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56화 (54/318)

51.

"합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천군이 보유한 K-2는 5.56mm 소총탄을 사용하옵니다.

그런데 한식보총의 총탄 구경은 7.5mm이구요. 우리 기기창에서 한식보총과 한-4198

기관총의 총탄을 전혀 새로운 구경으로 생산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말을 하기 시작하자 청산유수(靑山流水)처럼 흘러나오는 말이

끊임이 없다. 처음에 당황하여 허둥대던 강위가 아니었다.

"합하께서도 알고 계시다시피 우리 신기도감에서 개발하여 생산한 양식보총은

스나이더 소총의 개량형이라고 신(臣)은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 스나이더 소총은 구경이 14.66mm인 소총탄을 사용하는 소총이온데 우리

신기도감에서는 그것을

7.5mm 소총탄으로 개량하여 양식보총과 한식보총, 그리고 한-4198 기관총의

소총탄으로 채택한 것이지요."

"오라-- 그러면 이미 개발된 소총탄이기 때문에 그랬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합하,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니옵니다."

"호--- 그게 다는 아니다?"

김영훈은 강위의 말에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다.

그런 김영훈의 모습을 본 강위는 마른침을 한 번 삼킨 후 말을 잇는다.

"그렇사옵니다, 합하. 우리 기기창에서 7.5mm의 소총탄을 개발 채택한 또 다른

이유의 한 가지는 바로 우리 조선 고유의 총탄 구경을 확립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합하께서도 잘 알고 계시겠지만 천군의 5.56mm 총탄이나, 7.62㎜ M43탄이나 피탄 시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다르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다른 양이들의 국가에서 개발하여 채택한 것을 우리 천군이

차용한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우리 기기창에서는 그러한 전철(轉轍)을 밟지 않고 싶었기 때문이옵니다.

이것은 우리 조선의 자주성(自主性)을 나타내는 것으로써 나중에 다른 양이들의

국가에서도 우리의 7.5mm 소총탄이 표준으로 채택될 것을 염두에 둔 것이옵니다."

"호--오, 그런 숨은 뜻이 있었소?"

외세에 의해 핍박받고, 쪼들리던 한국에서 어쩔 수 없이 시간원정이라는 황당한

계획을 실행할 수밖에 없었던 김영훈에게는 강위의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내심 기껍고, 흐뭇한 마음이 든 김영훈이 그런 강위에게 다시 묻는다.

"내가 알기론 Gew98같은 경우 부품 수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생산에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점은 어떻게 해결하였소? 그리고 아까 강부장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7.5mm 소총탄을 개발한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무엇이오?"

"합하, 그것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여태 나 몰라라 가만히 있던 심재동이 나선다.

"합하께서 들고 계시는 한식보총은 모양만으론 영락없는 Gew98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밀한 부분을 살펴보면 Gew98와는 또 다는 설계 방식이

숨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M700 레밍턴 소총의 노리쇠부분을 채용하여 간단한

부품에 고장은 적고, 대량생산이 쉽도록 설계한 것입니다.

"

"과연 그렇군요."

김영훈은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노리쇠부분을 살펴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영훈의 표정을 지켜보던 심재동은 다시 말한다.

"그리고 7.5mm 소총탄을 채택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도량형의 옳바른 표준을 우리

군에서 앞장서서 선도할 것을 염두에둔 것입니다. 합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리

조선의 도량형은 근(斤)과 척(尺)입니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우리 천군은 그 같은

근과 척 단위의 도량형(度量衡)을 우리가 한국에서 쓰던 것과 같은 미터와 그램으로

바꾸려는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렇지."

사실 지난 갑자년에 집권한 김영훈은 조선의 전근대적인 도량형을 개량하기 위한

정책도 시행하였으나 아직은 일반 백성들보다는 12부를 비롯한 관(官)에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관에서 쓰기 시작하면 그 여파가 일반 백성들의 삶에도 미치는

것은 당연하였으나,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여파는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양이들의 국가 중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영국에서는 대대로 인치와

파운드를 쓰고 있습니다. 합하께서도 한국에 있을 때 이미 경험하셨지만 당시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몇 백년을 이어온 파운드와 인치 단위의 도량형으로 인해

현대에 와서는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요."

사실이었다. 지금의 영국이나 미군은 몇 백년을 두고 고집했던 파운드와 인치로 인해

지금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전 세계적인 표준

도량형이 미터와 그램으로 거의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군대의 무기에서 불편함이 더욱 크게 드러난다.

이렇게 김영훈과 심재동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김종완 신임 해군사령관이 나선다.

"그럼, 지난번에 풍백함에 장착한 120mm 포도 그런 이유에서입니까?"

"그렇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풍백함의 포가 어째서요?"

영 처음 듣는 소리에 김영훈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그런 김영훈에게 심재동이 설명을

한다.

"실은 지난해 진수한 풍백호의 주포를 해군에서는 기존의 이순신함과 같은 5인치

127mm 포를 주장하였고, 우리 신기도감에서는 120mm 포를 고집하였었지요."

"그래서요?"

"당시 해군의 주장은 127mm 주포를 채택하여 이순신의 주포와 동일하게 개발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그 이유는 포탄의 안정적인 공급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일리가 있는 소리고만..."

"그렇지요, 일리 있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기도감에서 굳이 120mm를 고집한

이유는 나중을 생각해서입니다. 미터와 킬로로 도량형을 개량해야하는 마당에 전혀

새로운 인치의 개념을 풍백함의 주포에 도입하게 된다면 기존의 근과 척을 쓰던

조선군에게는 미터와 그램의 개념을 새로 배우고 거기에 다시 인치와 파운드의 전혀

다른 개념을 또 다시 배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번거로움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재앙에 가깝다고 해야겠지요.

그래서 120mm 포탄과 127mm 포탄을 따로 생산하는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굳이 120mm를

고집한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호---오, 그런 숨은 뜻이 있었소? 나는 몰랐는걸..."

심재동의 말이 맞았다.

몇 천년 동안 근과 척의 개념만 사용했던 조선의 백성들이 전혀 새로운 미터와

그램에 적응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인치와 파운드를 다시 배운다는 것은 거의

죽음이었다.

그것은 조선군도 마찬가지였다.

실상 남양의 해군사관학교-올해부터 해군학교가 용도변경 되었다.-에서 교관들이나

교수들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도 생도들의 미터와 그램에 대한

몰이해였다.

군사기술은 민간기술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당장에 눈앞의 이득에 혹해서,

자칫하면 몇 백년을 조선의 백성들이 고생하게 만들 수도 있었기에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더라도 한 가지의 도량형을 선택하여 표준화시키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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