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七首 어검지술(馭劒之術) (29/113)

第七首  어검지술(馭劒之術)

-신위를 떨치다.

적아난분하니 혼란(混亂) 속에 죽음이 숨 쉬다.

 정적(靜寂).

 풀벌레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따금 풀숲에서 꿈틀거리는 뱀들의 움직임에서 이는 소리가 들릴 뿐, 사위는 물을 뿌린 듯 고요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곡구를 주시했다.

 미지의 적이 과연 어떤 방법으로 공격을 다시 해올런는지 알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 가운데 옥면무영은 굳은 얼굴로 한효월의 앞을 지킨다.

 한효월은 그의 호법을 받으면서 눈을 내리감은 채로 운기조식에 들어가 있었다. 군웅들을 압도하여 그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무리하게 연달아 힘을 쓴 까닭에 그의 내부는 생각보다 심하게 흔들린 상태였다. 더구나 마지막에 그가 쓴 어검술(馭劒術)은 최상승의 검도이긴 하지만, 가장 공력을 많이 소모하는 무공이라 실제로 지금의 그는 검조차 제대로 들기 힘들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는 산속에서 조용히 심성을 다스려 왔으므로, 내공은 깊고도 두터웠으며 순후(純厚)해 잠시 기혈을 조절하자 날뛰던 기혈은 가라앉고 점차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마음 놓고 운기조식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효월을 지켜보고 있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군웅 중 한 사람이 돌연 미간을 찡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내 목을 움켜쥐고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옆에 있던 중년인이 의아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황 형(黃兄), 왜 그래?"

 산동성에서 무관(武館)을 경영하는 그들 둘은 일행으로서 산동성에서 이곳까지 지주귀도를 쫓아온 참이었다. 단순히 돈을 받고 무술을 가르치는 교두(敎頭)들과는 달리 그들은 나름대로의 실력을 갖추어서 산동쌍호(山東雙豪)라는, 제법 이름을 얻은 고수들이었다. 그런 만큼 그들 둘의 친분은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이 돌연 쓰러지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큭…… 가, 갑자기……!"

 먼저 쓰러졌던 쌍호 중 비룡도객(飛龍刀客) 황중국(黃仲國)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안간힘을 쓰면서 말을 하다가 입으로 거품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전신이 학질을 걸린 것처럼 부들부들 떨린다.

 마치 풍이라도 있는 사람인 양.

 "황 형! 대체 무슨 일이오? 이게…… 윽?!"

 놀라 그를 부축하던 쌍호 중 탁탑태세(托塔太歲) 권달(權達)이 목을 움켜잡은 것은 바로 그때다.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던 사람이 다시 목을 움켜잡고서 쓰러지니 그제서야 사람들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경각한다.

 "도, 도옥(毒)……!"

 목을 움켜쥐고서 바닥에 머리를 박은 권달이 쥐어짜듯이 소리쳤다.

 그 말에 군웅들에게서는 일대 소란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소란을 비웃듯이 군웅들 틈에서 몇 사람이 다시 목을 움켜쥐고서 쓰러졌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진자는 놀라 주위를 돌아보다가 갑자기 안색이 달라졌다.

 무엇인가가 소리도 없이 어둠을 뚫고서 자신을 향해 날아듦을 경각했던 것이다. 어둠 속인데다가 소란스러운 상태라서 자칫했다면 놓치고 말았을 소리였다.

 더구나 그것은 그의 배후였다.

 "누가 암습을 하는 게냐?"

 긴장하고 있던 일진자는 노성과 함께 신형을 뒤로 돌리면서 일장을 갈겨냈다. 막강한 경풍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뿐, 일진자는 팔뚝이 따끔함을 느끼고 대경했다.

 황망히 눈을 부릅뜨고 소매를 걷고 살펴보자 희미한 빛 아래 뭔가 붉은 반점이 팔뚝에 생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순간, 누군가가 일진자에게 날아들었다.

 "감히!"

 대노한 일진자가 오정개산(五丁開山)의 일식으로 장세를 일으켰다.

 하지만 상대의 무공은 놀라워 그가 채 장력을 쏟아내기 전에 그의 팔꿈치의 혈도를 점하면서 낮게 소리쳤다.

 "도장(道長)! 한효월입니다!"

 나타난 것이 한효월임을 본 일진자는 놀라 입을 벌렸다.

 "언제……?"

 한효월은 그의 말에 대꾸하기 전에 빠르게 소리쳤다.

 "독암기입니다. 기혈을 정지시키고 암기를 뽑아내야 합니다. 함부로 힘을 쓰지 마십시오."

 말과 함께 그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낭랑한 음성으로 쉬지 않고 외쳤다.

 "여러분 가운데 적의 일당이 숨어 있습니다! 모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십시오. 누구든 함부로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오해를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한효월이 별처럼 빛나는 눈빛으로 주위를 쓸어보면서 말하자, 주변의 소란은 일시간에 진정되었다.

 진정은 아니었다.

 거의 한데 몰려서 바깥쪽으로 신경을 쓰고 있던 군웅들이었다.

 하지만 이젠 서로 간에 거리를 두고서 엉거주춤한 모양이다. 서로가 서로를 잔뜩 경계하여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이 있으면 금방이라도 상대에게 손을 쓸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호 형."

 한효월이 옥면무영을 불렀다.

 "말씀하십시오, 한 대협."

 옥면무영 호일랑이 그의 옆으로 와 서면서 말했다.

 그는 자신의 뒤에서 운기조식하던 한효월이 언제 깨어나서 일진자에게로 날아갈 수 있었는지 놀라 새삼 그를 다시 보고 있는 중이었다.

 '바깥을 경계하여 주십시오. 적당을 찾아내야 합니다.'

 한효월이 전음으로 그에게 이야기했다.

 "어떻게?"

 부지중에 반문하던 그는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그런 것을 물어볼 계제가 아니었음을 경각한 것이다.

 개방의 방도에게 손짓을 하고 그가 움직이자 한효월은 바람처럼 움직여 3장여 앞에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정확하게 3명.

 "세 분은 일행입니까?"

 한효월의 물음에 그중 가운데 있는 큰 머리를 가진 40대 초반의 사내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만……."

 "세 분의 명호를 알 수 있겠습니까?"

 "왜 우리 이름을 알려는 겁니까?"

 "방금 독을 푼 사람이 세 분 중 한 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한효월의 거침없는 대답에 세 사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일시지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던 세 사람 중, 옆에 있던 날카로운 인상의 30대가 노해 소리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거요? 우리가 독을 썼다니? 우리가 독을 쓴 걸 당신이 봤다는 거요?"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면서 기세등등히 소리쳤다.

 "도대체가, 운기조식을 하던 사람이 그런……."

 "내가 운기조식을 하는 것처럼 보였소?"

 한효월이 싸늘한 얼굴로 묻는 말에 그의 얼굴은 굳어졌다.

 "그, 그럼……?"

 "암중에 누가 적과 내통하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 뒤로 물러나 있었던 거요. 내가 운기조식을 하면 그 순간만큼은 아무도 주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 그런……!"

 당황해 주춤, 한 걸음 물러났던 30대 청의인은 실태를 깨달았는지 다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 따위 누명을 씌운단 말이오? 우리 중주삼협(中州三俠)이 어떻게 해서 그런 누명을……."

 "으하하하……."

 느닷없이 터져 나온 웃음소리가 청의인의 입을 다물게 했다.

 "중주에 삼서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삼협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군. 언제 그렇게 승격을 했지?"

 바깥을 살펴보고 있던 옥면무영이 냉소를 치며 한 말.

 그 말에 청의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옥면무영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그들의 별호는 중주삼협이 아니라, 중주삼서(中州三鼠)였다.

 별호 그대로 간교하고 욕심은 많아 중주 일대에서는 암적인 존재로 일컬어졌지만, 드러나게 나쁜 짓을 하기보다는 암암리에 머리를 굴렸고 또 무공 또한 얕볼 만한 것은 아닌지라 중주 일대에서는 제법 이름이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첫째인 대두서(大頭鼠)와 독목서(獨目鼠), 교서(狡鼠)로 불리는 그들이 비록 중주일대에서 어느 정도 명성을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야 감히 큰소리를 칠 형편은 아니다.

 "세 분 다 제천교도요?"

 한효월의 물음에 청의인, 교서가 코웃음 쳤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게요? 제천교가 뭔지도 우린 모르오."

 "당연히 시인하지 않겠지."

 말과 함께 한효월은 그들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성큼 한 걸음을 내딛는가 싶은 순간에 한효월은 그들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동시에 그의 손은 쥐눈을 빛내고 있던 교서의 완맥을 움켜잡았다.

 그 속도는 놀랍기 이를 데 없어서 교서는 대경실색했다. 그는 이미 준비하고 있었음에도 한효월의 금나(擒拿)를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자 좌우에서 대두서와 독목서가 일제히 고함을 치면서 한효월을 쳐왔다.

 세찬 경풍이 한효월을 엄습했다.

 한효월의 안색이 달라졌다.

 좌우에서 공격해 온 그들 둘의 무공이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월등했던 까닭이다. 갈고리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손에서는 뼈를 깎는 듯한 음산한 경풍이 귀신의 호곡성과 같은 음향을 동반한 채로 그를 덮쳐 오고 있었다.

 "귀신조(鬼呻爪)?"

 나직이 신음을 흘린 그는 교서의 몸을 앞으로 잡아당기며 그를 그들의 공세 속으로 불쑥 밀어 넣었다.

 그들이 공세를 거두면 바로 공격해 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상황은 너무도 뜻밖.

 독목서는 자신의 앞으로 불쑥 튀어나온 교서를 피하기는커녕, 조금도 사정없이 경력(勁力)을 쏟아 그를 쳤다. 강력한 힘이 교서의 머리를 두부처럼 으스러뜨리면서 한효월을 향해서 쏘아갔다.

 너무도 뜻밖의 상황에 제아무리 한효월이라고 할지라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옆에서 달려들던 대두서의 일격이 한효월의 옆구리를 쳤다.

 펑!

 한효월이 비틀, 뒤로 물러났다.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의 눈에 경악이 튀어 올랐다.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한효월이 나타나서 지금까지 보여준 신위는 가히 만인(萬人)을 압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를 일격에 패퇴시키다니,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강호 이류에 불과한 중주삼서가!

 교서의 손을 놓고 주춤 물러나는 한효월을 향해 광소를 터뜨리면서 독목서가 갈고리와 같은 손을 휘두르면서 틈을 주지 않고 덮쳐 왔다.

 대두서도 마찬가지.

 적을 얕보다가 불의의 일격을 당하고 뒤로 물러나는 한효월은 미처 중심도 잡지 못한 상태라서 사방 여기저기에서 경호성이 일어났다.

 "멈춰라!"

 옥면무영과 대조 대사가 거의 동시에 고함치면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창졸간에 일어난 변고라서 그들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여전히 늦은 감이 있었다.

 찰나.

 "물러나지 못할까!"

 낭랑한 호통.

 그것과 함께 펑! 하는 일진 폭음이 터져 나오면서 한효월을 덮쳐 갔던 대두서와 독목서가 나직한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사람들은 한효월이 백의를 펄럭이면서 앞으로 전진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짓에 따라 독목서가 피를 토하면서 거꾸러짐을.

 둥둥둥∼

 고막을 때리는 북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둠을 뚫고서 울리는 북소리.

 그 북소리는 강하고 낮게 울려 심금을 진동하는 듯했다.

 누가 들어도 싸움이 시작됨을 알리는 전고(戰鼓)임을 경각할 수 있을 정도였다.

 "크흐흐…… 아무도 살아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때, 대두서가 큰 머리를 흔들어대면서 괴소를 터뜨렸다.

 동시에 그는 전신을 떨더니 그 자리에서 벌렁 뒤로 넘어졌다.

 장중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칠공에서 피를 흘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피하십시오!"

 한효월이 튕겨나듯이 그 자리에서 일 장여 뒤로 물러났다.

 그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주춤거렸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두서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 오름을 보게 되었다.

 "독이다!"

 누군가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놀라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두서의 전신은 아직도 푸들푸들 떨린다.

 그의 몸에서 피어 오르던 연기는 금방 옅어져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피하는 것이 늦었던 사람들은 이내 신음과 함께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바람이 부는 방향에서 이동하십시오. 독기가 바람을 따라 이동해서 큰 피해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한효월은 크게 소리치고는 경력을 일으켜 흙으로 대두서의 몸을 덮어버렸다.

 "한 대협!"

 옥면무영의 외침이 들려왔다.

 그의 외침에 고개를 든 한효월은 둥둥, 들리는 북소리 속에서 곡구 쪽에서 한 무리의 인영이 다가오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 2, 30명쯤 되어 보인다.

 어둠 속에서 그들의 앞쪽에서 음산히 빛나는 창날은 그들이 장창을 앞으로 내밀고 있음을 의미했고, 그들의 안쪽으로는 작고 둥근 방패를 하나 세워 가슴을 보호한다. 일자로 늘어선 그들은 북소리에 맞춰서 전진해 오고 있는데, 그 속도는 북소리에 따라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뒤로는 흑의인들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 움직이고 있음이 보였다. 이를테면 돌격대 뒤에서 다시 제이전(第二戰)을 준비하는 후원군인 듯했다.

 공격이 한 번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일견 그 모습을 본 한효월의 얼굴이 굳어졌다.

 상대의 의도를 짐작한 까닭이다.

 그리고 이미 한번 그들의 위력을 시험해 본 그였다.

 "피해가 큽니까?"

 한효월은 군웅들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중주삼서의 주위에 있던 군웅들 서른 정도가 이미 바닥에 주저앉아서 운기조식에 들어가 있었다. 독에 중독된 사람도 있고 암중에 암기를 맞은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공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군요. 아무래도 이건 산공독(散功毒)인 모양이외다. 생명에 위협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운기조식으로 내부를 점검하던 군웅들 중 청색 가사를 입은 노니 한 사람이 그 물음에 대답했다.

 "아미(峨嵋)의 각진 사태(覺眞師太)이시구료! 언제 거기에?"

 그녀를 발견하고 소리치던 일진자가 문득 안색이 변해 신음했다.

 "이런, 빈도도 공력이 감퇴되고 있소……."

 둥둥둥∼

 북소리는 점점 더 급박해졌다.

 물밀듯 다가오는 장창학익진(長槍鶴翼陣)은 이미 군웅들과 3장가량 떨어진 곳에 도달해 있었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 순간에는 질풍과 같이 군웅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이런 육시를 할 놈들!"

 군웅 중 몇 사람이 분기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멈추십시오!"

 한효월이 그들이 날아감을 보고 놀라 저지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적진에 부딪쳐 간 다음이었다.

 쨍쨍, 하는 격돌음이 터지는 순간에 구슬픈 비명이 꼬리를 물고서 일어났다.

 마주 달려간 사람들의 공력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하지만 장창학익진과 마주친 순간,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은 거의 손도 써보지 못하고 산적(散炙)처럼 장창에 꿰이고 말았다.

 단순하게 창만 앞으로 내밀고 달려오는 것이 아니었다.

 한 조는 창을 찌르고 한 조는 창을 거두고 그 단순한 동작이 놀라운 속도로 반복되는데, 그 단순한 동작에 속도가 더하자 가공할 위력으로 나타났다. 앞선 장창을 검과 도로써 쳐낸 군웅들 셋은 이내 공격해 오는 장창에 허둥거렸고, 그 뒤를 따라 다시 쏘아지는 장창에 밀려났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장창학익진은 진형이 묘하게 흔들리면서 계속 빠른 속도로 앞으로 전진했고 그 질풍 같은 전진 속도는 장창의 공격에 맞물려서 경이(驚異)할 위력을 발휘했다.

 찰나간에 서너 차례의 격돌이 일면서 한순간, 자세가 흐트러진 군웅 한 사람의 가슴을 장창이 꿰뚫었다.

 "으악!"

 같이 덮쳐 갔던 사람이 그 비명에 놀라 멈칫하는 순간에 그의 가슴에서 피가 튀었다.

 그는 노호하며 전력을 다한 일장을 앞으로 때려냈다.

 그 공격을 장창수들은 손에 든 묘한 생김의 둥근 방패로 막아냈다.

 그리고 그 순간에 제이진의 장창이 그를 사정없이 꿰뚫어 버렸다.

 피가 튀고 장창이 그들의 등을 뚫고 튀어나왔다.

 단숨에 핏덩이가 되어 장창에 걸린 그들을 방패로 쳐 날리면서 그들은 바람과 같이 한효월 등이 있는 곳으로 전진해 오고 있었다.

 무슨 거대한 검은 벽이 굉음을 울리면서 전진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언뜻, 군웅들의 눈에 공포의 빛이 떠올랐다.

 너무도 어이없이 그들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놈들!"

 고함과 함께 옥면무영이 수중의 몽둥이를 휘둘러 이미 지척으로 다가온 장창수 전위(前衛)의 손에 들린 장창을 쳐갔다.

 탕탕탕!

 잇단 격돌과 함께 개방의 타구봉(打狗棒) 비전절기가 펼쳐졌다.

 그처럼 질풍같이 밀려오던 그들의 기세가 주춤거리는 듯했다.

 그러자 진세가 변화를 일으켜 일자로 늘어섰던 그들이 엇갈리면서 찰나간에 두 겹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후위로 밀려난 자들이 장창을 불쑥 내밀었다. 순간, 앞에 있던 자들이 뒤로 물러났다.

 공격해 들어가던 옥면무영은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장창을 향해서 몸을 던진 꼴이 되었다.

 '이런……!'

 옥면무영의 안색이 돌변했다.

 "무량수불…… 물러나지 못할까!"

 쩌렁한 호통과 함께 옆에서 검광이 날아들었다.

 쨍쨍! 째앵…….

 불똥이 튀며 금속성이 고막을 찔렀다.

 날아든 것은 일진자를 비롯한 무당파의 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안색이 변할 수밖에 없었다.

 대저 어떤 것이나 창의 무게 때문에 창을 지탱하는 창대는 나무와 같은 걸로 하게 마련이다. 창 자체의 길이가 긴 까닭이다. 그런데 저들이 든 창은 창대도 쇠였다. 그러한 병기가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니 그 위력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아미타불! 여기도 있네!"

 대조 대사가 선장을 휘두르면서 맞아 나갔다.

 선장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중병기인데다, 대조 대사의 선장은 빈철인지라 위에서 아래로 내려 패게 되자 배산도해(排山倒海)할 위력이 있었다. 더구나 그 일격은 소림사의 절기인 복마장법(伏魔杖法)으로 마귀를 꿇게 하는 위력을 가진 것으로 이름 높은 것이었으니 더하다.

 장창진은 처음으로 주춤거리는 듯했다.

 하나 그것도 잠시, 무당고수들과 보조를 맞춰서 옥면무영의 위기를 구해내며 기세를 떨치던 대조 대사 등의 소림고수들의 공격은 채 몇 초가 가기 전에 위력을 잃고 말았다.

 장창수들의 뒤에서 암기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신음과 함께 여기저기에서 암기에 맞은 사람들이 쓰러졌다.

 "독이다!"

 날아든 암기를 선장을 휘둘러 쳐내던 대조 대사가 돌연 고함을 질렀다.

 대조 대사의 고함은 단순히 암기에 독이 묻어 있다는 뜻이 아니었다.

 암기에 맞지 않은 사람들이 비틀거림이 그를 증명한다.

 장창수들의 뒤에 선 흑의인들은 단순히 암기를 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중 누군가가 암중에 독을 살포하고 있었다. 미미하긴 하지만 바람이 군웅들을 향해 불어오고 있는 상태였다.

 그야말로 독풍(毒風)을 몰고 덮쳐 오고 있는 상황.

 바로 그 순간, 낭랑한 긴 부르짖음 소리가 하늘을 뚫고 울린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듯하다.

 부지중에 머리를 든 사람들은 어둠을 가르며 흰빛 한줄기가 장창수들에게로 쏟아져 내리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효월.

 한효월은 창룡음(蒼龍吟)을 터뜨리면서 훌훌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 내렸고 그의 손에서 일어나는 검광은 눈이 부셨다.

 그가 하늘에서 덮쳐 내림을 보자 장창수들은 일제히 장창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순간, 한효월의 신형이 그들에게로 덮쳐 내려 격돌했다.

 챙! 채애앵…….

 귀청을 찢는 금속성이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악!"

 "으아아……."

 그리고 피보라와 함께 뒤를 잇는 참혹한 비명.

 사람들은 또 한 번 대단한 광경을 봐야 했다.

 마치 철벽처럼 버티던 그 장창들이 빛나는 검광 앞에서 무쪽과 같이 잘리는 광경을. 이쪽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던 그 괴이한 방패마저도 산산조각 나 흩어지는 광경을…….

 백룡(白龍) 한 마리가 흑암(黑暗)의 물속에서 용솟음치는 듯한 형국이었다. 한효월의 일검 일검은 마치 벼락이 때리는 것과 같은 위력으로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둥둥둥∼!

 일자로 늘어섰던 장창수들이 북소리에 맞춰서 급히 진세를 원형으로 돌려 한효월을 포위하고자 했다.

 그러나 한효월은 그들이 마음대로 움직일 틈을 주지 않았다.

 그는 검은 비단 폭을 째고 나가는 빛나는 가위와 같이 흑의의 장창수들을 헤치며 그 뒤에서 손을 쓰고 있던 자들 중 하나에게로 덮쳐 갔다.

 한효월이 그처럼 기세등등히 덮쳐 갔지만, 그 흑의인은 전혀 거리낌없이 손을 뻗어 한효월을 가리키면서 고함치듯 소리쳤다.

 "쓰러져랏!"

 "쓰러질 것은 바로, 너다!"

 말과 함께 한효월은 크게 웃으며 그를 덮쳤다.

 "으악!"

 검광이 크게 일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흑영 하나가 혼비백산하여 뒤로 급급히 물러나고 있었다.

 한효월이 검을 빗겨 든 그 자리에는 주인 잃은 검은 옷의 팔뚝 하나가 아직도 살아 있는 듯이 펄떡거린다.

 바로 그 흑영의 팔뚝이었다.

 그러나 한효월은 일거에 적을 패퇴시키고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 적을 공격해 가지 않았다.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들리면서 흑의인들은 장창수를 포함하여 모두가 썰물 빠져나가듯이 뒤로 물러났다.

 "한 대협? 괜찮으십니까?"

 옥면무영이 달려오면서 물었다.

 "괜찮소."

 한효월은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일방 그에게 날아드는 전음지성.

 '적이 완전히 물러간 것인지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한효월의 물음에 옥면무영은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신중한 표정으로 일대를 관찰했다.

 바로 그 순간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후후후…… 과연 대단하군! 검으로 펼치길래 건곤무왕의 뇌정도임을 차마 알아보지를 못했었군 그래……."

 …….

 한효월은 대꾸없이 묵묵히 그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살아가지 못한다…… 항복하기 전에는."

 예의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동평후, 당신인가?"

 한효월이 물었다.

 …….

 잠시 침묵, 이내 음산한 웃음소리가 깔리듯이 들려왔다.

 "역시 다녀간 건가?"

 한효월은 대답 대신 되물었다.

 "우리 모두를 다 죽일 셈이오?"

 지체없이 대답이 들려왔다.

 "전혀. 항복한다면 누구도 죽지 않는다. 반항한다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너희들은 이미 모두가 중독되었다. 지금의 공격은 그저 반항하면 죽게 될 것임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을 따름이다."

 "중독?"

 "그럴 리가?"

 웅성거림이 군웅들에게서 일어났다.

 그들이 그처럼 연달아 공격을 하고, 독을 뿌려대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약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한 순간순간을 넘기면서도 나름대로 침착히 대처하여 예상외로 그렇게 심각한 타격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거기에 한효월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던 것은 누구도 부인치 못할 일이긴 하였지만.

 그런데 모두 중독이라니?

 "흐흐흐…… 멍청한 자들. 이 자리가 함정임을 알고도 거기 모여 있으면 안전할 걸로 믿는단 말인가? 설마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너희들을 이리 끌어 모았을 것으로 믿는다면 정말 한심한 노릇이지."

 조소(嘲笑) 가득한 웃음이 어둠을 뚫고서 음산하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본다.

 "으으…… 저, 정말 중독된 것 같은데?"

 눈치 빠르게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 있던 군웅들 가운데 화복의 중년인이 일그러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메기수염에 두툼한 얼굴의 그는 두 명의 종자를 거느리고 있는데, 누가 봐도 부잣집 주인처럼 사람 좋아 보이는 모습인지라 이곳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가 이름 높은 중원삼고(中原三賈) 중 하나인 철면무정(鐵面無情) 곽자고(郭自孤)임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하지 않는 사람. 그까지 이곳에 와 있으니 진시황의 장보가 사람을 불러 모으는 마력을 가진 것은 사실임에 분명하였다.

 그가 품속에서 옥병 하나를 꺼내 뭔가를 먹고 있는 것을 보자 군웅들은 다급히 스스로를 점검했다.

 "어떠시오?"

 한효월이 옥면무영을 보면서 물었다.

 "나는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우리 개방의 호구단(護狗丹)을 먹고 왔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별다른 증상을 모르겠군요. 한 대협은?"

 "나는 독에 대해서 약간의 내성(耐性)을 가지고 있어서……."

 말을 하던 한효월의 얼굴이 문득 창백해져 있음을 옥면무영은 볼 수 있었다.

 "한 대협!"

 "괜찮소."

 그를 향해 웃어 보인 한효월은 낮게 말했다.

 "모두 스스로를 점검해, 중독 여부를 판별하십시오. 곧 참혹한 일장의 악전(惡戰)이 전개될 겁니다."

 그의 음성은 낮았지만 장내에 있는 백여 명 군웅들의 귀에는 옆에서 속삭이듯이 아주 또렷이 들렸다.

 그리곤 한효월은 굳은 얼굴로 곡구를 바라보면서 입을 다물었다.

 그때, 예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일각의 시간을 주겠다……. 항복하는 자는 살려줄 뿐 아니라, 각자의 능력에 맞게 최고의 대우로써 맞아들인다."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하지만 한효월은 그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듯 침착한 얼굴로 곡구를 바라보면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따름이었다.

 둥둥둥……. 어둠을 흔들며 북소리가 기괴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 재촉하는 듯한 불편한 북소리였다.

 옥면무영의 얼굴은 납덩이와 같았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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