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 제국기-22화 (20/318)

17.

세계적으로 도로변에 가로수를 심은 역사는 오래되었으니, 바로 고대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황제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다리우스 황제는 바람과 먼지가 많은 페르시아의 자연환경을 좀 더 사람이 안락하게

생활하게 바꿀 것을 생각하였는데, 그 출발이 바로 가로수와

분수(噴水)의 설치였다.

이렇게 시작된 가로수와 분수가 고대 그리스로 건너가게 되고 다시 로마시대에 꽃을

피우게 되니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가로수의 시원한 그늘과 분수의 아름다움은

모두 다리우스 황제에게서 비롯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도 이란과 그리스, 인도를 가면 그 시절에 심어진 가로수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도의 경우에는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의 침입을 계기(契機)로

헬레니즘문화와의 교류가 시작되는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원정을 물리친 인도는

아쇼카라는 걸출한 왕이 출현하여 전국을 통일하고 전국의 도로를 정비하며 가로수를

심기 시작한다.

이렇듯 다른 나라의 가로수 정비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조선의 경우에는

그 사정이 달랐다.

조선시대에는 도로 변, 하천 변에 있는 집에 나무를 심는 것이 관례화 되고 있기는

했으나 특별히 가로수를 심는 예는 거의 없었다.

평양 대동강변에는 수 십리에 걸쳐 수목(樹木)이 늘어서 있었으나 이것도 특별히

가로수의 용도로 심은 것은 아니다. 다만 수원시 북부 지지대(遲遲臺) 전후좌우에

있는 이른바 노송지대(老松地帶)는 정조(正祖)의 명에 의해서 심은 가로수로

전해지는 데 조선왕조 500년을 통해 가로수로 심은 것으로는 유일한 예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인해 이 땅에서 가로수가 일반화되기 시작한다.

농림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사업은 머니머니해도 수리시설의

정비와 각종 전답의 구획정리, 그리고 숨어있는 은결(隱結)의 색출작업 이었다.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건교부와의 협조 하에 사업의 조기

종결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었으니, 앞으로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날 일만 남았다.

어린 임금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추밀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추밀원장 장현덕은 천군 집권 이후 처음으로 사타구니에 방울 소리가 들리도록 뛰어

다니고 있었다.

어린 임금의 교서와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지시한 섭정공 김영훈의 108조의 개혁안은

처음부터 유림(儒林)의 반대에 부딪혔다. 조정의 대부분의 중신들과 기호유림(

畿湖儒林)에서는 별다른 반대가 없었으나 영남유림(嶺南儒林)의 유생들과 성균관

유생들이 주축이 되어 올리는 반대 상소는

갈수록 양이 많아지고, 논조가 극렬(極烈)해져 갔으니, 연일 계속 올라오는 상소를

검토하고, 분류하는 작업만으로도 추밀원의 관료(官僚)들은 녹초가 되어 갔다.

다행히 시간이 지날수록 상소의 빈도(頻度)나 논조가 많이 누그러진 것이 처음의

격렬한 반대와 대규모의 상소에 비하면 나아졌다고 볼 수 있었다.

유생들의 집단 행동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일부는 돈화문과 운현궁으로 몰려와 연일 연좌(連坐)하여

농성하기를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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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육입국조서(敎育立國詔書)는 원래의 역사에서 고종이 1895년 2월 조칙(詔勅)

으로 발표한 교육에 특별 조서로 조선 최초의 근대식 학제(學制)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1894년 6월 학무아문을 두고 새 학제를 실시하여 관학(官學)을 세우고,

1895년 1월 선포한 '홍범 14조(洪範十四條)'의 제11조에서 외국유학과 새로운 학문에

관하여 언급하였으나, 전(全)국민을 상대로 새로운 교육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교육조서가 최초의 것이다. 이런 것을 작가가 임의로 지금 상황에서 등장시켰다.

(*2)"백도혁신(百度革新)을 위하여 백폐(百弊)를 삼제(芟除)하는 건"이라는 장황한

이름의 88개 항목의 개혁안(改革案)은 1894년 갑오개혁(甲午改革)을 단행한 대한제국(

大韓帝國)의 김홍집 내각의 내무아문(內務衙門)에서 각도 각읍에 하달한 개혁안으로

모두 88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백도는 백 가지의 법도(法度)를

말하며 백폐(百弊)는 백 가지의 폐단(弊端)을 말한다. 그리고 삼제(芟除)는 악인(

惡人), 악폐(惡弊) 따위를 아주 없애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으니 백가지 법도를

혁신하기 위해 백 가지 폐단을 쓸어 없애버리는 개혁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을

작가가 108개의 항목으로 조정하고 한글에 관한 내용을 삽입하였다. 그러므로 1항

한글에 관한 내용을 뺀 나머지는 실제의 개혁안 그대로이다.

(*3)박문국과 한성의학교, 광혜원과 우정국, 그리고 임산시험소, 경무청, 소방청은

실제 역사에서 고종이나 갑오개혁, 갑신정변에 설치 시행하게 되는 것을 임의로

작가가 등장시켰다. 또한 광혜원의 초대 원장이자 조선 최초의 서양의사인 미국인

선교사 H.G.알렌의 조선 이름은 안연으로 이 글에는 천군 의무대의 책임자의

이름으로 설정하였다.

(*4)대전회통(大典會通)과 십이전조례(十二典條例)는 실제 역사에서 1865년 영의정

조두순과 좌의정 김병학이 편찬하는 조선의 마지막 법전이고 십이전조례는 원래의

이름이 육전조례(六典條例)였으나 작가가 임의로 글의 설정에 맞게 십이전조례로

고쳤다.

(*5)가가(假家)는 일시적인 필요에 따라 비나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임시로 지은

집으로 보통 단칸에 문짝이나 들창이 따로 없고 맨바닥이 일반적이며, 지붕은

이엉이나 띠로 덮었다. 일반적으로 난전(亂廛)을 열 때 많이 사용하였고, 그밖에

군인들이 수직처(守直處)에서 떨어진 곳에서 번(番)을 설 때, 공사장에서 햇볕이나

비를 가려야 할 때, 성을 쌓거나 도로를 만들 때에도 이를 지어 사용하였다. 당시

조선 사회는 왕이나 왕비의 능(陵) 행차(行次)가 많았으므로 그 능 행차가 한강을

건널 때 설치하던 진도(津渡)를 관리할 목적으로 지어지던 가가(假家)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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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는 좀 깁니다. 좀 긴 관계로 두 번으로 나눠서 올리려다 그러면 글의 흐름이

끊어질 것 같아서 그냥 하나로 묶어 올립니다. 그리고 이번 회는 글의 진행상 대화나

장면의 설명은 하나도 없고, 내용도 딱딱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번

회를 쓰기 위해 정말 머리가 빠개지는 것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작가가 너무

허접하다보니 설정에 실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 독자 대감들께서는 작가의

노력을 가상히

여기시고 많은 댓글과 추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서 행정개편에 대한 많은

의견 바랍니다. 여러 독자 대감의 의견을 바탕으로 고칠 것은 고치고 첨가할 것은

첨가하겠습니다.

그리고 여태 작가가 제대로 된 설정을 올린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설정에 대한 구구한 억측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에 따른

약간의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온 시점과 그에 따른 인원과 장비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소설상으로 천군이 시간 원정을 시도한 시점은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기 직전의

상황입니다. 따라서 대규모의 인원과 대규모의 장비의 이동이 쉽지 않는 상황이지요.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감시가 철통 같을테니까요. 만약 소설상의 시점이 평화로운

시절이라면 엄청난 인원과 장비를 역시 엄청난 수송선을 동원하여 파견할 수

있었겠지요. 작가 자신도 그 점이 아쉽습니다. 만약 엄청난 중장비와 석유 시추선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장비들을 가져왔다면 굳이 증기기관을 만들 필요도 없을테니까요.

그리고 디젤엔진과 석유의 개발을 언급하셨는데 당시 세계는 분명히 석유를 채굴해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비록 등잔불을 밝히는 용도로 밖에 사용되지 않았지만 어쨋든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대부분의 석유는 해저유전이 아닌 육상유전에서

채굴하는 상황이지요. 제가 알기론 북한에 있는 유전은 남포 앞 바다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해저유전이라는 얘기지요. 천군의 기술력으로 해저유전의 시추가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굳이 시추하여 상용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지요. 나중에 필요하면 시추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만주에 있는 대경유전의 확보는

아직 힘든 상황입니다. 일단 조선이 개혁을 하고 양이의 침략을 물리친 다음 청국에

대한 종주국으로의 위상을 거부 또는 부정하는 순서로 진행할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는 청국을 좀 더 뜯어먹어야 조선으로서는 좋은 일이라서리...^^ 이상이

증기기관을 채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원래는 지난번에 올렸던 31회에서 장갑함을 진수시켰다는 설정을 했는데 그 설정을

변경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됩니다. 만약 엄청난 인원과 장비가 왔다면

광양제철이나 포항제철의 설비와 생산라인을 하나 가져왔다는 설정도 가능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중장비라곤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대규모 제철소를 짓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래서 눈물을 머금고

제철소와 장갑함을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구요.

그리고 천군이 가져온 선박중에서 이순신함을 제외한 나머지 천지급 보급함과

콘테이너선은 도태시킬 생각입니다. 일단 9천톤과 15만톤급의 대형 선박이 접안할

항구 시설이 아직 조선에 없고, 그러면 바다위에 있어야 할텐데, 그렇게되면 선박의

수명에 심대한 악영향이 있을 것 같기에 도태시키고, 거기에 있는 전자장비를 비롯한

여러 장비들은 수거하여 따로 모아두던지 아니면 풍백함과 앞으로 건조될 다른

함선에 일부 장착시킬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무기개발문제와 천군이 준비한 물자와 장비는 작가가 너무 허접한 지식을

가진 관계로 차근차근 보여드리겠습니다. 장비중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일단

태양력 발전 설비와 경공업 설비 약간입니다. 그러나 15만톤의 콘테이너선에는

그보다 더 많은 장비를 실고 왔겠지요. 이것도 차근차근 필요할 때 하나씩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비와 설비를 가져왔으면 하는지 좋은 의견이

있으면 보내주십시오.

무기 개발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천군이 보유한 지식기반과 장비라면 무연화약이나

다이너마이트의 개발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근데 아직 자세하게 그리지

못했습니다. 천천히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개발하거나 이미 개발한 무기들은

독자 대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차차 개선할 생각입니다. 많은 의견 보내주십시오.

많은 도움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부디 도와주시기를...^^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33 개혁(改革)의 첫걸음...4

번호:4881  글쓴이:  yskevin

조회:1027  날짜:2003/10/2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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