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首 제천교주(齊天敎主) (82/113)

第十首  제천교주(齊天敎主)

-교주가 나타나다.

마침내 천하대란(天下大亂)의 원흉을 만나다.

 아침 해가 저 멀리 떠오름이 보인다.

 한효월은 눈앞에 펼쳐지는 장관을 보면서 내심 감탄했다.

 봉황문주 완일은 바람처럼 빨리 달려 그를 인도했고 그의 안내로 한효월과 좌백은 동정호를 끼고 달렸다.

 동정호를 형용한 시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 어느 것 하나 절창(絶唱)이 아닌 것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어떤 시인도 한효월과 같이 이런 시각에 이런 날씨에 이런 속도로 동정호변을 달려보지는 못하였을 것이었다.

 두보(杜甫)가 말한 건곤일야부(乾坤日夜浮), 하늘과 땅이 밤낮으로 둥둥 떠 있는 것 같다라는 것 정도가 겨우 그 겉은 보았다고 할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효월은 이내 바빠졌다.

 물론 그 이유는 좌백 한 사람만 알았고 앞서 가는 봉황문주 완일조차 알지 못했다.

 그가 달리면서 좌백에게 끊임없이 전음으로 무공을 구술(口述)해 주고 있음을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인가. 내력이 달리면 상승무공을 전개함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그리고 내력이 높아져도 상승의 무공을 알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그런 면에서 한효월은 정말 훌륭한 선생이었다.

 불행히 그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서 문제였지만.

 그가 이런 시간을 이용하여 좌백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에 하나 좌백에게 시간이 모자라게 된다면 최소한 자신을 그 자리에서 빼낼 시간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무공 전수는 그들의 눈앞에 한 채의 장원(莊院)이 나타나면서 끝났다.

 "제천교주는 이곳에 있소."

 그곳을 보면서 봉황문주 완일이 말했다.

 아침 안개와 희미한 아침 해에 드러난 장원은 거대하다.

 단순히 건물이 거대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런 곳에서의 장원은 한 채의 건물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채처럼 담을 쌓는다. 그리고 그 성채 안으로는 집도 있고 들도 있고 논도 있다. 말 그대로 작은 성과 같은 곳이 이런 곳에 있는 장원이다.

 예전에는 이런 곳에서의 힘을 기반으로 지방의 호족(豪族)이 일어나고 또 그 힘을 빌미로 지방 호족에서 나라의 귀족으로, 더 나아가서 아예 자신이 황제가 된 경우까지도 있었다.

 "전체가 제천교도와 관련된 것은 아니고 내부의 집 몇 군데가 제천교의 거점인 것으로 밝혀졌소. 제천교주는 바로 저기에 머물고 있소."

 그처럼 담대한 그임에도 이젠 음성에 조금의 긴장이 묻어난다.

 "우리만 갑니까?"

 한효월이 물었다.

 좌백까지 모두 해서 셋이다.

 봉황문주 완일은 웃음을 머금었다.

 "이 인원으로 일 대 일로 제천교주만 상대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제천교주에게 조금 미안하지 않겠소? 이미 백여 명 정도의 인원이 주변에 매복하고 있소. 그들은 문곡이 지휘하게 될 거요."

 "그럼 이 일에 봉황문의……."

 "정예가 모두 참가하고 있소. 내가 대막에서 데려온 광사삼십육타(狂沙三十六駝)까지 왔으니 이 정도의 전력이라면 누구라도 피해낼 수 없을 것이오. 하지만……."

 그는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어쩌면 그들은 출동하지 않을는지도 모르오."

 "어떻게?"

 "아니, 출동하지 않는다면 말이 이상하군. 아마 우리가 제천교주와 부딪치거나 아니면 그를 잡고 난 뒤에 그들이 출동한다는 말이 좀 더 정확하겠소."

 듣자니 점점 요령부득이다.

 "제천교주가 수신호위들만 데리고 이곳에 있는 것은 일대 비밀이라고 할 수 있소. 문곡의 능력이 아무리 놀라워도 사실 운이 닿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낼 수 없었을 테니까. 제천교 내부에서도 그가 여기 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요. 이유는 간단하오. 여기에 그의 여자가 있는 모양이오."

 "여자?"

 "그렇소. 그는 뭔가 정리를 할 때는 여인과 함께한다고 하오. 그리고 남에게 간섭받기를 극단적으로 싫어해서 주위를 모두 물린다고 하지. 여자 하나만 곁에 두고. 그게 그의 불행이 될 것이오만."

 "지금이 그때라는 겁니까?"

 "맞소."

 말대로라면 정말 호기였다.

 어쩌면 정말 뜻밖에도 대어를 낚게 될런지도 몰랐다.

 신비에 쌓인 제천교주.

 그를 잡게만 된다면 모든 것을 반전시킬 수 있는 정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 낼 수가 있을 터였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능력을 지닌 고수가 필요했소. 불행히…… 나와 비슷한 고수를 찾기는 쉽지 않았소. 더구나 믿을 만한 사람은 더 더욱 쉽지 않지."

 그의 말대로라면 제천교주와 일 대 일로 맞설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그의 수신호위들이 달려들기 전에 그를 제압하는 그런 상황. 봉황문주 완일의 말대로 그렇게 된다면 그들이 제천교주를 공격하는 순간에 수신호위들이 출동하게 되고 그들을 봉황문의 고수들이 막는 참으로 믿기 힘든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독고 부인은 오늘……."

 한효월의 말에 봉황문주 완일은 머리를 저었다.

 "봉공봉은 이곳에 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오. 신속한 행동이 요구되는 상황이라."

 봉황문주 완일의 말은 단호했다.

 그리고 그는 좌백을 바라보았다.

 "한 공자의 사질께서도 밖에 같이 있어주면 좋겠소."

 "소생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쓸데없는 호승심으로 상황을 그르치게 만들 사람은 아닙니다. 폐가 되지는 않고 충분히 망을 볼 실력은 될 겁니다."

 좌백의 말에 봉황문주 완일은 한효월을 바라보았다.

 "믿으셔도 될 겁니다. 좌 사질의 지금 무공은 저에 비해서 별로 약하지 않습니다."

 한효월의 말에 봉황문주 완일은 놀란 빛으로 좌백을 다시 보았다.

 "과연 중원무왕의 고제(高弟)답구료……."

 하지만 그 말뿐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그런 한 가지를 봐도 그는 역시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들의 앞으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40대 후반. 날카로운 눈빛에 한 자루의 검을 등에 메고 있어 상승검도를 연수한 것으로 보이는 자였다.

 그는 봉황문주를 향해서 허리를 굽혀 보였다.

 "안내해라."

 봉황문주 완일의 말에 그는 다시 허리를 굽혀 보이고는 앞서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미 주위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를 해둔 듯 앞선 자의 움직임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쭉쭉 앞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절묘하게 침투를 하고 있었다.

 그가 펼치는 경공만 봐도 그의 무공이 상승의 경지에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그의 경공술은 표홀(飄忽)했다.

 측면 야산으로 돌면서 장원으로 들어갔는데 너무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일어난 사람은 거의 없는 듯 보였다. 하긴 한밤보다 오히려 이런 첫새벽이 더 깊게 잠이 드는 법이기도 했다.

 십여 개의 집을 옆으로 돌아가면서 안으로 들어가자 담장을 두른 집이 하나 모습을 드러냈다.

 전원과 후원으로 구분된 그 집은 앞에는 정원이 꾸며져 있고 뒤로는 숲을 등져 경관이 훌륭했고 후원에 마련된 가산에는 인공 연못과 폭포까지 흘러 누가 봐도 이 장원 세력가의 집임이 분명해 보였다.

 중년검수가 뭐라고 하는 듯하자 봉황문주 완일이 한효월을 돌아보았다. 전음지성이 들려왔다.

 '이곳이오. 전원과 후원 가산 쪽으로 수신호위들이 진을 치고 있고 제천교주는 저기 후원 내에 있는 모양이오. 저쪽과 이쪽 외곽으로 일차 우리 매복이 준비하고 있고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에 나머지 매복이 공격을 시작하게 될 거요. 우리는 그전에 후원으로 잠입해서 교주를 공격해야 하오.'

 '들키지 않고 들어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잠입할 수 있는 경로는 모두 감시되고 있을 텐데?'

 '가능할 거요. 그걸 위해서 우리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겠소? 감시하는 자가 우리보다 뛰어나다면 저기서 감시를 하고 있지 않을 테니 말이오. 하하…….'

 낮은 웃음소리가 전음으로 들려왔다.

 그의 자신만만함에 한효월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자, 가봅시다. 여기서부터는 우리끼리 가야 할 테니.'

 '소생이 잠시 주위를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뜻밖인 한효월의 말에 봉황문주 완일은 멈칫, 그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생명과도 같은 것이 지금의 일이다.

 제천교주가 자고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이고 아니라 할지라도 다른 변동이 없을 때 덮쳐야만 한다. 이곳은 행소(行所)에 불과하다. 행소란 잠시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다. 그런 만큼 언제 떠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한순간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런 것을 모를 리 없음에도 한효월이 살펴보겠다는 것은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봉황문주 완일은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았다.

 문득 한효월의 주위로 뭔가 고요한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서 맑은 빛이 쏟아져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천조신안이군!'

 그것을 알아본 봉황문주 완일이 놀란 빛을 떠올렸다.

 천조신안은 단순히 공력이 높다고 시전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었다. 깨달음이 높아야만 가능한 무공이 바로 천조신안으로 불가의 천안통(天眼通)과도 같이 깊은 성찰에 의한 깨달음, 시전자의 정신이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시전할 수 없는 것임을 알기에 그는 다시금 한효월을 보게 된다.

 한효월의 나이로 보자면 믿기 힘든 깨달음이기에.

 그때 한효월이 미미하게 숨을 고르더니 시선을 돌렸다.

 '정말 매복이 없군요. 제천교주의 처소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호흡을 보건대 초절정의 고수는 아닌 듯하고 여자인 것 같기도 합니다. 나머지 한 사람이 제천교주라면 그는 잠들지 않은 것 같군요. 깨어 있습니다.'

 '세상에 이르기를 늘 소문은 과장되어 믿을 것이 못 된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소! 어떤 놈들이 한 공자에 대한 소문을 그렇게 폄하하여 퍼뜨린 것인지 내 놈들을 찾아서…… 아니군! 우리 문상도 한 공자를…… 아니군, 아니야! 그러고 보니 문상이 올린 평가를 내가 폄하하여 받아들였던 것 같소. 이런, 이런!'

 봉황문주 완일의 전음에 한효월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도무지 거침이 없다.

 말을 함에도 아무것도 가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그냥 쏟아내 놓는 것 같다. 그런데도 괴이하게 그것이 불쾌하거나 가식으로 들리기보다는 듣는 사람을 흔쾌(欣快)하게 한다. 그의 말이 진심임을 믿게 하는 힘이 있는 까닭이다.

 그는 분명히 평범하지 않았다.

 '그 여자로 보이는 자와 교주로 생각되는 자가 같이 있소?'

 '그런 것 같지는 않군요. 방 하나 정도의 차이가 있었는데 금세 멀어지더니 방 두 개 정도의 공간이 된 듯합니다. 아마 여자는 침실에 있고 남자는 거실로 간 듯하군요.'

 '흠, 일을 끝낸 건가?'

 봉황문주 완일의 말에 한효월은 잠시 무슨 소린가 하여 그를 보다가 이내 의미를 깨닫고는 쓰게 웃고 말았다.

 다른 곳이었다면 봉황문주 완일은 박장대소하고 말았으리라.

 '자, 그럼 가봅시다!'

 세 사람은 그림자처럼 소리없이 장원으로 스며들었다.

 그처럼 냉철했던 좌백의 얼굴마저도 상기되어 있었다. 그러나 워낙 침착한 성격이니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았다.

 고수(高手).

 그것도 그냥 고수가 아니라 절세고수 셋.

 좌백의 능력이 조금 떨어지지만 지금 상태로는 사실 크게 떨어지지도 않는 상태.

 그런 고수 셋이 움직이니 그 움직임은 은밀하고도 신속하기 이를 데 없어서 바로 옆을 지나가도 그 기척을 느낄 수 없을 정도였다.

 그들은 장원을 바로 통과하여 전원을 지나 후원으로 스며들었다.

 후원으로 접어들자 담장 하나도 소주 등지에서 주로 사용하는 누전장의 형식으로 지어져 있어 이 집이 겉보기는 평범하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공을 인 곳임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담 안쪽으로 통하는 길도 난석로(亂石路)의 포지법(鋪地法)으로 나 있으니 어떻게 된 집이 후원으로 갈수록 명공(名工)이 손을 댄 흔적이 역력하다.

 하나 설마 이렇게 정면으로 통과할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은밀한 매복은 정면이 오히려 약하고 좌우와 후면이 가장 강력했다. 그중 후면은 난석과 후원 가산 등에 있지만 한효월 등은 아예 집 안으로 침투할 예정이었으므로 그 매복들은 속수무책일 터였다.

 '서재!'

 한효월과 봉황문주 완일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들은 이미 후원으로 들어와 있었다.

 너무 쉽게 모든 것이 풀려서 정말 저기에 제천교주가 있을는지 의문조차 들었다.

 그 신비에 찬 제천교주.

 그가 이렇듯 쉽게 그의 앞에 나타날 수 있을 것을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

 그처럼 침착한 한효월도 가슴이 뛰었다.

 제천교주가 자신을 이곳으로 유인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한효월이 만사를 젖혀두고 이곳까지 온 것도 바로 제천교주를 만나기 위해서였었다. 그를 두고는 도저히 이 일을 풀 수가 없었기에.

 그런데 그가 여기 있는 것이다.

 '나는 창 쪽으로 접근하겠소.'

 봉황문주 완일의 말이 들려왔다.

 '창?'

 '그렇소. 도주하면 막을 수가 없을 테니 그게 옳을 거요. 한 공자는 문으로 해서 들어가시오. 사질을 시켜 배후를 보도록 하고…… 그렇게 하면 거의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그의 말대로라면 포위를 한 형국이 될 것이다.

 '그럼!'

 봉황문주 완일의 모습이 사라졌다.

 중국의 건축은 조금 다르다.

 건물과 건물이 뚝 떨어져 있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 잘 사는 곳이라면 거의 모든 건물들은 회랑(回廊)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이곳도 다르지 않아서 후원은 방과 회랑을 통해서 이어져 있었고 한효월은 좌백과 함께 후원으로 스며들었다.

 길게 복도가 보였다.

 보통의 큰 집이라면 칠가량(七架樑)의 형태로써 집을 이어가는데 이 집은 구가량(九架樑)에 다 오주(五柱)의 형식을 취했다. 자연히 방이 많은 형태일 수밖에 없다.

 두 번째 방에서 무슨 기척이 들린다.

 누군가가 있는 듯했다.

 아마 한효월이 들었던 여인인 듯한 기척이 있던 방인 듯싶었다. 아니면 정말 제천교주가 여인과 같이 있었던 침실이었는지도 몰랐다. 복도의 끝은 대청이다. 크지는 않지만 후원을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생김이다.

 5개의 기둥이 버티고 서서 매화형으로 대청을 지탱했다.

 대청 가운데에는 어항 형태의 너비 일 장가량의 연못이 있었고 연못에는 정교한 솜씨로 깎은 대리석 용이 똬리를 틀고서 승천하려는 형상을 보인다. 그 용의 입에서 물줄기가 졸졸 흘러 연못을 이리저리 감돈다.

 낮게 감도는 물소리…….

 한효월이 한쪽을 가리켰다.

 방문이 있었다.

 가운데 대청이 있고 그 좌우로 대청과 침실이 같이 있는 형태인 듯 보였다.

 그들이 생각했던 서재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좌백이 소리없이 몸을 날려 서재의 문 곁에 서서 한효월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약속한 대로 뒤를 보고 그 문으로 한효월은 당당히 들어설 것이다.

 한효월은 암암리에 길고도 깊게 한입 진기를 들이마셨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격렬한, 참으로 격렬하고도 무서운 싸움이 시작될 터였다. 그 싸움으로 그는 죽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의도한 대로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으리라. 하나 그 무엇이든 간에, 저 안에 제천교주가 있다면 그는 전력을 다할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격전일 것이다.

 좌백과 눈길을 교환한 한효월은 천천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냐?"

 나직이 꾸짖는 음성이 들려왔다.

 문을 열고 들어선다면 누구라도 그 기척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평범한 사람이 있는 곳으로 절세고수가 들어간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것이 당연했다.

 들려온 소리는 너무 당연한 것이지만 한효월은 가슴이 철렁했다.

 "……."

 그는 대답 대신 번개처럼 주위를 쓸어보았다.

 예측대로 서재였다.

 어스름한 빛이 조금 남아 있지만 대황초 하나가 밝혀져 있다. 그리고는 창문을 통해서 아침이 밀려들고 있어서 서재는 환하고 바깥은 오히려 어두운 상황이었다. 그 창은 일반 서재의 것보다 매우 커서 양쪽으로 열 수 있을 뿐더러 그 창문을 통해 후원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 창문에는 커다란 태사의 하나가 놓여 있고 거기에 한 사람이 등을 보인 채로 앉아 있는 듯했다.

 고서가 가득한 책장이 그 좌우로 놓여 있었다.

 벽에는 고인의 서화(書畵)가 몇 점 걸려 품격을 높였다. 그렇게 해서 서재는 너비가 2장, 길이가 3장가량의 길죽한 형상을 하고 있다.

 예측대로 다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었다.

 예정한 대로 저 태사의에 앉은 자를 덮치는 것.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효월로 하여금 감히, 앞으로 덮쳐 가지 못하게 만든 소리가 들려온 것은.

 "이제 왔나, 한효월?"

 태사의에 앉은 사람이 한 말.

 그 말은 한효월로 하여금 그를 덮쳐 가지 못하게 하고 남음이 있었다.

 "누……?"

 한효월의 신형이 일순간 그 자리에 굳어졌다.

 격렬한 생각의 실타래가 그의 머리 속에서 순식간에 수십 수백, 아니, 수천 개가 한꺼번에 풀렸다가 감겼다. 그리고 그 모든 실타래는 단 한 순간에 모두 타 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예상보다 조금 빠르군. 과연 대단해……."

 등을 보인 사람이 다시 말했다.

 높고 넓은 의자는 그의 머리만을 보이게 한다.

 그는 머리에 선비들이 많이 쓰는 동파건을 쓴 듯 보인다. 그뿐, 의자가 가리고 있어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잡아당긴 활과 같이 전신에 힘을 주고 있던 한효월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힘을 푸는 것이다.

 그리고 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오?"

 "물론이지."

 그는 서슴없이 대답했다.

 "혹, 우린 전에 만난 적이 있지 않소?"

 "글쎄?"

 한효월의 물음에 그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냥 있어.'

 한효월은 좌백에게 머리를 저었다.

 그의 뒤를 따라 스며든 좌백이 덮치려는 기색을 보이자 고개를 흔들며 전음을 보낸 것이다.

 "왜 우리가 전에 만났다고 생각하지?"

 그가 등을 보인 채 물었다.

 "그럴 것 같아서."

 "그럴 것 같다? 하하하하……."

 그가 나직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런지도 모르지. 그럴런지도 몰라."

 말과 함께 그는 의자를 빙글 돌렸다.

 순간.

 "으음……."

 어지간한 한효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사람이 그를 보고 있었다.

 한 사람이 의자에 앉은 채 그를 보면서 웃고 있었다.

 동파건을 쓰고 소매가 넓은 유삼(儒衫)을 입은 50대 후반의 노인. 조금 마른 얼굴에 눈꼬리가 조금 올라간 눈빛은 깊고 날카로워 한번 본 사람은 그를 쉽게 잊기 어려웠다.

 한효월이 그런 사람을 쉽게 잊을 리가 없다.

 아무런 적의를 보이지 않고서 그를 보면서 웃는 그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바로 천,기,선,생이었기 때문이다.

 천기선생 공일도!

 한효월이 강호에 나와 처음 만났던 그 사람.

 건곤무적 독고해의 의형이었던 그 사람, 한효월의 눈앞에서 죽었던 천기선생 공일도가 바로 거기에 앉아 있었다.

 "놀랐나?"

 그가 물었다.

 "조금."

 한효월이 답했다.

 "조금? 겨우 조금이란 말인가?"

 그가 미간을 찡그렸다.

 "흐음……."

 그는 수중에 들었던 섭선을 접었다 폈다 하면서 묘한 표정이 되었다.

 "내가 살아 있는 것이 뜻밖이 아니라는 표정이군."

 "죽은 것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죽은 것을 보지 못했다고?"

 "불탄 시체는 누구라도 알아볼 수 없지……."

 "하하하……."

 그가 크게 웃었다.

 "그렇긴 하군. 불에 태운 것이 잘못이었단 말이지……."

 갑자기 그가 정색을 했다. 눈빛이 칼날과도 같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죽었다고 믿지 않았더란 말인가?"

 "반신반의라고 하는 게 옳겠지. 때론 의심도 하고 때론 믿기도 했소. 당신이 영원히 나타나지 않았다면 물론 당신이 죽었다고

 믿었겠지만……."

 그는, 천기선생 공일도는 미미하게 웃었다.

 "영원히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었지. 하지만 그건 너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하여 너의 마지막에는 나타나기로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너의 마지막은 내가 보는 것이 옳을 듯했으니까."

 "영광이군."

 남의 말을 하듯 그 말을 받던 한효월이 문득 미간을 찡그렸다.

 "당신이 이렇게 나타난 걸 보니…… 나의 마지막이 다가온 모양이군?"

 "맞다! 이 자리가 너의 최후가 될 곳이지."

 "좋소……."

 한효월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그전에 한 가지만 물어보겠소."

 "뭔가?"

 "제천교의 교주. 당신이 맞소?"

 "맞다."

 천기선생 공일도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제천교주다."

『대풍운연의』 제9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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