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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남양만에 자리잡은 남양조선소에서는 어린 임금과 섭정공 김영훈을 위시하여
모든 문무백관 대소신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인근의 백성들까지 주상전하와
섭정공 합하, 그리고 조선 최초의 증기선의 위용(威容)를 보겠다고 이 자리에
운집했으니 말 그대로 인산인해(人山人海)가 따로 없었다.
남양만에 자리 잡은 조선소에는 3000톤급의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선거 하나가 이미
완성되었고, 5000톤급의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육상의 선거(船渠Drydock)(*2)가 세
개나 만들어지고 있었으니 실로 그 위용은 어마어마했다. 300톤급의 선거는 조선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선거였으나, 조선의 전통적인 건축 방식에다
천군의 기술이 합쳐진 결과로 생각보다 쉽게 지어질 수 있었고, 5000톤급의 선거는
앞으로 건조할 장갑함을 건조하기 위한 선거였으니 새로운 철근(鐵筋) 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어지고 있었다.
시멘트야 조선에 있는 석회석(石灰石)을 가공하면 얼마든지 양회(洋灰)를 만들 수
있었기에 공급에 차질이 있을 수 없었으며, 철근도 전국에 지어진 소규모의
제철소에서 공급 해 주었기에 물량의 공급이 약간 달린다는 것을 제외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앞날을 위해서라도 해주만의
제철소는 시급히 완공이 되어야 했으나 급하게 서두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이번에 건조된 조선 최초의 증기선 내부를 김종완 삼도 수군절도사와 남양
조선소의 책임자인 최규철 소장의 안내로 시찰한 어린 임금과 김영훈, 그리고 조정
대신들의 얼굴에는 흡족한 미소가 가득했다.
진수식을 하기 위해 마련된 단상에 자리잡은 어린 임금은 김종완과 최규철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이어서 증기선과 해군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증기선과 장갑함(裝甲艦)등 앞으로 건조될 여러 가지 선박에
대해서는 최규철 소장이 답하고, 앞으로의 해군 건설에 대해서는 김종완이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다.
최규철 남양조선소 소장은 원래 한국에서 울산 미포조선소에서 근무하던
조선소와 선박 제조의 전문가였다. 그는 또한 한국에서 몇 안되는 선박 설계의
권위자로도 이름이 높았다.
지금 눈앞의 3000톤급 선거에 있는 조선 최초의 증기선은 비록 1500톤급
정도의 소형 선박이고, 주로 외국과의 무역에 종사할 함정이었으나 조선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집채만한 크기였다. 그리고 조선의 선박이 대부분 두 개의
크고 작은 돛이 달린 것에 비해 풍백함은 세 개의 돛이 있는 모양이 범상치 않았다.
또한 배의 중앙에 연통이 하나 삐죽 튀어나온 모습도 이채로웠다.
이 조선 최초의 증기선에는 어린 임금이 풍백함(風伯艦)이란 이름을 명명하였으니,
한웅천왕(桓雄天王)이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세상으로 구원하고자 할 때, 우사(雨師),
운사(雲師)와 함께 내려와 한웅천왕을 보좌하고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한 풍백의 공(功)을 본받아 앞으로 조선 백성들을 위해 여러
가지 공을 세우길 바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전하, 앞에 있는 풍백함은 비록 목재로 만들어져 주로 외국과의 무역에
종사할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유사시에는 포를 달고 직접 전투에도 참가할 수
있사옵니다. 또한 풍백함의 기관으로는 출력 2500마력을 낼 수 있는 개량된 2기통(
汽筒) 석탄 보일러(補壹拏)의 증기터빈을 탑재하고 있사옵니다. 그리고 풍백함의
자매 함으로 우사함과 운사함의 건조도 곧 착수할 예정이옵니다."
최규철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어린 임금과 조정의 원로대신들은 노(櫓)도 없는
것이 단지 기관의 힘만으로 움직이는데 그 속력이 기존의 조선 수군이 보유한 판옥선(
板屋船)보다 두 배 이상 빠르다는 말에 연신 놀랍다는 표정이었다.
조선 최초의 증기선인 풍백함은 돛과 증기를 겸용한 기범선(機帆船)으로
평상시 바람이 많이 불때는 돛을 활짝 펼쳐 바람을 이용하고 바람이 잔잔할 때는
증기의 힘을 이용하여 항해하도록 만들어졌다. 또한 신기도감에서 생산한 120mm의
후장식(後裝式:탄환을 포신의 뒤쪽으로부터 장전하는 방식), 주퇴복좌기(
駐退復座機발사시의 충격 흡수장치)가 장치된 속사포를 배치하였으니 화력과
기동력면에서는 동급의 어느 배보다도 우수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120mm의 후장식
속사포는 기존 조선 수군의 판옥선(板屋船)에도 배치되기 시작하였으니, 순식간에
동양삼국 중에서 자웅을 겨룰 상대가 없을 정도로 조선의 수군은 성장하게 되었다.
참고로 풍백함의 재원은 다음과 같다.
전장 60미터, 전폭 13미터, 기준 배수량 1583톤, 120mm 후장식 속사포 8문, 최고
속도 17노트로 동급의 다른 나라 함정 중에서는 최고의 재원과 성능을 자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