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54화 (52/318)

49.

신기도감 본 청을 떠나, 뒤뜰에 마련된 시연장으로 향하는 강위의 걸음에는 힘이

넘치고 있었다.

천천히 옮기는 발걸음이었지만 알 수 없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게 뭔가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아마, 자신도 신무기 개발에 일익(一翼)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리라...

실상 강위가 조선에서 알아주는 과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천군에게

내세울 것은 못되었다. 그 수준에서 알아준다는 얘기였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강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지난날 천군에게 호출되어 기기창의 부 책임자로 임명될 때까지 만해도 강위는

자신이 있었다.

천군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그들에 못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강위의 자신감은 기기창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지 단 몇 분만에

깨어졌다.

강위는 난생 처음 보는 초고온 태양로 시설과 그것이 생산해내는 전기라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물건에 압도당했다.

희한하게 생긴 기계가 굉음(轟音)을 내며 돌아가는 것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으며,

무엇인지 모를 기계가 내리 누르는 것만으로 철판이 잘려나가고, 총몸이 똑같은

모양으로 찍어져 나오는 것에 오금을 펴지 못했다.

한마디로 우물안 개구리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강위가 씁쓸하게 웃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신기도감

제조(提調) 심재동이,

"강부장,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혼자서 웃고 계신 겁니까?"

"아-- 제조대감.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저 지난날 제가 이곳에 처음 왔던 때가

생각이 나서요."

"하하하...그래요."

"그렇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던 제가 이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대감을 비롯한 천군의 공(功)입지요..."

"무슨 말씀을...우리 천군이 아무리 잘 가르쳤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그것을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의

강부장이 있기까지는 강부장 스스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이렇게 겸양(謙讓)의 말을 하는 강위는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이 대견한 모양이다.

두 사람이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걷고 있는 동안 이미 모든 사람들은 뒤뜰에 마련된

시연장에 도착했다.

시연장에 도착한 강유는 먼저 한식보총 몇 자루를 김영훈을 비롯한 여러 무장들에게

돌리면서 선을

보인다. 그리고 이어서 한식보총의 제원에 대해서 설명한다.

"지금 제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 바로 우리 신기도감 기기창의 역작(力作)인

한식보총입니다. 이 한식보총은 천군의 기술과 우리 조선 장인들의 우수한 기술이

접목된 소총으로 기존의 화승총이 두 발 방포할 때 이 한식보총은 60발-분당 기준-을

방포할 수 있습니다."

지금 강위의 손에 들려 있는 한식보총은 독일이 개발하는 볼트액션식 소총의 걸작인

모우저 1898 볼트액션식 5연발소총인 Gew98(*1)의 개량형으로 98식 보다 길이는

짧아졌지만 성능은 오히려 크게 개량된 소총이다. 아울러 M700 레밍턴 소총의

노리쇠를 채용하여 부품 간단하고, 고장 잘 안나고, 대량생산이 쉽도록 설계된

우수한 소총이다. 한 마디로 전(前)에도 없었고, 후(後)에도 없을 볼트액션식 소총의

총아(寵兒)라고 할 수 있었다.

한식보총의 제원을 살펴보면

작동방식: 볼트액션식

타입 : 단축형 소총

구경 : 7.5mm

길이 : 1.100m

무게 : 3.9kg

총구 속도 : 807.72m/s

급탄 방식 : 5발 묵음 삽탄장전식

최대 사거리 : 2743.2 m

유효 사거리 : 731.52 m

이렇게 강위가 한식보총의 제원에 대한 설명을 하는 동안 4개 사로(射路)의 모든

시험 준비가 끝이

났다.

그 모습을 본 강위는 사로에 서 있는 군사들에게 방포(放砲) 명령을 내린다.

"방포!"

강위의 방포 명령이 떨어지자 각 사로의 군사들이 사격하기 시작한다.

화승총보다는 약간 조용하지만 역시 우렁찬 굉음과 함께 발사가 되는데, 기존

화승총과는 또 다른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총포의 발사 시에 연기가 거의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흑색화약(黑色火藥)이 아닌 무연화약(無煙火藥)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각 사로의 군사들이 순식간에 여러 번의 발사를 끝내자 여기저기에서 감탄성(感歎聲)

이 튀어나온다.

그 모습을 본 강위가 흐뭇한 웃음을 머금고 다시 말을 한다.

"이번에는 우리 조선군 최초의 기관총을 시연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연에 앞서 이

기관총의 성능과 제원을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 제 앞에 있는 이

기관총의 이름은 한(韓)-4198 기관총이 되겠습니다. 이 기관총은 역시 우리 기기창의

우수한 지식과 기술의 접목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한-4198 기관총은 밸기에제 Fn-mag의 복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추위에 잘 견디고,

더위에도 잘 적응하는, 전천후 기관총으로 먼지와 물에 대한 거부 반응이 없는

만능의 기관총이다.

처음에 신기도감에서는 Fn-mag와 독일제 MG42를 두고 고심하였으나, 결국 Fn-mag으로

결정하였다.

MG42는 2차대전 당시 히틀러의 전기톱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연합군 병사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우수한 기관총으로 분당 1200발 발사가능이라는 엄청난 성능

때문에 신기도감 기술진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나, 총신이 앞뒤로 움직이는 특이한

구조 때문에 신뢰성에서 떨어졌으며, 결정적으로 먼지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걸림돌로

작용하였다.

Fn-mag은 돌격소총을 크게 만든 것 같은 단순한 구조에, 추위와 더위, 먼지와 물에

강한 점이 기술진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무래도 조선의 앞날 위한 현명한

결정이었다.

한-4198 기관총의 제원은,

구경 : 7.5mm

길이 : 1.125m

무게 : 13.9kg

총구 속도 : 800m/s

급탄 방식 : 탄띠송탄식

최대 사거리 : 4011m

유효 사거리 : 1011m

최대발사 속도: 분당 최고 800발까지 발사 가능

강위의 말이 있는 동안 두 명의 군사가 각각 한 정씩의 한-4198 기관총을 들고 나와

사로에 거치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위는 기관총의 거치가 모두 끝나자 발사

명령을 내린다.

강위의 명령이 떨어지자 드디어 한-4198 기관총의 발사가 시작된다.

엄청난 굉음과 함께 한-4198 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한-4198 기관총의 사격과 동시에 주위에 몰려있던 중신들과 무관들 사이에서 경악(

驚愕)하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몇 발이나 쏘느냐? 저러고도 총이 남아나느냐? 하는 소리들이 강위의 귓가에 들리는

것으로 봐서는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미 표적으로 세워둔 밀집인형은 걸레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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