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지금 김영훈의 사령관 실에는 함대의 주요 지휘관들과 민간인 지휘부가 다 모여
있었다. 출발 준비를 하면서 약 보름 정도 같이 합숙을 했지만 출발 후에 다 같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영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들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원래 목적지인 조선에 무사히 도착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같이 식사나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 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다들 들으셨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도착한 시기는 조선 후기, 정확히는 철종(哲宗)
재위 14년인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먼저 이순신 함의 통신사관인 장현덕
대위로부터 지금 시대에 대한 브리핑을 간략하게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 님! 장순남씨의 도움으로 이 시대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은 1863년 11월 23일 입니다. 물론
음력입니다. 양력으로 한다면 1월쯤 될 것입니다. 자세한 날짜는 컴퓨터로 조회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큰 일로는 앞으로 몇 일 내로, 정확히는 12월
8일 그러니까 약 보름 후에 철종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후사는 없습니다.
그리고 흥선군의 둘째 아들이 등극을 해서 고종이 됩니다. 흥선군은 고종이
등극하면서 살아있는 대원군이 되어 정권을 잡게 되고 약 10년 동안 조선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상이 지금 우리가 와 있는 이 시대의 정치 상황입니다."
이순신 함의 통신 사관 장현덕 대위의 설명이 끝나자 김영훈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조선에 왔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가진
무력으로 지금의 조선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 대원들이나 조선 백성들의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선의 정치 세력 중 우리를 도와줄 상대를 선택해서 그 세력과 힘을
합쳐 조선을 변혁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자로 할 경우에는 우리가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우리가 힘을 보태준 상대에게 나중에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막말로 팽(烹) 당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함대는 강화도 방면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함대의 현 위치는 전라남도 서해안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강화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습니다. 강화도에 도착하기까지는 급할 것 없으니까 지금
속도라면 약 이 삼일 정도면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 삼일 동안 여러분들은 부하들과
또는 동료들과 잘 상의를 하시고 의견을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 저도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강화도 해안에 도착을 하면 최종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식사들 하세요."
김영훈의 말이 끝나자 준비해 놓은 음식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음식을 먹으면서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느라고 말이 없다.
묵묵히 음식만 입으로 가져갈 뿐이다.
프롤로그...2
2003년 8월 24일 11:00 청와대
오전에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노무현 대통령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바로 주한 미국 대사관의 하버드대사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듣게
되는데...
" 국정원장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소?"
국정원장을 기다리다 짜증이난 노무현 대통령이 괞시리 배석해 있던 비서실장에게
호통을 친다.
"국정원에서 출발했다는 연락이 왔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진정하십시오. 대통령님!"
문희상 비서실장이 조급해하는 대통령을 진정시키며 말을 한다.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어요? 미국이 북한을 친다는데 진정할 수가 있습니까? 만약
미국이 북한을 친다면 우리 민족은 파멸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수도 있단 말입니다.
다른 분들은 다 오셨나요?"
" 다른 분들은 모두 도착해서 지금 회의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특별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서 합참의장도 불렀습니다."
문희상 비서실장이 말을 하는데도 노무현 대통령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려 일반 국무위원들에게는 함구하기는 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국가 안보 회의를 소집했는데 고영구 국정원만 늦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고영구 국정원장이 회의실에 들어서며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 인사는 나중에 하고 빨리 회의를 시작합시다.
오늘 제가 이렇게 급히 국가 안보 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아까 하버드 주한 미국
대사에게서 놀라운 소식 을 통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부랴 부랴
여러분들을 모신 겁니다."
대통령의 말이 시작되자 국가 안보 회의 참석자들이 숨을 죽이기 시작했다.
"하버드 대사가 방금 미국 정부의 새로운 대북한 정책을 통보해 왔는데 한마디로
얘기해서 두 달 안으로 북한을 전면 침공해서 두 달 안으로 북한 정권을 무장 해제
시키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건 총리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경악을 하면서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미국 시간으로 지난 22일에 결정이 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의견을
개진해 주세요. 제 생각에 미국이 이렇게 갑작스럽게 정책을 변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박정수 외교 통상부 장관이 말을 한다.
"제가 판단하건데 북한 핵 문제를 다룰 6자 회담이 바로 코 앞에 다가왔는데 미국이
갑자기 전쟁을 결정한 이유는 우선 이라크에서 확실하게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축출하지 못하고 승전 선언을 한 이후,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라크 게릴라들의
활동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미군이 속출하자 미국의 여론이 지금의 부시 행정부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 한 것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미국이 당초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가 나오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염두에둔 부시 행정부가 또 다른 돌파구를 만들 필요성을 느꼈을 것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유로는 그동안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이른바
악의 축으로 지목을 하고 이들 나라의 정권을 붕괴 시키기로 결심을 한 상황에서
이라크를 먼저 침공하고 또 다시 이란을 침공한다는 것은 다른 중동 국가들이나
이슬람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을 해서 이란 보다는 만만한 북한을 건드리기로
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쭈욱 미국을 상대로 도발하고 건드려온 북한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손을 볼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제 생각도 박정수 장관과 같습니다. 대통령님!"
고건 총리가 거들고 나서자 다른 참석자들도 이구동성으로 동의를 하고 나선다.
"그럼 우리가 이 시점에서 취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대책을 묻자 다들 꿀먹은 벙어린 양 할 말을 하지못한다.
다른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미국이 북한을 침공한다는데 한국이 어떤 수로
막겠는가?
대책없이 앉아만 있는 참석자들을 바라보며 노무현 대통령이 짜쯩을 내려고 하는데
고영구 국정원장이 말을 한다.
"대통령님! 미국이 북한을 침공할려는 이 마당에 우리가 달리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은 반드시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엄청난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산업 기반 시설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경제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또 다시 한국전쟁 이후 처절했던 지난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취할 수 잇는 방법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이 너무도 엄청난 것이라서리..."
대통령의 질책하는 듯한 눈초리에 잔뜩 풀이 죽어 있던 고건 총리가 한 줄기 서광을
만난듯 고영구 국정원장에게 되묻는다.
"아니 고원장 그 엄청난 방법이 무엇입니까? 뜸들이지 말고 말씀을 해보세요?"
"그 방법은 저보다 대통령님이 잘알고 계십니다."
고영수 국정원장이 고건 총리는 쳐다보지도 않고 노무현 대통령을 쳐다보며 말했다.
참석자들이 어리둥절 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과 고영구 국정원장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내 노무현 대통령의 입에서 말이 나오는데...
"금년 초에 제 고교 시절 은사님이 한분 오셨었습니다. 그분이 지금은 한국최고의,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이론 물리학자인데 들어 보신 분들도 계실겁니다. 김순태
박사라고, 지금은 포항공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십니다만, 그분이 취임후
청와대로 저를 찾아와서 놀라운 이론을 제시를 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 여행에 관한 이론이었습니다. 그분의 이론에 따르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방법을 알아냈는데 놀라운 것은 한두 사람의, 소수만의 시간여행이
아니라 다수의 그리고 대량의 물건 또는 물자까지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극비리에 고원장에게 지시를 해서 우리가
보유한 수퍼 컴퓨터로 각종 시뮬레이션 실험을 해본 결과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문제는 이 방법이 한번 밖에 사용할 수 없으며 다시는 현재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로의 여행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느 시기로 갈 수 있는지는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백년전으로 갈지 또는 천년 만년전으로 가게될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국정원에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라고
지시는 했는지만 실행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떻습니까? 고원장! 시간의 오차를
줄일 수는 없는 것입니까?"
다른 참석자들이 노무현 대통령의 엄청난 말에 얼이 빠져서 아무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고영수 국정원장이 대통령의 물음에 답을 한다.
"지금까지 저희들의 실험으로 어느정도는 오차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불안합니다. 정확히 어느 시기로 도달 가능한지는 말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이오?"
성질급한 통일 부총리가 끼어들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조선 시대로의 시간은 가능합니다. 어느 임금시대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어도..."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다른 참석자들 모두가 말이 없었다.
오늘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평온 한 날인줄 알았는데 한가지도 아닌 두가지의 놀라운
소식에 얼이 빠진 것이다.
미국의 북한 침공이라니...과거로의 대규모 인력과 장비의 시간 여행이라니...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노무현 대통령은 뜻밖의 반가운 손님을
맏는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시절 은사인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김순태 박사였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묻는데 김순태 박사가 놀라운 이론을 설명을 하는데 바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김박사의 이론에 의하면 대규모의
인원과 발전된 현대 과학의 기술과 장비를 과거로 이동시켜 역사를 바꾸고 세계사를
통째로 갈아 엎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히 충격이었다.
김박사의 말을 들은 노무현 대통령은 극비리에 고영수 국정원장에게 실험을 지시
하고 최종적으로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너무도
엄청난 사실이기에 지금까지 실행을 주저하고 있었다. 만약에 미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다른 강대국들이 이 사실을 눈치 챈다면 이건 우리 민족의 멸절을 각오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더 이상 노무현 대통령에게 기다려주지 않고 북한과의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와 국가 경제의 타격이냐, 아니면 과거로 가서 세계사를 뒤집어
엎느냐를 강요하고 있는데...
드디어 노무현 대통령의 입이 떨어졌다.
"여기 계시는 참석자들은 잘 들으세요. 저는 드디어 한가지 중대한 결심을 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은 유사이래 한번도 외국을 침략을 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줄기차게 외세의 침략을 받아 왔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지금의 풍요와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 만년 역사속에서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의
기원이었던 저 시베리아의 바이칼호수에서 쫒겨나고 풍요로운 중국 대륙과 만주
벌판을 잃게 되고 결국에는 지금의 한반도까지 밀려나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바로 어리석었던 몇몇 조상들에 의해 후손들이 계속해서 고난을
당해오다가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다시는 우리 후손들에게 오욕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다시는 우리 민족의 피와 땀으로 얼룩진 이 신성한
우리나라, 우리 강토가 더러운 외세의 침략을 받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면
지금 우리나라의 힘으로는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실행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저는
시간 여행을 시간 원정단이라 명명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은 시간 원정단의 성공을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세부적인 사항은 국정원장의 설명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럼 먼저 시간 원정 여행 이론과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매년 여름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북아의 여러나라들은 태풍의 피해를 겪습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태풍의
피해는 잘 아실 것입니다. 이 태풍은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해서 동북아를 진로로
해서 올라오게 되는데 모든 태풍은 엄청난 비바람을 몰고 옵니다.그런데 모든 태풍은
태풍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태풍의 눈은 바람 한점 없고 파도도 없는 고요한
지대입니다. 김순태 박사님의 이론에 의하면 이 태풍의 눈 상공에 강력한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발생을 시키면 이 태풍의 눈 안에 있는 모든 생물체는 다른 시간대로
순식간에 이동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저희 국정원에서는 그 동안 우리나라가 보유한
수퍼 컴퓨터로 수 많은 모의 실험을 해 본 결과 가능하다는 결과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대통령님의 지시를 받고 준비를 해왔는데 결론은 우리가 보유한
가장 강력한 전함과 수송선들이 태풍을 뚫고 태풍의 눈에 진입을 하게 되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가능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은 지난 5월에 우리 해군이
이순신급 구축함-KDX-2-을 진수한 것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 이순신함은
극비리에 개조를 통해서 원자력 추진 구축함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순신함은 기존의 전자장비외에 이미 수퍼 컴퓨터를 따로 탑재 했습니다. 이 수퍼
컴퓨터에는 그동안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과학적인 업적과 지식기반이 입력된 상태입니다. 그리고 태풍의 눈을 향해
인위적인 강력한 에너지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저희 국정원에서는 극비리에 구
소련에서 독립한 카자흐스탄으로 부터 소형 핵 미사일을 구입을 해서 잠수함에서
발사할 수 있도록 개조를 마친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순신함을 비롯한 천지급의
보급함 한 척과 민간에서 징발한 15만톤급의 대형 수송선 한 척을 이번 원정에
참여시킬 예정입니다. 시간 원정단의 선발은 국정원에서 이미 리스트를 뽑아논
상태입니다. 원정단원들은 가급적이면 젊고 미혼인 군인과 과학자, 기술자, 그리고
각 분야의 전문 인력으로 구성할 예정입니다."
참석자들은 모두 말이 없었다. 한국형 구축함 사업의 두번째 모델로 지난 5월에
진수한 이순신함의 추진 기관이 극비리에 원자력 추진으로 바뀌었다는데 말을 잃었고
우리나라가 이미 핵 미사일을 수입했다는데 또 말을 잃었다. 고영수 국정원장은
계속해서 계획을 설명했다.
"원정단의 인원은 군인과 민간인 포함해서 약 천명에서 천 오백명 정도로 구성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인원은 모두 지원자로 뽑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일대일로
극비리에 접촉을 해서 본인의 자발적인 지원으로 뽑을 것입니다."
지원자를 뽑는다는 말에 고건 총리가 우려를 표시하며 말한다.
"그렇게되면 사전에 노출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만약에 노출이 되면 엄청난
사태가 벌어질텐데요?"
"그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국정원과 군의 정보 요원들이 철저히
보안을 할 것이고 또 접촉하는 인물들에게도 비밀 절대 엄수 선서를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중대한 계획이 타의에 의해서,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원정단원들이
과거에 도착하게 됐을때 받게 되는, 그리고 다시는 현재로 돌아 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받게되는 심리적인 무력감이나 상실감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지원자에 한해서 선발해야 합니다. 과거 어느
시점으로 가게 될지는 누구도 장담 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가 화석 연료를
이용해서 동력을 얻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많은 장비는
가져가지 못합니다. 대신에 소모성 장비는 충분한 분량을 여분으로 포함 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군 선발 요원중에 사병은 포함시키지 않을 생각입니다. 군 병력
모두는 사관과 부사관으로 이루어 진 정예 요원들을 선발 할 것입니다. 사병은
과거에 도착해서 새로 선발해서 보충하면 무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께서
말씀하셨듯이 미국이 북한을 침공하는 시점이 10월 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9월중으로 원정단을 출발 시킬 것입니다. 다행히 여름이 끝나지 않았고 8월과 9월
사이에는 태풍도 많이 발생하기 때문에 큰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드디어 고영구 국정원장의 말이 끝났다.
고영구 국정원장은 30분 이상 열변을 토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손으로 이런
엄청난 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한다는 흥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니 고영수 국정원장 뿐만 아니라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참석자들의 얼굴도
마찮가지로 상기되어 있었다.
"수고 하셨습니다. 고원장. 저는 이번 시간 원정단 계획을 '봉황 작전'이라
명하겠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은 이번 작전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어 '봉황'이
하늘로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과 기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계획된 봉황은 이렇게 날개짓을 시작했다...
프롤로그...3
무더위도 한 풀 꺽이어 가는 늦여름이다.
물가에는 고추 잠자리가 날아다니고 아침 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래도 한 낮은 덥다. 한 낮의 더위가 수그러드는 저녁참에 흥선(興宣)은 오랜만에
둘째 아들 명복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명복아"
"예. 아버지"
말하는 품새가 제법 의젓하다. 아이들의 말 품새와 절 품새는 그 집안의 지체를
설명하는 것이 된다.
"네가 올해 몇인고?"
"열 두살 인줄 모르시고 물으십니까?"
"아니다. 그럼 오늘이 며칠이더냐?"
"칠월 이십 사일 이옵니다."
명복이는 새까만 눈을 반짝이며 영리한 음성으로 대답한다. 흥선은 그런 명복이
대견한듯 바라보다가 별안간 어린 아들에게 연속적으로 색다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다.
"머리는?"
"마리요."
"귀는?"
"이부."
"약은 뭐라더냐?"
"탕제라고 하옵니다."
흥선은 명복의 총기를 대견해 하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부자지간의 문답은 다시
계속된다.
눈은 안정, 코는 비궁, 발은 족장, 손은 수장, 혀는 설상, 상투는 치, 갓은 두레,
바지는 봉지, 저고리는 등의대, 수건은 수긴.
"옷을 입는다는?"
"옷을 접수신다."
흥선은 어린 명복에게 궁중용어를 익혀주면서도,
"그런 말은 아무 데서나, 아무 하고나 함부로 지껄여서는 안된다. 알겠느냐?"
"네, 저 혼자만 알고 있겠사옵니다."
어린 명복은 이미 여러 차례 그런 다짐을 받아 왔기 때문에 쉽사리 그런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어깨는 뭐라고 하지?"
"견부라고 하옵니다."
"어머니는?"
"어마마마."
"내 너에게 하는 말을 잊지 말라는?"
"과인이 경에게 이르는 말을 명심할 지어다."
흥선은 만족한 듯 명복의 손을 잡고 저잣거리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어느만치 걸었을까? 명복이 갑자기 흥선의 손을 흔들며.
"저 사람 이에요. 아버지."
"뭐가 말이냐?"
"저기 저 방갓을 쓰고 걸어가는 저 사람요. 저 사람이 며칠전에 저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 사람이란 말이에요?"
명복의 말을 듣자 흥선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명복아 너는 빨리 뛰어가서 저 사람을 이리로 불러 오너라. 빨리!"
흥선은 앞에 있는 이를 뚫어질 듯이 쳐다본다.
며칠 전에 명복이 동내 아이들과 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 하나가 명복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보고 가더 니 뒤를 돌아 가던 길을 돼 돌아와서는 하는 말이
"도령은 장차 제왕(帝王)이 될 상(相)이오. 부디 몸가짐을 각별히 조심하도록 하시오.
" 라고 하였다던가.
저녁에 구름재(雲峴) 집에 돌아오니 흥선의 부인 민씨가 얼굴이 새파래져 가지고
그말을 일렀었다.
새삼스럽게 재 작년에 사약을 먹고 죽은 도정(都正) 이하전(李夏銓)이 갑자기 생각난
이유는 왜인가?
이하전이 누구던가? 바로 흥선의 친척이며 지금의 임금(철종)이 승하하게 된다면
왕위를 이을 강력한 종친(宗親)이 아니던가! 그런 이하전도 오위장(五衛將) 이재두(
李載斗)의 무고로 죽게 되지 않았던가!
재 작년 여름 이하전의 집앞을 지나던 봉사 하나가 이하전의 집으로 들어서더니
이하전의 부인 윤씨에게 "이댁에 왕기(王氣)가 서렸습니다. 아마도 이 댁
나으리께서는 왕손이신듯 싶습니다." 하였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몇 일뒤 친우
몇몇과 함께 노들 강변에 뱃놀이를 가던 이하전과 그의 친우들은 의금부 포졸들의
추포를 받게 되었고 국문에서 역모의 죄를 뒤집어 써 사약을 받지 않았던가!
불연듯 오싹해지는 흥선이었다.
방갓을 걷고 보니 왼눈이 없는 애꾸가 아닌가?
허어 이하전은 장님이더니 나는 애꾸인가?
흥선이 벌렁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애꾸에게 묻는다.
"노형은 어디사는 뉘신데 아이에게 실없는 소리를 하여 놀래키었소?"
"소인은 경상도 풍기가 고향인 술사(術士) 박유붕이라고 하옵니다. 흥선군(興宣君)
대감"
"허-어 이 몸을 알으시오?"
"알다 뿐이겠습니까? 지금은 한낫 흥선군으로 있지만 장차는 이 나라 역사상
유일무이(有一無二)한 살아 있는 대원군이 되실 분이 아니시옵니까? 대감!"
"허-어 이 사람이 대 낮부터 술에 취했나? 어디서..."
"흥선군 대감! 이 사람 어려서부터 방술(方術)을 익혀 관상(觀相)을 좀 볼 줄 압니다.
얼마남지 않았사옵니다. 이 해가 가기전에 하늘에서 시꺼먼 봉황이 나타날
것이옵니다. 그 봉황을 타십시오. 그 봉황을 타기만 한다면 대감의 둘째 도령이
용상에 앉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이 나라는 국운융성(國運隆盛)의 길이 열릴
것이옵니다. 대감! 명심 하시옵소서! 소인의 말을 명심 하시옵소서!"
흥선은 정신이 없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꼭 그 짝이 아닌가? 흥선은 꼭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박유봉이 인사를 하고 휘적 휘적 도포를 휘날리며 멀어져 가는데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흥선은 또 생각했다. 이것이 무슨 조화(造化)란 말인가?
불현듯 선친인 남연군(南延君)이 생각났다.
흥선은 남연군의 네째 아들로 태어났다.
흥선이 열 여덟 살 때에 남연군은 세상을 버렸다.
흥선은 남연군의 묘지를 잡기 위해 지관(地官)을 따라 덕산(德山.지금의 충남 예산군)
대덕사(大德寺)에 오른 일이 있다.
그때 지관은 대덕사의 탑을 오른손 중지로 가르키면서,
"바로 저 곳이 대길지(大吉地)이오만, 절이 있고 탑자리니 할 수 없구려."
지관이 그렇게 말을 하며 한탄을 하였다.
흥선은 곧 서울로 돌아와 가산을 팔았다.
이 만냥이라는 거금을 마련한 흥선은 그 절반인 만냥을 짊어지고 다시 덕산으로
내려와서 대덕사 주지(住持)를 얼르고, 달래고, 설득하고, 위협하고, 유혹하면서
온갖 수단을 다 하였다.
마침내 주지는 소년 흥선의 끈질긴 공세에 손을 들고 말았다. 그 날밤 대덕사는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하였고, 당황한 절의 중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불길을 잡으려고
했으나 절은 형체도 남기지 못하고 홀라당 다
타버리고 말았다. 결국 대덕사의 중들은 그 길로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고, 그로부터
며칠 뒤 흥선을 비롯한 형제들이 상(喪)을 받들어 그 자리에 도착하는데 밤은 깊어
야반(夜半)이었다.
한 밤중에 도착한 형제들은 고단한 나머지 깜빡 잠이 들고 말았는데 형제들이 모두가
희안한 꿈을 꾸게 된다.
"동생, 나 이상한 꿈을 꾸었네."
"형님, 저두" "저두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 막내인 흥선만 꿈이 없었다.
형제들은 등골이 오싹한 기분에 서로의 꿈을 얘기를 하는데 하나같이 똑같은
무섭고도 불길한 꿈이었다.
흰 옷에 흰 수염을 위엄있게 기른 노인이 꿈에 나타나더니 호통을 치면서,
"네 이놈들! 나는 이곳 탑신(塔神)이다! 네 놈들이 공모해 내 집을 없애 버렸으니
괘씸하기가 이를데 없구나! 만일 이곳에 너희 아비를 장사지내면 삼우제 전에 너희
놈들은 모조리 죽음을 당할 것이니 알아서 하거라!"
하면서,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하니 어찌 무섭지 않겠는가.
그때 흥선이 분연히 일어나 한마디 하는데,
"과연 아버님은 천하의 명당 자리를 얻으셨군요. 사람의 명(命)은 스스로가 주인인
법인데, 귀신이 어찌 우리를 해할 수 있으리오. 하물며 지금 시국이 안동 김씨
세도에 어지러울대로 어지러워 졌는데 어찌 우리 형제들만 구차스럽게 목숨을
연명하기를 바라리오. 형님들은 겁낼 것 없소.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아니오!"
이렇게 해서 흥선 형제들은 그 자리에 묘를 쓰게 되었고 행여 불손한 무리들이 묘를
파 옮길까봐 일만 근의 무쇠를 녹여 관을 덮고, 그 위에 사토(沙土)를 씌웠다.
'아직 그 명당 자리의 음덕은 나타나지 않았다. 애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
명당의 발복(發福)인가???'
흥선은 한 참을 생각 하다가 명복이 손을 흔들자 깨어난다.
"무슨 생각을 그리도 오래 하시옵니까? 아버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명복아! 이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을 하면 아니된다.
알겠느냐?"
"어머니께도 말하면 아니되오?"
"니 어머니에게도 말하면 아니된다. 알겠느냐?"
"예. 아버지."
"오냐. 이제 그만 가자꾸나."
과연 박유복의 예언(豫言)대로 시꺼먼 봉황이 나타날 것인가?
또 남연군 묘의 음덕이 있을 것인가? 궁금도 하구나...
봉황비상(鳳凰飛翔)...1
2003년 10월10일 11:35 청와대
밤도 아닌데 하늘은 깜깜했다.
필리핀에서 발생한 태풍이 서서히 북상하면서 이제는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일대가
영향권내에 들어왔 다. 집무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은
착잡했다.
아직까지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은 태풍의 영향권내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듯 시커먼 먹구름이 서울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 집무실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는 노무현 대통령의 마음도 그 먹구름처럼 착잡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은 '시간 원정단'을 출발시키는데 회의적인 마음이 더 컸다.
역사를 뒤집어 엎는다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리고 그 뒤바뀐 역사 때문에
피해를 입게 될 지도 모르는 다른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더 무거웠다.
무엇보다도 젊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슴을 짓눌르는 것은 시간 원정을 떠날 젊은
군인들과 학자, 기술자등 원정단 멤버들의 안위가 더 걱정이 되었다. 말이 그렇지
아무리 자원 형식을 취하는 것이지만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뒤로하고, 지금
세상에서 이루어 놓은 모든 것을 버리면서 떠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그런
원정단의 젊은이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지난 8월달 말에 있었던 북 핵 문제를 다룬 6자 회담은 별 성과없이 끝이 났다.
처음부터 미국은 그 회담에 성의를 갖고 임하지 않았으며 북한도 당초 그들의 주장을
한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끝내 회담은 성과없이 끝나고 2차회담은 아직까지 열리지
않았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기정 사실로
굳어 가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시간 원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대통령님! 제주 화순 기지에 있는 원정단이 화상으로 연결되었습니다."
비서실장의 말이 떨어지자 노무현 대통령은 집무실 한쪽 벽면에 마련된 커다란
스크린으로 걸음을 옮긴다. 제대로 하는 원정이라면 국가에서 준비한 대대적인 환영
행사가 있어야 하겠지만 워낙 철통보안 속에 주변국의 눈을 속이고 출발하는
것이기에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원정단의 출발 인사를 받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원정단의 가족들도 이일을 모르고 있었다.
대통령이 화면 앞에 서자 갓 서른이 넘었을 것 같은 젊은 군인이 거수 경례를 한다.
"충-성"
"충성, 나 대통령입니다. 출발 준비는 완벽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저를 비롯한 원정단원 모두가 승선을 완료한 상태이며
물자와 장비도 이상없이 준비가 된 상태입니다."
"김영훈 소령이라고 했지요?"
"소령 김영훈."
"김소령 아버님께서는 별 말씀이 없으셨습니까?"
"꼭 성공하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대통령님."
이번 시간 원정단의 멤버는 이순신 함과 천지급 수송선-삼별초함- 한 척, 그리고
15만톤의 컨테이너선-청해진함- 한 척의 승무원들을 비롯해서 강화된 1개 중대병력의
무장 병력과 함께 다수의 학자, 과학자, 민간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체
인원은 천 오백 명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원래 이순신함의 승무원만으로도 300명이 넘는 수준이나 사관과 부사관, 그리고 일부
핵심 부서의 승무원들-일반 사병-을 뺀 나머지 승무원들은 승선시키지 않았다.
전쟁이나 작전을 위해 출항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승선 인원을 대폭 줄이고 그
자리를 각종 물자와 민간인들이 차지하였다. 그것은 다른 두 척의 수송선도
마찬가지였다.
김영훈 소령은 원래는 특전사의 대위였으나 이번 원정에 제일 먼저 지원을하였고
원정단의 효과적인 지휘를 위해서 특진을 하여 원정단의 사령관이라는 중임이
맡겨졌다. 그리고 김영훈 소령은 이번 계획의 최초 입안자인 김순태 박사의 막내
아들이기도 했다.
"미안합니다. 참으로 미안합니다. 우리나라가 좀 더 힘이 있었으면 이런 무모한
원정은 없었을 것인데 나를 비롯한 모든 정치인들의 잘못으로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지게 됐습니다."
"아닙니다. 대통령님. 저를 비롯한 모든 원정단원들은 이번 원정에 참여하게 된 것에
대해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반드시 이번 원정의 목표를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이제 출발 시간이 다 됐군요. 아무쪼록 꼭 성공하기를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이만 출발하겠습니다. 충성"
떠나보내는 대통령의 눈에서도 떠나가는 김영훈 소령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가운데 이순신함을 비롯한 수송선 두 척이 파도를 헤치며
사라지는 모습이 화면속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멀어져 가는
원정단을 바라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
8월말부터 준비를 시작한 원정단은 다행히 별 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출발하였다.
각 군에서 지원한 최정예 요원들과 민간 기술자, 학자, 과학자들로 이루어진 민간
지원자들로 구성된 원정단은 이미 지난 9월 말에 완벽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다행히 우려했던 정보의 노출은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출발을 하였다. 그동안
몇 차례의 태풍이 우리나라를 휩쓸고 지나 갔으나 이순신함을 비롯한 함선들이
아무리 크고 강력하다고 해서 대형의 태풍을 뚫고 태풍의 눈까지 무사히 진입할 수는
없었기에 그냥 보내야만 했다. 특히 지난 9월에 올라온 태풍 매미는 한반도에 직접
상륙해서 막대한 피해를 입혔었다. 민간의 피해는 엄청났느아 해군의 철저한 재난
대비 덕분에 이순신함을 비롯한 원정단의 선박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올라오는 태풍은 다행히 C급의 약한 태풍이었다. 이 태풍을 놓친다면 전쟁 개시전에
다시는 기회가 없을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오늘 드디어 출발하게 되었다.
제주도 남서쪽 100Km지점 해상 16:00 이순신함 함교
김영훈 소령은 죽을 맛이었다.
비행기나 헬리콥터는 많이 타봤다. 그리고 해군 함정도 많지는 안지만 몇 번
타보기도 해서 멀미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차원이 달랐다. 아무리
이순신함이 우리 해군이 보유한 가장 큰 전함이라고 해도, 아무리 이번 태풍이 C급의
약한 태풍이라고 해도 이건 차원이 달랐다.
이미 함교에는 다른 대원들이 토해논 토사물들로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다.
시간 여행은 고사하고 태풍의 눈까지 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사령관님! 이곳은 너무 위험합니다. 선실로 내려가 계십시요."
"이미 늦었어요. 함장. 잘못하다가는 파도에 휩쓸릴지도 모릅니다. 그냥 여기
있겠어요."
이순신함의 함장인 김종완 소령이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에게 선실로 내려 갈 것을
권유해 보았지만 이렇게 높은 파도가 몰아치는데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 가지였다.
이번원정단의 기함인 이순신함의 함장으로 임명된 김종완 소령은 원래는 이순신함의
작전관으로 이순신함이 진수할 때부터 이순신함에 근무했었기 때문에 이순신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김영훈 소령과 마찬가지로 원래는 대위였는데 이번 원정 때문에 소령으로 진급한
케이스였다.
누구보다도 해군 전략에 밝고 부하들의 신임도 두터워 일찌감치 이순신함의 함장으로
발탁되었다.
"이제 얼마나 남았소? 함장"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런 속도라면 약 30분이면 태풍의 눈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다른 함들도 이상없이 잘 따라오고 있나요?"
"걱정하지 마십시요. 다들 잘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해군은 우리보다도 더
큰 함정을 보유한 일본애들도 겁이나 항구로 회항을 하는 큰 파도가 치는 상황에서도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많기 때문에 아무리 태풍의 파도가 높다고 하지만 충분히 목표
해역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나는 함장만 믿겠습니다."
"예, 사령관님."
두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중에도 이순신함은 파도를 뚫고 거침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 곧 태풍의 눈에 진입합니다. 사령관님."
김종완 소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순신함은 태풍의 눈으로 진입하였다.
그곳은 여태까지의 비바람과 높은 파도는 온데 간데 없고 잔잔하기가 호수와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치 영화 트위스트에서 본 토네이도의 모습처럼 까만 먹구름이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정말 대단한 장관이었다.
같은 시간 30Km후방 해저에 있는 209급 잠수함 이순신
"함장님! 이순신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방금 태풍의 눈에 진입하였답니다.
미사일 발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어, 그래. 알았어. 어뢰실에 명령을 내리게. 1번 발사관에 준비한 '봉황'을
날리도록."
"알겠습니다. 어뢰실! 함장님의 명령이다. 즉시 '봉황'을 날리도록."
"알겠습니다. '봉황' 발사합니다. 발사!"
209급 잠수함인 이순신함의 1번 발사관에서 개조된 핵 탄두를 실은 미사일이
소리없이 빠져나왔다.
얼마간 바다속을 유영하다가 갑자기 물위로 솟구치듯 뛰어올랐다.
드디어 '봉황'이 날아올랐다...
봉황비상(鳳凰飛翔)...2
김영훈 소령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풍의 눈에 진입하고 나서 따라오던 209급 잠수함 이순신함에 미사일 발사를
요청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사일은 발사되었다. 그리고 피어 오른 버섯 구름...
그러나 그 버섯 구름이 이순신함을 강타하기전에 무언가가 이순신함을 비롯한
보급선들을 빨아들일듯 끌어 올린 것을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정신을 잃었었다.
원정단의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은 머리가 빠개질 것 같은 기분에 머리를 이리 저리
흔들어 보았다.
아직까지 함장을 비롯한 다른 승무원들은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리 저리 둘러 보던 김영훈 소령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 봤다.
벽걸이 시계는 무슨일이 있었냐는듯 이상없이 잘도 가고 있었다. 11시가 조금 넘었다.
김영훈 소령은 일어나서 밖을 한번 돌아 보았다. 밖은 한 낮이었다. 그럼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김영훈 소령은 김종완 소령에게 다가가서 흔들기
시작했다. 얼마지나지 않아 김종완 소령을 비롯한 다른 승무원들이 서서히 깨어났다.
"으으으... 여기가 어디쯤 됩니까? 사령관님?"
"나도 어디쯤인지 모르겠소. 분명한 것은 버섯 구름이 피어 오르고 무언가가 우리
배를 끌어 당겼다는 것이오..."
"그럼 우리가 과거에 도착한 것입니까?"
김영훈 소령은 할 말을 잃었다. 그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다만 함장보다 5분 먼저 깨어났다고 다 알 수는 없지 않는가.
"나도 모르겠소. 우선 우리의 위치가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파악을 하고 다른
함정들과의 통신이 되는지도 확인해 보아야 겠소."
" 알겠습니다. 통신 사관 삼별초함과 청해진함과의 통신을 시도해 보도록. 그리고
해작사와의 통신도 시도해 봐."
함장인 김종완 소령의 명령이 있자 통신 사관이 삼별초함과 청해진함을 호출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함에서 연락이 왔다.
"함장님! 삼별초와 청해진은 무사하답니다."
"그래. 그럼 우선 각함들은 각함의 인원과 탑재한 물자의 안전을 점검하라 명령을
내려. 아울러서 부상자가 있다면 그것도 파악해서 조치하게 하고..."
"알겠습니다."
통신 사관인 장현덕 대위는 헤드셑에 연결된 마이크를 손으로 가리고 대답을 한다.
장현덕 대위는 김종완 소령의 해사 1년 후배로 이순신함의 진수 때부터 통신 사관을
맡아오고 있는 장교로 해박한 역사 지식을 자랑하는 엘리트 해군 장교이다.
"아! 그리고 해작사와의 통신은 연결이 됐나?"
"그게 아무런 응답도 없습니다. 해작사는 물론이고 우리 함대이외에 아무런 전파
신호도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과거로 오기는 온 모양입니다."
"GPS를 통한 우리 위치 확인은 해 봤나?"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아무런 위성 신호도 포착되지 않습니다. 깨끗합니다."
"그럼, 그동안 준비한대로 자이로와 컴퍼스를 통한 위치 확인을 시도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함장님."
두 사람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김영훈 소령이 새로운 명령을 내린다.
"장대위 말대로 우리가 과거로 온 모양이오. 일단 각 함들과 통신은 계속 유지를
하고 함대의 진로를 한반도 쪽으로 잡아서 항진을 하세요."
"한반도 쪽이라면...?"
"우리가 과거로 온게 틀림없고, 우리가 계획했던대로 조선 시대로 왔다면 일단 육지
쪽으로 가서 무언가 정보를 얻어야 하지 않겠소? 일단 육지에 상륙을 해서 정보를
얻어봅시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아, 그런데 말이오, 두 사람은 좀 추운 느낌이 들지않나요?"
"저도 아까부터 좀 춥다고 느꼈습니다. 아마 우리가 함교에 있기 때문 아닐까요?
함교는 각종 전자 장비의 보호 때문에 항상 에어콘을 가동시키느라 좀 춥습니다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즉시 실외 온도를 측정해 보세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김소령의 복장은 처음 출발할 때와 똑 같았다. 얼룩 무늬 전투복만 착용한
상태였다.
출발했을 때는 별로 춥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사령관님! 지금 실외 온도가 영하 2도로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우리가 겨울철에
도착한 것 같습니다. 출발할 때는 분명히 초 가을이었는데 겨울이라니..."
"내 느낌이 맞았군요. 즉시 각함들에 연락해서 대원들에게 방한복을 지급하도록
하세오. 또 선실에 히터를 가동시키도록 하고요...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방사능
잔류 검사를 한번 해 보세오. 만에 하나 방사능에 우리 배가 노출이 되었다면 큰일
이니까."
"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바닷 바람은 매서웠다.
아무래도 겨울 바람을 갑판에서 맞는 것은 천하의 강골인 김영훈 소령에게도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김영훈 소령이 스키 파커의 깃을 세우며 함교로 돌아서는데 멀리서 하나의 점이 다가
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섬인듯 싶었다. 섬은 점점 다가왔다. 김영훈 소령은 나는듯 뛰어서 함교로
들어갔다.
"사령관님, 전방에 섬이 나타났습니다.."
"에, 저도 봤습니다. 근데 함장, 저기를 보십시요. 아무래도 한라산인 것 같은데요."
"그렇네요... 저 섬이 제주도가 맞다면 일단 제주시 쪽으로 방향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소규모 부대를 상륙 시켜서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는 것이 좋겠군요."
김영훈 소령이 함장의 말에 대답을 하며 선실로 연결된 마이크를 붙잡았다. 그리고
특수 수색중대의 행정 보급관에게 1개 분대를 상륙 준비시킬 것을 지시하는 순간
다시 함장의 음성이 들렸다.
"사령관님 저기를 보십시요. 전방에 고깃배가 있습니다."
"그 배를 세우도록 하세요."
정순남(丁順男)은 무서웠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고 해서 혼자서 오랜만에 배를 몰고 낚시를 나왔다가 뜻밖의
사고를 당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겁이 났다.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리고 노
젓는 손은 자꾸만 헛 손질만 하였다.
세 척이나 되는 거대한 이양선(異樣船)은 점점 다가왔다.
아이구 이젠 죽었구나 싶었는데, 얼라리요, 이게 무슨 소린가 저 거대한 이양선에서
조선 말이 들리지 않는가.
"앞에 가는 고깃 배는 잠깐 멈추시오! 어서 멈추시오!"
갑자기 조선말이 들리는 바람에 정순남은 어쩔 수 없이 배를 세웠다.
이양선은 가까이서 보니 정말 거대했다.
이양선에서 들리는 말에 따라 낚시배를 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양선이 다가오면서 파도도 같이 나가왔는데 이리 저리 흔들리다가 배 안에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사람이 내려와서 도와준 덕분에 간신히 배를 댈 수 있었다.
"사령관님! 모시고 왔습니다."
"아, 그래. 수고했어요."
천신만고 끝에 배를 대라고 해서 대기는 했지만 정순남은 꼭 도살장에 끌려온 소의
심정이었다.
아마도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서 죽을 때의 심정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정순남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은 벌렁거리고 정순남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런 겁을 먹고 있군요. 겁내지 마세요. 우리가 뭣 좀 물어 볼려고 이렇게
모셨습니다. 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리고 사시는데는요?"
"예? 성함이라니요?"
"이름말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냐구요? 혹시 이름이 없습니까?"
"집에서 길르는 갱아지 새끼도 모다 이름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 이름이 없을라구요.
시방 나를 너무 시피보는 모냥인디..."
볼 멘 소리를 하는 정순남에게 한 방 먹은 김영훈 소령은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앞에 있는, 누비 옷을 입고 있는 영락없는 조선 시대 사람이
미더웠다.
"내 이름은 정순남이고만요. 글구 사는데는 제주도 바닷가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
먹고 살고 있구만요."
"아! 그래요, 정순남 선생. 혹시 지금이 어느 시댄지 알고 계십니까?"
"하이구, 선생이라니요? 그런 소리는 당최 과분시러워서, 헌데 어느 시대라니 시방
그게 뭔 말이다요?"
"아 지금 선생이 사시는 나라 이름이 조선인지 고려인지를 묻는 겁니다."
"고려는 폴새 망한지가 언젠데 그래요. 하모 400년은 됐것네요."
"그렇군요. 하면 지금 조선의 임금은 누굽니까? 혹시 아십니까?"
"참으로 이상한 냥반들이네...뭐 땀시 그딴 것들을 묻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
조선의 임금은 원래는 쩌그 강화도에서 농사나 짓던 촌 무지렁이였는디 선대 임금이
후사가 없이 덜크덕 나자빠져 버리자 망할놈의 안동 김씨네들이 앉혀 논 허수아비
임금이지 진짜배기 임금이갑디여..."
처음에 함교에 들어왔을 때는 병든 닭 새끼 같았던 정순남은 전라도 사투리가 심해서
그렇지 의외로 머리속에 든 것도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가 상민이 아닌 양반 집안의 후손이었는데 할아버지인 정약종(丁若鍾)-정약용의
세쩨 형-이 지난 신유년-신유박해(辛酉迫害)-에 있었던 천주교도 참살 사건때 서울에
있다가 잡혀 서소문 밖에서 참살 당했다고 한다. 그때 정순남의 아비는 어미의
뱃속에 있었다.
말하자면 정순남의 아비인 정지상은 정약종의 유복자였다.
정약종의 처인 홍씨는 뱃속의 유복자를 살리기 위해 서울을 탈출하여 전라도
고흥땅에서 숨어 살다 정순남의 아비인 정지상을 낫고 숨어 살았다고 한다.그러다가
정지상이 17세 되던 해 병으로 죽고 정지상도 몇 해 뒤 외아들 정순남만 남기고
죽었다.
정순남과 정순남의 어미는 그곳에서 살다가 정순남이 스무살이 되자 제주도로 이주를
해와서 여태 살았고 정순남의 어미는 재 작년에 죽었다. 정순남의 나이 스물
둘이었을 때였다.
정순남은 그 후 혼자 살면서 가끔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린다고 했다.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 챙겨야 할 식구가 있을리 없고 챙겨야 할 식구가 없다보니
배가 부르면 부른데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픈데로 산다고 했다.
그런 정순남이었으나 아버지인 정지상의 훈육으로 빈한한 형편이었지만 천자문(
天字文)과 동몽선습(童蒙先習)을 띠었다고 했다. 해서 원정단의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은 그에게 자기들을 도와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고 달리 갈데도 없고 할 일도
없었던 정순남은 처음의 기죽었던 모습은 간데 없고 호기롭게 승낙을 했다. 어차피
섬 마을 바닷가에서 살다 죽을 바에야 이양선이지만 이런 큰 배를 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순남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대충 획득한 함대는 진로를 강화도쪽으로 잡고 출발을
했다.
지금 김영훈 소령의 사령관 실에는 함대의 주요 지휘관들과 민간인 인력중의
지휘부가 다 모여 있었다.
출발 준비를 하면서 약 보름 정도 같이 합숙을 했지만 출발후 다 같이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영훈 소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다들 고생들 하셨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원래 목적지인 조선에 무사히 도착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신 것은 같이 식사나 하면서 앞으로의 계획을
상의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다들 들으셨겠습니다만 지금 우리가 도착한 시기는 조선
후기, 정확히는 철종(哲宗) 재위 14년인 것으로 확인 되었습니다.
먼저 역사 지식이 해박한 이순신함의 통신사관인 장현덕 대위로부터 지금 시대에
대한 브리핑을 간략하게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장순남씨의 도움으로 이 시대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오늘은 1863년 11월 23일 입니다. 물론 음력입니다.
양력으로 한다면 1월 쯤 될 것입니다. 자세한 날짜는 컴퓨터로 조회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의 큰 일로는 앞으로 몇 일내로, 정확히는
12월 8일 그러니까 약 보름후에 철종이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후사는 없습니다.
그리고 흥선군의 둘째 아들이 등극을 해서 고종이 됩니다. 흥선군은 고종이
등극하면서 살아있는 대원군이 되어 정권을 잡게 되고 약 10년 동안 조선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상이 지금 우리가 와 있는 이 시대의 정치 상황입니다."
통신 사관 장현덕 대위의 설명이 끝나자 김영훈 소령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 조선에 왔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가진
무력으로 지금의 조선 정부를 무력화 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 수도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 대원들이나 조선 백성들의 어느 정도의 희생은 감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조선의 정치 세력중 우리를 도와줄 상대를 선택해서 그
세력과 힘을 합쳐 조선을 변혁시킬 수도 있습니다. 전자로 할 경우에는 우리가
집권한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기득권 세력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가지로 어려운 점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후자의 경우는 우리가 힘을 보태준 상대에게 나중에
버림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막말로 팽(烹) 당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
함대는 강화도 방면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함대의 현 위치는 전라남도
서해안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강화도를 향해 북상 하고 있습니다. 강화도에
도착하기 까지는 급할 것 없으니까 지금 속도라면약 이 삼일 정도면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 삼일 동안 여러분들은 부하들과 또는 동료들과 잘 상의를 하시고 의견을
저에게 알려 주십시요. 저도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해서 최종적으로 우리가 강화도
해안에 도착을 하면 최종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식사들 하세요."
김영훈 소령의 말이 긑나자 준비해 놓은 음식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음식을
먹으면서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느라고 말이없었다.
묵묵히 음식만 입으로 가져갈 뿐이었다.
봉황비상(鳳凰飛翔)...3
강화도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으로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마니산 참성단과 청동기 시대의 유물인 고인돌등이 유명하다.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끼고 고구려, 백제와 신라의 각축장으로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을 지켜 보았으며. 고려시대에는 대몽항쟁(對蒙抗爭)의 중심인 삼별초(三別抄)가
강화섬 일대를 근거로 하여 치열하게 몽고에 대항하여 싸웠던 유서 깊은 역사의
섬이기도 하다. 그리고 병자호란(丙子胡亂)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그런 강화도가 드디어 원정단의 시야에 들어왔다.
원정단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의 방에는 원정단 수뇌부가 모여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이제 얼마 있으면 우리 함대는 강화도 근해에 들어서게 됩니다. 며칠 전 회의에서
있었던 우리의 계획을 최종적으로 수립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그동안 많은 생각들을 하셨을텐데, 가지고 계신 생각을 이 자리에서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령관님"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의 말이 끝나자 이순신함의 함장인 김종완 소령이 나섰다.
아마도 김종완 소령의 의견은 전체 해군-원정단중의 해군-의 통일된 의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김영훈 소령은 한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금의 조선은 임금인 철종의 죽음이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열흘 후면 철종 임금이 죽게되는데 우리는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나라나 임금이나 대통령이 교체되는 시기는 혼란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는 정조대왕의 사후 세력을 잡은 안동 김씨 일파가
60년동안 집권을 하면서 국정을 농단합니다. 그 60년 안동 김씨 세도가 끝이 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우리가 보유한 무장과 능력으로 조선의 집권 세력인 안동 김씨를
몰아내고 새로운 왕을 등극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 등극하는 왕을
이용해서 우리가 원하는 개혁을 하면서 조선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할 경우에 필연적으로 불가피한 희생이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희생이라는 것도 앞으로의 발전된 조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시행하게 될 여러가지 정책들은 일반 조선
민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 열흘 정도 남은 시간 동안 세밀한 작전을 세워서 실행을 한다면 적은
희생으로도 조선의 기득권층을 몰아내고 새로운 조선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함장의 그 말은 전체 군을 대표하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사령관님."
김종완 소령의 발언이 끝나자 이번에는 민간 원정대원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김인호(
金仁鎬)박사가 손을 들었다.
김인호 박사는 원래 농림부 산하 벼농사 연구소에서 한 평생 벼농사에 대해서 연구만
한 학자인데 고영구 국정원장의 고교 후배였다. 고원장이 원정단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젊은 연구원들을 물리치고 자원한 벼농사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젊은
연구원들 사이에서는 쌀 귀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었다.
"우선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의견은 우리 민간 원정대원 대다수의 의견이라는 것을
먼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 민간인 대원들은 요 며칠동안 많은 의견을 나누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역사를 바꾸려는 목적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단순히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벌이고, 그에 따라서 우리나라가 또 다시 전쟁의 참화를 겪음으로써
피폐해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그것만이 목적이라면
우리는 2003년 현재에서 얼마든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미국의 전쟁의도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굳이 위험을 무릎쓰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선택한 이유는 우리 후손들에게 더 이상 오욕의 역사를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의지의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일제 36년을 거치면서
우리의 민족 정기는 훼손될대로 훼손되게 됩니다. 그리고 독립을 맞이 하였는데,
나라는 둘로 나뉘고 결국에는 동족간의 전쟁이라는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나마
일제 당시 독립운동을 주도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남한에서는 과거 일제
36년 동안 온갖 협잡과 반 민족 매국 행위를 저지른 친일 반동 분자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했었는지는 저를 비롯하여 여기
계시는 젊은 장교들께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여기에 온 진정한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김종완 소령의
말대로 우리는 조선의 기득권 세력을 물리칠 힘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힘을
이용해서 우리가 저들을 힘으로 억누르고 짓밟는 다면 우리는 저들과 똑 같은 사람이
됩니다.
저는 힘으로 뒤 엎는 방법 보다는 우리가 조선 사회에 동화되어 서서히 우리의 뜻을
펼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뜻을 채 펴기도 전에 우리의 날개가
꺽일 수도 있습니다. 설사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우리 동족의 피를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천신만고 끝에 이곳에 온 의미가 없습니다. 박사님."
"의미가 없다니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저는 중도에 우리의 뜻이 꺽이어 우리가 결국
몰살 내지는 매장을 당한다 하더하도 그 나름의 역활은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모두 죽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뜻은 일반 조선
민중들속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중의 힘을 결코 무시하지 마십시요. 저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회의는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혈기 왕성한 군인들은 김종완 소령의 의견에 동의 하였고 민간인 출신의 대원들은
김인호 박사의 의견에 힘을 실어 주었다. 회의가 평행선을 달리게 되자 참석자들은
김영훈 소령의 결정을 강요하는데,
"두 분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두 분의 말씀 전부 다 옳은 얘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김종완 소령의 의견이 더 구미가 당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김인호 박사님의 피를 봐서는 안된다는 말씀에도 공감을 합니다. 제가
결론을 내겠습니다.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원정단 사령관의 결정으로 알고 모든
대원들이 따라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
".............."
모두의 시선이 김영훈 소령의 입에 집중이 되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우리 원정단의 앞으로의 진로를 결정하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기존 조선의 정치 세력 중에서 한 세력을 선택해서 우리의 힘을 실어주고 서서히
계혁을 하는 것으로 최종적인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그 정치 세력은 60년 세도로
나라를 망쳐버린 안동 김씨 보다는 앞으로 등극할 고종의 아버지가 되는 흥선군
이하응이 적합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흥선군이 집권을 한다고 하더라도 흥선군에게는
집권을 뒷 받침활 세력이 절대 부족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흥선군을 돕는다면,
흥선군이 우리의 손을 잡아준 다면, 우리는 크게 무리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만에 하나
흥선군이 우리와 손을 잡기를 거부한다면 그때가서 우리의 힘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은 제 결정을 존중해 주시고 부하들과 동료 대원들에게 잘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부적인 계획은 저희 군에서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결론이 났다.
이제 원정단이 천신만고 끝에 조선에 도착한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모으는
일만 남았다.
김영훈 소령을 비롯한 원정단 수뇌부들이 그에 따른 세부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하는데...
봉황비상(鳳凰飛翔)...4
새하얀 한지(韓紙) 위에 검은 먹을 잔뜩 머금은 붓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다.
사두(蛇頭)에서 시작된 붓의 놀림은 배가 부른듯(螳螂腹) 휘어지다가 갑자기
무엇이라도 베어낼 것 같은 모양으로 돌아선다. 그 날카로움 속에 한줄기 난(蘭)이
겹쳐지고 다시 봉황의 눈처럼 부릅떠 지는데, 그 봉황을 깨드리는 한 줄기의 난,
이른바 파봉안(破鳳眼)이다.
김응원(金應願)은 먹를 갈면서도 흥선이 치는 난을 바라보며 미간(眉間)을 찌푸린다.
"대감, 뿌리는 약한데 어찌 잎만이 그렇게 우뚝 솟아날 수 있사옵니까?"
"그럴까? 자네 마음엔 안드나?"
"화법도 무시되고 기교도 없고, 그러면서 멋대로 뻗어나간 난초잎에서 의지(意志)와
힘이 있는, 공간도 바위도 난초잎에 압도되는 평소 대감의 화법이 바로 석파란(
石破蘭)의 특징인데 평소의 화법은 어디가고 전통 중국풍의 사두에다 당랑복(螳螂腹)
은 무엇이며, 봉안(鳳眼)이며 파봉안은 또 무엇입니까? 대감의 평소 기품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사옵니다."
"그럴까? 그러나 요즘 어디가서 석파란하면 팔릴 수나 있겠는가? 자네 이걸 가지고
어디가서 팔고 오게. 요즘 집안에 궁끼가 짜르르 흐르니 내 안 사람 볼 면목이 없네."
"하이구 대감, 요즘 어디 가서 석파란을 팔겠습니까? 이미 팔 만한 데는 다 팔고
없사옵니다."
"그러니까 내가 난을 이렇게 친게 아닌가? 흥선의 새로운 화법이라고 하면 팔릴 수
있을게야."
김응원은 난감했다.
가끔 흥선의 집에 쌀이 떨어져 흥선이 친 석파란을 파는 일은 김응원의 몫이었다.
김응원은 흥선의 집에서 청지기를 맡고 있었다. 흥선의 구름재 집에는 김응원 말고도
천하장안(千河張安)이라는 이들이 있었으니 천희연(千喜然), 하정일(河靖一), 장순규(
張淳奎), 안필주(安弼周)라는 네 사람의 젊은이들이다. 일거리가 없어서 사지가
뒤틀리는 건달패들이다. 흥선의 술패요, 노름패들이다.
상사람(常人)들이지만 입심좋고, 주먹깨나 쓰고, 술 잘 먹고, 노름 잘하고, 계집 잘
후리는 흥선의 수족과
같은 거리의 건달패들이다. 그 중에서도 김응원은 흥선에게 있어 노복이요, 친구와도
같은 존재였다. 몰락한 왕가의 후손인 흥선은 생각이 트인 것인지 아니면 불우한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서 인지 어릴적부터 반가(班家)의 자제들 보다는 이들과 같은
상인들과 더 잘 어울렸다.
김응원을 내 보낸 흥선은 마당에 나와 따뜻한 볕을 쐬고 있는데 하인 하나가 흥선의
앞에서 넙죽 절을 하며 손님이 찾아왔다고 아뢴다.
"누구라더냐?"
흥선은 왠지 불안한 마음에 물었다.
흥선은 입에 물고 있던 장죽(長竹)을 뽑으며 다시 물었다.
"어디서 왔다더냐?"
"대제학(大提學) 대감 댁에서 왔다고 하옵니다."
늙은 하인은 대문께를 흘끔 돌아보면서 대답했다.
"김병학(金炳學)이가...?"
"들어오랄까요?"
"으음."
흥선은 신음소리 같은 대답을 하면서 사랑의 마루로 자리를 옮긴다. 이윽고 늙은
하인의 인도를 받아 낯 모를 젊은이 하나가 뜰 아래에서 허리를 굽힌다.
흥선이 묻는다.
"대제학 대감 댁에서 왔다고?"
"예에. 그렇구만요."
"무슨 전갈이냐?"
"과히 바쁘지 않으시면 잠시 왕가(枉家)를 청하셨구만요."
"댁으로?"
"아닙니다요."
"어디 계시더냐?"
"노들 강변에 계시는구만요. 글구 작은 도련님도 같이 청하셨구만요."
"명복이까지? 그리고, 노들 강변엔 왜?"
"소인이 듣기로는 노들 강변에 새로 사정(射亭)을 세우고 편산(便射)지 뭔지를
하신다는데 자세한 사정은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요."
"필운대 사정이 아니고 노들 강변에 새로운 사정이라...?"
"남여(藍輿)는 가져왔느냐?"
"가마를 가지고 왔습니다요."
"가마를?"
흥선은 잠깐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대제학인 김병학이 남여를 안보내고 하필이면 가마를 보낼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김병학이라면 그 아우인 훈련대장(訓練大將) 김병국(金柄國)과 함께 흥선이 어울리는
몇 안되는 안동 김씨였다.
더구나 흥선의 들째 아들 명복-훗날의 고종-과 김병학의 딸과는 정혼을 한 사이가
아닌가. 그런 그가 남여를 안 보내고 가마를 보냈다면 그대로의 어떤 의도가 있는 일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흥선은 더 의심하지 않고 명복을 불러 외출할 준비를 하라고 이르고 자신도 외출할
차비를 차렸다.
"노들 강변 어디쯤이냐?"
바깥 채 마당에 대령한 가마에 오르면서 흥선은 다시 한 번 사자(使者)에게 묻는다.
"가 보시면 알게 됩니다요. 약주를 드시다가 갑자기 대감께 새로 지을 사정을 보여
드리겠다며 모셔 오라기에 왔습니다요."
"그래?"
흥선은 회가 동했다.
그렇지 않아도 나른하기만 한 순간이다.
그가 술 자리에서 자기를 청한 일도 오랜만이고, 언제나 흥선 자신이 자진해서 찾아
다녔지만, 그러나 김병학이 어디 남이던가? 장차 사돈이 될 사이지 않는가.
흥선은 하인의 인도로 가마에 타고 명복은 흥선이 탄 가마 뒤를 종종 걸음으로
따랐다.
흥선을 태운 가마는 행보가 사뭇 빨랐다. 그리고 가마꾼들이 서투른 이들인지 앞
뒤로 흔들리고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는 것이 금방이라도 토사를 쏟을 것처럼
멀미가 나는 흥선이다.
목구멍까지 올라온 신물을 삼키며,
"아직 멀었느냐?"
하도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니 괜시리 짜증이 난 흥선이 가마의 포장을 떠들어
김병학의 하인에게 물었던 것인데, 뒤따르던 하인이 대답한다.
"다 왔습니다요."
"그런데 대제학 대감은 어디 계시느냐?"
"가 보시면 아십니다요."
흥선은 숨을 헐떡이며 따라오는 둘째 아들 명복이 안쓰러워,
"명복아,힘들지 않느냐?'
"문제 없사옵니다. 아버님"
흥선은 그런 어린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흥선은 포장을 내리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는 이런 곳까지 불러주는 김병학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고 흡족했다.
'그래도 김가 중에서는 병학이 지인지안(知人之眼)이 있단 말이야...'
흔들리는 가마안에서 흥선은 뜻모를 웃음을 빙그레 흘리고 있는데, 남 보기에는
초라하고 어설픈 행차임에 틀림없었다.
흥선을 태운 가마는 한참을 더 가다가 멈추었다.
"이제 다 왔느냐?"
지루하고 답답했던 흥선은 하인의 대답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가마의 포장을
떠들며 내렸다.
그런 흥선의 옆에 명복이 숨을 헐떡이며 섰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본 흥선은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흥선의 눈에 비친 주변의 풍경은 어디에도 술판 비슷한 것도,
사정 비슷한 것도, 더더욱 김병학의 행차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노들 강변은
맞는듯 싶은데 이 추운 겨울에 강변에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흥선이 의아해 하면서 하인을 쳐다 보는데 흥선이 타고 온 가마의 가마꾼중의 하나가
등에 진 봇짐에서 네모나면서 새까만, 이상하게 생긴 희안한 물건을 꺼내며,
"어미 봉황, 어미 봉황! 여기 새끼봉황, 이상."
"[여기 어미 봉황, 이상.]"
"당소 새끼 봉황, 물건 무사히 인수했다, 이상."
"[어미 봉황, 수신. 10분만 기다려라 이상.]"
"알았다, 수신완료, 이상."
흥선은 덜컥 겁이 났다.
기다린다는 김병학은 보이지 않고, 가마꾼중의 한 놈이 희안한 물건을 손에 쥐고 그
희안한 물건에서 빠져 나온 뭔가를 손에 쥐더니 실성한 놈처럼 거기에 대고 혼자
중얼거리더니 잠시 후에 손에 쥔 뭔가에서 사람 말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나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다. 내가 아직 날개도 펴지 못했는데 이렇게 요괴들에게
죽는구나 싶었다. 불쌍한 내 새끼를 어이할꼬...하는데,
'가만 이놈들이 봉황이 어쩌고 했는데...'
흥선이 이러거나 말거나 자칭 김병학의 하인이라는 놈과 다른 가마꾼들은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서 손에 들고 흥선과 명복을 가운데 두고 등을 돌리며 섰다. 뭔가를
경계하는 듯 두리번 거리는데, 흥선은 잠시 얼이 빠졌다가 정신을 차렸다. 그러더니
이내 가마꾼중 제일 가까이 있던 하나에게 몸을 날리며 발을 차 댔다. 그런데 이게
왠일? 등을 돌리고 있던 그 가마꾼이 흥선의 발이 등판에 닿을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오른쪽으로 돌더니 흥선의 발을 탁하니 쳐내고 팔을 뻗어서 흥선의 오른손과
목덜미를 양 손으로 움켜 쥐는 것이 아닌가. 흥선이 누군가? 어릴적부터 쌓인 울분을
싸움판과 투전판을 전전하면서 풀었던 장안에 이름을 날린 왈패요 한량이 아닌가.
그런 흥선의 회심의 발차기가, 어릴적부터 싸움판에서 단련된 흥선의 일격이, 생 판
처음보는 가마꾼에게 막히고 욕을 보게 생겼으니 흥선의 기분이 어떠했겠는가.
흥선은 참담했다.
목덜미가 잡혀서 숨이 답답했지만 의식하지도 못했다.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참담한 마음에 멍할 뿐이다.
흥선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그 가마꾼이 흥선을 잡았던 손을 놓으며,
"용서 하십시요, 그리고 진정하십시요. 흥선군 대감. 저희들은 대감과 작은 도련님을
해칠려고 이렇게 모신게 아닙니다. 불편 하시더라도 잠시만 저희들과 같이 가
주십시요."
"우리가 네놈들과 어디를 간다는 말이냐?"
간신히 정신을 추스린 흥선이 명복을 품에 끌어 안으며 가까스로 말을 하는데,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저기 오고 있습니다."
하더니 다시 몸을 돌리고 하늘을 쳐다 보는 것이 아닌가, 흥선과 명복이 영문을 몰라
하다가 그 가마꾼의 시선을 쫒는데 멀리서 새까만 것이 날아오는데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물건이라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그 물건이 점점 가까히 오면 올
수록 일진광풍이 몰아치면서 수염은 얼굴을 때리고 갓은 날아갈 듯 펄렁거리고 몸은
휘청거리는 것이 정신이 없는데 행여나 귀한 자식놈이 상할까 명복만은 품에 꼭 끌어
안고 있는 흥선에게 아까의 그 가마꾼과 또 한 놈의 가마꾼이 흥선과 명복의 몸을
좌우에서 감싸면서 끌었다.
"이놈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느냐? 우리는 가지 않을련다. 이놈들!"
가마꾼들은 그런 흥선에게 대꾸도 하지 않고,
"승선 완료! 이제 둥지로 돌아간다. 출발하십시요. 기장님"
흥선과 명복을 납치한 이들은 김병학이 보낸 이들이 아니라 '시간 원정단'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의 명령을 받고 흥선과 명복을 모시기 위해 침투했던 특수 수색
대원들이었다. 그리고 처음 흥선에게 김병학이 찾는다고 했던 김병학의 하인은
다름아닌 제주에서 원정단에 합류한 정순남이었다. 원정단이 조선의 편에 서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 세부적인 실행 계획을 수립했는데 다름아닌 흥선과 명복을
이순신함으로 모셔 설득과 무력 시위를 하기로 하고 정순남이 뭍에 나가서 몰래
준비한 가마꾼의 복장을 입고 가마꾼으로 위장을 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한양 도성에 잠입을 하고 작전 도구들을 준비를 하는데 상당한 위험이 있었으나
정순남의 도움으로 무사히 작전을 완수하고 대기하고 있던 UH-60 블랙호크에
탑승했다. 생전 처음 헬리콥터를 타는 흥선과 명복 그리고 정순남은 다리에 힘이
빠지고 후들거리는 것이 금방이라도 바지에 오줌을 지릴 것 같은데 나머지 대원들은
그런 흥선과 명복이 안스럽기만 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봉황비상(鳳凰飛翔)...5
.. 봉황비상(鳳凰飛翔)...5
겨울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을 뿌릴듯 잔뜩 찌푸려 있다. 그럼에도 바다는 잔잔하기
이를데 없다.
이순신함과 삼별초, 청해진함이 정박한 초지진(草芝鎭) 앞 바다도 평온하기만 했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강화도에서는 지금 난리가 났으니, 커다란 회색의 철선 세 척이
떡허니 초지진 앞 바다에 버티고 서 있으니 난리도 그런 난리도 없었다.
강화부(江華府)서 문정(問情)을 하기 위해 파견된 초지첨사(草芝僉使) 이시백(李時伯)
을 비롯한 초지진(草芝鎭)의 아전들을 태운 나룻배가 이순신함을 향해 오고 있었다.
문정관(問情官) 이시백을 비롯한 초지진의 아전들은 이순신과 천지급 보급함들의
위용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문정관 이시백은 지난 임술(壬戌)년에 당대의 세도
김병기(金柄冀)에게 일만냥을 쓰고 이곳 초지첨사로 온 인물이다. 초지첨사로
부임한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아직 원금 일만냥도 회수하지 못하였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이시백은 꼭 죽을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은 심정이다. 어느새 이시백을
태운 나룻배는 제일 앞에 있는 이순신함에 가까이 왔다.
"사또, 어마어마 하게 큽니다요."
"나도 안다. 이놈아!"
"문정을 하셔야지 않겠습니까?"
"누가 소리쳐 불러봐라."
초지첨사 이시백은 원래가 용렬한 위인이라 이런 거함 앞에서 문정을 한다고 소리 칠
배짱이 없었다. 그런 이시백의 모습을 보던 아전 하나가 혀를 끌끌 차면서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소리쳤다.
"들어라! 이 양귀(洋鬼)들아, 여기가 뉘나라의 어느 고장인줄 알고 함부로
배회하느냐!"
간신히 아전이 소리를 지르고 대꾸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머리 하나가 불쑥 밖으로
튀어나오며,
"사다리를 내려 줄 테니 위로 올라오시오."
하면서 기다란 사다리를 내리는 게 아닌가. 이시백을 비롯한 모든 이들은 갑자기
들리는 조선말에 깜짝 놀라며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할지 올라가지 말아야 할지
안절 부절 못하고 있는데, 아까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뭣 하고 있습니까. 어서 올라오십시요."
재차 소리가 들리자 이시백을 비롯한 아전들은 할 수 없이 사다리를 오른다.
"어서오십시요, 승선을 환영합니다. 저는 이 배의 함장인 김종완이라고 합니다."
김종완 소령이 올라온 이들을 바라보며 인사를 하자 어쩔줄 몰라 하던 이시백도 마주
인사한다. 이시백의 눈에 비친 김종완의 모습은 양이(洋異)의 옷을 입고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것이 괜시리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더구나 배의 승무원인 듯한 이들도
하나같이 키가 크고 몸가짐이 정연한 것이 조선의 관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엄을
느끼게 되는데, 상대방의 인사에 답례는 해야겠기에,
"본관은 초지첨사 이시백이라고 하오. 근데 조선말을 할 줄 아시오?"
"다행히 조선말을 할 줄 압니다."
"조선말은 어디서 배우시었소?"
"지금 그걸 묻고 싶어서 이 배에 오르신 겁니까?"
김종완의 비꼬는 듯한 말에 이시백은 낯을 붉히며 무안해 한다. 그러면서도 체면을
차릴려는 모습이 김종완의 눈에는 허세를 부리는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왜 일까.
"험-험, 그래 당신들이 이곳에 정박하여 이렇게 시위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시위라니요... 오해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정박한 이유는 먼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고장났기 때문이며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는 배의 고장이 다 수리되면
이곳을 떠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입니다."
"으음, 그럼 언제쯤이나 모든 수리가 다 끝나 이곳을 떠날 수 있겠소?"
김종완의 부드러운 응대에 짐짓 거드름이 살아나는 이시백이다. 처음의 상갓집 개와
같은 모습은 간데 없고 이제는 제법 관헌의 풍모가 나오지 않는가.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최대한 빠른 시일내로 수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소, 원로에 고향을 떠나 항해를 하다 풍랑을 만났으니 얼마나 고초가 많으시오,
혹여 뭐 필요한 것이라도...?"
"필요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이오?"
"조선의 김치가 맛이 으뜸이라고 들었는데 김치를 저희들에게 좀 보내 주실 수
없습니까?"
"흐음...김치라, 알겠소. 내 곧 아랫것들을 시켜 보내도록 하리다. 그런데 얼마나
보내주면 되겠소?"
"저희 배가 세 척에, 승무원이 일천명이 넘으니 첨사께서 알아서 보내 주시지요."
"그럼 그리하리다. 그럼, 이만 우리는 가 보겠소."
"예, 살펴가십시요..."
"참, 한가지만 더...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행여 상륙을 시도하지는 않겠지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김종완의 대답에 안심을 하고 이시백을 비롯한 아전들은 몸을 돌려 사다리를
내려갈려고 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치는듯 엄청난 굉음이 들리고 하늘에서
시커먼 뭔가가 쉭 날아가면서 배 뒷쪽으로 가는게 보였다. 이시백을 비롯한 아전들이
덜덜 떨면서 정신을 못차리는 모습을 본 김종완이 그들에게 다가가 안심을 시키는데,
"놀라지 마십시요, 저것은 저희들이 보유한 '봉황'이라는 날틀입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으니 놀라지 마십시요."
"허--어..."
"그럼 조심해서 가십시요."
흥선과 명복은 정신이 없었다. 난생 처음 타는 헬리콥터에 정신이 쏙 빠진 것이다.
그래도 흥선은 어린 자식을 안심 시킬려고 명복에게 말을 건다.
"명복아 무서우냐?"
"예, 무섭사옵니다. 아버지."
"나도 무섭단다. 그러나 호랑이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방도가 있다고 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알겠느냐?"
명복은 대답 대신 바닥만 쳐다본다.
흥선은 그런 명복이 안쓰러운듯 어린 명복의 머릴 쓰다듬어 준다.
'흐음, 이놈은 그저 착하기만 하지 의지가 약하니 걱정이구나.'
그러나 흥선은 어린 아들을 끌어안고 자기의 혼란한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천수경(千手經)을 외우기 시작한다.
"정구업 진언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수리수리마하수리수수리사바하."
흥선은 어린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목청을 좀 높인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사만다못다남옴도로도로지미사바하...
나모라다냐다라야야나막알약바로기제새바라야
모지사다바야마하사다바야마하가로니가야
옴살바바예수다라나가라야다사명나막가린다바..."
불경(佛經)은 외는 그 자체로 뜻이 있다. 음률적인 송경(誦經)에 몰입하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청정해지기 때문에 불도(佛徒)건 아니건 누구나 마음이 외롭고
답답할 때, 어려울 때 외우면 좋다.
흥선은 비록 왕가의 자제였지만 어려서 부터 절집에 출입이 잦아선지 불교에 큰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천수경은 관음보살(觀音菩薩)이 부처의 허락을 얻어 설한 경전으로 이 경을
일심으로 송경하면 일체의 업장이 소멸되고 귀신이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여 흥선이
즐겨 송경하는 경이다.
흥선이 한참 천수경을 외우고 있는데 명복이 갑자기 앞을-조종석 쪽- 보면서 외친다.
"아버지! 저길 보세요. 배에요, 아주 큰 배가 세 척이나 있어요."
흥선이 송경을 멈추고 명복의 말대로 앞을 보니 커다란 철선이 세 척이나 물위에
떠있는 것이 아닌가. 흥선은 생각한다.
'오늘이 무슨 날이기에 이토록 놀라운 일이 중첩한단 말인가.'
흥선과 명복의 놀람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블랙 호크는 이순신함의 헬기 갑판에
착함을 하는데...
문이 옃으로 드르륵 열리더니 흥선과 명복을 가마꾼들이 부축하며 내린다. 블랙
호크에서 내린 흥선이 정신을 바짝 차리기로 마음먹고 허리를 꼿꼿히 세우며 주위를
쓰윽 둘러 보는데 일단의 사람들이 흥선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다가오며,
"어서 오십시요. 흥선군 대감. 혹시 놀래지는 않으셨습니까?"
흥선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뒤에 도열한 일단의 사람들이 갑자기,
"흥선군 대감과 작은 도련님께 경례!"
"충--성."
흥선은 이런 식의 인사를 처음 받아 보는 지라 얼떨떨한데, 처음 말을 건넸던 사람이
다시 말한다.
"이쪽으로 오십시요. 우선 안으로 들어 가겠습니다. 절 따라 오십시요."
흥선과 명복은 그 사람을 따라서 배안으로 들어 갔다. 배안의 통로는 의외로 좁은
편이라 장정 두
사람이 어깨를 마주하고 걸으면 딱 맞을 것 같은데 벽에는 희안한 관이며 손잡이
같은 것이 쭈욱 늘어진게 마냥 신기한 모습이다. 일행은 이리저리 꾸불꾸불 한
통로를 한참을 가다가 드디어 한 방 앞에 도착하여 들어갔다.
커다란 그 방에는 십여명의 사람들이 흥선과 명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으로 앉으십시요."
흥선과 명복이 자리에 앉자 맨 처음의 사람이 다시 말을 한다.
"먼저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제가 이 함대를 지휘하고 있는 함대 사령관 김영훈
소령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이 함의 함장과 사관들이고, 제 참모들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저희 함대의 민간 자문 위원들이십니다."
김영훈의 말이 떨어지자 이쪽 저쪽에서 인사를 한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요? 그리고 왜 날 이리 끌고 온 것이오?"
"죄송합니다. 대감. 혹여 저희 대원들이 무례를 저질렀다면 용서해 주십시요. 저희는
미래에서 왔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곘지만 저희는 지금으로부터 약 140년 후의
조선에서 왔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이렇게 대감과 작은 도련님을 모신 이유는 귀순을
하기 위해서 입니다."
흥선은 이 사람들이 실성한 무리들이 아닌가 싶었다. 난데없이 납치를 해서 한다는
말이 미래에서 왔다니 그리고 귀순이라니... 어안이 벙벙한 흥선이다.
"이보시오. 그 말을 날더러 믿으라는 말이오, 그리고 귀순이라니 그런 일을 왜
나에게 한다는 말이오. 엄연히 우리 조선에게는 국법이 있고 조정이 있소. 국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정에서 할 일을 나에게 말을 하면 무슨 소용이 있소?"
"대감! 오늘이 몇 일이옵니까?"
"지금 오늘이 몇 일이냐 물으셨소?"
"그렇습니다, 대감."
"작년이 임술년 이었으니까 올해는 계해년(癸亥年)이고, 오늘은 섣달 초 이틀이
아니요?"
"오늘이 계해년 섣달 초 이틀이 맞사옵니까?"
"그렇소."
"그럼 제 말을 잘 들으십시요, 대감. 앞으로 엿새 후에 지금의 임금이 승하하시게
됩니다. 정확히는 계해년 섣달 초 여드레에 승하하시게 됩니다."
"이-이-이런, 무슨 망발을..."
"대감, 믿으셔야 하옵니다. 이걸 보십시요."
하면서 김영훈이 흥선에게 하나의 책을 보여 주는데,
그 책은 흥선이 깜짝 놀라고도 남음이 있는데, 바로 조선왕조 실록이라고 쓰여
있었다.
한편 흥선과 명복이 이순신함에서 자칭 미래에서 왔다는 이들과 입씨름을 하는 동안
서울 장안은 온통 벌집을 쑤셔 놓은 듯 했다. 갑자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강화부에서 만만찮은 비보(飛報)가 전마(戰馬)의 말잔등에 얹혀 왔기 때문이다.
영종첨사(永宗僉使) 심인규(沈仁奎)가 보낸 전령이 이날 석양에 도성에 당도 했기
때문이었다. 당대의 내노라하는 고관들의 혼을 쏙 빼놓는 소식이었다.
"아뢰오, 영종첨사 심인규의 치보에 의하면 경기도 남양만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양선 세 척이 나타났는데 미처 문정을 하기도 전에 강화부쪽으로 올라갔다고
하옵니다."
좌중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모두의 시선은 영의정(領議政) 김좌근(金左根)과 그의
아들 김병기에게 모아졌다.
'어-허 큰일 이구나.'
김좌근은 속으로는 낭패했으나 여러 중신들의 앞이라 내색하지 않으며,
"바다에 뜬 이양선 세 척에 조정의 녹을 먹는 영종첨사란 자가 그토록 당황망조
한다더냐?"
말은 그렇게 했으나 방비할 대책이 없는게 사실이었다. 때때로 한 두 척씩 길을 잃고
또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무역을 한다는 명목으로 이양선이 온 일이 없지 않으나
그동안 아무일도 없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세 척이나 무리지어 나타난 전레는 없었다.
이날 조정은 발칵 뒤집어 졌다.
여의정 김좌근과 김병기는 창덕궁(昌德宮) 중희당으로 들어가 앉아 중신들을
지휘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서로가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초지첨사
이시백이 보낸 전령이 또 도착했다. 조정은 또 다시 아연 긴장하였으나 이시백의
문정에 의하면 저들은 이양선 이기는
하되 선장이라는 자는 조선말에 능숙하고 생김새도 영락없는 조선 사람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배가 풍랑에 고장을 일으켜 수리를 하느라 잠시 정박한 것이며 수리가
끝나는데로 떠날 것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저들이 조선의 김치를 원하여 저들의
부탁을 들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백관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가뜩이나
나라 살림은 피폐해만 갔고 지난 임술년에 삼남에서 발생한 민란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았기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심정이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조정에서는 저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고
있었는데 다행히
저들이 초지첨사가 보낸 김치만 고맙게 받았고 별 움직임이 없다는 기별에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흥선의 처(妻)이자 명복의 어미인 민씨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의 표본이다. 지아비가
무엇을 하는지 신경이 쓰이지만 내색을 하지 않았고 가끔씩 들리는 흥선의 기행에도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그뿐이가. 흥선이 어느 기방의 누구와 정이 났다더라,
어제는 어느 투전판에서 가진 돈을 몽땅 쏟아 부었다더라 하는 얘기가 들려도 모르는
척 했다. 민씨는 그런 여자였다.
그런 민씨가 지금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나흘전에 대제학 김병학 대감이 보낸
가마를 타고 작은 아들 명복과 나간 뒤로는 종무소식이었다. 하인을 보내 김병학
대감에게 확인을 한 결과 그런
일이 없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하늘이 다 노래졌었다.
명복의 어릴적 유모인 박씨가 그런 민씨를 열심히 위로하고 있다.
'마님, 걱정하지 마십시요. 설마 무슨 일이 있을라구요. 또 어디 가셔서 노시는
게지요."
"이 사람아, 노신다면 혼자 노시지 왜 명복이까지 같이 소식이 없어, 그리고 분명
대제학 대감댁에서는 가마를 보낸 적이 없다고 하질 안나."
"에이, 아무리 별일이야 있을려구요..."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집에 낫알이 다 떨어진 것을 아시는 양반이 그래 나흘 씩이나
안 들어오시다니...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네."
"하긴 그것도 그렇군요. 벌써 나흘째인데..."
유모 박씨도 근심어린 시선으로 중문께에다 자꾸 시선을 두었다.
"사람을 놓아 좀 찾아 보시지 않구요?"
"찾아봤지, 김서방이 천하장안과 함께 장안의 기방이란 기방은 다 뒤져 봤고 가실
만한 곳은 죄 훏어보았지만 다 안오셨다는게야."
근심과 원망이 뒤섞인 한탄이었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두 여인네가 흥선과
명복을 걱정하며 한숨을 쉬고 있는데,
"마님! 마님, 대감께서 돌아 오십니다요."
청지기 김응원이 중문밖에서 득달같이 달려들면서 말을 한다.
흥선이 명복의 손을 잡고 중문을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뒤로 건장한, 낯모를
젊은이들 서넛이 들어 오고 있었다.
명복이 흥선의 손을 놓고 어머니인 민씨의 앞에 넢죽 절을 한다. 그런 명복을 보며
흥선이,
"부인, 이제 왔소. 내 좀 피곤하구려."하며 사랑으로 발걸음을 옮기는게 아닌가.
'무정한 양반...'
민씨의 이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흥선은 김응원과 천하장안을 부른다.
"김서방, 자네는 지금 영상 대감댁에 가서 대감의 조복(朝服)과 평교자(平轎子) 좀
빌려 달라고 하게. 내가 빌려 달라면 빌려 주실게야."
"그리고 네놈들은 즉시 이호준(李鎬俊)의 집으로 가서 이호준과 조성하(趙成夏)를
불러주게. 그리고 나를 따라온 분들에게 별채의 방 하나를 내어주고..."
청지기 김응원과 천하장안이 뭐라 인사도 여쭙기 전에 전광석화처럼 영을 내리는
흥선이다.
이호준과 흥선은 사돈지간이다. 흥선의 서녀(庶女)를 이호준의 서장자(庶長子)인
윤용에게 시집 보낸 것이다. 그리고 조성하는 이호준의 사위이자 대왕대비 조씨의
친정 조카였다. 이호준은 지금 궁궐에서 말을 관리하는 사복시(司僕侍)의 정(正)을
맞고 있었고, 조성하는 대왕대비 조씨의 승후관(承候官)으로 조씨를 모시고 있는
이다. 말하자면 조씨의 개인 비서랄까. 신년에 대왕대비 조씨에게 새배를 하로 갈
때도 조성하가 다리를 놔 주었었고 그때 이미 김좌근의 조복을 빌려 입은 경험이
있는 흥선이다. 흥선의 정확한 봉작(封爵)은 현록대부(顯祿大夫) 흥선군이다. 당당한
조선의 정 일품 관작이며 봉군의 신분이었다. 아무리 흥선이 건달에 한량이라도
입궐할 때 만은 조복에 평교자를 타야만 하는 것이다.
한참후 조성하가 들어왔다.
"대감,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래, 자네 장인은 오지 않으셨는가?"
"장인께서는 이미 입궐하셔서..."
"알았네, 그건 그렇고 요즘 주상은 어떠신가?"
"그것 때문에 저를 보자셨습니까? 대감도 잘 아시잖습니까? 연일연야(連日連夜) 열락(
熱樂)에 빠져 계신걸..."
"으-음, 그래. 그럼 자네는 지금 즉시 대왕대비전에 가서 이 흥선이 좀 뵙잔다고
전하시게."
"오늘 말이옵니까?"
"왜? 아니되겠는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그럼 됐네. 가보시게."
"알겟습니다."
조성하가 흥선의 명을 받고 나간 사이 김응원이 와서 김좌근의 조복과 평교자를 빌려
대령했다.
당대 조선의 영의정 김좌근의 종자들은 흥선이 대문을 나서는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들은 조복 차림의 흥선을 본 적이 일찌기 없었기 때문이다.
흥선이라면 으례껏 다 떨어진 갓에 초췌한 몰골에 술에 쩌든 불콰한 얼굴,
불량스러운 걸음이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대문 밖에 홀연히 나타난
흥선의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작은 키야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흥선은 난데 없는 금관조복(金冠朝服)의 위엄을 갖춘 당상관의 모습이다.
속에는 청삼(靑衫)을 받쳐 입고, 배에는 붉은 색의 상(裳)을 두르고, 겉옷으로 초의(
硝衣), 무릎에는 무릎이 편안하도록 하는 폐슬(蔽膝), 등에는 후수(後綏), 허리에는
코뿔소 뿔로 만든 서대(犀帶), 왼쪽 옆구리엔 패옥(佩玉)에다가 신은 흑피화(黑皮靴)
였다. 어디 그뿐인가, 머리에는 정일품의 관헌을 표시하는 금관이 씌워져 있었고
검은 수염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그런 흥선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으며 빛나는 두 눈에는 패기(覇氣)
와 함께 위엄이 서려 있었다. 의젓하게 걷는 걸음은 당당한 왕자의 걸음이었다.
누가 봐도 눈이 돌아갈 것 같은 당당한 풍모였다. 원래 흥선은 영조(英祖)의
고손이며 군(君)에 봉작된 당당한 조선의 왕자였다.
흥선은 가슴을 펴고 교자에 올랐다. 흥선은 두 눈을 감았다. 가슴에는 만감이 어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흥선은 지난 나흘 동안 이순신함에 머물던 때를 생각했다.
처음에는 실성한 무리라고 생각했으나 그들이 내민 한장의 사진이라는 물건이 흥선의
마음을 잡았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늙은 흥선이 조복을 입고 있는
모습이었다. 늙고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 후 그들의 경과와 계획,그리고 앞으로의 조선의 운명을 들었을 때
역시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일축했었다. 조선이 곧 망한다니, 왜놈들의 식민지가 된다느니 하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들의 소리에 현혹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자신의 작은 아들인 명복의 핏줄들이
왜놈들에게 끌려가 왜놈 계집과 혼인을 해서 결국 그 씨가 남아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흥선은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이기(異器)들은 어린
명복을, 그들이 보여준 화력 시범은 흥선의 마음을 빼았었다. 그런데도 흥선은
그들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명복의 자식들의 얘기를 듣는 순간 흥선은 한낮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는 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을 돌렸다. 물론 좀더
그들을 지켜 보아야겠지만...
흥선이 이런 생각에 빠져 든 동안 교자는 어느새 대궐에 도착했다. 승후관 조성하가
마중 나왔다.
"이제 오십니까, 대감."
"음, 자넨가."
"가시지요, 대왕대비 마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가지."
"교자는 어떻게 돌려 보낼까요?"
"기다리라 이르게."
벌써 몇 해가 지났던가. 이 궁궐에서 벼슬아치로 궁궐을 돌보던 때가 말이다. 모든
전각들이 낯이
익고 겨울의 풍광도 그대로였다. 흥선은 조대비를 보기전에 주상을 먼저 보고 싶었다.
그런 흥선의 걸음이 자연스레 대조전(大造殿)으로 향했다.
"대감, 마마께서 기다리십니다.."
"주상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싶네."
"대비마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자넨 지금 주상의 승후방(承候房)으로 가서 연통이나 해보게."
조성하는 마지 못해 승후방엘 다녀오더니 흥선에게,
"전하께선 미열이 있으셔서 일찍 자리에 드셨다고 합니다."
"그래?"
그들은 곧바로 조대비가 기거하는 용동궁(龍洞宮)에 도착했다.
조대비의 승후관인 조성하가 아뢴다.
"흥선군 대감께서 대왕대비마마께 문후드리려고 들었습니다."
"어서 듭시라 해라."
안에서 조대비의 말이 들리자 흥선이 방에 들었다.
"대왕대비마마, 성수무강 하시옵니까?"
"어서오세요, 흥선군 대감."
오십대의 조대비는 곱게 늙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조대비도 흥선과 같은 불우한 처지였다. 왕손으로써 흥선의 불우한
처지는 말항 것도
없다. 그런 흥선도 대왕대비 조씨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처지는
비슷했다.
어느모로 보나 대왕대비 조씨는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다. 그러나 누가 조씨에게
어른 대접을 하는가. 조씨는 허수아비였다. 꽃다운 나이에 효명세자(孝明世子)와
사별하였다. 그때 그녀의 나이 스물 셋. 효명세자는 죽어 익종(翼宗)으로 추존되었다.
당연히 왕비가 되었을 조씨는 과부가 되어 지금까지 궁정 뒤 뜰에 물러 앉아 한
많은 세월을 살아왔다. 그녀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런 아들도 할아버지인
순조 한테로 입승(入承)-대를 잊기 위해 들이는 양자와 같음-되어 임금으로 등극했다.
바로 헌종이다. 조씨는 더욱 외로웠다. 자신의 아들이기는 했지만 세계(世系)
상으로는 남이 되었다. 그런 헌종도 후사가 없이 세상을 버렸다. 헌종의 왕비는 안동
김씨 김조은의 딸이다.
그리고 안동 김씨는 농간을 부려 촌 무지렁이인 지금의 왕을 앉힌다. 당연히 왕비도
안동 김씨다. 김문근의 딸이었다. 시어머니인 순조비 김씨부터 삼대가 안동 김씨다.
조씨는 그저 늙어 갈 뿐이었다.
순조비 김씨에게 조대비는 며느리 노릇만 했다. 그러나 순조비가 죽고 없는 지금까지
헌종비 김씨나 지금의 중전 김씨에게서 시어머니 대접을 받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안동 김씨의 세상이었다.
조대비는 오랜만에 흥선과 마주 앉으니 친 오누이의 정이 느껴진다. 원래 흥선은
조씨에게 육촌 시동생뻘이다. 그리고 흥선은 이하전이 죽고 없는 지금 유일하게
가까운 종친이다.
"성하는 잠시 나가 있으라!"
흥선과 단 둘이 있게 되자 조대비가 흥선에게 묻는다.
"어인일로 이렇게 급하게 찾아 오시었소?"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아무 준비도 없이 있다가 또 당하면 어쩌나 싶어서..."
흥선은 조대비의 의중을 살피느라 일부러 말을 흐린다.
조대빈 아무말도 없이 앞에 있는 나주반(羅州盤)에 놓인 약식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그래,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조대비의 힘없는 말에 흥선은 조바심이 난다.
"지금 주상의 몸은 쇄약일로에 있고 후사는 없으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지..."
"성하에게 자주 들엇소. 대감의 둘째 도령이 영특하다면서요?"
"가난한 살림일 망정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키울려고 했습니다."
"내 익히 알고 있소만 한가지 법도에 걸리는게 있어서요..."
"종실의 최고 어른이신 마마의 처지에 법도에 걸릴게 무에 있사옵니까?"
"법도상 살아있는 대원군이라는 점이 논란의 소지가 될듯 싶소."
까다로운 일 임에는 틀림없었다. 조선의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 아닌가? 또 다시 지난
신년에 세배를 왔을때의 상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난 설에 흥선이 조대비에게
세배를 왔을때도 조대비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흥선은 여기서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살아있는 대원군, 일찌기 전례에 없던 일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좋지 않사옵니까?
아들인 임금과 마마를 보필할 살아있는 대원군이 있다면 어지러운 이 나라를
바로잡는데 더 없이 좋은 일이 아니옵니까? 마마, 전례가 없다면 전례를 만들면
되옵니다."
"그건 그렇기도 하오만..."
"마마! 마마의 결단만이 도탄에 빠진 왕실과 백성들을 구할 수 있사옵니다. 결단이
필요합니다.
마마."
"그럴까요?"
"그렇습니다. 마마."
"내 대감의 뜻에 따르겠소."
"참으로 지당하신 결단이옵니다. 마마, 제가 듣기로는 주상께서 연이은 열락에 몸이
많이 상하신 것으로 들었사옵니다."
"왜 아니 그렇소. 지게 작대기나 두드리던 촌 무지렁이를 데려다 놓고 온갖 열락과
황음으로 녹여 놨으니 주상의 몸이 온전할리 있겠소?"
"마마, 노파심에서 말씀드립니다. 행여 주상에게 무슨 일이 닥치면 반드시 옥새를
먼저 간수 하시옵소서."
"옥새요?"
"그렇사옵니다. 마마, 저들도 주상에게 일이 생긴다면 옥새를 먼저 노릴 것입니다.
대비 김씨와 중전 김씨를 잊지 마십시오. 만약 옥새가 저들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우리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이옵니다. 명심 하시옵소서."
"내 그리하리다."
흥선은 대비전에서 물러 나왔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잘돼야 할텐데...'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신왕등극(新王登極)...1
.. 흥선집권(興宣執權)...1
겨울 바람은 차갑고 스산했으나 양지바른 곳의 햇볕은 따사롭기만 했다.
관상감재(觀象監峴)는 구름재(雲峴).
서쪽 하늘에 놀이 지는 서울 장안에서도 관상감재는 유독 붉은 기운이 감도는 듯
했다.
관상감재도 구름재도 흥선의 집(興宣邸)을 가르키는 말, 담장은 길다랗고 솟을
대문은 높기만 했지만, 집과 계집은 치장을 하지 않으면 흐르는 세월보다도 훨씬 더
빨리 늙는 것, 흥선의 집이 그랬다. 흥선의 집은 명색이 궁(宮)이었지만 솟을 대문은
칠을 하지 못하여 벗겨진 곳 천지고, 길다란 담장은 무너진 곳 투성이다. 용마루엔
붉은 흙이 드러나 있고, 기왓장 사이에는 이름모를 잡초가 차가운 겨울 바람에
시들어 가고 있다. 그 용마루에 저녁 놀을 비낀 붉은 햇빛이 뒹굴고 있다.
흥선은 대궐에서 나와 구름재에 돌아왔다. 김죄근에게 빌려 입은 조복 차림으로
사랑에 앉자 있었다. 홀로 사랑에 앉아 있는 흥선은 기분이 몹시 좋았다.
'지금쯤 나의 오늘 행적이 김좌근에게 낱낱이 보고가 됐으렸다...'
흥선은 자신의 행적이 김좌근에게 보고가 되는 것은 별로 신경에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김좌근을 비롯한 김씨 일파를 앞으로 집권하면 어떻게 쳐 죽일까 고민이었다.
"밖에 누구 없느냐?"
"예, 대감,"
김응원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한다.
"자네 별체의 그 손님들을 좀 모셔오게."
"손님들 이시라면..."
"아까 낮에 나와 같이 왔던 분들 말이다."
"예. 대감."
흥선은 이순신함에서 자신을 따라왔던 이들을 부른다.
"대감, 모셔왔습니다."
"안으로 모셔라. 그리고 일체 잡인의 출입을 금하도록 하여라."
"예, 대감."
원정단 일행들이 들어오자 흥선은 자리를 권한다.
"대감, 찾으셨습니까?"
"어서들 오시게. 그래,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가?"
"불편한 점이 있을리 없지요."
이순신함의 통신 사관인 장현덕 대위가 일행을 대표해 대답을 한다. 원래 흥선은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을 청했으나 원정단의 사령관이 모든 것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흥선을 따라 도성으로 잠입을 한다는데 모든 원정단 수뇌부가 반대를 하는
바람에 대표로 장현덕 대위와 몇 명의 대원들이 따라왔다. 다른 대원들은 처음을
흥선을 납치할 때 한 번 도성에 잠입한 경험이 있기에 장대위의 경호겸 겸사겸사해서
따라왔다.
"가셨던 일은 잘 되셨습니까?
"다행히 조대비의 다짐을 받을 수 있었네. 처음에는 조대비도 주저하더니 내가 밀어
부치니 다짐을 해 주더군."
"잘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이제 이틀이옵니다. 모래 아침에는 세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부디 그래야지... 나는 자네들만 믿겠네."
"걱정하지 마십시요. 그리고 작은 도련님의 등극시에는 사령관께서 친히 수뇌부와
특수 수색대를 이끌고 봉황을 타고 나타나실 것입니다."
"봉황이라면 이번에 내가 탔던 그 봉황말인가?"
흥선은 봉황이라는 말을 유난히 좋아했다. 박유붕의 예언에 시커먼 봉황을 타라는
대목이 있는데 흥선이 마음을 돌려 원정단을 받아 들인 이면에는 박유붕의 말도
상당한 작용을 했다.
"대감이 타셨던 봉황말고도 더 큰 봉황도 있습니다. 대감을 모실때는 이목이 두려워
출동하지 않았으나 작은 도련님께서 등극하시는 날에는 저희가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벤트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죄송합니다. 이벤트라는 말은 원래 영어인데 자주 쓰다보니... 주의 하겠습니다.
이벤트란 일종의 사람을 놀래키는 행사를 말합니다."
"사람을 놀래키는 행사?"
"아직 조선에는 우리의 정체를 아는 이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대감께서 집권하신다
하더라도 저희를 반대하는 조정의 여론이 만만치 않을 수 있습니다. 조정 중신들의
여론이야 대감께서 무마해 주시면 돼겠지만 일반 백성들의 호의를 받기 위해서
저희가 조그만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대감께서도 나중에 보시면 흡족하실 겁니다."
"그래? 알았네. 그 문제는 자네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고, 내 자네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이렇게 자네를 청했네."
"무슨 부탁입니까?"
"내 김대장에게 듣기론 자네가 그 뭐시냐 해군 사관학굔가 뭔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였고 또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해박하다 들었네. 사실인가?"
"과찬이십니다, 대감."
"우리 명복이가 등극하면 자네가 명복이의 스승이 되어 주었으면 하네. 어떤가?
다행히 우리 명복이가 자네를 잘 따르지 않는가."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됐네. 맡아 주시게. 부디 엄하게 명복이를 훈육(訓育)하여 주시게. 옛부터
조선의 임금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다라고 하였네. 무슨 말이냐
하면 임금의 자식으로 태어나 왕세자로 책봉이 된다고 해서 아무나 임금 노릇을 잘할
수는 없었다는 말일세. 나의 고조 할아버지셨던 영조대왕(英祖大王)께서는 당시의
원손(元孫)-훗날의 정조-께서 네 살때 '신체발부수지부모불감(身體髮膚受之父母不敢)'
을 막힘없이 외우시고 쓰시며 부모 두 글자를 다른 글자와 달리 크게 쓰심을 보고
감격해서 눈물을 흘리시며 "하늘이 우리 조선에게 복을 주시려고..."하셨다 하네.
그러면서 원손의 스승인 남유용을 불러 호피(虎皮) 한 벌을 내리면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낮추어 말씀하시었는데,
“지금 경에게 이것을 주는 것은 원손을 위해 ‘호랑이 가죽을 깔고 앉은 엄한
스승이 되라’는 뜻이다. 경을 포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나라 종묘사직을 위한
것이다.” 라고 하셨다네. 그런 엄한 훈육을 받으셨던 원손께서는 훗날 등극하시어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훌륭한 일들을 하셨지. 그분이 누구신지 아시겠는가?"
"정조대왕(正祖大王) 아니시옵니까?"
"바로 그렇네. 그분이 내 할아버지시지."
조선의 왕세자에 대한 훈육은 혹독했다. 조선 왕세자 교육의 핵심은 한 나라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한 조기교육이자 엘리트교육 이었다. 아침 점심 저녁 수업에
야간학습까지 꽉 채워져 있어 학업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도락에 빠졌다가는
양녕대군처럼 폐위를 당하고 마는 스파르타식 훈련과정이기도 했다. 교육목표는
왕세자를 강하고 지혜로운 왕으로 단련시키는 것. 해뜨기 전부터 심야까지 만 가지나
되는 일(만기·萬機·왕의 일과를 일컫는 말)을 처리해야 하는 동시에 이론을
치켜들어 왕권에 도전하는 유학자 신료들을 제압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하들은 빈번히 “요임금의 덕을 알기까지는 학문을 중단하지 말라”고 왕세자와
왕에게 지적 압력을 가했다.
원자들은 늦어도 네댓 살이면 원자교육을 책임지는 보양청(輔養廳)에 들어 회당 3각(
45분)씩의 수업을 받으며 ‘천자문’과 ‘소학’ 등을 공부했다. 왕세자로 책봉되고
열한 살이 넘으면 매일의 수업은 물론 매월 두세 차례 자신을 가르치는 수십명의
신하 앞에서 배운 바를 전부 외운 뒤 평가를 받는 회강(會講)도 치러내야 했다. 도
한가지, 조선왕조 왕세자 교육의 특징은 아버지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딸은
어머니가, 아들은 아버지가 가르친다는 유교이념에 따라 부왕이 교과목을 정하는
일부터 교사진 선정, 수업시간 조정에까지 개입했다. 때로 신하들과 학부모인 부왕이
교육방식을 두고 대립하는 일도 있었다. 핵심 교과목은 유교경전과 역사지만 평소
생활을 통한 덕성교육, 예체능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강조되는 덕목은 효(孝). 왕세자는 아침저녁 국왕의 수라상을 살피는 ‘시선(視膳)
’과 부모의 약을 먼저 맛보는 ‘시탕(侍湯)’을 해야 했다. 군 통수권자로서 활쏘기,
말 타기에도 일정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야 했다.
자신의 몸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도 장래 왕이 익혀야 할 중요 덕목이었다.
왕세자가 편식하거나 비만해지면 이를 관리하지 못한 내시들이 문책당해야 했다.
특히 아침을 거르면 학습 진도가 떨어진다 해서 내시들이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조선조 왕세자교육 코스의 단연 우등생은 정조였다. 돌 지나면서부터 붓과 먹을
가지고 놀던 정조는 대개 사대부가 평생 20∼30권의 문집을 만들어낼 때 184권짜리
개인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를 써냈다. 정조의 성취 뒤에는, 손자를 위해 손수
‘어제조훈(御製祖訓)’이라는 교재까지 만들며 뒷바라지했던 극성 할아버지 영조가
있었다.
"원래 아들의 교육은 아비인 내가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그동안 내 처지가 불우하여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하였고, 내가 집권을 하게 된다면 더더욱 소흘히 할게 아닌가.
내가 이번에 자네들과 같이 있는 동안 느낀 것이 참 많네. 부디 자네들이 알고있는
역사속의 내 아들처럼 심약하고 지조없는 임금이 아닌 제왕의 풍모가 절로 우러
나오는 그런 임금으로 키워주게."
"하오나 대감. 저를 비롯한 우리 대원들은 모두가 한문을 잘모르옵니다."
"그점은 걱정 마시게. 기존의 학문은 따로 스승을 두어 기르치게 할 것이고, 자네는
자네가 알고 있는 학문, 요컨데 신학문을 가르치기만 하면 돼네."
"알겠사옵니다."
"그리고, 저 안동 김문은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대감, 대감께서 저들에게 받은 수모와 고초는 저희도 익히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한 나라를 경영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한 법입니다. 무엇보다도
풍부한 자금과 우수한 인재들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감께서는 그 두 가지중 하나도
제대로 가지지 못하였사옵니다. 비록 저희들이 대감의 힘이 되어드린다고는 하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그런 마당에 무턱대고 저들을 치신다면 저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대감께서 얻는 것도 적을 것입니다. 저희 사령관께서는 대감을 따라 떠나는
저에게 대감께서 개인적인 복수심으로 대국을 망치시지나 않을까 걱정 하였사옵니다.
대감, 큰 틀을 짜시고 대국적인 견지에서 아량을 베푸시는 것도 대감의 덕에 누가
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국운융성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서 덕을 베푸시옵소서...
주제넘는 말 죄송하옵니다. 대감. 자세한 말씀은 저희 사령관께서 도성에 오시면
나누시도록 하십시오."
"자네가 죄송할게 무에 있는가?"
흥선은 대범하게 말을 하면서도 입맛이 썼다.
안동 김씨 세도 60년 동안 조선은 썩을대로 썩었다. 그리고 안동 김씨의 눈 밖에 난
사람은 그가 설령 왕실의 종친이라도 가만 두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이도(吏道)의
타락은 극심했다. 작은 고을의 포졸까지도 백성들의 돈을 울궈내느라 정신이 없었고
매관매직으로 상민 고을의 수령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일자무식이라도 돈만
있으면 군수니 현감이니 부사니 하는 관직에 오르는 것도
쉬웠다. 한 번은 이런일도 있었다. 아마도 안동 김씨 세도 60년내의 최고의
희극일진저,
함경도 북청(北靑)이 고향인 황유복이는 원래가 물장수로 돈을 벌었는데
일자무식이었다. 그런 그가 김좌근의 애첩인 나합(羅閤)에게 돈을 주고 북청군수로
부임을 하게 되었는데 돈으로 산 관직이라도 임금에게 임관의 예식을 치러야만 했다.
영의정 김좌근은 직책상 그를 데리고 임금앞에 섰는데, 곡배(曲拜)는 연습한대로
했다. 그런데 황유복은 절만 까다롭게 하고 나가는게 예가 아니듯 싶었는지 목청을
가다듬고 임금에게 의젓하게 한마디 했다.
"첨 뵙겠수다. 나으리가 임금이슈?"
배석했던 중신들은 혼비백산하고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런 모습을 본 황유복은 자신의 인사가 의젓해서 모두들 감탄해서 조용한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면서 긴장이 풀어지면서 한마디를 덧 붙이는데,
"어찌 임금이 나보다도 젊수다레, 나로 말하자면 북청에서 물장수를 하다가 이번에
군수가 되어 고향으로 부임하게 된 황유복이라는 사람이오."
모두들 아연실색하고 어떤 대감은 터지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기까지 했다.
좌중을 둘러본 황유복이 어떤 대감이 웃음을 터뜨리자 자신이 잘한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한마디를 더 했는데,
"이번에 참 고맙수다레. 아무것도 모르는 짚신을...아니 신발을...아니 신(臣)을 내
고향 원님이 되게 해주시고... 암튼 참 고맙수다레."
중신들의 분노한 시선이 김좌근에게 쏠리는데, 신(臣)이란 말을 기억 못해 짚신을,
신발을 해댄
황유복에게 보다는 그런 황유복에게 벼슬자리를 판 김좌근에 대한 분노였다. 그런데
더욱 가관은,
"나는, 아니 과인은 거짓말을 싫어하오. 경이 부디 명관이 되어 고향을 잘 다스리기
바라오."
임금은 더했다. 음성은 덜렸고, 나는 아니 과인은 하며 말을 더듬었다.
좌중의 무안함은 극에 달했다. 다시 황유복이 한마디 더했다.
"그럼, 고맙수다레, 임금나으리."
하며 의기양양하게 대전을 나왔다고 한다. 강화도 촌 무지렁이 임금이나 물장수
군수나 다 김씨네가 앉힌 사람들이다. 앞에서 김좌근에게 애첩이 있다고 했는데 바로
나주가 고향인 양씨였다. 세간의 사람들은 양씨 앞에서 양씨를 부를 때 나주 합하
또는 나주 마마라고 불렀다. 마마라는 호칭이 아무에게나 붙는 호칭인가. 그리고
합하라는 호칭도 아무에게나 붙은 호칭인가. 마마는 왕실의 척족중에서 옹주 이상의
내명부에게 붙이는 경칭이고 합하는 정일품 정승 반열의 대신에게 붙이는 경칭이
아닌가. 이런 정도니, 말로는 차마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이도가 문란했다.
이도의 폐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흥선이었다. 흥선은 생각한다.
'이들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참새도 죽을때는 짹하고 죽는 다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그리고 김씨 집안에도 쓸만한 인물이 있지 않은가. 병학이나 병국,
병기도 쓸만하지...'
흥선이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날이 저물고 있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신왕등극(新王登極)...2
.. 흥선집권(興宣執權)...2
날씨는 잔뜩 찌푸려 있었다. 그렇게 춥지는 않았지만 아침부터 궂었다. 바람도 꽤나
거셌다.
아침부터 흥선의 집 용마루에는 까치가 앉아 까-악 까-악 하고 울었다. 까치가
용마루에 앉아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던가.
지난 이틀 동안 흥선은 밤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초조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도 잠을 못 이루다 새벽녁에야 간신히 잠이 들었던 흥선이다. 늦게 잠이든
때문인지 흥선은 정오가 한참 지난 시점에야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대감! 대감!"
"들어오너라."
장순규의 숨 넘어 갈듯한 소리에 흥선은 이미 때가 왔음을 느낀다. 설마 했었다.
원정단에게 들어서 앞으로의 일들을 알고는 있었지만 설마 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
설마가 사실이라는 것을 흥선은
느낀다. 사실 지난 이틀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장순규를 비롯한 천하장안은
흥선의 명으로 대궐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런 장순규가 왔다.
"무슨 일이냐?"
"대감, 국상이 났다고 합니다."
"국상? 무슨 국상?"
"상감이 승하하셨다고 합니다."
"천아성은 울렸느냐?"
"천아성이 뭡니까요?"
"에-잇, 쓸모없는..."
천아성은 나라의 국상이 생기면 울리는 나팔소리를 말한다. 흥선이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김응원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감, 이호준 나으리께서 오셨습니다."
"뫼시어라."
이호준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말부터 한다.
"대감, 국상이 났습니다."
"천아성은 들으셨소?"
"제 두 귀로 똑똑히 들었습니다."
흔히 호랑이의 눈에서 불이 난다는 표현을 한다. 지금 흥선의 눈에서 빛나는 광채를
호랑이 눈에 비유하면 맞을까? 두 눈은 그렇게 빛났으나 어이없게도 흥선은 주저
앉는다. 그러더니,
"아이고 상감! 불쌍한 상감! 불쌍하게 가셨구려..."
한참을 통곡하더니 이호준에게 묻는다.
"성하의 기별이 왔소?"
이호준이 뭐라 대답도 하기전에,
"대궐의 동정은 어떻소?"
"호위영의 군사들이 대궐 주변을 철통같이 에워 싸고 순라꾼들이 엄히 경계하고
있습니다."
"돈화문(敦化門)은 어떻소?"
"금호문(金虎門)만 열려 있고 중신들의 교자가 줄지어 들고 있습니다."
으-음 하는 신음을 흘린 흥선은 장순규에게 이르기를,
"너는 즉시 나머지와 금호문으로 가거라. 거기 있다가 조성하가 나오면 나에게
보내라."
흥선의 위엄에 눌린 장순규가 예-이 하며 나간다. 마치 잘 훈련된 병사의 신바람난
모습이었다.
"대감 이러구 계실 때가 아니잖습니까?"
조바심이 난 이호준이 흥선에게 뭔가를 재촉하려는데,
"내가 무슨 방도가 있단 말입니까?"
"입궐하셔서..."
"입궐해서?"
"돌아가는 형세를 살피시어야..."
흥선은 더 이상의 대답없이 먹던 아침상의 수저를 든다.
이호준은 그런 흥선을 보며 침을 삼킨다. 밤이 되어도 별다른 소식이 없자 이호준은
돌아갔다.
이호준이 돌아가자 흥선은 명덕과 장현덕을 부르는데,
"내 한가지만 너에게 당부할 것이 있다."
"무슨 말씀인데요, 아버지?"
"여기 이사람을 잘알고 있지?"
"현덕 아저씨 잖아요?"
"앞으로 장현덕 대위가 너의 스승이 될 것이다. 너는 대궐에 들어가더라도 이 사람
보기를 날 보는 것처럼 할 수 있겠느냐?"
"알겠사옵니다. 아버지."
명복의 대답을 듣는 흥선은 흐뭇하여 명복을 바라본다.
임금의 급서(急逝)는 돌발사였다.
병세로 보아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은 다들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임금이 승하하게 돼자 모두들 당황했다.
이 날 임금은 정오가 되기 전에 여러 궁녀들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졸도를 하였고 영영 깨어 나지 못했다. 당황한 궁녀들은 급히 임금을 침전인 동온돌(
東溫突)로 옮겼고 어의의 진맥도 받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한편, 용동궁에서는 대왕대비 조씨가 조성하에게서 임금의 급서를 듣게 되는데,
"주상께서 연이은 열락으로 피로하신 상태에서 간밤에 폭음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정오 무렵에야 기침하시어 수라도 거르신채 대조전 앞 뜰을 거니시다가
그만...마마! 속히 환궁 하셔야 하옵니다. 창덕궁까지 가자면 서둘러야 할 것
이옵니다."
사실 용동궁은 일종의 별궁이었다. 지금의 청진동이 용동궁이 있던 자리이다.
창덕궁까지 가자면 만만치 않는 거리였다.
"주상의 영해(靈骸)는 어디다가 모셨다더냐?"
"동온돌에 모셨다 들었사옵니다."
"어서 가자."
조대비가 조성하와 함께 창덕궁 동온돌에 들었을 때는 이미 궐내가 곡성이 휩싸여
있었다. 조대비는 전일 흥선의 말이 생각나서 영해의 침두(枕頭)를 뜨지 않고 지키고
있다가 재빨리 옥새를 치마폭에 간수한다. 그리고 안팍에서 곡을 하는 여러 근친,
비빈, 중신들에게,
"주상께서 갑작스레 승하하셔서 망극하기 그지없소만 내 생각으로는 주상의 영해를
이대로 침전에 모시는 것은 송구스럽소. 빈전을 대조전으로 옮기고 영해를 이안(移安)
해서 예법에 맞게 의식을 치뤄야겠소."
중신들은 곡을 멈추고 연이어 떨어지는 왕실 제일 어른의 분부를 귀담아 듣는다.
"정원용 대감이 원상(院相)의 중임을 맡아 여러 중신들을 지휘하여 막중한 앞날의
일을 처리하도록 하고 주상의 승하를 지체없이 백성들에게 알리시오. 즉시 천아성을
울리시오."
조대비의 입은 쉴 새 없이 열렸다.
"불쌍하신 주상께서는 많은 한을 남기고 갑작스레 세상을 버리셨소. 나 또한 망극한
마음 누를 길이 없으나 나라의 보좌(寶座)는 한 순간도 비어 있어서는 않되는 법,
새로운 임금을 모시기란 쉬운일이 아니오. 새로운 임금은 하늘의 보살핌과 열성조(
列聖朝)의 가피가 있어야 하기에 몇 일의 시일이 필요할 듯 싶소. 우선 그동안 전국(
傳國)옥새는 이몸에게 보관하여야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할 것이오."
조대비의 말에는 엄숙함과 위엄이 흐르고 있었다. 한편 조대비가 전국옥새를
보관한다는 말에 안동 김씨 일가들의 안색은 흙빛이 되었다. 옥새를 빼앗긴 것이다.
조대비는 할말을 모두 마치고 대전별감의 호위를 받으며 동온돌을 나섰다.
그날밤 흥선은 한숨도 자지 못했다.
날이 밝기가 무섭게 흥선은 장현덕일행과 천하장안들을 부른다.
"천하장안 너희들 잘들어라."
장현덕 일행과 천하장안이 흥선의 하명을 기다린다.
"너희들은 오늘 날이 저물거든 앞에 있는 이들과 함께 대궐로 잠입해라.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잠입해라. 잠입해서 아무도 몰래 대왕대비 마마의 처소를
호위하라. 누구에게도 들켜서는 아니되니 몸을 숨긴 채 호위하라. 그리고 날이
밝으면 대궐을 나오라. 이것은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첫 영이니 기필코 수행하라.
알겠느냐?"
"네-이"
천하장안을 비롯한 나머지 대원들이 힘차게 대답한다. 그런데 장순규가 물었다.
"오늘 하룻밤만 이옵니까?"
"앞으로 닷새는 그리 해야하느니..."
"알겠습니다. 대감."
"낮에 할일은 따로 있다."
다들 숨도 쉬지 못하고 흥선의 분부를 기다리는데, 흥선이 원정대원 하나와
장순규에게,
"너희는 김좌근 대감의 동정과 그의 출입, 그집에 출입하는 인사의 면면을 잠복하여
소상히 살피어야 할 것이다."
흥선이 다시 대원 하나와 천희연에게 분부한다.
"너희는 김병기를 맡고."
"알겠습니다. 대감."
흥선의 분부는 다시 대원 하나와 하정일에게 떨어진다.
"너희는 김병필과 김홍근을 맡아라. 그리고 안필주는 내 주위를 떠나지 말고 호위할
것이며 장대위 자네는 명복을 그림자처럼 살피도록... 이 사람들은 서울 지리와
사정을 잘 모르니 천하장안 네놈들이 잘 보살피도록하고... 알겠느냐!"
흥선은 이렇게 정보 수집을 위해서 심복들을 내 모는데 실로 배수의 진이다.
아무일 없이 며칠이 흐르고 섣달 열 사흘 날이 밝았다.
이날 아침 드디어 조대비는 창덕궁 중희당(重熙堂)으로 원로 대신들을 불렀다.
김좌근을 필두로 김병기 김병필 김병학 김병국등의 김씨 일파가 참석했고 정원용
조두손 박규수등의 원로 대신들이 조대비의 명으로 참석했다.
"내가 비록 복이 없어 일찌기 청상이 되었으나 대왕대비의 막중한 자리에 있는몸,
이제 망극하고 황망한 일을 당하여 정신이 없으나 언제까지 보좌를 비워둘 수는 없는
일, 오늘 내가 이렇게 여러 원로 대신들을 청한 것은 조선의 제 이십 육대왕의 보위(
寶位)를 논하기 위함이오. 여러 대신들은 누구에게 보위를 맡겼으면 좋겠소.
기탄없이 말씀을 해보시오."
좌중은 조용했다. 누가 감히 먼저 입을 열겠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르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누가 감히 왕통의 정통을 논할 것이며 누구를 지목하여 임금으로 올릴
것인가.
"영상께서 먼저 말을 해보시오."
조대비가 대신들이 아무말이 없자 김좌근을 지목했다.
"신하된 도리로 왕실의 제일 어른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신데 어찌 제가 함부로 입을
놀리겠습니까. 신왕의 옹립은 경사중의 경사이니 왕실의 제일 어른이신
대왕대비마마께서 의중에 두신 이가 있으면 먼저 말씀을 해 주시는 것이 순서일 것
같사옵니다."
김좌근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 아들 김병기가 입을 연다.
"대왕대비마마!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어찌 이런 공개된 석상에서 신왕 옹립과 같은
막중대사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것은 결국 왕실에 대한 결례가 아닌가
싶사옵니다."
"의중에 둔 이는 있지만 여러 대신들 앞에서는 말할 수 없다는 말이오? 의중의
인물이 누구 인줄은 모르나 대감이 공명정대 하다면 거리낄 것이 무에 있겠소이까?"
김병기의 말에 조대비가 자뭇 힐난조로 말을 한다. 이미 좌중의 대신들은 조대비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어찌 조대비가 김병기에게 이런식으로
말을 할 수 있었던가.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는 것을 대신들은 느끼고
있었다.
"어디 정원용 대감께서 말씀을 해보시오."
조대비의 말이 떨어지자 정원용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한다.
"아뢰옵기 송구 하오나 선왕의 승하로 만 백성들은 비통해 잠겨 있고 민심이
흉흉하옵니다. 이러한고로 신왕의 옹립은 지체할 수 없는 막중대사 이옵니다. 비통에
잠긴 백성들을 위무하기 위해서라도 주저하지 마시고 덕(德)있는 종친의 공자로 속히
대통을 잇도록 명을 내리시옵소서."
조대비도 역시 정원용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냉연하게 입을 열었다.
"여러 대신들은 엄숙하게 들으시오. 흥선군 이하응의 적통(嫡統) 이자(二子)인
명복을 익성군(翼成君)으로 봉하고 익종대왕(翼宗大王)의 대통을 계승케 하라."
좌중은 충격에 휩싸였다. 특히 김병기가 느낀 충격은 누구보다도 컸다. 누구보다
흥선을 괴롭힌 김병기는 앞이 캄캄했다. 김병기는 자뭇 필사적이었다. 다급히
무릅걸음으로 조대비에게 다가서며 아뢴다.
"대왕대비마마! 흥선군은 종실의 어른이긴 하나 가세가 극히 빈한하고, 안하무인의
행각으로 만인의 지탄을 받는자 이옵니다. 그런자의 아드님을 이 나라의 신왕으로
옹립한다면..."
"좌찬성(左贊成)은 말을 삼가하시오. 지엄하신 대왕대비마마의 영이 떨어진 이상
우리 신하들은 대왕대비마마의 명에 따라 막중대사를 준비해야 할 것이오. 궁중에는
희언(戱言)이 없는 법이오."
조두순이 나서서 김병기의 말을 귾고 나서자 이번에는 정원용이 다시 나선다.
"대와대비마마! 막중대사는 이로써 끝내셨사옵니다. 다만 후일에 증(證)하기 위하여
언문으로 된 신왕 책립 교서(敎書)를 내리시는 것이 옳은 일인줄 아옵니다."
좌중은 술렁였다. 특히 김좌근 김병기를 비롯한 안동 김씨 일파가 더 그랬다. 이미
신왕 책립의 절차는 끝이 났으나 김씨 일파에게는 이대로 끝나서는 않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김씨 일파의 가슴에 비수를 조대비가 꽂았다.
이미 조대비는 친필 교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원용의 말이 끝나자 조대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서도 엄숙하게 선언해 버렸다.
"신왕책립의 교서는 여기 있으니 여러 대신들은 돌려 읽으시기 바라오."
김좌근은 눈을 감아 버렸고 김병기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교서를 읽었다.
- 흥선군 이하응의 적통 이자 명복을 익성군으로 봉하고, 익종대왕의 대통을 계승케
한다.-
조대비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낮낮히 보고 있다가 최후의 한마디를 했다.
"도승지 민치상은 이 언문교서를 즉시 한문으로 고쳐 써서 정원(政院)으로 보내도록
하라!"
도승지 민치상이 언문교서를 받자 다시 조대비의 입이 떨어진다.
"원상 정원용과 도승지 민치상은 만조 백관을 거느리고 즉시 운현궁으로 가서
흥선군에게 교서를 전하고 대궐로 영입토록 하라!"
조대비는 이 말을 끝으로 모든 회한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남편인 익종과 사별하고
흐르는 삼십년 세월을 눈물로 지세웠지 않는가! 이제 죽은 남편의 대통을 흥선의
이자인 명복이 계승케 된 것이다. 전대의 철종을 옹립할 때 마땅히 익종의 대통을
이었어야 했으나 시어머니인 순원왕후(純元王后)는 익종 대신에 자기 남편인 순조의
대통을 잇게 했다. 참으로 통탄할 일이었으나 그때의 조대비는 힘이 없었다. 그 한을
이제야 푸는 것 같았기에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조대비였다.
"마마! 저는 흥선군 댁에 가서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조성하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말을 하자,
"그럴 필요 있을까? 그댁에서는 이미 예상한 일이거늘..."
"그래도 여러가지 준비할 것이 있을 것이옵니다. 아무래도 제가 먼저 가서
귀뜸이라도 해 드리는것이 옳은 줄 아옵니다."
"지체하지 말고 속히 다녀오라."
조대비의 말이 떨어지자 조성하는 나는 듯 달렸다. 자신이 임금이 된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하늘을 날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정말 나는 것 같았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신왕등극(新王登極)...3
.. 흥선집권(興宣執權)...3
하다못해 논두렁 정기(精氣)라고 타고 나야 촌 구석의 면장이라도 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오늘은 몰락한 왕가의 도령이 이 나라의 제왕으로 등극하는 날이다.
하늘도 아는지 어제까지의 잔뜩 찌푸린 날씨는 온데간데 없고 청명하기가 마치 가을
날씨와 같다. 때는 추위가 한참 맹위를 떨칠 섣달 중순인데 햇볕은 봄볕보다도
좋았고 거칠었던 바람은 가을
바람마냥 살랑 살랑 불었다.
정오 무렵에 신왕(新王)의 봉영행차(奉迎行次)가 돈화문을 나서서 구름재로 향했다.
창덕궁에서 구름재로 향하는 큰길 양편에는 호위영의 군사들이 밀려드는 인파를
정리하기 위해 정신이 없었다.
조대비에 의해 원상에 임명된 정원용과 영의정 김좌근이 봉영대신(奉迎大臣)에
임명되었고 도승지 민치상이 교지를 전달할 승지의 책무를 맡았다.
원상이란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 임시로 임명되는 승정원(承政院)의 우두머리다. 그
정원용의 지시에 따라 봉영대신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먼저, 교지를 담은 채여(彩轝)가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건장한 무관들에 의해 선두에
섰다.
그 뒤로 정원용과 김좌근이 평교자에 앉아 채여를 따랐다. 그리고 그 뒤를 빈 보련(
寶輦)이 별감들의 호위를 받으며 따른다. 승지인 민치상이 교지 전달의 중임을 맡고
보련을 따랐으며 네명의 내관들이 눈처럼 하얀 백마를 타고 민치상을 호위했다.
이어서 기치창검을 번뜩이는 군사들이 행렬을
호위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관이었다.
큰 길가에 몰려든 구경꾼들, 팔자좋은 선남선녀들은 새 임금의 얘기로 술렁였다.
"누가 임금님이 되신데?"
"흥선군의 작은 도령이라던데...?"
"아니 그 술 주정뱅이에 난봉꾼인 흥선의 작은 아들이?"
"그러길래 사람 팔자 시간 문제라잖아."
드디어 행렬이 구름재에 닿았다. 별감이 문을 열어라, 소리치고 장순규가 나와서
대문을 연다.
맨 먼저 정원용과 김좌근이 들어가고 그 뒤를 교지를 받든 민치상이 따른다.
흥선은 이미 금관조복을 입고 준비하고 있었다. 흥선은 정원용에게 말한다.
"대감, 이제 교지를 받들면 더이상 사인(私人)의 신분이 아닙니다. 하오니 잠시라도
육친으로써의 정을 나눌 수 있게 해주시오."
흥선은 정원용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내실로 들어 갔다. 내실에는 이미 채비를 마친
명복이 민씨와 형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아! 너를 이렇게 부를 수 있는 날도 오늘이 마지막이구나."
떨리는 흥선과 달리 명복은 침착했다. 침착하게 흥선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아들아! 너는 이제 이 나라의 임금이 된다. 임금이란 만백성의 어버이요, 나라
제일의 어른이다.
앞으로는 이 애비나, 어미는 너에게 아들이라고 하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이 애비와
어머니에게 아들으로써 절을 해라. 그리고 형들에게도..."
명복이 흥선의 말대로 흥선과 어머니인 민씨, 그리고 재면, 재선 두 형에게 절을
했다. 흥선은 명복의 절이 끝나자,
"이제 절을 마쳤으니 군신의 사이입니다. 부디 백성을 사랑하시고, 어버이와
형제들을 잊지마시고, 옥체(玉體) 보존하시어 이 나라의 성군이 되십시오."
어린 임금은 입술을 꼭 깨물며 말이 없다. 그리고 흥선과 함께 밖으로 나가 교지를
받는다. 언제 나타났는지 장현덕이 어린 임금의 뒤를 호종한다.
어림 임금의 거동은 의젓했고 봉영대신들은 경건했다. 이윽고 영의정 김좌근이,
-흥선군 이하응의 적통 이자 명복을 익성군으로 봉하고 익종대왕의 대통을
계승케하라.-
는 대왕대비 조씨의 교지를 낭독했다. 그리고 좌중의 봉영대신들이 모두 어린
임금에게 절을했다. 이로써 교지 전달의 의식이 끝났다.
흥선의 둘째 아들인 명복이, 몰락한 왕가의 자제가, 조선의 새 임금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대궐로 들어가 만승(萬昇)의 보좌에 앉으면 되는 것이다.
봉영행차가 흥선의 집 대문을 나선다.
먼저 교지를 담았던 채여가 앞을 선도하고 그 뒤를 소년 임금을 태운 보련이 따라
나선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조복을 입은 장현덕이 임금 옆을 따랐다. 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내전별감들이 소년 임금의 전후좌우를 호위했다. 흥선을 태운 평교자는 김좌근이나
정원용을 태운 평교자 보다 앞에서
임금의 보련을 따른다. 이제 흥선은 대원군으로 두 사람의 원로 대신보다도 높은
어른이 되었다. 그런 흥선의 풍모는 위엄이 대단했다.
행차가 구름재를 빠져나와 큰길로 접어드는데 갑자기 어린 임금이 명을 내렸다.
"행차를 잠시 멈추어라."
임금의 명에 의해 행차가 멈추자 어리둥절한 정원용과 김좌근이 어린 임금에게,
"전하, 무슨 일이시옵니까?"
하고 묻는다. 어린 임금은 잠시 숨을 고르다가 말을 한다.
"예서 잠시만 기다립시다. 과인과 아버님의 날개가 오기로 했으니..."
"날개라니요? 한시라도 빨리 대궐에 드셔서 대왕대비마마를 뵈어야 하옵니다."
김좌근의 말에 소년 임금은 빙그레 웃기만 하는데, 어느새 옆에 온 흥선이 임금 대신
입을 연다.
"주상전하의 말씀대로 잠시만 기다리십시다. 잠시후에 모든 일을 알 수 있을테니..."
봉영대신들을 비롯한 연도의 백성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러기를 얼마가 흘렀을까?
어린 임금의 옆에서 말없이 호종하던 장현덕이 임금에게 나즈막히 말한다.
"전하, 저 위를 보십시오. 지금 오고 있사옵니다."
어린 임금과 흥선이 장현덕의 손을 따라 하늘을 보고, 그런 두 부자를 봉영대신들이
따라 한다.
"오-호! 저것이 아저씨가 말한 그 큰 봉황이란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전하! 저 큰 봉황은 한꺼번에 쉰명이 넘는 사람들이 탈 수 있으며 한
번에 쉬지 않고 삼천리를 날아 갈 수 있사옵니다."
어린 임금과 장현덕이 이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만조백관들과 운집한 백성들은
난리가 났다.
난데없이 하늘에 시커멓고 하얀, 그러면서 커다랗기는 집채보다도 더 큰 물건이
하늘을 날아서, 일진광풍을 휘몰아 치며 한 쪽 공터에 내리고 있지를 않는가. 공터에
운집했던 백성들은 난리가 났다. 서로 먼저 도망치려고 아우성을 치며 흩어졌다.
백성들 뿐만 아니라 봉영대신들과 호위영의 군사들도 혼비백산했다. 이윽고 두 대의
CH-47D 치누크와 한 대의 UH-60 블랙 호크, 그리고 한 대의 링스 헬리콥터가 내렸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정원용은 혼비백산한 와중에서도 정신을 차려 호통을 친다.
"호위영의 군사들은 뭣들 하느냐? 어서 주상전하를 뫼시지 못할까?"
우왕좌왕하며 흩어졌던 호위영의 군사들이 마지 못해서 모여드는데 흥선이 한 마디
한다.
"소란 떨 것 없소. 저들은 주상전하와 나를 호위하기 위해서 봉황을 타고 내려온
천군(天軍)들이니... 저들이 이리로 올 수 있도록 길이나 터 주시오."
그렇게 말을 하면서 흥선은 주변을 둘러보며 천하장안을 찾는다. 멀리서 천하장안이
눈에 띠자,
"네 이놈들, 이리 오너라."
장순규를 비롯한 천하장안이 흥선의 말을 듣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너희들은 즉시 사방으로 흩어져서 주상전하와 흥선대원군 대감을 호위하기 위해서
하늘에서 천군이 봉황을 타고 내려왔다고 사람들을 안심시켜라. 서둘러라."
정신이 반쯤 나가 있던 천하장안이 흥선의 말을 듣고 사방에서 소리쳤다.
"주상전하와 흥선대원군 대감을 호위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천군들이 봉황을 타고
내려왔다-아-."
"주상전하와 흥선대원군 대감을 호위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천군들이 봉황을 타고
내려왔다-아-."
천하장안이 흩어지면서 소리치자 혼비백산 하며 흩어졌던 봉영대신들과 백성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봉황을 타고 천군이 내려왔다고...?"
"이사람아, 천군들이 주상전하와 흥선대원군 대감을 호위하기 위해 내려왔다잖는가."
"그럼, 저들이 천군이란 말이고, 주상전하와 흥선대원군 대감이 하늘의 인정을 받는
분들이란 말이가?"
"아무렴, 그렇지 않으면 어찌 새가 아닌데 하늘을 날 것이며 또 거기서 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가?"
"그러고 보니까 하나같이 기골이 장대한게 영락없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군인갑네."
백성들이 웅성거리며 하나 둘 모여들자 장순규가 대뜸 소리친다.
"주상전하 천세! 흥선대원군 대감 천세!"
좌중은 삽시간에 주상전하와 흥선을 연호하며 천세를 외쳤다. 이러는 사이 원정단
사령관인 김영훈 소령이 원정단 수뇌부와 특수 수색대를 이끌고 어린 임금과 흥선의
앞에 섰다.
"어서 오세요. 김대장."
"어서 오시게, 김대장."
"감축드리옵니다. 전하. 대원위 대감. 먼저 저희 대원들의 예를 받으시옵소서."
김영훈이 뒤로 돌아서 도열한 대원들에게,
"주상전하께 받들어 총!"
"충---성!"
좌중의 만조백관들과 백성들은 난데 없는 봉황과 천군의 출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는데 어린 임금은 사람들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는 듯
대원들의 인사를 받는다.
"충성!"
대원들의 인사가 끝나자 어린 임금은 김영훈에게 명을 내린다.
"과인이 이제 대궐로 들어가게 되었어요. 경과 경의 대원들이 왔으니 정말
든든하구려. 원로에 곤하겠지만 과인과 과인의 아버님을 호위해 주기 바라겠어요.
부탁 좀 드려도 되겠지요?"
"부탁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전하와 대원위 대감의 충성스런 저희 천군들은 기꺼히
그리 하겠사옵니다."
어린 임금과 김영훈의 말이 끝나자 흥선이 봉영대신들과 내전별감에게 소리친다.
"뭣들 하시오. 어서 주상전하를 모시지 않고... 행차를 출발하시오."
다시 봉영행차는 순서대로 출발했다. 김영훈이 이끄는 대원들도 어린 임금과 흥선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다시 운집한 백성들이 또 따랐다. 하나같이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행렬이 큰길로 들어서자 천군을 내렸던 봉황들이 하늘로 올랐고 그 모습을 백성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행렬의 뒤를 따르는 백성들은 어린 임금의 모습에 대해 입방아를
찧고, 또 천군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열 두살 어린 나이에 비해 한껏 의젓한
모습을 한 임금의 모습에 감탄사를 연발했고,
장대한 체격의 천군들이 알로달록한 옷을 입고 늠름한 모습으로 행진하는데 또 입을
놀렸다.
드디어 돈화문에 행차가 들어섰다.
행차의 선두가 돈화문에 들어서자 만조백관(萬朝百官)들이 두 줄로 도열한 채 어린
임금을 맞았다. 오른쪽에는 문시들이 도열했고, 왼쪽에는 무신들이 도열했다. 모두가
허리를 굽힌 채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궐내의 수 많은 내명부들을 비롯해서
궁인들과 내관들까지 모두 나와서 경건하면서 엄숙한 태도로 어린 임금을 맞이했다.
어린 임금을 뺀 나머지 행차는 걸어서 돈화문을 들어섰다. 돈화문을 지나고 금천교(
禁川橋)를 지나서 대조전에 이르자 조대비가 손수 나와서 어린 임금을 맞이한다.
대왕대비로서의 체면도 모두 벗어버리고 어린 임금의 손을 덥썩 잡으며,
"오--오, 내 아들! 어서 오너라, 내 아들!"
그러면서 어린 임금을 이끌고 올라갔다. 흥선이 뒤를 따른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신왕등극(新王登極)...4
.. 신왕등극(新王登極)...4
새로운 임금이 등극한지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조정에서는 조대비의 명으로 승하하신 선대 임금의 장례 문제를 매듭지었다.
먼저 승하하신 선대 임금을 철종(哲宗大王)으로 부르기로 하였고, 철종의 유택(幽宅)
은 지금의 경기도 고양시에 모시기로 하고 예릉(睿陵)이라 이름지었다.
며칠새에 눈이 소담스럽게 내렸다.
오늘은 어전회의(御殿會議)가 있는 날이다. 조대비의 명으로 흥선의 예우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신들이 하나 둘 창덕궁 희정당(熙政堂)에 모여 들었다.
김좌근, 김흥근, 김병기, 김병필, 김병학, 김병국등 당대의 내노라 하는 안동 김씨의
수장들이 한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정원용과 조두순등이 다시 한 쪽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윽고 조대비가 어린 임금을 앞세우고 희정당에 나타났다.
어린 임금이 좌중을 굽어보는 용상에 앉고 조대비는 발을 치고 임금의 뒤에 앉았다.
"내가 오늘 이렇게 여러 대신들을 모이라고 한 것은 한 가지 시급히 처결할 일이
있기 때문이오.
모두들 잘 아시다시피 새로이 주상께서 보위에 오른지 이제 며칠이 지났소. 그래서
새로 보좌에 오르신 주상의 친부인 흥선대원군의 예우 문제를 매듭짓기 위해서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오."
좌중은 침묵으로 조대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먼저 영상께서 말씀해 보시오, 흥선대원군의 예우에 대해서 말이오."
선대 임금인 철종이 승하하고 새로운 임금으로 흥선의 작은 아들이 보위에 올랐다.
조선 왕조 역사상 처음있는 살아있는 임금의 친부인 것이다. 물론 그전에도 대원군이
존재하기는 했다. 선조의 친부인 덕흥대원군이 그 처음이고 철종의 친부인
전계대원군이 그 두 번째이다. 물론 흥선에게 대원군이란 칭호를 추존(追尊)하는데는
모두가 의의가 없었다. 그러나 흥선의 예우는 별개의 문제였다.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일이기에 난감하고도 민감한 문제였다.
조대비의 말이 떨어지자 김좌근은 아랫배에 힘을 주고 두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신 영의정 김죄근 아뢰오. 태조대왕께서 창업 하신이래 아조(我朝) 사백여년 동안
살아있는 대원군이 있었던 전례가 없었사옵니다. 그러나 이번에 그러한 전례가
생김으로써 우리는 이번의 전례를
후대의 참고가 될 수 있도록 명확하게 처결해야 옳을 줄 아옵니다. 흥선대원군은
주상전하의 생부이기도 하고, 또한 주상전하의 신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육친의
정을 따르자니 신하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불충이 되옵고 군신의 예를 따르자면
불효가 되옵니다. 하늘에는 두 해가 있을 수 없고 나라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대원군은 일체 국사에서 배제하시고 특별한 지위를
부여함이 옳을 줄로 사료되옵니다."
"특별한 지위라면...?"
"일체 국사에서 배제하고 운현궁에 칩거하게 하옵되, 흥선대원군의 지위를 높여
대군보다는 높고 임금보다는 낮은 지위를 내려 위의를 세우는 것이 옳은 줄로
아옵니다."
김좌근으로서는 배수의 진을 친 심정이다. 만일 흥선대원군에게 임금의 보령이
유충함을 핑계로 대리섭정(代理攝政)의 지위라도 주어지게 된다면 그동안 김씨
일파의 60년 세도는 끝장나고 하루 아침에 일가가 몰락의 길로 접어들 수도 있음이기
때문이다.
조대비는 김좌근의 말을 다 듣고 발 뒤에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조대비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병기가 말을 한다.
"신 좌찬성 김병기 아뢰옵니다."
"좌찬성은 말하시오."
"신이 보기에도 영상 대감의 의견이 타당할 성 싶사옵니다. 보령 유충하신
주상전하를 핑계로 흥선대원군이 국사을 돌보게 된다면 흥선대원군의 그 동안의
행각으로 보아 결코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지 못할 것이며 실추된 왕권의 위엄도
찾지 못할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지금 주상전하의 보령 유충하시어 국사를 돌보기가
참으로 어려울 줄 압니다. 하여, 신의 생각으로는 대왕대비마마께옵서 주상전하를
대신하여 수렴청정(垂簾聽政) 하시고 신들이 그런 대왕대비마마를 옆에서 보좌한다면
충분히 국사를 돌보심히 가능하다 할 것이옵니다. 주상전하께서는 선대 익종대왕의
법통을 계승하신 대왕대비마마의 아드님이 아니시옵니까? 만일 흥선대원군에게
대리섭정토록 한다면 이는 한 나라에 주상전하, 대왕대비마마, 그리고 흥선대원군의
세 임금이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사옵니까? 부디 명찰하시어 대왕대비마마께옵서
수렴청정을 하시고 나중에 주상전하께서 장성하신 연후에 국사를 넘겨주심이 옳을
줄로 아옵니다."
조대비는 마음이 흔들렸다. 원래 흥선의 작은 아들을 보위에 올릴때의 생각은 그
동안의 설움을 보상받고 왕실의 최고 어른으로서의 당당한 대우를 받고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안동 김씨 일파를 몰아내어 억울하게 죽은 이하전의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흥선의 아들을 임금으로 삼고 보니 자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더더군다나 안동 김씨 일파가 자신을
수렴청정토록 권유하지 않는가. 마음이 흔들리는 조대비였다.
우리나라에서의 수렴청정의역사는 상당히 오래됐다. 멀리로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도 수렴청정의 예는 찾아 볼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그 예가 너무도
많았다. 1468년(세조 14) 세조가 죽고 태자 광(晄)이 14세에 예종으로 즉위하여 그의
어머니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예종과 동좌(同坐)하여 수렴청정을 하였다. 1469년
즉위 1년 만에 예종이 죽고 조카 성종이 13세의 나이로 즉위하자 정희왕후가 7년
동안 계속 수렴청정을 하였다. 1546년 인종이 재위 1년 만에 죽고 명종이 12세의
나이로 제13대 왕으로 즉위하니 중종의 계비(繼妃) 문정왕후(文定王后)가 8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557년(명종 22) 명종이 죽고 선조가 15세로 즉위하자 명종의 비
인순왕후(仁順王后)가 1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800년(정조 24) 정조가 죽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영조의 비 정순왕후(貞純王后) 김씨가 3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834년(순조 34) 순조가 죽고 왕세손 헌종이 즉위하자 할머니 순원왕후(
純元王后:순조의 비) 김씨가 6년 동안 수렴청정을 하였다. 1849년(헌종 15) 헌종이
죽고 철종이 즉위하자 순원왕후가 또 수렴청정을 하였다. 자신의 시어머니인
순원왕후도 하지 않았던가.
조대비가 김병기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기색이 보이자 좌위정인 조두순이 나섰다.
"신 좌의정 조두순 아뢰옵니다. 신 또한 영상 대감과 좌찬성의 말에 찬동이옵니다.
흥선대원군에게는 영상 대감이 아뢴데로 위의를 세워 주시고 국사는
대왕대비마마께서 친히 수렴청정을 하심이 옳을 줄로 사료되옵니다."
얘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애초의 흥선에 대한 예우 문제는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슬쩍 넘어가고 조대비에게 수렴청정을 직접하도록 압박해 가고 있었다. 그
선봉에는 김병기가 있었다. 김좌근이 좌중의 분위기를 살짝 돌린 사이 김병기가
조대비에게 사탕을 물려주고 있었다. 조대비의 인척인 조두순은 일문의 인척인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할 수 있다면 그 동안 안동 김씨 일파에 빛이 바랬던 가문의
영광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조대비를 졸랐다.
그러나 조대비는 심약한 여인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이 수렴청정을 하겠다고
선포해도 무방한 형국이었으나 흥선과 어린 임금이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어린 임금의 봉영행차 때에 나타난
천군이었다. 하늘에서 봉황이 내려 왔다는 것과 그
봉황에서 천군이 내려 왔다는 얘기는 미심쩍은 점이 많았다. 그렇다 해도 천군의 그
늠연하고 정연한 모습들이 조대비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지금 그 천군은 이곳과
가까운 창덕궁 영화당(英華堂)뜰에 어린 임금을 호위한다는 명목으로 주둔하고 있지
않은가. 어디서 왔는지 근본도 모르는 이들을 대궐안에 머무르게 한다는 것에 강한
거부를 나타냈던 조대비였다. 어린 임금과 흥선의 청으로 어쩔 수 없이 주둔을
허락했지만 시세가 이렇게 돌아가다 보니 마치 목에 걸린 가시와 같은 형국이 아닌가.
답답했다. 조대비는 참으로 답답했다.
흥선의 예우 문제를 논하던 자리는 조대비의 수렴청정을 논하는 자리로 바뀌었지만
조대비는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내일 다시 어전회의를 열기로 하고 자리를
빠져 나갔다.
안동 김씨 일파 중에서 가장 두뇌가 명석한 인물이 바로 김병기 였다. 김병기는
조대비가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김병기는 어린 임금을
앞세우고 희정당을 빠져 나가는 조대비의 뒷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띄우는데...
구름재 흥선의 집은 요즘 밀려오는 내방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흥선의 작은
아들이 새로운 임금으로 등극한 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흥선에게 줄을 대려는
인사들이 연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안방에도 고관대작들의 아낙네들이 와
있었다. 불과 며칠전 까지만 해도 흥선이라면 인상부터 찌푸리던 이들이 바로
그네들이었다. 역시 권력은 잡고 볼 일이다.
흥선은 지금 청지기 김응원이 읽어내리는 내방객 명단과 내방객이 가지고 온 선물의
품목을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바로 오늘이다. 오늘만 지나면 내가 이나라
최고의 권력자가 돼는 것이다. 흥선은 절로 입가에 미소가 드리워진다. 선대 임금이
죽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선대 임금이
죽는다는 것이 정확이 들어맞은 지금 흥선은 하늘이 내게 복을 주시려 원정단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만큼 흥선의 마음은 느긋했다. 대궐에서 오늘
어전회의가 열린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흥선이 흐뭇한 표정으로 김응원의 보고를 듣고 있는데 문 밖에서 장순규의 말이
들렸다.
"대감 마님, 장현덕 나으리께서 오셨사옵니다."
"그래, 어서 들라해라."
"대감! 큰일 났사옵니다."
장현덕이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말부터 한다."
"큰일이라니...?"
"오늘 대궐에서 어전회의가 열린 것은 아시고 계십니까?"
"오늘 어전회의가 열린다고 하더만, 헌데 왜?"
"어전회의에서 대원위 대감의 예우 문제를 논할 예정 이었는데 대감께는 임금보다는
낮고 대군보다는 높은 위의를 차리도록 조치하고,"
"조치하고...?"
"일체 국사에 관여하지 말도록 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옵니다. 그리고
삽시간에 어전회의는 조대비에게 수렴청정을 권유하는 장(場)으로 변하여 대부분의
신료들이 조대비에게 수렴청정을 강압하였다고 하옵니다."
"뫼이야!"
"영의정 김좌근을 비롯해서 김병기등 안동 김씨 일파가 조대비에게 수렴청정 할 것을
강권했다고 하옵니다. 그리고 좌의정인 조두순이 거기에 호응하여 동조하였다고
하옵니다."
"뭐야! 조두순 이놈이... 그래서 조대비는 어떻게 한다던가?"
"조대비도 마음이 움직였으나 그 자리에서 답을 하지는 않고 내일 어전회의를 다시
한다고 하옵니다. 아무래도 내일은 대감께서 입궐해 보시는 것이 좋을 듯 싶사옵니다.
"
"으--음..."
흥선은 갑자기 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자신이 내일 입궐만 한다면 순식간에 대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자신이 있었다.
'조두순을 비롯한 풍양 조씨 일파와 안동 김씨 일파가 손을 잡고 조대비를
꼭두각시로 앉히고 권력을 휘두를 심삼인가 본데... 내 이럴 때를 대비하여 천군들을
창덕궁 영화당 뜰에 주둔시켰다. 사태가 여의치 않으면 천군의 힘을 보여줄 것이야.
아-암...'
"어리신 주상은 어떻게 하고 자네가 이렇게 나왔는가?"
"승후관 조성하가 대감께 기별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아서 급한 마음에 제가 이렇게
달려 왔습니다. 아무래도 그자가 변심을 한 듯 싶사옵니다. 그리고 주상전하의
안전은 저와 함께 왔던 대원들이 가까이에서 지키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그들은 우리 대한민국에서 고르고 고른
하나 하나가 일당백의 살인병기들 이옵니다. 과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옵니다."
"으-음... 조성하! 알았네. 내 내일 날이 밝는대로 입궐을 할 것이니 자네는 속히
대궐로 돌아가서 천군대장에게 걱별히 경계를 철저히 하라고 이르시게."
"이미 천군들은 비상 대기 상태이옵니다. 걱정하지 마시옵소서.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사옵니다."
"그래, 고맙네. 그리고 욕보시게..."
흥선의 눈에서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김대장의 말을 따라 김씨 일파를 용서하고 피를 보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리는 않돼겠다. 내 이놈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한편 흥선의 집에서 장현덕이 흥선에게 오늘의 일을 보고하는 상황에서, 조대비는
어전회의를 주재하고 나서 자신의 처소로 돌아와 생각에 잠겼다. 김병기와 조두순의
얘기가 지금도 귓가에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삼십년이 넘는 세월 동안 소외되고
경원당하다 자신의 손으로 이 나라의 국사를
처결할 생각을 하니 손이 근질근질 했다. 조대비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밖에서 상궁이 소리친다.
"대왕대비마마, 좌찬성 김병기 대감이 들었사옵니다.
'김병기가?'
"음, 어서 들라해라."
조대비의 분부가 떨어지자 김병기가 들어왔다.
"앉으시오, 좌찬성."
"황공하옵니다."
"그래, 좌찬성이 예까지 어인 일이시오?"
"마마, 주위를 좀 물려 주시기 바랍니다. 긴히 아뢸 말씀이 있사옵니다."
"주위를 믈려달라?"
"그렇사옵니다. 마마."
"밖에 조상궁 있는가?"
"대령했사옵니다, 마마."
"다들 물러가고 누구도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하라."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마마."
김병기는 조대비의 분부로 모두들 물러가자 말을 꺼낸다.
"소신이 이렇게 마마를 찾아뵌 것은 한 가지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이옵니다."
"말씀해 보시오."
"소신이 대왕대비마마의 근심을 덜어드릴 비책을 가져왔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근심이라니? 도대체 그것이 무슨 말이오?"
조대비는 속으로 뜨끔하면서도 노회한 여우답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한다.
"마마, 소신이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도 흥선대원군에게 섭정의 지위를 내리는 것은
불가하다 사료되옵니다. 마마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흥선대원군은 장안에서도
유명한 파락호에 왈패가 아니었사옵니까? 그런 이에게 나라의 섭정을 맡긴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사옵니다. 부디 명찰하시어 대왕대비마마께서 수렴청정을 하시옵소서."
근심거리는 무엇이고 비책은 무엇인지 말은 않하고 쓸데없이 변죽만 울리는 김병기다.
그런 김병기에 비해서 조대비는 지금 애가 타들어 갔다.
"어-허, 누가 그걸 몰라서 하는소리요?"
"마마, 마마의 근심은 바로 흥선대원군의 반발과 저 들이 대려다 놓은 천군이지
뭔지가 아니옵니까?"
"..."
"마마, 흥선대원군은 오늘밤 제가 호위영의 군사들로 하여금 가택에 연금을 시킬
것이옵니다. 그리고 저 천군이라는 것들은 호위영의 군사들로 하여금 도모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지금 대궐의 호위영의 수가 약 삼백 오십이 넘으니 오십의 군사로
하여금 구름재 흥선의 집을 포위하여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빠져 나가지 못하게 할
것이며 나머지 삼백의 호위영 군사들로 하여금 천군을 상대하라고 한다면 이건
어린아이 팔목 비틀기 보다도 쉬운 일일 것이옵니다."
"..."
조대비는 말이 없다. 김병기가 하는 말이 자신의 등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소리지
않는가.
원래 흥선과 조대비와는 큰 교통이 없었다. 명목상으로는 육촌 시동생 뻘이라고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명목상일 뿐이다. 그리고 조성하의 주선으로 흥선의 작은
아들 때문에 두어번 만났지만 그리 가까운 사이도 아니지 않는가. 권력의 속성이란
한번 쥐면 놓기 싫고 한 번 잡으면 휘두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지금
조대비의 마음이 그랬다.
김병기의 계책은 참으로 조대비의 마음에 쏙드는 계책이었으니 이런 것을 일컬어 손
안대고 코 푼다고 하던가. 누워서 떡 먹는다고 하던가. 참으로 죽이 잘 맞는 노회한
여우와 음흉한 늑대의 만남이었다. 과연 이들의 계책대로 일이 흘러가게 될지...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신왕등극(新王登極)...5
.. 신왕등극(新王登極)...5
창덕궁의 영화당(英華堂)은 원래 왕실 가족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기도 했고, 과거(
科擧)를 시행하는 날이면 임금이 직접 친림(親臨)하여 과장(科場)을 둘러보던
곳이기도 했다. 영화당 앞쪽의 넓은
뜰을 춘당대(春塘臺)라고 하는데 과장으로 이용됐던 곳답게 상당한 면적을 자랑하는
뜰이다. 영화당의 옆으로는 부용지(浮蓉池)라는 연못이 있고 남쪽에는 부용정(浮蓉停)
이라는 정자가 있다. 꽤 복잡한 듯한 구조를 하고 있는 이 정자는 위에서 보면
亞자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바로 한국에서 사극을 찍을 때 임금이나 왕비가 산책을
하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부용정이다.
부용지 바로 옆 영화당에는 원정단 사령관 김영훈이 지휘하는 특수 수색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넓디 넓은 춘당대를 다 차지하며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이 바로 천군(天軍)이다.
사방은 눈이 소담스럽게 쌓여 있는데 병사들이 친 알록달록한 천막으로 춘당대만
파릇 파릇한 모습이다.
천군이 처음 어린 임금을 호위하여 대궐에 들어오고 며칠이 지난 지금 온 대궐안의
내시, 상궁, 나인 할 것없이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천군의 움직임에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이-야! 여기가 바로 드라마에서 많이 등장하던 그곳이란 말이지?"
"야, 김하사 너는 그 소리를 지금 몇 번이나 하냐. 한 소리 또 하고, 또 하고..."
"너무 신기해서 그렇지...야 한성호 너는 안 신기하냐?"
"그램마, 나도 신기하다."
"근데 윗대가리들은 안에서 뭐 한다냐?"
"그걸 내가 어떻게 아냐 임마."
날씨가 상당히 쌀쌀한지 군데 군데 모닥 불이 피워져 있었다. 모닥불을 쬐고 있던
특전사 출신의 김훈 하사는 UDT/SEAL팀 소속이던 한성호 하사와는 죽이 잘 맞았다.
서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미래에서 왔다는 동질감과 미래로 돌아갈 수 없는
이 시점에서 믿고 의지할 대라고는 원정단 소속의 전우밖에 없다는 소속감으로
급속하게 친해진 사이다. 원래 사령관 직속의 특수 수색대는 각 군의 정예 요원들만
선발하였기에 서로가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하루도 싸움이 없는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이제는 누구보다도 전우애가 돈독한 집단으로 태어났다.
강화된 중대 병력은 총원 177명의 4개 소대로 구성되었으며 전원이 다 하사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대 경력이라고는 이제 사관학교 포함해서 13년 째인 김영훈
이었으나 강력한 카리스마로 부하들을 지금까지는 잘 통솔하고 있었다.
지금 특수 수색대 한 쪽에 마련된 사령부에서는 지휘부의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사령관님."
UDT/SEAL 팀 에서 지원한 1소대장 한상덕 대위가 사령관에게 말한다.
"뭐가 말이오?"
"꼬마 임금을 호위하고 있는 장현덕 대위의 말에 의하면, 소위 대신이라는
늙다리들과 조대비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그 보고는 나도 받았어요."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오늘 있었던 어전회의에서 조대비가 스스로 수렴청정을 한다는
결정이 나고 스스로 2년 동안의 수렴청정을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라면 그렇지..."
"그런데 그렇게 돌아가지 않고 조대비가 대신들의 권유에도 불과하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과 그런 대신들의 뜻을 조대비가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상당히
흔들리기만 했다는 것은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잖습니까?"
"저도 한 대위의 말에 동감합니다. 사령관님."
"2소대장도 그렇게 생각한단 말인가?"
"저뿐만 아니라 3소대장도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안 그러냐? 안용복!"
"김대위 말이 맞습니다. 사령관님. 우리 소대장들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건 뭔가..."
"뭔가...?"
1소대장 한상덕 대위는 원래 UDT/SEAL 출신으로 소속이 달랐으나 2대장 김욱 대위와
3소대장 안용복 대위는 고향도 같은데다 똑같이 육사를 졸업하고 특전사에서 잔 뼈가
굵은 김영훈이 아끼는 후배들이다.
"이미 우리가 과거로 왔기 때문에 기존의 역사에 어떤 변화가 생긴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말하자면 시간의 축이 있다고 가정을 했을 때 그 시간의 축이 우리가 미래에서
과거로 왔기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받아서 뒤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조대비가 대원위 대감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는 사이에 저들이 우리가 모르는 어떤 행동을 할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장대위가 대원위 대감을 만나는 그 순간에 김병기가 조대비를 만나 밀담을 나눴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은 상당히 심각합니다."
"나도 그 보고는 받았다. 그럼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제 생각에는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를 친다...?"
"그렇습니다. 이미 꼬마 임금은 우리 요원의 손에 보호되고 있으니 조대비를
연금시키고 오늘 밤 안으로 오늘 어전회의에서 조대비의 수렴청정을
주장했던 김씨 일파와 조두순등을 잡아 들여야 합니다."
소대장들 모두가 한상덕의 의견에 공감을 표시했다. 모두들 김영훈의 입에서 무슨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모두의 의견은 잘 들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섯불리 우리가 움직여
그들을 잡아 들여서 우리 뜻대로 모든 상황을 장악한다고 해도
대원위 대감이 우리의 그런 행동에 두려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우리가
대원위 대감과 심각한 권력 투쟁을 해야할 수도 있다는 말이야. 나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해도 대원위 대감은 주상전하의 생부니까..."
"그럼...?"
"일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전 대원들에게 실탄을 지급하고 이곳 영화당에서
주상전하가 계시는 대조전으로 이어지는 가장 빠른 길을 숙지시키도록 하고 아울러서
조대비의 침전까지 가는 길목도 확실하게 숙지시키도록, 그리고 만약 저들이 무슨
공격을 해온다면 우두머리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나머지 병사들만큼은 상하지 않게
조심들 시키도록..."
"선배님, 저들은 화승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칼과 창으로 무장하고
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살상을 하지 않도록 합니까?"
"야- 한성호, 너는 한국에 있을 때 윤민혁이 쓴 '한제국 건국사'라는 책도 안읽어
봤냐?"
"한제국 건국사라뇨?"
"야 임마, 지금 대궐 수비는 호위영이 맡고 있고 호위영의 총 군사는 약
삼백 오십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아. 그리고 호위영은 화승총이 없다. 기껏 군도(軍刀)
와 활로 무장했을 뿐이야. 그런 상대와 우리가 총질하며 싸우랴? 한제국 건국사에
보면 우리와 비슷한 상황이 나오는데 걔네들은 모두 몽둥이와 최루탄으로 조선군을
때렸잡더라. 뭔 말인줄 알어?"
"잘 모르겠는데요."
"만일 밤에 저들이 습격을 해온다면 전 대원들에게 방독면 착용시키고, 조명탄 쏘아
올리고, 최루탄 쏴서 두들겨 잡으면 된다는 말이야. 저들은 최루가스를 맡아본 일이
없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아. 알겠어? 일단 대원들에게 저녁밥 두둑히 먹이고 일급
경계 태세를 유지하도록 하라고. 그리고 혹시 모르니까 방탄복과 야간 투시경도 준비
시키도록하고."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조선의 군사제도에는 조선 후기 수도 방위를 위하여 오군영(
五軍營)을 설치 했던 걸로 아는데요. 만약 우려했던 사태가 발생하면 그 병력들은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입니까?"
" 이사람아, 지금의 조선에는 오군영(五軍營)이 설치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금위영(
禁衛營) 수어청(守禦廳) 총융청(摠戎廳)은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외곽에 주둔하고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없고 훈련도감(訓鍊都監)은 서울 수비와 군사들의 훈령을
시키는 곳이지만 역시 외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될게 없어. 어영청(御營廳)
만이 대궐과 가까운 종로 인의동에 위치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들을 직접 상대할 일은
없어. 그리고 경희궁(慶熙宮) 외곽을 경비하는 훈련도감의 별영(別營)이 있지만
그들은 기껏해야 오십명뿐이 되지 않는다니까 걱정할 것은 없는데 문제는 아까도
얘기했지만 호위영 군사들이 문제야. 그렇지만 내가 지시한대로 하면 큰 피해는
없을거야."
"우와! 선배님 대단합니다요."
잔소리를 듣던 한성호가 익히 알고있는 사실들을 김영훈이 얘기하자 무안한지
너스레를 떤다.
"아, 그리고 한 대위. 혹시 대원들간에 무슨 마찰 같은 것은 없소?"
"아-예. 다행히 그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고 있습니다. 처음 한국에서 부대 결성 뒤
합숙할 때만 해도 서로 싸우기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돌아갈 곳도 없고, 의지할
것이라고는 전우들 뿐이라는 생각을 다들 하고 있습니다."
"잘 됐군요. 다들 알다시피 믿을 대라곤 우리뿐이 없소. 우리 자신 뿐이
없단 말이지...아무튼 대원들에게 내 지시를 철저히 주지시키고 철저히 대비하세요.
그리고 정순남이를 한대위가 데리고 있지요. 한대위는 정순남이에게 지시해서 대원위
대감댁에 가서 천하장안을 불러오라고 하시오. 내가 뭣좀 알아볼 일이 있다고 하면
대원위 대감게서 보내줄 겁니다. 이상입니다.다들 수고하세요."
"알겠습니다. 충성!"
"충성."
김좌근 김병기 부자는 원래 교동(敎洞)의 같은 집에서 살았다. 그러나 김좌근이 소실
양씨의 집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흔히들 교동 대감이라고 하면 김병기를
이르는줄로 안다. 그 교동 대감 김병기의 집에 밤이 으슥해진 지금 일족이 다 모여
있었다. 김씨 일파의 좌장(左將)격인 김좌근을 비롯해서 김흥근 김병기 김병필
김병학 김병국등 희정당 어전회의 멤버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김병기가 조대비와
밀담을 나누고 나서 소집한 일종의 문중회의였다.
먼저 아랫목에 자리를 잡은 김좌근이 말한다.
"이렇게 다들 모이라고 한건 오늘 어전회의 후에 내 아들 병기가 조대비와 따로
만나고 왔다네. 조대비가 우리의 권유에 상당히 마음이 기울었던 걸 다들 느꼇을
것이네. 아마도 병기가 조대비가 무슨 얘기를 했을 것
같인데 병기에게 그 얘기와 앞으로의 일을 들어보자고 불렀네."
"병기 형님이 조대비를 은밀히 만나셨다구요? 언제 그런일이 있었습니까?"
성질급한 김병필이 아이구 이게 왠 떡이냐 얼씨구나 좋구나 하듯이 나섰다.
김병기는 김병필이 중간에 나서는게 못마땅한지 한 번 눈을 흘기더니 김좌근과
김흥근을 향해 말한다.
"제가 오늘 어전회의가 끝나고 은밀히 조대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조대비와 담판을
짓고 왔습니다. 그 내용은 일단 조대비에게 모든 권력을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큰 걸림돌이 될 흥선을 이대로 놔두고는 아무런 일도
성사되지 않습니다. 해서, 오늘밤에 호위영의 군사들을 움직이기로 했습니다."
"호위영의 군사들을요?"
다시 한 번 김병필이 제 성질을 못이기고 나서자 김병기는 와락 짜증이 치민다.
"동생은 좀 가만히 있게. 내가 모든 얘기를 하지않는가?"
"알겠소 형님. 내 가만히 있을테니 어서 얘기 하시오."
"먼저 호위영의 군사 오십으로 하여금 흥선의 집에 출동하여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에워싸고 흥선을 연금시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호위영
군사 삼백으로 저들이 창덕궁 영화당에 주둔시켜 놓은 천군이지 지랄인지를
도륙내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흥선은 오늘 어전회의에서 있었던 일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 내일은 분명히 입궐할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심약한 조대비는 다시 주저 앉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기회는 오늘밤 뿐입니다.
그리고 내일 어전회의에서 조대비가 수렴청정을 선포하면 만사형통입니다. 조대비가
아무리 권력을 쥐고 조씨 일가에게 힘을 실어준다고 해도 그리 크게 걱정할 것은
못됩니다. 조씨네는 문중(門中)에 이렇다할 인재가 없습니다. 기껏해야 조두순
정도일까. 조대비가 가까이 두고 있는 조성하, 조영하
형제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봤자 그들은 아직 피래미에 불과할 뿐, 결국은 우리의
힘을 당해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 오늘 밤 자정을 기해서 일을 벌이기로 했으니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겁니다."
엄청난 얘기였다. 모두의 안색이 심각해 지면서도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유독 김병학 김병국 형제의 안색만은 점점 어두워 갔다. 마침내 김병국이
폭발했다.
"아니 형님이 대저 무엇인데 호위영의 군사들을 함부로 움직입니까? 호위영의
군사들은 대궐에 변고가 생겼을 때 주상전하의 안위(安威)를 책임지는 군사들이거늘,
어찌 그런 군사들을 형님의 노회한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함부로 움직이는 겝니까?
저는 이 일에서 빠지겠습니다. 이 일은 자칫 잘못하면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수도 있음을 왜 모르십니까? 백부님, 병기 형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아니 이래서는
안됩니다. 나는 갈랍니다."
"나도 같이 가세, 동생."
김병학이 동생 김병국을 따라 나선다.
김병학 김병국 형제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김좌근이 아들인 김병기에게,
"저들을 이대로 보내도 되겠느냐?"
"어차피 언젠가는 저들을 칠 생각이었습니다. 그냥 놔두시지요. 저들이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시간이 된 듯합니다."
"벌써 시간이 그리 되었나?"
"모든 일은 제가 이미 지시를 해놨습니다. 좋은 소식이 오기만 기다리면 됩니다."
문중 어른들에게 이런 소리를 하는 김병기의 얼굴은 알 수 없는 비장감으로 굳어
있었다.
돈화문밖에는 이미 호위영의 군사들과 김병기가 보낸 사졸(私卒)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호위영 군사들을 지휘하는 군관 김진길에게 김병기의 사졸인 만복이가
말한다.
"이미 얘기 들으셨겠지만 나으리는 그냥 군사들을 이끌고 흥선군의 집만
철통같이 방비하면 됩니다. 나머지 일은 우리가 집안으로 들어가서 처리하겠습니다요.
아시겠습니까?"
"알았네, 걱정하지 마시게. 시간이 된듯 하니 어서 가세."
"예, 갑시다요."
김병기 일당과 의절할 듯이 나온 김병학과 김병기는 침울했다.
구종별배의 호위를 받으며 남여를 타고 사동(査洞) 자신들의 집으로 향하는데,
"형님이나 저나 김씨 집안의 핏줄을 타고난 덕분에 벼슬께나 해먹고 살았지만
큰일입니다. 병기 형님이 저와 같은 큰일을 벌이고도 무사할지 모르겠군요."
"그러게 말일세. 병기 형님의 성격으로 봐서는 저렇게 시시하게 끝내지는 않을 성
싶은데..."
"시시하게 끝내지 않으면요? 설마 흥선을 죽이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
"형님!"
"아무래도 안돼겠네. 우리가 이대로 있어서는 아니돼네. 어떻게든 불행한 사태만은
막아야지. 어서 남여를 돌려라! 대궐로 갈 것이다."
"지금 무엇을 하십니까?"
"이 판국에 식은 밥 더운 밥 가리게 생겼나. 잘못하면 흥선이 죽게될 수도 있음이야."
"근데 왜 대궐로 가십니까?"
"이 사람아, 우리가 지금 흥선의 집으로 간다고 해도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대궐로 가서 그 천군이지 뭔지 하는 무리에게 알려 불행한 일만은 막아야지."
김병학의 명을 받은 남여꾼들은 서둘러서 남여를 돌리려는 순간, 창덕궁에서 '탕'
하는 소리가 들린다. 탕하는 소리가 연이어 몇 번이 들리더니 갑자기 뭔가가
하늘에서 터지면서 창덕궁을 밝히는데 그런 것이 여러 번
올라가서 하늘을 밝히는 모습을 본 두 사람은 직감적으로 뭔 일이 터져도 단단히
터졌음을 느낀다. 별배들과 남여꾼을 닥달해서 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남여가 제
맘대로 빨리 갈 수가 있나. 괜시리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을 태운 남여가 드디어 관천대(觀天臺)를 지나고 멀리 금호문이 보이는데 더
이상 요상스런 불은 올라오지 않는게 흡사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은
가눌길 없는데 남여가 나가는 속도는 왜 이리도 더디기만 한 것인지...
이윽고 금호문에 도착했는데, 금호문의 문은 활짝 열린채 지키는 수문장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남여에서 뛰어내린 두 사람이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데, 생전 처음
맡아보는 매캐한
냄새가 코를 후비고 눈을 쑤시는 통에 똥오줌을 못가리고, 당상관의 체면은 청계천
수포교 다리밑에 내 던져 버린듯 죽어라 재채기를 해댄다. 두 사람이 87년 6월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뛰어든 민주 시민도 아니고,
조국통일을 외치며 각목과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백골단과 쌈박질을
하는 학생들도 아닐진데 모가지가 따끔거리고 눈두덩이가 욱씬욱씬 쑤시는 그 고통을
어떻게 이겨내겠는가? 혼(魂)이 달아나고 백(魄)이 산산히 흩어지는 고통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난데없이 천군 몇이 얼굴에 시커먼 껍대기를 쓰고 나타나자
저승사자를 만난듯 기겁을 한다.
"어라? 요것들은 또 뭐시다냐?"
"쿨-룩...쿨룩.. 나는 쿨룩 아이고.. 대제학 김병학이다. 아이고 나 죽네..."
한수길 하사는 익산 금마에 있는 7공수 소속이었는데 전남 장성이 고향으로 욱하는
성질 때문에 여러 번 사고를 쳐서 다른 동기들은 벌써 중사나 상사까지 달았건만
만년 하사로 있다가 원정단에 지원한, 말 뽄새가 싸가지 없기로 소문난 대원이다.
그런 한수길에게 두 사람이 걸렸으니 무슨 좋은 소리를 듣겠는가.
"어이, 한수길. 거기 뭐야?"
"아- 행보관님, 여기로 와 보십시오. 어디서 요상스런 사람들이 나타나서 뭐라
쌌는데 도통 뭔 말인지 못알아 듣겄구만요."
"무슨 일인데 그래?"
"아따 , 이 사람들을 보랑께요. 보아하니 한 자리 허는 사람들 같은디...?"
"이런...야 한하사! 수통에 물좀 줘봐."
행정보급관 박승인 상사가 건네준 물로 얼굴을 씻은 두 사람이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박승인에게 말한다.
"당신네들이 천군이요?"
"저희들을 그렇게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당신네 우두머리는 어딨소? 한시가 급한 일이요. 빨리!"
"저를 따라 오십시오. 저희 사령관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야 한수길! 너는 먼저
뛰어가서 사령관님께 알리도록 하고 나머지는 잘 지키고 있어라. 나는 이분들 모시고
사령관님께 가볼테니."
"알겠습니다. 충성!"
김병학과 김병국은 죽다 살아난 기분이었다. 이런 경우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린 두 사람이 행보관 박승인을 따라가면서 본 대궐안의
풍경은 가히 살풍경이었다.
아직도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러 도포 자락으로 입과 코를 막고 따라가는데 이미 한
쪽 도포 자락은 자신이 흘린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었다. 곳곳에 호위영 군사들의
것이 분명한 칼과 창, 활들이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었고, 희안하고 시커멓게 생긴 껍대기를 뒤집어 쓴 천군들이 총이 분명한듯 보이는
것을 들고 대궐 곳곳을 경비하고 있었다. 대조전 뜰 앞에는 한무리의 천군들이 족히
삼백은 되어 보이는 호위영 병사들을 법성포 굴비 엮듯이 엮어서 감시하고 있었다.
머리가 깨지고 온 몸에 선혈(鮮血)이 낭자한 군사들도 상당히 많이 눈에 띄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요. 저희 사령관님께서 곧 나오실 것입니다."
이윽고 천군대장으로 짐작되는 이가 수하 몇을 대동하고 나왔다. 김영훈과
참모들이다.
"제가 천군대장 김영훈입니다.저를 찾으셨다고요..."
"당신이 이들의 우두머리요?"
"그렇습니다. 제가 천군대장입니다."
"나는 대제학 김병학이라고 하고 이쪽은 내 동생인 훈련대장 김병국이오."
김영훈과 참모들은 두 사람이 무엇때문에 왔는지 궁금했다.
"큰일났소. 지금 좌찬성 김병기 대감의 명으로 일단의 호위영 군사들이 흥선대원군
대감댁으로 갔소. 이미 시간이 꽤 지났는데 잘못하면 큰일이 날지도 모르오. 속히
흥선대원군 대감의 집으로 가보시오."
호위영 병사들이 흥선의 집에 갔다는 말에 김영훈은 둔기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다.
'아뿔사-- 내가 실수했구나. 저들이 대원위 대감을 노릴 줄은 몰랐구나.이 일을
어쩐다.'
"이봐 한대위! 빨리 소대를 이끌고 대원위 대감댁으로 가보도록, 아무래도 습격을
당한 것 같으니까 전원 무장하고 무전기도 챙겨고, 긴급한 일이 있으며 연락하고,
빨리 서둘러!"
김영훈 자신이 직접 갈까도 하다 어린 임금을 보위하는 것이 더 큰일이라는 생각에
한상덕을 보낸다. 이럴줄 알았으면 천하장안을 불러서 일을 시키지 않는 것인데 하며
후회하는 김영훈이다. 한상덕이 소대원들을 이끌고 떠나자 김영훈은 김욱
2소대장에게 천하장안을 통해서 알아 놓은 교동 김병기의 집으로 가라고 명령한다.
"김대위는 자네 소대원들을 이끌고 교동 김병기의 집으로 가서 그 집을 감시하도록,
경거망동하지 말고 그냥 감시만 해. 들어가는 사람은 놔두고 나가는 사람은 다
잡아들여. 절대 노출되면 않되네. 그리고 내 지시를 기다리도록..."
"알겟습니다.충성!"
"충성."
김영훈은 이렇게 명령을 내리고 옆에 있던 김병학에게 질문을 한다.
"대제학 대감과 훈련대장 대감은 원래 안동 김씨가 아닌가요?"
"그렇소."
"그런데 어째서 그런 소식을 저희에게 알리는 것입니까?"
"... 더 큰 불행한 사태를 막고자 해서 예까지 왔소."
"그렇습니까? 오는 동안 많이 놀라셨겠군요."
"솔직히 지금도 정신이 하나도 없소.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소? 그리고 이 매캐한
냄새의 정체는 뭐요?"
"이 냄새는 저희가 준비한 최루탄(催淚彈)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밤 영화당에 주둔하던 천군은 밤이 깊어감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그때가 돈화문 앞에서 일단의 호위영 군사들이 김병기의 사졸들과 흥선의 집으로
간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영화당에서 대조전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김훈과
한성호가 경계 근무를 서고 있는데 멀리 금천교 쪽에서 상당히 많은 수의 군사들이
대조전을 향해 몰려 오는 모습이 보였다.
"야-! 한하사. 넌 여길 지키고 있어라. 난 보고를 하러 갈께."
"알았으니까 빨리 갔다와. 저 놈들 개떼처럼 몰려 오는 것봐라."
김훈이 이상한 징후를 보고 하기 위해서 영화당으로 뛰어 가는 순간 대조전 안에서 '
탕'하고 총소리가 들린다. 한성호도 총소리를 들었고, 뛰어가던 김훈도 들었다.
영화당에서 경계를 서던 모든 대원들이 들었고 김영훈도 들었다.
"무슨 일이야?"
옆에 있던 한상덕이 대답한다.
"대조전 쪽입니다."
"대조전?"
"아무래도 장현덕 대위가 쏜 모양입니다."
두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동안 이미 모든 천군은 준비를 마치고 금방이라도
명령만 있으며 어디든 뛰어들 태세다. 다시 총소리가 몇 번 더 들렸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어서 출동 시키는 것이..."
"출동하세요. 1소대는 대조전을 접수해서 주상전하를 보호하도록하고 2소대는
조대비를 확보하세요. 3소대는..."
"사령관님!"
김영훈이 지휘를 하는데 김훈이 뛰어 오면서 소리친다.
"사령관님! 지금 엄청난 군사들이 금천교를 지나 대조전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그래? 일단 즉시 출동하도록. 그리고 박격포반보고 조명탄 쏘아 올리라고 하세요.
서두르세요."
김영훈의 명령이 떨어지자 한국형 81mm 중박격포에서 조명탄이 피어 올랐다. 하늘
높이 올랐던 것이 꼬리에 낙하산을 달고 서서히 떨어지는게 깜깜한 밤중에 태양이
뜬듯 주위를 환하게 비춘다.
별장(別將) 김광헌의 지휘하에 이제 막 금천교를 지나던 호위영의 군사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뭐가 터지고 주위가 밝아지자 깜짝 놀랐다.
"우-이 씨팔, 왜 이렇게 않오는거야. 벌써 저 놈들이 금천교를 지났는데..."
혼자서 호위영 군사들을 감시하던 한성호는 갑자기 하늘에서 조명탄이 터지자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호위영 군사들을 향해 달려가다 준비하고 있던 일명 사과탄으로
불리는 KM25탄을 몇 개 까서 던졌다. 몇 초가 흐르고 우왕좌왕하는 호위영 군사들
사이에서 갑자기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러는 사이 영화당에서 출동한 특수 수색대 대원들이 도착했다. 다시 모든 대원들이
손에서 KM25탄을 몇 개씩 던지더니 방독면을 쓴 채로 호위영 군사들 틈에 뛰어든다.
호위영 군사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숨도 쉬지 못하고 목을 부여 잡고
재채기를 해대는데 매타작이 시작된다. 이리 차이고 저리 밟히면서 하나 둘씩
쓰러진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특수 수색대원들의 인명 피해는 없었는데 몇 명이 발악하는 별장
김광헌의 칼에 베인것이 고작이었다. 나머지도 순조롭게 어린 임금의 신변과
조대비의 신병을 확보했다.
"어떻게 된거요? 장대위."
"주상전하께서 침수에 드시는 것을 보고 침전을 빠져 나오는데 갑자기 내시 놈이
달라들어서 당황한 제가 총을 쏘았습니다."
"주상전하께서는 무사하십니까?"
"예, 무사하십니다. 무척 놀란 모양인데 지금은 진정이 되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지금 주상전하는 누가 모시고 있소."
"지밀 상궁인 안상궁이 침전에 들어가 있고 저희 대원들이 밖에서 경비하고 있습니다.
"
김병학과 김병국은 말이 없었다. 감히 주상전하께서 계시는 대조전에서 이런 난리가
벌어진 것에 대해 할 말이 없었고, 소위 천군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이들 때문에
놀랐다. 호위영의 군사들이 누구던가 대궐의 수비와 주상전하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고르고 고른 일기당천(一騎當千)의 군사들이 아닌가. 그런 호위영을 임명 피해없이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한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과연 이들이 조선에
해가 될 것이가? 득이 될 것인가?
"이렇게 된 것입니다. 다행히 저들 호위영의 군사들을 큰 인명 피해없이 저희가
진압할 수 있었습니다."
"주상전하께서는 무사하신 것이오?"
"다행히 무사하십니다. 많이 놀라셨지만 크게 걱정하실 정도는 아닙니다. 문제는
대원위 대감댁으로 출동한 호위영의 나머지 군사들인데..."
"..."
김영훈도 그 문제가 걱정이 되었지만 그것은 김병학 김병국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이 흥선을 걱정하고 있는데,
"사령관님! 1소대장으로부터의 무전입니다."
"아! 한대위 어떻게 됐습니까? 대원위 대감께서는 무사하십니까?"
"충성! 한상덕입니다. 여기는 완전 아수라장입니다. 대원위 대감께서는 이미
자객들의 손에 돌아가셨습니다."
"뭐요? 자세히 좀 말해보시오."
"저희가 대원위 대감 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참변을 당하신 후였습니다. 호위영
군사들은 제압 했지만 대원위 대감과 아들들은 모두 참변을 당했고 민씨 부인만 구할
수 있었습니다."
"아들들까지 죽었단 말이오? 그리고 자객은 어떻게 됐소? 자객은 잡았습니까?"
"정확한 자객의 숫자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다섯 명 이상이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나머지 놈들은 다 도망가고 한 놈만 잡았습니다. 근데 아무래도 김병기의
수하같습니다."
"알겠소. 일단 민씨 부인을 이리로 모시고 오고 대원위 대감과 나머지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하세요."
"알겠습니다. 충성."
"충성."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흥선대원군이 자객의 손에 변을 당한 것이다.
"행보관!"
"예, 사령관님."
"즉시 2소대장에게 연락해서 김좌근을 비롯한 모든 안동 김씨 일파를 잡아드리라고
하세요. 한 놈도 빠짐없이 다 잡아들이세요."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김영훈은 착잡했다. 꼭 흥선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결국 이렇게 돼는가...우리 원정단이 결국 전면에 나서야 한단말인가...'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전면등장(前面登場)...1 (수정판)
.. 전면등장(前面登場)...1
왕가(王家)의 정통(正統) 후손으로 천하의 난봉(難捧)꾼 노릇을 거리낌없이 했던
흥선의 아들이 임금이 되고, 그 아들 덕분에 대원군(大院君)이 되었던 흥선이 지난
밤의 변란(變亂)으로 세상을 떴다는 소식은 조야(朝野)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조야뿐만이 아니라 조선반도 천삼백만 백성이, 삼백육십의 고을이 경천동지(驚天動地)
한 대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변란의 원흉(元兇)이 바로 현(現) 임금의 양어머니이자 왕실(王室)의
최고 어른인 조대비와 안동 김씨 일파가 공모(共謀)하여 일을 벌였다는데 모든
백성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본래는 호위영(扈衛營)의 군사들이 임금을 볼모로
하기 위해 대궐까지 난입(亂入)하였으나 다행히 임금을 호위하던 천군(天軍)에게
모조리 박살이 났다는데 또 한 번 놀랐다. 그 천군의 손에 의해 이번 변란에
가담했던 조대비 일당과 안동 김씨 일파가 모조리 잡혀들었을 때 초야의 이름없는
촌부들까지 환호작약(歡呼雀躍)하였다. 다만 조대비만은 임금의 어머니이고 현
왕실의 최고 어른이라는 신분으로 무사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 가담자들과 그들의
수하들은 죄(罪)의 경중(敬重)에 따라 모조리 목이 달아나거나 유배(流配)되었고
재산은 모두 몰수(沒收)되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어린 임금의 언문(言文)
교서(敎書)가 떨어졌으니,
- 지난 섣달 십 오일에 있었던 반역사건으로 과인(寡人)의 친부(親父)이신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께서 적당(賊黨)들에게 참화(慘禍)를 당하시었다. 적당들은
무엄하게도 대궐에도 난입(亂入)하여 과인의 목숨까지 노렸으나 열성조(列聖朝)와
억조창생(億兆蒼生)의 보살핌, 그리고 천군의 옹위(擁衛)로 다행히 무사할 수 있었다.
과인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에 정신이 혼미(昏迷)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였으니, 이 모든 일이 과인의 부덕(不德)의 소치(召致)이니 심히 부끄럽고도
참담(慘憺)한 마음 금할 길 없도다. 그러나, 과인은 이 나라 천삼백만 백성의
어버이로써 애써 마음을 추스렸으며, 이에 언문교서를 내려 비통하고 참담한
만백성들의 애통한 심정을 위무(慰撫)하고자 한다.
먼저, 이번 변란(變亂)으로 귀천(歸天)하신 과인의 친부 흥선대원군 이하응에게
대광보국(大匡輔國) 숭록대부(崇祿大夫) 국태공(國太公) 겸 의정부(議政府) 영의정(
領議政)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으로 추증(追贈)고 헌의(獻懿)의 시호(詩號)를
내린다. .
아울러 이번 변란을 진압하고 과인의 어가(御駕)를 옹휘한 천군대장 김영훈에게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국태공 겸 섭정공(攝政公)으로 추봉(追封)하고 과인을
대신하여 정사를 돌보라 명한다. 또한 이번 변란에 공(功)이 있는 여러 천군에게
공의 경중에 따라 상(賞)을 내리니, 조선반도의 천삼백만 백성들은 섭정공 김영훈
보기를 과인을 보는 것 같이 할 것이며 섭정공을 도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기틀을
마련토록 하라.-
서울 장안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상의 평온한 상태로 돌아왔으나 사람이 셋만
모이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글세?"
"세상이 확 바뀐다는 소문이 있던데...?"
"에-이, 그런다고 우리네 사는 모양이 달라질게 무에있겠나..."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이놈의 세상이 한 번 확 뒤집어져야 하지 않겠나?"
"그러면야 오죽 좋겠는가..."
"한 동안 나라안이 어수선 하겠구만..."
"그럴거구만..."
"근데, 자네 혹시 그 천군인가 뭔가하는 이들에게 댈 줄을 알고 있나?"
"왜?"
"사돈의 팔촌중에 비빌 연줄이 없느냔 말야?"
"그런게 어디있나, 이 사람아! 그 사람들은 조선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도래(到來)
한 사람들이거늘..."
"그런데 가만 보면 우리와 다를바 없고 또 우리말을 하는게 신기한 일 아닌가...?"
"그건 그렇지..."
"근데 어떻게 천군대장에게 섭정공이란 칭호를 추봉하여 정사를 맡길 수가 있지...?"
"자네는 그것도 모르는가? 돌아가신 흥선대원군께서 천군대장과 진즉 의형제(義兄弟)
를 맺었으며 늘 어리신 임금님께 숙부(叔父)라 부르라고 했었다네. 그런즉
천군대장은 임금님의 삼촌이 되는 것이네. 그리고, 이미 조대비와 김씨 일파가
변란을 꾀하여 흥선대원군과 어린 임금님의 형제들을 도륙냈으니 임금님이 어디 믿고
의지할데가 있단 말인가?"
"오라..."
모든 백성들의 이목(耳目)은 천군의 일거수(一擧手) 일투족(一投足)에 쏠렸다.
그러나 천군대장은 그런 백성들의 바램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씩 봉황을 타고
어디에 갔다오던지 그렇지 안으면 대궐에만 출입을 할 뿐 운현궁 안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원래, 그날 밤 용케 변을 피할 수 있었던 부대부인(府大夫人) 민씨는 어린 임금의
청으로 대궐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고, 이제는 운현궁으로 불리워지는 구름재 흥선의
집은 섭정공 김영훈에게 하사되어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한창이었다. 가끔씩 하늘에서
봉황이 내려와 뭔가를 잔뜩 내려놓고 또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양이 일반
백성들에게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감축(感祝)드립니다. 섭정공(攝政公) 합하(閤下)!"
"함장까지 날 놀리는 것이오?"
지금 이순신함의 함교에는 새로 조선의 섭정공이 된 김영훈과 이순신함의 함장인
김종완이 삼별초와 청해진에서 물건을 하역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잡담을 나누고
있다.
"하역 작업은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예, 올해 안으로 모든 작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 다들 고생하고 있습니다.
강화부의 모든 백성들을 동원하고 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행이군요."
"몇몇 중요한 물품들은 이미 봉황을 이용해서 운현궁에 옮겼으며 각종 기자재와
한국에서부터 가져온 생필품의 생산 라인들도 차질없이 운송하고 있습니다."
십오만 톤이 넘는 대형 컨테이너선인 청해진함이 변변한 접안 시설이 없는 조선
땅에서 물건을 하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럴줄 알고 한국에서부터 컨테이너가
아닌 직경 2미터 폭 2미터 짜리 나무 상자에 대부분의 장비를 싣고 왔지만 그래도
역시 어려웠다. 지금 원정단 함대는 수심히 깊고 하역하기 용의한 용유도 해안에
배를 대고 하역을 하는데 경기도 일대의 모든 관선(官船)과 민간 수운선(水運船)을
징발하여 하역을 하고 있는데 조그만 통나무배들이 청해진과 삼별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마치 커다란 고목 나무에 매미들이 붙어있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하역한
물건들은 수운을 통해 서울 장안의 마포(麻布)나루까지 가게 되고 다시 용도에 따라
운현궁이나 대궐 또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유류 비축분은 어떻습니까?"
"이순신함이야 개조해서 원자로를 탑재 했기 때문에 걱정이 없으나 청해진과
삼별초함의 경우 앞으로 사용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껏 3개월 정도 사용할 분량
밖에 없습니다."
"항공유는 어떻소?"
"항공유도 마찬가지 입니다. 현재 우리가 보유한 한 대의 링스와 블랙 호크, 두 대의
치누크가 사용할 항공유로 약 6개월분을 비축하고 있으나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기름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어차피 삼별초와 청해진은 이번 임무가 끝나면 사용할 일이 없을거요. 그러나
항공유는 최대한 아껴 주시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아껴둬야 합니다."
"만일의 경우라면...?"
"앞으로 우리가 실행할 개혁(改革)은 급진적인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럴 경우
기존 기득권(旣得權)의 반발이 없을 수 없겠지요. 그 때 봉황을 이용해서 병력을
신속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봉황의 차질없는 정비와 항공유의 확보가
필수적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급진적인 개혁보다 점진적인 개혁이 낫다고 생각합니다만..."
"그 얘기는 운형궁에 모두 모이면 얘기합시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게 없어요."
"알겠습니다. 한데, 사령관님...?"
"예, 말씀해 보세요."
"군 병력과 민간인 원정단이 앞으로 살 숙소는 어떻게...?"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 변란에 가담해서 처형한 인사들의 집이 상당합니다.
그것들은 이미 몰수했으니 우리 원정단에게 불하할 생각입니다. 모자라면 집을 따로
얻으면 됩니다."
"그렇군요."
"그나저나 당분간 함장 이하 이순신함의 장병들은 고생을 하셔야겠습니다. 당장 이
큰 배가 접안할 항구가 없으니... 함내에서 생활하시는데 불편하신 점은 없습니까?"
"다행히 모두들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가끔씩 상륙해서 여기 저기 구경을
하고 밤에 함에 돌아오는 지금의 상황도 썩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이순신함의 장병들은 강화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백성들의
으리에게 호의적이고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가끔씩 상륙해서 강화부성도
구경하고, 사람들 사는 모습도 보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우리에게
줄을 대려는 인사(人士)들이 상당하다면서요?"
"썩어빠진 위인들이지요..."
지금 서울 장안에서나 이곳 강화도에서는 섭정공인 김영훈뿐만 아니라 천군의 모든
인물들에게 줄을 댈려는 조선의 사대부(士大夫)들로 연일 북새통이 벌어지고 있었다.
운현궁의 문턱이 닳도록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으나 운현궁은 문을 굳게 닫아 걸고
일체의 내방객을 받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애가 단 일부 사람들이 이곳 강화
앞 바다에까지 찾아오는 지경이었다. 통탄할 지경이었으나 아직까지 김영훈은 일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점이 더 애를 타게 만들었으리라. 그저
묵묵하게, 그러면서도 분주하게 물품과 장비를 하역하기만 했다.
지금 운현궁에서는 김영훈을 비롯한 원정단의 모든 수뇌부들이 모여 있었다.
앞으로의 개혁 방향과 역할을 분담하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김영훈이 천군을 이끌고
대궐에 들어가고 나서 처음 열리는 수뇌부 회의였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할 일은 지금 부터지만 그래도 우리 원정단이 조선에 무사히
도착해서 어느 정도의 기반을 닦아 놓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동안 흥선대원군이
죽었고 그럼으로 해서 기존의 우리가 세웠던 기존의 계획을 상당히 수정해야만 하는
경우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이제 우리가 할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앞으로의 할 일과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니 만큼 허심탄회하게 그 동안 준비했던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한국(韓國)개발(開發)연구원(硏究院)-KDI-에서 경제 분야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김기현 박사가 말을 한다.
"먼저 지금 조선의 정확한 실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조선은 한 마디로
얘기해서 개판 오분전입니다. 원래 조선의 세금제도(稅金制度)는 전정(田政), 군정(
軍政), 환곡(還穀)의 삼정(三政)으로 나뉘어 지는데 이 삼정의 문란(紊亂)이 극에
달해 있는 것이 지금 조선이 처한 상황입니다."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 그리고 정묘호란(丁卯胡亂)과 병자호란(
丙子胡亂)으로 이어지는 전란(戰亂)의 여파(餘波)로 조선의 거의 모든 전답(田畓)은
황폐해 졌는데 궁전(宮田)이니, 둔전(屯田)이니 하는 면세되는 전답은 갈수록 늘어만
갔고, 은결(隱結)이라고 하여 토지대장(土地臺帳)에 올리지 않는 전답이 양반이나
지주들에 의해 확대일로(擴大一路)에 있어서 국고(國庫)의 수입은 날이 갈수록 감소(
減少)하였니, 죽어 나가는 것은 첩첩(疊疊)한 세금에 등허리가 휘어질대로 휘어진
가여운 농민들과 힘없는 백성들 뿐이었다. 이것이 전정(田政)의 문란이었다.
군정(軍政)의 문란도 사뭇 극에 달했다. 장정(壯丁)이 직접 병역(兵役)을 치루는
대신에 군포(軍布)를 바침으로써 병역의 의무(義務)를 대신하는 것이 군정인데 장정
일인당 포(布) 한 필을 내게하고 부족한 재정은 어염세(魚鹽稅)를 비롯하여 선박세(
船舶稅)등의 잡수입으로 충당케 하였으나 양반이나 아전 관노등은 여기에서 면제(
免除)가 되었으나, 많은 상인, 장사치들이 지방관(地方官)과 결탁(結託)하여 징병(
徵兵)을 피하게 되니 힘없는 백성들만 피해를 보게 되었으니 뱃속의 어린아이에게도
어른과 똑같이 세를 징수하였고, 이미 죽어 없는 이에게까지 세를 물리는 백골징포(
白骨徵布)가 성행하였다. 또한 '족징(族徵)'이라는 희안한 법도 있었는데. 군포를 낼
형편이 안돼 도망간 사람의 친척에게 대신 군포를 물리는 황당한 법이었다. 그 보다
더한 법이 있었으니 '인징(隣徵)'이라는 법인데, 어떤 집이 단체로 세금을 안내고
도망을 갔고 그 친척들도 도망을 갔다면, 그 옆집이나 뒷집에 대신 세금을 물리는
법이었다. 이런 식의 포악한 세금 징수에 심지어 남자들은 거세(去勢)를 해서 군포를
물지 않을려고 했으니 말로 해서 무엇하랴
환곡의 문란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라에서 춘궁기(春窮期)에
곡식을 꾸어 주었다가 가을 추수 때 약간의 이자를 붙여서 받는, 백성들을 구휼(救恤)
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이것이 본래 시행 취지에서 벗어나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짜 내는 지독한 고릿대(高利貸)로 변하였다. 이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해 전국
각지에서 민란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었다. .
이도(吏道)의 문란도 극에 달해 돈푼께나 있는 사람들은 세도가(勢道家)에 줄을 대어
돈으로 관직(官職)을 사고 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을 서슴치 않고 자행하였으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의 몫이었다.
"김기현 박사님의 말씀은 잘들었습니다.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합니다. 제 생각에 우선 조선 정부의 최고 의결기구인 비변사(備邊司)를
폐지하고 현대적인 의미의 행정기구를 갖추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아울러서 그동안
안동 김씨나 풍양 조씨 집권시에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등용하여 그들 사대부의 일정
세력을 우리가 끌어 들인다면 그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민심(民心)도 어느 정도는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돌릴 수 있을겁니다. 물론 조세의 개혁이나 토지 개혁
그리고 신분 개혁같은 중요한 개혁이 뒷받침 되어야겠지만 모든 일을 한꺼번에
실행한다는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단 이런 개혁들을 점진적이면서
때로는 과감하게 실행해야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김영훈의 말이 이어지는 동안 좌중의 인물들은 소리를 죽이고 경청하고 있다.
"우선 비변사를 없애고 의정부와 육조로 모든 의결권을 이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육조(六曹)를 확대해서 현대적인 정부 부처를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필요하다
생각하시는 정부 부처를 말씀해 보세요."
김영훈의 말이 끝나자 여기 저기에서 의견이 나왔다.
"우선 기존의 의정부와 육조의 명칭을 바꾸는 것은 어떻습니까? 의정부(議政府)는
국무부로 바꾸고 병조(兵曹)는 국방부로, 이조(吏曹)는 내무부로 공조(工曹)는
상공부로, 예조는(禮曹)는 외무부로, 호조(戶曹)는 재정 경제부로 형조(刑曹)는
법무부로 개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여기에 새로운 관제를 확대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리고
사령관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모든일을 하지 못할 바에야 쓸만하다 생각되는
인재들을 등용하든지 아니면 기존의 명망있는 인물들에게 몇
몇 부서를 그들에게 맞겨야 합니다."
"저도 김기현 박사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원정단 최고 연장자인 김인호 박사가 김기현을 거든다.
"제 생각으로는 새 정부 부처는 먼저 농림부를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하하하, 박사님께서 농학 박사이신 것은 여기있는 우리 모두가 잘알고 있습니다."
장현덕이 웃으면서 김인호의 말을 끊었다. 좌중에서 김인호의 경력을 생각해서
한바탕 웃음이 새어 나왔다. 김인호는 약간 무안한 듯 서둘러서 말을 잇는다.
"그리고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특성상 해양부의 신설도 필요합니다."
"저도 김박사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덧붙여서 교육을 담당할 부처와 의료와 국민
보건을 담당할 부처도 필요합니다. 한가지를 더 한다면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할
부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를테면 국토 개발부 같은 것 말입니다."
장현덕이 국토 개발부를 들고 나오자 해군 항공대 소속의 치누크 조종사 선우재덕
소령이 나선다.
"국토 개발부 보다는 산업 자원부라고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리고 상공부와 재정
경제부는 비슷한 성격의 기관이 아닌가요?"
"국토 개발부는 그냥 놔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우 소령의 말대로 차라리 조선의
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 산업 자원부의 신설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상공부와 재정 경제부는 유사한 측면이 있지만 상업과 공업을 장려하기 위해서
상공부를 신설하고 재정 경제부는 한국에서의 개발연구원-KDI-처럼 국가 경제의
발전과 방향을 수립하는 부처로 나눴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김기현과 같은 KDI 출신의 엄기영 박사가 거들었다. 이렇게 각자의 의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김인호 박사가 최종적으로 마무리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부처가 기존의 부처 포함해서 모두 12개 정도인데 이정도로 충분할
것 같은데요...그리고 비변사를 없애는 대신 예전에 한국에 있었던 국가 안보
비상회의를 신설하면 좋겠습니다. 그 구성원도 역시 비슷하게 해서 말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김영훈이 김인호의 의견에 동의를 한다.
"지금 대궐에서 주상전하의 비서실 역할을 하는 조직이 승정원이 있고 주상전하의
신변 경호를 책임지는 곳으로 내금위(內禁衛)가 있는데 지금 현재 주상전하가 직접
정사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굳이 두 개의 조직이 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비서실과 경호실의 역할을 하는 곳을 통합해서 관리했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말이 임금의 스승이지 실제로는 임금의 경호와 비서 역활을 수행하고 있는 장현덕이
말했다. 장현덕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구의 필요성이 강력히 대두되는 실정이다.
지난 변란때 대전 환관이 장현덕을 죽이고 임금을 볼모로 잡는데 성공했더라면
상황은 훨씬 달라져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장대위의 말이 맞습니다. 그때 만일 우리가 주상전하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했다면
어쩔뻔 했습니까? 저는 장대위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이순신함 함장인 김종완이 동의를 하자 다들 수긍하는 눈빛이다.
이렇게 해서 정부 부처의 확대 개편 방향이 일단락됐다.
비변사는 비상임 국가 안보 비상회의로 개편되었고,
의정부는 국무부, 이조는 내무부로, 예조는 외무부로, 병조는 국방부로, 형조는
법무부로, 호조는 재정 경제부로, 공조는 상공부로 바뀌었다. 그리고 신설된 부처가
국토의 개발을 담당할 산업 자원부, 백성들의 교육을 담당할 문화 교육부, 의료와
보건을 담당할 보건 위생부, 해양 개발을 담당할 해양부, 농업 발전을 담당할 농림부,
총 12개의 정부 부처로 확대 개편하도록 결정했다. 그리고 임금의 경호실과 비서실
역할을 하게 될 추밀원(樞密院)이라는 기구를 만들기로 하였으며 섭정공 김영훈
직속의 대외정보부도 신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물론 기존 조선의 권력층과의
협의를 하고 최종적으로 어린 임금의 승인이 있어야 겠지만...
"이제 군제의 개편에 대해서 논의해 보겠습니다. 그전에 먼저 현재 우리가 우리가
보유한 인력과 장비에 대한 설명이 있겠습니다. 한대위 설명하세요."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특수수색대의 선임 소대장인 한상덕이 좌중의 한 번 훓어보더니 말을 한다.
"현재 저희 원정단의 총 인원은 사령관님을 포함해서 1234명입니다. 원정단은 민간
부문 인원과 군 부문 인원으로 나뉘어는데 세부적으로 사령관님이 지휘하는
특수수색대의 인원이 177명, 이순신함의 승무원이 98명, 삼별초함의 승무원이 80명,
청해진함의 승무원이 67명입니다. 그리고 항공대의 조종사들과 정비인원이
40명입니다. 또, 군과민 합동으로 이루어진 의무대가 45명입니다. 나머지 527명이
민간 부문의 과학자, 학자, 기술 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유가
무기와 장비는 항공대 소속의 헬기가 4대이고 군병력은 공히 개인화기로 K-2
자동소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일부 병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관과 부사관들은 권총을
휴대하고 있습니다. 소총의 경우 어마어마한 분량의 예비실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권총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특수수색대에서 81mm 박격포 4문과 K-3 분대
지원 기관총 14정, K-4 고속 유탄 발사기 14정과 엄청난 예비 탄약으로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관탄으로 불리는 KM25 휴대용 최루탄의 양도 상당합니다.
그리고 저격용 소총도 약 10정이 있습니다. 물론 수류탄도 역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화기들은 현재의 조선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들 이기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앞으로 우리가 편성하고 교육할 조선군에는 지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충분한 수량의 군복을 비롯한 개인장구들을 실어 왔기 때문에 근대적 의미의
보병용 소총만 생산하여 지급한다면 지금의 조선군을 얼마든지 현대적의미의 신식
군대로 개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원정단이 보유한 화력과 장비를
설명드렸습니다.
이제 조선의 군사력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현재 조선의 군 편제는 크게 지방군과
중안군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지방군은 8동에 분산되었으며 훈련의 양이나
병사들의 질에서 중앙군에 크게 뒤져있습니다. 중앙군은 크게 5군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훈련도감(訓練都監), 어영청(御營廳), 총융청(摠戎廳), 금위영(禁衛營),
수어청(守禦廳)으로 나뉘고 별동대 식으로 대궐을 경비하는 호위청(扈衛廳) 산하
호위영(扈衛營)이 있습니다. 훈련도감은 약 4500명의 병력을 가지고 있고 주둔지는
도성안 마포와 경희궁, 그리고 인의동에 분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어영청은 병력
약 1500명으로 구성 되었으며 도성 외곽과 경기도 일데에 분산 배치되어 있습니다.
총융청은 병력 약 750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북한산성(北漢山城)에 주둔하며 도성
외곽을 수비하는 부대입니다. 금위영은 주로 기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병력은 약
1800명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어청이 있는데 수어청은 병력 약 9500명에 남한산성(
南漢山城)과 경기, 강원도에 분산 배치되어 있습니다. 중앙의 오군영 소속 병력이
약25000명이지만 실제 서울과 서울 외곽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의 수는 약
15000명입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당장에 지방군까지 손대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중앙군은 앞으로 있을 프랑스, 미국과의 전쟁에 대비히기 위해서라도 대대적인
개편작업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한대위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지방군은 아직 손을 대기에 이른감이 있습니다만
중앙군만은 확실히 개편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하는게 좋겠소?"
김영훈이 끼어드는 김욱 대위에게 묻자 김욱이 대답한다.
"제 생각으로는 우선 중앙군을 통폐합해서 하나의 명령 체계를 가진 단일 군으로
편성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단일군은 크게 나눠서 서울안에 주둔하며 도성의
방비를 담당하는 내군(內軍)과 서울 외곽에 주둔하며 외곽을 방비하는 외군(外軍)
으로 편성하는 겁니다. 그래서..."
"잠깐, 외군과 내군이라는 명칭보다는 다른 명칭이 좋지 않을까요?"
"다른 명칭이라면 어떤 명칭을...?"
김욱은 자신이 말하고 있는데 끼어든 안용복 대위가 못마땅한 듯 쏘아본다.
"이왕이면 현대식으로 근위군(近衛軍)과 친위군(親衛軍)이 어떨까 합니다."
"그게 좋겠군..."
두 사람의 입씨름을 김영훈이 끼어들어 말린다.
"이왕이면 근위천군(近衛天軍)과 친위천군(親衛天軍)으로 부르면 좋겠군요. 그리고
그 병력들은 우리가 교육시키고..."
"좋은 이름인 것 같군요. 김사령관."
"김박사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아주 듣기 좋아요. 백성들이 우리들을 천군이라고 부르니, 새로운 조선군의 명칭도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으로 바꾸는 것이 아주 좋겠어요. 근데 한 가지 의문 사항이
있습니다."
"뭡니까? 박사님."
"아까 한 대위가 조선군에게 지급할 충분한 수량의 개인장구들을 준비해 왔다고
했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됩니까?"
"먼저 우리 군이 입고 있는 의복과 군화, 내의, 양말, 그리고 철모, 침낭, 군장들을
말하는 겁니다, 박사님. 그리고 동계 피복류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소총과 대검을
제외한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입니다."
"정확한 수량을 말해 줄 수는 없나요?"
"정확히는 약 10만의 병력에게 지급될 수량입니다."
"그렇게 많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박사님."
"조선의 군사들이 좋아하겠군요."
김인호 박사와 한상덕 대위의 말을 듣고 있던 김영훈이 결론을 내린다.
"아까 나온 의견대로 기존의 조선 중앙군을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으로 나누기로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생각에는 기존의 무과(武科)를 폐지하고 새롭게 우리식의
사관학교를 만들어서 사관학교 졸업생들을 초급장교로 활용하면 어떻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해군의 신설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우리
이순신함의 함장인 김종완 소령의 얘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제 생각에 제대로 된 해군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선소와 함께
대규모의 제철소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철소가 있어야 지금 시대에서 사용
가능한 제대로 된 철선(鐵船)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증기기관(蒸氣機關)
이나 증기 터빈도 필요하겠지요. 그리고 조선소와 제철소는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야 합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따라서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잠깐, 김소령!"
"예, 말씀하십쇼. 김박사님."
"앞으로 몇 년 지나면 프랑스와 미국이 쳐들어 올텐데 그때 우리 해군은 어떻게
대쳐할 생각이오? 지금의 전력으로 바다에서 물리치는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되오만..."
"물론 지금 우리 이순신함만으로도 충분히 바다에서 격퇴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가급적이면 우리 이순신함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때 가서
보시면 알 수 있겠습니다만 일단 그 문제는 저에게 생각이 있으니 맡겨주십시오."
"으-음, 알겠소. 김소령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그럼, 제철소와 조선소는 어디에 건설하는 것이 좋겠소?"
"저는 제철소는 황해도쪽이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조선소는
남양만쪽이 괞찮다고 생각합니다."
"황해도쪽과 남양만 이라면...?"
"황해도에는 일단 무엇보다 철광이 많이 있습니다. 그 철광을 개발하여 제철소를
짓고 21세기에 한국에서 건설한 해군의 모항이되는 평택쪽에 조선소를 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조수간만의 차가 그렇게 심하지 않고 한양과의
거리도 가까운 잇점이 있습니다. 황해도에서 만들어진 철강 제품을 해운을 이용해서
운반하면 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서 기존의 조선 수군은
일단 그대로 놔두고 필요한 인력만 저희들이 차출하여 교육시킬 생각입니다."
"일단 해군과 조선 분야는 김소령이 민간 기술자들과 잘 상의를 하세요. 우리중에는
조선 분야의 기술자들도 와 있으니...그리고 새로운 군 장비와 여러 가지 기술들을
개발하는 기관도 신설해야 겠군요."
조선의 정부 부처 확대 개편과 함께 해군을 제외한 군대의 개편 문제도 이렇게
결정되었다. 그리고 각부의 장은 장관(長官)이라는 명칭보다는 대신(大臣)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또한 성균관을 폐지하고 대신에 문과와 이과, 신학문을
가르치는 정규 대학으로의 신설을 모색하기로 했다. 그리고 김영훈을 따라 정부에
출사할 인원이 결정되었고 기존 사대부중에 새롭게 등용할 인물들도 어느 정도는
윤곽을 잡았다.
계속해서 신분 제도의 철폐와 법률과 교육문제, 서원 철폐, 토지 이용과 조세
문제들이 거론 되었으나 한꺼번에 모든 것을 실행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실시해 나가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김영훈은 머리가 아팠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도무지가 끝이 없었다. 젊디
젊은 삼십대 초반의 나이에 섭정공의 반열(班列)에 오른 김영훈은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와서 주저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서 잘못하면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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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전면등장(前面登場)...2
.. 전면등장(前面登場)...2
시간은 무심히도 흐른다.
전대 임금이 죽고 새로운 임금으로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새 임금이 돼든 말든,
흥선대원군이 김씨 일파에게 죽든 말든, 흥선대원군을 헤친 김씨 일파가 모조리
도륙이 나든 말든, 그래서 하늘에서 도래한 천군이 새롭게 조정(朝廷)의 실권을 쥐든
말든, 시간은 무심히도 흐른다. 지난해 섣달 저 피말리던 조정에서의 다툼도 이제는
더 이상 백성들의 관심이 될 수 없었다.
오늘은 설이다. 서러운 사람도 즐거운 사람도 모두가 부산스러운 명절이다. 참으로
말 많고 탈 많았던 계해년(癸亥年)도 가고 이제 새로운 갑자년(甲子年)이 시작되는
날이다.
하늘은 맑았고, 날씨는 포근했다.
정초, 아침부터 운현궁(雲峴宮)은 분주하기만 하다. 허물어졌던 운현궁의 긴 담장은
이제 말끔하게 수리가 되었다. 그 기다란 담장을 대궐에서 나온 호위영의 군사들이
기치창검(旗幟槍劍)을 번뜩이며 호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 오십여명의 천군이 솟을
대문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도열한 채 있었다. 그리고 분주하게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보다.
설빔을 입고 세배를 하러 골목길이 좁다고 누비고 다녀야 할 아이들이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운현궁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모두가 천군과 천군대장 섭정공 김영훈의
행차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이다. 오늘은 설, 정월 초 하루에 천군대장 김영훈이
대궐로 어린 임금께 신년하례(新年賀禮)를 올리러 가는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여
들었다.
"얼른 나서야 좋은 자리를 잡는다."
"빨리 빨리 길을 나서라!"
운현궁과 가까운 교동, 와룡동, 재동 일대의 백성들은 그렇게 분주하기만 했다.
운현궁에서 창덕궁으로 가는 길에는 깨끗이 눈을 치웠고 길가 요소요소엔 군막이
설치되었다. 그리고 큰 길가 역시 호위영의 군사들이 방비하고 있었다.
대궐에서 나온 대전내관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분주하게 돌아다녔다.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운현궁의 대문이 열리고 먼저 도승지 민치상이 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천군의
호위를 받는 김영훈이 예의 그 얼룩무늬 군복을 입고 나왔다. 이어서 다른
수행원들이 나왔다. 김영훈이 나오자 천군의 대열 선두에 있던 선임 소대장 한상덕이
천군을 돌아보며,
"섭정공 합하께 받들어 총!"
"충--성--!"
"충성!"
"충성."
길가에 주욱 늘어 서있던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보며 수근거린다.
"오-메, 저것이 뭔 짓들이데...?"
"자네는 그것도 모르는가? 저것이 바로 천군들이 상관에게 인사를 하는 모양이고만...
"
"뭔 놈의 인사가 저 모양이래..."
"내 눈에는 멋있기만 하고만..."
이윽고 김영훈이 말에 올랐고, 민치상이 교자를 탔다. 그리고 그 뒤를 천군이
질서정연하게 호위를 하며 행진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는 아녀자들은 자기들만의
관심으로 술렁거린다.
"참으로 멋지게 생기셨네. 어찌 저렇게 키도 크고 의젓하실까...?"
"원래가 하늘에서 내려 오신분이 아닌가. 범상(凡常)한 분은 아니지, 아니야..."
그러나, 일부 백성들은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
'어리디 어린 임금을 앉혀 놓고 저것들이 또 무슨 짓을 할려나...'
'바뀌면 뭐하나, 우리네 사는 모양은 거기서 거긴걸... 이번에 얼마나 시끄러울지...'
연도의 백성들의 이런 선망과 질시를 아는지 모르는지 행렬의 선두는 벌써 돈화문에
당도 했다.
임금이 정사를 돌보는 인정전(仁政展) 앞뜰에는 문무백관(文武百官)들은
품계(品階)에 따라 숙연하게 용상(龍床)을 우러러 보고 있었다.
그러나 문무백관들의 시선은 용상에 앉은 어린 임금보다는 그 오른쪽에 서 있는
섭정공 김영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운현궁을 출발해 대조전에 들른 김영훈은 먼저 임금에게 세배를 했고 지금은 어린
임금과 함께 신년하례식을 하기 위해 인정전으로 왔던 것이다.
또한, 오늘의 신년하례식은 단순한 하례식이 아니었다. 바로 지난 섣달에 있었던
김씨 일파의 변란을 진압하고 그 공으로 어린 임금의 명에 의해 섭정공에 취임(就任)
한 김영훈이 첫 취임 인사를 하는 날이 또 오늘이었다.
모두들 입을 꽉 다문채 김영훈의 입이 열리기만 기다리는데,
'과연 저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올 것이냐'
벌써부터 서울 장안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오늘 섭정공의 말씀은 날벼락이 틀림없을 것이다."
"조정에 출사할 새로운 조신(朝臣)의 이름이 발표될 것이다."
언제부터 이런 말이 퍼진지는 알 수 없으나 온 서울 장안은 이런 소문으로
술렁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섭정공 김영훈의 음성이 조용하면서도 힘있게 울려 퍼졌다.
"주상전하(主上殿下)의 명을 받들고 국태공 겸 섭정공의 자리에 오른 여(余)는
조정의 문무백관들과 천삼백만 조선 백성들에게 고한다."
문무백관들이 도열한 인정전 뜰앞을 다소 오만하게 굽어보며 김영훈은 말한다.
"태조대왕께서 썩어 빠진 고려(高麗)를 뒤엎고 새 나라를 창업(創業)하신지 어언
사백 여 성상(星霜)이 흐른 지금, 아조(我朝)의 조정은 지난 육십 여년 동안 김씨
일파의 국정 농단으로 인하야 누란(累卵)의 위기(危機) 처한게 작금의 실정이다.
육십여 년전 정조대왕(正朝大王)께서 붕어(崩御)하신 이후 일부 난신적자(亂臣賊子)
들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하야 백성들의 삶은 도탄의 질곡(桎梏)에
빠져 허우적거리게 되었고, 불공평(不公平)한 과세(課稅)를 등에 업은 일부 척족들의
가렴주구(苛斂誅求)는 극에 달하야 순박한 백성들로 하여금 호미대신 칼을, 가래대신
창을 들게 만들었다. 작금에 이르러 일부 권력에 눈이 먼 소인배들에게 급기야는
주상전하의 친부(親父)마저도 해침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이것은 모름지기 모든 대소신료(大小臣僚)들의 연대 책임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라 밖의 사정도 나라 안의 사정과 크게 다를바 없다. 여가 보기에 지금
우리 조선에 눈독
들이는 외이(外夷)는 너무도 많다. 대국(淸)은 물론이고 왜(倭)국을 위시해서 법국(
法國)이니 영국(英國)이니 하는 양이(洋夷)들의 마수(魔手)가 우리 조선의 목덜미를
노리고 있다. 왜는 수교(修交)라는 허울아래 이
나라에 발을 들이기만 학수고대(鶴首苦待)하고 있고, 양이는 서학(西學)이라는 것을
촉수로 삼아 조선을 노리고 있다. 실로 개국이래(開國以來) 이 나라 최대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모든 문무백관들은 명심하라! 여는 이 난국(亂局)을 타개하기 위하야 여에게 주어진
모든 대권을 행사하여 부패한 이도(吏道)를 혁파할 것이며, 땅에 떨어진 민심을
수습할 것이며, 모든 잘못된 관행(官行)을 바로 잡을
것이다. 이런 여의 뜻을 따르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으면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러나, 여와 뜻을 같이하여 이 나라 천삼백만 백성들의 삶을 구제하고,
이반된 민심을 바로잡아 주상전하의 성은(聖恩)에 보답할 생각이 있는 자는 여의
지시에 충실히 따를지어다.
모름지기 이도의 근본은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따르고 모시어 그 백성들의 뜻을 잘
받드는 것에 있다 하겠다. 모든 대소신료, 상하관헌들이 여의
뜻을 잘 따라 백성들을 어버이처럼 받들고 섬긴다면 아조는 다시 한 번 국운융성(
國運隆盛)의 길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모인 대소신료들과 여기에 없는
다른 모든 관헌들은 이러한 여의 뜻을 잘 헤아리리라
믿는다. 여의 뜻은 곧 주상전하의 뜻과 같음이니..."
문무백관을 눈 아래 두고 좌중을 휘어잡는 모습은 마치 한국에서 5.16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고 서른 몇의 나이에 나라에서 대통령 다음 가는 권력을 손에 쥐고 형형한
안광(眼光)을 뿜어내던 그 시절 김종필의 모습처럼 거침이 없었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듣고만 있었다. 한결같이 가슴속에서 찬바람이 불고
지나간 것 같았다.
'무서운 사람이구나.'
'과연 천군대장이구나.'
'과연 기회가 될 것이냐...아니면 위기가 될 것이냐...'
도열한 문무백관들이 이렇게 통밥을 굴리는 사이 김영훈의 말이 끝났다.
창덕궁 인정전 뜰 앞에서의 신년하례식이 끝나자 참석했던 문무백관들은 김영훈의
명에 의해 이곳 희정당에 모였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김영훈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가 이렇게 모든 대소신료들을 한자리에 모이시라 한 것은 새롭게 조정의 관제를
개편하고 그 관제에 출사하실 분들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관제 개편이라니, 출사라니...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장현덕이 홀연히 나타나
손에든 문서를 읽는다.
"추밀원 원장 장현덕은 삼가 주상전하의 명을 받은 섭정공 합하께서 친히 개편하신
관제를 여러 대신들에게 아뢰오. 주상전하의 명을 받은 섭정공은 첫 정사로 다음과
같이 결정하여 추밀원에 통고한다."
문무백관들은 애써 태연한 척 하면서도 모든 신경을 집중해서 듣는다.
"먼저 그동안 유명무실했던 의정부의 삼정승과 육조를 확대개편는 바이다. 먼저
삼정승를 없애고 육조를 12부로 확대한다. 삼정승(三政丞)의 자리에 국무부(國務府)
를 신설하고 그 장(長)은 총리대신(總理大臣)이라 칭한다. 이조(吏曹)는 내무부(
內務部)로 개편하고 그 장은 내무대신(內務大臣)이라 칭한다."
의정부 삼정승은 국무부 국무대신으로,
이조는 내무부 내무대신으로,
예조는 외무부 외무대신으로,
병조는 국방부 국방대신으로,
형조는 법무부 법무대신으로,
공조는 상공부 상공대신으로,
호조는 재정경제부 재경대신으로 바뀌었으며 신설된 나머지는 건설교통부 건교대신,
해양부 해양대신, 문화교육부 문교대신, 농림부 농림대신, 보건위생부 보위대신이
되었다. 그리고 승정원과 내금위를 통합하여 추밀원이 되었다. 또한 섭정공 직속으로
대외정보원를 신설하였다.
마침내 장현덕의 말이 끝나자 원로 대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 먼저 원상
정원용이 포문을 열었다.
"불가(不可)하오, 불가하외다."
"무엇이 불가하다는 말씀이십니까?"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오른 정원용에게 김영훈이 놀리듯이 묻는다.
"불가하외다. 아조 사백년과 고려조 오백년을 이어온 육조와 삼정승을 폐하고 무슨
무슨 부에 대신이라니, 이럴 수는 없소이다."
"본인의 생각도 정원용 대감의 생각과 같소이다."
이번에는 조두순이 나섰다.
"흐-음, 그래요..."
"그렇소이다."
"그렇소이다."
김영훈이 좌중을 한 번 둘러보더니 정원용에게 묻는다.
"정원용 대감께서는 육조가 몇 년을 이어왔다고 했소이까?"
"장장 구백년을 이어온 전통이오이다."
"구백년요...?"
"그렇소이다."
"그럼 그 구백년동안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아십니까?"
"세상이 바뀌다닌 그게 무슨 소리요?"
"구백년 동안 고려조는 무너지고 새롭게 조선이라는 왕조가 창업되었지요. 또한
구백년 전에는 우리 백성들이 고작 칠백만 정도였는데 지금은 그 두배 가까이 늘어서
천삼백만이 되었지요."
"그것이 무슨 상관이요?"
"상관이 있습니다. 세상은 시시각각(時時刻刻)으로 변하고 있고, 백성들의 숫자는
늘어만 가고 있고 그에 따른 백성들의 삶의 모습도 여러 가지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아조의 행정조직은 구백년 전의 모습만 고수하고 있으니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늘어나는 민원(民願)을 효율적으로 수렴하고 관리하지 못했다는
말씀이오이다. 따라서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인습에 얽메이게 되었고 그 인습은
백성들의 삶을 고단하게 하였소이다. 저는 이것을 바로 잡고 보다 효율적인 행정을
펼치기 위해서 12부로 개편하는 것입니다."
정원용과 조두순은 할 말을 잃었다.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승정원과 내금위를 통합하여 추밀원을 만들고 새로이 대외정보원을 신설하는
이유는 무엇이오?"
정원용이 마지막 발악을 하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 이유는 먼저 그동안의 승정원은 너무도 방만하게 운영되어 왔소이다. 그리고
내금위는 지난번 변란때 감히 무엄하게도 주상전하를 시해하기 위해서 칼을 들이댄
경력이 있소이다. 따라서 그 조직을 놔두고는 어리신 주상전하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소이다. 따라서 새로이 추밀원을 만들어서 주상전하의 신학문 스승인
장현덕으로 하여금 원장의 소임을 맡기는 것이오이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대외정보원는 급변하는 대외정세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정보의
중요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외정보원의 신설은 시대의 흐름이라 할
것입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김영훈의 입에서 누구에게나 바늘로 찌른는 것 같은 '변란'
이라는 소리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누구도 지난 번 변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원용은 변란이 일어나기 전 적극적으로 흥선의 섭정을
추진하지 않았으며, 조두순은 앞장서서 조대비의 섭정을 부추기지 않았던가. 그것은
옆에 자리하고 있던 김병학 김병국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처음으로 변란을
신고하기 위해 달려온 두 사람이지만 두 사람에게는 김씨 일파였다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계속하시오. 추밀원장!"
김영훈이 계속할 것을 지시하자 장현덕의 입이 다시 떨어졌다.
"주상전하의 어명을 받든 섭정공께서는 새로운 조정의 대신들을 다음과 같이 정하여
추밀원에 통고한다. 먼저 원상 정원용에게 조정의 영수인 국무부 총리대신을 제수(
除授)한다."
순간, 여태까지 토를 달고 딴지를 걸었던 정원용이 허리를 구십도로 굽히며 절한다.
그래도 권력이 좋긴 좋으니까...
"김병학에게 내무부 내무대신을 제수한다. 유후조에게 외무부 외무대신을 제수한다."
좌중은 아연 실색했다. 정원용에게 총리대신을 제수했을 때만해도 그럴수 있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김씨 일파인 김병학에게 내무대신을, 남인인 유후조에게
외무대신을 제수하자 문무백관들은 한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섭정공은 당파(黨派)를 무시하는구나!'
-국방대신에 김병국, 법무대신에 조두순, 상공대신에 박규수, 재경대신에 김기현,
건교대신에 김정호, 해양대신에 이기동, 문교대신에 최한기, 농림대신에 김인호,
보위대신에 유홍기를 제수하였다.-
좌중은 또 다시 끓어 올랐다. 이번에도 정원용이 먼저 포문을 열었다.
"섭정공 합하, 저나 조두순 김병학 김병국 유후조 박규수는 이해가 가온데, 나머지
대신의 반열에 오른 인물들은 생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근거로 이러한
인사 조치를 단행하였는지..."
"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
"..."
좌중은 말이 없었다.
"김기현 이기동 김인호등은 저와 함께 도래한 사람들이고 나머지 최한기는
한운야학처럼 고고하게, 시골에서 학문에 힘쓰시고 계시던 것을 이번에 특별히 제가
모셨으며 그리고 유홍기는 중인 신분의 의원으로 비단 의도에 조예가 깊을뿐만
아니라 신진 사상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기에 보위부를 맡긴 겁니다.
마지막으로 김정호는 우리 조선에서 제일 가는 지리학자입니다. 제 생각에 그 만큼
우리 산천의 지리와 자원에 해박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 원로 대신들께서
무엇을 걱정하고
계신지는 저도 잘알고 있습니다. 바로 미천한 신분의 자들이 대신의 반열에 오른
것에 불만이 있으시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이미 지난 철종대왕
시대에도 상인이나 중인의 신분으로 관장(官長)의 위치에 오른 이들은 많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께서는 지난 순조대왕의 시대에 호남과 영남의 젊은 유생들 9996명이
서얼(庶孼)도 차별없이 등용할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던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요?
이른바 만인소(萬人疏) 사건이라고 하오만, 또한, 김씨 일파의 육십년 세도 기간
동안 참으로 많은 인재들이 정치에 환멸을 느껴 초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
말은 쓸만한 인재들은 안동 김씨 일파에 회유되어 그 청정하고 고고함을 이미
잃었다는 말이 되며 또한, 저들의 편이 아닌 인재들에게는 여지없이 철퇴가
내려졌으니 올바른 인재가 제대로 된 뜻을 펴기가 어려웠다는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저는 당파와 신분의 귀천에 관계없이 모든 인재들을 골고루 등용하여 활용할
것입니다. 이것은 저의 뜻인 동시에 주상전하의 뜻이기도 합니다."
좌중은 할말을 잃었다. 아니 할말이 있을 수 없었다. 구구절절히 옳은 말이기도
했지만 스스로 지난 세월 굴신(屈身)하며 득세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정의 개편은 이렇게 마무리 되었으며 군부의 개편도 섭정공 김영훈이 원정단
수뇌부와 의논한대로 결정되었다. 중앙의 오군영(五軍營)을 통합한다고 했을 때는
놀라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군영을 통합해서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으로 나눈다고 했을
때는 의당 그러려니 했다. 그런 근위천군
대장에 특수수색대 2소대장이었던 김욱이 등용되었으며 친위천군 대장에
는 3소대장이었던 안용복으로 결정되었다. 마지막으로 대외정보원 원장에
한상덕 1소대장이 내정되었다.
섭정공 김영훈의 조정 개편과 인사 소식이 백성들 사이에 퍼지자 서울 장안의
백성들은 놀라움에 기쁨을 느낌과 동시에 얼마나 가려나 하는 의구심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젊은 나이에 걸맞는 배포에 혀를 내두르는 백성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섭정공 김영훈이 또 얼마나 엉뚱한 일을 벌일지 관심을 가지고 운현궁의
동정을 살피는 이들도 많았다.
세간의 그럼 관심을 아는지 운현궁의 대문은 활짝 열린 채 연일 출입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전면등장(前面登場)...3
.. 전면등장(前面登場)...3
흥선이 주인이었던 시절의 운현궁은 집터만 덩그라니 컷지 담장은 다 허물어 가고,
솟을 대문의 단청은 다 벗겨졌었는데 이제 세상이 바뀌고 집의 주인도 바뀌게 되니,
때 아니게 보수를 하고, 증축을 하고, 뭐를 올리고, 뭐를 허물고, 뭐를 새로
짓는다고 연일 북새통이다.
지금 운현궁의 뒤쪽의 너른 공터에는 도래한 천군과 일꾼들의 손에 의해서 뭔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약 10여명의 천군과 1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일꾼들이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조선의 일꾼들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익숙치 않는데, 천군은 익숙한
솜씨로 일을 하고 있었다.
"여보시오! 거기는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이렇게 조이라고 하지 않았소?"
"죄송합니다요, 나으리..."
"알면 됐어요. 빨리 빨리 서둘러 주세요. 곧 날이 어두워 집니다. 해가 지기 전에
이걸 설치해서 가동 시켜야 합니다."
"예, 나으리..."
일꾼들을 감독하고 있는 사람은 민간인 원정단원으로 한국에 있을 때 한국 에너지
기술 연구원 고온 태양열 연구센터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던 태양열 발전 기계
설비의 권위자인 최상태 박사였다. 최상태는 지금 운현궁의 뒤뜰에서 높이가 50M에
가로 세로의 너비만도 각각 20M와 30M나
되는 대형 태양열 집열판을 조립하고 있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위성 안테나와 닮은
원형의 집광기가 곳곳에 세워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런 태양열 집열판과 집광기를
원정단은 10기나 가져와서 필요한 곳에 세우도록 계획하였고, 지금 그 첫 번째 발전
설비가 막 완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대궐안 대조전 뒤뜰에서도 운현궁에서와 똑같은
일이 다른 천군의 감독 하에 진행되고 있었다. 태양은 엷은 빛을 방대한 지역에 걸쳐
뿌리기 때문에 이 열을 가정이나 발전소에서 이용하려면 수 많은 집광기를 배열해
태양열이 집열판으로 집중되도록 해야한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집열판에 모인
태양열을 발전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태양열 발전의 원리는 의외로 간단해서 집열판에 모인 태양열을 이용해 공기를
데우고 이 더워진 공기가 한쪽에 설치된 발전실에 빠르게 빨려 올라가게 되고
거기에서 발전을 해서 에너지를 공급하게 되는데 원정단의 계산으로는 약 10kW급의
전력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러한 태양열 집광 시스템 기술은
21세기에서도 전 세계에 약 5개국만 갖고 있는 기술이고 아시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만이 보유한 첨단의 기술이다.
또한 원정단은 고집광 기술을 토대로 한 태양열 발전, 태양열 화학 설비에 필요한
초고온 태양로를 5기나 가져왔기 때문에 앞으로 조선에 들어설 각종 산업 설비를
갖추고 생산을 하는데 주요한 시설이 될 것으로 수뇌부에서는 기대하고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신년하례식을 마치고 운현궁으로 돌아온 김영훈은 몇 명의 손님과
함께 아재당(我在堂)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그 몇 명의 손님은 이번에
새로이 조정에 출사한 최한기, 김정호, 유홍기, 박규수 등이다. 아무래도 세력이
부족한 김영훈이 기존 수구(守舊) 대신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모임이었다.
네모나면서 널찍한 교자상(交子床)을 둘러싸고 이번에 출사한 네 사람과 김영훈이
마주 앉아서 밥을 먹는 품새가 사뭇 다정해 보인다.
교자상의 가운데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신선로가 있는데 그 안에 끓고 있는
전골은 꿩의 앞 가슴살을 요리한 것으로 그것만이 약간의 사치라면 사치일까, 나머지
반찬은 청어구이와 갈비 몇 점 그리고 작년에 담가뒀던 오이소박이와 김장 김치가 한
보시기 올라왔을 뿐인 교자상은 한 나라의 섭정공과 대신들의 신분에 어울릴 만한
상차림은 아니었다.
김영훈이 중간중간 말을 할 뿐 나머지 대신들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심지어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지경인 사람도 많았다. 왜 아니겠는가, 이
자리에 참석한 대신 중 박규수만이 몇 년 전에 연행부사(燕行副使)로 청나라에
다녀온 경험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관직이라곤 시골 관아의 아전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지 않는가. 더군다나 유홍기와 김정호는 양반의 신분이 아닌 중인의
신분이지 않는가.
김영훈은 사람들의 그런 낌새를 아는지 모르는지 가끔씩 다른 이들에게 송순주(
松荀酒)를 권하기만 할 뿐이었다.
엊그제 만해도 도성 밖의 다 쓰러져 가는 집에서 몇 년 전에 완성한 대동여지도(
大東輿地圖)의 교간(校刊)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김정호에게 뜻밖의 손님이 찾아온
것은 바로 어제 오후였다. 부랴부랴 섭정공께서 찾는다는 소식에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찾아온 김정호이기에 건설교통부를 새로 신설하고 그 장에 자신을
앉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고 생각했던
김정호였다. 그런데 섭정공 김영훈이 오늘 대궐에서 있었던 신년하례식에서 자신에
대한 발표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죽은 아내가 무덤에서 살아 나온 것 같은
충격을 받았던 김정호다.
어느덧 늦은 점심이 끝나고 교자상이 물려졌다. 교자상이 나가자 찬모가 해주반(
海州盤)에 약간의 다과와 술을 준비하여 가져왔다.
"고산자 대감, 제 술 한 잔 받으시지요."
"황공하옵니다., 섭정공 합하."
김영훈이 권하는 술을 김정호는 황공한 기분에 두 손으로 받는다.
그런 김정호의 모습을 본 김영훈은 다른 이들에게도 차례로 술을 권한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이 다 정신이 없을 줄 압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이렇게 모신
이유는 앞으로 제가 이 나라의 정사를 돌보면서 여러 대감들의 도움이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다들 소식은 들으셨겠지만 오늘 제가 신년하례식에서 여러분들에게
대신의 자리를 제수했습니다. 대신이라면 옛날의 판서(判書) 신분이지요. 어리둥절
하시겠지만 앞으로 이 나라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는 여러 대신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김영훈이 이렇게 말을 하자 좌중에서 제일 연장자인 최한기가 나선다.
"섭정공 합하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도움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아닙니다. 정말로 저는 여러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원래는 대원위 대감께서
맡았어야 할 자리인데 그분께서 불의의 변을 당하시고 이 자리에 오른 저이고 보니
참으로 책임이 막중합니다. 더구나 저는 군인으로서의 일생을 살아온 사람이지
정치를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 했습니다."
"군인이라시면..."
이번에는 박규수가 말했다.
"저는 원래 제가 있던 사회에서는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다보니 하루
아침에 정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합하! 제가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감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박규수가 다시 말을 했다.
"뭐든지 궁금하신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여기 있는 저희들 뿐 만 아니라 이 나라 천삼백만 백성들은 아직까지 합하를 비롯한
천군에 대해서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실정입니다. 해서, 모든 백성들은 그것이 가장
궁금할 것입니다. 합하를 비롯한 모든 천군이 정말 조선 사람이 맞사옵니까?"
"하하하- 그게 궁금하시었군요, 하기는 궁금들 하셨을 겝니다. 그동안 우리 천군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니까요. 저를 비롯한 우리 천군들은 모두가
조선 사람이 맞습니다. 다만,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니시라면...?"
유홍기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끼어 든다. 발칙한 놈 같으니...
"실은 저희들은 이 시대 사람이 아니라 먼 미래에서 왔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좌중은 어이가 없었다. 왠 미친놈의 농(弄)이라고 치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김영훈의
말이 이어질수록 빠져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조선이 왜놈들에 의해 망하고
강제로 식민지가 된다는 대목에서는 눈알이 튀어나올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약과였으니, 조선의 백성들이 나라 잃은 설움에 정처 없는 유랑 생활 끝에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한다는 얘기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의분(義憤)을 느끼기도
했다.
좌중은 지금 정적에 휩 쌓여 있었다. 누구도 먼저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너무 큰 충격을 받으면 할 말을 잃는다고 했던가. 모두가 꼭 그 모양이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리셨습니까?"
"그럼 합하께서 봉황을 타고 왔다는 소문은 거짓이었습니까?"
좌중을 대표해서 박규수가 물었다. 역시 먹물은 좀 다르다니까...
"그 봉황은 저희가 보유한 일종의 기계입니다. 우리 시대에서는 아주 보편적인
기술이지요. 그리고 저희가 가지고 온 장비 일체는 저희가 살던 시대에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럼, 지금 뒤뜰에서 한참 만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 그거요... 일어나시지요. 직접 가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뒤뜰에는 이미 집광기가 곳곳에 세워졌고 집열판마저 세워져 시험 가동준비가
한창이었다. 김영훈이 일행을 이끌고 나타나자 멀리서 최상태가 뛰어왔다.
"어서오십시오, 사령관님."
"어떻게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박사님?"
"이제 시험 가동에 들어가면 됩니다. 다만 걱정이 있는데 지금이 겨울철이라 제
성능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다면...?"
"원래는 10kW급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으나 지금은 그 절반 정도의 전력밖에 얻을 수
없겠습니다. 겨울철이라 일조량이 부족해서리...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누구십니까?"
"아- 소개가 늦었군요, 이 분들은 이번에 새롭게 대신이 되신 분들입니다. 인사들
나누세요. 그리고 이 분들에게 이 물건을 설명 좀 해주세요."
김영훈의 소개로 최광태와 인사를 나눈 대신들은 최광태의 설명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윽고, 태양열 발전 시스템은 한쪽에 마련된 발전실에서 위-잉 하는 소리와
함께 가동에 들어 갔는데 한참을 돌아가던 발전기의 시스템이 정상 궤도에 오르자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으며 돌아갔다. 최광태의 안내로 발전실 내부를 돌아본
대신들의 눈은 휘둥그레 돌아갔고 천장에 걸려 있는 하이얀 형광등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마냥 신기한 모습이었다.
"이제 제 얘기를 믿으시겠습니까?"
"합하의 말씀은 믿겠소이다. 하지만...?"
"하지만 뭡니까?"
"하지만 저것과 같은 앞선 기술이 있는데 굳이 우리들의 도움을 원하는 이유가
궁금하오이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불과 천이백 여명의 힘만으로는 이 나라를 통째로 바꿀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백성들의 의식이 깨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신분사회가 철저했습니다. 박규수 대감께서는 양반에 권문세가(
權門勢家) 출신이기에 잘 모르시겠지만 상민의 신분에 있는 백성들의 고초는 이루
헤아리기가 힘듭니다. 나라가 왜 있습니까? 바로 백성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바로
나라입니다. 지금 이 나라가 잘못된 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백성을 위한 나라가
되야 하는데 나라를 위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에까지 왔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종주국(宗主國)으로 생각하고 섬겼던
청나라가 양이들의 침략에 힘 한 번 못 쓰고 주저앉은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이미
서양 제국(諸國)은 백성을 위하여 나라가 존재하는 시대입니다. 아니 백성이 나라의
주인인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조선이나 청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 차이가
나타난 것이 지금의 청나라와 서양 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 천군은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조선에 왔습니다. 물론 힘이 들겠지요.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실패한다면 결코 우리 조선은 우리 조선을 노리는 양이들의
손길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좌중은 또 한 번의 충격에 휩 쌓였다. 그만큼 김영훈의 말은 엄청난 내용이었다.
잘못했다가는 역모(逆謀)의 누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우리 천군이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죽을 고생하면서 조선에 왔겠습니까?
권세나 재물을 탐해서 이 조선까지 왔겠습니까? 아닙니다. 권세와 재물은 우리가
살던 시대에서도 우리는 이미 충분히 누리고 있었습니다. 왜 왔느냐! 바로 힘없는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 더 이상의 고생을 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조선이 더 이상 외세의 침입에 전전긍긍(
戰戰兢兢)하지 않는 그런 자랑스런 나라를 만들기 위해 왔습니다."
"..."
"..."
"..."
"..."
좌중은 할말을 잃었다. 뭔가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정하고 천도(遷都)한
이래로 조선의 정궁(正宮)은 경복궁(景福宮)이었다. 그리고 그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
光化門) 앞에 의정부(議政府)를 위시한 주요 관청들이 들어섰는데 그 거리를
육조거리라 불러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임진년의 왜란으로 인하여 경복궁이 불타고
그에 따라서 육조거리도 황폐하게 되었다. 정궁인 경복궁도 제대로 중건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육조거린들 온전하게 정비가 되었겠는가. 중수(重修)의 손길은
미치지 못하였고 중요한 부분만을 그때그때 수리해서 사용하여 왔던 것이니, 정부
청사의 모습이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린 임금의 즉위 후 여러 가지 새로운 건설,
새로운 시정 계획이 진행됨과 함께 이러한 여러 관아의 중수 개건(改建)은 절실히
요청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섭정공의 영단(英斷)으로 먼저 육조거리를 정비하기 시작했는데 새롭게
12부로 개편된 정부 부처에 따라 12부와 여러 관아들도 중수하게 되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를 일컬어 12부 거리 정비사업이라고 하였다. 원래는 경복궁을
먼저 복원 중수하는 것이 일의 순서이겠으나 나라의 형편상 경복궁의 중수는
나중으로 밀려졌다.
도성 안의 백성들은 요즘 살맛이 났다. 원래 겨울은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춥고
괴로운 계절이다. 그런데 섭정공이 정권을 잡고 나서 여러 가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거리들이 많이 생겨서 그런대로 품삯을 받아서 먹고 살 수 있었다. 그것도
평소보다 많은 품삯을 받는데 어찌 일이 즐겁지 않겠는가.
"김박사님, 12부 거리 정비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습니까?"
김영훈이 배석한 재경대신 김기현에게 물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합하. 지금 도성안의 백성들이 너도 나도 몰려와서 일을 하고
있으니 순조롭게 진행될 것입니다. 원래 계획은 가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였는데
약간 땅겨질 수도 있겠습니다."
김기현은 원정단 출신답지 않게 김영훈에게 합하라는 경칭을 거리낌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몇 몇 사람들을 제외한 다른 원정단원들은 아직 익숙치 않았고, 또 낯이
간지러워서 잘 붙이지 못하는데 김기현은 잘도 부른다. 넋 살도 좋은 놈 같으니...
"자금이 모자라지는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안동 김씨 일파에게서 몰수한 재산이 엄청납니다. 동산(
動産)과 부동산(不動産)을 합치면 조선의 국가 예산을 3년은 충당하고도 남습니다."
"오-, 그래요?"
"그렇습니다. 정말 나쁜 놈들입니다. 얼마나 해 쳐 먹었으면..."
"그리고 백성들에게 충분한 품삯을 지급해야 합니다. 절대로 민폐(民弊)를 끼치면
안됩니다. 아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충분한 보수를 지급하고 있습니다."
"대궐에는 좀 보냈습니까?"
"대궐에도 내탕금(內帑金)조로 30만냥을 보냈으니 당분간 충분히 사용할 겁니다."
김기현과 얘기하던 김영훈이 말머리를 한상덕에게로 돌린다.
"대외정보원을 만드는 일은 잘 되고 있습니까 한원장?"
"지금 한창 작업중에 있습니다. 먼저 지난 변란중에 살아남은 대원위 대감의
수하였던 천하장안을 동원해서 요원 선발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워낙 장안에서 난봉꾼
소리를 듣던 사람들이라 어디를 염탐하고 무엇을 알아내는데는 일가견(一家見)이
있습니다. 일단 제가 데리고 있던 소대원들과 그들이 데려 온 이들을 주축으로 해서
창설 요원으로 삼을 것입니다. 그리고 운현궁의 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정식으로
요원들을 선발하여 출범할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령관님?"
"뭡니까?"
"대외정보원의 청사는 어디에 두실 생각입니까? 지금은 임시로 운현궁에 들어와
있지만 아무래도 12부 거리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원래가 정보부라는 것은 일반인의 눈을 피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눈을
피하는데는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지요. 또 공사가 마무리되면 전기와 컴퓨터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있고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리고 12부로 개편된 정부 부처와 지방 관아에도 요원들을 침투시켜야 할겁니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세 사람의 숙의(熟議)는 한 참을 더 계속되었다. 뭔 얘기가 그렇게도 많은지...
운현궁에도 밤이 찾아왔다.
오후에 시험 가동에 들어간 태양열 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지금은 사람이
상주하는 모든 방과 뜰에 이미 할로겐 전구를 달았고, 그래서 밖에서 보면 마치
우리가 밤에 남대문이나 광화문을 보는 것 같이 아름답게 보이는 운현궁이다. 그
운현궁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많이도 온다, 썩을놈들... 작가 좀 쉬게 해주면
안되나...
"어서 오십시오, 두 분 대감."
밤 늦은 시간 운현궁에 찾아온 손님은 다름 아닌 김병학, 김병국 형제였다.
"무슨 일로 저희들을 찾으셨습니까 합하?"
"뭐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두 분께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요."
"무슨 말씀이신지..."
김병국이 형인 김병학을 제치고 먼저 묻는다. 건방진 놈 같으니...
"아-, 별일 아닙니다. 지난 번 변란 때 두 분께서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크게 낭패를
볼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감사(感謝)의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습니다. 두 분 대감, 그때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행히 두 분께서 알려주신
덕분에 부대부인만이라도 무사하실 수 있었습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다 저희 가문이 저지른 일인걸요..."
"그렇습니다. 망극하게도 저희 가문에서 그런 일을 저질렀으니..."
김병학과 김병국은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던 김영훈은 두 사람이 안되어 보이는지 위로를 한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그래도 두 분이나마 이렇게 무사하시니 다행입니다.
제가 얼떨결에 섭정공의 자리를 꿰차고는 있지만 원래 이 자리는 대원위 대감께서
앉을 자리입니다. 참으로 죄스러운 마음 금할 길 없지만 이왕지사(已往之事) 이렇게
된 일, 저는 성심을 다해 주상전하를 보필하고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어루만질
것입니다. 모쪼록 두 분께서도 이런 저의 마음을 헤아리시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응당 저희들이 섭정공 합하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
해야지요."
김영훈의 말에 김병국이 살길을 찾았다는 듯이 답했다. 그러나 김병학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그런 김병학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저희는 저희 집안에서 그동안 저질렀던 실정(失政)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의 죄 값을 치를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죄 값이라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두 분에게 내무대신과 국방대신을
제수한 까닭은 다 두 분의 능력과 성품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천(
歸天)하신 대원위 대감은 저에게 누누이 말씀하셨습니다. 안동 김씨 일파의 모든
사람을 죽여도 두 분만은 그럴 수 없다고, 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내무대신
김병학 대감과는 장차 사돈지간이 되실 사이라고...혹여라도 지난 번의 일로
의기소침(意氣銷沈)하셨다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잊으십시오. 그리고 제가
감히 장담하건데 주상전하의 배필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행여라도 못된 무리들이
그 일을 빌미로 대감의 영애(令愛)와 주상전하와의 혼사(婚事)를 방해한다면 제가
가만 있지 않겠습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저를 도와서 올바른 국정을 이끌어
나가십시다. 이 말씀을 드리기 위해 두 분을 청한 겁니다. 부디 다른 생각일랑
마시고 저를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김병학과 김병국은 죄인의 심정으로 운현궁에 들었으나 오히려 김영훈이 이렇게
말하고 청하자 감격했다. 어느새 두 사람의 얼굴에는 훈훈한 미소가 드리워 지고
있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전면등장(前面登場)...4
번호:4738 글쓴이: yskevin
조회:914 날짜:2003/09/10 14:11
..
전면등장(前面登場)...1
밤이 으슥해서야 운현궁에서 나온 김병학과 김병국의 얼굴은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구종별배가 앞뒤로 호종하는 남여(藍輿) 두 대를 타고 사동 집으로 돌아가는 두
사람은 마치 십 년 묵은 채증이 내려간 듯 시원한 모습이다.
"형님은 섭정공의 말을 믿으십니까?"
"섭정공을 말을 믿냐니? 그게 무슨 소린가?"
"아, 거 있잖습니까? 천군을 비롯한 자신들이 미래에서 왔다는 얘기 말입니다.
오자마자 흥선을 만났고, 주상전하의 등극 일에 맞춰 봉황을 타고 주상전하를
옹위하기 위해서 내려 왔다고 했지 않습니까? 또, 뭐시냐 저들이 보여준 신기(神奇)
한 것들을 믿으시냐는 말입니다."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않는가. 그날 밤의 일은 우리 두 사람이 직접 보고 겪었던
일이 아닌가, 앞으로의 일이야 차차 겪어 보면 알게 될 것이고... 지금까지의 일들은
믿지 않을 도리가 없지..."
"..."
"자네도 알고 있지? 내 집에 가끔 찾아오는 술사 말이야?"
"아-, 그 박유붕인가 하는 술사 말입니까?"
"그래."
"아니, 그 술사가 왜요? 무슨 일이라도 있었습니까?"
"아까 섭정공께서 말씀하셨 듯이 내 딸아이와 주상전하와는 이미 오래 전에 혼인을
하기로 약조가 되어 있었네. 그래서 내가 박유붕에게 흥선의 관상을 봐 달라고
부탁을 했던 일이 있었네."
"형님이요? 그래서요?"
"그때 박유붕이가 저잣거리에 나온 흥선과 주상전하를 만났었고, 내게 와서 얘기를
하기를 주상전하는 왕재(王才)임에 틀림이 없고 흥선은 봉황이 내려와 힘을 보태줄
거라는 얘기를 했었네. 그때 나는 하두 황당한 얘기라 그냥 흘려 듣고 말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그이가 말했던 봉황이 섭정공과 천군을 얘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아무튼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그이의 얘기가 크게 틀리지는 않은 것 같네...자네나
나나 섭정공의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야..."
"..."
"어찌 됐든 몸가짐을 각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야..."
"알겠습니다, 형님."
"그나저나 그 전기(電氣)라는 것 말이야,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정말 신기한 물건이더군요. 어찌 그렇게 조그만 물건이 그렇게 밝은 빛을 뿜어낼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더군요...?"
"어쩌면 섭정공의 말처럼 그동안 우리 조선은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도 모르지.
자신이 살고 있는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인줄 아는 그런 개구리 말이야."
두 사람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이미 남여는 사동에 접어 들고 있었다.
아침 일찍 운현궁의 솟을대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젊은 사람 넷이 나왔다. 바로
천하장안이었다. 운현궁을 빠져 나온 네 사람은 어디로 가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뿔뿔히 흩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은 채 제 갈 길을 가는
모습이 사뭇 비장하게 보였다.
김씨 일파가 앉힌 허수아비 임금이 죽고 흥선의 작은 도령이 임금이 되자 천하장안은
임금의 친부인 흥선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자부심에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고
모가지는 자동으로 뻣뻣해 졌었다. 그러던 그들이 하룻밤 사이에 주인 잃은 똥개의
신세가 된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변란이 있던 그날 밤 지금은 섭정공이
된 천군대장 김영훈의 심부름을 갔다온 사이에 이미 흥선은 피바다 속에 몸을 누인
채 한 많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머릿속이 멍한 채로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게 시간이 살 같이 흘렀다. 아무도 흥선의 집에서 객식구(
客食口) 노릇을 하던 천하장안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러던 그들을 찾아와 힘을
불어 넣어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섭정공 김영훈을 항상 곁에서 호위하던
한상덕이었다. 김영훈이 흥선의 유지를 받들어 섭정공이 되고 그런 섭정공을 따라
한상덕도 출사를 하였고, 옛날로 치면 참판(參判) 벼슬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
한상덕이 자신들을 손수 찾아와 주었으니 죽은 흥선이 다시 살아온 듯 반가웠던
천하장안이었다. 변란이 있던 그날 밤 천군을 이끌고 호위영의 군사들을 삼복(三伏)
에 개 패듯이 패던 한상덕이 아닌가. 그런 한상덕의 손에 이끌려 운현궁에 다시 돌아
왔고, 자신들에게 황공하게도 나랏일을 맡긴다고 했을 때는 정말이지 목이 매여 말을
하지 못하였었다. 며칠 동안 한상덕의 지시로 장안의 논다하는 무리들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굴렀었다.
그런 한상덕이 아침 일찍 자신들을 은밀히 불렀다.
"자네들은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게."
미천한 자신들에게 해라 하지 않고 하게 하고 말하는 한상덕에게 천하장안은
감격했다.
"나는 섭정공 합하의 명을 받들어 자네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것은 곧 주상전하와
섭정공 합하의 명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게. 어리신 주상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시고
섭정공 합하께서 정사를 돌 보신지 이제 달포가 채 지나지 않았네. 아직은 김씨
일파의 잔당들이 팔도 방방곡곡(坊坊曲曲)에 많이 남아 있을 것이네. 이 말은 언제
그들이 주상전하와 섭정공 합하께 위해(危害)를 가할지 모른다는 말과 같네."
한상덕이 김씨 일파를 얘기하자 적개심에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천하장안이었다.
"자네들은 그동안 나를 도와서 많은 일을 해 주었네. 허나, 지금부터 할 일은 여태
했던 일보다 몇 배는 중요한 일이네. 그것은 바로 자네들이 조선 팔도 방방곡곡을
돌아보면서 민심(民心)을 살피는 일이네. 백성들의 불만은 무엇이며, 백성들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며, 백성들의 고혈(膏血)을 빨아먹는 못된 관장(官長)이 다스리는
고을은 어디며 하는 것들을 소상하게 살피는 일이 자네들이 앞으로 할 일이네.
이를테면 암행어사(暗行御史)처럼 백성들의 민심을 살피란 말이네. 물론 자네들이
암행어사처럼 못된 탐관오리(貪官汚吏)들을 징치(懲治)하지는 못하며, 준엄(俊嚴)
하게 벌을 내릴 수는 없네, 그러나 자네들이 조사해 오는 민정(民政)의 정보는
앞으로 섭정공께서 이 나라를 옳게 다스리시는데 요긴한 정보가 될 것이네. 그러니
절대로 자네들의 신분을 노출시켜서 아니 될 것이야. 알겠는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한상덕의 말에 천하장안은 정신이 없었다.
그런 천하장안에게 한상덕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자네들이 표범보다도 날래고 황소보다도 튼튼한 줄 내 잘 알고 있네, 내 자네들을
믿고 이 일을 맡기는 것이니 행여 노정(路程)에 계집 밑구녕이나 쑤시느라 소임을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될 것이야, 알겠는가?"
한상덕이 이렇게 다짐을 놓자 천하장안이 일제히 대답을 했다.
"걱정 마십시오, 나으리."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 입니다요, 나으리."
"명심하여 거행하겠습니다요, 나으리."
"헤헤, 알겠습니다요, 나으리."
그렇게 천하장안 네 사람은 한상덕의 밀명을 받고 팔도 방방곡곡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천하장안 출도요!!!
아침 일찍 천하장안 네 사람을 떠나 보낸 한상덕은 지금 아재당에서 김영훈과 함께
아침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이 겸상한 약간 큰 해주반에는 반찬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오랜 군 생활로 적은 가짓수의 반찬만 놓고 밥을 먹는데
익숙해 있기 때문이리라...
아침상이 나가자 한상덕이 김영훈에게 말한다.
"사령관님, 지금 대구 감영(監營)에 최제우가 잡혀 있다고 합니다."
"수운(水雲) 최제우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소?"
아침상을 물리고 느긋하게 담배를 꺼내 물던 김영훈이 놀라며 묻는다.
"어제 이경하가 왔다 갔습니다."
"좌포장 이경하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어제 사령관님께서 새로 출사한 대신들을 접견하고 계실 때 좌포장
이경하와 우포장 이장렴이 와서 저에게 수운의 얘기를 하며 어찌 했으면 좋겠는지
사령관님께 여쭈어 달라 하였습니다."
"흐-음, 그래요?"
물고 있던 담배에 불을 붙여 양볼이 오목하도록 힘차게 빨아들인 김영훈이 연기를
내뿜으며 답했다.
담배는 한궁에서 올 때 넉넉하게 가져왔기 때문에 아직 비축분이 많이 남았다.
처음부터 나무 상자 다섯 짝에 꽉꽉 담아온 담배였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상덕은 맛있게도 담배를 피우는 김영훈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작년 12월 9일에 잡혀서 21일에 대구 감영으로 이감되었다고 합니다."
"흐-음, 그래요?"
김영훈이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애가 닳는 한상덕이다.
최제우가 누구던가. 바로 동학의 창시자요, 대사상가가 아닌가 말이다.
그런 수운이 대구 감영에 붙잡혀 있다고 해도 시큰둥한 김영훈의 모습은 흡사 나는
그런 사람 관심 없어요 하는 모양새다.
"그를 그대로 놔두시렵니까?"
"놔두지 않으면...?"
"풀어 줘야지요."
"풀어줘요? 최제우를?"
"예-."
"그럼 그렇게 합시다."
처음과 달리 흔쾌히 수락하는 김영훈의 모습에 어리벙벙한 한상덕이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자,
"나도 원래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한원장의 애가 닳는 모습을 보자 장난을
한 번 해 본 겁니다. 하하하! 풀어 줘야지요, 아니, 그러지 말고 한원장이 직접
이경하를 데리고 대구로 가세요. 가서 수운을 내가 직접 취조한다고 하고 이리로
데려오세요. 생각 같아서는 나도 가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으니 한원장이 직접
가세요."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그런데 한원장은 말을 좀 타십니까?"
"말요? 말은 왜요?"
"여기서 대구까지 걸어서 가실 생각입니까?"
김영훈의 말이 있자 그제서야 한상덕이 알아듣는 표정이다.
"아마 엉덩이가 남아나지 않을 겁니다. 나나 한원장이나 생도 시절에 잠깐 타 본
것이 전부일테니... 앞으로 틈틈이 말을 타는 법을 배워야 할 겝니다."
점점 걱정이 되는 한상덕의 표정이 우스운지 슬쩍 쳐다보는 김영훈이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 전면등장(前面登場)...5
번호:4761 글쓴이: yskevin
조회:1030 날짜:2003/09/25 01:37
.. 전면등장(前面登場)...5
한상덕이 대구로 내려간지 며칠이 지났다.
지금 운현궁의 사랑인 아재당에는 섭정공 김영훈과 이순신함의 함장인 김종완,
국방대신 김병국, 해양대신 이기동, 그리고 재경대신 김기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순신함의 함장인 김종완은 이번에 조정에 출사하지 않는 대신 경기 수영의 감사 겸
경기, 충청, 황해도의 수군을 관장하는 삼도 수군 통어영(三道水軍通御營)의
수군절도사가 되어 조선의 신식 해군 육성의 막중한 책무를 맡게 되었다.
"섭정공 합하, 이번에 제가 담당하게 될 경기 수영(京畿水營)은 강화도 앞 바다에
있는 교동도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영이 교동도에 있는 관계로 지금 남양만
일대에 건설하고 있는 조선소와의 연계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해서 제 생각으로는
수영을 원래의 위치인 남양으로 이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원래의 위치가 남양만에 있었습니까?"
김종완의 청에 김영훈은 처음 듣는 소리라는 듯 돼 묻는다.
"그렇습니다. 원래는 남양부 화량진(花梁鎭)에 있었는데 지난 인조대왕 7년(1629년)
에 지금의 교동도로 옮겼습니다."
김종완의 말에 김병국이 거들면서 나섰다. 김병국은 형인 김병학과 함께
대신의 반열에 오른뒤 김영훈의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살길을 찾은 것 같았다.
김병국의 말이 끝나자 김종완이 다시 말한다.
"지금 경기 수영이 있는 교동도는 한강 수운을 이용하여 도성과의 교통에 편리한
이점은 있으나 유사시 적이 쳐들어 왔을 때 적의 시야에 쉽게 노출이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다행히 전에 수영이 있었던 남양부의 화량진에는 아직 동헌과 비록 무너진
성이지만 성이 있다고 하니 그 성과 동헌을 수영으로 삼고 인근에 지어지는
조선소와의 연계로 지금 일본의 막부에서 운용하고 있는 해군 조련소(海軍調練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호-오, 함장은 조선의 '사까모도 료마'나 '가쓰 가이슈'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하십니까?"
"지금 일본은 우리 조선과 마찬가지로 개화기의 혼란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쓰 가이슈나 사가모도 료마와 같은 선각자들이 있어
근대 해군의 기틀을 마련하게 됩니다. 섬나라 오랑캐들도 그럴진대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말이 안 돼지요..."
두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던 김병국이 끼어든다.
"저-...합하!"
"말씀하십시오. 국방대신 대감."
"죄송하지만 가쓰 뭐라 하는 이와 사까모도 뭐라 하는 이들은 누구이옵니까?"
"하하하...아직 대감께서는 잘 모르시겠군요. 저보다는 우리 김종완 신임 절도사
대감이 더 잘 알고 계십니다. 함장이 국방대신 대감께 설명 좀
해 주세요."
미래에서 온 김영훈과 나머지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으나 조선에서 외국이라고는
오로지 청국과 왜국(矮國)만이 있는 줄로만 알고 살아온 김병국이 왜국의 이름 없는
젊은 지사(志士)를 알 까닭이 만무했었으니...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대감."
김종완이 설명한다고 하자 김병국이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런 김병국의 모습이
우스운지 김영훈과 김기현이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지금 왜국의 상황도 우리 조선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아직까지 우리 조선은
양이들의 손에 의해 개항(開港)을 하지 않았으나 이웃 나라인 청국과 왜국은 이미
양이들의 침범으로 강제 개항을 하게 되었지요."
"그것은 나도 잘 알고 있어요. 그런데..."
김병국이 예의 그 급한 성질이 드러난다. 하여튼 제 버릇 개 못 준다니까...
"그런 왜국에 새로운 사상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데 흔히들 지사라고 합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양이들의 침략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막부를 무너뜨리고
왜왕의 이름아래 단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을 존왕양이(尊王攘夷)
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그 들 중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지요.
일테면..."
1853년 6월 3일 개항을 요구하는 미국의 페리제독이 우라가(浦賀) 앞바다에 도착하여
에도만까지 측량선을 보내는 등의 과감한 행동을 보이게 된다. 1854년 다시 일본
고시마 앞바다를 찾은 페리제독의 강경한 태도에 직면한 막부는 당시까지도
외국에대한 확실한 방침을 결정하지 못했기에 페리에게 완전히 압도되어 동년 3월
31일 마침내 가나가와조약(神茶川條約)을 체결하게 되었다. 이 조약에서는 만약
일본이 다른 외국에 대하여 미국에 부여하지 않았던 권익을 수여했을 경우 이와
동일한 권익을 미국에도 보장한다는 최혜국조항을 두고 있었다. 가나가와 조약
체결에 이어 막부는 영국·러시아·네덜란드와도 화친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러던
중에 1854년 막부 수석 노중의 자리에 오른 홋타 마이요시는 페리제독이 거느리는
미국 함대와 잇따라 일본 근해를 위협하는 외국선박을 보고 유럽이나 미국의 뛰어난
군사력을 받아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이는 안정의 개혁이라 일컬어지는데,
이즈의 니라야마에 반사로를 설치하여
대포를 제작하고, 에도만을 수비하기 위해 시나가와에 포대를 설치하였으며,
55년에는 나가사키에 해군 조련소를 개소하는 등의 시책을 시행하였다. 이렇듯
막부의 토대가 흔들리게 되자 유력한 다이묘(大名)들이 막부의 정치에 대하여
발언권을 행사하게 되었으며, 다이묘들이 조정에 의탁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이
노골화되자 조정의 관료 가운데에는 막부정치의 잘못을 비판하고, 옛날처럼 조정에서
정치적 실권을 장악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이른바 존왕론(왜왕을 높이 받들고
왜왕중심으로 정치를 행한다:尊王論)이 대두되기에 이른다.
존왕양이운동은 에도 막부 말기에 왜왕을 존경하고 외적을 물리치자는 슬로건 아래
막부정치를 비판한 운동으로, 이 운동에는 하급 무사와 교토의 소장 구지 등을
중심으로 농민이나 상인까지 참가하였으며, 교토는 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였다. 원래
존왕 사상과 양이 운동은 유교의 명분론을 기반으로 하는 별개의 사상, 행동원리였다.
유학자나 국학자 사이에서
발달한 존왕론는 왜왕을 최고 권위로 받드는 것으로 막부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봉건적 신분제를 유지하는 이데올로기였다.
자국 이외의 주변 여러 나라를 문화적으로 열등하다고 보아 배척해야 한다는
의식에서 생겨난 양이론 역시 막부를 반대하는 이론은 아니였다. 그러나 막부 말기에
외국 선박이 일본에 자주 찾아와 쇄국을 유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막부의
체제질서를 다시 강화하기 위한 정치이론으로서 존왕양이론이 등장하게된다.
1853년 페리가 내항한 후 현실적으로 드러난 서양 열강의 압력에 대해서
교토 조정은 서양을 배척하려 하였으나, 막부는 천황의 의사를 무시하고
1858년 미일 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였다. 이 때문에 조약에 반대한 정치세력들은
존왕양이론에 입각해서 결집하고 막부 정치를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이 운동은
1860년대 초기에 이르러 한층 격렬해졌으며, 조슈번이 중심 역할을 하였다.
동시에 왜왕의 전통적 권위를 이용해서 막부 정치를 개혁하려는 공무합체(公武合體)
운동도 전개되었다. 사쓰마번, 아이즈번 등이 주도한 공무합체파는 1863년 정변을
일으켜서 존왕양이파를 교토에서 추방하였다. 한편, 존왕양이파는 사쓰마·영국 전쟁(
1863)이나 4국함대의 시모노세키 포격사건(1864)으로 서양을 배척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그 무렵부터는 존왕양이 운동에서 탈피하여 개국 정책을
주장하고 현실적 정책을 바탕으로 막부 타도 운동을 전개해 나가게 되었다.-천리안 '
일본의 개항기'에서 인용-
"이러한 때에 자신들도 양이들의 학문과 기술을 습득(習得)하여 왜국의 힘을
기르면서 개국을 하자는 인물들이 나타납니다. 그들 중에 가쓰 가이슈와 사까모도
료마는 발군(拔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특이하게 해군을 육성하여
자신들의 나라의 힘을 키우자는 이른바 신사상(新思想)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무렵 가쓰 가이슈는 막부의 군함 행정관(軍艦行政官)이며 포의하다모도(布衣旗本-
에도 시대에 장군을 알현할 수 있는 하다모도의 신분으로 포의를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라는 막강한 직책에 있었으나 본래는 고께닌(御家人-막부 직속의
하급 무사) 출신이었다. 문벌을 중시하는 막부가 인재난에 허덕이지 않았다면 도저히
중용될 수 없었던 인물이었다. 이런 그에게 있어 난학(蘭學-네덜란드 학문)을 배운
것과 페리의 미국 함대의 침입은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었다. 페리의 침입이 있고
나서 막부에서는 가쓰에게 나가사끼로 가서 네덜란드인에게 조선술과 해군에 대한
기술을 배우고 올 것을 명하였고, 결국 가쓰는 해군 조련소의 소장이 되었고,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자신이 함장으로 있던 간린호를 이끌고 태평양을 횡단하여
미국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리고 사까모도 료마는 가쓰의
애제자였는데 원래는 가쓰를 암살하기 위해 가쓰의 집으로
찾아 갔으나 가쓰의 인품과 식견(識見)에 반해 그의 제자가 된 당대 왜국의 검객(
劍客)이자 지사이다.
일본의 유력 언론기관인 아사히 신문에서 2년전 새 천년을 맞으며 “지난 1천년동안
일본을 위해 가장 공헌한 사람이 누군가?”라는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1위에 오른 인물이 바로 사까모도 료마 (坂本龍馬)다. 사까모도 료마는
메이지유신 직전까지 왜왕을 정치개혁의 실질적인 중심으로 삼아 개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며 후에 유연한 사고와 강력한 실천력으로 사분오열 됐던 일본을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성장하도록 견인해냈다.
그는 또 일본상사(日本商社)의 원형인 카메야마 샤추(龜山社中)-후에 미쯔비씨
종합상사의 모델이 됨-를 만들어서 돈을 벌 줄도 알았다. 그에게는 스승의
가르침대로 바다가 곧 돈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명치유신을 이루는 핵심설계인
선상팔책(船上8策)을 바다 위에서 만들어낼 수가 있었고, 또 피 한 방을 흘리지
아니하고 3백년 막부의 기득권을 임금에게 돌려주는 대정봉환(大政奉還)의 일을 할
수 있었다.
김종완의 말을 다 듣고 난 김병국의 얼굴은 잔뜩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다시
펴졌는데,
"아- 정말 다행입니다. 왜국에는 그런 이들이 있다고 하지만 우리 조선에는 하늘의
보살핌으로 섭정공 합하를 비롯한 천군이 있지 않습니까."
김병국의 이 말이 있자 김영훈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웃음을 터뜨린다.
"대감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참으로 우리 조선의 홍복이옵니다."
잠자코 있던 이기동 해양대신이 거들었다.
참 유치한 인간들이다. 지들끼리 다한다. 북치고 장구치고...
"마침 제가 사까모도 료마의 일대기를 다룬 '료마가 간다'라는 책이 있으니 대감께
빌려 드리지요. 원래 미래에서 출간된 책이고 지금 주인공이 살아 있지만 읽어 볼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이기동이 다시 김병국에게 말하자 김병국의 희색이 만면해진다.
얘기가 잠시 딴데로 흘러들었지만 김영훈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김종완에게 묻는다.
"그럼 함장의 생각은 남양으로 다시 경기 수영을 옮기고 거기에다 조선소와 연계된
신식 해군 육성 학교 같은 것을 세우고 싶으시군요."
"그렇습니다. 원래 수영이 있던 자리에는 건물들이 그대로 있고 성곽이 남아 있으니
크게 돈이 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승무원들은 이미 기존의 수군들과 노군들이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신식 해군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시대의 증기
기관이 달린 증기선이 꼭 필요한데..."
"그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신기도감(神器都監)에서 각종 신무기와 새로운 이기(
利器)들을 만들고 있으니 곧 시제품(試製品)이 나올 것입니다."
"신기도감이라면...?"
김병국이 신기도감이라는 말에 다시 끼어 들며 묻는다.
며칠 전에 운현궁에서 전기를 비롯한 신기한 물건들을 본 김병국 이기에
그 매력에 푹 빠진 모양이다.
"대감께서도 얘기 들으셨을텐데요...?"
"그 연흭궁을 확장한다는..."
"맞습니다. 지금 한 참 공사중입니다. 다행히 날씨도 많이 풀렸고 또, 연희궁의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면 돼고 새로운 건물을 추가하고 있으니 곧 완공이 된다고
합니다. 신기도감이
완공 된다면 동대문 밖에 짓고 있는 농림도감(農林都監), 전의감(典醫監)을 학장하고
있는 신의도감(新醫都監)과 함께 우리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원래 군수 조달 업무와 신무기 개발 업무는 호조 소속의 군자감과 병조 소속의
군기시로 나뉘어 져 있던걸 이번에 김영훈이 섭정공이 되면서 새롭게 통합한 곳이
바로 신기도감이다. 농림도감은 김인호 농림대신의 주장으로 설립되었는데
농림도감에서는 한국에서 가져온 농사에 필요한 각종 작물과 신품종의 벼를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이다. 아울러 농사에 필요한 여러 서적들의 간행도 이루어 질 것이다.
농림도감은 지금의 동대문구
제기동 일대에 세워 지고 있었다. 그리고 본래 왕실에서 쓰이는 각종 약의 제조와
공납을 담당했던 전의감이었으나 천군 출신의 의무대원들이 내의원 의관들의 교육과
연구, 신약 개발을 목적으로 만들게 된 곳이 바로 신의도감이다.
"그럼 함장의 의견대로 하세요. 잘 아시겠지만 앞으로 해군의 역할이 아주
막중합니다."
"감사합니다. 합하."
궁금함을 못 참는 김병국이 또 끼어 든다.
"김대감, 그럼 그 해군 학교에서는 앞으로 무엇을 가르치게 됩니까?"
"일단 숙사(塾舍)의 공사가 마무리 돼는 대로 기존의 수군들을 입교시킬
것입니다. 그리고 학과 과목과 실습 과목으로 나눠서 가르칠 생각인데 우선 학과
과목은 한글과 한문, 그리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 측량, 산술, 조선술, 증기
기관학등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그리고 실습 과목은 선원 운동, 범선조련(帆船調練),
포술(砲術)과 기관 실습등을 가르칠 생각입니다. 이미 교수부(敎授部)의 인선은 마친
상태입니다."
"호-오, 그래요..."
"그렇습니다. 저와 함께 조선에 온 해군 장교들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교수부의
인선은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할 교재는 운현궁 내에
설치한 출판국(出版局)에서 새로운 인쇄 시설로 작업에 들어가면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
"언제 우리 조선의 관헌들을 한 번 초청해서 김대감의 배와 학교를 구경시켜주시오,
그럼 내 필히 가보리다."
"수영을 옮기고 학교가 완공되는 대로 섭정공 합하와 모든 대소신료들을
모시겠습니다."
아무래도 김병국은 천군의 꼬붕이 돼기로 한 모양이다. 얍삽한 놈 같으니...
"국방대신 대감, 오군영을 통합하고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으로 나눠서 편성하는 것은
잘 돼가고 있습니까?"
김영훈이 김병국의 주의를 다시 한 번 환기 시킨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합하. 우선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의 편성은 다
끝났으며 그들의 주둔지로는 근위천군은 구 훈련도감 본영으로 하였으며 친위천군은
남한 산성에 주둔하기로 정하였습니다. 이미 새롭게 군사들을 조련(調練)할
조련시설의 착공에 들어갔기 때문에 정식으로 조련을 마치게 되면 새로운 계급과
장비 일체를 보급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김욱 근위천군 대장과 안용복 친위천군
대장이 잘하고 있습니다."
"근위천군과 친위천군의 편성과 조련은 아주 중요합니다. 대감께서는 이미
훈련대장을 지내셨기에 이해하실 겁니다. 그들이 앞으로 우리 조선군의 근간이
된다는 것을요..."
도합 약 이만 오천명의 구(舊) 오군영 병사들은 강원도 일대에 주둔한 병사들을 빼고
경기도 곳곳에 주둔한 군사들을 합치면 약 이만 삼천 정도가 되었다. 여기에 경기
감영의 군사 일부를 포함하였고, 이 군사들로 근위, 친위천군을 편성하였는데 이들의
조련이 끝나게 되면 조선에서는 최초로 근대식의 사단(師團)이 두 개 생기는 셈이다.
또한 그들은 지금 한국군 계급과 유사한 계급을 부여받을 예정이었다.
천군이 가져온 장비 일체는 약 십만의 병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데 무슨 걱정이랴...
"하오나, 합하...?"
"...?"
"군사들이 사용할 총기는 어떻게...?"
"아-하, 총요? 그것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까 말씀드렸지만 신기도감에서 새로운
총포가 곧 나옵니다. 그럼 바로 공장을 세워 양산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 신기도감의
책임자는 저희와 함께 온 분이 맡고 계십니다.
원래 저희가 살던 곳에는 군에서 사용할 각종 무기연구를 하던 곳이 있는데 그곳을
국방 과학 연구소라고 합니다. 그 국방 과학 연구소에서 선임 연구원으로 근무하셨던
분과 여러 과학자와 기술자 그리고 조선의 장인(匠人)들이 공동으로 작업에
들어갔으니 곧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21세기에 한국에서 올 때 수퍼 컴퓨터를 실어왔고 거기에는 각종 무기들을 비롯한
인류가 이룩한 모든 지식 기반이 담겨져 있기에 김영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이 겨울의 끝이라서 아직 날씨가 다 풀리지 않았다는
것이 공사 진행에 장애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앞으로 약 한 달 정도
지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19 전면등장(前面登場)...6
번호:4763 글쓴이: yskevin
조회:1031 날짜:2003/09/16 16:29
..
전면등장(前面登場)...6
대조전 뒤뜰에 있는 경훈각(景薰閣)은 당시 조선의 대궐 건물로서는 드물게 이층으로
만들어진 건물이다. 원래는 임금이 가끔씩 휴식을 즐기는 곳으로 이용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추밀원장인 장현덕을 비롯한 천군의 처소와 추밀원에 소속된
관헌들이 용무를 보는 말하자면 추밀원청(樞密院廳) 역할을 하는 곳으로 용도가
변경되었다. 대궐안에 임금을 제외한 불알 달린 사내가 머무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으나 어린 임금의 친부인 흥선이 변을 당하고 그 아들들마저 죽게되자
살아남은 부대부인 민씨와 함께 장현덕과 천군은 어린 임금의 호위와 경연관(經筵官)
의 책무를 핑계로 궐내에서 생활하는 특전?을 누리게 되었다. 그 경훈각의
앞마당에는 우물이 있었고 회랑(回廊)으로 대조전(大造殿)과 연결되었기에 어린
임금과 가장 근접한 곳에 위치한 이른바 경호에 있어서의 최적지(最適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리고 한 쪽 옆에는 지난번에 세워진 태양열 발전 설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 추밀원장이자, 임금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경연관이라는 막강한 신분을 자랑하는
장현덕은 경훈각의 동쪽에서 시작되어 대조전의 서쪽으로 이어지는 회랑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었다. 다른 천군에 비하면 한가하다고 할 수 있는 그의 일상이었으나
그래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하다면 중요한 경연을 하기 위해 대조전 동온돌(
東溫突)로 걸음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그의 오른쪽 어깨 위에는 까만 가방
같은 것이 걸려 있었는데 다름 아닌 노트북이다. 대궐 안에 왠 노트북...?
그런 장현덕의 훤칠한 모습에 주변을 지나던 궁녀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며 연모(戀慕)
의 눈길을 보낸다. 그런 궁녀들의 시선을 아는지, 어느 궁녀가 자신을 상사(相思)
하는지, 어느 상궁, 나인이 자신의 풍모에 반해서 오줌을 지리는지 신경도 쓰지 않는
장현덕이다. 하긴 요즘 대궐 안의 상궁, 나인, 궁녀들은 장현덕과 추밀원에 배속된
천군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으니 일러 무엇하랴...? 대궐 안에 사내라곤 어린
임금과 장현덕을 비롯한 천군의 사내들뿐인데 어린 임금이야 아직 꼬맹이에 불과하여
음양(陰陽)의 이치(理致)도 모르는 실정이었으니 어찌 천군에게 눈길이 가지 안을
쏜가... 더군다나 모든 천군이 건장하고 훤칠한 용모를 지니고 있을 바에야 말해
무엇하랴. 쯧쯧쯧... 사타구니가 찌릿찌릿 할 만도 하지...
어느덧 장현덕은 어린 임금의 침전(寢殿)인 대조전 동온돌에 들어섰다. 장현덕이
들어서자 지밀 상궁인 안상궁이 장현덕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하고 이어서 어린
임금에게 고한다.
"주상전하, 추밀원장 대감, 듭시옵니다."
"어서, 어서 뫼 시어라."
어린 임긍은 안상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어서 뫼시라'고 재촉을 하는 품새가
단단히 장현덕을 기다리던 모양이다.
"안으로 드시옵소서."
"고맙소."
장현덕은 자신에게 문을 열어주는 안상궁을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으로
들어선다. 장현덕이 들어가자 뜻 모를 한숨을 내 보이며 고개를 숙이는 안상궁이다.
왜 그럴까...?
"오-오, 어서 오세요. 현덕 아저씨."
어린 임금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 하며, 장현덕에게 말하자 어린 임금의
오른 쪽 앞에 앉아 있던 또 다른 경연관인 이항로가 못 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린다.
어린 임금은 그런 이항로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장현덕에게 자리를 권한다.
"어서, 어서 앉으세요, 오늘은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과인이 얼마나 기다린 줄
아십니까?"
"송구하옵니다, 전하."
"빨리, 빨리 봅시다, 어서요."
어린 임금의 채근에 이항로는 심히 못 마땅했으나 자신도 그런 어림 임금을 거들며
나선다.
"대감은 무얼 하고 있소, 빨리 서두르라는 주상전하의 말씀을 듣지 못하였소!"
두 사람의 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장현덕은 마지못하여 한다는 듯이 어깨에 맨
노트북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낸다.
열 두 살 어린 나이에 임금의 자리에 오르고 하루아침에 아버지와 두 형을 잃게
되었던 어린 임금은 한 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 하였다. 다행히 어머니인
부대부인 민씨가 살아남아서 대궐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은 어떤 걸로도 가시지 않았던 슬픔이었으니...
몰락한 왕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때때로 끼니를 걱정해야할 정도로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어린 임금이었다. 그러다 보니 동리(洞里)에 비슷한 처지의
동무들도 많았다. 그러나 막상 임금이 되어 대궐로 들어오자 같이 뒹굴고 뛰어 놀던
동무들은 만날 수 없게 되었고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아비까지 잃게 된 처지에
무슨 낙(樂)이 있을 수 있을까. 다행히 살아남은 부대부인 민씨를 대궐로 불러들일
수 있었지만 중신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린 임금의 처지를 가엾게 여긴 섭정공 김영훈의 배려로 어머니인 부대부인
민씨와 같은 지붕을 이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라면 위안일 수 있는
지금의 어린 임금이었다.
병든 닭 새끼 마냥 생기(生氣)를 읽어가던 어린 임금에게 요즘 새로운 낙이 생겼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영화 감상이었다.
얼마 전 천군이 가져온 태양열 발전 설빈지 뭔지 하는 요물(妖物)이 대조전 뒤뜰,
경훈각 옆에 세워진 뒤로 대궐 곳곳에 할로겐 전구가 사용되는 가로등이 세워졌고
급기야는 대조전과 경훈각에 전기가 들어오게 되었다.
그동안 충전을 하지 못하여 쳐 박아 두었던 노트북을 장현덕이 꺼낸 것은 그
즈음이었다. 임금의 신학문 스승이자 비서실장이며 경호실장인 장현덕은 나날이
생기를 잃어 가는 어린 임금이 안쓰럽고 측은한 마음에 매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한
번씩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된 영화를 보여 주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그 영화라는
요물에 푹 빠져 버린 어린 임금이었다.
원래 이순신함에는 원정단이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각종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다큐멘터리 DVD가 무궁 무진 했으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가져다 볼 수 있었고 이미
일부는 운현궁에 있으니 DVD의 조달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임금의 침전인 동온돌에는 각각 어리고, 젊고, 늙은, 세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정면 해주반 위에 펼쳐진 노트북을 쳐다보고 있었으니
바로 어린 임금과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 그리고 장현덕이었다.
"현덕 아저씨, 빨리 좀 하세요. 어제 제비와 자미가 형장에 끌려갔는데 어떻게
됐는지 궁금해 죽겠어요."
어린 임금이 장현덕에게 재촉을 하자, 마우스를 조작하던 장현덕이 말한다.
"잠시만 기다리시옵소서, 전하. 이제 곧 나옵니다."
어린 임금과 장현덕의 철없는 댓거리를 가만히 못 마땅하다는 듯 쳐다보던 이항로가
한 마디 한다.
"전하, 아무리 가까운 사이 일지라도 군신(君臣)간의 예의는 지켜야 하옵니다.
아저씨라는 칭호는 심히 듣기 거북하옵니다. 장원장 대감, 또는 장대감이라 칭하시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이항로가 이렇게 딴지를 걸자, 어린 임금은 이항로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알겠어요, 화서 대감. 이제 시작해요. 모두 조용..."
해 버린다.
어린 임금의 이런 대꾸에 이항로는 입맛이 썼으나 어쩔 수 없다는 듯 눈길을 앞에
있는 노트북으로 돌린다.
세 사람의 임금과 신하들이 이렇듯 어깨를 나란히 한 채 한 자리에 앉는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모두들 노트북이 부리는 마술(魔術)의 매력에 흠뻑 취한지
벌써 열흘 가까이 지났기 때문에 누구도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린 임금은 이미 이순신함에서 며칠을 지냈기 때문에 이런 일에 크게 괘념치 않았고,
원래가 완고하고 고지식한 유학자인 이항로도 장현덕과 같은 경연관의 신분으로
같이 생활한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서 그런지 요즘은 신 문물과 노트북의 마력(
魔力)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어 가서 이제는 은근히 이 시간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어느덧 드라마가 시작되었고 어린 임금을 비롯한 세 사람은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노트북을 주시하기 시작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말이 난무하고 현란한 배우들의
몸동작이 이어졌다. 비록 중국말은 못 알아듣지만 한글로 자막-자신들이 알던
언문과는 약간 다르지만-이 나왔기에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지금 세 사람이 보는 것은 한국에서 이미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황제의 딸'이라는
청나라 황실을 무대로 펼쳐지는 드라마였다. 아마 독자들도 본 분들이 있으리라...-
작가는 세 번 봤다. 숭악한 놈, 그 긴 드라마를 세 번이나 보다니...
드디어 시간이 지나 한 편이 끝났다.
드라마가 끝나자 장현덕이 마우스를 조작하며 노트북을 덮는다.
"하-아... 다행이다. 제비와 자미가 죽지 않고 도망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어린 임금의 홀린 듯한 눈빛의 한 마디가 있자, 듣고 있던 이항로도 몽롱한 시선으로
거든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두 사람이 사랑하는 연인(戀人)들의 손에 의해 구출돼는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었사옵니다."
"화서 대감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오?"
"왜 아니겠사옵니까, 전하. 소신도 그렇게 생각하옵니다."
완고한 이항로가 이렇게 맞장구를 치자 마냥 신나는 어린 임금이었다.
두 사람의 황홀한 듯한 대화를 듣고 있던 장현덕이 어린 임금에게 묻는다.
"전하, 전하께옵서는 저 극화(劇 )를 보시면서 어떤 점을 느끼셨사옵니까?"
"...?"
"전하께옵서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사옵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저씨, 아니 추밀원장 대감."
어린 임금이 어리둥절 대답을 못하자 이번에는 이항로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장현덕이다.
"그럼, 대감께서는 어떤 점을 느끼셨사옵니까?"
"으-음, 나는 청나라의 자금성(紫禁城)이 참으로 웅장하고 화려하다고 느꼈소만..."
"그것 밖에는 느끼신 점이 없사옵니까?"
"으-음... 그리고, 저렇듯 저들이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니 지금 청나라가 양이들의
침범을 받아도 힘 한 번 못 쓰고 주저앉았구나 하는걸 느꼈소."
장현덕의 거듭되는 채근에 이항로가 비지땀을 흘리며 답했다.
"그 점은 대감께서 잘 보셨사옵니다. 하오나..."
"...?"
"...?"
"전하, 그리고 대감, 소신이 전하와 대감께 듣고자 하는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다른 뜻이 있다는 말씀이시오?"
"이 극화에서 주인공인 제비와 자미, 그리고 오왕자와 복이강은 각각 왕자와 명문의
촉망(囑望) 받는 자제라는 신분을 벗어 던지고 사랑하는 연인을 구출하는데 뭔가
가슴에 와 닿는 것이 없다는 말씀이옵니까?"
"...?"
"으-음..."
두 사람이 꿀 먹은 벙어리 인양 말이 없자, 장현덕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소신이 이 극화를 전하와 대감께 보여 드리는 이유는, 이 극화가 내세우는 남녀간의
신분과 격식을 뛰어 넘는 지고지순(地高至純)한 사랑, 고난에 빠진 친구들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주고받는 우정과 의리, 마지막으로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어루만져 주는 따스한 인간애(人間愛), 이런 것들을 전하와 대감께서도 느끼시고,
장차 이 나라 백성들을 위해 이러한 덕(德)을 베푸시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 극화를
보여드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 조선의 백성들은 누대(累代)로부터 이어진 양반과 관리들의 횡포와
가렴주구에 시달려 왔습니다. 양반을 비롯한 관리들은 일처도 모자라서 삼처, 사첩을
얻는 실정이지만 가진 것 없는 백성들은 그런 것은 고사하고 끼니를 잇는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인 실정이옵니다.
이 극화의 남자 주인공들인 오왕자와 복이강은 얼마든지 삼처, 사첩을 거느릴 수
있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오직 한 사람의 여인만 사랑하는 순정을 보여줍니다.
소신은 전하와 대감께서 이런 것들을 보고, 느끼며, 배우시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런 극화를 보는 것도 일종의 공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현덕의 일장 연설이 끝나자 그제서야 알아듣고는 고개를 끄떡이는 두 사람이다.
어린 임금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다는 듯이 장현덕에게 묻는다.
"아저씨, 아니 추밀원장 대감께서는 올해 연치(年齒)가 어떻게 되시었어요?"
"소신은 올해 서른이옵니다."
"그래, 장가(杖家)는 드셨나요?"
"아직 장가 전(前)이옵니다. 전하."
"호-오, 그런데도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단 말이오?"
이항로가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저희가 살던 시대에는 만혼풍조(晩婚風潮)가 만연(蔓延)하던 시대라서리..."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요. 혹여 혼담이 오고 가던 규수(閨秀)는 없으시었소?"
"그런 일은 없었고 사랑하던 여인이 있었지요. 하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어린 임금이 장현덕의 대답을 재촉한다.
"하지만 이렇게 과거로 오는 바람에..."
"호-오..."
"으-음, 안타깝군요..."
얘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자 장현덕이 말머리를 돌리려고 한다.
"전하, 오후에는 다음 편을..."
"그럼, 김대장 아저씨, 아니 섭정공께서도 장가 전인가요?"
어린 임금이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할 수 없이 장현덕이 대답한다.
"소신이 알기론 섭정공을 비롯한 저희 대부분의 천군은 아직 장가 전이옵고 몇 몇
일가를 이룬 천군도 있으나 모두 처자식을 버려 두고 온 줄로 알고 있사옵니다. 전하.
"
처자식을 버리고 조선에 왔다는 장현덕의 말에 갑자기 좌중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노련한 유학자인 이항로가 이런 분위기를 눈치채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말을
한다.
"전하, 신이 보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섭정공을 비롯한 천군을 장가보내는 것이
시급한 일일 것 같사옵니다."
"과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혹시 아저씨, 아니 추밀원장 대감께서는 마음에 두고
있는 규수라도 봐 두시었소? 과인이 중매를 서 줄 수도 있소이다만..."
"아니옵니다, 전하."
중매를 서 준다는 어린 임금의 말에 장현덕이 얼른 대답했다.
"전하, 추밀원장 대감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 같사옵니다."
"하하하..."
이항로의 말에 어린 임금은 크게 웃었고, 장현덕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장현덕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임금이 다시 말한다.
"아무래도 서둘러서 일을 추진 해야겠네요. 헌데, 그건 그렇고... "
"...?"
"한 편 더 보면 안될까요? 솔직히 오전에 한 편, 오후에 한 편은 너무 짧아요."
어린 임금의 이런 말에 장현덕은 살았다는 듯이 말한다.
"전하의 뜻이 정 그러시다면, 오늘밤에는 새로운 영화를 한 편 보도록 하지요."
"우와-- 신난다. 근데 그 새로운 영화가 뭔데요?"
어린 임금이 손뼉을 치고 좋아하며 묻는다.
"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이옵니다, 전하."
"글래...? 뭐요?"
"영국 말로는 글래디에이터라고 하는데 조선 말로는 검투사라고 하옵니다."
"...?"
"그건 또 무슨 영화이오이까?"
어린 임금과 장현덕의 문답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항로가 자뭇 회가 동한다는 듯
물었다.
"오늘밤에 보시면 알게 되오이다, 대감."
솔직히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어린 임금을 옆에서 모시고 있는 장현덕은 따분할
지경이었다. 말이 임금이지 아직 솜털도 벗지 않은 어린애인데다 모든 조정의 실권은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의 손에 있었으니 따로 할 일이 없는 임금이었다. 이런 임금의
곁을 지키고, 무엇을 가르치고 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해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영화 감상이었다. 이미 어린 임금은 이순신함에서 영화를 본 경험이
있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고, 뭔가 교훈을 주는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어린
임금의 생각을 트이게 하고 계몽하자는 단순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린
임금뿐만 아니라 완고하기로 소문난 유학자인 이항로 마저도 어느 정도 장현덕에게
물이 들기 시작했으니 이만하면 대성공(大成功)이라 할 수
있었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20 전면등장(前面登場)...7
번호:4765 글쓴이: yskevin
조회:1246 날짜:2003/09/25 16:19
.. 전면등장(前面登場)...7
대조전 동온돌에서 어린 임금을 비롯한 세 노소(老少)가 영화를 보면서 담론하고
있을 때 운현궁의 김영훈은 아재당에 홀로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며 종친부(宗親府)의 누구며, 어느 관아에 있는 누구며 하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었을 운현궁이었으나 이 날 만큼은 이상하게도
찾아오는 이 없었으니 아마도 김영훈이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와 관계가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아재당에 떠억하니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김영훈은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힐끔거리며 가끔씩 쳐다보는 품새가 자뭇 초조해 보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섭정공, 합하. 한상덕입니다."
"오- 어서 들어오세요."
대구 감영으로 최제우를 데리러 간 한상덕이 왔다는 말에 김영훈이 반색을 하며
맞는다.
이어서 대외정보원장 한상덕과 좌포장 이경하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한원장. 좌포장 영감께서도 원로(遠路)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이라니 당치 않사옵니다. 섭정공 합하. 저 보다는 대정원장 대감께서 고생을
하셨지요."
오십이 넘은 나이라 어느덧 귀밑머리에는 서리가 앉았고 군데군데 흰 수염이 나기
시작한 이경하가 김영훈의 치사에 황송하다는 듯이 말을 한다.
"아마도 대정원장 대감의 둔부(臀部)가 고생을 많이 하였을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래요."
"그렇습니다. 합하. 좌포장 영감께서는 워낙 기마술이 뛰어난 분이었으니, 이런 분의
뒤를 쫓아가느라 제 궁둥이가 남아나질 않았습니다."
이경하의 말이 끝나자 맞장구를 치며 그 말을 받는 한상덕이었다. 가만 보니 두
사람이 이번 노정에서 단단히 정이 든 모양이다.
"한원장의 말이 맞아요, 우리 천군은 다 좋은데 기마술이 형편없으니, 앞으로
기마술을 중점적으로 연마해야 할 것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이러한 김영훈의 말에 한상덕과 이경하의 입에서 낭랑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나저나 가셨던 일은 어떻게...?"
"다행히 합하의 명을 이행할 수 있었사옵니다. 최제우는 지금 목욕을 시키고 있으니
곧 이리 들어 올 것이옵니다."
김영훈의 말을 받아 재빠르게 대답을 하는 이경하였다.
그 날 김영훈의 명을 받은 한상덕과 이경하는 좌포청(左捕廳)에서 엄선한 포교(捕校)
열 둘을 이끌고 경상 감영이 있는 대구로 향했다. 중간에 말을 갈아타느라 충청도
어디쯤의 역참(驛站)에서 잠시 지체하였을 뿐, 쉬지 않고 말을 달려 그 날 밤에는
경상도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산골 주막의 봉놋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일행은 다음 날
오전에 대구 감영에 도착하였다.
그 날 대구 감영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바로 최제우의 문초(問招)가 경상 감사
서헌순의 입회(立會)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최제우는 상당한 고초를 당한 듯 온 몸에 피칠갑을 뒤집어 쓴 모습이었다.
경상 감사 서헌순이 이런 최제우와 한참 실랑이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전 하나가
나는 듯 달려오면서,
"사또--오, 사또. 큰일 났사옵니다. 지금 밖에 대외정보원장 한상덕 대감과 좌
포도대장 이경하 영감이 왔사옵니다."
"네가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아전의 외침에 깜짝 놀란 서헌순이 벌떡 일어나며 다시 물었다.
"대정원장 대감과 좌포장 영감이 왔사옵니다, 사또."
서헌순은 눈앞이 캄캄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지금은 몰락한 김씨 일파에 의해 벼슬길에 올랐고 여태껏 승승장구(乘勝長驅)해 왔던
서헌순이었기에 김씨 일파를 일거에 도륙(屠戮)내고 새로이
정권을 장악한 섭장공의 오른 팔이랄 수 있는 한상덕이 좌포장을 대동하고 불시에
대구 감영으로 쳐내려 왔다는 것은 자신을 잡아들이기 위해 왔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이미 자신의 명운(命運)은 끝장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서헌순은 비록
김씨 일파의 비호를 받았지만 나름대로의 기개와 학식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부임하였던 임지마다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위무하는데 앞장섰기 때문에 백성들의 신망도 나름대로 두터운
인물이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그러나 비굴하지는 말자. 비록 저들에 의해 내
쳐질 운명이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서현순이 이렇게 마음먹는 사이 이미 한상덕과 이경하는 감영 안으로 들어왔다.
"대정원장 대감과 포도대장 영감께서 어인 일로 예까지 왕림하셨습니까?"
인사를 하느라 굽혔던 허리를 꼿꼿히 펴고 가슴을 활짝 열어제친 모습은
제법 기개가 엿보이고 있었다.
그런 서헌순을 보며 이경하가 한상덕을 대신해서 말을 한다. 아무래도 삼십대 초반인
한상덕으로서는 육십이 넘은 노인인 서헌순을 대하는 것이
거북했으리라.
"내가 이렇게 대정원장 대감을 모시고 예까지 내려온 이유는 섭정공 합하의 명이
계셨기 때문이오."
"섭정공 합하의 명이시라면...?"
"이곳 대구 감영에 동학교주 최제우가 잡혀있다고 하던데 사실이오이까?"
"예-에, 최제우요...?"
최제우를 찾는다는 이경하의 말에 맥이 탁 풀린 서헌순이 대답하자,
"어찌 그리 놀라시오? 감사 영감."
"아닙니다. 그런데 최제우는 무슨 일로...?"
"별다른 일은 아니오, 섭정공 합하께옵서 친히 심문하신다고 하니 압송할 수 밖에...
그나저나 최제우는 지금 어딨소?"
이경하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며 동헌 안을 둘러 본다.
"바로 저기 있는 죄인이 최제우이옵니다."
"지금 문초중이셨습니까?"
"그렀사옵니다, 대정원장 대감."
가만히 있던 한상덕이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최제우의 모습을 보자 눈살을 찌푸리며
말한다.
"어서 의원을 불러서 치료하도록 하세요. 저 상태로는 한양까지 압송할 수 없으니
며칠 여기서 치료한 다음에 죄인을 압송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
부로 최제우의 신병은 우리가 인도하도록 할 테니 감사 영감께서도 협조를 해 주세요.
"
"알겠사옵니다. 대감."
"그리고 섭정공 합하께서는 이번에 저를 보내면서 특별히 감사 영감을 위로하라는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선대왕마마께서 승하하시고 어수선한 이 때에 감사 영감 같은
분이 경상도에 계시니 안심하고 계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영감께서는 앞으로도 이런 섭정공 합하의 기대에 부흥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감사 영감."
"섭정공 합하의 하해(河海)와 같은 은혜에 감읍(感泣)할 따름이옵니다. 대감."
서헌순은 죽었다 살아난 기분이었고, 앓던 이가 쏙 빠진 느낌이었다.
한상덕과 이경하가 자신을 내 치러 온 줄 짐작하였으나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치사까지 받으니 말할 나위 없이 흡족한 서헌순이었다. 더군다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거북했던 최제우의 처리까지도 해결되니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나 였다.
이렇게 최제운의 신병을 인도 받은 한상덕과 이경하 일행은 감영의 객사(客舍)에서
머물면서 최제우의 몸을 치료하였는데, 의원들과 시중드는 하인들을 제외하고는 일체
잡인의 출입을 금하였으니, 애가 닳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지금 감영 객사에서 약간 떨어진 허름한 초가집에서는 몇 사람의 사내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동학교주 최제우의 고제자(高弟子)이며 최제우의 계승자이자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과 같은 동학교도로서 접주(接主)의 직책을 맡고 있는 이필이었다.
"이 일을 우짜면 좋겠십니꺼?"
"..."
최시형이 이필에게 묻는데 이필은 묵묵부답 말이 없다.
"와 암말도 안하구 계십니꺼, 뭐라꼬 말 좀 해 보이소."
최시형의 거듭된 채근에 마지못한 이필이 입을 연다.
"내사마 뭐라꼬 할 말이 없네예. 해월신사(海月神師)께서도 알다시피 저들이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는데 우리가 무신 수로 대신사(大神師)님을 구출 할 수
있겠습니꺼."
대신사는 교주 최제운에 대한 존칭이었고, 해월신사는 최시형의 존칭이자 호이다.
최제우가 하늘의 계시를 받아 인내천(人乃天)의 천도(天道)를 대각(大覺)하고 창도한
것이 바로 동학이었으며, 그렇게 나타난 동학은 삽시간에
들불처럼 일어나 삼남(三南)의 가난한 백성들 사이에 퍼졌으니 그 기세는 사뭇
대단하였다. 그러나 이런 동학의 움직임을 좌시하고 있을 조정이
아니었다. 곧바로 동학교도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이 가해졌고 급기야는 초대
교주인 최제우가 경주에서 잡히기에 이르렀다.
서른 다섯 늦은 나이에 동학에 입문한 최시형은 불과 2년만에 동학의 2대 교주로
임명될 만큼 누구보다도 동학의 교리에 능통하였으며 최제우의
사랑 받는 제자였다. 작년 8월에는 초대 교주인 최제우에 의해 2대 교주로 임명된
인물이었다. 비록 일자무식의 촌 무지렁이였지만 명석한 두뇌와 통솔력으로 교도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런 최시형이었으니 스승에 대한 걱정이 남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허면, 요로코롬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하란 말입니껴?"
"..."
이필은 말이 없었다. 이필이 아무말이 없자 애가 닳은 최시형이 다시 말한다.
"우짜든둥 대신사님을 구출해 내입시더."
"지금 뭐라켔능교?"
"감영의 객사를 뿌사 뿌리던지 불을 질러 뿌리던지 하입시더, 그라몬 무슨 수가
보이지 않겠습니껴."
"해월신사까지 와 이라능교. 쪼매만 기다려 보입시더. 그 한상덕이라 카는 사람은
천군이라 안 카등교. 설마 천군이 우리 대신사님을 죽이기야 하겠능교?"
벌써 시골 구석구석까지 천군의 소식이 퍼진 모양이다.
"답답한 소리마소, 그라몬 와 지뜰이 대신사님을 한양으로 압송한단 말입니껴. 필시
대신사님을 한강 백사장에서 참수하고 뽄을 보일라코 하는 깁니더."
"..."
이필은 다시 벙어리가 되었다.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던 이필이 말을 한다.
"그라몬 이렇게 하입시더, 우리가 몇 몇 동지들을 데불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깁니더.
한양에 올라가서, 기회를 봐 가믄서 대신사님을 구해 내면 돼지 않겠능교?"
"그기 가능하겠습니껴?"
"못할 것도 없지예. 다행히 저들이 대신사님을 운현궁으로 압송한다카니
잘 하몬 기회가 올 낍니더. 함 해 보입시더."
"좋십니더. 함 해 보입시더."
이렇게 해서 최시형을 비롯한 몇 몇 사람들이 한양에 가기로 결정하였으니, 참으로
순진한 사람들이었다. 와호장룡지지(臥虎藏龍之地)와 다를 바 없는 운형궁을
들이치고 최제우를 구출할 생각을 하다니...
"저런, 최제우의 몸 상태는 괜찮습니까?"
"예, 다행히 고문을 심하게 받았지만 지금은 몸에 별 이상 없습니다."
대구 감영에서의 일을 보고 받은 김영훈이 이렇게 걱정하며 말을 하자 한상덕이
대답했다.
"아무튼 두 분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죄포장 영감께서는 이만 낙동 댁으로
돌아가시어 쉬시도록 하세요."
"알겠사옵니다. 합하."
이경하가 돌아가자 최제우를 대려 오라 명한다.
잠시 후 최제우가 들어왔다.
지난해 12월 9일 경주에서 잡혔고 대구 감영으로 이송된 것이 21일이니까 어느덧
수감 생활을 한지도 한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그동안 대구 감영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도 끝내 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경상 감사 서헌순이 지칠 지경에 이르게
만들 정도로 기개가 충만했던 최제우였다. 그런 최제우가 지금 김영훈 앞에 와
있었다. 깨끗이 목욕을 한 덕분인지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으며 새로 입은 의복은
깨끗했다.
김영훈은 최제우가 들어 왔음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최제우만 바라 보고 있다.
그런 김영훈의 모습을 최제우도 담담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김영훈은 내심 가슴이 벅차 오르고 있는 것을 느낀다. 말로만 듣던, 역사 속에서만
실제 했던 수운 최제우를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되다니...
가만히 최제우를 바라 보던 김영훈이 침묵을 깨고 말한다.
"한울님 하신 말씀, 개벽(開闢) 후
오만 년에 네가 또한 첨이로다."
"...????"
최제우는 눈앞이 캄캄했다. 지금 김영훈의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자신이 처음
대각을 이루고 기쁨에 찬 나머지 읆었던 용담가(龍潭歌)가 아닌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 득도한 곳인 경주 구미산 용담의 경치와 득도의 기쁨을 읊은 용담가가 어떻게
이 자의 입에서 나온단 말인가. 용담가는 자신과 핵심 동학교도 이외에는 누구도
알지 못 하거늘...-용담가는 동경대전과 함께 동학의 기본 경전인 용담유사라는
포교가사집(布敎歌詞集)에 실리는 아홉 편의 가사중의 하나이다. 원래 역사에서는
최제우가 죽고 나서 1881년(고종 18) 6월 최시형(崔時亨)이 충청북도 단양군 남면
천동 여규덕(呂圭德)의 집에서 처음 펴내게 된다. 그러니 최제우가 놀랄 수 밖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 마치 지난날 처음 대각 하였을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최제우였다. 김영훈의 용담가는 물 흐르듯이 계속 이어진다.
"천은이 망극하여 경신사월 초오일에
글로어찌 기록하며 말로어찌 성언할까
만고없는 무극대도 여몽여각 득도로다
어화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 닥친줄을
너희어찌 알까보냐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구미산수 좋은승지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나도또한 개벽이후 노이무공 하다가서 너를 만나 성공하니
나도성공 너도득의 너희집안 운수로다
기장하다 기장하다 이내운수 기장하다
한울님 하신말씀 개벽후 오만년에
네가또한 첨이로다
무극대도 닦아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후략..." -여기에 적힌 용담가는 증산도 싸이트인 http://www.greatopen.net/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모든 증산교도 여러분과 천도교도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꾸벅^
^;;
이렇게 용담가가 끝이 났다. 최제우는 김영훈의 용담가가 끝났어도 한 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 최제우를 보던 김영훈이 다시 말을 한다.
"원로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수운 선생. 이렇게 말로만 듣던 분을 두 눈으로 뵙게
되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합니다."
한양으로 압송된다고 했을 때부터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최제우였다. 그러나 그 동안
한상덕이 자신에게 베풀었던 후의(厚意)와 진정(眞情)을 통해 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고마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 최제우였으나 이렇게 운현궁에 들어와서
과분하게 뜨끈한 물에 목욕까지 하고 말로만 듣던 섭정공을 보게 되니 그 자신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런 최제우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이 있으니
김영훈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용담가였다. 가히 충격이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추스린 최제우가 김영훈에게 묻는다.
"어떻게 소인의 용담가를 알고 계시오이까?"
"..."
최제우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빙그레 웃기만 하는 김영훈이다. 애가 닳은
최제우가 다시 묻는다.
"정말 하늘에서 내려온 천군이시오이까?"
그런 최제우의 궁금증을 풀어준 이는 다름 아닌 한상덕이었다. 한상덕은
섭정공 김영훈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한 푼의 가감(加減)없이 있는 그대로 최제우에게
얘기한다.
최제우는 무엇에 홀린 기분이었다. 한상덕의 말이 끝났어도 충격에서 헤어나올 줄
몰랐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난 듯 김영훈에게 묻는다.
"이 모든 일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합하께옵서는 소인과 동학을 어찌 처결하실
생각이옵니까?"
"아직까지 우리 천군이 조선에 완전하게 뿌리를 내리지는 못 하였습니다. 완전하게
뿌리를 내린다면 모든 일을 백성들의 뜻에 따라 순리에 맞게 처리할 것이나 이제
겨우 두 달도 돼지 않은 시점에서 섣불리 모든 일을 우리 천군의 뜻대로
처리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습니다. 우선 기존의
양반과 사대부 세력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해서 이렇게 수운 선생을
모신 것입니다. 수운 선생께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요. 당장에 동학을 인정할 수는
없으나 잠시만 우리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조선에서 시행하게
될 여러 가지 개혁들을 지지하고 힘을 실어 주십시요. 우리 천군이 힘과 신 기술로
무장하였다고는 하지만 조선
양반 사회의 뿌리는 너무도 깊습니다. 이러한 고로 일반 백성들의 자각과 지지는
절실히 요청된다 하겠습니다. 당분간 은인자중(隱忍自重)하시고 자중자애(自重自愛)
하면서 기다려 주십시오. 아직 이 나라는 선대 임금의 국상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국상이 끝나게 되면 본격적으로 개혁을 실행할 것입니다. 그때를 대비해서 우선 수운
선생께서 동학과 교도들을 이용해서 무지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생각을 틔여 주십시요.
동학의 완전한 인정은 아직 시기상조(時機尙早)지만 더 이상의 동학에 대한 탄압은
없을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의 개혁이 성공하게 되면 수운 선생께서 주장하시는 만민평등(萬民平等)
의 새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그때를 위하여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장황한 김영훈의 말이 끝났다. 최제우는 봉사가 눈을 뜬 듯한, 과부가 새 서방을
만난 듯한 그런 심정이었다. 마침내 자신이 그렇게 갈망해 마지 않았던 그런 새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최제우는 그렇게
감격했다.
최시형과 이필은 경기도의 동학도 몇과 함께 한양으로 들어왔다. 바로 최제우를
구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먼저 운현궁을 답사하기 위해서 어슬렁 거리는데, 밖에서
본 운현궁은 여러 가지 공사로 정신 없이 분주하기만 했다.
그런 운현궁의 모습을 보던 최시형이 배아리가 꼴려서 이필에게 한마디 한다.
"육시랄 것들! 배때지에 기름끼만 낀 것들이 뭣을 할라꼬 저러코롬 집을
뿌시고 새로 짓고 난린지... 참말로 이눔의 시상이 우짜자고 이라는지 모르겠구만..."
"쉿---- 제발 해월신사는 조용히 좀 하씨오. 누가 들으면 우짤라꼬 이라능교?"
"와, 내가 틀린 말을 했능교?"
"아무래도 안돼겠심더, 이만 가입시더."
"와요?"
"퍼뜩 오이소, 이만 갑시다마."
이필이 앞장서서 가 버리자 최시형도 교도들을 이끌고 뒤따른다.
"와 그라능교? 여직 더 둘러봐야 할긴디...?"
"내사마 다 둘러 봤다 아입니껴. 걱정하지 마이소. 이미 내가 생각해 논게 있심더."
운현궁을 떠나온 최시형일행의 발걸음은 교동으로 이어진다. 교동을 거쳐 재동,
재동을 거쳐 사동, 사동을 거쳐서 전동, 전동을 지나서 청계천,
청계천을 넘는 일행들의 발걸음은 분주했다. 청계천을 이렇게 건너면 소위 말하는
남촌(南村)이었다. 북촌(北村)과 대칭인 곳이 바로 남촌이었다. 북촌에는 왕궁이
있고 관아가 있으며, 고관대작들의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그러나 반대로 남촌은 가난한 선비와 이름없는 양반들이 살고 있는 곳이었다.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볼 때 서울에서의 최상지는 경복궁이고 다음이 창덕궁이니 이
궁궐을 연결하는 선상의 지역, 북악과 응봉을 연결하는 산줄기의 남쪽 기슭에서 현
율곡로 좌우측 일대는 주거입지 즉 양기풍수상(陽氣風水上)의 최길지(最吉地)였다.
이 지역은 이른바 북고남저(北高南低)로 양지로서 겨울에 따뜻하고 배수가 잘 될 뿐
아니라 남쪽은 넓게 트인데다 안산(案山)인 남산의 전망도 좋아 정침(正寢)이나 사랑(
斜廊)이 항상 남면(南面)할 수 있는 이점도 지녀 이 일대에 그때마다의 권문세가(
權門勢家)들이 모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이곳에 집거함으로써
자기들끼리의 대면을 통한 정보 교환이 가능했으며 그들의 지배를 언제나 합리화하고
장기화하기 위한 유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다(물론 그 내부에 있어서는 오히려
분파활동(分派活動)을 활발하게 하는 요인도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곧 서울에
있어서의 북촌(北村)의 형성이다.
한편 당대의 권문세가가 아닌 하급관리들이라든가 양반의 자손이기는 하나 현직의
고급 관헌이 아닌 자들은 남산 기슭인 이른바 남촌(南村)에 살았다. 그곳은 음지(
陰地)이기는 하나 배수가 잘 되고 지하수가 풍부하여 취수에 편리했으니 오늘날의
중구 남산동에서 필동을 거쳐 묵정동에 이르는 지역이다.- 서울 육백년사에서 발췌...
물론 남촌 주민이라고 해서 모두 낙척 선비나 양반들인 것은 아니었다. 정조에 의해
탕평책이 실시되고 상업이 장려됨에 따라 상인들의 거주도 시작되었고 그에 따라서
저자거리가 형성되었고 기방이 들어 왔고 술집과
음식점이 생겨났다. 이른바 북병남주(北餠南酒)라는 말이 여기에서 비롯된다. 부촌인
북촌에는 떡이 맛있고, 빈촌인 남촌에는 술이 유명하다는 말이니, 부촌에는 떡집
빈촌에는 술집이 많다는 말이다.
청계천을 건넌 최시형일행은 같은 동학교도가 운영하는 묵동의 어느 허름한 주막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막집 봉놋방에서 오늘밤 운현궁의 담을 넘어 최제우 구출 계획을
짜기 시작했으니...
벌써 밤은 깊어 자정이 다 되었다. 가끔씩 순라꾼만이 돌아 다닐 뿐 인적이 끊어진
서울 장안은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최시형과 이필은 다른 동학교도 둘을 이끌고
운현궁으로 향했다. 일행은 발걸음을 죽이고 담 그늘을 방패삼아 운현궁쪽으로
접근했다. 그러나 그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으니, 운현궁의 솟을대문에는 조그만
보름달 같은 것이 두둥실 떠 가지고 대문 앞을 비추고 있으니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하는 수 없이 일행은 후문 쪽의 담을 넘기로 한다. 운현궁의 경비는 예상보다는
허술했다. 대문의 요상한 것을 믿는지 번을 서는 이도 없었고 뒷담의 높이는 얕았다.
먼저 몸놀림이 가벼운 최시형이 담을 넘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이 넘고
마지막으로 이필이 넘었다. 일행들이 느끼기에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일행이 담을 넘어 운현궁에 들어오고 보니 운현궁의 넓이와 건물의 수가
장난이 아니게 많았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리가 없었으며 최제우가 붙들려 있는
곳을 알 수도 없었다. 난감했다.
"어데로 가야하능교?"
성질 급한 최시형의 물음에 난감한 이필이 짜증을 낸다.
"그걸 내가 우예 압니껴."
"운현궁을 들이치자고 한 사람이 이접주가 아닙니껴? 이접주가 모르면 누가
안단말입니껴?"
최시형은 큰 소리로 이필을 나무랄 수도 없었으며, 이필은 자신의 성미대로 받아 칠
수 없었다. 두 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죽이며 옥신각신하고 있는데 업친데 덥친다던가.
"누구냐! 거기 있는게 누구냐!"
운현궁을 지키던 군사 몇이 아재당쪽에서 소리치며 달려 오는 것이 아닌가.
"이크, 들켰심더. 빨리 도망칩시더."
최시형이 이렇게 외치고 돌아서는데 벌써 사방에서 군사들이 에워싸기 시작했다.
"네, 이놈들. 순순히 오라를 받으렷다."
군사들을 지휘하며 정순남이 소리친다. 정순남은 한상덕의 수하로 배속되어
대외정보원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제법 의젓하게 행동할 줄 알았다.
십 여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자신들을 에워싸는데 무슨 용빼는 재주가 있어서
달아나겠는가... 이렇게 최시형의 무모한 행동은 끝을 내고 말았으니...
아재당의 한 쪽 방에서 잠을 자고 있던 최제우는 자신을 깨우는 정순남의 소리에
놀라 일어나며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최시형과 이필을 비롯한
동학교도들이 군사들의 삼엄한 감시속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게 누구신가. 오- 해월신사! 해월신사!"
최제운의 말은 떨렸으며 그런 최제우를 바라보는 최시형은 손을 뻗으며 달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최시형은 말을 잊지 못하고 눈물만 펑펑 쏟아냈으니, 참으로 감격적인 스승과 제자의
해후라 할 수 있었다. 밤은 깊어 자정인데, 이제는 죽었구나 싶었던 최시형으로서는
무어라 말을 못하고 있었고, 그것은, 꿈속에서도 그리던 자신의 애 제자를 만나게 된
최제우도 마찬가지였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21 전면등장(前面登場)...8-1
번호:4769 글쓴이: yskevin
조회:1145 날짜:2003/09/25 01:24
.. 전면등장(前面登場)...8-1
음력으로 2월이 넘으면 이 땅에는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남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봄소식에 벌써부터 산들은 두꺼운 겨울옷들을 벗어버리고 새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다.
조선의 서울인 한양에는 유달리 산이 많다.
먼저 한양의 주변을 감싸고 있는 진산(鎭山·명당의 뒷산)인 북악산에서 내청룡(
內靑龍)에 해당하는 낙산(駱山), 백련산(白蓮山)이 있고, 안산(案山·명당의 앞산)인
남산(南山)과, 내백호(內白虎)인 인왕산(仁王山)이 능선을 타고 백악(白岳)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산을 넘으면 정남(正南)으로 관악산(冠岳山)이 있고, 동남(東南)
에는 남한산(南漢山)이, 정동(正東)에는 불암산(佛岩山), 동북(東北)에는 수락산(
水落山), 정북(正北)에는 도봉산(道峰山), 정서에는 안악산(鞍岳山)이 보인다. 이런
산들에 둘러 쌓인 한양은 가히 도읍지지(都邑之地)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높은 산의 꼭대기에만 눈이 보일 뿐 한양의 대부분은 춘색(春色)이 완연(完然)
하다.
얼음이 녹은 개울가에는 버들가지가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춤을 추고 있었고,
흙 담길 개나리도 물이 올랐다.
남녘에는 이미 꽃 소식이 무르익었으며, 고사리며, 쑥이며, 취나물과 같은 나물 캐는
아가씨도 봄바람에 벌렁벌렁 뛰는 가슴만 부여잡고 있으리라...
지금의 강남구 삼성동(三成洞) 수도산(修道山)에는 봉은사(奉恩寺)라는 유서 깊은
사찰이 있다. 신라 원성왕 때 지어진 봉은사는 한때 승과시(僧科試)를 치르던
곳이었으며 서산(西山), 사명(泗溟) 두 대사도 여기서 등과 하였다고 한다. 지난
병자호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불탄 것을 숙종 때
중건하고 순조 때에 다시 중수하였다.
추사(秋史)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는 대웅전(大雄殿) 댓돌에는 나이 어린 동자승(
童子僧) 하나가 봄볕을 쪼이며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예끼, 이놈아! 어린놈이 사시불공(巳時佛供-절에서 점심 전에 올리는 불공) 올릴
생각은 하지 않고 봄볕에 병든 닭 새끼 마냥 졸고 있느냐!"
주지승(住持僧)인 현암 노승이 법당에 들어서며 댓돌에서 졸고 있는 동자승 동인을
깨운다.
현암 노승의 호통에 잠이 깬 동자승 동인은 졸린 눈을 비비며 서둘러 법당 안으로
들어선다.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광명운대 주변법계(光明雲臺 周遍法界)
공양시방 무량불법승(供養十方 無量 佛·法·僧)
헌향진언(獻香眞言) 『옴 바아라 도비야 훔』
지심귀명정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志心歸命正禮 三界導師 四生慈父 是我本師 釋迦牟尼佛
지심귀명정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야중
志心歸命正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佛陀耶衆
지심귀명정례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달마야중
志心歸命正禮 十方三世 帝網刹海 常住一切 達摩耶衆
..................................후략..........................................
............."
장엄한 예불문(禮佛文)이 오분향례(五分香禮)를 시작으로 현암 노승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동인은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졸린 눈을 부여잡고 어서 빨리 사시불공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예불문을 따라 읇 조린다. 이윽고 모든 불공이 끝나자
서둘러 좌복-방석의 일종-을 정리한 동인이 법당을 빠져 나오는데, 그런
동인을 보며 노승 현암이 한마디한다.
"이눔아! 빨리 공양간에 가서 공양 준비 못혀!"
"알았어요. 스님은 참..."
"저 눔이 저래가지고 중노릇을 어떻게 하려는지..."
"가요, 간다구요."
이렇게 대꾸하며 동인이 뛰어가자,
"하이구, 이럴 줄 알았으면 저 눔을 동래(東來) 범어사(梵魚寺)에서 데려오질 않는
것인데...어린 눔이 어떻게 왜놈을 만나 가지고 바람이 들었는지...?"
노승 현암이 어린 동인을 보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최제우 일행이 운현궁에 머문지도 어느덧 보름이 지났다. 그 사이 대구 감영에
최제우와 함께 잡혀있던 30 여명의 동학도들은 모두 방면되었으며
최제우를 비롯한 일행들은 김영훈의 배려로 당분간 운현궁에서 생활하며
천군에게 현대식의 한글과 신학문의 기초를 배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신라의 대(大) 문장가(文章家) 최치원의 이십 팔 대 손(孫)인 최제우였으니, 이미
상당한 학문을 깨우치고 있었다. 그런 최제우였기에 천군에게서 한글과 신학문을
익히는데도 단연 발군(拔群)이었다. 본래가 일자무식의 촌무지렁이였던 최시형도
현대식 한글을 보름만에 깨우치는 기염(氣焰)을 토하며 천군을 놀라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시형과 함께 운현궁 뒷담을 넘었던 접주 이필도 원래가 면무식(免無識)은
하였던 이였기에 학습
진도가 남에게 뒤지지 않았다.
"수운 선생, 신학문은 배울 만 하오이까?"
아재당에서 최제우와 겸상으로 점심을 먹던 김영훈이 최제우에게 물었다.
"제가 스스로 우리 민족의 역사에 해박하다고 자부하였으나 우물안 개구리였소이다.
이제 여태껏 모르고 지냈던 우리 역사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으니, 하루
하루가 신천지(新天地)에 사는 기분이오이다."
학습 진도를 묻는 김영훈의 물음에 슬쩍 역사 얘기를 하며 두루뭉실 피하는
최재우였다.
"이제 출판 시설의 설치도 끝났으니 정식으로 출판국(出版局)을 설치하여 바른
우리말과 글, 그리고 역사를 적은 책을 편찬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깨우쳐야 하올
줄로 아옵니다."
"이르다 뿐이겠소이까. 앞으로 우리가 조선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중의 자각이 선결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지요."
이렇게 두 사람이 점심을 먹으며 담소하고 있는데 밖에서 한상덕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섭정공 합하, 한상덕입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김영훈의 말이 떨어지자 한상덕이 들어왔다.
"합하, 방금 함경도 경흥부사의 파발(擺撥)이 도착했습니다. 그 소상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러시아로부터의 통상요구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상덕은 이미 파발문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그를 비롯한 대부분의 천군이 한문에
약했기에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김영훈도 마찬가지였으니
누굴 탓하겠는가. 원래 원정단이 결성되고 보름 동안의 합숙 기간이 있었으나
한문이란 것이 보름의 학습으로 깨우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직도 일부를
제외한 천군의 대다수는 한문을 대략적으로 읽을 줄만 알았지 문리(文理)를 파악하는
것은 역부족이었다.
"수운 선생, 선생이 한 번 살펴주시겠소?"
한상덕의 손에서 파발문을 넘겨받은 김영훈이 다시 그걸 최제우에게 주었다.
최제우가 그 파발문을 한참 쳐다보더니,
"아라사의 수군 제독이 통상을 요구하면서 주상전하께 예물을 바친다며 물건을
넘겨주고 갔다는데 어찌 하면 좋을지 하교를 기다린다고 적혀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필시 연해주(沿海州)에 주둔하고 있는 아라사의 동방 방문 사절단일
것입니다....으-음... 수운 선생께서는 이 일을 비밀로 해주십시오. 그리고 한원장은
즉시 대궐에 입궐하여 추밀원장에게 전하세요. 내일 주상전하께서 임어(臨御)하시는
중신회의를 소집할 것이니, 모든 중신들에게 통보하라고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한상덕이 김영훈의 명을 받고 나가자 최제우가 김영훈에게 묻는다.
"합하께서는 어찌하실 생각이신지...?"
"이미 우리는 있을 줄 알고 있었습니다. 나라 안의 사정이 편안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으나 지금 조선의 상황에서는 당분간 청과 왜를 제외한 다른 외국과는 교역할 수
없습니다."
"여태껏 청과는 정식 교역이 이뤄진 것은 잘 알고 있사오나 왜국과는...?"
"그렇지요. 조선과 왜국과는 지난 순조조 때의 일로 모든 교류가 끊어졌지요."
임진왜란 후 조선과 왜의 관계는 단절되었으나 왜에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가
들어서자 왜의 요청으로 1609년(광해군 1)에 기유약조를 맺어 통교를 재개하였다.
기유약조 이래 통신사(通信使) 파견은 모두 12회나 되었다. 조선 통신사는 왜에 경조(
慶吊)의 일이 있을 때마다 에도(江戶: 지금의 東京)까지 내왕했는데, 비단 외교사
절일 뿐 아니라 문화 전파의 역할까지도 담당하였다.
한편 조정에서는 왜인들의 내왕을 통제하기 위해 조선 전기와 같이 입국 증명을 꼭
소지하게 하였다. 입국 왜인의 개항장은 부산이었고, 입국 왜선은 세견선(歲遣船)과
임시적인 사송선(使送船)이 있었다. 사송(使送)을 목적으로 입국하는 차왜(差倭)는
무역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그들은 예조판서·동래부사 등에 공식적인
서계(書契)와 예물인 별폭(別幅)을 바치고 회답서계(回答書契)와 회사(回賜) 예물을
받아갔다.
이후 예물은 점차 증가되어 무역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차왜의 종류에는 막부장군(
幕府將軍)의 관백승습(關白承襲)을 비롯, 통신사호행(通信使護行)·진하(陳賀) 등
30여 종이나 되었다. 1811년(순조 11)에는 역지교역(易地交易)이라 하여 조선
통신사를 대마도에서 영접하기 시작하였다. 역지교역이란 일본이 조선 통신사 일행
500여 명 내외가 에도까지 내왕하는 데 드는 접대비가 과다하다는 이유로 대마도에서
외교와 교역 사무를 처리하자고 한 것이다. 이 역지교역은 왜의 국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왜가 무례하다 하여 역지교역이 실시된
1811년부터 지금까지 왜에 통신사를 파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왜인들도 양이의 손에 의해 강제 개항을 겪고 나서 지금까지 정국의
혼란이 상당합니다. 이러한 때에 저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최제우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나저나 내 수운 선생께 부탁이 있습니다."
"부탁이시라면...?"
최제우가 김영훈의 부탁이라는 말에 긴장하며 되물었다.
"지금 동학의 교세가 삼남 일대에 충분히 퍼져 있는 반면에 경기 이북 지방인
함경도와 평안도, 황해도 일대에는 미미하지요?"
"그러하옵니다만...?"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라 수운 선생께서 동학을 북쪽 지방까지 확장해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쪽의 백성들을 깨우쳐 주십시오. 그러나 저나 운현궁에서
정식으로 지원하지는 못합니다. 그저 은밀히, 소리 소문 없이 해주십시오. 다만 전에
약속했던 더 이상의 탄압은 없을 것입니다."
"으-음..."
"..."
한참을 심사숙고(深思熟考)하던 최제우가 말한다.
"합하의 말씀은 양반이나 사대부가 위협을 느껴 관아에 고변(告變)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만일 양반 사대부들의 고변이나 상소(上疏)가 올라온다면 상당히
시끄럽습니다. 아직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알겠사옵니다. 그렇게 하지요."
"고맙습니다, 수운 선생."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이 일이 어찌 합하 혼자만의 일입니까? 오히려 우리 동학의
교세를 확장할 수 있는 일인걸요."
이렇게 해서 최제우의 밀명을 받은 동학교도들의 북쪽 포교가 은밀하게 시작되었다.
이월이 지나면 호시절(好時節)이라 할 수 있는 춘삼월(春三月)이 코앞인데, 그 시대
조선의 사정상 호시절 춘삼월은 일부 양반들의 호사에 불과 했으니, 먹을 것 없고,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 어려운 가난한 백성들은 이 시절이 가장 혹독한 시련의
계절이었다.
바야흐로 춘궁(春窮)이 시작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미 농촌에서는 굶기를 밥먹듯 하는 백성들이 속출하였으니 살랑살랑 불어대는
봄바람에 백성들의 시름은 깊어만 갔다.
서울 장안의 백성들은 물론이고 나라안 모든 백성들이 운현궁의 동향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백성들이 셋만 모이면,
"아이구, 이놈의 세상. 천군이 등장했다고 좋아들 했는데 달라진 게 없으니..."
"그러게 말일세. 제 놈들도 별 수 있을라고..."
이렇게 김영훈을 비롯한 천군을 매도하는 백성들이 있는 반면에,
"아니야.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아마도 대행대왕마마-승하한 임금에게 붙이는 경칭. 여기서는 철종을 칭한다.-의
인산(因山)이 끝나면 뭔가 달라질게야."
이렇게 생각하는 백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인산 날까지는 아직도 한 달하고도 보름이나 남았으니 백성들의 속이 타
들어갈 만 했다.
지금 창덕궁의 희정당에는 중신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 정월의 신년하례식 이후에 처음으로 모든 신구(新舊) 대신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어린 임금이 중앙의 용상에 앉아 있었고 그 뒤로는 찬란한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가
자리 잡고 있는 모양은 제법 위엄이 그득했다.
어린 임금의 한쪽 옆에는 섭정공 김영훈이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문관과 무관들이
품계대로 앉아 있었다.
'오늘은 어떤 놀라운 일이 있을 것이냐.'
모두들 섭정공의 입이 열리기만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으니, 마치 말 잘 듣는
강아지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모양과 흡사했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섭정공 김영훈의 입이 드디어 열린다.
"오늘 이렇게 주상전하의 임어(臨御)하에 중신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문제에 대해 여러 중신들의 의견을 듣고자 주상전하의 뜻을 받든
여(余)가 소집하였소."
김영훈의 말이 이어진다.
"여가 주상전하의 뜻을 받들어 섭정공의 자리에 올라 국정을 위임(委任)받은지 이미
두 달이 지난 이 시점까지 특별한 정령(政令)을 발(發)하지 않은 까닭은 아직
대행대왕마마의 국상중이고, 또한 주상전하의 친부이신
고(故) 흥선대원군 저하의 복상(服喪) 중이기 때문이었소. 그러나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각(一刻)이 여삼추(如三秋)와 같은 심정으로 여를
주시하는 실정이오. 여는 이러한 백성들의 뜻을 받아들여 몇 가지 안건을 처리하고자
하오. 여러 중신들은 이런 여의 뜻을 헤아리고, 중론을 모아 여의 근심을 덜어주기
바라오."
김영훈의 말은 청산유수(靑山流水)가 따로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원래부터
조정에 출사한 관료쯤으로 짐작할 만큼 그의 말하는 품새는 의젓했다.
사람들은 모르리라, 김영훈이 이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극을 봐야 했으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울 앞에서 보내야 했는지를...
김영훈의 말은 쉼 없이 이어진다.
"이제 얼마 있으면 춘삼월이 돌아오오. 춘삼월이라 하면 참으로 놀기 좋은 계절이라
생각하는 중신들이 있을지 모르나, 행여 그런 몰염치(沒廉恥)한 생각을 가진
중신들이 이 자리에 있다면 당장 그런 생각을 버리시오. 지금 삼남에는 춘궁기가
닥쳐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가엾은 백성들의 숫자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는
실정이오.
모름지기 바른 정사(政事)의 근본은 군왕(郡王)이하 모든 대소신료들이 솔선
수범하여 근검하고 절약하며 기아선상에 허덕이는 백성들을 측은하게 여기고 그들을
구원하는데 있다고 할 것이오. 본래부터 우리 민족은 성실하고 근면하였으며
정직하였소. 그러나 작금에 이르러 위정자(爲政者)들이 사치와 향락 풍조에 젖어
들게 되자 어리석은 백성들은 그것을 본 받아 게을러지는 경향(傾向)이 승(昇)하야
이제는 본디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 성품마저도 사라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소."
사실이 그랬다. 당시 그 시절 양반 사대부들의 평균 취침 시간은 밤 열두시를 넘기기
일쑤였으며 기상 시간은 정오를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것은 조정에 출사한
관헌들일수록 더 했으니 이 무렵 사대부의 집에 해시(亥時이십사시의 스물셋째 시.
하오 9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의 동안) 이전에 불이 꺼지면 그 집은 벼슬하는
사람이 없다는 식의 인식으로 인하여 억지로 불을 밝히고 밤을 지새웠다. 왜? 남에게
꿀리기 싫으니까!
또한 조정의 중신들은 오후가 되어서야 입궐하는 일이 다반사였다.-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일반 백성들에게도 확산되어 농사짓는 사람이라도 아침 9시가
돼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풍조가 만연해 있었다.
"그러한 백성들의 나쁜 습성을 개량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대소신료들과 이도에
있는 상하관헌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겠소."
이렇게 해서 섭정공의 명이 떨어졌는데,
첫째로 관헌을 비롯한 양반 사대부들이 입고 있는 모든 관복과 도포를 개량할 것을
명하였다. 넓은 저고리의 통을 줄이고 긴 바지의 기장을 줄이기를 명한 이른바 복식(
服式)의 개량이었다.
둘째로 양반 사대부들이 머리에 쓰는 관모(官帽)와 갓의 개량을 명했으니 갓의
크기를 줄이고 호박(琥珀)이나 옥(玉)같은 것으로 장식한 끈을 헝겊으로 바꾸라고
명했다.
세 번째로 생활에 사용되는 모든 물품들의 간소화를 명했다. 예를 들어,
한 자가 넘는 긴 장죽(長竹)을 짧게 만들어 소지하기 편하도록 명했으며, 편지를
넣는 봉투, 양반들이 소지하고 다니는 합죽선과 같은 부채, 등의 크기를 줄일 것을
명했다. 모두가 양반 사대부들을 겨냥한 것이다.
중신들은 불만에 찬 얼굴이었다. 자신들을 소집하여 국사를 논한다더니, 이건
일방적인 통고가 아닌가. 그것도 자질구레한 일을 가지고 말이다. 어이가 없었다.-
근데 어찌 흥선이 살아 있다면 시행하게될 시책들과 비슷하다???
"여의 말은 끝나지 않았소.
요즈음 우리 조선의 내정이 어지러워진 틈을 타서 양이들의 침입이 부쩍 늘었소.
어제 함경도 경흥부사의 파발문이 도착하였는데, 그 내용인즉
북변(北邊)의 아라사(러시아)인들이 무엄하게도 통상을 요구하였다고 하오. 비록
그들이 주상전하께 바치는 예물을 동봉하였다고는 하나 참으로 무엄한 행동이 아닐
수 없소. 여는 여러 중신들의 뜻에 따라 처결하고 싶은 생각인데 여러 중신들의 뜻은
어떠하시오?"
조두순이 나선다.
"참으로 무엄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옵니다. 저들과의 통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마땅히 저들이 보낸 예물을 돌려 줘야 할 것이며 다시는 그와 같은
해괴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함경감사 이유원와 북병사(北兵使) 이남식, 경흥부사
김기배등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관헌들을 문책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조두순이 이렇게 말하자 정원용도 질세라 나선다.
"저의 뜻도 법무대신의 생각과 같사옵니다. 아조 400년 역사이래 양이와의 통교는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절대로 그와 같은 일을 받아들여서는
아니 될 줄로 사료되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를 전달한 이들도 또한 문책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대세가 러시아와의 통상 불가의 방향으로 흘러가자 김영훈은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조선의 조정에서 생각하기에 양이와의 통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저들의 격한
감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조선은 힘을 키워야만 했다.
"그럼, 여러 중신들의 의견을 따라 여가 결정을 내리겠소."
김영훈은 이번 기회에 과거 김씨 일파의 지방 세력들에게 겁을 줄 심산이었다.
"추밀원장은 여의 말을 기록하여 내무부로 통보하라."
장현덕이 익숙하지 않지만 붓을 들었다.
"북병사 이남식과 경흥부사 김기배는 각자 임지에서 근신하도록 명하고 함경감사
이유원은 파직하도록 하라. 그리고 후임 함경 감사에는 대비전의 승후관인 조성하를
임명토록 하라. "
어린 임금은 가만히 김영훈이 하는 모양새를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리며
딴 데를 돌아보는 것이 어지간히 무료한 모양이다.
김영훈의 말이 계속된다.
"지금 춘궁기가 도래하여 삼남의 백성들이 굶기를 밥먹듯이 하는 이 마당에 국상을
핑계로 가여운 백성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직무유기라
하지 않을 수 없소. 따라서 지금 이 순간부터 모든
대소신료들과 상하관헌들은 춘궁이 끝날 때까지 음주와 가무를 금할 것이며 스스로
검약한 생활을 할 것을 명하는 바이오. 아울러 전국의 모든 관아에 있는 환곡(還穀)
을 풀어서 가난한 백성들에게 내어 줄 것이며 특별히 올해만큼은 무상으로
나누어주도록 하시오."
좌중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김영훈의 말에 기침 소리
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재경대신, 대감!"
"예, 섭정공 합하."
김영훈이 부르자 천군 출신 재경대신 김기현이 제법 의젓하게 답한다.
"지금 여가 시행하려는 정책에 무리는 없겠습니까?"
"환곡을 말씀하신다면 지금 당장에는 별 다른 무리는 없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하오나..."
"말씀하세요."
"조정에서 아무리 백성들에게 무상으로 환곡을 나눠 주라 하여도 일선에 있는 하급
관헌들이 그 명을 제대로 시행할지가 걱정이옵니다."
"여도 그런 걱정이 있습니다."
"..."
김영훈도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미 지난 변란에 몰수한 김씨 일파의 재산이
엄청났기에 가을에 백성들에게 환곡을 회수하지 않아도 재정에는 문제가 없었다.
김영훈이 다시 말한다.
"근위천군 대장 김욱과 친위천군 대장 안용복 대감은 들으시오."
"예, 합하."
"예, 합하."
김영훈이 부르자 특전사에서의 후배들이자 특수수색대에서의 부하들이었던 김욱과
안용복이 답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등장하는 이들이다.
"두 사람은 지금 이 시간 부로 휘하 천군들을 이끌고 전국 방방곡곡에 파견을
나가시오. 나가서 행여 지방관헌들의 수탈이 있는지, 환곡은 제대로 분배가 되는지를
엄밀히 지휘 감독하시오. 그 기한은 한 달을 줄 것이고, 여가 특별히 지휘 감독
권한을 위임할 것이니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소. 아시겠소이까?"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합하."
"알겠사옵니다, 합하."
두 사람이 우렁차게 대답을 한다. 그리고 끝이다. 벌써 퇴장이다. 안타깝다. 쯧쯧쯧..
.
"그리고 여는 곤궁한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기 위해 그 동안 여가 받았던
두 달 분의 녹봉과 주상전하께서 하사하신 위로금을 원납전(願納錢)으로
내도록 할 것이니 재경대신께서는 여의 이 녹봉과 위로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줄
방법을 연구해보시오."
김영훈은 어린 임금대신으로 섭정공의 위치에서 정사를 돌보는 신분이었기에 그가
받는 녹봉도 자세히는 밝힐 수 없으나 상당했다. 왜 밝힐 수 없냐고? 묻지 마라.
그건 작가도 모른다. 원래가 조선에 없던 직책이었으니 무슨 기록이 있어야 참고를
할 것 아닌가.
당시 조선에서 정 일품 영의정의 한달 녹봉이 백미 두 섬 여덟 말에, 콩이 한 섬 닷
말이었다니까 영의정보다는 많이 받았으리라...
"합하의 거룩하신 뜻을 저도 받들겠사옵니다."
김기현이 이렇게 김영훈을 따라서 원납전을 내겠다고 하자 여기 저기서 너도나도
따라서 원납전을 내겠다고 나선다.
원래 김영훈을 비롯한 모든 천군은 변란 후에 어린 임금으로부터 상당한 양의
위로금을 받았다. 그리고 두 달 분의 녹봉을 더 한다고 해도 그것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신들이 자발적으로 내겠다고 하는 원납전까지 합하니 그 양은
어마어마하게 불어났다.
이 모든 것이 김영훈과 천군 사이에 치밀하게 짜여진 각본이었으니 조정 중신들의
재산만 거덜나게 생겼다.
"그리고..."
김영훈이 이렇게 낮은 소리로 말하자, 조정 중신들은 덜컥 겁부터 났다. 저 인간의
입에서 또 무슨 얘기가 나와서 자신들의 재산을 축낼지 모르기 때문에 잔뜩 움추려
들었다.
"농림대신 대감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찾아계시오이까? 섭정공, 합하."
새로이 농림대신에 임명된 쌀 박사 김인호가 대답을 하며 나선다.
"농림도감의 공사는 어느 정도나 진척되었습니까?"
"농림도감의 공사는 여러 가지 작물을 시험 재배할 작물실험실은 이미 완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농림도감 본 청의 건물의 공정은 현재 약 8할의 공정을 보고
있습니다."
"호-오, 공사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섭정공 합하. 농림도감은 동대문 밖에 있는 선농단(先農檀)의 부속
건물을 작물실험실로 삼았고 또한 도편수(都邊首) 이승업 공(公)과 여러 목수들의
노고로 생각보다는 빠른 공정을 보이고 있습니다."-도편수 이승업은 현재 서울시
중구 필동 남산골 한옥마을 살았던 목수의 우두머리로 실제의 역사에서는 경복궁
중건의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다.
"그렇습니까?"
"예, 도편수 이공은 농림도감 뿐만 아니라 신기도감과 신의도감의 공사도 지휘하고
있습니다. 합하께서는 마땅히 이공을 불러 그의 공을 치하하셔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잘 알겠습니다. 모든 공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대감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김영훈과 김인호의 이와 같은 상인을 칭찬하는 말에 간혹 눈살을 찌푸리는 중신들도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이 어디 그런 것에 신경 쓸 사람들인가.
"국방대신 대감."
"말씀하시옵소서, 섭정공 합하."
국방대신 김병국이 자신을 부르는 김영훈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답한다.
"신기도감의 공사는 잘 되고 있습니까?"
"신기도감도 이 도편수의 지휘아래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사옵니다. 아마도
대행대왕마마의 인산이 있는 사월에는 완공이 되어 시제품이 나올 것이옵니다."
"잘되었군요, 신의도감은 어떻게 돼가고 있나요? 보위대신 대감."
김영훈이 보위 대신 유홍기를 쳐다보며 이렇게 묻자 유홍기도 즉시 대답한다.
"저희 보위부에서 만들고 있는 신의도감은 전의감(典醫監)을 확장 한 것이옵니다.
따라서 기존 전의감의 건물을 그대로 쓸 수 있고, 나머지 필요한 건물의 공사도 이미
모두 마쳤사옵니다. 지금은 전의감과 내의원, 혜민서 의원들의 교육에 이미
착수했사옵니다."
유홍기의 말이 끝나자 김영훈은 크게 기뻐하며 말한다.-신기도감은 구 연희궁 지금의
연희 입체교차리 부근에 자리잡았고, 농림도감(선농단)은 동대문구 제기동에,
신의도감(전의감)은 종로구 견지동에 자리잡는다.
"오-호, 그래요. 그것 정말 잘되었습니다. 정말 잘되었어요."
김영훈은 정말 기뻐하고 있었다. 신의도감의 완성으로 새로운 신약들이 나올 것이며,
거기에서 교육받는 의원들이 장차 조선의 의료를 담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기뻐하던 김영훈이 좌중을 바라보며 말한다.
"그리고..."
모든 중신들이 김영훈이 입에서 무슨 말이 떨어질지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그리고 또 처리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청국에 다녀올 고부 겸 청시승습사(
告訃兼請諡承襲使)를 정하는 일입니다."
당시 조선은 청국과의 외교에 있어서 수시로 사신을 파견하고, 받기도 하였는데 주로
청국 황실의 경사가 있을 때 보내는 사은사(謝恩使)와 국사(國事)에 대한 의논할
일이 있을 때 보내는 주청사(奏請使), 주로 동지에 파견한다고 해서 동지사(冬至使)
등 수시로 사신을 주고 받았는데 지금과 같이 선왕이 승하하고 신왕이 등극하였을
때도 역시 사신을 보내 통고(通告)하고 청국의 허락을 받아와야 했다.
여기에서 고부란 부고(訃告)의 의미를 지니며 청시승습사란 신왕의 등극을 알리고
허락을 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고부겸 청시승습사는 선왕의 부고, 신왕의 등극과
허락을 구하는 사신을 말한다.
"어느덧 대행대왕마마의 승하와 주상전하의 등극이 있은 지 두 달 가까이 흘렀습니다.
따라서 청국에 사신을 파견해야 할 것이며, 아울러서 여는 그 동안 단절되었던
왜국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하기 위해서 통신사(通信使)를 파견하고 싶은데 여러
중신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론을 모아 주시오."
김영훈의 말이 끝나자 중신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먼저 국무대신 정원용이 나선다.
"국무대신 정원용 아뢰오. 선왕의 승하와 신왕의 등극을 알리는 사신을 청국에
파견하는 일은 당연히 해야할 일로 사료되오나 이미 단절된 왜국과의 통교를 이제
와서 다시 복원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일찍이 저들 왜국은
감히 무엄하게도 우리 조선에서 파견하는 통신사를 저들의 도성인 에도까지
내왕하는데 경비가 많이 소용된다는 미명아래 대마도에서 외교와 교역 사무를
처리하자고 한 전례가 있사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 조선에서 먼저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겠사옵니까? 만일 왜국과의 통교를 다시 연다고 하여도 마땅히
저들이 먼저 파견을 요청하는 서계(書契-조선시대 왜인(倭人)·야인(野人)의
입국사증(入國査證)을 겸하였던 외교문서.)를 받은 연후에 검토하여도 늦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정원용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조두순이 나선다.
"법무대신 조두순 이뢰오이다. 신(臣) 또한 국무대신의 뜻과 같사옵니다. 청국에
사신을 파견하는 일은 당연하다 하겠으나 왜국에 통신사 파견을 요청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보옵니다."
두 원로 대신이 이렇게 말하고 나서자 이번에는 박규수가 말을 한다. 박규수도
오랜만이다.
"상공대신 박규수 아뢰옵니다."
"오- 상공대신께서는 전에 한 번 청국에 다녀 온 일이 있었지요. 어서 말씀하세요."
김영훈이 반갑다는 듯이 친밀하게 말하자,
"그렇사옵니다. 신은 전에 청국에 다녀온 일이 있었사옵니다. 앞에 말씀하신 두 분
원로 대신들의 말씀이 맞사옵니다. 청국에는 마땅히 사신을 보내야 옳을 것이옵니다.
하오나 왜국에 통신사 파견을 반대하는 것은 신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렵사옵니다."
"흐-음, 납득하기 어렵다. 허면 대감의 뜻은 무엇이오?"
"신의 생각으로는 왜국에도 마땅히 통신사를 파견하여 지난 날 끊어졌던 양국간의
통교를 다시 이어야할 줄로 사료되옵니다. 그 이유는..."
"이유는...?"
모두들 박규수의 말에 빠져들고 있었는데,
"청국은 말할 것도 없이 왜국마저도 이미 지난 대행대왕마마 시절에 이미 양이에
의해서 강제 개항을 하였사옵니다. 그리하여 서서히 양이의 물결이 작금에 이르러
아조를 비롯한 동양 삼국에 이르고 있사옵니다. 다행히 아조는 아직 양이의 마수(
魔手)가 미치지 못하였으나 언제 저들의 마수에 우리 조선이 당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하여, 이번 기회에 청국은 물론이고 왜국에도 통신사를 파견하여 양국에
침투한 양이들의 실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사료되옵니다. 아울러서 앞으로
섭정공 합하께서 백성들의 삶을 어루만지고 보살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재정의 확보가 시급하옵니다. 이러한 때에 양국에 사신을 파견하시고 새롭게 무역의
길을 트신다면 섭정공 합하의 대망(大望)을 이루시는 첩경(捷徑)이 될 것이라고
사료되옵니다."
"대망이라...대망...?"
모두들 숨을 죽이고 김영훈의 다음 말을 기다린다.
"상공대신께서는 여의 대망을 알고 계시오이까?"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의 삶을 어루만지는 것으로 신은 알고 있사옵니다."
박규수의 말이 끝나자 김영훈은 무릅을 탁 치면서 감탄한다.
"바로 맞추시었소. 환재 대감께서 바로 맞추셨소이다."
김영훈은 이렇게 박규수를 칭찬하며 좌중을 둘러본다.
"여의 뜻이 바로 그렇소이다. 그러나 아조는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 가난한 나라가
잘 살기 위해서는 무역을 통해서 청국과 왜국의 돈을 벌어들여야 하는 것이오. 여의
뜻은 정해졌으니 여러 중신들의 그렇게 알고 따라주기 바랍니다."
정원용과 조두순은 속이 떫었다. 이렇게 지 맘대로 할거면 왜 불렀냔 말야. 혼자서
다 하지.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속은 떫었으나 내색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해서 청에 보낼 고부 겸 청시승습사와 왜에 파견할 통신사의 문제도 일단락
지었다. 먼저 청에 보낼 고부 겸 청시승습사의 정사(正使)로 전 우의정 이경재가
낙점 되었으며 부사(副使)로는 전 도승지 민치상으로 결정되었다. 왜에는 먼저
대마도로 사신을 보내 이런 조선 조정의 뜻을 알리기로 하였으며 동래 부사로 하여금
대마도주에게 서계를 전달토록 하였다.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22 전면등장(前面登場)...8-2
번호:4774 글쓴이: yskevin
조회:838 날짜:2003/10/09 16:43
.. 전면등장(前面登場)...8-2
"이렇게 결정을 하였으니 추밀원에서는 각 부로 이와 같이 정한 바를 통보하고 모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바랍니다."
"알겠사옵니다. 합하."
장현덕이 이렇게 대답하자 김영훈은 급한 일은 어느 정도 끝났다는 생각에
중신회의를 마칠 생각인지 좌중을 향하여 묻는다.
"그럼, 오늘 중신회의는 이것으로 마칠까 합니다. 혹시 다른 의견이 있는 분들은
지금 말씀해주세요."
모두들 말이 없었다. 이제야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바램을 무참히 깨는 소리가 들렸으니 바로 상공대신 박규수의 말이었다.
"섭정공, 합하. 신 상공대신 박규수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환재 대감."
"갑사하옵니다, 합하."
김영훈이 회의를 마친다고 하자 급한 마음에 나서는 박규수였다.
"합하, 신이 생각건대 지금 우리 조정의 재정이 말이 아닐 것이옵니다."
"대감의 말이 맞소. 정말 조정의 재정은 궁핍하기 이를 데 없소."
김영훈이 박규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볼 요량으로 대꾸를 하자 박규수는 힘이
솟는 느낌이다.
"하여, 신의 생각으로는 조정의 궁핍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시급히
처결할 일이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이까? 환재 대감."
박규수의 말을 듣자 사뭇 궁금해지는 김영훈이다. 김영훈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중신들도 마차가지로 궁금한 모양이다.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상공업의 발달을 촉진시켜야 할 것이옵니다.
재경대신이 아닌 신이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외람 되오나
상공업의 발달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재정확충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고 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그 상공업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육의전(六矣廛)을
폐지하고 그들에게 부여한 금난전권(禁難廛權)의 회수를 통하여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호-오, 그래요?"
"그러하옵니다. 합하."
박규수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거침없이 피력해 나갔다.
"원래 육의전과 금난전권이라고 하는 것은..."
육의전은 육주비전(六注比廛)·육부전(六部廛)·육분전(六分廛)·육장전(六長廛)
·육조비전(六調備廛) ·육주부전(六主夫廛) 등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시전은 태종
때 고려 개경에 있던 시전을 그대로 본떠, 한성 종로를 중심으로 중앙 간선도로
좌·우에 공랑점포(公廊店)를 지어 관설상점가(官設商店街)를 만들어 상인들에게
점포를 대여, 상업에 종사하게 하고, 그들로부터 점포세·상세(商稅)를 받은 데서
비롯하였다.
초기에는 이들 공랑시전(公廊市廛)의 상업규모가 거의 동일하여 경영·자본면에 큰
차이가 없이, 제한된 상권(商圈) 안에서 고식적인 상업활동을 계속하였다. 차츰
서울이 번영하고 상업이 발전하게 되자 전(廛)들은 각각 그 특성에 따라 경영방식이
달라지고, 관청에 대한 어용적인 면에서도 두각을 나타낸 전이 생겨났다. 이들 중
경제적 ·사회적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6종류의 전을 추려서 육의전이라 하였다.
이들에게 사상인(私商人), 즉 난전(亂廛)을 단속하는 금난전권(禁亂廛權)이라는
독점적 상업권을 부여하는 대신, 궁중 ·관청의 수요품, 특히 중국으로 보내는
진헌품(進獻品) 조달도 부담시켰다.
그리고 금난전권은 조선 후기 육의전(六矣廛)과 시전상인(市廛商人)이 난전을 금지할
권리를 말하는데 시전(市廛)이 가진 본래적 특권이라기보다, 조선 후기 상업발전과
더불어 성장한 비시전계 사상인층(私商人層)인 난전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고 시전상인이 정부와 결탁하여 확보한 강력한 독점상업특권이다.
난전은 전안(廛案:숙종 32년부터 실시한 제도로, 시전에서 취급한 물종과 상인의
주소, 성명을 등록한 상행위자의 臺帳)에 등록되지 않은 자나 판매를 허가받지 않은
상품을 성안에서 판매하는 행위였다. 조선 후기 이래 난전의 등장은 곧 붕괴적
어용상인인 시전상인의 상권을 침해하였고, 이에 시전상인은 자신의 상업적 특권을
유지·보호하려고 난전 금지를 정부에 요청하였다. 정부는 재정수입을 늘릴 목적에서
국역을 부담하는 육의전을 비롯한 시전상인에게 서울 도성 안과 도성 아래 십리
이내의 지역에서 난전의 활동을 규제하고, 특정 상품에 대한 전매권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금난전권을 부여하였다.
즉, 금난전권은 시전측으로서는 새로이 성장하는 비 시전계 상인인 난전 또는 사상(
私商)과의 경쟁을 배제하고 이윤을 독점할 수 있고, 그것을 인정한 정부로서는 이를
통해 상업계에 대한 파악도를 높이고 특정상인의 자본을 육성함으로써 세수입을
증대시키는 방책이었다.
그러나 금난전권의 실시는 조선 후기 이래 확대된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도시 소비자뿐만 아니라 시전체계 안에 포섭되지 못한 사상층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또한 권세가·궁방 등과 결탁한 사상도고(私商都賈)의 세력이 점차
확대되면서, 금난전권의 혁파에 대한 여론이 높아졌다.-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참조...
"이러한 이유로 육의전을 폐하고, 금난전권을 회수하고, 난전(亂廛)을 활성화
시킨다면 그동안 육의전, 시전 상인들과 그들과 결탁한 일부 못된 권세가들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는데 급급하였던 기존의 관행을 뿌리뽑을 수 있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아울러 세수의 증대도 이룰 수 있을 것이옵니다."
박규수의 장황한 말이 끝났다. 박규수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김기현이 나선다.
"합하, 신 재경대신 김기현 이뢰옵니다."
"말씀하세요, 재경대신 대감."
박규수와 김기현, 김영훈의 톱니가 물린 듯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을 보는 것 같았으며 바야흐로 쓰리고를 향하고
있었다.
"신의 생각 또한 상공대신의 뜻과 같사옵니다. 그동안 일부 몰지각한 시전 상인의
매점매석(買占賣惜)과 부의 독점을 조선의 백성들은 뻔히 눈을 뜨고도 당할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존의 권력과 결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악순환이 계속된 작금에 이르러서는 그 폐혜가 국가 경제의 파탄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었사옵니다. 그리고 그들 상인들과 일부 부유층들은 시중에 유통되어야
마땅할 화폐를 고스란히 집안에 쌓아 놓기만 하여 매년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는데 더
많은 돈이 소요되는 지경에 이르렀사옵니다. 신의 생각으로는 이런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는 의미에서 그들의 독점 혜택을 폐지하고 광속에 잠들어 있는 화폐를
끌어내기 위하여 새로운 화폐를 제조함이 옳은 줄로 사료되옵니다. 이미 천군에서
가져온 인쇄 시설이 설치된 지금 새로운 화폐-지폐-를 만드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새로운 화폐를 제조하여 유통시킨다면 불필요하게 동으로 주조한 화폐를
사용하는 폐단을 없애고 그 동을 다른 곳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화폐라고 하는 것은 발행하는 중앙은행의 입장에서 보자면 부채(빚)이다. 일종의
채무증서라고 할 수 있다. 채무증서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지불을 보장하는
담보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담보 또는 가치의 기준을 찾는 제도가 본위제도 이다.
화폐를 발행할 때, 화폐단위의 가치를 어떠한 기준에서 찾는가가 본위(本位)이고, 이
본위를 어떻게 정하느냐 하는 제도가 본위제도(standard system)이다.
본위제도로서는 은본위제도가 먼저 성립한 후 금본위제도가 등장하였고, 이어
금은복본위제도(金銀複本位制度)로 되었다. 그 후 세계적인 은의 산출량 증가로 은의
가치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어 점차 금본위제도로 다시 이행하였다. 복본위제도에
대하여 이를 단본위제도(單本位制度)라 한다. 또한 은본위제도의 탈락과 함께 은의
무제한주화(無制限鑄貨)를 금하고, 대외지급의 경우에만 은을 금으로 태환할 것을
인정한 파행본위제도(跛行本位制度)도 과도적으로 채용되었다.
1816년 영국의 금본위제도 채용에 뒤따라, 세계의 주요국들은 거의 금본위제도를
실시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으로 금본위제도는 중지되었다. 이에 따라
국내적으로는 금 이외의 주화와 지폐를 유통시키고, 국제거래 유통수단으로서는
중앙은행이 은행권과 상환으로 금괴(金塊)를 매매하는 금괴본위제도와 금환(金換)을
국제거래결제수단으로 하는 금환본위제도도 채택되었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이렇게 화폐를 발행하면서 일정한 양의 금이나 은을 비축하는 것을 지급준비금이라
하는데 지금 한국의 한국은행법에는 대한민국 내의 금융기관은 예금채무에 대한
일정비율의 예금지급준비금을 한국은행에 지급준비예금으로 보유해야 하며(56조),
금융통화위원회는 모든 금융기관(농업협동조합 ·수산업협동조합 제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예금지급준비금의 최저율(100분의 50 이하)을 정하며,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는 이를 변경할 수 있다(57조)고 규정하고 있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이게
아주 웃기는 제도였다.
대표적이 지급준비은행이 미국의 중앙은행인 미국연방지급준비은행이 있다. 그러나
미국연방지급준비은행이라고 해서 미국 정부의 소유라는 생각을 하면 곤란하다. 왜냐?
지금 세계의 대부분의 나라에 있는 중앙은행은 정부의 소유가 아닌 개인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각 국의 재정과 경제를 쥐고 필수 있는 기축 통화의 발행과
관리는 몇 몇 서방 자본가들의 손에 있다는 얘기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이나
일본같은 강대국의 중앙은행이 자신들의 정부 소유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인들은
모르고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인데...과거 한국에 있었던 IMF사태도
그들이 한국이 축적한 부를 탈취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일으킨 일인데...이 문제는
너무도 방대한 분량이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서술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이상
작가의 공지였습니다. 궁금하죠^^;; 어떻게 미국의 중앙은행과 세계의 중앙은행을
그들이 장악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누군지? 알면 다치는데...^^;;
좌중은 무거운 침묵에 휩 쌓였다.
누구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김영훈이 정리할 필요성을 느꼈는지 입을 연다.
"두 분 대감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저도 그 문제는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계신 다른 대신들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실 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김영훈이 묻자 모두들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연다. 먼저 김병학이 말한다.
"내무대신 김병학 아뢰옵니다."
"말씀하세요, 대감."
"신의 생각으로도 재경대신과 상공대신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옵니다. 하오나
만약에 새로운 화폐를 유통시키고 기존의 화폐를 폐지한다면 급격한 사회 혼란이
우려되옵니다. 따라서 그러한 혼란을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아울러서
강구하여야 할 줄로 아옵니다."
김병학의 말이 끝나자 다른 중신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따라한다.
"신들의 뜻도 그러하옵니다, 합하."
"참으로 옳으신 결단이옵니다, 합하."
중신들의 중론이 이렇게 모아지자,
"여러 중신들의 높으신 뜻은 잘 알겠습니다. 이제 이렇게 뜻이 모아졌으니
재경대신과 상공대신, 두 분 경제분야 대신께서는 시장 경제를 활성화하고 새 화폐를
통용함에 있어 발생하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여 시행토록 하세요."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명심하게 거행하겠사옵니다."
김기현과 박규수의 대답이 끝나자 김영훈이 다시 김병학을 부른다.
"내무대신 대감."
"하교하시옵소서, 합하."
"대감께서는 재경부와 상공부에서 계획한 일들이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서 시행될 수
있도록 지방 관아에 이 일을 알리고, 일의 시행에 있어서 차질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도록 하시오."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섭정공 합하."
김병학의 대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영훈이 이번에는 좌, 우 포도대장을 부른다.
"좌포장 이경하 영감과 우포장 이장렴 영감은 들으시오."
"예-이, 좌포장 이경하 예 있사옵니다."
"하교하시옵소서, 합하."
김영훈의 부름에 각각 오십 대와 사십 대의 장신(將臣)인 이경하와 이장렴이
대답한다.
"두 분 포도대장은 풍속개량과 사대부의 음주 가무 금지, 그리고 육의전과 금란전권
폐지 등 이번에 여가 시행하는 여러 가지 정책에 반발하고 거부하는 자들이 있는지
도성 안을 철저히 살피면서 색출하도록 하시오. 특히 자신의 권세를 믿고 날뛰는
무도한 무리가 있다면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잡아들여 그 죄를 엄히 묻도록 하시오.
아시겠소이까? 두 분 영감."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합하."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좌포장 이경하와 우포장 이장렴이 늠름하게 대답을 하였다.
두 포도대장 중에서 특히 이경하는 이후에 섭정공 김영훈과 천군의 정책에 앞장서서
지지하게 되며, 반대하는 양반 사대부들을 색출하는 모습이 마치 일진광풍이
몰아치는 모습과 같다고 해서 낙동에 사는 이경하가 몰아치는 광풍이라는 뜻의 "
낙동바람" 이경하라는 별칭이 붙게된다. 물론 나중에 일이다.-낙동바람은 실제
역사에서 이경하에게 붙은 별칭이다.
이렇게 해서 시장의 개혁과 신 화폐재정도 가닥을 잡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대궐에서 쓰이던 모든 물품의 구입과 관헌들에게 지급될 녹봉의 지급에도 이때부터
현물이 아닌 현금을 지급하기 시작한다. 비로소 상품화폐경제의 첫 걸음이 놓이게
되었다.
김영훈은 뿌듯했다. 이제야 조선에 개혁의 첫걸음을 내딛는 기분이었다. 김영훈이
이렇게 뿌듯하게 웃음을 짓고 있는데 건교대신 김정호가 김영훈의 흥을 더하는
제안을 한다.
"신 건교대신 김정호 아뢰옵니다."
"오--오, 고산자 대감. 말씀해 보세요."
오랜만에 등장하는 김정호였기에 김영훈의 반가움은 컸다.
"두 분 경제분야 대신들의 말씀이 참으로 옳사옵니다. 그러나 그런 정책들이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서는 한가지 부가하여 시행하여야 할 일이 있사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이까?"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묻는 모습이 마치 알면서도 묻는 것 같다.
"그것은 바로 물품의 원활한 공급을 만들어주는 도로망의 확충이옵니다. 그동안 우리
조선의 도로망은 참으로 열악하였사옵니다. 그래서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는데 시일이
오래 걸렸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한 손실도 만만치 않았사옵니다. 또한 지방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는 물품들의 대부분이 수운을 이용해서 올라오고 있사옵니다. 그런데
근자에 이르러 양이들의 배가 우리나라에 자주 출몰하는 관계로 유사시에 수운이
막힌다면 한양 도성의 물류가 막힐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옵니다. 따라서 신의
생각으로는 육상 운송로의 확보를 위해서도 육상 운송망과 도로망의 확충은
절실하다고 생각하옵니다."
김영훈을 비롯한 좌중의 중신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고산자 대감의 말씀이 맞소이다. 내 고산자 대감의 뜻대로 할 터이니 대감께서는
김기현 대감과 박규수 대감, 그리고 김병학 대감과 의논해서 그 일을 처리하세요.
아울러서 대감께서는 우리 조선의 지리에 누구보다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 지식을 활용해서 금광과 은광, 철광을 비롯한 광물의 채집에도 신경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이 일은 국가 재정 확충에도 일조 하는 일입니다. 다행히 천군 중에
지리학에 밝은 이들이 있으니 그들을 잘 활용하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명심하여 거행하겠습니다."
풍속 개량과 외국과의 교역, 상업 활동의 개선과 교통망의 확충 그리고 광산의
개발까지 모든 일이 결정되었다. 아직까지 국방과 교육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남았으나 한꺼번에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일을 여러 중신들과 의논하니 모든 일이 한결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소이다. 이 모든 일이 주상전하와 천 삼백만 조선 백성들의 홍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중신들은 오늘 결정된 일들이 차질 없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분부 받잡겠사옵니다."
모든 중신들의 대답이 끝나자 그동안 무료하게 회의를 지켜보고 있던 어린 임금이
한마디한다.
"모두들 섭정공의 명을 과인의 명과 같이 여기고, 섭정공을 도와 국태민안의 초석을
다져주세요, 아시겠습니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김영훈을 비롯한 모든 중신들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을 하자 어린 임금이 다시 말한다.
"아울러서 한 가지 시급히 처결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린 임금이 이렇게 의젓하게 말을 하자 좌중을 대표해서 김영훈이 어린 임금에게
묻는다.
"그것이 무엇이옵니까? 전하."
"그것은 바로 경을 비롯한 미(未) 장가(杖家) 천군을 장가보내는 일 이예요."
김영훈을 비롯한 모두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어린 임금의 말은 계속된다.
"과인이 추밀원장에게 듣기론 섭정공을 비롯한 대부분의 천군이 장가를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간혹 장가를 가서 일가를 이루었던 천군도 있으나 모두 가족들을
버려 두고 우리 조선을 위해 왔다고 합니다. 과인은 이 얘기를 듣고 참으로 감동
받았습니다. 하여, 이 얘기를 꺼내는 것이니 여러 중신들은 서둘러서 천군의, 알맞은
혼처를 알아보도록 하세요.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고, 이 일은 섭정공을 비롯한
천군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정원용 대감과 조두순 대감께서 책임지고
처리하도록 하세요. 아시겠습니까? 두 분 대감."
"명심하여 거행하겠사옵니다, 전하."
"한치의 실수도 없을 것이옵니다., 전하."
그동안 조정에서 소외된 느낌을 받았던 두 원로 대신이 어린 임금의 말에, 이제야
자신들의 할 일을 찾았다는 듯이 대답한다. 아마도 이 일을 계기로 김영훈과
천군에게 가까워 질 수 있는 끈을 만들려는 계산도 있을 것이다.
백성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그렇게도 기다리던 섭정공의 명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은 소식이었다.
겨우내 먹었던 양식이 이제 다 떨어지고 무슨 수로 춘궁기를 버티나 걱정하였던
백성들에게 환곡을 무상으로 분배한다는 소식은 온갖 시름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는
쾌거였다.
"내, 그 분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예끼, 이눔아! 얼마 전까지 만해도 니눔은 그런 섭정공 합하를 욕하지 않았더냐."
"아따,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 아닌가베."
백성들은 너도나도 김영훈의 얘기로 정신이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운현궁은 밀려오는 손님들과 인사차 찾아온 백성들 때문에
북새통을 이루었다. 환곡의 무상 분배 소식이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섭정공 합하를
뵙겠다고 찾아왔으니 운현궁을 지키는 청지기와 하인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백성들을 운현궁에서는 김영훈의 지시로 홀대하지 않고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먹여서 돌려보냈으니 모두들 김영훈을 무슨 현신(現身)한 관음보살처럼 우러러
보았다.
이런 운현궁을 들어서는 늙고, 어린 중 두 사람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봉은사의
주지인 현암 노승과 동자승 동인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서서 본 광경은 장관이었다. 운현궁 너른 마당에는 크고 작은 차양이
쳐져 있었고 그 차양 아래에는 찾아온 백성들에게 국밥을 대접하느라 하인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마침 하인 하나가 바쁘게 지나가는데,
"여보시오"
하고 현암이 불러 세운다.
"무슨 일이시오, 스님."
"예가 운현궁이 맞소이까? 그 섭정공 합하께서 거하신다는...?"
"그렇소, 혹 시주를 받으러 오셨다면 이리로 오시오."
하며 하인이 앞장을 서자 현암이 다시 말한다.
"아니오, 시주를 받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 섭정공 합하를 한 번 뵈 올려고
왔소이다. 뵈 올 수 있겠소이까?"
"스님이요...?"
이상한 스님이라는 듯 현암을 한 번 쳐다본 하인은 너무도 쉽게 대답을 한다.
"예서 기다리시우. 내, 가서 여쭙고 올터이니..."
이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지는 하인을 쳐다보며 현암은 생각한다.
'집안의 하인조차도 이런 늙은 중을 홀대하지 않는 것을 보니 과시 소문이 헛되지는
안는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현암이 하는 동안 어린 동자승 동인은 난생 처음 한양 구경과
으리으리한 운현궁의 모습에 주눅이 들었는지 어리벙벙한 모습이다.
그 시간 김영훈은 아제당에서 한상덕을 비롯한 몇 몇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합하, 대단합니다. 지금 서울 장안에서는 합하와 우리 천군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하늘을 찌르는 듯 합니다."
한상덕의 말이 끝나자 이번에는 조성하가 말을 하고 나선다.
"왜 아니겠사옵니까. 이 모든 일이 주상전하와 합하의 홍복이옵니다. 하하하."
원래 조대비전의 승후관이었던 조성하는 지난 변란 전에 흥선에게 소흘히 대하였다.
그러다 흥선이 죽고 천군이 정권을 장악하자, 탄핵을 받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경흥부에서의 일로 김영훈의 명에 의해 함경감사로 취임하게 되었는데 이는
조대비와 풍양 조씨 일파를 달래기 위한 김영훈의 계산이었다. 비록 조대비전의
사람들이 흥선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변란의 원인을 제공한 죄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너무 홀대하기에는 아직까지 천군의 힘이 조선 팔도 구석구석까지 미치지
못하였다. 하여 그들을 달랠 겸 나름대로 유능한 조성하를 등용한 것이다. 그런
김영훈의 파격적인 인사 조치에 감격한 조성하였다.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될 것이야. 아직 우리는 할 일이 많네, 가야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았으니...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어루만지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게야."
"그렇습니다, 합하."
"특히 성하 자네는 이번에 새로 함경감사에 부임하거든 나의 이러한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보살펴야 할 것이야. 아울러서 북변의 아라사인들의 동태를 파악하는데
유념해야 하고..."
"알겠사옵니다, 섭정공 합하."
김영훈이 아직 약관의 나이인 조성하에게 자연스럽게 하대를 하며 말하는데, 밖에서
하인의 말소리가 들린다.
"섭정공, 합하. 소인 춘삼입니다요."
"무슨 일인가?"
춘삼이란 하인은 이제 서른 셋인 김영훈 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하라 하지
않고 하게 하는 김영훈이었다.
"밖에 왠 늙은 중이 어린 중 하나를 대리고 찾아왔사옵니다."
"늙은 중이...?"
"어찌 하올까요?"
한참을 생각하던 김영훈이 춘삼에게 지시한다.
"그 스님을 이리로 모시게. 내, 만나볼 터이니..."
춘삼이 김영훈의 말을 알아듣고 갔는지 조용하다.
김영훈이 다시 조성하에게 말한다.
"성하는 이제 그만 함흥으로 출발하게. 내 멀리 나가지는 않겠네."
"알겠사옵니다, 합하."
조성하가 김영훈과 한상덕에게 인사를 하고 임지로 떠나는데, 밖에서 춘삼의 소리가
다시 들린다.
"모시고 왔사옵니다, 합하."
"안으로 뫼 시어라."
현암은 섭정공을 만나기 위해 왔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안았다. 그런데 의외로 쉽게
김영훈을 만나게 되니 얼떨떨하기만 했다.
현암이 어린 동인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오자 김영훈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암을
맞이한다. 그런 김영훈의 모습에 한상덕도 얼떨결에 따라서 일어난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김영훈의 이런 환대에 오히려 몸 둘 바를 모르는 이는 현암이었다. 그저 황송하기만
했다. 원래 김영훈은 한국에 있을 때 정식으로 계(戒)를 받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절에 다니기도 했었다. 말하자면 얼치기 불자였다. 그리고 생도 시절에는 휴가를
이용해서 인도와 네팔을 보름 간 배낭 여행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그는 이른바
부처님의 팔대성지라는 곳을 다 둘러보았었다. 그런 김영훈이었으니 늙은 노스님을
맞이하면서 이런 대접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노스님께서는 어느 절에 계시는 뉘 신데 이렇게 저를 찾아오시었습니까?"
"소승은 수도산 봉은사라는 절의 주지를 맡고 있는 현암이라 하옵니다."
"봉은사요?"
"그렇사옵니다. 헌데, 합하께서는 저희 절을 아시옵니까?"
알다 뿐이겠는가. 봉은사는 거여동 3공수에서 얼마 떨어지지 안았다. 3공수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한 김영훈은 주말에 가끔씩 봉은사에 갔던 기억이 있었다.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어린 동자승 동인은 그날도 무슨 바람이 가슴에 가득한지 일주문 밖을 쳐다보며
한숨짓고 있었다.
'어제 온 보살님의 얘기대로 정말 왜국과의 교역을 다시 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동인이 하고 있는데 멀리서 동인의 그런 모습을 바라보던 현암 노승이
눈살을 찌푸린다.
"네 이놈, 동인아! 너 이리 좀 와봐라."
현암의 호통에 잔뜩 주눅이 든 동인이 달려온다.
"너 요즘 무슨 일이 있느냐?"
"무슨 일은요...?"
동인이 쭈뼛거리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그런 동인의 모습을 바라보던 현암이 다시
묻는다.
"정말 아무 일 없더냐? 내, 너를 야단치지 않을 것이니 솔직하게 말해보거라."
현암의 이 말에 머뭇거리던 동인이 마침내 결심을 한 듯 말한다.
"스님..."
"괞찬대두."
"..."
"어-허, 이눔이..."
"저---어, 실은 일본에 가고 싶사옵니다."
난데없는 동인의 말에 현암이,
"일본이면 왜국을 말하는 것이냐?"
"그렇사옵니다."
"왜국에 가서...?"
"일본에 가서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배우고 싶사옵니다."
현암은 말이 없었다. 막상 듣고 보니 자신이 들어줄 문제가 아니질 않는가. 그렇다고
이미 오장육부에 바람이 잔뜩 든 동인의 마음을 자신은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어제 온 보살님의 얘기로는 한양에 섭정공이라는 분이 계시옵고, 지금 이 분이
어리신 주상전하를 대신하여 조정에서 정사를 돌보시는데, 이번에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한다고 하옵니다. 그 분한테 가면 어떻게 방법이 있지 않겠사옵니까?"
"예끼, 이눔아! 그런 분이 우리 같은 중놈들을 만나 주기나 한다더냐. 그리고 만나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 그 분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늘어질 심산이냐?"
"혹시 압니까요? 그 분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 분이라 잖습니까."
"이눔이..."
"이렇게 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현암의 얘기를 다 듣고 김영훈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스님."
"이 놈의 뜻이 왜국에 가서 신학문과 신문물을 보고 배우고 싶다고 하온데 어디
그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겠습니까. 그저 섭정공 합하께서 곁에 두시고 계시다 나중에
옳은 일에 이 아이를 써 주십시오. 그러면 이 늙은이는 여한이 없겠습니다."
김영훈은 동인을 바라본다. 아직 어려 보이는 동인의 까까머리가 푸르스름한 것이
애처로와 보인다.
"네 이름이 뭣이냐?"
"어려서부터 절에서 자라 속세의 이름은 모르옵고 승명(僧名)은 동인(東仁)이라
하옵니다."
제법 야무지게 대답하는 동인이다.
"나이는?"
"대행대왕마마께서 왕위에 오르신 해에 태어났으니 올해로 ...가만있자... 열 다섯
살입니다."
손을 꼽으면서 자신의 나이을 세는 모습을 보고 김영훈과 한상덕이 웃음을 터트린다.
이어서 한상덕이 묻는다.
"혹시, 전에 동래 범어사에 있지 않았느냐?"
"그, 그걸 어떻게 아시옵니까?"
동인과 현암이 놀라며 한상덕을 바라보지만 한상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김영훈을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인다. 두 사람은 앞에 있는 동인이라는 동자승을 이미 아는
눈치였다. 장차 개화승으로 이름을 떨치게 될 이동인을 어찌 모를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스님, 이 아이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잘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장에 왜국에 건너가서 공부할 수는 없지만 제가 데리고 있으면서 가르치다가
기회를 봐서 외국에도 나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소이다, 정말 고맙소이다."
"고맙습니다."
각각 늙고, 어린 중 둘이 김영훈에게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고개를 숙이는데,
장차 이동인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지...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23 전면등장(前面登場)...8-3
번호:4785 글쓴이: yskevin
조회:909 날짜:2003/10/08 15:33
.. 전면등장(前面登場)...8-3
지금 서대문 밖 홍제원(洪濟院)에서는 지금 청나라로 향하는 고부 겸 청시승습사의
송별회가 한창이다. 본래 조선에서 청나라나 외국으로 파견하는 사신의 송별연(
送別宴)은 외무부(구 禮曹)에서 담당하였기에 외무부 단독의 행사였으나 이번만큼은
김영훈의 천군이 집권한 후 처음 있는 사신의 송별연이었기에 섭정공 김영훈을
비롯한 다 수의 중신들이 참석하였다.
1770년 영조 42년에 홍봉한(정조대왕의 외할아버지) 등에 의해 편찬된, 상고(上古)
때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의 문물제도(文物制度)를 총망라하여 분류 정리한, 일종의
백과 사전인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따르면 사신의 송별연 절차는 아래와
같다.
조정의 명을 받들고 중국으로 가는 사신의 송별연은 예조(禮曹)에서 담당하였다.
여기(女妓) 10명, 악공 10명이 소용되는데 국왕유본국사신악(國王有本國使臣樂)과
의정부연본국사신악(儀政府宴本國使臣樂)이 있다.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초잔(初盞) 및 진조(進俎) : 녹명(鹿鳴)을 노래
② 헌화(獻花) 및 진이잔(進二盞) : 황황자화(皇皇者華)를 노래
③ 초도탕(初度湯) : 사모(四牡)를 노래
④ 진삼잔(進三盞) : 연화대정재(蓮花臺呈才)
⑤ 이도탕(二度湯) : 남유가어(南有嘉魚)를 노래
⑥ 진사잔(進四盞) : 아박정재(牙拍呈才)
⑦ 삼도탕(三度湯) : 어려(魚麗)를 노래
⑧ 진오잔(進五盞) : 무고정재(舞鼓呈才)
⑨ 사도탕(四度湯) : 남산유대(南山有臺)를 노래
⑩ 진육잔(進六盞) : 삼현(三絃)
⑪ 오도탕(五度湯) 및 진칠잔(進七盞) : 문덕곡(文德曲)
⑫ 대육(大肉) 진팔잔(進八盞) : 송산조(松山操) 낙양춘(洛陽春)」
상당히 화려한 절차임을 알 수 있는데 외국(명, 청국)에서 조선으로 파견 나온
사신을 영접(迎接)하는 방법은, 국왕이 몸소 모화관(慕華館)으로 영접 나온 것을
제외하면 송별연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한다.
장엄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악공들의 연주와 기녀들의 춤이 모두 끝나자,
"자! 모두 잔을 드세요. 우리 모두 이번에 청국에 파견되시는 이경재 대감이하 모든
관헌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십시다."
김영훈의 말이 떨어지자 참석한 모든 대소 관헌들이 잔을 높이 들고 이경재와 민치상,
그리고 서장관(書狀官) 홍순학등에게 분분히 덕담을 베푼다.
원래 이런 정치적인 자리와는 안 어울리는 젊은 섭정공이었으나 자신의 집권 후 처음
외국에 파견하는 사신의 송별연이라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무릅쓰고 참석한
김영훈이었다. 그를 비롯한 천군은 아직 한국에서의 생활습관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 이런 자리가 거북하긴 했지만 조선에서 살아 갈려면 반드시 거쳐야할
통과의례(通過儀禮) 같은 일이기도 하였다.
분분히 잔이 오가는 중에 김영훈이 정사인 이경재를 은밀히 부른다.
홍제원 안 쪽에 자리한 한 건물에 들어온 이경재는 김영훈의 은밀한 명을 전달받는데,
"이번에 청국에 가시거든 청국의 실력자인 공친왕(恭親王)을 만나 차관(借款)을
요청해 주셨으면 합니다."
"차관을 말입니까?"
이미 지난번 철종대왕의 즉위를 청하러 북경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 이경재였으나
김영훈의 뜻밖의 말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대감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조선의 재정이 피폐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앞으로 우리 조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청의 원조가 절실합니다. 그리고 대감께서는
이미 지난번에 북경에 다녀온 일이 있기 때문에 청국의 조정에 친분이 있는 대신들이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렇긴 하오나..."
"저는 대감을 믿습니다. 분명히 지금 청국의 사정상 어려운 일이긴 하나 양이들의
침범이 잦은 작금의 우리 조선 사정을 잘 설명한다면 어렵지 않게 성사될 줄 압니다.
저들 청국도 지금 양이들의 침범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입장입니다. 이런 때
조선마저도 양이들의 침범에 직면하여 개항(開港)이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청국의
입장으로는 이가 없어 잇몸이 시린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형국과 같게 됩니다. 이
점을 잘 설명한다면 충분히 우리의 뜻을 관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대감께서 가져가시는 총을 보이시고 그 성능을 시연하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대감께서 최대한 노력해 주세요."
김영훈의 이와 같은 말에 알겠다고 대답하는 이경재였으나 장담할 수는 없었다.
이번 사신 행차에는 천군 특수수색대 대원들도 몇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표면상으로는 사신 호위장인 최경석의 수하였으나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임무가 따로 있었다. 그리고 단련사(團練使) 최경석에게도 또 다른 임무가 있었으니..
.
보통 반가(班家)의 장례는 백일장(白日場)을 치르는 데 반하여 왕실에서 치르는
국상은 돌아가신 날로부터 다섯 달 째 되는 날이나 하루 전 날을 택하여 장례를
치른다.
아침부터 도성안의 백성들은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며 어디론가 분주히 가는데
바로 오늘이 철종의 장례식이 있는 날이었다. 인산 행렬을 구경하려는 백성들인지
아니면 진실로 선왕의 승하를 슬퍼하는 행렬인지는 모르지만 너나할 것 없이 돈화문(
敦化門)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지난 계해년(癸亥年) 십이월 팔일에 철종이 승하하였으니 달수로는 오늘로서 꼭 다섯
달 째, 날짜로는 만 사 개월이 된다.
이미 어제 새벽에 현 임금이하 모두 관헌들이 제복을 입고 재궁(齋宮) 앞에 나아가
어례배(御禮培)를 함으로써 계빈(啓殯)을 마쳤고, 다시 어제 오후에는 재궁이
어능으로 향할 뜻을 종묘에 고하는 조전의(祖奠儀)를 마쳤다.
철종이 승하하자 장례위원장 격인 총호사에 정원용이 임명되어 빈전, 국장, 산릉의
세 도감을 지휘하여 맡은바 소임을 다하였고, 이제부터는 국장도감(國葬都監) 도제조(
都提調)인 김병학이 산릉까지의 인산 행렬을 지휘한다. 장지는 경기도 고양, 예릉(
睿陵)으로 이미 명명되었다.
오늘 새벽에 견전제(遣奠祭)를 거행하고, 명정(銘旌)을 봉출하고 신련(神輦)에 혼백(
魂魄)을 모시고, 소여를 빈전 문전에, 대여를 돈화문 밖 차일(遮日) 밑에 진어(進御)
하고 빈전찬궁(殯殿?宮)에 모셨던 재궁을 소여에 이안(移安)하고 금천교를 지나
돈화문을 향한다.
드디어 사개월 동안 굳게 닫혀있던 돈화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돈화문 앞에서, 봉출한 명정을 대여에 봉안하였다. 시간이 되자, 대여가 진발(
進發)하여 관수교를 건너 와룡동을 지나 구 훈련도감 터에 마련된 국장봉장에 이르러
봉결식을 거행하였다. 정오 무렵 봉결식이 끝나면 다시 대여를 진발하여 청량리에서
소주정(小駐停)하고, 다시 대여를 진발하여 망우리에 도착할 것이고, 다시 주정전(
晝停奠)을 지낸 다음, 저녁이면 고양 땅에 도착하여 예능 밖 재실(齋室)에 안착할
것이다.-이상은 1929년 있었던 순종황제의 국장록을 보고 작가가 창조하였습니다. 혹
예법에 맞지 않는 다거나, 너무 간소화하였다고 딴지를 거는 독자가 있을 수 있으나
작가가 무슨 국사학자도 아니고 왕실 역사 연구가도 아닌 이상 그러한 딴지는
사양하겠습니다. 솔직히 이 인산 장면을 재현하기 위해 작가는 여섯 시간을 투자하여
이곳 저곳의 자료를 뒤졌답니다. 덕분에 독자 여러분의 지적 호기심이 채워진다면
작가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대행대왕마마의 인산 일이 되니 장안의 백성들이 신분의 귀천과 남녀 노소의 가림이
없이 돈화, 금호 두 문(門) 앞으로 모인 것이 무려 10만이 넘었는데, 구름처럼 모여
애통하고 망극(罔極)해 하기를 마치도 부모 상사(喪事)를 당한 것 같이 하였다. 또
도성 안의 기생(妓生) 5백명이 베 치마을 입고, 짚신을 신고 나와 곡(哭)을 하였고,
각도(道) 열군(列郡)에 이르기까지 호곡(號哭)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 조선 반도(
半島)가 곡성중(哭聲中)에 떠 있었다. 과연 오늘의 이 곡성이 대행대왕마마를 위한
것인지, 조선을 위한 것인지, 열성조(列聖祖)의 하늘에 계신 영혼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아,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임금이 되시어 저 간악 무도한 김씨 일파의
탐욕에 휘둘리다 끝내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승하하신 비운(悲運)의
대행대왕마마시여...여기서 우리는 조선의 천 삼백만 백성들이 대행대왕마마의
그러한 처지를 잊지 않는 마음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훗날 발행된 제국 신문에서는
당시의 표정을 이렇게 술회하였다.
185Cm의 큰 키와 단단함 몸, 그리고 준수한 용모의 소유자인 섭정공 김영훈이 뒷짐을
쥐고 멀어지는 인산 행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조선에 도착한 후로 쭉 전투복 차림이었으나 철종의 인산이 있는 오늘이기에
조선의 정통 관복을 입고 있는 품이 상당히 잘 어울렸다.
'이렇게 해서 철종의 장례가 끝났다. 떠꺼머리 강화 도령이 임금이 되어 겨우 나와
같은 나이에 이제 한 줌 흙으로 돌아가다니 이래서 인간사가 무상하다고 하던가?'
한국에 있었으면 마누라 얻고 자식새끼 낳아 알콩달콩 살아갔을 그였기에 오늘의
장례식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으리라.
'이제 모든 일이 나의 책임이다. 조선이 흥하느냐, 아니면 망하느냐.'
"합하, 부산 주재 왜학훈도(倭學訓導) 안동준의 서찰이 당도했습니다."
김영훈이 운현궁으로 돌아오자 기다리던 한상덕이 다가오며 말한다. 안동준이면
김영훈이 집권한 후 지방 관아에 파견된 사람들 중 왜국의 동태를 살피는 명을
받았던 사람이다.
"뭐라고 합니까?"
"안동준의 서찰에 의하면 지금 부산 왜관(倭館)의 책임자가 왜국의 조선에 대한
서계의 연장을 청하였다고 합니다."
아재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김영훈이 흥미롭다는 듯이 관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일전에 우리가 보낸 서계에 대한 답신으로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하였다고
합니다."
"호-오, 그래요?"
김영훈이 다소 의외의 결과에 놀란 듯 한상덕을 쳐다보는 김영훈이다.
사실 의외의 결과라고 할 수 있었으니 지금 왜국은 한참 존왕양이운동이다, 죠슈번의
토벌이다. 하면서 안 밖으로 정신 없는 때였기 때문이다. 원래 김영훈의 명으로
왜국에게 서계를 보내기는 하였으나 당장 어떤 움직임을 바라고 보낸 것은 아니었다.
단지 왜국의 대응을 지켜보자는 것이었을 뿐...
정식으로 에도 막부에서 통신사의 파견을 요청했는지 아니면 죠슈번과 가까운 쓰시마
번에서 단독으로 결정한 사항인지 아직 알 수 없었으나, 일단 왜국에 정식으로
사신을 파견하기만 한다면 뭔가 새로운 길을 모색 할 수 있으리라.
"정식으로 막부 정권에서 허락이 떨어졌답니까?"
"그렇습니다. 막부의 실력자인 구리모도 죠운의 정식 파견 요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구리모도 죠운은 전임 군함 행정관이자 막부의 실력자이던 가쓰 가이슈와 함께 당시
막부의 최고 권력자 중의 하나였으니 그가 요청하였다고 하면 에도 막부의 정식
요청이라고 볼 수 있었다.
당시 막부에는 이들 두 사람이외에도 오가사와라 나가유끼, 우구리 다다마사 등이
구리모도 죠운과 연수하여 가쓰 가이슈를 배격하는 이른바 정적(政敵)의 입장이었던
인물들이다.
구리모도 죠운을 비롯한 가쓰 가이슈의 정적들은 가쓰 가이슈가 어느 정도의
개혁론자였던 것에 반에 철저한 막부 권력 회복론자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외국과의
협정을 맺어서라도 막부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강화하고, 결국에는 교토에 있는
왜왕의 권력을 막부 초기의 위치로 격하시키고 죠슈번, 사쓰마번, 아이즈번, 도사번
등 이른바 사대 강번(强藩)을 무력으로 토벌할 생각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다.
특히 구리모도 죠운은 막부 최고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막부 입각 전에 이미
프랑스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경로로 철저한 친불파가 된 사람으로, 나중에
구리모도 죠운은 당시 프랑스 공사였던 로슈와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된다. 메이지
유신 후 가쓰 가이슈는 구리모도 죠운을 평하기를 "그는 도꾸가와 막부만을 위하여
일을 했기 때문에 대국(大局)을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하였다. 한 국가를 이끌고 가기
위한 안목이 없었다." 라고 평하게 된다.
조선에서 철종대왕이 승하하는 작년 계해년(1863년)에 왜국에서는 1862년 있었던
나무기무촌(生麥村) 사건으로 인한 사쓰마와 영국간의 전쟁이 발발하였는데, 그
발단이 된 나무기무촌 사건은 실로 어이없는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되었다.
나무기무촌은 지금의 요꼬하마 근처의, 에도에서 약 60리 정도 떨어진 조그만
어촌이었는데 당시의 일로 인하여 일본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지명으로 우뚝 서게
된다.
1862년 8월 21일. 아침 일찍 에도를 떠나 교토로 향하던 시마즈 히사미쓰(사스마번의
번주인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아버지) 일행이 나무기무촌에 당도한 것은 정오가
지나서였다.
이때 그들은 말 60필과 700명의 인원으로 거적에 쌓인 장방형의 궤짝 80개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바로 대포였다. 다이묘(大名) 일행이 대포를 숨기고 운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이미 막부의 권세가 기운 당시에 사쓰마번은 막부
같은 것은 안중에 없었다. 행렬의 선두에는 시마즈 히사마쓰가 아끼는 부하인
나라하라 기자에몽이 이끌고 있었는데 나라하라 가자에몽은 사쓰마번 내에서도
알아주는 과격한 양이론자였다. 이런 나라하라 가자에몽의 앞에 나타난 이들은 네
명의 영국인이었으니 그들로서는 불운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꼬하마에서 견직물 도매상을 하고 있던 영국인 W. 마샬은 마침 홍콩에서 놀러온
사촌 누이와 함께 일요일인 그 날, 근처의 가와자끼 신사(川崎神社)를 구경하기
위해서 친구인 W. C. 클라크와 C. L. 리차드슨과 함께 길을 나섰다.
그렇게 말을 달리고 있는데 앞에서 다이묘의 행렬이 오고 있었다.
만약 이들 영국인들이 왜국의 풍습을 알고 있었다면 다이묘의 행렬을 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왜국의 풍습을 몰랐을뿐더러 일행 중 한 사람인 리차드슨은
홍콩에 살면서 중국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아는 중국인들은
회초리만 들면 허둥대며 도망치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다른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들은 다이묘 행렬의 앞을 가로막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으며,
나라하자 가자에몽에게,
"어서 길을 비켜라!"
하고 큰 소리를 쳤다.
당시 왜국의 풍습은 다이묘의 행렬을 막는 것은 최대의 무례로 간주되어 가차없이
베어도 무방하였다.
사쓰마 시현류(示現流)의 달인인 나라하자 가자에몽은 시현류 특유의 "원규(猿叫)"
라고 부르는 기합을 내며 네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키-약!"
칼이 한 번 공중에서 휘둘리더니 말 위 마샬의 왼 쪽 몸통부터 아래쪽 배까지 길게
그어졌다. 나머지 두 사내도 다른 무사의 손에 상처를 입었으며 마샬의 누이만 말을
몰고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샬은 끝내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한 때의 객기의
결과로는 참혹하다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영국인 마샬이 죽고 두 사람이 다치게 되자 영국대리공사 닐은 사쓰마번에
강경하게 항의해서 다음해 막부는 배상금 44만 달러를 지불했지만, 사쓰마번은 이를
거절해서 이듬해 사쓰마·영국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영국은 나마무기촌 사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사쓰마번에 요구하였으나 불응하자,
영국의 동양함대 7척이 가고시마를 포격하여 사쓰마번과 교전하였다. 결국 1862년
11월 요코하마에서 화의가 성립되어 사쓰마번은 나마무기 사건의 배상금
25000파운드를 지불하고 범인 처형을 약속하였다.
전쟁의 결과 사쓰마번은 군비를 근해화할 필요성을 절감하게되었고, 영국도
사쓰마번의 실력을 평가하였다. 이후 양자가 접근하여 양이가 아니라 개국과 도막(
倒幕)의 방침을 취하는 새로운 정치조류를 만들어 내기에 이른다.
한편 존왕양이론의 대표주자였던 죠슈번은 결국 왜왕이 머무르는 교또에서 정국의
주도권을 잡게 되었고 공무합체정책을 추진하는 사쓰마번을 억누르고 조정을
움직인다. 나마무기촌 사건과 사쓰마 영국간의 전쟁에 격분한 죠슈번을 비롯한
존왕양이파는 극도로 흥분하였고, 드디어 왜왕은 1862년 10월 외국과 맺은 조약을
파기, 양이를 실시하라는 칙명을 막부에 전한다. 막부도 결국 왜왕과 왜왕 주변에
포진한 존왕양이파의 압력에 굴복하여 1863년 5월 10일부로 양이정책을 실시할 것을
결정하였다. 이 날을 기다리고 있던 조슈번은 시모노세끼 해협을 통과하는 미국
상선을 포격한 데 이어 23일에는 프랑스 군함을, 26일에는 네덜란드 군함을 포격해
전쟁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6월에는 미국·프랑스 군함의 보복을 받아 일시적으로
시모노세끼를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왜국은 존왕양이파가 한 때 득세하는 듯 하였다.
그러나 1863년 8월 18일, 조슈번을 중심으로 한 존양양이파의 움직임에 대해
사쓰마를 비롯한 공무합체파가 교또를 습격하여 조정의 실권을 잡고 조슈번 세력
등을 몰아내었는데 훗날 왜국에서는 이 일을 8월 18일의 정변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루아침에 교또에서 쫒겨나고 사쓰마번이 움직이는 왜왕과 막부에게 버림받은
죠슈번은 절치부심하며 때를 기다리는데 이런 죠슈번의 등에 비수를 꽂는 사건이
있었으니, 1864년 정월 27일 왜왕은 막부의 장군 도꾸가와 이에모찌에게 조칙(詔勅)
을 내렸다. 그 내용은,
"죠슈번의 다이묘와 산죠 시네도미 등의 죠슈번 공경(公卿)들은 시골 출신 낭사들의
말을 신용하여 해외의 정국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무엄하게도 짐이 내린
조칙을 고의로 왜곡하여 양이 포고령을 내리고..."
왜왕 자신이 양이를 부르짖었는데, 이제는 죠슈번을 공격한다. 처음에 죠슈가 외국
선박에 포격하였을 때는,
"이와같은 양이들은 필히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라고 칭찬하다가 이렇게 비난하였으니 죠슈번은 결국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이 모든 일이 사쓰마번이 꾸민 일이었으니...
지금은 아직 막부의 죠슈번 정벌이 일어나기 전이다.
"우리 천군중에 가장 일본어에 뛰어난 사람이 누굽니까?"
"일본어라면 이순신함의 부 함장인 윤정우 대위가 있습니다."
윤정우 대위라면 이순신함의 부 함장이었으며, 지금은 남양에 세워지고 있는 해군
학교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즉시 연락해서 윤정우 대위와 신헌 전라도 병마 절제사를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김영훈은 아무래도 신헌과 윤정우를 일본에 보낼 모양이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김기현 재경대신을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한상덕이 나가자 김영훈은 입고 있던 관복을 벗어버리고 전투복으로 갈아입는다.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김영훈은 멍하니 담배만 피우고 있는데, 그 모습이 천하에 다시
없는 태평스런 모습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밖에서 한상덕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김기현 박사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두 분 들어오세요."
김기현과 한상덕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김박사님."
"찾으셨습니까? 합하."
한 쪽에 자리잡은 방석에 앉자마자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묻는 김기현이다.
"다름이 아니라 신화폐(新貨幣)의 인쇄는 잘 되고 있습니까?"
"새로운 화폐의 인쇄는 정상적으로 준비가 되고 있으나, 지급준비금으로 예치할 금이
없습니다. 지금 건교대신 김정호 대감과 천군의 지질학자들이 금광의 개발에 힘을
쏟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많은 양의 금의 채굴은 좀 더 시간이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허면, 아직 지급준비금의 준비가 되지 않아서 신화폐의 유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까?"
익히 짐작하였다는 듯이 김영훈이 김기현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시일을 조금 늦추심이..."
"아닙니다. 예정대로 시행하세요. 며칠 내로 제가 그 금을 준비하겠습니다."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 것일까? 의아한 듯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싱글거리며 웃던
김영훈이 다시 말한다.
"두 분도 아실텐데요? 원래 역사에서 대원위 대감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사용하였던..
."
"그 금이라면..."
이제야 무슨 영문인지 눈치 챈 두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는데,
원래의 역사에서 흥선대원군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자신을 비롯한 여러 대신들의
원납전을 추렴하여 중건을 시작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공사 대금이
부족하게 되자 효종대왕이 창덕궁 주합루(宙合樓) 마루 밑에 묻어둔 수 천근의
금괴를 파내어 공사비로 충당하였다. 이 주합루의 금괴는 북벌의 결심을 세우고
꾸준히 추진하다 비운에 승하하신 효종대왕이 언제든 후대에 북벌의 위업을 이룰 때
요긴하게 쓰라고 묻어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김영훈이 시행하려는 여러 가지 일도 그런 북벌의 일종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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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원은 원래 중국의 사신이 방문하면 접대하던 곳이나 작가가 조선의 사신 행차 시
접대하던 곳을 잘 몰라 임의로 조선 사신들의 송별연을 베푸는 장소로
변경하였습니다. 그리고 효종대왕이 묻었던 금괴도 실제로는 금괴가 아닌 은괴였는데
금괴로 작가가 설정을 변경하였습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 작가에게
여러 독자 대감들의 짱똘이 있기를...
대한제국기(大韓帝國記)-24 전면등장(前面登場)...8-4
번호:4792 글쓴이: yskevin
조회:1288 날짜:2003/09/25 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