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6화 (34/318)

31.

전준호가 풍백함을 타고 부산포로 향하고 있을 때, 한양의 섭정공 김영훈은 오랜만에

처(妻) 조씨와 함께 대궐에 들어가 대왕대비 조씨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었다.

지지난해에 있었던 김씨 일파의 흥선대원군 시해 사건의 숨은 그림자로 막후에서 그

일에 관여한 징후가 포착되어 대궐 한 켠에 칩거한 조대비는, 그동안 새롭게 조정의

실권을 틀어쥔 김영훈과 천군, 그리고 기존의 조정 중신들에게 알게 모르게 경원(

敬遠)당하였으나, 지난 갑자년(甲子年) 여름 자신의 조카딸을 당금(當今) 조선의

최고 권력자인 섭정공 김영훈에게 시집보냄으로써 단숨에 권력의 핵심에 다시 한 번

발을 드리우는 절호의 기회를 잡게 되었다.

더구나 그런 김영훈의 처남이자 자신의 또 다른 조카 조성하(趙成夏)는 이미

함경감사로 부임한지 1년이 다 되어갔으니, 요즘 조대비의 심정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가 아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요즘만 같아라' 였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섭정공 김영훈 내외(內外)가 자신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기 위해

몸소 찾아 왔으니, 이런 것을 일컬어 '길흉화복(吉凶禍福)은 변화무쌍(變化無雙)이요,

인간사(人間事)는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다던가' 하는 짧은 생각을 하며 행여나

이것이 꿈이라면 제발 깨지 않게 해 주십사 하는 기원(祈願)을 열성조(列聖朝)와

천지신명(天地神明)께 드리며, 자신의 허벅지를 슬쩍 꼬집기까지 했으니, 뒷방

늙은이 취급을 받으며 서러움을 온 몸으로 느끼던 그동안의 자신의 신세(身世)가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한편으로는 다시는 전(前)과 같은 과오(過誤)를 되풀이하여 굴러온 복(福) 덩어리를

발로 차 버리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한 번 잡은 이 튼튼한

동아줄을 놓치는 우(愚)를 범해 천길 나락(那落)으로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다짐을 마음속으로 한없이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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