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정순남(丁順男)은 정신이 없었다.
날씨도 좋고 바람도 없고 해서 혼자서 오랜만에 배를 몰고 낚시를 나왔다가 뜻밖의
사고를 당하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겁이 났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노 젓는 손은 자꾸만 헛손질만 하였다.
세 척이나 되는 거대한 이양선(異樣船)은 점점 다가왔다.
아이구 이젠 죽었구나 싶었는데, 얼라리요, 이게 무슨 소린가 저 거대한 이양선에서
조선 말이 들리지 않는가.
"앞에 가는 고깃배는 잠깐 멈추시오! 어서 멈추시오!"
이제 죽었구나 싶었는데, 갑자기 조선말이 들리는 바람에 정순남은 어쩔 수 없이
배를 세웠다.
이양선은 가까이서 보니 정말 거대했다.
이양선에서 들리는 말에 따라 낚시 배를 대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이양선이 다가오면서 파도도 같이 다가왔는데 이리 저리 흔들리다가, 배 안에서
사다리가 내려오고 사람이 내려와서 도와준 덕분에 간신히 배를 댈 수 있었다.
"사령관 님! 모시고 왔습니다."
"아, 그래. 수고했어."
천신만고 끝에 배를 대라고 해서 대기는 했지만 정순남은 꼭 도살장에 끌려온 소의
심정이었다.
아마도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서 죽을 때의 심정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정순남은
느끼고 있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은 벌렁거리고, 정순남은 정신이 하나도
없는데,
"이런 겁을 먹고 있군요. 겁내지 마세요. 우리가 뭣 좀 물어보려고 이렇게
모셨습니다. 한데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리고 사시는 곳은요?"
"예? 성함이라니요?"
"이름말입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냐고요? 혹시 이름이 없습니까?"
"집에서 기르는 갱아지 새끼도 모다 이름이 있는데 하물며 사람 새끼가 이름이
없을라구요. 시방 나를 너무 시피 보는 모냥인디..."
이렇게 볼 멘 소리를 하는 정순남에게 한 방 먹은 김영훈은 어이가 없었다.
어이가 없으면서도 앞에 있는, 누비옷을 입고 있는 영락없는 조선 시대 사람이
미더웠다.
"내 이름은 정순남이구먼요. 글구 사는데는 제주섬 바닷가 어촌에서 고기를 잡아먹고
살고 있구먼요."
"아! 그래요, 정순남 선생. 혹시 지금이 어느 시댄지 알고 계십니까?"
"하이고 선생이라니요? 그런 소리는 당최 과분 시러워서, 헌데 어느 시대라니 시방
그게 뭔 소리 다요?"
"아 지금 선생이 사시는 나라 이름이 조선인지 고려인지를 묻는 겁니다."
"고려는 폴세 망한 지가 언젠데 그래요. 하모 400년은 됐것네요."
"그렇군요. 하면 지금 조선의 임금은 누굽니까? 혹시 아십니까?"
"참으로 이상한 냥반들이네...뭐 땀시 그딴 것들을 묻는지 모르지만 시방 우리
조선의 임금은 원래는 쩌그 강화도에서 농사나 짓던 촌 무지렁이였는디 선대 임금이
후사가 없이 덜끄덕 나자빠져 버리불자 망할 놈의 안동 김씨네 들이 앉혀 논
허수아비 임금이지 진짜배기 임금인 갑디여..."
처음에 함교에 들어왔을 때는 병든 닭 새끼 같았던 정순남은 전라도 사투리가 심해서
그렇지 의외로 머리 속에 든 것도 있는 사람이었다.
원래가 상민이 아닌 양반 집안의 후손이었는데 할아버지인 정약종(丁若鍾)-정약용의
세 째 형-이 지난 신유년-신유박해(辛酉迫害)-에 있었던 천주교도 참살 사건 때
서울에 있다가 잡혀 서소문 밖에서 참살 당했다고 한다.
그때 정순남의 아비는 어미의 뱃속에 있었다.
말하자면 정순남의 아비인 정지상은 정약종의 유복자였다.
정약종의 처 홍씨는 뱃속의 유복자를 살리기 위해 서울을 탈출하여 전라도 고흥
땅으로 피신하여 정순남의 아비인 정지상을 낳고 숨어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지상이 17세 되던 해에 외아들 정순남만 남기고 병으로 죽었다.
정순남과 정순남의 어미는 고흥에서 계속 살다가 정순남이 스무 살이 되자 제주도로
이주를 왔으며 정순남의 어미는 재작년에 죽었다. 정순남의 나이 스물 둘이었을
때였다.
정순남은 그 후 혼자 살면서 가끔 고기잡이로 생계를 꾸린다고 했다. 장가를 가지
않았으니 챙겨야 할 식구가 있을 리 없고 챙겨야 할 식구가 없다보니 배가 부르면
부른 대로,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픈 대로 산다고 했다.
정순남은 아비인 정지상의 훈육으로 빈한한 형편이었지만 천자문(天字文)과 동몽선습(
童蒙先習)을 띠었다고 했다. 해서 원정단의 사령관인 김영훈은 그에게 자기들을
도와줄 것을 정중히 부탁했고 달리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었던 정순남은 처음의
기죽었던 모습은 간데 없고 호기롭게 승낙을 했다.
어차피 섬 마을 바닷가에서 살다 죽을 바에야 이양선이지만 이런 큰배를 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정순남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대충 획득한 함대는 진로를 강화도 쪽으로 잡고
출발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