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9화 (37/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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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재(樂善齋) 대비전을 빠져 나온 김영훈과 그의 처 조씨는 어린 임금을 배알(拜謁)

하기 위해 대조전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미 대비전 승후관 조영하에게 일러

임금의 승후방에 연통(煙筒)하라 하였기에 서두름이 없이 천천히 걸음을 옮길 뿐이다.

"날씨가 참 좋지 않소?"

아무런 말도 없이 가기에는 좀 이상해서 한 마디 말을 붙여보는데, 그것이 영

닭살이다.

김영훈의 마음을 아는지 어린 처 조씨는 살짝 웃을 뿐 별 말이 없다. 괜히 무안해진

김영훈이 한마디 더 하려고 하는데, 관물헌(觀物軒)쪽에서 조영하가 뛰어 오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구, 하여튼 저놈도 남 산통(算筒) 깨는 데는 일가견(一家見)이 있는

놈이군 하는 생각을 하는데 조영하가 가까이 오며,

"지금 주상전하께옵서는 부용지(芙蓉池)로 산보(散步)를 나가셨다 하옵니다. 합하."

"그래, 그럼 우리도 그리로 가세나."

낙선재에서 지금은 사라진 중희당(重熙堂)을 지나 북쪽으로 고갯길을 넘어가면

부용지를 중심으로 드넓은 창덕궁 후원(後苑)이 펼쳐진다. 이곳에서부터 창덕궁

후원이 시작되며 후원의 곳곳에는 수많은 정자(亭子) 누각(樓閣)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부용지를 중심으로 바라볼 때 북쪽에는 2층 규모의 웅장한 주합루(宙合樓)가 높은

단위에 조성되어 있고, 남쪽에는 아담한 부용정(芙蓉亭)이 부용지에 발을 담고 있다.

또한 서쪽에는 돌기단 위에 과거 김영훈의 천군이 자리잡았던 영화당(暎花堂)이, 그

반대편에는 이곳 부용지의 유래를 말해주는 사정기비각과 서수(瑞獸) 모양의

석루조가 보인다.

<동궐도>에 의하면 1820년대 무렵의 부용지 일대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현재의 모습과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부용지는 가로 29.4m 세로 34.5m 이며,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의 전통적인 우주관을 구현한 것이다.

부용지의 물은 땅에서 솟아오른다. 원래 부용지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세조 때

이곳에서 4개의 우물을 찾았는데 이를 마니, 파리, 유리, 옥정이라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우리 궁궐 지킴이에서 인용.

그 부용지에 지금 어린 임금과 수행원들이 따뜻한 늦겨울의 볕을 쪼이며

한가롭게 거닐고 있었다. 낙선재를 떠난 김영훈과 그의 처 조씨가 멀리서 다가오자

이를 발견한 어린 임금이 한 걸음에 달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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