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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궁에 마련된 신기도감은 모처럼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손님맞이에 분주하다.
그런 신기도감의 바깥담에는 수많은 말들이 메여 있는 게 평소와는 달랐다.
바로 오늘 그동안 신기도감의 기기창(機器廠)에서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 왔던 보병용
소총, 역시 보병용 기관총(機關銃), 박격포(迫擊砲), 유탄발사기 등 4대 핵심 보병용
무기 개발 사업의 최종 사업보고 겸 시연을 보기 위해서 섭정공 김영훈을 비롯한
조정 중신들과 근위, 친위천군의 각 연대, 또는 대대의 고급 지휘관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신기도감의 본 청 마당에는 커다란 차양이 듬성듬성 쳐져 있었고, 그 안에는
김영훈을 비롯하여, 내무대신 김병학, 국방대신 김병국, 대정원장 한상덕, 근위천군
사단장 김욱, 친위천군 사단장 안용복, 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조선군 출신의 무관들이 자리잡고 있었는데 그 면면도 화려했다.
신임 합참 차장 신헌, 초대 육군사관학교장 이용희(李容熙), 경무청장 이경하,
소방청장 이장렴, 친위천군 강화도연대-101연대- 연대장 양헌수(梁憲洙), 역시
강화도에 주둔하는 강화도연대의 선봉대대인 1대대장 어재연(魚在淵) 등의 모습이
눈에 띠였다.
여기에 근위, 친위천군의 주임원사와 사단 참모진의 모습도 보였다.
이뿐이 아니었다.
과거 수군에서 이제는 해군으로 바뀐 남양의 해군사령부-삼도수군통어영의 후신-
에서는 해군 사령관 김종완을 비롯하여 풍백함의 함장 이원희를 비롯한 여러
참모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지난해 신기도감의 기기창 부장(副長)으로 임명된 강위(姜瑋)(*2)가 단상에 올라
여러 중신들과 무장들에게 한 번 인사를 한 후 말을 한다.
"오늘 드디어 우리 신기도감 기기창에서 그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하였던 신무기 개발
사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연회를 이렇게 여러 중신들과 무장들을 모시고 열게
되었음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 신기도감 기기창에서는 우리 조선군의 제식보총으로 처음에
양식보총을 만들었고, 다음으로 한식보총(韓式步銃)을 만들었습니다. 비록
양식보총이 근위, 친위천군에게 만 지급되었고, 일부는 외국으로의 수출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세계최초의 후장식 소총으로 지난해
있었던 왜국의 변란에 그 이름 값을 톡톡히 한 것을 여기계신 모든 분들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제 그 양식보총을 대신할 한식보총을 여러분들께 소개해
올리겠습니다. 지난해 양식보총의 시연회에서도 우리 신기도감의 총책임자이신
심재동 차관께서 말씀하셨지만 이 한식보총은 이미 지난해에 시제품을
생산하였었습니다. 그러나 10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시연을 하게 된 이유는 각종
무기를 만드는데 꼭 필요한 합금(合金)의 원활한 수급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건교대신이신 김정호 대감과 건교부 관계자들이 열과
성을 다하여 일을 추진한 덕분으로 이제는 각종 합금을 제련하는데 필요한 여러
광물을 우리 손으로 직접 캐내어 오늘 시연하게 될 각종 신무기 생산에 투입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김정호 대감과 건교부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기기창은 신기도감이 확대되면서 오직 군수품만의 생산을 염두에 두고 신설된
기관이다. 기기창의 창장은 천군 출신의 오수민 박사가 맡고 있었고, 부장인 강위는
요즘말로 천군에 스카웃된 인물로서 기기창의 부 책임자로 임명되어 여태까지 각종
무기 개발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강위가 이렇게 김정호와 건교부 관계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자 단하에 앉아 있던 김영훈을 시작으로 박수가 터지기 시작한다.
박수가 그치길 기다리던 강위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잇는다.
"이번에 우리 신기도감 기기창에서는 한식보총과 기관총, 유탄발사기, 그리고
박격포의 시제품을 만들었으며, 한식보총은 이미 3만정의 수량을 확보한 상태이며
나머지 제품들도 이미 생산에 들어가 일정 수량은 확보가 된 상태입니다.
이제 그 최초의 모습을 공개함과 동시에 시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저를 따라
시연장(試演場)으로 가시지요."
(*1)김장손과 김춘영은 실존인물로서 임오군란(壬午軍亂)의 주동인물들이었습니다.
그런 것을 제가 여기에 등장시켰습니다. 서민들을 등장시킬 생각으로요.^^
(*2)강위: 1820(순조 20)∼1884(고종 21)
강위역시 실존인물입니다. 시인이자 개화사상가였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과학적인
재능도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만들었던 휴대용(携帶用) 앙부일구(仰釜日晷)가
지금까지 잘 작동을 하고 있다네요. 또한 강유는 대원군 시절의 헤프닝인
학우비익선의 제조자 이기도 하답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39 개혁(改革)의 첫걸음...10
번호:4907 글쓴이: yskevin
조회:824 날짜:2003/10/3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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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改革)의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