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아침에 신기도감에서 있었던 신무기 시연회도 끝나고, 참석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일부는 섭정공 김영훈을 따라 운현궁으로 향했고, 일부는 자신들의 임지로 돌아갔다.
내무대신 김병학도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12부 거리에 위치한 내무부로 가기 위해
남여(藍輿)에 올라탔다.
김병학을 태운 남여는 흔들거리며 앞으로 나간다.
이렇게 김병학이 남여를 타고 가고 있는데,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말발굽 소리가 급한 것이 시연회에 참석했던 무장이 서둘러 임지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김병학이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데 뒤에서,
"형님! 병학이 형님!"
김병학은 난데없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놀라며 뒤를 돌아본다.
뒤에는 자신의 친동생이자 국방대신인 김병국이 말을 몰며 오고 있었다.
"응? 자네가 왠 일인가? 운현궁에 가야 할 사람이?"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잠시 남여를 세우시지요."
"응? 중요한 일...? 알았네. 여봐라! 잠시 남여를 세워라."
김병학의 말이 떨어지자 남여꾼들은 지체 없이 남여를 세운다.
"그래...중요한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형님 잠시 귀 좀..."
말에서 내린 김병국은 주위를 둘러보며 김병학에게 말했다.
잠시 의아한 생각이 든 김병학이었으나, 서슴없이 귀를 내준다.
김병국의 귀엣말을 들은 김병학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무에야? 그 아이가 왔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형님.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그 아이가 왜?"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만...혹시...?"
"혹시...? 뭔가? 답답하구만, 빨리 말해보시게."
"혹시 지난번의 그 일로 앙심을 품고...?"
"그 일이라면 혹시... 그 일을 말함인가?"
도대체 두 형제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말하는 그 아이는 누구며, 또 그 일은 무엇이란
말인가?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김병학은 김병국에게,
"자네는 운현궁으로 가야하니 어서 가보도록 하게. 그리고 밤이 되면 그
아이와 함께 내 집에 들르도록 하고, 행여 괜한 행동으로 섭정공 합하와
천군이 이상한 눈치를 채게 되서는 아니 될 것이야.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밤에 뵙도록 하지요."
"그래, 행동을 각별히 조심해야할 것이야."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일국의 대신들이, 그것도 섭정공 김영훈의 각별한
총애(寵愛)를 받는 두 형제가 이렇게 놀라며, 김영훈과 천군이 이상한 눈치를 채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가...
잠시 그 자리에 머물며 김병국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병학은
다시 남여를 출발시킨다.
'어찌 이런 일이... 이 일을 어찌 하면 좋단 말인가.'
흔들리는 남여 위에서 김병학은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얼굴은 점점 어두워
가고 있었으니 무슨 사단(事端)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