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1화 (29/318)

26.

음력으로 이월 초하루라 아직 쌀쌀한 바람은 매서웠지만 한양을 둘러싼 산들이

머리에 이고 있던 눈도 대충 녹기 시작했고, 남대문 처마에 겨우내 매달렸던

고드름은 이미 녹아 없어져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칠패 시장

큰길을 온통 진창으로 만들고 있었다.

칠패 시장 큰 길 양편으로는 칠패의 명물 어물전이 초가 지붕에 사방이 확 트인

점포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자리잡고 있었으며, 그 어물전 뒤로는 각종 술도가며

색시집들이 지방에서 생선을 팔아 이문을 남긴 허술한 상인이며 모처럼 한양 구경을

위해 올라온 시골 서생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고 성업(盛業) 중에 있었다.

그 칠패 시장을 지금 선우재덕과 전준호가 서서히 말을 몰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뒤를 몇 명의 하인이 등에 짐을 맨 채 따르고 있었다.

길 한쪽에서,

"싱싱한 도다리가 왔어요. 방금 잡아온 싱싱한 도다리요! 그냥 회쳐 먹어도 맛있고

지져 먹어도 맛있는 싱싱한 도다리가 왔어요!"

이렇게 떠들면 다른 한 쪽에서는,

"무슨 소리!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영광 법성포 굴비가 더 맛있어요. 법성포

굴비요!"

하며 맞받아 치고 있었다.

아직 찬바람도 불고 날씨가 쌀쌀했으나 칠패 시장은 이러한 열기로 그 추위와

찬바람을 몰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지저분하고, 왁자지껄한 칠패 시장이지만 전준호는 이런 분위기가 좋았다.

곳곳에서 겨우내 언 땅이 녹아 진창이 되고, 날씨가 풀림에 따라 생선 특유의

비린내에 더한 희한한 냄새가 솔솔 풍겨도 그저 좋았다. 무엇보다 사람 사는 냄새가

좋았다.

전준호가 이런 상념에 잠겨 있는데 옆에서 말을 몰던 선우재덕이 전준호에게,

"이봐! 부기장! 우리 도다라 회에 시원한 탁배기나 한 사발하고 가는 것이 어떻겠나!"

"무슨 소리하시는 겁니까? 지금 마포나루에서 배가 기다리고 있는데요."

지금 전준호는 마포나루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조운선을 타기 위해 가고 있었다.

이번에 쥬신상사에서 수출할 물건들인 자기(瓷器), 백지(白紙), 천일염(天日鹽),

면직물(綿織物)(*1) 등은 이미 제물포에 정박한 풍백함에 옮겨 실어 놓았고, 이제

자신만 조운선을 타고 제물포까지 가서 기다리는 풍백함을 타면 바로 부산포의 초량

왜관(草梁倭館)으로 출발하게 된다. 그 풍백함에는 그 외에도 조정에서 막부와 각

번에 판매하는 양식보총의 마지막 인도 분도 이미 선적되어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통적인 조선의 대 왜국 수출품인 인삼(人蔘)과 전해서(煎海鼠마른 해삼), 우각(

牛角) 같은 거야 대대로 왜국과의 개시무역(開市貿易)을 담당하던 동래상인(東萊商人)

이 알아서 거래할 것이고 그동안 대 왜국 무역의 한 축을 담당하던 우피(牛皮)와

쌀은 조정에서 금수품목(禁輸品目)으로 지정하여 더 이상 왜국에 판매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이유로 새로운 품목의 수출을 준비했던 쥬신상사였으니, 어쩌면 그것은

커다란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다.

쥬신상사에서 수출할 품목들은 부산포에 도착하면 막부에서 제공하는 선박으로

물건을 옮겨 싣고 왜국으로 출발하기로 이미 조정과 막부와의 협의가 다 되어

있었으니 하루라도 빨리 출발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냥 간단하게 풍백함을

이용해서 나가사끼까지 물건을 운송하면 한결 수월한 일 일터이나 아직까지는

풍백함의 존재를 노출시키지 않고 싶은 김종완의 주장에 어쩔 수 없었다. 또한

풍백함의 한강 진입을 선우재덕이 요청하였으나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좌초로 인한

선박의 손상을 염려하여 그것도 기각되었다.

이런 점을 잘 아는 선우재덕이었으나, 흔히 얘기하는 "봄 도다리, 가을 전어"의

유혹을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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