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4화 (32/318)

29.

당시 왜관이 있던 동래와 양산 김해 일대에서의 왜식 풍습의 유입은 심각하였으니,

순조 헌종 때의 문신 이학규(李學逵)의 시문집(詩文集) 낙하생전집(洛下生全集)과

초량왜관사(草梁倭館詞), 금관죽지사(金官竹枝詞) 등은 19세기 전반에 왜인의 습속과

문물이 동래, 양산, 김해 등지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음을 잘 묘사하고 있다. 다음은

그 일부이다.

[왜국식 무늬가 물들여진 왜국산 접선(摺扇)이 모습을 드러내고, 좋은 집 처마엔

왜국산 풍경(風磬)이 달려 있고, 아낙네는 왜국 양산을 들고 거리를 활보하였다.

장날에는 자기로 만든 왜국산 벼루가 매매되고, 왜국산 미농지(美濃紙)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일이 생겨났다. 승가기(勝歌妓)(*2)를 먹는 풍조가 유행하고,

왜국제 모기장으로 여름을 보내며, 왜국 소 면(索麵)과 우동을 찾는 사람도 생겨났다.

뿐만 아니라, 왜국의 무력을 상징하는 왜도(倭刀)를 차고 다니는 것을 호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두 사람을 몰아 세우는 전준호는 자신의 앞에 꼬랑지를 내린 강아지 새끼

마냥 처량하게 움츠려든 두 사람이 안쓰러웠으나 마지막 한 마디 하는 것을 잊지는

않는다.

"지금 조정의 섭정공 합하께서나 한상덕 대정원장 대감께서는 두 분을 아주 각별히

생각하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때에 이런 일들이 두 분의 귀에 들어간다면 두 분의

자리를 온전히 보존하기가 힘드실 것이외다. 부디 두 분께서는 제 말을 각별히

유념하시고 내일 당장 조선의 전통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헤치는 왜식 풍습을 단호히

처결하셔야 할 줄 아옵니다. 아시겠소이까?"

지가 무슨 암행어사도 아닌데 어디서 설치고 지랄이야 지랄이긴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한 두 사람이었으나 천군의 손에 의해 이 자리에 올라온 이상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저 죽어라 천군의 명과 뜻을 좇을 수밖에... 이렇게 해서 동래와

양산, 김해 일대의 왜식 풍습과 왜국산 물품을 소지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못된

인사들이 신철균의 철퇴를 받은 것은 후일의 일이다.

"그리고, 안훈도(訓導) 나으리."

"예, 말씀하시지요. 나으리."

전준호가 안동준을 부르자 흠칫 놀란 모습이 마치 매에게 들킨 새끼 병아리 마냥

쳐다볼 수밖에 다른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세관(稅官)의 관세나 교역 대금은 조정의 지침대로 반드시 황금(黃金)을

대금으로 받고 있겠지요?"

"그렇사옵니다. 이미 모든 일을 조정의 뜻에 따라 처리하고 있사옵니다."

"한치의 소홀함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외다. 조정에서는 두 분을 철석같이 믿고

계시니까요. 아시겠소이까?"

"명심하겠소이다."

이미 재경부에서 지침이 내려와 동래와 의주, 제물포에서는 왜국과 청국과의

정상적인 교역을 허가하였고, 그에 따라 조선의 세 군데 개시(開市)에서는 교역량의

일정 부분을 세금으로 거두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조선 최초의 세관이었다.

재경부에서 각 개시에 시달한 지침을 살펴보면 의주와 제물포에서는 청국 상인들과

교역을 할 때 반드시 청국의 관은(官銀)을 대금으로 받을 것을 시달하였고, 반대로

동래에서는 왜국과 교역 시 반드시 그 대금을 황금(黃金)으로 받을 것을 명하였다.

이것은 청국과 왜국의 금은(金銀)의 시세 차익를 노린 것이었으니, 기존의 조선과

왜국과의 교역에서 조선이 왜국에 수출하는 길은 인삼이 수출의 주종을 이룬다고

하여 ''인삼의 길''이라고 하였고, 반대로 왜국이 조선과 거래하는 데는 은으로

대금을 계산하였기에 "은의 길"이라고 칭하였던 것에 변화가 생긴 것을 의미하였으니,

18세기 초반부터 꾸준하게 왜국으로 유입되던 청국산 인삼과 왜국에서의 인삼

재배의 성공 그리고, 18세기 중반부터 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북미산(北美産)

인삼의 영향도 있었고, 이번에 다시 통상을 재개한 후로는 기존의 대 왜국 수출품

중에서 우각과 마른 해삼, 인삼을 제외한 우피와 쌀 등이 금수품(禁輸品)으로

지정되었고, 대신에 양식보총과 전혀 새로운 물건을 준비한 쥬신상사의 손에 의해

변화하기 시작한다. 물론 거기에는 왜국의 금과 청국의 은도 한 몫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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