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어린 임금과 섭정공 김영훈의 이런 명이 있자 가장 바빠진 사람은 바로 문교대신
최한기였으니, 최한기는 이때부터 천군 출신인사들의 도움으로 미리 준비했던 각종
교육정책을 시행하느라 정신 없이 바쁘게 되었다. 또한 문교부 산하에 차관급 중신을
책임자로 하는 박문국(博文局)을 설치하여 각종 교과서를 비롯한 서책의 인쇄와
발행을 전담하게 하였으니, 훗날
발행되는 조선 최초의 신문인 제국신문이 여기에서 발행되기에 이른다.
문교부에서는 근대 의료기술을 연마할 한성의학교(漢城醫學校)의 설립도
추진하였으니 첫 해 50명의 입학생을 모집하여 교육에 들어가게 된다.
물론 교육은 천군 의무대 출신의 의료진이 도맡았다.
이것만이 아니었다.
보위부도 바쁘게 돌아간 것은 매한가지였다. 천군 출신 의사들의 유입과
신의도감의 설치로 새로운 의료 기술을 정비한 보위부는 을축년 새해가 되자 재동(
齋洞)에 광혜원(廣惠院)(*3)이란 서양식 의료기관을 설립하고 그 설립 근거인 광혜원
규칙을 제정해 국립병원으로서 원장 격인 광혜원 원장(院長)에 천군 의무대의
책임자였던 안연을 임명하였다. 그리고 의료진으로는 천군 출신 의무대 몇 몇과
내의원에서 신 의술을 교육받은 조선인 의원을 두어 환자 진료를 실시했다.
이외에 병원 운영을 맡은 관리와 사무를 맡아보는 직원을 두는 등 조선 최초의
서양식 의술을 시술하는 국립병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신의도감에서 생산되는 각종 새로운 의약품들은 조선 백성들의 열악한 의료
혜택을 일거에 뒤바꿀 수 있는 획기적인 제품들이었으니, 조선이 개화가 되고
외국과의 정상적인 교류만 이루어진다면 당장 특허를 출원해 국가 재정의 보탬에
단단히 한 몫 할 준비가 이미 되어있었다. 그게 어디 의약품뿐이겠는가.
법무부에서는 법무대신 조두순이 그동안 준비했던 대전회통(大典會通)(*4)이란 조선
일대(一代)의 종합 법전(法典)과 십이전조례(十二典條例)를 만들어 시행하기에
이르니, 조정과 관청의 크고 작은 행정 사무 처리의 지침서가 되도록 하였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대전(大典)을 정비한다는 것은 실로 지난하기 이를데 없는
작업일 것이나 모든 지식 기반이
준비된 상태에서의 준비된 상태에서의 대전 정비는 어려울 리가 없었다.
또 하나, 법무부에서 본격적으로 시행을 준비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근대적 재판제도(裁判制度)의 확립이었다.
사법권(司法權)과 행정권(行政權)의 구별, 민사재판(民事裁判)과 형사재판(刑事裁判)
의 명확한 구별이 없는 전통적 사법제도(司法制度), 획일적이고 명확한 실체법(
實體法)이 없고 사수(私囚),사형(私刑)이 자행되는 조선의 전통 재판제도의 모순(
矛盾)을 그대로 놔두고 있을 김영훈이 아니었기에 이미 그에 대한 개편을 108조의
개혁안에 포함시켰다. 그에 따라 법무부에서도 그 후속조치 마련에 분주했는데, 이미
대전을 만들 당시 상당한 사법 자료를 한상덕에게 인계 받은 조두순은 정신없이 바쁜
다른 부서와는 달리 느긋하게 그렇지만 일관성 있게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