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5화 (33/318)

30.

"그런데 왜 조정에서는 우피와 쌀을 금수품목으로 지정하여 교역을 금하였는지 그

연유를 모르겠소이다."

"그것은 저도 잘 아는바가 없으나 제가 짐작하기론 우피는 그것을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이로운 신발의 유통을 추진하는 것으로 짐작되고, 쌀은 일반 백성들이

굶기를 밥먹듯 하는 마당에 남의 나라에게까지 수출할 이유가 없어서인 것 같소이다."

당시 조선에서는 가죽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신분의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었으니,

일반 백성들이야 짚을 엮어 만든 짚신이면 감지덕지(感之德之)한 실정이었다. 이러한

세태를 김영훈이 집권한 후로 바꾸려는 시도였고,

쌀이야 전준호가 말한 대로 조선의 백성들도 굶고 있는 실정에 왜국으로

수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대대로 대 왜국 수출의 일익(一翼)을 담당했던 미곡의 양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하게 하는 곳으로 지금의 경남 양산에 감동창(甘同倉)이란 것을

설치하였는데, 이 감동창은 경상도 각 읍에서 운송된 수천 석의 쌀을 보관하면서,

통제영(統制營), 수영(水營), 왜관(倭館)에서 요청이 오면 판매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 감동창의 관리를 위해 조정에서는 감동창감(甘同倉監)이란 관리를 따로

임명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곳도 반드시 파리가 꾀어들게 마련이고 결국에는

못된 관리의 손에 의해 전횡과 포흠(逋欠)의 온상이 되었으니 급기야 재정대신

김기현은 감동창을 폐쇄하고 왜국과의 쌀 수출을 금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내일이면 조선을 떠나 왜국으로 갈 몸이나 두 분과 밤새도록 통음(痛飮)하고 싶지만

두 분은 공사(公事)에 묶인 분들이시라 그럴 수는 없고... 이를 어쩐다....?"

전준호가 이렇게 얘기하자 신철균과 안동준이 그 무슨 소리냐며 손 사레를 치면서

얼마든지 대작(對酌)을 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나 전준호의 거절로 자리는 일찍

파하게 되고, 신철균과 안동준은 찜찜한 기분이지만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두 사람과 헤어지면서 전준호는 두 사람에게 다시 한 번 당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조정에 계신 섭정공 합하께서는 두 분이 여기에 계시기 때문에 왜국과의 일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다 하셨습니다. 부디 두 분께서는 그런 섭정공 합하의 뜻을 잘

받드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아시겠습니까?"

이렇게 어르고 뺨치며, 두 사람을 다독이는 전준호의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사실 전준호를 비롯한 천군은 모든 조선의 관리와 사대부들보다도 비교할 수 없게

생각하는 면이나 행동하는 면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현대 한국의 정예 요원들만 추려 뽑은 천군이었으니 당시의 전근대적이고 꽉 막힌

사고의 조선 사람으로서는 그 능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당시에 비교적

선진국이었던 유럽의 제국(諸國)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으니...

--------------------------------------------------------------------

(*1)자기, 천일염, 면직물은 모두 천군이 새로 생산한 것들이며 백지(白紙)도 역시

마찬가지로 천군이 보유한 우수한 제지기술로 탄생한 작품이다. 일부 독자

대감께서는 조선의 한지를 수출하면 안 되느냐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당시에

왜국의 제지업은 조선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일부 경상도 일대의 몰지각한 왜식(

倭式) 풍조의 추종자들은 왜국의 특산품인 미농지(美濃紙)를 구입하여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실정이었다고 한다.

(*2)스끼야끼(鋤燒すきやき)는 왜국의 유명한 음식으로 얇게 썬 고기와 준비한 각종

야채를 뜨거운 육수(肉水)에 살짝 담갔다가 먹는 일종의 왜국식 전골이라 할 수 있다.

당시 동래와 양산, 김해 일대에서는 이러한 스끼야끼를 비롯한 왜국 음식과 왜국의

풍습이 유행하였다고 하는데 왜관에 근무하는 조선의 관헌들은 우동과 소면,

스끼야끼를 가장 좋아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승가기(勝歌妓)는 바로 이런

스끼야끼를 음차(音借)한 것으로 보인다.- 이 스끼야끼의 얘기는 백원철씨의

성균관대 한문학과 박사학위 논문 [洛下生 李學逵의 時 硏究]에 나와있는 내용이다.

백원철씨의 허락없이 인용한 것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드리면 아울러 감사의 말씀도

드린다. 꾸벅.

또한 이학규의 문집에서 인용한 것은 부산대학교 사학과 김동철 교수의 논문 [

조선후기 倭館 開市貿易과 東萊商人]을 참고 하였음을 밝혀둔다. 김동철 교수께도

감사와 사과의 인사를 드린다. 꾸벅.

아울러 정종과 스끼야끼의 일본어와 독구리에 대한 정보를 주신 죠이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35 개혁(改革)의 첫걸음...6

번호:4892  글쓴이:  yskevin

조회:907  날짜:2003/10/27 15:03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