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9 章 人間 이상의 능력자들
순간 혈뇌마겁은 아주 차갑게 웃었다.
“후훗...... 그렇다면 일백만의 초극강고수를 더하면 이 승패는 어떻게 될까, 갈무좌?”
“무...... 무슨......?”
갈무좌의 안색이 찰나지간 새파랗게 변했고, 혈뇌마겁의 손이 허공에서 가볍게 부딪쳤다.
짝! 짝! 짝!
순간 보라!
폭우 속을 비집고 솟아오르는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인영들......!
스스스스― 슷!
쉬이이― 익!
츠으으...... 으으.......
그들의 가슴에는 모두 두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천왕(天王)>
바로 천왕제군대척의 고수들이었다.
갈무좌의 안색은 이내 푸르르 경련을 일으키며 시커멓게 퇴색되고 말았다.
“천왕제군대척의......? 그...... 그럼 혈뇌! 네놈은......!”
“후훗.......”
혈뇌마겁은 문득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얼굴을 쓰윽 문질렀다.
순간 아주 아름다운 사내의 용모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무좌와는 극적으로 비견되는 차갑고 야수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서생의 얼굴.
붉디붉은 입술에는 고졸하고도 퇴폐적인 미소를 물고 있는 자.
갈무좌의 입술이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네...... 네놈은 대륙천자 혁리혼―!”
벌떡!
그는 얼마나 놀랐던지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으으...... 네...... 네놈이...... 기어코......!”
갈무좌는 이를 갈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는 앙천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하하하핫핫핫...... 핫...... 좋아! 좋아, 네놈을 아예 이 자리에서 목을 잘라 개에게 주고 말겠다! 혁리혼―!”
혈뇌마겁.
아니,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혁리혼이었을 뿐인 야수 같은 자.
그는 차게 웃고 있었다.
“너는 말을 잘못했다, 갈무좌......! 여기에 목을 내놓을 자는 바로 너다!”
순간 갈무좌는 살무사와도 같은 음악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흣...... 너는 본좌와 백팔천마의 능력을 믿지 않는군.”
이어 그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백팔천마!”
순간 백팔천마는 그 뻣뻣한 허리를 급격히 접었다.
“마존이시여! 하명하십시오.”
우르르르― 릉!
우릉.......
대전과 공간을 모조리 박살내고 말 듯한 엄청난 우레음!
‘강하다!’
혁리혼의 안색이 조금은 굳어 버렸고 그 순간 갈무좌는 아주 냉혹한 기운을 입에 짓잡아 물었다.
“모조리 도륙해 버려라! 한 놈도 남김없이...... 마(魔)의 위대함을 보여 줄 때다!”
순간이다.
파아.......
슈르르...... 륵.......
백팔천마는 이미 허공으로 모두 솟구쳐 올랐고 그들의 입에서는 쇠를 긁는 듯 마소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
“크크...... 크...... 모조리 죽인다!”
“카카카― 캇― 만마의 위대한 힘은 영원한 것이다!”
동시에 그들의 전신에서 무지막대한 강기가 쏟아져 나왔다.
콰아...... 콰아...... 콰콰콰.......
카아아아―!
그 가공함이여―!
꽝! 우르르르― 릉!
꽈꽈꽈― 꽝―!
“크아악―!”
“커― 억!”
일순 처절한 비명과 함께 주위에 존재하는 것이 박살나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시작.
한 시대를 마감시키는 가공할 대혈사(大血史)의 시작이었다.
* * *
두두두두― 두둑―!
두두.......
여덟 마리의 준마가 이끄는 거대한 황금마차.
마차는 미친 듯이 대지를 울리며 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이 신형을 날리는 인영들.......
천(千)...... 만(萬)...... 십만(十萬).......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인물들이 황금마차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스스스...... 스으.......
휘이이이― 익―!
그야말로 하나같이 불가사의한 신법의 소유자들이었다.
깃발.
황금마차의 첨각에는 하나의 깃발이 폭우 속에서 찢어질 듯 나부끼고 있었다.
<황(皇)>
깃발의 중앙에는 황금의 수실로 그렇게 새겨져 있었다.
“후후후하하하핫...... 핫...... 더...... 더 빨리 몰아라! 더 빨리―!”
하늘을 가르는 앙천대소가 황금마차 안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무언가?
도대체 이 거대한 세력의 이동은......?
우두두두― 두두―!
무서운 기세로 폭우 속을 치달리는 황금마차.
촤아아아...... 촤아.......
그 폭우 속을 뚫고 앙천대소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오십 리가 남았다. 우하하하핫...... 그곳에 나의 중원이 있다! 나를 기다리는 대륙이!”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 나의 중원이 그곳에 있다!
그는 미친자인가?
허나 그렇지도 않은 것이 황금마차를 뒤따르는 자들의 기세가 가히 대륙을 순식간에 뒤집어 놓을 듯 가공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두두두우...... 두우.......
“그리고 그곳을 돌아 자금성으로 가는 것이다! 송은 죽지 않았다! 나 금황제운이 존재하고 있는 한...... 우하하핫...... 핫...... 가자!”
금황제운!
무림과 황궁의 모든 것을 집권하고자 가공할 야망의 칼을 갈아 온 자.
파아...... 파아.......
쉬이이이이익―!
수십만의 엄청난 고수들의 대이동!
그것은 폭풍이다.
대겁란을 몰고 쏘아져 가는.......
“눈앞에 천왕제군대척이 있다! 우후후...... 그것을 취하리라! 그것은 곧 중원의 힘과도 같은 것이니...... 후후...... 나의 손안에 들어오는 순간 중원 십팔만리는 곧 나의 것이 아니겠는가? 와하하핫......!”
― 천왕제군대척!
그렇다면!
그들이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대륙천자의 아성― 천왕제군대척이란 말인가?
또 하나의 난세지문(亂世之門)을 열고 들이닥치는 예상치 못한 야망의 칼.
금황제운.......
폭우.
그리고 폭우를 닮은 자!
그의 야망의 칼은 장장 일백년을 갈아 온 것이다.
* * *
카아― 카아― 카아―!
콰콰콰콰― 콰―!
“커― 헉!”
피보라!
그야말로 지옥을 뒤집어 놓은 듯한 엄청난 피바다가 이루어지고 있는 곳.
바로 마교의 마군총이었다.
백팔천마.
그들의 능력은 가히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인간의 능력이라고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는 가공, 그 자체였다.
허나 천왕제군대척과 흑양밀전, 대상천각, 그리고 마교에서 회유된 자들의 힘!
그것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콰아...... 콰아...... 콰아.......
쩌― 어어억―!
“크아아악!”
“케― 엑!”
흑뇌마자 타하륵.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순간순간 불가사의한 무공을 쏟아내고 있었다.
“우후후...... 백팔천마라고 했는가? 건방지군. 본좌 앞에서 거들먹거리다니!”
츠츠츠― 츠츠―!
카아아아아.......
보라!
그의 전신에서 한순간 쏟아지는 일천 종의 패극마공(覇極魔功)!
그것이 어찌 인간의 능력이라고 평가될 수 있는가?
일신에 수십만의 기학과 모사(謀士)를 지니고 있는 자.
그는 인간 불가사의 타하륵이었다.
“크― 헉!”
“끄으...... 놈...... 놈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의 몸에서 일시에 일천 종의 무공이 쏟아져 나오다니.......”
백팔천마는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피를 물고 곤두박질쳤고, 인간 불가사의 흑뇌마자 타하륵은 죽음을 만드는 악마의 제조기가 되어 있었다.
“쿠후후훗...... 오너라! 이곳에 지옥의 문이 열려 있다...... 쿠후후...... 하핫.......”
카카카― 카아― 카아―!
츄우우우우우...... 우우...... 츄우.......
“케에에에엑!”
“크흐윽...... 악마 같은 자다...... 저놈은...... 으으.......”
마뢰사불.
그는 일신에 승복을 입고 있으나 그의 몸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뇌의 빛은 염왕의 것이었다.
“카카...... 카...... 오너라! 마교의 무리들...... 어서 끝내고 나서 그 못된 놈에게 술을 한잔 내라고 해야 할 테니까...... 빨리 올수록 좋다...... 카카.......”
치리리릿― 치릿!
버― 언― 쩍!
천지말살의 공포스런 뇌강.
그것은 마뢰사불의 신형이 움직임에 따라 수천 가닥이 되어 폭사되는데, 그것은 마뢰사불의 전신에서 흡사 거미줄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크― 악!”
“으으...... 인간의 몸에서...... 뇌(雷)라니...... 말도 안 된다...... 이것은...... 크으.......”
휘리리리― 릿!
쩌― 어억!
“크아― 앗―!”
“컥!”
“끄으.......”
“카카― 카― 모조리 불고기를 만들어 불타 앞에 제(祭)를 지내 버릴까? 이카...... 냄새가 괜찮겠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외침이다.
사람 고기를 구워 불타 앞에 제를 지내다니.......
사악하고도 아주 강한 뇌의 힘을 지니고 있는 자.
그는 아예 죽음을 만들기 위해 태어난 자처럼 폭우 속을 혈우(血雨)로 바꿔 놓으며 날뛰고 있었다.
“카카.......”
죽마인예 영목태랑!
그의 칼은 공식화된 형식에서 나오는 수법이 아니다.
동영 최고의 인자 대부라고 불리는 자.
그의 죽검에서 쏟아지는 검초는 실전에서 터득한 완벽한 살인의 미학이며 예(藝)였다.
슈우우― 욱―!
츠으으으...... 츠으.......
“컥―!”
“컥!”
“끄으윽.......”
일체의 형식을 거세한 오직 죽음만을 만드는 마검.......
“후후...... 나를 막지 마라...... 나의 칼은 늘 피를 먹고...... 뼈를 발라먹고 자란...... 마물이니까...... 그 누구도 막지 못한다!”
파아.......
그의 신형은 불가해한 속도로 좌충우돌 움직였고, 그의 칼에서 쏘아져 나오는 이십여 장에 이르는 검기는 사납게 백팔천마의 목을 잘라 갔다.
더도 덜도 아닌 한 번의 칼춤에 하나의 목.......
츠으으으...... 츠으.......
번― 쩍―!
“크흑!”
“잔인한 자...... 크으...... 그의 검은 저주받은 마검이다......!”
“커흑...... 그의 칼을 받지...... 마라...... 컥!”
백팔천마는 목을 부여잡고 그의 아래 덧없이 거꾸러져 갔다.
천극화련 빙여설!
그녀는 아주 특이한 여자다.
혁리혼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 백팔천마를 바라보는 눈은 나찰의 눈이다.
두 가지 색다른...... 그리고 너무도 대극되는 눈빛을 가진 여자.
그녀의 십지에서는 열 가닥의 각기 다른 빙강(氷 )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름하여.......
― 십광마빙지(十光魔氷指)!
천극마분도 오천 년 비장의 절예로 내려져 오는 전설의 마공!
그것에 부딪히는 순간 모든 것은 얼음 조각으로 화하여 가루로 변한다.
퍼퍼퍼퍼― 퍽―!
쩌어어...... 억......!
그녀의 십지에서 쏟아지는 빙강을 맞은 자들.
그들의 몸은 공포스럽게도 얼음 조각이 되어 균열을 일으키며 부서져 내린다.
“끄으...... 몸이 순식간에...... 얼...... 다니...... 크.......”
“인간의 능력이라니...... 이것이...... 크윽.......”
아름다운 손을 지닌 여자.
그러나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오는 열 줄기의 영롱한 빛줄기는 바로 죽음이었다.
옥면마존 사무향과 혈군대마작!
그들의 손끝에서 부르는 죽음의 마예 또한 통천가공한 것이었다.
피...... 피...... 피.......
그리고 죽음들.......
“크와와와왁―!”
“꺼억.......”
“크...... 으.......”
지옥은 바로 이곳 마군총이었다.
“으으...... 이럴 수가.......”
갈무좌의 처절하리만치 뇌살적인 아름다움이 담긴 얼굴은 야차처럼 일그러지고 말았다.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져 버리는 백팔천마.
그것은 곧 마지막 마교의 보루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부르르......!
그는 전신을 격하게 진동했다.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다니...... 혁리혼!”
그는 무서운 피갈을 마침내 터뜨리며 혁리혼을 향해 핏발이 선 눈을 돌렸다.
혁리혼은 그런 갈무좌를 향해 아주 차가운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후훗...... 갈무좌, 이제 그대도 갈 때가 되었다!”
“네놈...... 죽이리라! 가장 처참하게!”
“후훗......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곳에 죽고 무너지는 것은 너의 잘려진 몸뚱어리와 마교가 될 것이다.”
그들은 은연중 십여 장 거리를 사이에 두고 대치해 섰다.
순간 그들은 어떠한 움직임조차 없는데 그들 사이의 공간은 무시무시한 불꽃을 퉁겨내고 있었다.
무형의 강기.
그들의 몸에서는 마음이 동하는 순간 쏟아지는 심즉살(心卽殺)의 심강(心 )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인간 이상의 능력을 수십 배 초월한 자들에게서만 볼 수 있는.......
심즉살의 심강은 그러한 것이다.
촤아아아악―!
순간 갈무좌는 품속에서 하나의 기형검(奇形劍)을 뽑아들었다.
기이한 검!
그것은 길이가 두 자밖에 이르지 않는 중검(中劍)인데, 검의 끝은 일곱 가닥으로 갈라져 있었다.
또한 그것은 아주 얄팍한 연검이었다.
그러나 갈무좌가 검에 내력을 주입하는 순간!
치리리리릿― 치릿!
일곱 가닥의 검기가 수십여 장을 가공스럽게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닌가?
혁리혼의 안색이 일변했다.
“흡마혈황인(吸魔血荒印)!”
― 흡마혈황인!
이 무슨 놀라운 말인가?
그것은 수천년 이래 마도에서 사라진 전설의 제일마병(第一魔兵)의 이름이 아닌가?
일곱 가닥에서 검기가 쏟아져 나오는 순간 상대의 피와 기를 빨아들인다는 마물.......
흡마혈황인은 그 주인의 능력을 배가시켜 준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허나 그것은 이미 수천년 이래 지상에서 사라졌던 것이 아닌가?
헌데 그것이 수천년이 지나 갈무좌의 손에 들려 있다니!
갈무좌는 사악한 죽음의 기운을 전신에서 뿌려냈다.
“혁리혼, 본좌는 최소한 흡마혈황인을 꺼내지 않으려 했으나...... 네놈은 죽음을 자초하고 말았다. 처참한 죽음을......!”
“.......”
“후후후훗...... 흡마혈황인에는 죽음의 삼식(三式)이 있다. 네놈은 그중 두 번째 죽음의 검식을 펼치기도 전에 목을 잘리고 말리라!”
혁리혼은 꽤나 고졸한 웃음을 떠올렸다.
“후훗...... 그럴지도 모르겠군. 너는 강한 자니까. 허나......!”
혁리혼은 말끝을 흐리며 허리춤에서 한 자루의 칼을 뽑아들었다.
번― 쩍―!
새파란 검기를 쏟아내기는 하나 보검이랄 수도 없는 그저 투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검.
허나 그것은 혁리혼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그 속에는 혁리혼의 혼과 쇠[鐵]의 혼이...... 그리고 무서운 패도지기가 들어 있는 검이다.
“너보다 강한 자가 바로 나 대륙천자 혁리혼이다.”
혁리혼은 꽤나 조용한 음성을 흘려냈고, 그의 검을 든 손은 느리게 천중결(天中訣)을 짚어 갔다.
“갈무좌, 조심하라! 이 말이 마지막 네 죽음 앞에 주는 아량이다.”
“후훗...... 나는 네놈의 무덤을 만들어 줌으로써 나의 마지막 아량을 보이겠다.”
그리고 두 사람의 입에서는 더 이상의 어떤 말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
“......!”
미칠 듯한 고요가 두 사람 사이에 앙금처럼 내려앉았다.
한점의 미동조차 없는 그들.
허나 아는 사람은 안다.
이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가장 무서운 움직임이 있다는 것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두 사람은 그것을 아예 초월하고 있는 듯 석상을 닮아 가고 있었다.
낙엽 한 잎.......
고요한 정적을 가르며 허공을 흘러내렸다.
바로 그 순간이다.
팟.......
카아.......
두 사람의 신형이 불가사의한 속도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갈무좌의 입에서 나직하나 무한한 내력이 담긴 외침이 터져 나왔다.
“혈환마천(血幻魔天)― 종(從)―!”
혁리혼의 입에서도 동시에 폭갈이 터져 나왔다.
“흐르는 마음은 곧 물의 마음이며...... 곧 검의 마음이다...... 유수만겁겁!”
유수만겁겁!
혈환마천종!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신의 능력을 지닌 자들.......
그들의 몸에서 마침내 무서운 죽음의 용틀임이 터져 나온 것이다.
찌르르르...... 릉.......
고오오오...... 고오.......
찰나 천지말살의 무시무시한 사풍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그리고.......
꽝! 꽈르르르...... 릉.......
꽈아아...... 꽈아.......
태산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듯한 가공할 대폭발이 터졌다.
보라!
저것이 인간의 능력인가, 하늘의 미증유의 거력인가.......
백여 장 방원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모조리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거대한 암석.
박살!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경악의 얼굴로 혼백을 잊은 사람처럼 두 사람의 대격돌을 주시하고 있던 자들.......
“크아아아악―!”
“컥.......”
그들의 몸뚱이는 갈가리 조각나 그대로 백여 장 밖으로 걸레 조각처럼 날아가 버렸다.
격돌!
그야말로 무림사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았던 무시무시한 두 마리 마룡(魔龍)의 격돌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 * *
아주 추악한 여자.
허나 그녀의 손은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흡사 티없이 맑은 빙석(氷石)을 깎아 억겁의 시간 동안 빚어 놓은 옥수처럼.......
그 손은 차분하고도 조용히 흰 백삼에 자수를 놓고 있었다.
거룡의 자수를.......
추명이라고 불리는 여인.
그녀는 언제부터인가 천왕제군대척의 제일 후미진 소각(小閣)에 머물며 모습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하나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지금처럼 한 사내를 위해서 자수를 놓는 것이다.
그 사내는 그녀를 아주 싫어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사내를 좋아한다.
‘머지않아 이 옷을 그분이 입으실 수 있을 것이다. 추명의 마음이 담긴 이 옷을.......’
그녀는 입가에 누가 볼세라 소리 없는 웃음을 담았다.
모든 것이 안으로 숨겨져야만 했던 여자.
그것은 모두 사내가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녀를 속박시켜 놓은.......
허나 추명은 그런 사내의 행동마저 사랑한다.
그녀 자신을 살아 있으나 죽여 놓은 것과도 같은 생활을 준 사내인데도.......
‘그분은 모르실 것이다. 이 옷이 나의 마음이 담긴 것이고...... 내가 지은 옷이라는 것을...... 나는 이 옷을 그분이 사랑하는 다른 여인의 손을 통해 줄 것이기에.......’
야차와도 같은 추악한 얼굴을 지녔으나 너무도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여자.......
‘허나.......’
문득 추명은 자수를 놓던 손을 멈추며 창 밖으로 쏟아지는 거센 폭우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두 눈은 폭우의 빗물을 담으며 조금은 잘게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 옷을 그분이 입으실 때...... 내가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앙금처럼 슬픔이 그녀의 두 눈 속에 소복이 내려앉고 있었다.
‘어제 나는 천기를 헤아려 안다. 하나의 이름 모를 거대한 성좌가 이미 무서운 핏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을...... 그리고 그와 함께 떠오르던 지다성 역시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바늘.
그녀의 손끝을 파고들어 한점 붉디붉은 핏방울을 맺었다.
허나 그녀는 흡사 그 통증을 못 느끼고 있는 듯 자꾸만 바늘은 그녀의 손끝을 파고들었다.
‘이미 그들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불안하다...... 이 불안은 그분이 천왕제군대척...... 이곳을 떠나시던 날부터 알 수 없이 찾아든다.......’
그랬던가.
‘나는 그 두 개의 성좌를 위해서 세 가지 안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중 이미 두 가지 안배는 끝났다.’
두 가지 안배―?
천기를 헤아리고 하늘의 뜻조차 읽어내는 여인.
도대체 추명의 머릿속에는 얼마나 많은 지혜가 들어 있는 것인가.
‘나는 그 모든 안배를 그분이 돌아오시면 드릴 것이다. 아무리 나를 미워하시나...... 그 순간만큼은 미워하시지 않으리라.......’
문득 짙은 불안과 슬픔이 깔리던 그녀의 얼굴에 아주 희미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헌데 그때였다.
“태후―!”
한 줄기 다급한 외침과 함께 둔탁한 소리가 문 밖에서 터졌다.
콰당......!
“......!”
순간 추명의 얼굴에 떠오르던 웃음기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는 무엇을 직감한 것인가?
와락......!
그녀는 방문을 열어젖혔다.
거기.
우황이 안색을 시꺼멓게 변색시킨 채 무릎을 꺾고 있었다.
비록 덤벙대고 우직한 자이나 결코 어떤 상황에서도 이렇듯 당황하는 위인이 아니다.
우황은......!
‘불안하다. 설마......!’
그녀는 아주 짙은 불안을 깔고 우황을 향해 차분한 음성을 흘렸다.
“무슨 일인가요?”
콱......!
우황은 이마를 무지하게 바닥에 찍었다.
혁리혼은 인정한 적이 없으나 추명은 분명 천왕제군대척의 주인이라는 신분이 아닌가?
“태...... 태후......! 이상한 일입니다. 십리 밖에 순찰을 도는 우리 인물들이 거대한 세력을 맞아...... 모조리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마교의 인물들이...... 아닌데.......”
우황은 꽤나 급하게 치달려 왔는지 헐떡이고 있었다.
순간 장지문을 잡고 있던 추명의 손이 가는 경련을 일으켰다.
파르르......!
‘그...... 그들이다! 이름 모를 하나의 거성과 또 하나 지다성의 주인들......!’
천기가 가리키는 두 개의 가공할 성좌!
‘그들이 벌써...... 너무도 예상 밖이다. 세 가지 안배 중 겨우 두 가지만이 끝났는데.......’
잘강.......
그녀는 세차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수놓던 시리도록 하얀 백의를 돌아보았다.
운명이라고 해야 하는가요...... 리혼.......
당신에게 나의 마음을 입혀 보고 싶었었는데.......
훗!
하늘은 추명에게 그것마저 허락...... 하지 않습니다.......
저 자수를 놓은 옷을 당신에게 입혀...... 몰래 숨어 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이제 당신의 모습을...... 보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어 편하시겠지만.......
이 추명은.......
파르르......!
추명은 떨리는 손으로 장지문을 잡은 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우황, 당신은 본녀를 안내하세요.”
우황은 일시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그가 추명에게 찾아든 것은 그녀를 피신시켜 보호하고자 함 때문이었다.
헌데......?
“태후, 피하셔야 합니다. 헌데 어디로...... 설마......?”
허나 그의 다급한 음성을 뒤로하고 추명은 이미 그를 지나쳐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첨황대(尖皇臺)로 본녀를 안내하세요.”
― 첨황대!
그곳은 천왕제군대척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최첨단의 누각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가장 위급한 직면에 이르렀을 상황에 있어 천왕제군대척의 사령탑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처...... 첨황대로......? 태후! 그곳에 오르시면 아니되십니다!”
그러나 추명은 그의 말에도 아랑곳없이 이미 첨황대가 있는 쪽을 향한 계단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슷.......
아주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우황은 한참이나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모를 일이다. 저분의 심중은...... 이해할 수가 없다.......”
허나 이내 그는 신형을 날려 추명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스― 윽!
쏴아아...... 쏴아.......
미친 듯한 폭우.
그리고 천왕제군대척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밀려드는 엄청난 세력......!
“크아아악!”
“커― 헉!”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나선 천왕제군대척의 고수들은 수천만참되어 덧없이 폭우 속으로 날아갔다.
이미.......
천왕제군대척을 향해 쏘아져 온 죽음의 전주곡은 시작되어 있었다.
멈칫.......
“......!”
성루로 비를 맞으며 올라서던 추명의 안색이 굳어지며 발길이 멈추어졌다.
‘아아...... 너무나 거대한 세력이다.......’
그녀는 덮쳐오는 엄청난 세력을 빗속에서 바라보며 입꼬리를 떨었다.
두두두두우...... 두우...... 두우.......
한 대의 거대한 황금마차를 선두로 수십만을...... 아니 족히 일백만여 상당의 무리들!
그들은 앞을 막는 것은 모조리 박살을 내며 천왕제군대척을 향해 밀려들고 있었다.
“크크...... 모조리 죽이리라!”
“천왕제군대척이 파괴되는 순간 중원은 우리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우하핫...... 핫.......”
폭우 속을 비집고 쏘아져 오는 자들.
카아아아― 카아―!
츠으으. 츠으.......
그들의 몸에서 터져 나오는 기세는 가히 태산조차 순식간에 밀어 버릴 기세였다.
“크와와왁―!”
“크으...... 천자(天子)가 계시지 않는 이 순간에 침입하다니...... 누구인가? 네놈들은......!”
“커― 헉!”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천왕제군대척의 고수들은 모조리 허리를 잘리며 곤두박질쳤다.
‘아아...... 생각 이상의 능력을 지닌 자임에 틀림이 없다......!’
쏴아아...... 쏴아.......
비는 추명의 전신을 거세게 후려치는데, 그녀는 나약하디나약한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승산은 우리에게 거의...... 없다! 허나......!’
그녀는 문득 폭우가 쏟아지는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말.
“노조(老祖), 이제 시작입니다.”
노조―?
그녀는 지금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가?
“......?”
우황은 추명의 뒤에 서 있다가 일시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누구에게?’
추명의 나직하고도 조용한, 그리고 희미한 잔떨림이 이는 말은 계속되었다.
“오십만 천군(天君)을 푸세요. 지금 본 척에 있는 십만여의 잔여 세력을 합해 칠십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말은 아주 차갑게 떨리고 있었고, 그 순간 허공에서 격동 어린 음성이 흘러내렸다.
“명을 받드옵니다, 태후! 허나 천자께서는 화후의 이런 노고를 모르시고 계십.......”
“노조, 말씀을 하고 계실 시간이 없습니다.”
노조라고 불린 인물의 음성은 그녀의 말에 중간에서 끊기고 말았다.
천군―!
그것은 또 무슨 세력인가?
우황은 머리가 아예 혼돈이 되어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이미.......
폭우를 맞고 저만치 앞서가는 추명의 등을 향해 우황은 두 눈에 빛을 발했다.
‘그렇다면 태후께 어떤 세력이......? 천군......? 가...... 가만...... 천군이라고?’
우황의 얼굴에 극도의 경악이 터져 올랐다.
한순간 그의 뇌리 속으로 한마디 말이 떠올랐던 것이다.
― 우황, 한당......! 추명은 하늘을 뒤집을 만치 놀라운 지혜를 지닌 여인이다. 나는 천기를 안다. 그 천기를 헤아려 리혼...... 그 아이에게는 죽음이 머지않아 다시 오게 될 것이다. 그 죽음을 어쩌면 추명이 막을지도 모른다.......
― 본좌 환공(幻公)은 이제 그녀에게 그 때를 위하여 하나의 힘을 주리니...... 그 이름을 천군(天軍)이라 하노라! 허나 너희들은 이 사실을 리혼...... 그 아이에게 알리지 마라......!
“아아.......”
우황은 한순간 자신도 모를 감탄성을 터뜨린 채 폭우 속에 서 있었다.
인간 이상의 능력자들.
그로서는 도저히 추측할 수 없는 그들의 능력이 하나하나 밝혀 놓은 거대하고도 가공한 암시!
우황은 이미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으나 그것은 현실로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불가사의한 천기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이.......
우황은 넋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왕야는 이 사실을 모르시고 계신다......! 지금 그분은 마교에서...... 더구나 언제 돌아오실지도 모르는 지금.......”
부르르......!
우황은 문득 알 수 없는 불안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조금 전 분명 태후께서는 천군과 현재 본 척의 잔여 세력으로 승산의 희박함을 말했다......! 그렇다면......!”
― 모조리 죽는다!
한 가지 섬칫한 결론이 그의 전신을 후려쳤다.
“아...... 안 돼! 이 싸움은......!”
일순 그는 미친 듯이 어디론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