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42화 (40/318)

37.

운현궁으로 돌아온 김영훈은 곧바로 아재당으로 향했다.

아재당에는 이미 한상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오십니까, 사령관님."

"아- 한원장. 거기 좀 앉으세요."

한상덕은 김영훈의 얼굴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가셨던 일은 어떻게...?"

"잘 되었습니다. 다만, 몇 가지 새로운 일이 생겼어요."

'대비전에 간 일은 잘 되었는데 새로운 일이 생겼다'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한상덕은

김영훈의 입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김영훈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한상덕이기에 알아서 말해주기를 기다린다.

"장 원장이 장가를 간답니다. 참... 아주 우리를 감쪽같이 속였어요. 이거야 원..."

이렇게 말하는 김영훈이었으나, 얼굴에는 노기(怒氣)보다는 어이가 없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 원장이 장가를 가다니요?"

"말 그대롭니다. 곧 국수를 먹게 생겼어요."

"누구와 말입니까? 혹시...?"

"왜? 누구 짐작 가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혹시 궐내(闕內)의 상궁이나 나인입니까?"

역시 한상덕은 조선 최고 정보기관의 책임자답게 눈치가 빨랐다.

한상덕의 말에 김영훈은 눈을 동그랗게 뜰 뿐 말이 없다.

이쯤 되면 한상덕도 이실직고(以實直告)를 해야 한다.

"실은 장 원장과 지밀상궁인 안 상궁과의 사이가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여러 번 우리

정보원으로부터 있었습니다."

처음 듣는 소리에 김영훈은 별 말이 없었지만, 역시 대정원의 촉수(觸手)가 닿지

않은 곳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다.

이미 김영훈이 섭정공의 자리에 오르고 대정원을 창립할 때부터, 한상덕은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 정보원을 심어 두었으니 그것은 임금이 기거하는 대궐이라고 해서 예외(

例外)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대궐은 그 정치적 특성상 어느 곳보다도 중요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그런 대궐에 정보원을 심어두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나만 모르고 있었군."

이렇게 말하는 김영훈의 얼굴에는 약간은 서운한 기색이 나타나는데,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굳이 보고드릴 사안(査案)이 아니라는 생각에..."

"아니에요. 그런 일까지 일일이 저에게 보고할 필요는 없지요. 그나저나 궐내에도

정보원이 있다면 요즘 부대부인 민씨의 동태도 보고 받은 바가 있습니까?"

부대부인 민씨의 일에 대한 것은 금시초문(今時初聞)인 한상덕으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동안 부대부인 민씨는 특별한 정치적 야심이 있을 만한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어떤 파벌을 형성하여 천군에 대항할 만한 인물도 못되었다.

그렇기에 자연 감시가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부대부인 민씨에 대한 감시도 게을리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왜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렇게 묻는 한상덕에게 김영훈은 차근차근 오늘 낮에 있었던 어린 임금의 푸념과

근심을 이야기했다.

"내가 보기에는 부대부인 민씨가 친정 동생인 민자영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다른 위인들이 개입한 것 같아요. 절대 부대부인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할 리가 없습니다."

김영훈이 이렇게 지시하자 한상덕은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무릎을 치면서,

"아, 참. 그러고 보니 요즘 흥인군(興寅君) 이최응(李最應)이 자주 입궐하여

부대부인 민씨를 만났다고 합니다."

"흥인군이?"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그자가 왜?"

"그것까지는 잘..."

흥인군 이최응이라면 죽은 흥선의 형이요, 어린 임금의 백부(伯父)가된다.

원래의 역사에서 흥인군 이최응은 동생인 흥선이 대원군의 자리에 올라 집권을

하는데 상당한 소외감을 흥선으로부터 느낀다. 당시에는 흥선으로부터 중용(重用)

되지 못하다가 훗날 민씨 일파에 포섭되어 흥선대원군의 축출에 일익(一翼)을

담당하게되고, 영의정에 이어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이 설치되자 총리대신(

總理大臣)의 자리에 까지 오르는 인물이나, 천성이 우유부단(優柔不斷)하고 권세에

민감한 처신으로 유림의 주 공격대상이 되기도 한다. 주화(主和), 척화(斥和), 개국(

開國) 등에 대한 뚜렷한 주관이 없이 모두 옳다고 주장하여 당시 유유정승(唯唯政丞)

이라 불리기도 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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