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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首 청천벽력(靑天霹靂) (3/113)

第一首  청천벽력(靑天霹靂)

-하늘이 무너지다.

세상이 온통 암흑(暗黑)으로 가득 차다.

 한 사람이 누워 있다.

 꽉 다문 입매의 한일 자 속에는 한(恨)이 서린 듯하고, 부릅뜬, 굳어버린 두 눈에는 아직도 못 다한 말이 가득 차 있다. 

 움켜쥔 손에서는 금방이라도 선연(鮮然)한 피가 배어날 듯한데,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평생을 남을 위해, 천하를 위해 살던 그는 가슴에 가득 찬 그 많은 말들을 하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할 말이 없음도,

 할 말이 너무 많아 말문이 막히었음도 아니었다.

 관(棺).

 최고급 서역(西域)의 침향목(沈香木)으로 만들어진 관. 

 그가 누워 있는 곳은 바로 그 관 속이었으며, 관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이 그는 이미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자(死者)!

 그러했다.

 그는 돌아왔다.

 건곤무적 독고해.

 그가 돌아온 것이다.

 지난 날 그가 이룩했던 그 숱한 신화(神話)들을 관이라는 죽음의 너울 속에 깔고 그 위에 몸을 눕힌 채 돌아온 것이다.

*   *   *

 때는 명초(明初).

 성군(聖君)과 폭군(暴君), 

 그리고 영웅(英雄)과 효웅(梟雄)의 양면성을 함께 가지고 있다는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몽골의 원(元)을 멸하고 

 대명(大明) 284년의 기초를 확립한 직후. 

 병란으로 인해 어지러웠던 중원천하는 연왕(燕王) 주체가 태조 홍무제의 손자이자, 

 자신의 조카인 혜제(惠帝) 건문제(建文帝)를 몰아내고 명의 제3대 황제인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로 등극하면서 안정을 되찾기 

 시작할 때였다.

 얼어붙었던 대지가 안정된 정국을 말해 주듯 서서히 봄의 기운으로 풀려갈 무렵.

 낙양(洛陽).

 중국의 사대서울 중의 서경(西京)이자 하남성(河南省)에 위치한 역대 구조(歷代九朝)의 수도였던 고도(古都), 

 앞으로 낙수(洛水)를 끼고 북으로는 공동묘지로 말미암아 죽음의 대명사가 된 망산(邙山)을 등진 낙양은 그 역사가 말하듯 중원 

 육대고도의 하나이다.

 천험의 요새지이며 또한 문화의 중심인 이곳에는 중국 최고(最古)의 사찰인 백마사(白馬寺) 등을 비롯한 수많은 명승고적이 산재해 

 있다.

 지난날 진(晉)의 좌사(左思)가 삼도부(三都賦)를 지었을 때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그것을 베끼느라 낙양의 종잇값이 올랐고, 

 그로 인해 낙양지가(洛陽紙價)라는 말이 생겨난 고사(故事)는 너무도 유명한 일이다.

 그 낙양의 남단(南端) 대로의 끝에 거대한 장원(莊院) 하나가 웅대한 기세로 솟아 있음이 보인다.

 운남대리석(雲南大理石)으로 된 위엄으로 무장한 돌사자 한 쌍이 문루의 좌우에 산악과 같이 버티고 서 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치솟은 문루(門樓), 

 그 문루에 이르는 길은 눈보다 더 흰 백석(白石)이 마차 두 대가 나란히 달릴 넓이로 깔려 있었다. 

 그 백석로(白石路)의 좌우에는 날렵한 흑색 무복을 착용한 무사들이 흑과 백의 대조를 이루며 정연히 늘어서 있으니, 

 누구라도 이곳이 평범한 곳이 아님을 쉬 느낄 수 있었다.

 <천하무림맹총타(天下武林盟總陀).>

 문루에 대문짝만하게 행서로 춤추고 있는 현판의 글씨, 그것은 이곳이 어디임을 웅변하고 있다.

 그러했다.

 이곳이 바로 천하무인들의 결맹(結盟)인 무림맹인 것이다.

 -무(武)로써 천하의 평화를 지키고, 무로써 심성(心性)을 단련한다!

 그러한 기치를 걸고 일어나 혼탁한 무림천하를 반석과 같은 안정 위에 올려놓은 천하무림맹.

 영웅대협(英雄大俠)이라 존칭되는 건곤무적 독고해가 맹주로 존재하는 천하무림맹은 당금 천하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었고, 실제로 무림천하는 그로 인해 지난 20년 간 평화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천하무림의 중심이라고 알려져 있는 이 천하무림맹의 총타에는 평소와는 달리 침중한 기운이 은연중에 깔리고 있었다.

 요소요소에 드러나지 않게 삼엄히 깔린 암중의 경비는 지금 이곳에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취의청(聚議廳).>

 천하무림맹 총타의 중앙에는 강렬한 인상으로 솟은 3층의 누각이 서 있다. 

 취의청이라 불리는 이곳은 바로 천하무림맹의 정전(正殿)이며 천하무림의 대소사가 논의되는 무맹(武盟)의 심장부였다.

 이미 이경(二更)이 넘어가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취의청에는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다.

 그것은 지금 취의청 안에서 무엇인가 중대한 일이 논의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침중한 분위기.

 사방 십여 장에 이르는 취의청 안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질식할 듯, 숨이 막히는 침묵으로 무겁게 짓눌려 있었다.

 고아(古雅)한 기품이 느껴지는 사위(四圍)의 장식 가운데, 대청의 중앙에는 보기에도 당당한 태사의 하나가 놓여 있다.

 그 태사의는 비어 있었고 그 단 아래에는 수십 개의 고풍 어린 의자가 두 줄로 놓여 있는데 지금 거기에는 십여 명이 앉아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중년을 넘긴 그들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세월의 중후함과 경륜(經綸), 그들이야말로 바로 당금 천하무림맹의 수뇌들이었다. 

 무림의 대국(大局)을 이끌어 나간다고 일컬어지는 고인(高人)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안색은 더할 나위 없이 참담히 굳어 있었다.

 …….

 숨 막히는 침묵 속에 빈 태사의에 집중되었던 중인들의 시선이 서서히 한 사람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는 의외에도 갓 30대.

 호목용자(虎目龍姿)에 당당함을 갖춘 흑의무복(黑衣武服)의 그는 패왕신도(覇王神刀) 감천형(甘天炯)이라 불리웠다.

 바로 당금 무림맹의 맹주인 건곤무적 독고해의 대제자(大弟子)이자 천하무림맹의 총당주(總堂主)라는 막강한 신분을 지닌 실력자.

 기라성 같은 천하무림맹의 고수들 중에서 갓 서른의 나이로 총당주가 되었음은 단순히 사부의 후광을 힘입은 것이 아니라 그의 

 능력이 간단치 않음을 웅변하는 것에 다름이 아니었다.

 냉철(冷徹)과 대범(大凡).

 이것이 그를 대변한다.

 중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임을 의식한 패왕신도 감천형의 입술이 천천히 정적을 깨뜨렸다.

 "이 변고는……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여러분들께서는 대책을 개진(開進)해 주십시오."

 억눌린 그 음성은 비통으로 떨리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으-음……."

 패왕신도 감천형의 음성이 떨어지자 모두의 입에서 약속이나 한 듯이 장탄식과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때 백발이 성성한 우측의 청색 유삼의 노인이 가볍게 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맹주 유고 시 권한 대행은 부맹주에게 있으나, 지금 무맹의 부맹주인 화산파(華山派)의 장문인(掌門人) 진자양(陣子陽), 

 진 부맹주는 화산의 비전절학(秘傳絶學)을 연마하기 위해 폐관하여 현재 무맹 내에 있지 않으니 우선은 감 총당주가 당금의 상황을 

 주지해 대책을 논의함이 옳을 것 같소."

 패왕신도 감천형의 안색에 난색이 떠올랐다.

 "말학후진인 소생이 어찌……."

 그의 말은 청삼노인에 의해 중단되고 말았다.

 "지금 상황은 지난 이십 년래의 최대 변고이며 위기외다. 총당주는 사양할 계제가 아니오! 여기에 반대하는 분이 계시오?"

 그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천하무림맹의 십이장로 중의 수석장로(首席長老)인 천외유자(天外儒子) 곽도광(郭道廣)이라서가 아니라 모두가 그의 말에 

 이의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평소 패왕신도 감천형의 신망(信望)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하기에 그는 화산파의 젊은 장문인 육합무적검(六合無敵劒) 진자양과 함께 다음 대 무림맹주감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패왕신도 감천형은 천천히 숨을 토해내었다. 

 사양할 계제가 아님을 알고 있기에.

 "미거한 소생을 아껴주시니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 더 이상 사양치 않고 진 부맹주께서 귀맹(歸盟)하실 때까지 여러분들의 

 도움을 받겠습니다."

 그의 음성은 침통한 가운데 절도가 있어 좌중은 모두 암암리에 고개를 끄떡였다.

 '독고 맹주의 제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용과 범 같은 인재들이니, 과연 그 사부에 그 제자…… 하지만 이제 그가 없으니…….'

 그 광경을 보고 천외유자 곽도광은 내심 고개를 저었다.

 그때, 떨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감 총당주는 다시 한 번 그때의 상황을 말해 주시오. 이 일은 정말 믿을 수가 없소."

 60대 초반의 회포노인.

 그는 무림맹의 형당당주(刑堂堂主)인 철심무정(鐵心無情) 공손도(公孫都)였다.

 정사 중간의 사람으로 알려진 그는 건곤무적 독고해의 인품에 감복하여 무맹에 들어와 공평무사한 일 처리로 죄지은 자들에게는 

 염라대왕과 같은 존재였다.

 패왕신도 감천형은 무겁게 고개를 끄떡였다.

 "처음 소식을 전한 것은 순찰당의 당주인 좌백(左白)이었습니다."

 천수단혼(千手斷魂) 좌백.

 그는 건곤무적 독고해의 세 제자 중 둘째로서 세심한 성품에 침착함으로 이름 높은 암기(暗器)의 달인이다.

 그러나 평소 그처럼 침착 냉정하던 천수단혼 좌백이 사색이 되어 벌벌 떨면서 패왕신도 감천형에게 달려왔을 때, 

 감천형은 도저히 그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침 저녁을 먹고 있던 그는 입에 들었던 음식물을 뱉어내고 문을 박찼다.

 그가 도달한 곳은 취의청 뒤에 있는 대한각(大瀚閣). 맹주인 독고해가 집무를 하던 곳이다.

 한달음에 그곳에 도달한 감천형은 거기에서 검은 관(棺) 하나를 발견하고 전신이 얼어붙은 듯 굳어지고 말았다.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관 속에 몸을 누이고 있는 인물, 그는 바로 세상에 건곤무적 독고해로 알려진 그의 사부였던 것이다.

 꽝!

 벼락이 머리를 갈겨도 이러한 충격은 아니리라.

 패왕신도 감천형은 전신이 나락으로 떨어짐을 느끼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죽다니, 그분이 돌아가시다니-

 당금 천하의 제일고수라고 불리던 그가 죽다니, 누가 이것을 믿을 수 있으랴!

 "사부님의 시신은 처참했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가슴에 맞은 일장으로 그것으로 인해 사부님의 심맥은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으며, 소생의 식견으로써는 도저히 그 장공(掌功)의 내력을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노부도 그 장공의 내력을 알아볼 수가 없었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중원도상(中原道上)의 무공은 아니라는 정도……."

 천외유자 곽도광이 감천형의 말을 보충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그는 나이 백 세에 이르는 무림의 원로로서 그 식견의 박대함은 주지의 사실이었으므로 그의 말은 상황을 더욱 미궁으로 몰고 

 들어가는 느낌을 주기에 족했다.

 천하무림맹의 맹주인 건곤무적 독고해.

 그는 실로 당대의 영웅이었으며, 나이 스물에 무림에 출도하여 그가 천하를 위해 세운 공적은 그야말로 찬란한 

 금자탑(金子塔)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중원무왕이라고까지 불리웠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 그가 맹주부를 떠난 지 석 달여 만에 시체로서 관 속에 누워 돌아온 것이다.

 그것은 실로 강호천지가 뒤집히고도 남을 대사건이었다.

 누가 그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맹주님의 시신은 어떻게 맹주부까지 오게 된 것이오?"

 형당당주인 철심무정 공손도가 비통한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좌 사제의 말에 의하면 사부님의 시신은…… 한 필의 노새가 끄는 낡은 달구지에 실려 끄는 사람도 없이 본 총타에……."

 대답하던 패왕신도 감천형의 안색이 서리가 내린 듯 차갑게 굳어졌다.

 "그것은 사부님의 시신마저도 능멸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고, 또한 천하무림맹을 조롱하는-"

 "그들이 대체 누구란 말이오!"

 으르릉거리는 소리가 대청을 뒤흔들었다.

 격분을 참지 못하고 감천형의 말을 중단시킨 것은 땅딸보의 노인이었다.

 초미노인(焦眉老人) 구열(邱烈), 천하무림맹 십이장로 중 하나인 그는 급한 성격으로서 유명하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단서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흉수는 대담하게도 사부님 시신을 맹주부로 보내면서도 일말의 

 단서조차 남겨놓지 않았습니다."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시급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사부님의 피살을 강호무림에 과연 알려야 하는가와 다른 하나는 사부님을 암살한 

 흉수의 정체를 밝히고 그를 잡는 일입니다."

 "으-음……."

 좌중에서 다시 답답한 한숨 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건곤무적 독고해가 무림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가히 태산(泰山)!

 그런 그의 돌연한 죽음은 강호의 안녕을 뿌리째 뒤흔들어놓을 대변고라 할 것이었다.

 누구라도 이 상상치 못한 청천벽력을 맞이하여 단번에 수습 방안을 생각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무거운 침묵만이 바늘이 떨어져도 울릴 정적 속에 흐르고 있자 감천형은 다시 입을 열었다.

 "소생의 생각으로는 일단 사부님의 피살 소식은 강호상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서 발표를 유보하고 구대문파를 비롯, 몇 분의 

 강호명숙(江湖名宿)께 비밀리에 이 사실을 통보하여 대책을 협의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의견을 개진하여 주십시오."

 말을 마친 감천형은 가라앉은 눈으로 좌중을 돌아보았다.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벼운 기침 소리와 함께 천외유자 곽도광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총당주의 의견이 가장 적당할 것같이 생각이 되오."

 감천형은 사람들이 묵묵히 고개를 끄떡여 동의의 뜻을 표함을 보고 말했다.

 "그렇다면 각 파에 일단 이 사실을 통보하고 그동안에……."

 문득, 감천형은 입을 다물었다.

 동시에,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들리며 문 앞에 흑의를 걸친 24, 5세가량의 청년이 나타났다.

 "이 사제(二師弟), 무슨 일이냐?"

 그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보고 패왕신도 감천형은 가슴이 섬뜩해서 물었다.

 나타난 사람은 바로 무림맹 순찰당(巡察堂)의 당주이며 그의 사제인 천수단혼 좌백인 것이다.

 그의 침착함은 정평이 나 있는데 밖을 경계하던 그가 이토록 다급히 안으로 달려 들어왔으니, 

 때가 때인만큼 감천형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소림(少林), 무당(武當), 양 파의 장문인들께서 수행제자 몇만 거느리고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이어지는 천수단혼 좌백의 말에 감천형은 물론, 좌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안색이 대변했다.

 소림, 무당은 구대문파를 대표하는 양대거목이다.

 이들 양파의 장문인들은 극히 존귀한 신분으로 산문(山門) 밖으로 출입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한데 이 야밤에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무림맹으로 찾아들다니…… 누구라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고 있느냐?"

 감천형의 물음에 천수단혼 좌백은 괴이한 표정으로 답변하였다.

 "그것이…… 맹주님의 피살 소식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음-?"

 그의 말과 함께 좌중에 있던 사람 모두의 안색이 돌변했다.

 '사부님의 시신은 어젯밤 술시초에 본부에 도착했는데 소림, 무당의 장문인들이 어떻게 그것을 알고 벌써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감천형은 물론, 중인들의 가슴속에서 그러한 의혹이 뭉게구름과 같이 일어났다.

 하지만 감천형은 다음 순간에 냉정을 회복하고 급히 말했다.

 "속히 가서 두 분 공봉(供奉)을 모셔 오너라. 아니, 같이 가자!"

 구대문파의 장문인 아홉 명은 천하무림맹의 구대공봉(九大供奉)을 맡고 있었다.

 그가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다시 인영 하나가 다급히 나타난 것은.

 "무슨 일이오?"

 나타난 사람이 순찰당의 제이부당주인 비룡객(飛龍客) 나곤(羅昆)임을 본 천수단혼 좌백이 물었다.

 오늘의 천하무림맹 맹주부는 맹주의 유고로 인하여 삼엄한 경계망이 펼쳐져 있었으며, 

 그에 따라 순찰당의 전 인원은 명을 받지 않고서는 제자리를 이탈치 못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자리를 떠 이곳까지 달려오다니?

 비룡객 나곤은 급히 예를 갖추며 쏟아내듯 말했다.

 "아미파(峨嵋派)의 수좌장로(首座長老)이신 각등 상인(覺登上人)과 청성파(靑城派)의 청성칠자(靑城七子) 등 세 분 

 도장(道長)들께서 수행제자들과 함께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

 중인들은 말을 잃었다.

 이것은 장난이나 우연이 아니며, 필유곡절이었다.

 "그분들도 맹주님의 소식 때문에 오셨던가?"

 패왕신도 감천형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마 그런 것 같습……."

 하나 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듯 비룡객 나곤의 대답은 제대로 듣지 않고 취의청을 나서고 있었다.

 뭔가…….

 무엇인가가 무림맹주의 죽음과 함께 벌어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막 취의청 문을 나서려던 감천형은 흠칫 앞을 바라보았다.

 한 사람이 날듯 전정(前庭)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둠 속이라 하나 감천형은 그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맹주부의 경비를 맡은 호맹위대(護盟衛隊)의 수장(首長)인 철적신검(鐵笛神劒) 호천성(胡千誠)이었다.

 철적신검 호천성은 감천형의 앞에 이르러 급히 공수(拱手)해 보였다.

 "누가 또 도착한 것이오?"

 감천형의 물음에 철적신검 호천성은 흠칫하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곤륜파(崑崙派)의 속가장문인(俗家掌門人)이신 운룡대협(雲龍大俠) 고진추(古眞鄒), 고 장문인께서 곤륜 장문인 

 옥허 도장(玉虛道長)의 명을 받들고 비밀리에 방금 맹주부에 도착하셨습니다."

 패왕신도 감천형은 말이 없다.

 그뿐 아니라 그의 뒤를 따라나오던 천수단혼 좌백과 비룡객 나곤도 멍청한 빛이 되어 안색을 납덩이같이 굳히고 그의 뒤에 서 

 있었다.

 …….

 감천형은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삼월의 밤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으며 뭇 성좌(星座)들만이 은가루를 뿌린 듯 반짝이고 있었다.

 '다른 곳은 치지도외하더라도 곤륜파가 있는 곤륜산은 구대문파 중에서도 가장 먼 곳으로 낙양에서 만여 리 이상이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 그 곤륜파에서마저 사람이 도착했다. 그것도 다른 파들과 거의 같은 시각에!'

 패왕신도 감천형은 숨을 크게 들이켰다.

 움켜쥔 손이 손바닥을 파고들어 우드득 소리를 냈다.

 '이것은 적의 농간이다! 사부님의 죽음을 이용해 강호상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시키려는…….'

 감천형의 눈에서 날카로운 한망(寒芒)이 일어났다.

 '원하는 대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감천형의 피가 끓고 있는 한은…… 사마(邪魔)의 무리가 무림을 어지럽히는 것을 두고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입을 한일 자로 꽉 다물었다.

 감천형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어둠 속을 걷고 있는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보이지 않는 적(敵)에의 도전이었다.

 그의 머리 위에는 천천히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맑게 개었던 밤하늘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의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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