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首 대풍운연의(大風雲演義) (112/113)

第十首  대풍운연의(大風雲演義)

 -위대한 이름

 영웅은 천하(天下)를 위해 살아가다

 <만에 하나, 형수님이 제 글을 보신다면 그때 저는 아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형수님께서 해주시는 것에 따라 우리들은 마지막 역전의 패를 가질 수가 있게 됩니다. 그 시도가 성공한다면

 다시금 저들의 야욕을 분쇄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니 절대 서둘지 마시고 냉정히 그들이 진세를 뚫고 안으로 사라질 때를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형수님께서 해야 할 일은……(후략).>

*   *   *

 한효월은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개왕에게 반기를 들 사람은 없어졌다.

 비록 감천형 등 몇 사람이 남아 있다고 한들 시끄러운 수준일 따름, 한효월에 비길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개왕은 승리한 것이다.

 언제라도 무림은 그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주머니 속의 물건.

 그보다 천 배 만 배 더 귀한 것…….

 천하십성의 모든 것이 이제 그의 눈앞에 있었다.

 저 길을 가면 거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그것을 얻을 수 있을 터이다.

 누가 감히 그를 넘볼 수 있을 것인가?

 천하십성이 남긴 용화회도 남김없이 그의 수중에 들지 않았던가.

 개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을 노려보는 자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이 보였다.

 말 한마디면 저들을 이곳에서 모두 죽여 없앨 수 있다.

 하지만 하지 않는다.

 그럴 가치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싸운다면 죽기를 무릅쓸 저들로 인해 상당한 희생을 치러야 한다.

 한효월의 죽음은 저들의 가슴속에 투지(鬪志)를 불러일으켰다.

 개왕은 그가 일부러 자신에게 저들을 죽이지 말라고 하여 그 감정을 최대한 격앙시켰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끝까지 교활한 놈이다.

 그러나 지금 참는다면 저들의 분노는 사그라들 것이고 자신이 천하십성의 유진을 얻고 난 다음에 분노마저 사라진 저들

 하나하나를 격파한다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손을 쓰지 않는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데 한효월의 부탁을 들어주려고 공격을 하지 않겠는가.

 "아우."

 "예, 대형."

 만박노유가 그를 보았다.

 "가지. 과연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가보세."

 "그러지요!"

 만박노유도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화회의 핵심 회원들 몇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상기된 표정의 남해용왕, 북해빙왕, 천축마왕 등이 거기에 합류했다.

 독왕은 거기에 합류하고 싶었지만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가슴을 부여잡고서 봉신방이 있던 곳, 그 통로를 향해 마지막 힘을 다해 기어가고 있었지만 그를 막는 사람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일렁이는 빛 속으로.

 독왕만이 아직도 그곳을 향해 기고 있을 뿐이었다.

 요동권왕과 고려검왕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들과는 다른 같은 땅에 있는 뿌리가 같은 민족인 두 사람이다.

 "저들이 갔는데 우리가 여기 있는다면…… 지난 세월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나?"

 요동권왕이 말했다.

 "갈 수 있겠소?"

 고려검왕의 말에 요동권왕은 껄껄 웃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죽을 자리에서 죽어야 하지 않겠나? 쥐새끼처럼 죽어간다면 선조들께 너무 미안하지! 카악, 퉤!"

 갑자기 그가 침을 뱉어냈다.

 입에서 튀어나간 침이 삼 장 밖에 있는 바위에 닿자 바위가 이글이글 녹아내렸다. 뻥 뚫어진 구멍이 그의 가공할 공력을 말해 주는 것 같았지만 괴이하게 구멍이 뚫어진 주변이 계속해서 녹아내리는 것이 아닌가.

 "지독한 독이군……. 더러운 놈!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다 죽을 것 같으니 선심 쓰는 척하고 그냥 간 것이지?"

 요동권왕이 냉소를 흘렸다.

 고려검왕이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가락 끝에서 검은 핏방울이 맺혀 아래로 떨어졌다. 치익,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핏방울이 닿은 바닥에서 시커먼 연기가 잇달아 피어올랐다. 바위임에도 저렇듯 구멍이 뚫어지니 그 독의 지독함을 말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역시…… 천하십왕…….'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을 했다.

 그들은 자신의 공력으로 체내에 만연한 독기를 몰아낸 것이다. 아니, 어쩌면 모든 걸 짐작하고 일부러 중독이 심한 척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갈까?"

 "가지."

 두 사람은 땅바닥에 누운 한효월의 주검을 한 번 바라보고는 이내 통로를 향해 몸을 날렸다.

 통로 주위를 막고 있던 자들이 그들을 맞았다.

 용화회의 회원 몇과 제천교의 고수들. 특히 강령루의 고수들이 일제히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천하십왕과 그들과의 싸움은 너무 심한 차이가 났다.

 더구나 두 사람이 한꺼번에 뚫고 나갔음에랴.

 한차례 격렬한 싸움 소리가 일었다. 일직선으로 통로가 만들어지면서 그들을 통과한 요동검왕 등은 이내 그 빛의 통로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들이 전력을 다해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실제로 여기 남은 사람 중에서 그들을 막을 만한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라지고 통로를 막은 자들의 진영이 흔들린 그 순간에 허공을 밟으며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싶더니 이내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 통로 안으로 날아들어 갔다.

 그를 막기 위해서 몇 사람이 떠올랐지만 그의 손짓에 비명을 지르며 떨어지고 말았다.

 사람들은 회의에 복면을 한 그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무공은 천하십왕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듯했다.

 "저건 또 누구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회영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던 감천형이 문득 중얼거렸다.

 "어쩌면…… 공일도일런지도 모르겠군요."

 "공…… 무슨 소리를? 제천교주라면, 그는 죽지 않았던가요?"

 한효월 등과 그를 추적했던 정의맹의 몇 사람이 놀라 중얼거렸다.

 "워낙 교활한 자라서 단정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해서 마지막까지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유보를 해두고 있었지요."

 확신을 하지 못하는 감천형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그가 공일도임은 확실했다.

 처음부터 그는 죽지 않았었다. 마지막 순간에 금선탈각(金蟬脫殼)의 계로 몸을 피한 그는 대막사왕 완일과 함께 마경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서 중조산으로 갔었다. 대막사왕 완일로 하여금 배반을 하게 한 것은 그가 용화회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고 암중에 마교의 교장을 뒤져 마계의 위치를 알아낸 사람은 바로 그였다.

 하지만 태백산에 이르러 마계에 당도한 그는 귀왕을 덮치는 한효월을 보고는 숨어서 그 뒤를 따르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그리곤 이제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몸을 날려 통로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안의 사정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인연이 있는 자가 모든 것을 차지할 수도 있는 것이니 그가 모험을 걸 만했다.

 어차피 모든 것을 다 잃은 그이기에.

 그때였다.

 "멈추시오!"

 "그 자리에 서지 못할까!"

 여기저기에서 노한 외침과 사람들이 움직였다.

 황엽이 다가오고 있었다.

 검이 자신의 목을 노림에도 황엽은 굳은 빛으로 우뚝 서 있을 뿐, 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를 막지 마시오."

 감천형이 말했다.

 "감 맹주!"

 몇 사람이 노해 소리쳤다.

 "그를 막지 마시오!"

 감천형이 눈을 부릅뜨고서 노한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한효월의 시신은 감천형의 겉옷 위에 뉘어져 있고 감천형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가 그렇게 소리치자 누구도 황엽의 앞을 막지 못했다.

 황엽은 묵묵히 걸어와 한효월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고개를 숙였다.

 "한 공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소. 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한 공자에게 사죄하리다."

 그가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막 심맥을 끊으려는 순간.

 펑!

 크악!

 황엽이 벌떡 뒤로 나자빠졌다.

 세차게 황엽의 가슴을 쳐 그를 날려 버린 감천형이 눈을 부릅뜬 채로 꾸짖었다.

 "황 방주께서 진심으로 사숙께 미안함을 가지고 있고, 개왕과 공모한 적이 없다면 이 자리에서 목숨을 끊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소! 보시오!"

 감천형은 품속에서 봉서 하나를 꺼내 그에게 날렸다.

 입에서 피를 흘리며 엉거주춤 일어나 앉아 그 봉서를 받아 든 황엽은 얼떨떨한 빛으로 감천형을 바라보았다.

 "……?"

 "사숙께서 자신이 죽고 난 다음에 황 방주께서 배신하지 않았음이 확인되면 주라고 부탁한 글이오."

 "……!"

 그 말을 듣자 황엽은 놀라 눈을 부릅떴다.

 "새, 생전에 오늘 일을 이미 예측하고 글을 남겼단 말이오?"

 "그분은 천재였소. 어찌 우리와 같은 범인과 같을 수 있겠소?"

 "……."

 황엽은 말을 잊고 봉서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떨리는 손으로 봉서를 개봉하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격렬한 싸움 소리와 함께 일대를 봉쇄하고 있는 제천교의 고수들을 뚫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누구도 그 앞을 막지 못했다.

 막는 자는 모두 죽거나 튕겨져 나갔다.

 당당한 체구. 위압적인 눈빛. 이미 죽었으되 그 위태(威態)는 조금도 덜하지 않은 사람.

 바로 건곤무적 독고해가 앞장서 진격해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그의 뒤에는 주자미가 따랐고 보구회의 고수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금빛이 번뜩이는 갑주를 갖춘 정예병 수백 명이 나타났는데

 그들의 움직임은 일반 병사와는 전혀 달라 모두가 무공고수임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조정의 군대로군……."

 몇 사람이 중얼거렸다.

 "앞을 막는 자는 모두 반역도로 간주하여 구족을 주살하리라!"

 앞장선 위장(衛將)이 눈을 부릅뜨고서 고함쳤다.

 그의 고함 소리는 굉량(宏量)하여 일대가 온통 쩌렁쩌렁 울렸다. 황궁의 비밀 세력인 홍무천위가 나타난 것이다.

 주자미는 적들의 저지를 뚫고 안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한효월과 감천형 등을 발견하자 곧장 그곳으로 달려왔다.

 그녀의 앞을 건곤무적 독고해가 뚫었음은 물론이다.

 "한 공자는?"

 "……."

 감천형은 입술을 물었다.

 주자미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한효월을 내려다보았다.

 창백한 얼굴.

 입가에 흘러내린 핏자국이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가슴의 기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무공은 약하지 않다.

 굳이 그의 코에다 손을 대거나 맥을 짚어보지 않아도 한 점의 생기도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귀식법이나 기타 그런 것과는 전혀 다른 그런 모습이다.

 죽은 사람이었다.

 "정말 죽었나?"

 그녀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다시 물었다.

 "예."

 감천형이 대답했다.

 "비켜라."

 "사모님?"

 "어서 비켜. 그를 정말 죽일 셈이냐?"

 주자미는 감천형을 밀쳐 내면서 독고해를 향해 뭔가 지시를 했다.

 그러자 독고해는 허공을 격하고서 한효월의 전신을 향해 기묘한 손짓으로 지풍을 쏘아내기 시작한다.

 바로 한효월이 그녀에게 남긴 서찰에 있는 요상지법(療傷之法)이다.

 "뭘 하시는 겁니까?"

 독고해가 사정없이 지력을 쏘아내어 한효월이 그 충격에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것을 보자 참지 못하고 천무가 일어서며 물었다.

 아무리 사모님이라 할지라도 여차직하면 대들 모습이다.

 "나도 모른다."

 "예?"

 "나도 모른다고 했잖느냐? 그가 내게 부탁한 대로 하는 거다. 자신이 숨을 거둔 지 한 시진만 지나지 않았다면 자신의 시신을

 찾아 이렇게 해달라고 해서 지켜보고 있다가 지금 나타난 게다."

 "사, 사숙이 말씀입니까?"

 "그렇다!"

 그녀의 답에 모든 사람들은 다시금 눈이 휘둥그레졌다.

 특히 감천형은 더욱 그랬다.

 하지만 그는 격동의 빛을 떠올린 채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었나……."

 그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리자 천무가 그것을 듣고 다시 물었다.

 "사형, 그게 무슨 뜻입니까?"

 "나도 모르겠다. 기다려 볼밖에. 사숙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내게 사모님께서 나타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고

 기다리도록 말씀하셨었다……."

 "그래서 참았던 겁니까?"

 "그렇다."

 "으음……."

 천무도, 대명도 모든 사람들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이 사람은 어디까지 세상의 일을 내다볼 수가 있다는 것일까.

 그때였다.

 팡!

 독고해가 마지막 일장을 가하자 한효월의 입에서 검은 핏덩이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리곤 긴 숨이 한효월의 입에서 뿜어져 나왔다.

 "한 공자!"

 "사숙!"

 "한 대협-!"

 거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들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려 하다니?

 그러한 외침과 더불어 천무가 번개처럼 일어나 고함쳤다.

 "모두 주변을 엄호하라!"

 그의 고함과 동시에 그의 수하들이 일제히 흩어지면서 한효월의 주위를 둘러쌌다.

 삽시간에 살기가 가득 찼다.

 꿈틀, 한효월의 손이 움직인다.

 그리고 눈까풀이 떨리는가 싶더니 그가 눈을 떴다.

 몇 번 눈을 감았다 뜬 그는 감천형과 주자미를 발견하자 희미한 미소를 떠올렸다.

 "제때 오셨군요……."

 "저, 정말 괜찮소?"

 주자미가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괜찮아 보이십니까?"

 한효월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감천형은 얼른 그의 몸을 부축했다.

 "되었다. 나는 금방 정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한효월은 가볍게 그의 등을 두드렸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질이건만 그의 그러한 행동은 저만큼 어린 조카를 돌보는 삼촌과 같았고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무리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사숙은 너무 무리하셨습니다. 이제부턴 제가 다 하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소질의 목을

 내놓고서라도 무엇이건 하겠습니다!"

 감천형이 목메인 음성으로 외쳤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에서 대명이 끼어들었다.

 "오셨군요. 고맙습니다."

 그를 보고 한효월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감천형의 어깨를 짚고서 몸을 일으킴을 보자 대명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정말 대단합니다! 거짓 죽음[?死]으로써 그 교활한 개왕을 속여넘기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그의 말에 한효월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거짓 죽음이 아닙니다."

 "……?"

 일순.

 대명은 얼떨떨해져서 한효월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그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했다.

 이렇게 멀쩡히 살아났는데…… 그런데 거짓 죽음이 아니라니?

 누구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빨리! 빨리 가요!"

 다급한 외침.

 천리마 네 필이 죽을힘을 다해서 발굽을 내달았다.

 마차가 미친 듯이 네 바퀴를 굴렸다.

 금방이라도 바퀴가 튕겨져 나갈 것 같았다.

 "무리다! 마차도 말도 견디지 못할 게다. 더 이상은……."

 송옥교가 말했다.

 그녀의 부축을 받은 서문운하는 입술을 물고서 고개를 도리질한다.

 "아뇨. 그래도 가야 해요. 그가 죽어요. 그가 죽어요……."

 "더 이상은 무리다. 차라리 약을 종 노괴를 시켜서 보내도록 하자. 그의 경공이라면……."

 "안 돼요. 아직 법제(法製)하지 않은 약이라서 내가 아니면 약의 효력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제발, 제발……."

 어두운 밤하늘을, 미친 듯 뒤로 달려가는 밤하늘을 마차 창문을 통해 내다보려던 그녀가 갑자기 찢어지듯이 비명을 질렀다.

 "아악!"

 "왜, 왜 그러느냐?"

 놀라고 당황한 송옥교가 서문운하를 잡아 흔들었다.

 "그, 그가……."

 서문운하가 창백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가, 그가, 그가……."

 넋을 잃은 듯 하늘을 쳐다보면서 그녀가 계속해서 같은 말만 중얼거린다.

 "이 빌어먹을 늙은이야! 마차를 멈춰! 좀 멈추란 말이야!"

 송옥교가 찢어지도록 고함쳤다.

 "워, 워어……."

 다급하게 말을 정지시키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활염라 조과가 고개를 디밀었다.

 "왜 그래? 무슨 일로 그러는 게냐?"

 송옥교가 다시 물었다.

 창백한 얼굴의 서문운하. 그녀의 눈에 맑은 눈물이 가득 차는가 싶더니 이내 방울방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그가 죽었어요……."

 "무슨 소리냐? 그 녀석은 아직 수명이 남아 있다고 어제만 하더라도 네가 좋아했지 않느냐? 불사회혼단 약재만 늦지 않게 가져갈

 수 있으면 놈이 죽지 않을 거라고!"

 "그가…… 그가 스스로를 죽였어요……."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핏물이 입술에서 넘쳐 났고 오열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가득 용솟음쳐 올랐다.

 "무, 무슨 소리냐? 그놈이 스스로 자살이라도 했단 말이냐?"

 "말도 안 돼! 왜 그 따위 짓을!!"

 강호삼괴.

 그들 세 노인이 일제히 소리쳤다.

 나도 몰라요.

 내가 그걸 어찌 알겠어요?

 하늘이 알고 땅이 알지라도 나는 알지 못해요.

 나는 믿을 수 없어요. 믿고 싶지 않아요…… 그가 죽었다는 것을. 그가 이젠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   *   *

 한효월은 잠시 운기조식에 들었다가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홍광이 깃들어서 전혀 상처를 입은 사람 같지 않았다.

 누구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방금까지 죽었던, 죽어 있던 사람이 이렇게 단숨에 소생할 수 있다니.

 사람들의 토끼눈을 보면서 한효월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심일 뿐 그는 조용하고 확신에 찬 태도로 일어나 황엽에게로 갔다.

 "한 공자…… 정말 뭐라고 해야 할 말이……."

 "부탁드리겠습니다."

 한효월은 그의 손을 잡았다.

 "제가 죽고 난 다음, 감 사질과 손을 잡고 무림을 안정시켜 주십시오. 나머지 사안은 제가 남겨 드린 글을 보시면 될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한효월은 놀란 황엽을 보며 웃었다.

 "이제 아시게 될 겁니다."

 "천무."

 "예, 사숙!"

 "내 사후에 너는 네 사형과 같이 세상을 안정시키도록 해라. 네 사형제들의 능력이라면 그간 혼란했던 무림을 안정시키는 데 큰

 힘이 될 게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이렇게 되살아나셨는데 왜 또 그런 말씀을?"

 "못다 한 일이 있어서 잠시 생을 연장한 것뿐이다."

 한효월의 말에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어찌 사람의 목숨이 마음대로 연장했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하나 그들이 어찌 알겠는가.

 마교비전의 천마강신지법으로 마교의 유일한 호법존자가 한효월의 몸에다 베풀어놓고 간 그 힘으로 지금 한효월이 생을 이어가고

 있음을……. 하긴 그것을 이용하여 그의 삶을 조금이라도 연장하려 한다면, 어쩌면 그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한효월은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대체 무엇을 하려는 것이오? 한 공자!"

 황엽이 한효월의 손을 움켜잡았다.

 "대자연진세를 폐쇄코자 합니다."

 "대자연진세를?"

 웅성거림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그걸 폐쇄한들, 그들이 천하십성의 공부를 모두 얻는다면 다시 진세를 해제할 것이 아니오? 아니, 해제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그 능력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효월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대자연진세는 말 그대로 자연입니다. 있는 그대로 천지지간의 기를 끌어 모아서 진세를 형성합니다.

 인위적인 진세와는 처음부터 다릅니다. 그렇기에 천하십성이 위대한 것이지요. 아마 생전의 그들이라 할지라도 대자연진세가 모두

 발동되면 그곳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런데 왜 한 공자께서 목숨을 내놓아야 한단 말이오?"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서 진의 중추를 발동시켜야 합니다."

 "내가 하겠소."

 황엽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황 방주께서?"

 "그렇소. 내가 하리다. 그 어른께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죄를 천하에 지었으니 그 죗값을 내가 조금이라도 받겠소이다. 진세를

 발동시켜서 그들을 묶어버릴 수 있다면…… 내가 하리다."

 한효월은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황 방주께선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문득 한효월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그 손에서 항거불능의 거력이 쏟아져 나왔다.

 황엽의 무공은 발군이다.

 천하십왕이라 할지라도 한순간에 그를 격퇴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한효월의 손에서 쏟아져 나온 그 힘에는 항거할 수가 없었다. 마치 거한에게 떠밀린 어린아이처럼 비칠거리면서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왜 자격이 없는지 아시겠습니까? 진세를 폐쇄하려면 천지지교(天地之橋)가 운통된 사람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가능할지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서, 설마…… 한 공자는?"

 "얼마 전에 천지지교를 통했습니다. 지금의 제가 전력을 다한다면 천하십왕 중 세 사람이 합세해도 저를 이기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겁니다."

 "오오……."

 "세상에 그런 엄청난……."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누구도 그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거짓을 말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이미 그가 펼치는 가공할 능력을 이미 보았던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엄청난 능력이라면 한 공자의 지금 능력은 아마 고금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르오. 천하십성이라고 해도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울 거요."

 황엽의 말에 한효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런데 왜 굳이 스스로의 목숨을……."

 "하늘이 제게 준 수명이 그렇습니다. 굳이 역천을 하면서까지 삶을 늘리고 싶진 않습니다. 세상에는 순리(順理)라는 게 있습니다.

 천지의 모든 것들은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 역천을 하고 그렇게 돌아가면 모든 것이 여기저기에서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인(因)이 있으면 연(緣)을 맺게 되듯이 과(果)를 지었으니 보(報)를 받게 됨은 필연인 것이지요. 어차피 언제인가는

 죽게 될 몸. 좀 더 생을 연장코자 버둥거린다는 것은 크게 보면 우스운 일에 다름이 아닙니다."

 말과 함께 한효월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 모두가 숙연해졌다.

 이 청년은 이미 청년이 아니었다.

 아마도 무림사 천여 년 이래 가장 기억에 남을 위대한 사람임을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가 말해 주지 않아도 절로 느끼고

 있었다.

 "천무."

 "예, 사숙."

 "이것을 운하에게 전해다오."

 그는 품에서 봉서가 든 금낭을 꺼내 천무에게 주었다.

 "이건……."

 "지난날 네 사조께서 나에게 남기신 봉서다. 후일 내 신세가 밝혀지면 보라고 하셨는데 알아내지 못했으니 없애야 옳겠지만 정신을

 잃고 있는 가운데 문득 그녀에게 나의 뿌리를 남겨두어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전하면 그녀가 알아서 하리라."

 "알겠습니다."

 천무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으로 그것을 받았다.

 한효월은 주자미를 보았다.

 "형수님."

 "예."

 한효월의 얼굴에 상스러운 광채가 어리고 있음을 본 주자미가 절로 급히 답했다.

 "사형께서는 살아생전 대협이었고, 죽어서까지 강호의 평화를 염원하셨습니다. 이제 그렇게 될 것이니 사형을 그만 돌려보내

 주십시오."

 "어디로 말인가요?"

 "저와 같이 가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사형을 저렇듯 죽지도 않는 괴물로서 옆에 두실 수야 없지 않겠습니까?"

 갈등의 빛이 주자미에게 어렸다.

 "닥치거라. 네가 감히 마마께 강요한단 말이냐?"

 위장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며 눈을 부릅떴다.

 그의 기세는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그를 보자 한효월은 빙긋 웃었다.

 "이것은 강호의 일이오. 관에서는 백성들을 잘 다스리면 되오. 당신은 앞으로도 황제의 권위를 빌어 호가호위하지 말고 나라를

 위함이 먼저라는 것을 늘 잊지 마시오."

 그의 말과 함께 위장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자신을 밀어내려는 것을 느끼고 노해 얼굴이 붉어졌다.

 "감히 본관을……!"

 그것이 끝이었다.

 그는 너무 막강한 힘에 말조차 잇지 못하고 단숨에 십여 장이나 물러났다. 발 밑에서 바윗돌들이 튕겨 오르면서 흙먼지가 풀풀

 일어나 그를 급하게 쫓아가는 것이 보였다.

 이 가공할 광경에 모두는 말을 잃었다.

 밀려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어느 정도의 실력자인지는 대충 짐작할 만한 능력을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능력으로도 항거조차 하지 못하다니!

 위장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그 광경을 본 주자미는 입술을 물었다.

 "후우…… 그분이 필요한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세요."

 "죄송합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보시고 싶다면 또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 자리에서……."

 한효월은 그녀에게 길게 읍하여 예를 표했다.

 주자미는 자신도 모르게 황급히 예를 표해 답례했다. 왜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그래야 할 것 같았고 지금의 그는 지난날과 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사형."

 한효월의 부름에 건곤무적 독고해는 무표정히 그를 보았다.

 "같이 가십시다."

 한효월이 말하자 건곤무적 독고해는 성큼성큼 앞장섰다.

 그것을 보자 주자미는 놀라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건곤무적 독고해는 실혼인이다.

 그녀의 명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저런…….

 "사숙!"

 갑자기 천무가 소리쳤다.

 한효월이 그를 보았다.

 "그런 능력을 가지셨는데…… 그래도 꼭 이렇게……."

 천무가 목이 메어 외쳤다.

 "사람의 능력이 무에 그리 대단한가? 개왕이 천하십성의 유진을 얻는다면 아마도 나보다 더 강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그럼 천하가 어떻게 되겠나? 누구도 그들을 막을 수 없을 텐데……. 그리고 만에 하나…… 천하십성이 아직 죽지

 않았다면?"

 "주, 죽지 않았다구요?"

 모든 사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한효월의 말에 사람들은 입이 얼어붙었다.

 맞았다.

 개왕이 살아 있고 만박노유도 살아 있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지녔던 천하십성이 살아 있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저 안의 세계가 과연 어디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천하십성이 현세지선(現世之仙)이 되고자 서원하여 만들어낸 이 길이……

 과연 어디로 통하는지 어느 세계로 가게 되는지 모르는 것이지요. 신선의 세계인지 악마의 소굴인지……."

 그것을 끝으로 한효월은 시선을 돌려 앞을 보았다.

 그의 시선을 받는 용화회 측의 모든 사람들이 주춤거렸다.

 "당신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이제 당신들에게 달렸소. 올바른 결정을 하시기 바라오."

 "말로써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싸우게 된다면 몰살하게 되는 것은 너희들이다!"

 용화회의 회원 하나가 소리쳤다.

 그는 지난날 중양서원에서 도주했던 대학사 구대처였다.

 "지난 세월 학문과 수양을 쌓아왔으면서도 아직 헛된 미망에 사로잡혀 있단 말이오?"

 "공격해라!"

 구대처가 고함쳐 명했다.

 한효월에게서는 기이한 힘이 느껴져서 누구도 그와 맞서 말로써 싸우는 것이 불가능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누가 한효월을 막기 전에 구대처는 한효월이 자신의 앞에 이르러 있음을 보고 대경실색했다.

 "물러가거라!"

 그가 양손을 휘둘러 한효월을 공격하자 다른 용화회의 회원도 가세했고 제천교의 고수들이 일제히 밀려들었다.

 하지만 헛된 일이었다.

 한효월이 지금 이른 경지는 궁극(窮極)의 것이었다.

 선(禪)에 일러 무념위종(無念爲宗), 생각없음으로 기둥을 삼고 무상위체(無相爲體), 형상없음으로 몸을 삼으며

 무주위본(無住爲本), 머물지 않음으로 근본을 삼는다 하였다. 하나 거기서 말하는 무념위종이 어찌 생각없음으로 기둥을 삼는다는

 한마디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랴. 무상위체나 무주위본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한효월이 수련한 것과 무관하지 않았다.

 아니, 무관이 아니라 선가(仙家)의 무공 또한 거기에 뿌리를 둔다 할 수 있었다.

 무념(無念)이라는 두 글자야말로 선가는 물론 선가(禪家)와 도가(道家)까지 아울러 쓰는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곧 부동념(不動念)으로 이어지고 념(念)이 일지 않으면 심체부동이라 하여 마음과 몸도 따라 움직이지 않게 된다.

 바로 그러한 경지에 올라선 그이기에 이 자리에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강하지 않으면서도 힘이 깃든 그의 손짓에 따라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흩어졌고 사정없는 독고해의 철퇴 같은 일격에 걸린

 사람은 어육이 되어 튕겨져 나갔다.

 막는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들 두 사람을 막는 것만 해도 그런데 나머지 군웅들이 밀려들자 버티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절세고수 두 사람이 앞서자 그들을 상대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구대처는 굳은 얼굴로 고민하다가 결심을 굳힌 듯 통로 안으로 몸을 날려 사라져 갔다.

 그는 이곳을 책임진 사람이었다.

 대국을 관장하고 퇴로를 확보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세불리하자 천하십성이 남긴 것에 마음을 두고는 자리를 피하고 만 것이다.

 지휘자가 없자 무너지는 것은 순간이다.

 한효월은 남해용왕이나 기타 천하십왕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더 이상 피를 흘릴 필요는 없소. 무익한 싸움은 멈추도록 하시오. 이 자리를 물러나든지 아니든지 내 앞만 가로막지 않는다면

 누구도 당신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오."

 "그게 정말이오?"

 한효월의 신위에 질려 있던 부해교가 나서 주춤거리며 물었다.

 "그렇소."

 "조, 좋소! 그럼 할아버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겠소. 물론, 누구도 방해하지 않겠소."

 그가 그렇게 나서자 남은 천하십왕의 수하들도 뒤를 따랐다.

 결국 남은 것은 용화회와 궁가방, 제천교의 수하들.

 천지격변의 대혈하(大血河)가 이루어질 것 같았던 격전의 현장은 그것으로 일단락되어 버렸다.

 궁가방의 고수들은 황엽이 나서서 설득했고 제천교의 수하들은 우왕좌왕 군웅들에게 밀리면서 후퇴를 거듭했다.

 용화회의 고수들은 실제로 몇 되지 않고 그나마 최고수들은 이미 진세의 안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더 말할 것이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장내는 정리되었다.

 도저히 역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건만 한효월 한 사람의 부활로써 그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아직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었지만 한효월은 그 모든 싸움이 끝나기를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그는 천천히 진세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독고해가 따랐다.

 그런 그의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았다.

 대체 그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때 한효월이 비틀거렸다.

 군웅들 사이에서 놀람의 외침이 흘러나왔다.

 그가 피를 흘려내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보인 것은 그저 그렇게 보였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그제서야 한효월이 죽었던 사람임을 경각해 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아니라 그렇게 보이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는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그것을 누르고 있을 뿐.

 "사숙……."

 그가 비틀거리면서 피를 토하는 것을 보자 감천형이 입술을 물었다.

 한효월은 주변을 살피더니 한 군데에 가 섰다.

 독고해도 거기에 섰다.

 그리고 한효월이 그 자리에 가부좌를 하고 앉자 독고해도 그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대체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일까.

 감천형은 그들이 앉은 자리가 봉신방이 사라진 그 자리임을 알았다.

 웅웅…….

 아무런 변화가 없는 시간이 조금 지나더니 기이한 울림이 서서히 진세에서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봉신방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빛 한줄기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얼핏 보기에 나무처럼 보이는 빛…….

 그것은 점점 강렬한 빛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한효월을 감쌌다.

 그리고 독고해마저 감싸면서 그 빛은 점점 더 강한 빛무리로 화해갔다.

 쿠쿠쿠쿠…….

 그리고 마침내 사방에서 커다란 진동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산악을 흔드는 거대한 굉음은 진세가 깨어져 통로가 나타날 때보다 더 큰 듯하였다.

 환상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에서 환영(幻影)처럼 산악이 솟아나고 눈앞에서 숲이 만들어졌다. 보지 않았다면 절대로 믿지 못할 광경.

 그렇게 하여 나타났던 통로가 사라졌다.

 "아아……."

 주자미가 탄성을 흘려냈다.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한효월이 있던 자리에서는 거대한 빛줄기가 허공으로 치솟아오르고 있었다.

 일 장에서 오 장으로, 다시 십 장으로…….

 십여 장이나 치솟은 빗줄기는 서서히 형상을 갖추어가기 시작한다. 빛에서 실체로.

 그렇게 해서 나타난 것은 하늘을 꿰뚫을 듯이 솟구쳐 오른 거대한 박달나무 한 그루였다.

 나무는 시야를 가로막는 거대한 절벽 속에서 솟아나 있는데 기이하게도 그 나무 뒤로 은은히 가부좌한 한효월과 독고해의

 모습이 보인다. 얼핏 보면 보이지 않고 다시 보면 보이는데, 눈을 비비고 다시금 유심히 보면 보이지 않아 신비롭기가 이를

 데 없었다.

 "신단수(神檀樹)……!"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감천형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전설로 전해지는 그 옛날 환족의 유래. 태양의 아들로 신의 자손으로 불려져 천손(天孫)이라는 그들의 기원은 신단수의 아래라고

 들었었다.

 '어쩌면 그것이 저곳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감천형은 그 가운데 자신이 알지 못하는 어떤 거대한 비밀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에서 그가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너무 없었다.

 진동이 사라지고, 사람들의 앞에 나타났던 그 울창하고 기이한 원시림도 모두 거대한 절벽과 산악들로 인해 사라져 버렸다.

 오로지 신단수와 그 가운데 자리한 한효월의 모습만이 이 모든 것이 사실임을 증명하려는 듯 그렇게 존재했다.

 "맙소사! 이건 실체인데!"

 신단수를 두드려 보고 절벽을 만져 본 사람들이 경악해 실성을 흘린다. 절벽을 두드리니 돌 가루가 떨어진다. 절벽을 차고 올라가니 태백산의 그 산세가 그렇게 보인다. 어디에서도 환영은 없다. 보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이 실체였다.

 그것이 바로 대자연진세의 위대한 점이었다.

 그때.

 감천형이 신단수를 향해 절을 하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바쳐 신단수를 만들어낸 한효월을 향해. 자신의 사부를 향해.

 대명이 길게 불호를 외면서 독경을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들이 신단수를 향해 경배했다. 모두가 머리를 땅에다 대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을 바친 위대한 영혼을 위해.

 까마득히 저 멀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모두가 자신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한효월은 미미하게 웃음 지었다.

 길지 않은 생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서문운하를 비롯한 몇 사람에게 미안하고, 자신의 손에 생을 마친 사람들에게 죄송스러울 뿐…….

 평화와 정의, 그 무엇으로도 다른 생(生)을 끊는다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이제 그 속죄를 하리라.

 평생을 두고 이 자리에서…….

 한효월은 눈을 감았다.

<『대풍운연의』 全卷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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