도 조선을 청국의 일개 속국에 지나지 않는

미개하고 가여운 나라로 생각하였으나, 공사관이 설립된 후에는 그런 시각에서

탈피하여 하나의 독립된 자주국(自主國)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확산된 것이 달라진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었다.

그동안 나가사끼에 상주하던 유럽 여러 나라의 외교관들은 어떻게든 조선 외교관과

접촉할 창구를 마련하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하였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것은

본국의 훈령이 없는 상태에서 어떠한 외교적인 접촉도 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는

조선 공사 윤정우 명의의 정중한 거부의사 밖에 없었다.

사실 브란트 독일 영사가 외교상의 심각한 결례를 무릎 쓰고 조선 공사관을

방문하려는 이유도 조선이 다른 나라와 접촉하기 이전에 먼저 조선 공사와 접촉하여

조선에 접근하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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