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51화 (49/318)

46.

아침에 일어난 김장손(金長孫)(*1)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머리맡에 놓아둔 곰방대를

찾아 담배를 재는 일이다. 비록 상등품인 충청도 청양산(産) 담배가 아닐지라도, 잘

마른 강계산(産) 담배를 곰방대 대가리에 꾹 눌러 담고 성냥을 킨 다음 입안 가득

빨아 재끼면 '그래 이 맛에 내가 살지' 하는 심정이 된다.

더군다나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어제는 마누라 허리가 부러지도록 방아를 찧어댔다.

자신의 나이 마흔 다섯, 작년에 큰 아들놈을 장가보내 얼마 안 있으면 할아버지가 될

사람이었지만 아직은 한 몫 단단히 할 수 있는 남자라는 사실을 마누라에게

각인시켰던 밤이었다.

밤새 신음하던 마누라는 아침 일찍 일어났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오늘 아침상은

임금님 수랏상도 부럽지 않으리라.

김장손의 나이 올해 마흔 다섯, 큰아들 춘영(春永)도 작년에 혼례를 치러 한 시름

놓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생전에 저 자식 장가나 보내고 죽을 수 있을까 생각하던

신세였는데 작년부터 자신의 신세에도 볕이 들기 시작했다. 바로 천군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그저 훈련도감의 이름 없는 군졸에 불과했던 신분이었으나, 천군이

등장하여 중앙의 오군영(五軍營)을 통폐합하고 근위, 친위천군의 현대적인 사단(師團)

으로 개편하고 나서는 자신과 같은 하급군졸들의 삶에도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천군은 달라도 달랐다. 중앙의 오군영을 통합하여 근위, 친위천군으로 만든다고 할

때도 그저 남의 얘긴 줄 알았다. 지들이 해봤자 거기서 거기요, 그 나물에 그 밥이지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달리 천군이 아니었다.

근위, 친위천군으로 개편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기존의 조선군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특이한 훈련을 혹독하게 시켰는데, 처음에는 이놈의 짓거리가 뭔 짓거린지

싶었다.

정말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 훈련을 견뎌냈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혹독한

훈련이었다. 그나마 그전에 받던 녹봉보다 약 3할 정도 오른 녹봉을 제 때에 지급

받았기에 망정이지 다 늙은 나이에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근위, 친위천군에 배속된 모든 조선군들은 일률적으로 새로운 훈련을 받았는데, 그저

활이나 쏘고 창이나 휘두르는 게 단줄 알았던 조선군들에게 천군의 훈련은 영 판

생경한 것이었다. 무슨 놈의 오와 열을 맞추어 걷는 법이며, 매일 아침 이십 오리-

10Km-나 되는 거리를 구보랍시고 하는 것이며, 화승(火繩)도 없는 총포(銃砲)가

꽝하고 나가는 법이며, 기타 제대단위 전술 훈련이며 하는 모든 것이 생경했다.

천군의 훈련교관들은 혹독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과거 조선군의 직급에 상관없이 모든 군관과 군졸들이 새롭게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거기에는 오군영의 별장(別將), 중군(中軍), 천총(千摠) 등 정 3품 이상의 품계에

있던 군관들도 예외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군관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훈련을

시켰으니 안이하고, 구태(舊態)에 젖어있던 구악(舊惡)의 상징을 씻어내려는 천군의

의도가 숨어있었다.

김장손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김장손은 이 짓이 천직(天職)이려니 하고

묵묵히 견뎌왔다.

그러기를 육 개월만에 자신을 눈여겨보던 근위천군 사단장 김욱의 눈에 띠어 단숨에

근위천군 주임원사라는 꿈에도 꿔보지 못했던 높은 자리에 임명되어, 이제는 그

녹봉만 따져도 대대장만큼 많이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군다나 주임원사는 부대 운영과 군사들의 처우에 대한 문제나 그 외 잡다한 사무로

언제든지 사단장과 자리를 함께 하였으니, 근위천군 내에서는 아무도 그를 함부로

하지 못하였다. 달라진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북한산에 마련된 근위천군 본부 격인 북한행궁(北漢行宮) 외전(外殿)에 개인

사무실이, 그에게만 시중드는 당번 병에, 자가용 격으로 군마까지 한 필 지급되었을

때는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하였다. 실로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지난 갑자년에 개편된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은 각각 북한산성과 남한 산성을 주둔지로

삼아 기존의 조선군에 대한 개편작업에 들어갔는데, 모든 군의 직제와 관직, 계급은

현대 한국군의 직제와 계급을 그대로 따르고 있었다.

섭정공 김영훈의 집권과 더불어 발표된 근위, 친위천군의 조직개편안에 따르면

기존의 정종 9품의 18품계였던 조선의 품계를 근위, 친위천군만은 단 9개의 품계로

일원화하여, 무관들은 오로지 군문(軍門)에 종사하게 함으로써, 우수한 무관의

양성과 확보를 그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나중에 이것을 모방하여 내무부에서 기존의

정종 9품, 합이 18품계를 정 종의 구분 없는 9품계로 단일화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또한 단위부대의 편제도 전근대적인 편제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편제로 바뀌게 되는데

그것은 현대의 단위부대 편제와 똑같았다.

근위, 친위천군의 군제는 원수/대/중/소/준장-대/중/소령-대/중/소위의 구성이었는데,

여기에 준장(准將)을 없애고 준장인 별 하나에 소장(少將), 별 두 개에 중장(中將),

별 세 개에 대장(大將), 별 네 개에 상장(上將), 별 다섯 개에 원수(元帥)라고 한

것이 한국군과 다르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 민족 대대로의 무관직(武官職)이었던 대장군 위에 상장군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기존의 조선군에는 없던 진급년한까지 두었으니 누적된

인사적체(人士積滯)의 숨통을 틔우고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이렇게 개편된 군제와 계급, 진급년한, 단위부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이병(징집병)

일병(징집병)

상병(부분대장 징집병)

병장(분대장 징집병) 분대(分隊)

하사-4년 (소대 선임하사) -여기부터 직업군인

중사-4년 (중대/편대 선임하사)

상사-5년 (대대/연대/선임하사)

원사-5년 (여단/사단/선임하사)

주임원사-10년 (여단/사단/군단/군사령부 선임하사)

9품 소위-5년 (少尉 소대장)

8품 중위-5년 (中尉 소대장) 소대(小隊)

7품 대위-5년 (大尉 중대장) 중대(中隊)

6품 소령-6년 (少領 대대장)

5품 중령-6년 (中領 대대장) 대대(大隊)

4품 대령-6년 (大領 연대장/여단장) 연대(聯隊)

3품 소장-6년 (少將 여단장/부사단장) 여단(旅團)

3품 중장-6년 (中將 사단장) 사단(師團)

2품 대장-6년 (大將 군단장) 군단(軍團)

1품 상장-없음 (上將 군사령관/합참의장) 군사령부(軍司令部)/합참(合參)

1품 원수-없음 (元帥 군 총사령관)

아직까지 전군에 징집병이 없는 상태지만 군포를 못내는 군졸들이 군포대신에 대신에

병으로 복무하면서 징집병 역할을 했다. 이것이 전국적인 징병제로 바뀌게 된다면

일반 병은 모두 징집병으로 채워지게 된다. 그리고 3년을 복무한 후에 더 군문에

있고 싶을 경우 심사와 교육을 거쳐 하사로 임관하게 하는 것도 한국군의 그것과

같았다.

또한 작년까지는 중앙군에 집중된 군제와 직급의 개편이었으나, 올해부터는

지방군으로 확대 적용되게 된다.

이렇게 품계를 받은 직급을 통칭하여 사관(士官)이라고 칭하였고, 사관과 일반 병의

중간역할을 하는 부사관(副士官)이란 조선군에게 약간은 생소한 관제를 삽입한 것도

역시 현대적인 군제였다.

특히 부사관 출신이 많은 천군의 특성상 조선군의 부사관은 한국군에서의 처우와

대접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것은 한국에서 노출된 여러 가지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섭정공 김영훈의 뜻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현대의 어느 나라 부사관과

비교해도 월등하게 낫다고 말할 수 있었다.

주임원사와 부사관은 영내거주를 하는 것이 의무였지만 그것도 일주일에 하루는

외박을 나가게 해 주었으니, 이래저래 살 맛 나는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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