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首 서하유연(棲霞有緣) (38/113)

第六首  서하유연(棲霞有緣)

-미인요를 잡다

하늘이 정한 운명(運命)이니 누가 막을 것인가

 삭망(朔望)이라 온통 어둠에 잠겼던 밤하늘은 만월이 떠오르자, 교교(皎皎)하게 세상의 어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쿠쿠쿵…….

 쏴, 쏴아아……!

 그처럼 거세게 쏟아져 내려 천둥 같은 물소리를 일으키던 폭포와 급류들도 이젠 제자리를 찾았다. 폭포의 쿵쾅거리는 물소리도 아스라이 들려오고 산속에 자리한 이 깊은 소(沼)는 고요 속에 묻혀 있다.

 둥∼! 두다당당…….

 문득 어디선가 묘한 음률이 흐르기 시작한다.

 낮고 가늘게 어둠을 타고 번져 가는 음률은 점점 구체화되면서 힘을 가지고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한 사람이 소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서 칠현금을 타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바위 아래의 소가 출렁이는 것 같다.

 여전히 허름한 장포(長袍).

 머리를 대강 뒤에서 질끈 묶은 한효월이다.

 그는 그렇게 바위 위에 단정히 앉은 채로 칠현금을 타고 있다.

 "대체 저거 뭐 하는 거야?"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활염라가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벼르고 별러서, 드디어 미인요를 잡으러 서문운하를 돌봐야 할 송옥교만 빼고 종무연까지 세 사람이 여기까지 다시 왔다. 그런데 악기를 하나 구해달라던 한효월은 마침 서문운하가 쓰던 칠현금을 가져와서는 하릴없이 달밤에 탄주(彈奏)만 하고 있으니 괴이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망할…… 무슨 미친 짓인지 모르겠군! 미인요란 괴물이 제놈 연주를 들으려고 나오기라도 한다는 건가?"

 한참 듣고 있던 활염라는 어이가 없는 듯 다시 중얼거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잔잔하던 소에서 물결이 이는 게 아닌가?

 쏴, 쏴아아…….

 동그라미와 같은 물결이 번져 가던 소에서 뒤이어 파도가 일었다.

 그리고는 정말 믿기지 않게도 그날 들었던 그 묘한,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같은 것이 들리기 시작했다.

 당, 다다다당…….

 한효월의 손이 칠현금에서 급하게 뛰놀았다.

 마치 실 위를 굴러가던 물방울이 튕겨져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 현음(絃音)이 급하게 일어나면서 한효월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맑고 힘있는 음성이었다.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급하게 달리는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바람에 씻겨 흩뿌려지지만, 그녀의 앞에 보이는 것은 안개뿐, 그처럼 바라던 정인(情人)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허우적거려도 사방을 둘러보아도 천지간에 남은 것은 오직 나 하나뿐…….

 어이하나, 어이하나…….

 이제 나는 어이해야 하나…….

 그때였다.

 어디선가 그녀를 부르는 음성이 들려온다.

 그였다.

 그가 저 앞에서 그녀를 손짓해 부르고 있었다.

 다정한 음성, 다감한 몸짓.

 그가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쿠쿠쿠쿠…….

 물살이 용솟음친다.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같은 그 소리가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물기둥이 그 서슬에 4, 5장이나 높이 치솟아오른다.

 그 거대한 물기둥은 파도를 일으키면서 몸부림치듯이 한효월을 향해서 달려오고 있었다.

 한효월은 그 물벼락을 맞으면서도 미동도 없이 금을 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서 오라는 듯이.

 쿠쿠쿠쿠…….

 거대하게 치솟아올랐던 물보라가 잦아들었다.

 그리곤 마침내 그 거대한 힘의 정체가 드러났다.

 "맙소사! 저게 뭐냐?"

 긴장된 표정으로 침을 삼키면서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종무연이 참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세상을 덮은 하늘.

 그 하늘을 덮은 어둠을 밀어내면서 자리한 만월.

 그 휘영(暉映)한 빛 아래, 그 빛을 받으며 나타난 것의 생김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쏴, 쏴아악!

 거대한 파도가 소용돌이치면서 이는 가운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악하고도 요염한 여자의 얼굴. 아니, 그렇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서너 자는 족히 넘어 보이는 긴 머리카락은 물기를 뿌리며 파도 속에서 해초처럼 사방으로 물살을 뿌리며 흩어진다.

 그렇게 건들거리는 괴기(怪奇)한 머리는 파도 속에서 우뚝하다.

 그 머리를 받치고 있는 것은 칠흑처럼 검디검은 긴 꼬리. 괴이하기 짝이 없게도 몸통은 없이 족히 1장이 넘어 보이는 그 꼬리인 듯한 것이 머리를 인다. 마치 머리만 사람의 형상을 한 거대한 뱀이 물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자니 그 괴기한 얼굴 주위에서 흐느적거리는 저 두 개의 손과 같은 물건은 또 무엇이랴.

 그 긴 머리의 괴물은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자 한효월을 노려보면서 몸을 흔들었다.

 촤ㄱ촤ㄱ-

 세찬 물살이 파도로 변해 사방으로 회오리쳐 나간다.

 그런 가운데에도 낮고 아름다운 음색의 노랫소리는 그 괴물에게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야? 저게 도대체 사람이야? 뱀이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종무연이 신음을 내뱉었다.

 다다당! 다당…….

 한효월의 손놀림이 급해졌다.

 노랫소리가 높아졌다.

 그 앞에서 파도를 일으키는 괴물, 미인요의 몸짓도 커졌다. 그리고 그 노랫소리 또한 커졌다.

 마치 서로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한 미인요의 움직임을 보건대 한효월의 탄주와 노랫소리에 어떤 공제(控制)를 받고 있는 듯했다.

 건들거리며 파도를 일으키던 미인요의 노랫소리가 더 커졌다.

 휙휙-

 돌연 질풍이 일었다.

 흙먼지가 하늘을 가릴 듯 피어 오르면서 파도가 4, 5장 높이로 높이 치솟았다. 미인요의 몸체는 그 괴기한 긴 꼬리를 합해도 1장여에 불과했지만 그 힘은 가공할 만했다.

 하나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이다.

 스멀스멀 사방에서 풀들이 움직이더니 크고 작은 뱀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뱀뿐만 아니었다. 지네도 있고 거미 같은 곤충들까지 그 종류는 참으로 다양했다. 그것들은 한효월이 있는 쪽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쉬이잇!

 그 순간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한효월의 앞에서 전신을 흔들고 있던 미인요는 파도를 일으키면서 한효월을 덮쳐들었다.

 땅!

 순간, 한효월의 손가락이 칠현금의 현을 끊었다.

 그 소리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튕겨져 나가서 미인요를 공격했다.

 "카악!"

 미인요가 움찔했다.

 하지만 그뿐, 미인요의 덮쳐드는 속도는 줄지 않았다.

 따땅!

 다시 현이 하나 끊어졌다.

 허공을 가르는 미인요의 전신이 그때마다 꿈틀거렸다.

 땅! 따당!!

 칠현금의 현이 다시 끊어졌다.

 마치 칼날을 튕겨내는 듯한 그것이야말로 고심하기 이를 데 없는 음공(音功)으로써, 현(絃)이 하나 끊어질 때마다 혼(魂)이 흩어지고 백(魄)이 으스러진다는 천지혼돈절(天地混沌絶)인 것이다. 하나씩 현이 끊어질 때마다 그 힘은 가공하게 강력해져 마지막 천지혼돈이 펼쳐지면서 일곱 번째의 현이 끊어지면 무엇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었다.

 그럼에도 미인요는 한효월에게 그대로 달려들었다.

 그 좌우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활염라 조과와 오불관언 종무연의 모습은 보지도 못한 듯이…….

 "키이익!"

 괴성과 함께 날아들던 미인요가 돌연 몸부림쳤다.

 종무연의 손에서 날아간 그물이 미인요를 덮어버린 것이다.

 미인요가 몸부림치자 그 힘은 가공하여 종무연이 전력을 다해서 버팅겨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다.

 보통의 그물이었다면 찰나간에 찢겨져 버리고 말았을 엄청난 힘이었다. 하지만 그 그물은 미인요를 잡기 위해서 활염라가 특별히 고안하여 오랜 세월을 거쳐 만들어낸 것이다. 설산(雪山)의 빙잠(氷蠶)과 금정(金精)을 실로 뽑아내어 꼬아 만든 것이라 보검이라 할지라도 흠집조차 내기 힘들었다. 그러니 그물이 끊어질 리가 없다.

 다만 그 강력한 힘에 종무연이 앞으로 휘청 끌려갈 따름.

 종무연의 안색이 돌변하는 순간, 옆에서 세찬 휘파람 소리와 함께 무엇인가가 날아들어 미인요의 목을 휘감았다.

 활염라의 낚싯줄이었다.

 그 또한 빙잠사를 여러 겹 꼬아 만들어 가늘면서도 날카롭기 이를 데 없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사람의 목이라도 단숨에 잘라 버릴 수가 있었다.

 "끼아아악!"

 괴기롭기 이를 데 없는 비명이 미인요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고막이 터져 나갈 듯 날카로운 비명 소리였다.

 그 소리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워서 물기둥이 솟구치고 일대의 공기가 찰나간에 폭장(暴張)했다. 바위가 쩡쩡, 갈라지고 초목이 으스러져 흩어지고 튕겨져 나갔다.

 활염라 조과와 종무연의 능력으로도 충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바로 그 순간, 한효월의 손가락이 마지막 현을 끊었다.

 쾅!

 현을 튕기는 게 아니라, 벼락이 치는 소리가 나면서 그처럼 요동하던 미인요가 펄쩍 뛰면서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그 충격은 활염라나 종무연도 같이 받았고, 그 가공할 위력을 말하듯이 떵떵, 소리와 함께 여기저기서 바위들이 쪼개져 사방으로 굴렀다.

 그들을 향해 기어오고 있던 뱀이나 각종 독물들 또한 모조리 배를 드러내고 벌떡 누워 버렸다.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했다.

 가공할 위력이었다.

 그 순간, 한효월이 날아올랐다.

 그는 바람처럼 신형을 날려 그물을 쓰고서 바위 위에 쓰러져 꿈틀거리고 있는 미인요를 활염라의 낚싯줄로 칭칭 동여맸다.

 "어서!"

 한효월이 소리쳤다.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활염라가 황급히 품속에서 금빛이 번쩍이는 소도(小刀) 하나를 꺼내 벼락같이 미인요의 미간을 갈랐다. 그 소도는 비할 바 없이 예리하여 그처럼 단단하다는 그물을 가르고 미인요의 미간까지 한꺼번에 갈라 버렸다.

 참혹한 비명이 일면서 갈라진 곳에서 밝은 빛이 폭출되어 나왔다.

 미인요의 얼굴은 사람이 깔고 앉는 포단만큼이나 컸다.

 활염라는 그 미간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바로 그 순간, 대접보다 더 큰 광구(光球)가 그 미간에서 폭출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막 그 미간으로 손을 집어넣으려던 활염라의 가슴을 채 피할 사이도 없이 가격해 버렸다.

 "으악!"

 다급히 손을 거두려 했지만 활염라의 입에서 터져 나온 것은 외마디 비명.

 거대한 망치가 후려친 듯 활염라는 가랑잎처럼 날아갔다.

 빛줄기처럼 뿜어져 나와 활염라를 한 방에 날려 버린 광구는 미인요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았다.

 "요물!"

 뜻밖의 일에 일순 아연했던 종무연이 고함치면서 그의 성명절학인 뇌공추(雷公鎚) 권력(拳力)을 발휘하여 미인요를 공격했다.

 펑펑!

 바위를 모래처럼 부수고 쇠를 깬다는 그 뇌공추가 작열했음에도 미간이 갈라진 미인요는 끄떡도 없었다. 오히려 그 충격으로 정신을 차린 것처럼 그물 속에서 꿈틀거리며 머리를 드는 것이 아닌가.

 "쉬이이-잇!"

 머리를 드는 미인요의 눈에서 빛이 일었다.

 그 사악한 외침에 종무연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미인요의 외침에는 혼백(魂魄)을 잡아끄는 마력(魔力)이 있었다.

 그 노랫소리에 이끌려 용소로 자진하여 빠져든 짐승이 어찌 하나둘일 것인가?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노랫소리에 취하게 되면 정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죽는 것조차 알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은 미인요의 그 감미로운 노랫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종무연과 같은 고수가 그 외침에 정신이 아득해질까.

 종무연이 비틀 하는 순간, 미인요는 이미 한효월의 천지혼돈절에 당한 충격에서 거의 벗어나 머리를 들고 있었다.

 미간이 갈라졌음에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찰나, 붉은 광채가 전광과도 같이 머리를 드는 미인요의 그 갈라진 미간에 작열했다.

 "꺄아아아-아-!"

 구천에 사무치는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치켜들었던 미인요의 머리가 세차게 흔들거리더니 눈에서 빛이 꺼졌다. 그리고 그 머리 위에서 빙빙 돌던 광구에서 빛이 흐려지면서 광구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을 받은 것은 한효월의 손이었다.

 그것이야말로 미인요가 수백 년 세월을 살아오면서 형성해 낸 영기의 결정인 내단(內丹)이었다.

 그의 발 아래에서 살 타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갈라진 미인요의 미간이 불로 짓이겨 놓은 듯 타 들어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한효월이 펼쳐 낸 수인지력에 의한 결과였다.

 수인(燧人)이란 이 세상에 처음으로 불을 선보인 사람을 일컫는다. 삼황(三皇)의 하나로 알려진 그는 부싯돌[燧]로써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세상에 처음 전했다 하였다. 수인이란 바로 그러한 이름이 의미하듯 용암과도 같은 열기를 가지는 무공이다.

 한효월이 수인지력을 얻게 된 것은 실로 우연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수인지력의 바탕이 되는 강력한 양화지력(陽火之力)을 얻게 된 것은, 전신의 잠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도전음양대법을 시전하는 과정에서 구양신침의 영기를 모조리 흡수한 것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크으으……."

 신음과 함께 한효월의 앞으로 활염라가 다가섰다.

 창백한 얼굴, 수염에서부터 시작해서 앞섶까지가 토해낸 피로 붉게 얼룩져 있었다. 미인요의 내단에 공격당해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한효월이 그의 형상을 보고 물었다.

 "난 괜찮아. 내단은? 내단은 어떻게?"

 묻던 그는 한효월이 손에 든 내단을 들어 보이자 전신을 떨었다.

 "드, 드디어……!"

 그는 격동을 참지 못하고 한효월의 손에 들린 내단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그것은 마음뿐, 비틀 하던 그는 다시금 선혈을 토해냈다. 심중에 격동이 일자 다시 내상이 흔들린 것이다. 그의 내상은 엄중했다.

 "조심하십시오."

 예상보다 그의 내상이 심한 듯하자 한효월이 그를 부축했다.

 "이제 목적을 달성했으니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시간을 지체하면 영기가 줄어들 겁니다."

 "그, 그렇게 하세. 종가야, 넌 그놈을 들고 따라오너라."

 한효월에게 부축을 받으며 활염라가 말했다.

 그 말에 뜨악해진 종무연이 눈을 꿈벅였다.

 "저, 저놈을 가져가잔 말이냐? 저 징그러운……."

 "뭔 소리냐? 미인요는 천지간에서 다시 구하기 힘든 약재야! 한 점도 버릴 게 없단 말이다!"

 활염라가 눈을 부릅떴다.

 "도대체 이건……."

 죽어 넘어진 미인요를 살펴보던 종무연은 몸서리를 쳤다.

 보면 볼수록 괴이한 생김이라 보면서도 도대체 이게 무슨 동물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의 얼굴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거대한 등판이었다.

 수초처럼 뒤엉킨 것은 분명히 털이었지만 죽어 넘어진 그 형상은 아무리 봐도 여자의 얼굴이라고 보이지 않았다. 그 얼굴 옆으로는 물갈퀴가 달린 발이 두 개가 있었고, 그 아래 꼬리 쪽으로 다시 발이 또 있었다. 늘어진 꼬리는 정말 길어 1장이 넘어 보였다.

 "정말 두꺼비란 말인가?"

 종무연이 어이가 없어서 눈을 크게 떴다.

 "반드시 두꺼비라고 하긴 힘들 겁니다. 이 미인요는 두꺼비와 교룡(蛟龍)의 잡종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삼목섬여(三目蟾셀)와 지둔룡(地遁龍)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어떻게 되어 노랫소리와 같은 마음(魔音)을 내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세상에 참 별일이 다 많군! 아무리 삼목섬여가 대단한 놈이라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두꺼비가 룡과 붙어먹어?"

 말을 하던 종무연은 사나운 송옥교의 눈초리에 황급히 입을 막았다.

 그들은 미인요와 함께 서하곡으로 돌아와 있었다.

 "도, 도저히…… 안 되겠군……."

 옥합에 미인요의 내단을 담아 서문운하가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던 활염라가 일그러진 얼굴로 모습을 나타냈다.

 "내상이 심해서 시술을 할 수가 없어."

 그가 가슴을 움켜쥔 채로 억지로 말했다. 문틀을 움켜쥔 그의 손이 떨고 있음이 보였다. 미인요의 내단에 당한 상세가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어, 어떻게 하죠? 시간을 지체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미인요의 내단은 다른 것과 달라, 놈의 순음지양은 주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기 중에 산화되어 버리고 말게 되오."

 활염라의 말에 송옥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럼?"

 대답 대신 활염라는 한효월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해주게."

 "제가 말입니까?"

 한효월이 눈을 크게 떴다.

 밤은 아직도 깊다. 방 안에는 약 향(藥香)이 가득하고 등잔 아래는 서문운하가 그린 듯 조용히 누워 있다.

 한효월은 난감한 표정으로 침상에 누운 서문운하를 보았다.

 겨우 벌어놓은 사흘의 시간은 이제 하루도 남지 않았다.

 그가 주입한 순양진기에 의지하여 살아 있기는 하지만 깨어 있는 시간보다는 혼수상태에 들어 있는 순간이 더 많은 그녀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잘하면 한 번 정도 더 깨어날 수가 있겠지만, 아마도 그 다음에는 다시 깨어날 수 없을 터이다.

 잠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던 한효월은 옥합을 열었다.

 거기에는 순음지양이라고 불리는 미인요의 내단이 들어 있었다.

 한효월은 그녀의 결후(結喉)를 살짝 눌렀다.

 그녀의 입술이 벌어졌다.

 한옥(寒玉)으로 만든 옥합에 들어 있던 내단이 한효월이 섭물진기에 의해서 옥합에서 슬쩍 떠올라 그녀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이런."

 한효월이 난감한 기색을 떠올렸다.

 내단이 너무 컸다.

 비록 단기(丹ッ)가 사라져 크기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그녀의 작은 입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가 진기로 겨우 밀어 넣기는 했지만 결후를 눌러도 넘어가지를 않았던 것이다.

 미인요가 살아온 세월은 거의 천 년이나 되었다.

 그렇게 오랜 세월 쌓아온 수련으로 만들어진 내단이니 그것이 입속에 들어간다고 해서 간단하게 녹지도 않는다. 원래대로 한다면 법제하여 가장 효력을 높게 해야 할 터이다. 그러나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중환자를 두고 그럴 시간은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한효월은 그녀의 입술에다 자신의 입을 댔다.

 진기로서 내단을 녹여 그녀의 입속으로 넘기려는 것이다. 밖에서 내단을 녹여 넘기려 한다면 자칫 공기 중으로 기화하여 사라져 버릴 염려가 있었다.

 그만큼 까다로운 영성(靈性)을 가진 것이 바로 그 순음지양이었다.

 입술이 맞닿자 마른 입술의 까칠한 느낌이 입술을 타고 전해진다. 가슴이 뛰는 것은 잠시, 한효월은 그녀의 입술을 누른 채 운기하여 미인요의 내단을 녹이기 시작했다. 그의 진기를 받자 잠시 꿈틀거리며 저항하던 내단은 이내 녹아버렸다.

 그 다음은 한효월이 진기로 그 기운을 밀어 넣는 작업.

 한효월의 진기와 어울린 순음지양이 그녀의 내부로 밀려 들어가자 그녀의 전신이 격하게 떨렸다. 전신을 얼음과 같이 지배하고 있는 음기와 양기가 충돌을 시작한 것이다.

 한효월은 그녀의 입술에 대고 있는 자신의 입술을 떼지 않았다.

 뗄래야 뗄 수가 없었다.

 입술을 떼는 순간, 영기가 모조리 몸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 경맥 속으로 그 기운을 모두 도인(導引)하지 않은지라 그녀로서는 그 기운들을 다스릴 수가 없는 것이다.

 하긴 도인한다고 할지라도 그 기운이 그녀의 체내에 기본적으로 자리한 선천음기(先天陰氣)와 어우러져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지금의 그녀에게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문득 한효월이 괴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그녀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대고 진기를 운행하고 있던 그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손을 움직여 그녀의 전신을 더듬고 있었던 것이다. 미약하지만 봉긋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가슴을 만지다가 부드럽게 그녀의 가슴을 감싸면서 손을 미끄러뜨려 그녀의 배를 거쳐서 아랫배까지…… 그 손길은 마치 애인의 몸을 애무하는 것과 같았다.

 설마 하니, 그가 갑자기 치한이라도 된 것일까?

 그의 손길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조금씩 더 힘을 더하는데, 괴이하게도 정신을 잃고 꼼짝도 하지 않던 서문운하가 나직한 신음과 함께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창백했던 그녀의 안색에 미미하게 혈색이 돌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반면 그녀에게 입맞추고 있는 한효월의 안색은 창백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 뚝뚝 흘러내렸다. 눈썹에 맺혔던 땀방울이 눈으로 흘러 들어가도 그는 굳은 얼굴로 끊임없이 두 손을 움직여 그녀의 전신을 만지고 있었다.

 처음 그가 만졌던 그녀의 전신은 얼음처럼 차고 딱딱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몸은 온기가 돌아왔고, 정말 여인의 몸처럼 부드럽게 변하고 있었다.

 신기한 변화였지만 실제로는 한효월이 진기의 소진을 무릅쓰고 펼치고 있는 추궁과혈의 결과였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미인요의 순음지양을 자신의 순양진기로써 다스려 그녀의 경맥으로 밀어 넣고, 그것을 경맥유주에 따라서 천천히 그녀의 전신으로 운통(運通)시킨다. 말은 쉽지만 그것은 얼음 속을 따듯한 입김으로 녹이고 들어가는 것만큼 지루하고 힘든 작업이었다.

 진기가 임맥(任脈)을 관통하자, 그녀의 몸은 더워지기 시작했고, 독맥(督脈)을 달구자 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 것은 그때부터다.

 창백했던 몸에는 핏기가 돌고, 전신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렇게 전신으로 퍼진 진기는 한효월의 이끔에 따라 다시 그녀의 단전으로 돌아갔다.

 한효월은 그녀의 단전에 댄 손에다 힘을 주었다.

 뜨거운 진기가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갔다.

 그의 인도에 따라 전신을 돌다가 단전으로 밀려 들어간 미인요의 순음지양은 그 마지막 일격에 산산이 분해되어 마치 폭발하듯이 그녀의 전신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것은 좁은 협곡을 통과하던 급류가 대해(大海)로 나온 것과 흡사했다.

 "후우……."

 마침내 한효월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들었다.

 긴 입맞춤이 끝난 것이다.

 이제 그 진기만 다스리면 대공(大功)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눈을 떴다.

 지척지간에서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나, 나는……."

 한효월이 일순 당황하여 더듬거렸다.

 막 입술을 떼는 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녀의 단전에는 아직도 그의 손이 붙어 있었고, 아직 뗄 단계가 아니었다. 진기가 완전히 안돈된 다음이라야 손을 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괴이한 일이 발생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전신이 용광로 속에 들어간 듯이 후끈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어떤 원초적인 힘이 불끈 솟아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바로 욕정(欲情)이었다.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한효월이 경악하는 순간, 돌연 그의 진기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서운 기세로 서문운하의 경맥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거대한 동공이 그를 빨아들이는 것만 같았다.

 '이건?!'

 한효월의 안색이 돌변했다.

 뿌옇게 동녘이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방 안으로 들어간 한효월은 나오지 않았다.

 송옥교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인해 거의 사색이었다.

 종무연도 연신 서성이고 있었다. 그나마 조용한 사람은 활염라뿐이었다. 그는 영단 몇 알을 복용하고 잠시 운기조식을 한 다음, 한결 나은 모습이었다. 한효월에게 치료를 부탁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생생해 보였다.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지?"

 "안 들어가 봐도 되겠어요?"

 종무연이 참다 못해 입을 열자, 거의 같은 순간에 송옥교도 입을 열어 물었다.

 "가긴 어딜 들어가? 대공을 망칠 일 있나. 시간이 된 듯하니, 밖으로 나가지."

 "바, 밖으로 나가다니?"

 종무연과 송옥교가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나가라면 나가. 자세한 것은 나가서 설명해 줄 테니까…… 여기서 신방 엿볼 일 있나?"

 이어지는 활염라 조과의 말에 두 사람은 더욱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될 수가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치료에서 갑자기 신방이 가당키나 한 말인가?

 "절…… 안으세요……."

 한효월은 그의 귓전을 파고드는 서문운하의 말에 놀라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은 이미 치밀어 오르는 욕정을 견디지 못하고 흉하게 일그러진 상황이었다. 얼굴은 홍시와 같고, 숨결은 풀무와 같았다. 그의 평소 수양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서문운하의 얼굴도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늘 창백하던 그녀의 얼굴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무, 무슨 소리요?"

 "……."

 대답 대신 서문운하는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았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그의 목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입술이 조금 벌어지면서 가쁜 숨결이 흘러나왔다.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얼굴에도 참기 힘든 욕정의 빛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별것 아닌 힘이다.

 하지만 지금의 한효월에게 그 힘은 항거불능의 절학과도 같다.

 누르고 눌렀던 욕정이 미친 듯 터져 나왔다.

 그의 얼굴이 그녀의 얼굴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입술이 미친 듯 그녀의 입술을 탐했다. 그것은 이미 치료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덜덜 떨리는 손길은 그녀의 그 엷은 침의를 휴지 조각처럼 그녀의 몸에서 걷어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입술이 마주하는 순간, 그녀의 단전에 달라붙었던 손이 떨어졌지만 언제 손이 떨어졌는지도 알지 못했다.

 거대한 불화산과도 같은 열기가 그를 휘감고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뭇등걸과 같이 윤기를 잃어버린 그녀의 몸이었었다. 여인의 그 아름다운 육체를 상상할 수 없었던 그녀의 몸이다. 누가 그런 육체를 보면서 욕정을 일으키겠는가.

 더더구나 한효월과 같은 수양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데 정작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미칠 듯한 욕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녀의 몸을 탐하다가 거칠게 그녀에게로 몸을 실었다.

 "아!"

 서문운하의 입에서 갑자기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한효월이 그녀와 하나가 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침상이 비명을 지르고 등잔불이 두 사람의 움직임에 못 이겨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깜박거렸다. 그 가운데에서 활염라가 나가면서 켜둔 작은 향로에서 피어나는 은은한 향기만이 방 안을 감싸고 있었다.

 정말 너무도 뜻밖에 시작된 정사(情事).

 그 정사는 한순간의 폭풍이 아니었다.

 거대한 해일과도 같이 음양의 파도가 두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높고도 높게 그렇게 치고 또 치고 있었다.

 그것은 놀랍게도 밤을 새고 그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다.

 은은한 저녁 노을이 서하곡에 깃들어 있다.

 서하곡의 노을은 절벽에 부딪치면서 절경을 만들어낸다.

 그 노을 속에 자리한 모옥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과 같았다.

 활염라 등의 세 노인은 그 모옥의 밖에서 눈을 멀뚱거리면서 모옥을 바라보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말도 안 돼……."

 오불관언 종무연은 연신 머리를 젓고 있었다.

 근래에 들어 보인 그의 행동을 보자면 누가 그를 일러서 오불관언, 옆에서 누가 죽어도 남의 일에 참견하지 않는 사람이 그임을 믿을 수 있으랴.

 하지만 말이 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오불관언 할아버지라도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라고, 그와 송옥교는 펄펄 뛰었었다. 그러나 활염라의 설명에 그들은 이해를 하고자 했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하다.

 정사를 시작한 지가 대체 얼마인가?

 아무리 정력이 절륜하다 할지라도, 어떻게 지난밤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밤을 샌 것도 모자라 황혼이 드리울 때까지 쉬지 않고 정사를 치를 수가 있다는 건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이젠 걱정이 되기도 하고 겁도 나는 것이 송옥교와 오불관언의 생각이다.

 "찬 바람조차 제대로 쐬지 못하던 하아인데…… 설사 정상이 되었다 할지라도, 아무리 나았다고 할지라도 그 몸으로 어떻게……."

 송옥교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모옥으로 가려 했다.

 그 앞을 막아선 것은 활염라 조과였다.

 "가서 뭘 어쩌겠다는 거요? 방으로 들어가서 둘을 갈라놓기라도 하겠다는 것이오?"

 "그럼, 이대로 있으란 건가요?"

 "이제 와서 뭘하겠다는 게요?"

 그녀의 앞을 막아선 채로 활염라 조과가 머리를 흔들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소. 어차피 모든 건 하아의 뜻이오. 당신도 알지 않소? 하아가 우리 셋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는 걸. 그 아이가 이 모든 것을 꾸민 이상, 우리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소."

 "도대체 이건……."

 송옥교는 신음을 흘렸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서문운하가 원한 일이라면 그들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병(持病)으로 인해 하루 중에 겨우 한두 시진밖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 잠시의 시간에 보이는 서문운하의 능력은 보통 사람이 며칠을 두고 고민해도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녀를 키운 그들이었지만, 그녀의 재지(才智)에는 그저 입을 벌릴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원한 일이라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것은 활염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시키는 대로 한효월의 앞에서 심한 부상을 당한 것처럼 연극을 했다.

 그리고 예정대로 한효월을 자기 대신 그녀가 있는 방으로 들여보냈다.

 그가 켜두고 나온 향로에서 타 들어가는 향은 유둔정(悠遁情)이라 불린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오랫동안 맡게 되면 체내의 기혈을 들끓게 하는 효능이 있었다. 말이 좋아서 기혈을 조장(助長)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력한 최음(催淫) 작용이 있어서 어떻게든 치밀어 오른 욕정을 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둔정이라 할지라도 한효월의 평소 수양이라면 그처럼 속절없이 무너지지는 않았을 터였다.

 거기에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납득할 수도 없는 그 장시간의 정사(情事)가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

 '난들 알겠나? 그 아이의 속을 누가 알 것인가…….'

 활염라 조과는 미간을 찡그렸다.

 생이 붙어 있는 한, 그녀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었다.

 지금까지는 그녀를 살리기 위해서 시도 때도 없이 동분서주하느라 그 약속을 지킨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도 그 약속에는 충실했었다. 그러나, 그녀가 회복되고 나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 일이다.

 참으로 오랜 정사.

 모옥 안의 두 사람은 황혼녘이 되어서야 서로를 부등켜안은 채,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쇠라고 할지라도 어찌 견딜 것인가.

 폭풍(暴風)!

 두 사람의 정사는 말 그대로 폭풍이라 불리워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무엇으로도 형용하기 힘들다고 함이 더 옳을까. 하긴 사람이 밤을 새워서, 그것도 다음날 황혼녘까지 정사를 한다는 것은 그 어떤 정력가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구나 이제 겨우 생사의 간두(竿頭)에서 겨우 목숨을 건져 올린 서문운하라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견딜 수 없을 것이었다. 더구나 남자라고는 처음 맞아들이는 처녀인 그녀라면…….

 그런데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거의 뼈에다 가죽만 씌워놓은 듯 그렇게 참혹했던 그녀는 한효월을 처음 맞아들이면서 힘에 겨워 헐떡였었다. 한효월이 맹수와 같이 돌진하면 돌진할수록 견딜 수 없어 거의 숨이 끊어질 듯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늘어진 채로 신음을 하였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달라졌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 그렇게 고통스럽던 신음 소리는 점점 열락(悅樂)에 찬 숨소리로 변해갔고 그냥 늘어진 채 한효월을 맞던 그녀의 몸에도 생기가 돌고 힘이 솟았다. 더 놀라운 것은 그것이 단순히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 자체가 변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처럼 말라 볼품이 없었던 몸에 윤기가 흐르고 살이 붙었다. 겨우 여인의 형체만 갖추고 있던 그녀의 유방이 마치 거짓말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렇게 하여 그 긴 정사의 폭풍이 끝난 황혼녘에 이르러서 서문운하는 이미 완벽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 되어 있었다. 그 오랜 정사로 인해 지쳐 떨어진 한효월의 밑에 눌린 그녀의 유방이 풍만함을 이기지 못하고 팽팽히 밀려 나올 정도로.

 땀으로 젖은 그녀의 몸은 이미 명공(名工)의 손길이 닿은 조각과 같았다.

 그렇다고 세간에 알려진 채양보음(採陽補陰)의 악독한 어떤 대법을 시행하여 그렇게 된 것도 아니었다. 만약 그렇다면 한효월은 이미 뼈만 남은 시신이 되어버렸을 터이다.

 달콤한, 아니, 정말 깊은 잠.

 한효월은 그 잠에서 깨어나다가 괴이한 느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을 움직이자 괴이한 느낌이 하체에 전해지면서 미끈하고 푹신한 느낌이 느껴졌다. 눈을 뜬 그는 지금 그가 깔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고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맙소사!'

 그처럼 총명한 그였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그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은 바로 서문운하였던 것이다. 그것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당황한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놀라 더듬거렸다.

 "나, 나는…… 이, 이건……."

 그의 어쩔 줄 모르는 태도에 먼저 정신을 차리고 있던 서문운하는 미미하게 얼굴을 붉혔다.

 "자책하지 마세요.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아!"

 갑자기 그녀가 나직이 신음했다.

 당황해서 허둥거리던 한효월이 그녀를 누르고 있는 몸을 일으키려다가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누르고 말았던 것이다.

 "미, 미안하오. 이, 이건……."

 한효월은 더욱 당황하여 허둥거렸다.

 하지만 당황해 허둥거릴수록 그의 손에 만져지는 것은 그녀의 나신이었고, 몸에 닿는 것도 그녀의 나신이었다.

 그가 어쩔 줄을 모르고 쩔쩔매자 서문운하는 오히려 웃고 말았다.

 그녀가 웃자 한효월은 순간, 멍청해졌다.

 눈앞에 수천, 수만 송이의 꽃송이가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린 듯한 착각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름다웠다.

 그냥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가히 절세(絶世)였다.

 "저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는 마세요.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고 제가 꾸민 것이니까요."

 서문운하가 말했다.

 "왜 이런 일을……."

 한효월이 나직이 신음했다.

 대강 정신을 차리자 그들은 떨어졌다.

 말만 떨어진 것이지, 실제로는 한효월이 그녀의 위에서 내려와 옆으로 누었다는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품에는 서문운하가 안겨 있었다.

 서문운하의 눈망울은 흑요석과 같이 맑고 투명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이마를 가린 그녀의 얼굴은 정말 절세라는 말 이외에는 무엇으로도 형용키 어렵도록 아름다웠다. 가뭄에 시달리던 장미가 물을 만나 꽃을 피운 것만 같았다.

 "그런……."

 한효월은 신음을 흘렸다.

 서문운하의 설명을 듣자 그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왜 자신이 그처럼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그녀에게 선불 맞은 멧돼지와 같이 달려들었던 것인지.

 "언제 알았소?"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한효월이 물었다.

 "절 치료해 주던 날이요."

 "보는 것만으로 내가 지극순양지체(至極純陽之體)임을 알았다는 것이오?"

 한효월이 믿기지 않는 듯 다시 물었다.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어요. 진맥을 해본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조 할아버지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고서 그럴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녀의 말에 한효월은 머리를 저었다.

 "당신은 참으로 무모하군. 내가 만약 지극순양지체가 아니었다면……."

 "어차피 제 선택은 그것뿐이었어요. 당신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서도 저를 위해서도……."

 서문운하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중얼거렸다.

 한효월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면서 길게 한숨 쉬었다.

 "당신은 내게 빚을 진 것이 없소……."

 "아뇨…… 나는 알고 있어요…… 당신이 나를 위해서 큰 희생을 했던 것을……."

 서문운하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잠시 잠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그녀는 너무 지쳐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병마에 시달렸던 그녀에게 있어 그 격렬한 정사는 실로 견디기 힘든 중노동에 다름이 아니었기에.

 "……."

 한효월은 자신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그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마치 백옥을 깎아 내린 듯 매끄러운 그녀의 등이 눈에 들어온다. 어젯밤의 그 서문운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할 변화다.

 한효월은 알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생긴 이 변화가 바로 자신과 그녀가 음양화합(陰陽和合)을 하면서 생겨난 음양상조(陰陽相助)에 의한 것임을…….

 한효월은 길게 탄식했다.

 "당신은 쓸데없는 짓을 했소. 지극순음지체와 순양지체가 만나서 음양화합을 하면 음양상조 작용에 의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된다는 것은 속설일 따름이오. 비록 당신이나 내게 당장 도움이야 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어찌 당신의 순결에 비길 수가 있겠소……."

 그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서문운하의 둥그런 둔부의 아래쪽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와의 정사로 인해 흘린 순결의 상징이다. 단순히 흘린 몇 방울의 앵혈(鶯血)이 아니었다. 너무도 격렬한 정사였기에 하혈을 한 듯 그렇게 흐른 선혈이 그의 눈을 쏘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오래 살 수 없는데……."

 한효월은 다시금 길게 장탄식을 하면서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그녀의 나신이 눈부시게 드러났다.

 정말 다른 사람의 몸을 보는 것만 같다.

 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맥을 살펴보았다.

 고요했다.

 이제 당분간 위험은 없을 것이다.

 잠시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던 한효월은 옆에 있는 작은 탁자에 놓인 지필묵으로 일필휘지, 몇 자를 적어놓고는 무거운 표정으로 잠든 서문운하를 바라보았다.

 "미안하오……."

 그는 길게 탄식을 하고는 방문이 아닌 창문으로 나가 버렸다.

 한 가닥 산들바람이 밖에서 불어오는가 싶더니 창문이 닫혔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둠이 방 안으로 내려앉는다.

 그 어둠 속에 잠든 서문운하의 감긴 눈에서 어느 사이 맑은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