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성혼
비야 비야 어서 오소
우리 임 가려 주오
새색시 고운 미소
비야 비야 지켜 주오
용과 신부가 마침내 하늘로 돌아가는 날. 그날도 커다란 비가 내렸다.
하이고, 올해 운수가 얼마나 흥하려고 또 비 손님 내리시나. 아무것도 모르는 백성들은 그저 좋다 하고, 잠꾸러기 색시도 오늘만은 눈동자가 말똥말똥했다.
둘은 단정히 옷매무시 가다듬고서 요현궁 뒤편 연못에 나와 있었다. 머리 위에 무엇도 쓰지 않았건만 빗줄기는 정확히 그들을 피해 갔다.
율이 서방 옷자락을 잡고 살짝 흔들었다.
“근데 하늘엔 어떻게 가?”
“색시께 본신 비늘로 엮은 날개옷 드리고 업어 가지.”
“날개옷?”
그러고 보니 서방과 각인할 적에 그런 말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난다.
“색시는 온 마음과 몸을 열어 낭군 맞으시오. 본신의 곁이 되거든 날개옷 선물해드리고 본신의 운명 다할 때까지 그대를 지키리.”
좆 세 개 받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분명 날개옷 어쩌고 했었지…….
율은 콧잔등을 긁적였다. 선물도 선물이거니와 고백하던 신랑 표정이 잊히지 않아 괜히 쑥스러웠다.
“날개옷은―.”
“……어? 어어어?”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끈 서룡이 색시 곁에서 사라졌다. 대신 연못을 가득 메운 흰 빛.
뿔 하나가 없는 은빛 용이 반려 앞에 도래했다.
뀨유우―.
맑고 청량한 부름. 언젠가 꿈속에서 들어 보았던 소리다.
이게 꿈이냐, 생시냐? 쏴아아아, 비 퍼붓는 우기에 용 맞은 사실까지 꼭 그날의 꿈 같다.
율은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아무래도 꿈에 가깝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러자 자그만 색시 몸체 툭툭 치는 주둥이. 율은 그만 바닥에 벌러덩 자빠져 높다랗게 선 용 신랑을 올려다보았다.
끼룩― 끼유우―.
‘저거 지금 장난치는 거지?’
저 낄낄대는 듯한 소리 하며 히죽 휘어진 눈동자가 딱 봐도 색시 놀리는 낯짝이다.
“허, 어이없어…….”
무슨 이런 날까지 장난질하는 서방이 다 있담?
율은 옷을 툭툭 털며 일어났다. 엉덩방아 찧은 곳이 진흙 바닥이었는데 다행히 옷은 조금도 더러워지지 않았다.
“장난치지 말구…… 응?”
또 넘어질세라 용 주둥이 꼭 껴안은 율이 문득 연못 쪽을 보고 입을 헤 벌렸다.
투명한 연못 물, 그 안에 담긴 구불구불한 몸체로부터 무언가가 거슬러 올라온다.
이것을 탈피라 할 것이냐, 가죽을 벗긴다 할 것이냐. 몹시 얇고 반투명한 껍데기는 용의 신체에서 벗겨져 나오고 있었으나 둘 중 무엇도 아니었다.
일단 재질은 앞뒤가 다 비칠 만큼 얇은 막이요, 허공에서 펄럭일 때마다 큼직한 비늘 문양이 어른대는 형상이었다.
그리 분리된 껍질은 또한 용을 본뜬 모형이 아니었으며 용에게서 떨어지는 즉시 쫙 펴지는 말미를 보면 마치 네모반듯하게 접은 비단을 거둬들이는 듯했다. 저 비단이 추후 무엇이 될지 모르겠다면 그야말로 바보 천치다.
‘날개옷 준다더니 정녕 껍질 벗겨 만들어 줄 줄이야.’
제 껍질 시시각각 떨어져 나가고 있건만 장난꾸러기 용 서방은 고통스러운 기색 전연 없다. 율은 다소 안심했다. 아니, 헷갈렸다. 이 작자를 어찌 봐야 할지.
색시 품에 주둥이 처박고 희희낙락하는 그가 어처구니없다 할까, 아니면 제 껍질 벗겨 가면서까지 날개옷 만들어 주는 당신이 사랑스럽다 할까.
“또, 또 운다.”
“아, 안 울어.”
히잉…….
어느새 인간 모습으로 돌아온 서룡이 한 팔엔 비단을, 다른 팔엔 색시를 안았다. 위아래로 물 많은 색시 건사하려면 어지간한 웅덩이론 안 되겠구나, 생각하며 피식 웃는다.
‘이참에 바다로 궁을 옮길까?’
용이 대부분 하늘에 터를 잡는다고 해서 꼭 그래야만 하는 법은 없었다.
용은 본디 자연과 어울리는 존재. 산천초목 어디든 저 좋은 데에 뿌리를 내리면 그곳이 곧 용굴이다.
서룡은 단지 하늘 위에서 유유자적 내려다보는 것이 좋아 구름을 택했었다. 거기에 상제 계신 하늘보다는 낮으니 두 번 들을 잔소리 한 번만 들어 그 위치도 딱이었고.
“거참, 우리 색시…… 눈물 많고 보짓물은 지렸다 하면 연못이라 구름 궁전으로 족할지 모르겠네. 색시 먹이느라 궁전 물 죄다 동나면 어찌해?”
“뭐, 뭐어?”
색시야, 순진한 색시야. 네 서방 또 너 놀리는 거 모르겠니.
용의 각인자가 되었으니 율도 자연히 인간의 생 벗어났음이다. 앞으로는 먹고 마시는 과정 일절 필요치 않다 이 말이다. 용의 정기 꼬박꼬박 주입하면 그걸로 족한 신체 되었다만 둔치 멍청이 색시가 알 턱이 있나.
물론 오래 지내다 보면 멍충이도 눈뜨이는 날이 오겠지. 그러나 서룡은 가능한 한 율에게 먹고 마시는 일들을 유지하게 할 작정이었다. 인간처럼 살고, 멍청하리만치 순하게 웃으며, 인간이었을 적의 감정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너는 그때 너 평생 쓸모없는 밥버러지다 하였지만, 본신은 그대가 참말 귀여웠거든. 어여뻤거든.
색시 삼고 싶었거든.
이 속내는 아마 오래도록 서방 홀로 간직할 마음.
하여간 용은 놀리면 놀리는 대로 힝힝 울고 기막혀하면서도 종국엔 서방 찾는 아내가 좋았다. 세상천지에 그보다 재밌는 것이 없었다.
“나, 나 그렇게 물 안 흘리거든?”
율이 귀뺨을 붉히며 더듬더듬 반박했다.
눈시울 빨갛게 물들인 거나 숨기고 공갈치지, 저래서 뉘 속일꼬. 용이 대놓고 혀를 쯧쯧 찼다.
“그건 차차 두고 볼 일이지.”
“이익……!”
‘이익’? 이건 또 새로운 반응인데.
말꼬리 잡으며 놀리고 대번에 자빠뜨려 보지 따먹을 기회다. 어제였으면 당장 그리했을 테다.
딱 하루만 미룰까……. 심각하게 고민하던 서룡은 이내 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곤 율을 품에서 살짝 떨어뜨린 뒤 당부했다.
“자, 거기 서 보시오. 날개옷 입혀 드릴 테니.”
“으응.”
율이 긴장한 기색으로 쭈뼛쭈뼛 섰다. 서룡이 팔에 걸치고 있던 비늘 비단을 허공으로 펼친 것과 동시였다.
둘이 눈꼴시게 사랑놀음하는 동안 비늘 껍질은 가장 바깥의 미끌미끌한 막이 말라 번듯한 천이 되어 있었다. 하늘 선녀들이 입는 재질과 비슷한, 극히 부드럽고 섬세한 직물이었다.
살이 어릿어릿 비치는 망사 천이 색시를 덮었다. 천은 저 스스로 이리저리 움직여 모양을 잡더니 머지않아 소매 길쭉하게 늘어뜨린 날개옷이 되었다.
“와아…….”
서방 본체 닮아 흰 바탕에 금색 날개.
다만 날개는 새와 같은 깃털 형태가 아닌, 얇고 길게 뭉친 천이 율의 소매 안쪽에서 시작해 머리 뒤로 한 바퀴 두른 형식이었다.
거센 비 내리는 날에 하늘하늘한 천이 두둥실 떠 있으니 신기할 만도 하지.
율은 숫제 넋을 빼놓고 날개옷 구경하기에 여념 없었다. 그런 자신의 눈 주변으로 일렁대는 금가루가 더 신기한 줄 모르고.
“마음에 드시는가?”
“응!”
곱다, 고와. 내가 감히 이 귀한 걸 걸쳐도 되나?
유순한 눈꼬리가 아래로 한껏 늘어졌다. 헤헤, 헤헤헤……. 얼간이 웃음 마구 흩뿌리며 듬직한 서방 껴안는다.
“고마워. 참 곱다. 정말 예뻐…… 진짜로.”
“곱기는. 내 색시가 더 곱지.”
서룡이 짓궂게 놀리려던 맘 접고 색시 이마에 입을 맞췄다. 서방 껍질 입고서 아리땁게 웃는 새색시보다 어여쁜 것이 어디 있더냐?
행복한 곳은 오직 서방의 품속. 율이 행하는 바가 그보다 뚜렷할 수 없어 서룡도 못내 그 사랑스러움에 져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이제 떠나면 서룡국은 마지막이야. 그대는 본신의 반려로서 구름 궁전에 기거하며 본신 계신 곳에 반드시 함께 존재해야 해. 그러는 동안 그대가 나고 자란 곳은 서서히 사라지겠지. 떠나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나?”
은애하는 색시를 위하여 서룡은 여유로운 척 말했다. 미련 남을 법한 일일랑 모두 해치우고 가자고.
서방 가슴팍에 턱 기댄 율이 갸웃하며 물었다.
“하늘로 올라가면 우리 뭐 하는데?”
뭘 하길래 나라가 망할 때까지 못 돌아오리라 장담한다냐? 떠나기까지 아주 잠깐 여유가 있다면 율은 동생을 보고 올까 싶었다.
서룡이 답했다.
“혼례식.”
그 전에 상제께 꾸중부터 들을 테지만 이것까진 색시가 몰라도 되는 일이다.
“호, 혼례?”
이렇게 빨리? 하늘로 올라가자마자?
용신은 그냥 다들 성격이 빠른가 보구나. 사내 자지에 이어 또다시 잘못된 상식을 적립한 율이 결심한 표정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어, 없어.”
동생 본답시고 시간 질질 끌 테냐? 이십여 년 뒷바라지해 줬으면 이제 저 혼자 알아서 할 때도 됐다.
내 혼례가 더 중요해……!
“어서…… 어서 가자.”
율이 서방 대답 듣기도 전에 그를 붙들곤 재촉했다. 음흉한 속내 감춘 서방은 기분 좋게 웃었다.
“분부대로.”
약속된 시간.
만물 이롭게 하라는 명 받들어 지상에 강림한 용이 천 년간의 의무 마치매, 비로소 제게만 허락된 여의주 안고 하늘로 돌아간다.
진정한 환궁이었다.
***
그리하여 지고하신 옥황상제 앞.
본신 머리에 떡 올라 하늘 성벽 통과한 율은 구름 궁전 가기 전 상제 폐하부터 뵈었다. 돌아왔다는 소식을 알려야 혼례가 가능하다나.
평생 인간으로 살며 설마 상제 폐하 앞에 설 줄 꿈에도 몰랐다. 심지어 상제께 혼례를 허락받을 것도…….
높디높은 단상에 좌정하신 폐하, 그리고 수천 수백 하늘 가족 일동이 서룡과 반려를 맞았다.
“어서 오렴, 아가. 네가 룡이 각시구나.”
“화, 황공하옵니다, 폐하…….”
율은 뻣뻣하게 굳어 답했다. 저 또한 황제의 아들로 나고 자란 신분이건만 이 예법이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상제가 껄껄 웃었다. 거기서 율 전하 눈동자가 재차 거하게 떨렸다.
글쎄, 들어 봐라? 뭇 인간 아이들이라면 꼭 한 번은 하늘에 계신 상제 모습 상상하곤 하지 않니?
이 땅을 굽어보시고 만물 공생하게 하는 하늘의 어버이. 인간 땅의 군주는 곧 하늘 군주를 따온 것이고, 황제는 하늘 군주에게서 그 위엄을 인정받았다고 하여 천자라 칭하는 게 아니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율도 단연 상제에 대하여 그려 본 바 있었다. 아우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며 구체적으로 생각할 나날 많기도 했었고.
그가 상상하기로, 상제는 나이 지긋한 노인이었다. 멋지게 나이 든 고목처럼 보기 좋은 주름이 팬 노송.
“하하! 룡이, 네 이놈! 우리 귀여운 망나― 내! 험험, 막내! 가 왜 또 눈깔이 뒤집혔을까 하였더니 신부 때문이었구나! 허허, 허허헛!”
허나 막상 마주한 군주는 풍채 좋은 미남자였다. 40대쯤 되었을까. 안광이 맑고 수더분한 인상이었다. 차림새 역시 용 주렁주렁 매달린 용포는커녕 면류관도 없었다.
상제라기보다는 그…… 어디에나 있을 법한 중년인? 목청 크고 인품 쾌활하여 주변에 사람 바글바글한 호인. 게다가 마침 서룡의 아버지뻘로 보이는 외관이라 율은 시댁 식구를 목전에 둔 기분을 지우지 못했다.
“하하, 우리 룡이!”
상제가 호탕하게 웃으며 서룡의 머리통을 ‘꿍!’ 때렸다. 가볍게 친 듯했는데 서룡의 발밑이 움푹 팼다.
“그래도 그렇지, 이놈아. 세상 바닥 그리 엎어 놓으면 어쩌누? 비도 너무 많이 내렸다. 네 땅의 사람들, 너 믿고 비라면 얼씨구나 좋다 하지만 올해 다들 고생 좀 할 게야.”
율의 눈동자가 튀어나올 듯 커졌다. 새신부 옆에 있다고 상제가 웃으며 말하고 있지만 속 의미까지 못 알아들을 눈치는 아니었다.
‘우리 서방, 나 때문에 혼나는 거지?’
우기 때도, 우기가 지나서도 서방은 종종 각시를 위해 비 내렸다. 그러는 동안 많이 자고 꿈속에서 서방을 만났기에 율은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 나 때문에…….’
율이 시무룩하게 고개 떨굴 때였다.
내내 잠자코 있던 서룡이 율의 손을 잡았다.
“벌 내리시려면 내리십시오. 대신 이 사람 천상신으로 대우해 주고요. 서룡, 내 진명 걸고 괘씸한 피조물 쓸어버린 짓 후회하지 않습디다.”
흥! 콧방귀까지 뀌자 룡이 놈 뻔뻔한 작태가 만천하에 드러난다. 상제가 뒷목 잡는 품새 보아하니 이 바가지, 무려 천상에서부터 새는 바가지였구나!
이러니 인간 놈들 씨불이는 것 죄다 같잖다, 하찮다 하고 다녔지. 그림자 목숨일 적에도 낯짝 두꺼우며 허투루 잘못했다 빌지 않는 성미였던 즉, 실상 후안무치한 면모는 어느 모습으로든 그대로였던 셈이다.
헌데 참 희한하지. 어찌 이런 모습에서 안도감을 느낄까.
율은 그새 저 더러운 성질머리가 제게 옮았나 의심했다. 진실로 서방이 상제 앞에 잘못했다 비는 것보다 이처럼 변함없는 뻔뻔함으로 나서는 편이 나았다.
이러다 상제 폐하 벼락 맞고 땅으로 떨어진다? 그럼 저도 가지 뭐. 어차피 그와 배 맞춘 순간부터 한 몸 된 운명 아니냐.
“에휴……. 에휴우! 우리 룡 선생 덕에 애비 늙는다, 늙어.”
“뒈지지도 않는 분이 늙기는요?”
“내 이노무 자식을 그냥! 하여튼 한 마디도 안 지지, 한 마디도! 천 년 만에 뵌 애비한테 할 말이냐!”
꿍! 상제가 아들내미 정수리에 두 번째 주먹을 꽂았다. 무려 공기압 뭉친 주먹이다. 그 주먹 한 방에 서룡의 무릎 아래까지 땅에 묻혔다.
“서방아 너, 너 다리……!”
다소간 안심했다 하여도 제 남편 당한 짓에 혼비백산한 율 전하, 서룡을 꺼내려고 온갖 수선 피웠다.
팔 잡아 이끌고, 파묻힌 무릎 들어 보려 하고, 주변 돌 치우고자 허리 굽히고…….
“내 색시, 그러지 마오.”
“응?”
“이러려고 그대 데려온 것 아니야. 휴……. 저 노망난 노친네, 정녕 늙는 사람이 누군데.”
“어? 어……?”
서룡이 미간을 찌푸리고서 율을 번쩍 안아 들었다. 서방이 만들어 준 날개옷 두르신 분, 품에 곱게 넣어 바스러진 바닥에 발 닿지 않게 했다.
“그저 심술이오. 내가 말을 처들어 먹질 않으니 이때다 싶어서 못다 한 잔소리 하시는 게지. 막내아들 아끼진 못할망정 잔소리 메다꽂는 게 상제 노인네 유일한 취미시거든.”
“허!”
듣자 듣자 하니 저놈 못 하는 말이 없다. 상제가 불편한 심기 드러내며 주먹 더 먹일까, 고민할 무렵.
서룡이 툭 내뱉었다.
“나머지는 나중에 하시고 어쨌든 시일 내려 줍시오.”
“뭐라?”
“용이 각인자 데려왔으니 혼례일 정해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아내 안고서 가례 날 받아 내는 투가 몹시 부루퉁했다. 딴에는 멋지게만 보이고픈 욕망이 이따위로 비틀렸으니 짜증이 안 나고 배길까.
“험험!”
퍼뜩 정신 차린 상제 폐하, 홀로 고개 끄덕끄덕, 도리도리 저어 가며 날짜를 꼽았다. 옳거니! 마침 그날이 길일이로구나!
“결정했다.”
상제가 몸을 일으켜 좌중을 쭉 훑었다. 아닌 척 웅성대고 수군거리는 이들이 상제의 시야에 훤히 잡혔다.
그중에서도 맨 가운데.
제 아내 귓가에 무어라 속삭이는 서방과 안심한 듯 고운 얼굴 기대는 색시. 그들을 내려다보며, 상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가례 날은 앞으로 열흘 후. 천상신과 그 반려들은 빠짐없이 참석하여 서룡과 신부가 성혼하는 과정을 지켜보라. 그대들이 이 혼례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인자하고도 근엄하게 선포한 상제는 이번엔 아들 내외에게만 들릴 정도로 편안히 말했다.
“수고했다, 룡아. 의젓하게 네 할 일 마치고 신부 모셔 왔구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걸 축하한다. 서룡의 신부, 그대도.”
***
그렇게 저렇게 날이 흘렀다. 우리 신랑 각시, 혼례 하나에 참으로 우여곡절 길다.
상제께서 열흘 후라고 땅땅 못 박은 뒤엔 그저 마음 편했더냐? 천만의 말씀이다. 그때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번잡한 나날 보냈다.
일단은 가례복 준비해야 한대서 몸뚱이 주물리고, 지상에서 가져온 묵은 것들 벗겨 내야 한대서 허구한 날 욕탕에 들어앉아 있었더랬다. 그리 몇 시진 내내 푹 고아지면 팔다리 두드려 살결 야들야들하게 다듬는 과정이 이어졌다.
이쯤만 해도 새벽부터 초저녁까지 후루룩 사라진다. 그래서 저녁엔 놓아주나? 아니다. 앞선 일 마쳐 이슥한 밤 되면 웬 선생이 나타나 교육을 해 댔다.
비마마, 부군 용체 받으실 땐 이리하여야 합니다. 저리하여야 합니다…….
“비마마께옵선 체구가 작으셔서 평범한 체위로는 전하 보주 너끈히 받기가 곤란하실 겝니다. 그럴 때는…….”
아, 아니거든요? 무슨 자세든 색사 잘하거든요?
따지고 싶은 마음 반, 쥐구멍에 숨고 싶은 마음 반. 그러나 ‘당신이 뭘 알아?’라고 하기엔 자칭 선생이란 작자가 율의 몸 상태를 낱낱이 꿰고 있었다.
자지와 보지가 둘 다 존재하는 육신이며, 현재 용신과 무사히 각인하여 그의 아이를 품고 있다는 사실까지.
성교육은 그 정보를 전제로 이루어졌다. 해서 율은 매번 귀뺨을 벌겋게 물들이면서도 선생의 교육을 묵묵히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 임신 중에 색사하는 방법은 색시도 궁금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러는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서방 놈이다.
“혼례 전에 눈 깨끗이 유지할수록 추후 더 빛나는 안광 지니실 수 있사옵니다.”
이유인즉 그러하다더라. 앞으로 측근에서 시중들 것이오, 하던 여인이 알려 주었다. 물론 율은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들었다. 이곳 아직 어색하고 낯설어 죽겠으나, 어떠한 이유가 있어 서방 만날 수 없다고만 이해했다.
그러다가 한…… 사나흘 전쯤이었나.
“흐븝!”
“쉿!”
나요. 당신 서방.
침실에 몰래 숨어든 사내. 혼례식보다 더 기다린 신랑.
혼례 전까지 모습 보면 안 된다는 얘기가 사실인지, 그는 한밤중에 도둑처럼 숨어들길 모자라 율을 뒤에서 안아 왔다.
“너, 너어…… 흑. 왜, 왜 이제야 온 거야?”
“쉬이……. 진정하오, 내 색시. 이럴 줄 알고 찾아왔지. 보고 잡았소?”
“그걸 말이라고 해?”
내가 혼자서 얼마나 떨었는지 아느냐고, 율은 그 밤에 서러웠던 것 전부 털어놓았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했던 속내가 기다렸다는 듯 술술 튀어나왔다.
이 궁의 유일한 안식처라 마음이 녹은 게지. 하물며 서룡은 색시 서러움 안다는 양 율이 토로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토닥토닥, 제 아기 가진 배를 쓰다듬으며 서룡이 사과했다.
“내 잘못했으니 마음 푸시오. 미리 언질드릴 걸 그랬구먼. 내 색시 나 없으면 잠도 못 주무시고 끼니 잘 챙기지도 못하시는데.”
“아, 알면서 그랬니? 알면서 그랬어?”
율은 서러운 마음에 서룡의 팔을 콩콩 때렸다. 그리웠던 임의 품속 반갑고 좋으면서도 원망이 샘솟았다. 하여 색시 주먹 맞은 서방 팔에 핏줄이 불뚝불뚝 불거진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대 챙겨 주는 이들 적잖게 생겨 괜찮을 줄 알았지.”
딴엔 이유가 있었던 서룡이 슬그머니 변명했다.
우리 색시, 인간 세상 머무실 적에 시비들이라 해 봤자 고작 두엇 데리고 계셨다. 그마저도 제 맘대로 뽈뽈 돌아다니는 무엄한 것들이라 좀체 돌봄받는 느낌을 모르셨다.
그러나 이 하늘에선 오직 비마마만을 위해 일할 손들이 수천수만.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한껏 떠받들어져 좋아할 줄 알았다는 것이 서방의 계산속이었다.
“내가 언제 그런 거 원했나, 뭐…….”
서룡은 얼굴 보이지 않는 선에서나마 색시를 빈틈없이 안았다. 뒤에서 끌어안자 맞춘 듯이 품에 꼭 들어오는 몸이었다. 단지 너 없어서 서러웠다, 하는 이를 아직도 제대로 몰랐구나 싶어 내심 반성했다.
“이제라도 왔으니 너무 울지 말어. 색시 냄새 못 맡아서 돌아 버리는 건 이놈도 같았소.”
“읏…….”
어린아이 달래듯 배 도닥이던 손이 한 뼘 올라와 옆으로 봉우리 진 둔덕을 살며시 쥐었다. 자주 그러던 우악스러운 애무가 아니라 조심조심 매만지는 손길이다.
“하아…… 좋은 냄새.”
“하앗!”
서방 원하여 애타던 몸이라서인지, 입술이 목뒤를 쓸기만 했는데 과하게 튀어 올랐다.
“쉿. 들키면 안 돼.”
어두운 밤중, 불빛이라곤 창백한 달빛이 전부였다. 그러나 율이 지금처럼 운다면 조만간 벌건 횃불이 침실로 들이닥쳐 부끄러운 꼴 보이게 될 터였다.
서룡 전하! 결혼 전 반려와 마주치면 안 되노라고 몇 번을 말씀드렸습니까!
그리고 그 횃불 무리 맨 앞에는 필시 엄씨 부인이 있겠지. 서룡의 유모이자 궁내 일급 관리인인 그녀는 만사 엄하기 짝이 없어 상제 다음으로 서룡이 골치 아파하는 존재였다.
말마따나 가례 올릴 때까지 반려 얼굴 보면 안 된다는 규율은 알고 있다. 거기엔 응당 이유가 있다는 사실도.
하지만.
‘만나고 싶은 걸 어떡해?’
율이 서룡에게 익숙한 만큼, 서룡도 마음 자각하고 나서는 율을 끼고 있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말랑하고 폭신한 내 색시 껴안아야 잠이 온단 말이다.
‘얼굴만 안 보면 상관없지 않나?’
서룡이 알기로 혼례 직전, 용과 반려가 서로를 금하는 까닭은 각인 의식 때문이었다.
세 좆 넣고 각인했는데 또 무슨 각인인가.
엄밀히 말해 이전 것은 육체의 연결이었다. 용이 여의주와 제 몸뚱이를 연결함으로 인해 여의주가 여의주로서 기능하고, 용 곁에 영원히 머물게끔 하는 장치.
과거 율은 서룡을 받아들이고자 의식적으로 그를 인정하고 속집을 늘리려 했었다. 그 과정의 뼈대만 남기면 ‘여의주가 용을 선택하매 앞으로의 삶은 그의 여의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라고 해석이 가능했다.
반면 혼례는 정신의 연결. 즉 용과 여의주가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통하고자 하는 의식이었다.
‘서방 없다고 잉잉대는 꼴 보면 굳이 얼굴 감추지 않아도 성공할 것 같은데 말이지…….’
정신의 연결을 위해서는 첫째, 이성 아래 눌린 갈구의 본능을 날카롭게 벼려야 했고 둘째, 깨끗하게 정화된 여의주가 필요했다.
특히 중요한 건 두 번째. 여의주가 깨끗한 상태일수록 용의 정기를 공유했을 때 각인의 끈이 단단하게 묶인다. 또한 각인이 얼마나 견고하게 완성되었는지에 따라 용이 성장할 수 있는 한계치가 정해진다.
율을 씻기고 다듬는 과정은 여의주를 정화하는 단계. 그리고 서방을 못 보도록 단속하는 건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해 상대를 갈구하게끔 부추기는 단계였다.
“힝…….”
이래저래 막는 서방이 서운했는지 율이 애처롭게 훌쩍거렸다. 아닌 게 아니라 서룡은 색시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어 그가 돌아보지 못하도록 막고 있었다.
“울지 마. 울지 마오.”
그냥 이대로 안아 버릴까?
물론 서룡도 율과 성공적으로 각인하길 바랐다. 아니, 단지 연결되는 수준이 아니라 숫제 한 몸이라 여겨질 정도로 그와 저 사이의 가림막이 사라지길 원했다.
그건 비단 한계 없이 성장하고 싶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룡은 그저 그 상태로 안심할 수 없었다. 인간은 연약했고, 율은 더더욱 무르니까.
여의주가 되었다고 해도 본질이 인간인 이상 죽음을 바랄 수 있다. 대체로 각인이 헐겁거나 느슨해지면 그런 현상이 생겼다.
서룡은 율이 지금과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길 바랐다. 그러면서도 본신의 동반자로서 영원히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강인함을 지녔으면 했다. 다행히 자질은 충분했다. 제 몸으로 살 맞은 것을 생각하면…….
바라는 바가 클수록 원칙을 지키는 편이 낫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다.
“안고 싶어…….”
욕망이 내처 고개를 들 뿐.
한편으로 우스웠다. 색시가 저를 갖고 싶어 안달 나게 해야 할 판에 쪼르르 달려와서 뭐 하는 짓인지.
더욱이 피부에 흔적 남길까 봐 마음대로 건드릴 수 없는 점이 서룡의 욕망에 한층 불을 지폈다.
안 되는 걸 하고 싶다.
이것을 당장 따먹고 싶다.
본신이 언제 원하는 것을 참은 적이 있더냐.
사내의 단단한 손이 봉긋한 젖무덤 쥐고서 그 끝에 매달린 알갱이를 짓뭉갰다.
“흐읍……!”
율이 몸을 배배 꼬았다. 뒤통수를 서방 가슴에 문대는가 하면, 젖통을 앞으로 쭉 내밀며 사내 손길 기다린다. 연분홍빛 젖알이 그새 심지 통통하게 부풀려 탐스런 자태 완성했다.
“하…… 이 요망한 년.”
뒤에서 그 몸뚱이 차지한 남편 놈, 욕지거리 내뱉고 만다. 제 색시 흐드러지게 피는 꼴이 버젓이 보이는데 침 고이지 않고 배기나. 이년은 또 서방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리 질질 흘려서…….
색시 젖알 빠는 맛 모르면 아깝지나 않지. 아는 맛이라 더 미칠 노릇이다. 건드리지도 않은 자지가 울컥울컥 용적 키우는 게 증거다.
이러다간 대번에 몸뚱이 돌려 빨통 쪼아 먹겠네.
용 서방은 억지로 손을 거뒀다. 대신 납작한 뱃가죽 연신 쓰다듬고 그 아래 사내 자지와 보짓물 머금은 계집 구멍까지 더듬었다.
“살결이 녹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신음이 튀어나온다.
아니다, 화가 난다. 아무리 여의주를 깨끗이 닦는 중이라지만 너무 심하지 않나.
그러잖아도 심히 말랑거리고 보들보들했던 피부다. 거기서 더 무르고 연해져 이젠 손끝이 닿는 순간 녹아 없어지는 기분이었다.
만지고 있는데도 계속 만지고 싶다.
설상가상 피부 관리를 받는 도중이라 율에게 허락된 옷이라곤 거의 날개옷에 가까운 천 쪼가리 한 장이었다. 두꺼운 직물은 속곳조차 허용되지 않아 자지, 보지 훤히 내놓고서 맨몸이나 다름없이 침대에 내던져져 있었다.
색시가 며칠째 이런 꼴로 잠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눈깔이 확 뒤집히는 듯했다.
“후우.”
남은 며칠, 이 시간이 이토록 길 줄 알았다면 좀 더 시일을 앞당겨 달라 할 것을.
실상 열흘도 무척 이른 시기임을 안다. 이마저 율이 크게 때 묻지 않은 상태라 가능했다. 서룡은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안 되겠다.
“눈 감아.”
그는 율을 뒤집자마자 커다란 손으로 색시의 눈을 덮었다. 그러곤 연하디연한 입술을 살포시 겹쳐 물었다.
달다. 참으로 달아.
“흣…….”
“입을 맞추고 말았으니 그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본신을 원해야 해.”
물오른 몸체가 바로 아래에 있는데 먹을 수 있는 건 입술뿐이라.
재밌구나, 재밌어.
순백의 침상에는 사내 씨물도 묻혀선 안 됐기에 서룡은 몇 번이고 율의 입술만 빨았다.
하염없이, 또 하염없이.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러다 마침내 다가온 혼례 전야. 그날은 고삐가 약간 풀렸다.
그대는 본신을 원해야 해. 온 마음을 다하여, 본신이 그대를 원하는 만큼.
여느 때와 비슷한 주문. 그리고 입맞춤.
밤을 틈타 찾아온 입술 도둑은 열렬히 색시 입 구멍을 탐하더니 앗 하는 사이에 끈으로 아내 눈가를 덮어 버렸다.
율은 눈을 완전히 가린 천을 더듬더듬 만졌다.
“이게…… 뭐야?”
“어허, 건들지 마시게. 오늘은 전야이니 전야의 축제를 즐겨야지.”
그게 뭔 희한한 소린고.
뜻 모를 말에 율은 조금 긴장했고, 은근히 기대했다. 아무래도 서방의 기질 약간이나마 닮아 버린 게 맞는 모양이었다. 호색한처럼 몰래 나누는 살맛 교류에 재미를 느끼다니.
“서방 보이는가?”
“아니, 안 보여.”
쪽. 가볍게 입술을 겹친 그가 율의 몸뚱어리를 전체적으로 살살 쓸었다.
“피부에 상처 나면 안 되니 다리는 적당히 흔들어.”
“응?”
그건 또 무슨 뜻이냐 되물을 필요는 없었다. 율은 손바닥을 겹쳐 입을 막았다.
츕, 추웁. 쪽…….
깨끗한 가랑이 사이. 혀로만 보지를 벌린 사내가 샘에 고인 물을 호로록 흡입했다. 손목도, 발목도 잡지 않고 혀만 썼다는 점이 여태까지의 색사에서 가장 큰 차이였다.
흡. 으읍.
율이 제때 목구멍 틀어막았기에 망정이지, 까딱하다간 요란한 신음 내지를 뻔했다. 다만 그것도 아주 안심이다 할 수는 없는 것이, 소리를 막을수록 오싹오싹한 열락이 밑동에서 올라왔다. 보지 빨린 나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건만 이 같은 느낌은 새로웠다.
“내 색시 보지 언제 먹어도 향기롭지.”
요 작은 주머니로 용체 셋이나 받고 아기씨까지 담았으렷다? 그저 기특하지 뭐야.
서룡이 색시 들으라는 듯 흥얼거렸다. 율의 눈가가 수치심에 바르르 떨렸다. 두 눈 가린 끈 또한 묘하게 사람 달구는 맛이 있다.
얌전히 놓였던 궁둥이가 들썩들썩 율동했다. 서방 입술 피하려는지, 더 가까이 대려는지 모호한 움직임이다. 그 누가 연약한 살 젖혀 구멍 쫍쫍 빨고 공알 핥고 일찌감치 열린 틈에 혀 집어넣은 탓이다.
“……흐윽!”
일순 색시의 눈앞이 짜릿하며 등줄기가 빳빳이 굳었다. 사정의 징조였다.
침대보 적시면 안 될 텐데. 제 피부에 흔적 남을까 서방도 손짓 참는 마당에 저가 잘못 싸서 들키면 낭패인데…….
그런 터라 어느새 힘주어 세운 발꿈치로 침대 바닥 박박 긁는 예비 비 전하시다.
“흐으, 흣!”
그뿐만 아니라 우리 전하, 남편 입에다 대고 보지 문지르느라 정신 빠졌다. 손 잘 쓰는 서방이 움직임을 제한하자 정말 도둑처럼 남과 밑구멍만 맞추는 느낌이 얼핏 들었다.
“누구 신부인지 보짓물 찰랑찰랑하니 신랑 사랑 많이 받겠소.”
“우읏, 흡…….”
“헌데 가만 보니 말이야, 도적놈이 보지만 맛보고 가 버리면 색시가 다른 사내 혀 따먹었는지 아닌지 알 길이 있나.”
손 쓰지 않는다고 주둥이까지 털지 않는단 얘긴 안 했다.
그럼 그렇지. 짓궂은 놀림이 습관처럼 등장했다. 끈 아래 가려진 눈가에 확연한 눈물이 글썽였다.
서룡은 제 입맛에 딱 맞는 보짓물을 꿀떡꿀떡 삼키며 감탄했다.
“하……. 뜨끈뜨끈하고 야무진 보지로다.”
이런 씹보지는 남편 자지로 따먹어 줘야 제 맛인데. 구멍 벌릴 수 없는 게 한이다.
괜히 아쉬워져 이왕 혀 쓰는 거 인심 후하게 써 주기로 했다. 얕은 내벽 뭉근히 핥던 혓바닥 빼내 동그란 공알 거쳐 귀여운 사내 자지를 덥석 문다.
율이 눈에 띄게 펄떡거렸다.
“흐읍, 읍!”
“어어, 싸도 돼. 맘껏 지리시오. 애당초 이 밤에 색시 씹물 마시러 왔으니.”
그 말이 신호였다. 율은 삽입하듯 허리를 튕기며 좆물을 지렸다. 근데 웬걸, 서방 입술이 이때 묘한 기색으로 비틀린다.
이것 봐라. 저도 사내 좆 달았다고 허리 앞뒤로 움직이는 건 아네?
그게 퍽 귀엽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했다. 꿀꺽, 깨끗이 입 안 비운 서방 놈이 색시 좆에 재차 혀를 감았다.
“흐윽!”
“울 색시가 이리 허릿짓 잘하는 줄 누가 알꼬. 진작 알았으면 딴 계집 서방 노릇 했었을 수도 있겠는데.”
계집 자궁으로 새끼 밴 년이니 사내 좆으로 다른 년 임신시킬 수 있을지 또 아나.
서룡의 비웃음이 깊어졌다.
“하아…… 거 몹쓸 것을 알아 버린 기분이오.”
“아, 하악! 흑…….”
“하지만 뭐어― 두고 봅시다. 색시가 박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소. 어디…… 내 혓바닥이 먼저 녹을지, 색시 좆이 녹을지 대보십시다?”
이놈 서룡아, 용신 서방 놈아. 색시 불안하게 왜 이러니.
그러나 야릇한 경고 던진 서방은 저가 던진 말 주워 담을 기미가 없다. 눈이 가려져 서방 표정 못 본 색시만이 그가 당최 무엇에 비틀렸는지 가늠할 따름이었다.
‘돌이켜 보니 진정 번잡한 열흘이었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어쨌든 밤은 지고 새 아침이 밝아 혼례 날이다. 신랑 될 놈의 구름 궁전에서 열흘간 새 물로 육신 정화하고 몸 깨끗이 보존하여 꽃가마 오른 새신부다.
율은 반투명한 면사 천으로 얼굴을 가린 채 이동했다. 이놈 이것 때문에 제 가례 날인데도 주변 천지 어찌 돌아가는지 시원하게 확인할 수가 없다. 그저 발밑에 무엇이 있구나, 그쯤만 알겠다.
“마마, 여기서부터는 걸으셔야 합니다.”
양옆에서 율을 부축한 이들이 소곤거렸다. 율은 거의 떠밀리듯 움직였다. 기실 위엄찬 복식도, 웅성대는 소음도 아주 먼 곳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감이 아득했다.
‘가랑이가 얼얼해.’
그 파렴치한이 새벽 늦도록 가랑이를 흠씬 빨아 대서 그만……. 제 입에 보지 갖다 대지 않으면 핥아 주지도, 싸게 해 주지도 않겠다는 으름장을 놓는 거 아니겠나.
당장 혼례 날 새벽까지 저러는 게 미친 자식 아닌가. 백 번 천 번 속으로 욕이 나왔다. 그 녀석답다고 하면 사실이긴 하다만.
‘에효……. 아무튼 내가 끼고 살아야 하는 놈이다.’
율은 좋은 날에 인상 찌푸리기 싫어 웃기를 택했다.
꽃가마에서 내린 그가 도달한 곳은 용 신랑이 반려를 맞으러 마중 온 다리였다.
“용신은 천계의 다리를 지나 반려 맞으시오.”
엄숙한 지시 아래 용신이 빽빽한 계단 아래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름 하여 용천교. 용이 천계에서 지상으로 강림하여 천 년을 기다린 끝에 귀한 반려 맞으러 가는 다리. 계단은 딱 천 개로 이루어져 있고, 계단 하나에 세월 하나가 짝지어진다.
용은 용천교를 지날 때 능력 한 가지를 택해 사용할 수 있었다. 서룡은 당연하다는 듯 비구름을 불러일으켰다.
혼례 날 하늘에 난데없이 비가 떨어진다.
그래도 그렇지, 가례 중에 비라니 참 별난 놈이다. 다들 그리 여기거나 말거나 서룡은 빗속에서 신랑 기다리는 각시 맞으러 쏜살같이 달려갔다.
계단 하나에 일 년. 그대를 만나러 가는 천 년.
그거 아시오? 천 년 전, 위대한 서룡대제였던 시절부터 본신은 다른 데 다 점령해도 이 다리만은 정복할 수 없는 곳이라 믿었다오. 세상천지에 서룡의 신부 될 자 없고, 본신 또한 뿔 꺾어 드릴 분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리라 여겼기에.
헌데 눈물로 만들어진 내 신부, 투명한 눈동자에 본신 가득 비치는 순간.
아마 그때 본신은 내심 이 다리도 정복할 수 있겠다, 어림짐작했던 것 같소.
당최 왜 그렇게 그대를 울렸을까? 하필 그대 우는 모습이 곱디고왔을까?
그건 아마도…….
사락, 신부의 얼굴을 가리고 있던 면사 천이 비바람에 흐트러졌다.
그 틈으로 마주친 금안.
“……그대의 특별함, 나만 알고 싶어서.”
비야 비야 어서 오소. 우리 임 가려 주오.
얼른 와서 우리 색시 고운 미소 아무도 못 보게 해 주소.
“……어? 어어어?”
얼굴 보이지 말랬는데…….
그것참 실로 사고, 사고, 대형 사고다. 본래 예식 마지막에 눈 마주쳐 각인 의식 치르건만 웬 바람이 신부 얼굴 들춰 버렸네.
네 이놈, 서룡아! 저, 저 엇질이 아들놈. 제 결혼식에서까지 맘대로 할 줄 몰랐지. 바람의 원인 진작 알아챈 상제 폐하, 천 년 치 한숨 푹푹 몰아쉰다.
이 또한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날 이 자리에서 서룡의 신부 된 당사자는 잘난 사내에게 온전히 시선을 빼앗겼다.
이마를 깨끗이 드러내어 정리한 은발, 촘촘하고도 풍성한 속눈썹 아래 드러난 용의 눈동자, 인간의 것이 아닌 세로 동공. 그 동공의 날카로운 양쪽 끝이 저를 콱 짓눌러 붙드는 것만 같았다.
이미 은애한다고 마음 인정한 사람. 그리하여 신랑이라 칭하는 데 전혀 거리낌 없는 사람.
그러니 이 마음 평온하고 평화로워야 하는데……. 가슴이 어찌 터질 듯 뛴다냐? 꼭 심장을 갈라 당신을 쑤셔 넣은 것처럼.
그래서 아픈가. 해서 심장이 이리 난리 발광이고 퍽퍽 뛰어 아픈 건가요.
“내 색시.”
오늘따라 다정하고 눈 돌아가게 잘난 사내가 속삭였다.
내 색시, 그것이 제 이름인 줄 아는 어여쁜 사람. 꽃 같은 은발, 빛나는 금안. 태초에 내가 준 것으로 이루어진 나만의 신부.
“그대를 데리러 왔소.”
―<대리 황자> 完.
대리 황자
펴냄 2022년 05월 06일
지은이 | 도라방스
펴낸이 | 이조은
펴낸곳 | tcafe
기획·편집 | 이조은
출판등록 | 2014년 08월 25일 (제387-2014-0000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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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632-562-5 0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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