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륙천자-27화 (28/31)

第 27 章 우리는 이것을 運命이라고 하자꾸나

금황예강.

그는 아주 많은 지혜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가히 하늘조차 오시할.......

다만 무림이라는 곳에서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는 황실의 후예이니까.

밤하늘의 심유함과도 같은 빛을 눈에 지니고 있는 자― 금황예강!

“요는...... 이형이 마교를 업신여기고 친다면 마교와 천마대밀의 세력에 최소한 동패구사(同敗俱死)를 당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최소한 천왕제군대척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 세력으로라면.......”

“......!”

“그리고 그는 거의 힘을 잃은 상태에서 천왕제군대척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순간이다.

번― 쩍!

금황제운의 두 눈에서 암천을 찢어발길 듯한 가공의 빛이 쏟아져 나왔다.

허나 그는 또다시 묵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스으...... 으...... 스승.......

그리고 금황예강의 말은 이어졌다.

“허나 그가 천왕제군대척에 돌아올 때쯤이면 우리는 천왕제군대척 일백만 고수들의 시체를 밟고 서 있을 것입니다!”

― 시체를 밟고 서 있을 것입니다!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의형제지간을 맺은 혁리혼을......?

“후훗...... 집을 지키고 있다가 피로에 지친 어미새를 잡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요.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황실로 가는 것입니다. 황실은 이미 기울어져 있습니다......!”

황실―!

아주 강렬한 눈빛이 금황예강의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보라!

화폭!

금황제운이 그리고 있는 화폭 속의 금린은 서서히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등천인가?

“대형―! 송의 마지막 황가의 치욕과 무림의 독패...... 이 순간을 보내면 영원히 넘볼 수 없을 것입니다! 자금성(紫金城)과 중원무림을......!”

문득 금황제운은 묵필을 놓으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의 시선에서는 엄청난 뇌의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후후훗...... 예강, 너는 고개를 돌려 네 뒤를 보라.”

“......?”

금황예강은 그의 말대로 의혹의 시선을 뒤로 돌렸고, 그 순간 그의 두 눈에서는 놀람의 빛이 경악처럼 피어올랐다.

보라!

태부원의 폐허.

그 넓은 곳을 메우고 있는 것은.......

무서우리만치 강렬한 광기마저 드러나 보이는 눈[眼]...... 눈.......

헤아릴 수도 없는 엄청난 고수들......!

그리고 그들은 하나의 화려한 황금마차를 대동하고 있었다.

“대...... 대형......!”

“후후...... 네가 돌아오길 기다린 것뿐이다, 우형은.......”

“그럼...... 모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금황예강의 경악 서린 음성이 흘렀고, 금황제운은 이미 마차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지금이 내 평생을 기다려 오던 오직 한 번의 기회니까.”

이어 그는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백여 년을 숨죽여 왔다......! 이제 중원으로 가자!”

나직한 음성이나 가히 태산의 기개가 담긴 음성이다.

순간 어둠을 울리는 엄청난 우레성이 짓터져 올랐다.

“대황부의 명을 받드오이다!”

“송황(宋皇) 천천세(千千歲)......!”

우두두두두― 두두―!

크르르르― 릉―!

바람[風]!

또 하나의 가공할 바람이 중원을 향해 쏘아 가고 있었다.

마침내 가공할 난세는 문을 열었다.

* * *

‘그들이 모조리 죽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

흡사 낙척서생의 모습으로 처참한 시선을 들어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자!

그는 꽤나 특이한 사람이다.

일신에는 무궁한 능력을 지녔고, 또한 머릿속에 든 지혜로는 마도제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자.......

혈뇌마겁 단소현!

꽈― 악―!

그는 두 주먹을 세차게 움켜쥐며 얼굴을 굳혔다.

“도대체 그 누가 당금 무림에 있어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있다면 오직 두 사람.......”

그는 지금 구천세군의 죽음에 끝없는 의혹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저벅.......

그는 작은 가산을 돌아 하나의 인공연못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꽤나 아름다운 연못.

군산(君山)의 수로를 옮겨 만든 것으로 세 사람 외에는 그 누구도 출입이 제한된 곳이다.

바로 혈뇌마겁 자신과 장중보옥(掌中寶玉)과도 같은 한 아들과 또 한 명의 딸이 그들이다.

― 뇌세마가(腦勢魔家)!

군산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는 하나의 거대한 장원.

바로 혈뇌마겁 단소현의 자가(自家)가 이곳이다.

그는 원래 마교에 있어야 할 인물이다.

허나 구천세군 중 팔천세군의 죽음에 급히 자가로 돌아왔던 것이다.

이제 살아 남은 사람은 구천세군 중 오직 그뿐이다.

힐끔.......

그는 한곳에 시선을 던졌다.

투박해 보이나 수려하게 생긴 청년이 연못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었다.

“그들을 모두 죽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오직 마존과 혁리혼이라는......!”

뇌까리던 그는 일순 몸을 경직시켰다.

부르르......!

그 다음 순간 그의 몸은 꽤나 거센 진동을 일으켰다.

“내...... 내가 왜 그자를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가......? 그자다! 사월영이라는 자...... 는...... 바로 혁리혼이란 놈이다!”

혈뇌마겁은 일순 뒤통수를 후려맞은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 그가 지금에 이르러서야...... 복수를......? 우리는 놈이 애초 중원에 모습을 드러낼 때 바짝 긴장을 하고 있었다. 놈의 복수가 시작될 것이므로...... 허나 놈은 복수를 하지 않았다.”

번― 쩍!

그의 두 눈에서 무서운 혈광이 쏟아져 나왔다.

“그 당시...... 우리는 놈이 복수를 포기했거나...... 아니면 자신의 아비를 죽인 것이 우리가 아니라 다른 자들로 손꼽아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줄 알고 긴장을 풀었었는데...... 으으...... 으...... 우리가 완전히 신경을 쓰지 않는 틈을 타서......!”

그의 얼굴이 시꺼멓게 구겨지고 말았다.

“아주 깨끗이 뒤통수를 후려맞은 꼴이 되고 말았다......! 혁리혼...... 이 애송이놈!”

그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으드득―!

그는 이를 갈며 살기 어린 음성을 흘려냈다.

“기다리마......! 나를 찾아올 때를......!”

저벅.......

그는 점차 연못가를 따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네놈의 무덤을 이곳에 만들어 주리라! 이 교활한 놈......!”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낚시를 하고 있는 미청년 앞에서.

조금 전 그의 입가에 흐르던 살기와는 달리 그의 얼굴에는 꽤나 자애스런 웃음이 맴돌았다.

“허허...... 무린(無燐), 많이 잡은 게냐?”

단소무린.

바로 혈뇌마겁이 자신의 몸처럼 아끼는 아들이 바로 그다.

단소무린은 꽤나 지루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요. 아주 안 잡히는데요. 쳇.......”

그는 투덜거리며 낚시를 거두어 찌를 바라보았다.

허나 찌는 없었다.

고기가 찌만 떼어먹고 달아난 듯.......

혈뇌마겁은 아들의 뒤로 다가서며 혀끝을 차며 웃었다.

“쯧...... 고기가 네 녀석보다 약삭빠른가 본데? 허허허허...... 허.......”

그에게 있어서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다.

단소무린은 단조로운 표정으로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반드시 잡을 것입니다. 고기가 나타났으니까.......”

“허허...... 눈에도 보이느냐? 고기는 물 속 깊이 노닐고 있을......!”

문득 혈뇌마겁은 말끝을 흐렸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들이 꽤나 이상했던 것이다.

자신의 아들은 마교에서 늘 생활하다가 돌아오는 자신에게 꽤나 반가움을 표시하곤 했었다.

허나 지금 아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리고.......

― 지금 고기가 나타났으니까......!

아들이 무심결에 내뱉은 그 말이 꽤나 묘한 여운을 그에게 준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얼마 전...... 이 녀석이 지니고 있던 그런 기도(氣道)가 아니다. 그 녀석은 원래 체질적으로 무공을 배우지 못하는데...... 지금은......!’

순간 그의 입가에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대단한 놈이군.”

무슨 말인가?

자신의 아들을 향해서......?

헌데 낚시를 하고 있는 그의 아들의 입에서 흘러 나온 말은 더욱 가관이 아닌가?

“후후...... 꽤나 교활한 놈이다, 네놈은! 그래도 나는 일각 이상의 시간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금방 알아차리고 말다니.......”

아들이...... 아니었던가?

혈뇌마겁은 음악한 웃음을 떠올렸다.

“크크...... 크...... 노부를 얼마나 기다렸느냐?”

“이틀.”

사내는 꽤나 무정한 음성을 짧게 내뱉었고, 혈뇌마겁의 얼굴은 순간 새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지...... 지금 온 것이...... 아니라...... 고......? 그럼...... 네놈은 나의 아들을...... 어찌했느냐?”

사내는 그제야 낚시를 거두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얼굴.

그의 얼굴은 혈뇌마겁의 아들을 찍어낸 듯 닮았다.

허나 혈뇌마겁을 바라보는 한 쌍의 눈은 결코 닮지를 않았는데, 그 눈빛은 야수를 닮아 있었다.

“네 아들은 죽이지 않았다. 과거...... 결과야 어쨌든 네놈들이 나를 죽이지 않았던 것처럼.......”

“......!”

“그리고 이제 네가 죽어야 할 시간이다, 혈뇌.”

말과 함께.......

툭......!

번― 쩍!

그는 한 자루 섬칫한 검을 혈뇌마겁의 발치 아래 던졌다.

“......!”

혈뇌마겁은 검을 집어들며 꽤나 이상한 웃음을 입가에 흘렸다.

“크크...... 아주 좋은 칼인데? 네놈의 심장을 쑤시기에는!”

동시에 혈뇌마겁은 무서운 속도로 사내의 심장을 쑤시고 들었다.

카아아아―!

찰나 사내의 입가에 시리도록 차가운 웃음이 걸렸다.

“우후후...... 훗...... 너는 고통스러운 죽음을 자초했다, 혈뇌!”

팟......!

사내의 신형이 흡사 연기 꺼지듯 허공 중에서 사라져 버렸다.

“헉―!”

혈뇌마겁의 안색이 크게 변했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피이이이― 잉!

허공을 찢어발기는 죽간의 파공음이 그의 목을 휘감아 왔다.

허나 혈뇌마겁의 신형은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지면을 박차오르고 있었다.

빙글...... 파파팟......!

쾌(快)!

정녕 형용할 수조차 없는 불가사의한 빠름의 몸놀림이다.

“크크...... 크...... 죽인다! 반드시!”

번― 쩍―!

쩌― 어어어억―!

그의 수중에 들린 검이 떨쳐지는 죽간을 그대로 맞부딪쳐 갔다.

순간이다.

꽝―!

찌르르르르릉― 릉!

박살!

주위의 땅거죽이 모조리 뒤집혀 솟구쳐 올랐고 호수의 수면은 엄청난 물기둥을 만들며 허공을 뒤덮었다.

콰...... 콰...... 콰아.......

가공할 대격돌!

“대단하다......!”

허공 어디에선가 사내의 다분히 놀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혈뇌마겁의 입에서 치떨리는 마음이 흘러 나왔다.

“우흐흐...... 본좌를 구천세군 중 제일 하수로 본다면 네놈의 커다란 실수다!”

쐐애애액! 카츠츠츠츠― 츳―!

그의 칼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허공을 난도질하는데, 그 검막의 가운데에서 무정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안다. 네놈의 능력이 최소한 마황제일존 갈무좌에 한푼의 차이밖에 없다는 사실을...... 허나 역시 너는 죽는다, 혈뇌!”

“미...... 친놈!”

찰나!

피피피― 피핑―!

죽간의 혼백을 찢어발기는 음향이 혈뇌마겁의 검에 부딪쳐 들었다.

쾅!

파파파― 팟!

가공할 대폭발이 터지며 혈뇌마겁의 입에서 경악의 부르짖음이 터졌다.

“헉―! 나의 내력이 극성까지...... 주입된 검이...... 부러지다니...... 으으.......”

“다음은 네 두 다리를 잘라 버릴 것이다.”

한마디 무감동한 음성이 허공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이다.

파아...... 파아...... 파아.......

죽간이 허공 중에서 수십 토막으로 잘리며 그것은 그대로 수십 개의 암기로 변하여 혈뇌마겁을 뒤덮었다.

“으으...... 놈의 내력은...... 상상 이상의 가공할 지경이다!”

혈뇌마겁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물며 쏘아져 오는 죽간의 조각들을 막으며 악물린 외침을 터뜨렸다.

“마강파(魔 破)― 혈(血)― 단천(斷天)!”

순간 보라!

번쩍―! 번― 쩍!

빛[光]!

그것은 차라리 빛의 폭발이었다.

반 토막의 검에서 쏟아져 나오는 혈광마광(血光魔光)이라니!

파파파팟! 팟! 팟!

죽간의 조각은 순간 아예 가루로 화하여 허공 중에 흩어졌고, 혈뇌마겁의 입에서 죽음의 외침이 잇따라 터졌다.

“흐흐...... 마지막 죽음의 초식이다! 겁천(劫天)― 단사월(斷死月)―!”

그것은 차라리 장관이었다.

스스스...... 스.......

칙칙한 음영을 발하며 허공 가득 떠오르는 것은 수백 개의 핏빛 월영.......

그것은 한순간 흐르는 방향을 꺾어 허공 중의 사내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폭죽 튀듯 쏟아져 갔다.

카카카카― 카― 캉―!

콰아...... 콰콰콰...... 콰아.......

순간이다.

아주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허공에 울려 퍼진 것은.......

“흐르는 마음은 곧 물의 마음이고, 그는 곧 검의 마음이다. 유수만(流水萬)― 겁겁(劫劫)―!”

쩌― 어어어― 억!

하늘이 갈라지고 있는 것인가?

한 줄기 검광이 무지막대한 기세로 허공을 가르고.......

스스...... 스스.......

그것은 이내 수십 줄기의 검빛으로 화하였다.

콰...... 콰...... 콰...... 아.......

혈뇌마겁의 검에서 쏟아져 나가던 수백 개의 월영은 모조리 파괴되어 빛을 잃었다.

“어― 헉! 이...... 이럴 수가......! 나의 죽음의 초식이...... 파괴되다니...... 으으.......”

혈뇌마겁의 얼굴은 시꺼멓게 변해 버렸고 순간 수백 개의 월영을 파괴해 버린 칼빛들은 순식간 그의 몸을 난도분시해 들었다.

“크― 아아악!”

촤촤촤― 촤촤.......

섬뜩한 피보라가 허공 자욱 솟구쳐 올라간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퍼퍽!

혈뇌마겁의 몸은 삼 장여 뒤로 무력하게 나뒹굴었다.

두 다리!

그의 몸을 지탱하고 있던 두 다리는 아주 깨끗하게 잘려져 나가 있었다.

스슷.......

혈뇌마겁의 면전으로 사내는 소리 업이 떨어져 내렸다.

아주 차갑고 무정한 가운데 야수의 눈을 지닌 자.......

“혈뇌, 이제 네 두 팔을...... 다음엔 네 목을 끊어 놓을 차례다!”

억양 없는 음성.

혈뇌마겁은 전신을 진동했다.

“으으...... 자...... 잔인한 놈!”

“잔인하다니? 후훗...... 네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사내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고른 치아가 아주 아름다움의 느낌을 주는 사내.

“십대천세와 대군이 무너진 것은...... 바로 네놈의 머릿속에 든 마계음모(魔計陰謀)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 노인과 소년은 장장 칠년 동안 숨을 죽이며 도주의 길에 올라야 했었는데...... 너는 지금 나를 잔인하다 이야기하다니?”

주루루...... 룩......!

혈뇌마겁의 가슴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 사타구니에 물도랑을 만들었다.

공포!

그는 이때까지 이런 유의 소름 끼치는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상대는 구천세군 중 팔천세군의 목을 자른 자.

허나 그는 자신했다.

절대 상대의 능력을 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자신의 능력을 믿었던 것이다.

허나 상대는 자신의 병기를 잘랐고, 또다시 두 다리를 잘랐다.

그 다음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치떨리는 공포가 그의 전신을 엄습해 들었다.

사내는 사악하리만치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후훗...... 혈뇌, 눈을 감게. 죽음이란 때로는 가장 편안한 것일 수도 있다.”

번― 쩍!

사내의 수중에 들려 있는 검이 천천히 치켜 올려졌다.

“으으.......”

혈뇌마겁은 이빨 저린 신음성을 흘렸다.

찰나 사내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두 팔과 목을 한꺼번에 끊어 주지. 나의 마지막 아량으로...... 잘 가라!”

카아.......

칼바람이 일었다.

바로 그때였다.

“안― 돼―!”

한마디 앙칼진 교갈이 허공 중에 터지며 하나의 섬세한 인영이 연못가로 내려섰다.

스스.......

“......?”

사내는 흠칫 손을 멈추며 시선을 돌렸다.

거기, 한 소녀가 몸을 떨며 서 있었다.

얼굴은 검은 면사로 가리고 있으나 꽤나 섬세하고 아름다운 몸매를 지닌 소녀.

파르르......!

소녀는 몸을 떨며 처절한 입을 열었다.

“그...... 그대는 그분을...... 죽이면...... 안 돼......! 나의 기다림을 생각...... 해서라도......!”

“기다림이라고?”

사내는 일시 어리둥절했다.

기다림이라니?

소녀는 경악인지 격동인지, 아니면 전율인지 모를 진동을 전신에 끊임없이 터뜨리고 있었다.

“이틀 전...... 나는 내 동생의 몸에서 뻗치는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 그리고 언행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

“......?”

“나는 알았다. 이미 그대가 나의 동생이 아니었던 것을...... 허나 너에게 칼을 들이댈 수 없었어...... 이건 정말 진심이야......!”

소녀는 마치 절규를 터뜨리듯 말했고, 사내는 아주 무정한 대꾸를 했다.

“후훗...... 그렇다면 그대의 실수겠군. 그때 칼을 들이댔어야 했던 것을.......”

사박.......

소녀는 사내의 앞으로 다가서며 떨리는 음성을 흘렸다.

“그대는 왜 내가 칼을 들이대지 못했는지 묻지 않나요?”

“......?”

“그리고 왜 내가 그대를 기다렸다고 했는지 아는가요......?”

눈물?

이것은 무엇을 위한 눈물인가?

그녀의 면사 아래로 흘러내려 턱에 이어지는 아주 아름다운 물방울은.......

사내는 미묘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후훗...... 그런 것을 알 이유가 내게는 없소. 나는 혈뇌, 이자만 죽이면 곧 이곳을 떠나야 할 사람이니까.”

동시에 그는 다시 섬칫하리만치 새파란 칼을 들어올려 혈뇌마겁의 목을 쪼개어 갔다.

카아.......

순간 소녀의 입에서 면사를 비집고 흐르는 절규의 외침이 터졌다.

“아...... 안 돼! 리혼―!”

부르르......!

사내의 칼을 잡은 손이 순간 진동을 일으키며 허공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리혼?

사내는 회의와 불신이 어린 시선을 면사의 소녀에게 던졌다.

“그...... 그대는......!”

혁리혼!

사내의 이름이 그것이다.

혁리혼은 아주 가늘게 떨리는 음성을 내뱉었고, 면사소녀는 천천히 섬섬옥수로 면사를 벗어 버렸다.

아...... 아름다움이여!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을 숨막히게 하는 극치의 아름다움이 면사 뒤에 있었다.

사내의 심혼을 빨아들이는 한 쌍의 눈과 오뚝한 코.......

뇌살적인 붉디붉은 입술은 차라리 인간의 미가 아니었다.

부르르......!

혁리혼은 세차게 몸을 떨며 입술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것 때문이 아니다.

저 붉디붉은 입술을 나는 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여인의 입술을.......

그리고 혁리혼의 뇌리 속에 이 순간 파고드는 한 소녀의 외침이 아련한 과거 속에서 나래짓처럼 떠오르고 있었다.

― 후훗...... 리혼! 너는 이제 영원히 누구의 동생도 될 수 없어! 나 단소자하의 동생일 뿐이야......!

― 훗날 반드시 군산으로 찾아와야 돼! 알았지?

소녀는 울고 서 있었다.

“내가 그대에게 칼을 겨눌 수 없었던 것은...... 그대의 몸 속에서 풍기는 한 가지...... 향기 때문이었어...... 리혼...... 흑...... 너는 기억할 거야...... 표향정환잠을.......”

표향정환잠!

“그 속에는 한 가지 아주 기이한 향기가 있다...... 나만이 알 수 있는 향기가......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여인은...... 사내의 여인이 되는 거라고...... 우리 가문에 전해지고 있다...... 리혼...... 그대의 여인이 되지 않아도...... 좋아...... 하지만...... 아버님을...... 죽이면 안 돼...... 너는!”

단소자하!

그리고 하나의 옥잠...... 표향정환잠!

혁리혼은 몸에 진동을 일으켰다.

“단소...... 자하......! 그...... 그대가......!”

처음 혁리혼에게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입술을 주었던 소녀.......

그녀가 여인이 되어 모습을 드러냈는데 혁리혼은 격정보다 한스러운 눈을 허공에 던졌다.

‘이...... 이런 운명이......!’

갈등과 고통이 그의 전신을 휩싸고 돌았다.

바로 그때다.

“크크...... 죽엇―!”

처참한 몰골로 나뒹굴고 있던 혈뇌마겁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지면을 찼다.

파아아.......

그는 혁리혼의 심장에 깊숙이 칼을 박아들었다.

“아...... 안 돼요!”

단소자하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터진 것과 혁리혼의 몸에서 냉혹한 기운이 피어오른 것은 거의 한순간이었다.

버― 언― 쩍!

찰나 빛이 뿌려졌다.

아주 차디찬 검빛.......

“크아아악―!”

혈뇌마겁의 목은 순간 몸에서 분리되어 허공 높이 솟구쳤고, 그 떨어져 나간 목을 올려다보는 단소자하의 얼굴은 시체의 얼굴처럼 변해 버렸다.

“리...... 리혼...... 너...... 너는...... 너는...... 으음.......”

털썩......!

단소자하의 몸은 이내 무력하게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혼절해 버린 것이다.

오직 오랜 날들을 한 사내를 향한 기다림의 시간으로 보낸 여인.......

그것은 악마가 주었던 시간인가?

아니면 운명이라는 괴물이 그녀에게 안겨주었던 시간인가?

아아...... 제발 악몽이기를.......

“자하......!”

혁리혼은 전신이 굳어 버린 채 장승처럼 서 있었다.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은 것인가...... 나는......?

지금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혁리혼은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아주 파란 하늘.......

“자하...... 단소자하...... 우리는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자꾸나.......”

운명.......

너무도 잔인하지 않은가, 운명이라고 하기에는......!

문득 혁리혼은 얼굴이 아주 차갑게 식어 버렸고, 그의 입에서는 한 올의 감정조차 담기지 않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한당...... 그녀를 보살펴 주어라!”

“왕야.......”

차가우나 감지할 수 없는 격정이 담긴 음성이 허공에서 울려 내렸다.

그리고 혼절해 있는 단소자하의 몸은 허공으로 소리 없이 빨려들어갔다.

스― 윽!

피 흐르는 검을 든 채 혁리혼은 천천히 주위를 떠나기 시작했다.

“훗날...... 나를 증오하거라, 자하...... 나에게는 지금 이 시간...... 야망과 칼과...... 죽음뿐이다......!”

바람에 흩어지듯 그의 음성은 차디차게 식어 허공을 맴돌았다.

여운처럼.......

* * *

괴이한 일이다.

그 일들은.......

마― 교―!

이 거대한 난공불락의 만마의 성전에는 짧은 한 달 동안 아주 소름 끼치는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순찰총직을 맡고 있던 자가 머리가 잘려진 채 개의 입에 물려다니는가 하면, 원인 모르게 하루아침에 수십 명의 고수가 독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마황제일존 갈무좌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첩자가 있다! 그...... 그놈을 잡아라!”

그리고 추상 같은 명령이 마교를 진동시켰다.

허나 연속된 죽음은 계속되었고, 시체는 늘어만 갔다.

마치 마황제일존의 명령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공포!

전율!

마교는 엄청난 악마와 죽음의 나래에 뒤덮여 버렸다.

공포와 전율에 못 이기는 자는 마침내 어둠을 이용해 몰래 마교를 떠났고, 불신이 조장되기 시작했다.

부하가 위에 있는 자를 믿지 못하고, 친구는 그토록 믿었던 친구를 경계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놈이 비록 나의 백년지기(百年知己)이나...... 첩자일지도 모른다.......’

‘혹시 저놈이......?’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일이다.

마교!

처음 이 가공할 단체는 흡사 하나의 계란과도 같이 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으나 그것은 불신과 공포와 전율이 함께하며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허나 그 균열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한 마리 벌레가 거대한 고목을 파먹어 무너뜨리듯.......

고목을 장작 패듯 바수어 벌레를 찾아내기 전, 고목 속으로 숨어든 벌레는 잡을 수 없을 것이다.

* * *

아름다운 사내.

그러나 독사의 웃음을 지닌 사내.......

그는 이 순간 나찰의 얼굴로 한 유생을 굽어보고 있었다.

“찾을 수 없다는 말이냐? 혈뇌......?”

혈뇌라니......?

그는 혁리혼에 의해 죽었지 않았던가?

허나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는 분명 지금 마황제일존 갈무좌 앞에 허리를 접고 서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혈뇌마겁은 일그러진 얼굴을 숙여 보였다.

“찾을 수가 없습니다, 마존...... 놈은 너무도 교묘한 방법으로 본 교에 잠입해 들었습니다.”

“으으...... 구천세군 중 팔천세군이 원인 모르게 죽는가 싶더니...... 본 교 안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어느 놈이?”

갈무좌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고, 그의 아름다운 옥수는 태사의의 모서리를 파고들었다.

콰― 직!

“찾아내야 한다, 반드시......!”

“한 가지 계는 있습니다, 그놈을 찾아낼 수 있는!”

번― 쩍!

갈무좌의 두 눈에서 아주 강렬한 빛이 토해졌다.

“말하라!”

“마군총(魔群塚)에 본 교의 모든 인원을 집합시키는 것입니다. 한사람도 빠짐 없이...... 말입니다.”

“그래서?”

“첩자가 숨어들었다면 그는 필시 변장을 하고 있을진저...... 모조리 확인을 해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군총에 집합하지 않는 자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척살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아주 간단하고 쉬운 계책이나 그것은 기가 막히게 좋은 계책이 아닌가?

갈무좌의 안색이 밝아지는가 싶자 꽤나 묘한 차가움이 그의 입가에 매달렸다.

“특히 두 사람을 반드시 집합시켜라, 혈뇌......!”

“쿠쿠쿳...... 혈군대마작과 천마대밀주 마랍격을 말씀이십니까?”

혈뇌마겁은 어둠과도 같은 괴이칙칙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갈무좌는 웃고 있었다.

“후훗...... 어쩌면.......”

두 사람의 웃음.

허나 그 웃음은 달랐다.

달라도 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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