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首 화산지우(華山之憂)
-의혹은 끊임없다
마침내 비약(秘約)은 그 모습을 드러내다
화산.
어둠은 아직 세상을 덮고 있다.
그러나 그 어둠 속에서 화산은 깨어 있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화산대회다. 대외비로써 시작된 모임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천하무림맹의 새로운 주인을 선출하는 큰 의미를 가진 행사.
홀로 우뚝 일어서 천하를 질타한 건곤무적 독고해라는 걸출한 영웅이 사라지면서 그를 둘러싼 채 포진했던 무림의 숱한 군웅들은 믿기 힘들게 지리멸렬했다. 그가 사라진 지금에 그 자리를 메울 힘을 가진 것은 오랜 세월 그 자리를 지켜왔던 구대문파가 유일했다.
오늘이 지나면 천하무림맹은 구대문파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일단 구심점이 마련된다면 제아무리 제천교가 신비롭고 막강하다 해도 지금처럼 마음대로 설치지는 못할 것이었다. 천 년을 이어온 소림사를 필두로 한 구대문파의 저력은 어느 누구도 결코 만만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지만 그 중심에 선 화산장문인, 진자양의 안색은 무거웠다.
내일을 위해서 자거나 잠시라도 운기조식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발 아래 밟히는 풀잎이 조심스레 느껴진다.
그만큼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증거였다.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선심재(善心齋).
바로 얼마 전에 흑포괴인에게 당한 구대문파의 선대 장로들이 안돈하여 상세를 다스리고 있는 곳이다. 선심제는 화산파 내에서도 경치가 좋은 곳에 위치한다. 그 건물의 원래 용도 자체가 마음을 다스리고 수양을 쌓는 곳이라 조용히 치료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 할 수 있었다.
암중에 구대문파의 고수들이 번을 서고 있었지만 그의 앞을 가로막지는 않았다.
주위를 돌아보았다.
달빛은 고즈넉하고 바람은 조용히 풀잎을 흔든다.
평소라면 더없이 고요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을 터이다.
진자양은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고는 선심제 안으로 들어섰다.
선심제는 대청 하나와 별채 세 개로 구성된다.
대청에 딸린 방이 여섯 개이고 별채에는 각기 방이 두 개씩이다.
그가 선심제 대청에 들어서자 그 자리에는 뜻밖에도 세 명의 노인들이 자리에 앉아 그가 들어서는 것을 보고 있었다. 노승 한 사람에 노도사 한 사람, 그리고 속인 차림의 노인 한 사람. 그들 모두의 나이는 이미 칠순을 한참 전에 넘긴 듯했다.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해 마치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진자양이 그들 앞에 이르러 포권해 보였다.
"어서 오시오, 맹주 대행."
그들이 일어나 그를 맞았다.
선심제에서 진자양을 맞이한 세 노인은 구대문파의 선대 장로들이었다. 바로 얼마 전 흑포괴인에게 당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노승은 소림사의 장로인 혜원(慧元)이며, 노도사는 무당파의 장로인 고양자(古陽子)였다. 마지막 청삼(靑衫)의 노인은 점창파의 삼로 중 한 사람인 운한검노(雲漢劒老) 풍청도(馮靑濤)였다.
소문과는 달리 그들의 상세는 그렇게 심하지 않은 듯했다.
"소식은?"
진자양이 자리에 앉자 점창파의 운한검로 풍청도가 급히 물었다. 몸져누운 상태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의 안색은 매우 창백해 정상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와 같은 고수의 얼굴은 불그스름하게 혈색이 도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동안(童顔)에 학발(鶴髮)이라는 것이 내가고수들의 표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에.
"아직……."
"아직이라니? 이미 기별이 있을 때가 넘지 않았소?"
진자양의 말에 운한검로 풍청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습니다. 이미 돌아왔어야 했는데, 소식은커녕 아예 연락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요? 설마 그들에게 무슨 변고가?"
"여기 계신 선배들께 변고가 생겼듯, 아니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인 듯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니? 그럼 그들이 정말 변이라도 당했다는……."
"이미 사람을 파견하여 수색을 시작했습니다만……."
"으음……!"
"아미타불…… 이런, 이런……."
"무량수불, 업보(業報)로군, 업보야……."
세 노인이 일제히 탄식을 흘려냈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했던 그들의 얼굴에는 더욱 핏기가 사라졌다.
…….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주 무겁고도 무거운 침묵이었다.
"어떻게 할 작정이오? 내일…… 대회를 그대로 진행하겠소?"
먼저 입을 연 것은 무당파의 고양자였다.
"이 상황에서 대회를 연기한다면 정말 큰 문제가 생기고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일어날런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게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장문인들의 의견은 어떻소?"
"비약(秘約)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일은 너무 엄중하여 다른 장문인들과도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는 없습니다. 만에 하나 이 일이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진자양이 말끝을 흐렸다.
"으음……."
나머지 노인들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잠시 말을 끊었던 진자양은 굳은 얼굴로 다시 말을 이었다.
"비약의 전모(全貌)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그 일을 주도했던 혜도 선사(慧濤禪師)를 비롯한 분들이 모두 그쪽으로 가신 이상, 만약 그쪽에 변고가 생긴 것이 확실하다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험악해질런지도 모릅니다."
"그게 무슨 의미요?"
운한검노 풍청도가 안색이 변해 물었다.
진자양은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비약의 전모를 아는 분들이 전몰(全歿)하면, 우리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결과는……."
"말도 안 되오! 어떻게 그런 일이……."
운한검노 풍청도가 머리를 흔들어 부정했다.
그러나 그의 음성이 은연중에 떨리고 있음은 그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말하고 있는 듯했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두 노인들의 얼굴 또한 납덩이와 같았다.
"무량수불, 어쩌면 이 일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무당파의 고양자가 길게 탄식을 불어냈다.
"나무아미타불……."
혜원 선사가 무겁게 머리를 저었다.
살쩍까지 늘어진 백미 아래 자리한 주름진 두 눈이 깊은 고뇌로 침잠이 가라앉아 있었다.
"잠시 기다려 봅시다. 노납의 사형은 호승심이 강하긴 하지만 걸출한 능력을 가진 분이고 무당의 고령자(古靈子) 도우께서도 마찬가지.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러한 능력을 가진 그분들이 전몰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 두 분은 비약의 주창자였으니 그분들이 돌아온다면,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오."
"비약은 이미 깨졌습니다."
진자양의 말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끓는 물처럼 뭔가 가슴속에 있던 말을 토해내려던 세 노인의 입을 단숨에 닫아버렸다. 무엇인가 말을 하고 싶은 듯했지만 입만 벌린 채 그들은 일시지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큰 것이다.
"그들은 이미 우리의 통제를 벗어났습니다."
"아미타불……."
혜원 대사가 머리를 저었다.
"불가(不可)! 불가한 일이오. 어떻게 그런 일이……."
"그렇지 않다면 현재의 상황은 설명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대처를 해야 합니다."
"으음……."
세 노인의 입에서 다시금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얼굴은 너무 창백해서 백지장을 보는 듯했다.
"당연한 응보(應報)일 수도 있겠지요……."
진자양의 음성이 음울하게 식은 찻잔 위로 대청을 떠돌았다.
바삭.
발 밑에서 이슬에 젖은 풀잎이 나직이 비명을 지른다.
발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달빛은 무심하기만 하다. 검푸른 하늘에는 세찬 바람이 일어 구름들을 사정없이 휘몰고 있다. 그 바람에 달은 구름에 가렸다가 튀어나오길 반복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쏟아질 모양이다.
얼굴에 와 닿는 밤바람은 이제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말한다.
밤바람이 옷자락을 펄럭인다.
선심재를 나선 진자양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암암리에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면 천하를 건 도박(賭博)이 벌어질 터이다. 도박이라기보다는 힘겨운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원래 그는 그 싸움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떻게 여기에 계십니까?"
문득 그의 뒤에서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진자양은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무공으로 누가 뒤에 나타난 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그의 심경이 그만큼 복잡하다는 의미에 다름이 아니다.
"감 당주?"
진자양의 얼굴에 뜻밖이란 표정이 떠올랐다.
나타난 것이 병상에 누워 있어야 할, 감천형이었던 것이다.
"감 당주야말로 어떻게 이렇게? 상당히 심하게 다친 것 같더니."
감천형의 얼굴에 쓴웃음이 흘러갔다.
"견딜 만합니다. 내일이 대회인데 명색이 총당주라는 자가 자리보전하고 누워 있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무슨…… 걱정이라도?"
진자양의 얼굴에도 쓴웃음이 떠올랐다.
"내일이 대회일이거늘 어찌 걱정이 없겠소? 더구나 선배 고인들이 일패도지하여 사람들이 내심 매우 불안해하고 있소.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간다면 그 싸움은 해보나 마나가 아니겠소? 후우…… 그나마 감 당주가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니 천만다행이오."
"별말씀을……."
감천형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숙이던 감천형의 어깨에 흠칫, 가는 떨림이 일었다.
진자양이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부여잡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들자 그를 바라보는 진자양의 뜨거운 눈길이 거기 있었다.
"어려운 싸움이 될 거요, 감 당주. 잘 부탁하오."
감천형은 그의 눈빛이 떨리고 있음을 보았다.
'이 사람은 진정으로 무림을 걱정하고 있다…….'
암암리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마주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할 겁니다."
"고맙소……."
진자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자양과 헤어진 감천형은 독고경의 거처로 향했다.
갑자기 이상하게 변해 버린 그녀는 늘 그의 걱정거리였다. 그것은 사부의 위업(偉業)을 지키지 못한 제자로서의 자책이기도 했고, 책임감이기도 하였다.
검푸른 하늘에는 구름이 모였다 흩어지고 있었다. 짙은 구름이 이리저리 흩어지고 있어서 달빛이 드러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고 어둠은 넓게 하계를 내리누르고 있어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음산했다.
요소요소를 빈틈없이 감시하고 있는 고수들의 움직임에도 긴장의 빛이 역력하게 서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낮의 변고 이후에 내일 대회 이전까지 특별 경계령이 내려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주위를 돌아본 감천형은 문득 미간을 찡그린 채 가슴을 눌렀다.
잠시 숨을 고른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그의 내상은 아직 나은 것이 아니었다. 그가 받은 타격은 막대하여 아마 앞으로도 열흘은 조섭을 해야만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한 가지 의문이 그를 자리에 있을 수 없게 했다.
아직은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는 깊디깊은 의혹…….
독고경의 거처에 들어선 감천형은 잠시 멈칫했다.
그녀는 침상에 누워 있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했다. 그런데 그녀의 곁에는 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녀의 옆에 놓인 의자에 기대앉은 채 졸고 있는 여인 하나.
바로 화산옥녀 진가기였다.
그녀를 확인한 감천형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경아를 간호하다가 잠이 든 모양이군…….'
하지만 다음 순간, 문득 그의 안색이 달라졌다.
흐릿한 등불 아래 곤히 잠들어 있는 진가기. 그녀의 곁으로 급히 다가선 감천형은 미간을 찡그린 채 가볍게 그녀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움찔했을 뿐, 잠에 취해 일어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곤하게도 자는군, 하고 넘겨 버렸을 일.
그러나 감천형은 달랐다. 아무리 곤해도 무공을 익힌 사람이 흔들어도 깨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임을 알기에.
'수혈(睡穴)을 짚였다!'
신음을 흘린 그는 다급히 침상으로 가서 독고경을 살폈다.
그녀는 여전히 혼수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안색은 여전히 백지장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그녀의 손목을 짚어본 감천형의 안색은 괴이하였다.
'내상이 다 나았다…….'
호흡도 고르고 맥박도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조금 느린 듯했지만 분명히 상처를 입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해하기 힘든 것은 그녀의 백지장처럼 창백한 안색. 이런 상태라면 안색도 정상이라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의 몸은 얼음처럼 찼다.
'누군가가 왔다 갔다는 것인가?'
감천형은 다급히 창가로 갔다.
별다른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세심히 창가를 살펴본 감천형은 진가기를 깨웠다.
"어머? 언제 오셨어요?"
수혈이 풀린 진가기는 그를 발견하자 깜짝 놀라 일어났다.
"죄, 죄송해요. 언니를 보살핀다는 게 피곤했었나 봐요. 그, 그런데 많이 다치셨다고 하던데……."
그녀는 졸고 있던 모습을 그에게 보인 게 당황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하긴 어떤 여자라도 그럴 것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감천형이었다. 스물을 바라보는 사춘기의 소녀인 그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일일 수밖에.
"혹시, 이상한 일은 없었소?"
감천형이 물었다.
"무슨 일이요?"
진가기가 의아한 빛으로 되물었다.
밝고 명랑한 성품이었다. 일견 수다스럽게도 느껴지지만 그냥 단순히 수다스럽기만 한 여자라면 어떻게 화산칠수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랴. 밝고 명랑한 가운데 기경(機警)한 천품을 타고난 것이 그녀였다. 그것은 이런 시기에 그냥 앉아서 졸고 있을 그녀가 아니라는 의미다. 더구나 그녀는 무공을 수련한 젊은 여자였다. 하룻밤 정도는 그냥 새도 끄떡도 하지 않을 것이고, 정히 졸린다면 그렇게 앉아서 졸지 않고 운기조식으로 졸음을 쫓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전혀 느끼지도 못한 사이에 수혈이 짚여 잠이 들었다면 나타난 사람은 절세의 고수임이 분명할 것이었다. 하긴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독고경의 상세를 단숨에 고쳐 놓을 수가 있겠는가.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잠든 독고경을 돌아보던 감천형의 뇌리에 문득, 좌백이 이야기한 사모가 떠올랐다. 사매의 생모라는 그녀라면?
바로 그때였다.
"사형! 안에 계십니까?"
밖에서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누구? 좌 사제인가?"
"예, 잠시 밖으로 나오시겠습니까?"
그의 음성에 다급함이 서려 있음을 직감한 감천형은 진가기를 돌아보았다.
"우리 경아 때문에 고생이 많소, 진 소저."
"별말씀을요, 언니를 도울 수 있다면 당연히 도와야죠. 우린 한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요."
맑은 눈을 깜박이는 그녀의 밝은 음성에 감천형은 머리를 끄덕였다.
"염치없지만 잘 부탁하겠소."
"무슨 일이지?"
밖으로 나온 감천형은 굳은 얼굴로 서 있는 좌백을 보고 물었다.
"같이 가실 수 있겠습니까?"
"가지."
뒤를 한번 돌아본 감천형은 더 이상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속.
화산의 본관이 바라보이는 숲 속에 감천형은 좌백과 같이 서 있었다.
"여기 있던 사람들이 사라졌단 말이냐?"
감천형의 물음에 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감시하던 고수들이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습니다. 격투를 한 흔적도 없었고……."
"몇 사람이나 되지?"
"여기 있던 사람들은 모두 셋입니다. 저쪽에서 저기까지 삼각형으로 서로를 옹위하고 있어서 누구라도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쉽게 처리할 순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사라졌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더구나……."
좌백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여기에 문제가 생긴 것을 발견하고 바로 수색을 보냈는데, 그들마저 돌아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보냈느냐?"
"화산파와 의논해서 위사 셋과 화산파의 고수 둘이 같이 갔습니다."
좌백답게 그는 그 순간에도 철저하게 일 처리를 한 것으로 보였다.
감천형은 그들이 갔다는 앞쪽 숲을 바라보았다.
사람 다섯을 삼킨 숲은 무심한 모습으로 볼 테면 보라는 듯 당당히 버티고 있었다.
스멀스멀…….
밤안개가 계곡을 타고 흘러 숲을 휘감고 있었다.
괴기(怪奇)한 분위기가 일대를 뒤덮고 목을 조여오는 것만 같았다.
'사매의 방에 나타났던 자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
감천형은 미간을 찡그렸다.
"제가 직접 가볼까 합니다만……."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예?"
"동이 트려면 한 시진이 채 남지 않았다. 적이 만약 저 숲에서 기다리고 있다면 우린 함정으로 자진해서 뛰어드는 꼴이 될 게다. 조금 기다렸다가 수색을 시작하도록 하자. 지금은 과연 어떤 자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또 대회장으로 스며든 자들은 없는지 내부를 먼저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제천교 외에 또 다른 자들이란 말씀입니까?"
"글쎄, 어쨌든 지금은 신중해야 할 때일 것 같다는 느낌이다."
"알겠습니다! 일단 내부 수색을 암중으로 하도록 지시는 내렸었습니다만, 제가 직접 가보겠습니다. 사형께선?"
"난 맹주 대행에게 가 상황을 의논해 보고 돌아오마."
"몸은…… 괜찮으시겠습니까?"
감천형은 좌백을 보며 쓰게 웃었다.
"녀석, 날 벌써 폐물로 만들고 싶으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무리하진 마십시오."
좌백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