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30화 (28/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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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공 김영훈이 정권을 잡고 제일 먼저 취한 조치가 육의전의 금난전권(禁難廛權)을

회수하고 상업을 장려한 것이었으니 지난 1년 동안 조선의 상계(商界)나 일반

백성들의 삶의 모습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제일 두드러진 변화가 각지에 번성하기 시작한 난전(亂廛)을 들 수 있다.

금난전권의 회수로 인해 어떠한 특혜도 없는 무한 경쟁의 자유로운 상행위가

장려되었고, 그럼으로 해서 난전의 설치가 자유로워졌으며, 농사철에는 농사를

짓다가 수확의 끝나면 그 수확한 농산품을 직접 시전(市廛)에 내다 파는 이른바

반농반상(半農半商)의 출현이 있은 때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누구나 일정 세금만

내면 자유롭게 자리를 펴고 물건을 사고 팔수 있었으니, 시중에 자금의 유통이

원활해졌고 그럼으로 인해 신화폐의 유통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조선은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 쌓인 특성상 예부터 수산물의 생산량이 다른

물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았고, 그것은 어물(魚物)을 취급하는 시전이 다른 잡다한

시전보다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몰랐다.

조선의 수도인 한양은 한강을 끼고 발달한 도시인 관계로 개국(開國) 초부터 각종

수산물의 집결지로 항상 분주했다. 특히 육의전(六矣廛)의 내 어물전(內魚物廛)과 외

어물전(外魚物廛)은 한양의 수산물 상권을 장악하기 위해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육의전 내 어물전은 지금의 이문동 서쪽에 자리잡고 있었고, 외 어물전은 지금은

없어진 소의문(昭義門 또는 서소문)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의문에 자리잡은 외

어물전은 남대문 밖에 있는 칠패 시장과 매우 가까이 있었고 또 마포(麻布), 서강(

西江), 동작진(銅雀津)을 장악할 수 있어 선주인(船主人)과 강운어물(舡運魚物)에의

접촉이 가능하였던 데다 동대문 밖의 누원 주막 상인들은 동북 방면의 육상 운송

어물을 매매할 수 있었다. 또한 서소문의 위치는 서대문을 경유하는

서북방면으로부터의 어물도 손쉽게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한성으로 반입되는

수산물은 외 어물전과 거래되기가 쉬웠다. 따라서 그 지역에 들어오는 상인들은

강력한 외 어물전 세력을 무시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과 협조하는 일이 많았고

한다.

한양의 사대문 중 가장 번화한 남대문을 지나면 바로 칠패 시장(七牌市場)이 나오고

그 칠패 시장을 지나면 소의문이 나오고 소의문 밖은 바로 마포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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