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5 章 어떤 위대한 邂逅
“소...... 속았다!”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뻔히 보고 있는 면전에서 자신이 아끼는 칠십만여 마도최강의 고수가 한줌의 흑토로 사라지다니......!
“내...... 내가 오히려 당하다니......! 그렇다면 놈들이 바꿔치기해서 보낸 전서구의 서찰은 오히려 나의 허(虛)를 조장하고자 했던 실(實)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아니다...... 그럴 리가!”
갈무좌는 머릿속이 한순간 하얗게 비고 말았다.
부르르......!
그는 미친 듯한 분노에 몸을 떨었다.
늘 부드러운 미소와 아름다운 눈빛을 지니고 다니는 그.
허나 그의 얼굴은 이 순간 야차와도 같았다.
꽈― 악!
양 주먹이 아주 세차게 거머쥐어지며 손가락 틈새로 핏물이 스며 나왔다.
분노로 하여 손가락 끝이 살 속으로 파고든 것이다.
“혈뇌!”
“마존, 하명하십시오!”
갈무좌는 일시 안색이 시퍼런 날이 선 것처럼 변했고, 두 눈에는 무시무시한 뇌광을 담았다.
“독강대추표(毒 大追 )와 화뢰파굉폭(火雷破宏暴)을 모조리 저놈들의 머리 위에 부어 버려라! 어― 서―!”
그의 무서운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마존의 명을 받드오이다!”
혈뇌마겁은 급격히 허리를 접으며 동시에 양손에 두 개의 깃발을 거머쥐었다.
흑색과 핏빛의 두 가지 깃발.
“네놈이 신(神)인가? 그럼...... 크크...... 나는 신을 최초로 죽이는 인물이 되겠군.”
혈뇌마겁은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사광을 폭사시키며 두 개의 깃발을 동시에 하늘로 치켜 올렸다.
파라라라락―!
파아.......
찰나!
카카카아...... 카아...... 카아.......
화르르르릉―!
보라!
뇌주반도를 모조리 뒤덮는 엄청난 화전(火箭)과 독무(毒霧)......!
그들은 뇌주반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아예 씨도 남기지 않으려는가......?
누군가를 현혹하리만치 아름답게 웃고 있는 자.
허나 그 아름다운 웃음은 독사의 웃음이다.
“후후후...... 혁리혼, 네놈과 네놈의 수하를 자처하는 자들은 이미 두세 번째 죽음의 벽에 부딪혀 모조리 한줌의 독수로 화하고 마화(魔火)에 타서 재가 되어 사라지리라...... 훗훗훗...... 훗.......”
허나 갈무좌의 웃음은 어느 순간 마파람에 게눈 감추어지듯 뚝 끊어지고 말았다.
“아...... 아니?”
“크크...... 마교의 졸개들...... 그것으로 하여 본 대상천각의 숨통을 조이려 했다면 귀신이 웃고 지나갈 일이다...... 크크.......”
“마마환상벽천대라진(魔魔幻像壁天大羅陣)은 그 무엇이든 가두어 버리게 된다...... 하다못해 흐르는 바람까지도.......”
“카카...... 결국 네놈들은 오히려 네놈들이 쏟아낸 마화와 독무에 죽고 말 것이다...... 카카.......”
뇌주반도를 뒤덮는 앙천광소가 허공으로 짓터져 올랐다.
파아...... 파아...... 파아.......
츠츠츠...... 츠으.......
그리고 뇌주반도를 휩싸고 하나의 거대한 강기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진(陣).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이 일은.......
마마환상벽천대라진이라는 상고의 절진이 뇌주반도를 모조리 가두어 놓으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흐르는 바람과 한점 티끌조차도 완벽하게 가두어 버린다는 일체의 생문을 거세한 죽음의 사진(死陣)!
순간이다.
“크와와왁......! 우리가...... 뿌린...... 독무에 우리가...... 당하다니...... 크악―!”
“으으...... 마화가...... 알 수 없는 진벽에 갇혀 버렸다...... 으으...... 오히려 우리 마교의 고수들을 태운다...... 당했다......!”
처절한 아우성을 담은 비명이 뇌주반도를 휘몰아쳤다.
누구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완벽한 반전(反轉)!
“크아아아앗―!”
“케― 엑!”
“크으...... 완전히 당했다!”
“으으...... 이런 반전이!”
갈무좌는 전신이 벼락에 꿰뚫린 듯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혈뇌마겁.
마도최고의 지략가로 평가되고 있는 그조차 이 순간 머리가 완전히 비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노...... 놈은...... 신의 머리를 지녔단 말인가? 이...... 이건 말도 안 된다!”
순간이었다.
전신을 무섭게 떨던 갈무좌의 입에서 허공을 짓찢는 엄청난 광소가 터져 나왔다.
“크카카카...... 캇캇캇...... 내가 패하다니...... 나 마황제일존 갈무좌가...... 으흐흐...... 혁리혼! 네놈을...... 네놈을.......”
순간이다.
파스으...... 스으.......
그의 신형이 허공 수십 장 위로 솟구쳐 올랐고, 그의 입에서는 악마의 절규와도 같은 노갈이 짓터져 나왔다.
“혁리혼, 모든 것이 끝났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네놈을 반드시...... 악마의 입 속으로 처넣고 말 테니까...... 크크카카카...... 카카.......”
몸서리쳐지는 악마의 마소(魔笑)!
그 뒤로 혈뇌마겁과 혈군대마작 아극탑막의 피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으으...... 이 치욕은 반드시 갚으...... 리라.......”
“기억하겠다...... 영원히 잊지 않고...... 으으...... 크으.......”
그들의 신형은 아득한 잿빛의 하늘로 점점이 사라져 버리고 있었다.
* * *
“카― 흑!”
“우와와왁―!”
“카― 아악!”
지옥의 찬바람은 뇌주반도를 모조리 훑어 버리고 있었다.
비명은 서서히 잦아들었고, 마지막 지옥의 문을 파괴해 버리는 처절한 단말마를 끝으로.......
“캬아아아악―!”
휘이이이잉...... 휭.......
뇌주반도는 미칠 듯한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혁리혼은 아주 차가운 웃음을 물며 흑뇌마자를 향했다.
“군사, 잔인하다고 생각하는가?”
흑뇌마자는 완전히 얼굴이 굳은 채 망연히 뇌주반도의 사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는 꽤나 이빨 저린 음성을 흘려냈다.
“자...... 잔인하오...... 아주......!”
“악마의 힘은 악마의 힘으로 꺾어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
“그 일은 누가 하든 해야 하는 것이다. 흡사.......”
“......!”
“검은 숯을 치우는 아이의 손이 시커멓게 되는 것과 같이, 새하얀 눈을 치우는 아이의 손은 오히려 눈보다 더 깨끗하게 닦여지는 것처럼...... 악을 제거하는 데에 피를 손에 묻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휘― 이이이잉!
꽤나 차가운 삭풍이다.
이른봄의 해풍은.......
허나 그것은 순전히 흑뇌마자의 심장 속으로 파고드는 착각과도 같은 것이었다.
‘허나 아직도 믿을 수 없는 것은.......’
그는 입술꼬리를 이빨로 세차게 물고 있었다.
‘나 흑뇌마자가 알고 있는 그의 세력에는 당금 중원대륙에...... 이처럼 가공할 단체는 없다......!’
그때였다.
흡사 그의 의혹을 풀어주기라도 하는 듯, 온통 죽음의 사지로 변한 뇌주반도의 해변으로 그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인영이 속속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 수만도 족히 일백만!
순간 해변 백사장에 내려선 그들의 입에서 하늘을 짓쪼개는 엄청난 우레음이 짓터져 올랐다.
“대상천각의 일백만 정예가 태상지존(太上至尊)을 배알합니다!”
“소태상(小太上)의 옥체를 배견합니다!”
그 장엄함이여......!
‘태...... 태상이라고? 그가......? 그리고 대상천각이라니......?’
흑뇌마자의 얼굴에는 꽤나 충격적인 변화가 진동처럼 일렁였고, 그의 얼굴은 이내 푸르죽죽하게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에게 또 하나의 세력이...... 있었던가? 나 흑뇌마자가 모르는 이런 가공한 세력이......?’
한순간 그는 숨통이 턱 막히는 듯한 착각을 느끼며 주춤 뒤로 물러섰다.
‘흑......!’
혁리혼이 자신을 아주 차갑게 직시하고 있는 것을 그제야 알아차렸던 것이다.
혁리혼의 눈은 말하고 있었다.
― 흑뇌마자, 이제는 하늘을 닮으려 하지 마라! 나 혁리혼의 하늘은 있으되...... 너의 하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원히......!
부르르......!
흑뇌마자는 혁리혼의 차가운 시선이 말하고 있는 것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몸을 은연중 거세게 떨었다.
‘으으...... 그는 인간이 아니다! 신...... 신이다......!’
그는 한순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자신과 너무도 엄청난 차이로 위에 군림하고 있는 혁리혼이란 거대한 존재를.......
순간 그는 그 거대한 인간 앞에 자신의 너무도 무력한 잔상에 회의와 경악으로 뒤범벅이 된 채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주...... 주상......!”
콰― 직!
그는 피 터지도록 머리를 바닥에 짓찧었다.
굴복!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굴복임을 사람들은 안다.
하나의 작은 하늘이 또 하나의 거대한 하늘에게로 굴복하는.......
‘아아...... 그는 신이다. 도저히 인간으로는 태어날 수도 없었던.......’
마뢰사불 등은 흡사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경이와 감동의 시선으로 혁리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문득 혁리혼은 아주 부드러운 웃음을 입가에 떠올렸다.
“흑뇌마자 타하륵...... 나 혁리혼은 생애 가장 커다란 기쁨을 이 순간 느끼고 있다. 후훗.......”
그는 하늘을 보고 있는데, 그의 눈빛은 감지할 수 없는 따사로움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안다.
한 마리 야수에게도 끈끈하고 뜨거운 정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스슷...... 슷.......
문득 혁리혼은 물찬 모습으로 갑판을 박차며 허공을 날아올랐고, 그 시각은 꼭 해변에 닿은 지 일각에 이르는 시각이었다.
― 중원대륙으로 드는 혁리혼의 일보!
그 시작이었다.
* * *
노인.
그는 아주 고독한 모습으로 태사거(太師車)에 앉아 있었다.
긴 백염(白髥)을 보기 좋게 늘이고 있고, 얼굴에는 가득한 잔주름 외에도 짙은 고독과 조금은 고집스러운 기운이 엿보이는 노인.
노인이 타고 있는 태사거는 해변가에 놓여져 있었고, 그 뒤로는 일백만 대상천각의 고수들이 부복대례를 하고 있었다.
노인은 깊이 패인 주름 위로 한 줄기 눈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흐릿하게 혁리혼의 잔상을 담은 채.......
“리혼......! 우리는 꽤나 오랜만에 만나는구나...... 허허.......”
노인은 아주 담담히 말했고, 혁리혼 역시 꽤나 무정한 음성으로 노인의 말을 이었다.
“그리 오래된 시간도 아닙니다.”
“왜 그랬느냐?”
혁리혼은 하늘을 올려다본다.
너무도 새파란 하늘.
흡사 칼끝이라도 댄다면 모조리 깨져 내릴 듯한 청명한 하늘이다.
잘강.......
혁리혼은 입술을 세차게 물었다.
그는 꽤나 무뚝뚝한 음성으로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매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랬지요. 얼음할아버지는 나의 옆에 늘 계셨습니다.”
얼음할아버지......?
그랬다.
꽤나 고독스럽게 세상을 살아온 노인.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혁리혼에게 주어 버렸던 노인.
노인은 바로 금적산노 황금충이었다.
아니, 지금은 대상천각의 노태상이라는 신분.......
금적산노 황금충은 나직하게 웃었다.
“리혼, 너와 이 늙은이는 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구나...... 허허...... 그렇지 않느냐?”
혁리혼은 계속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얼굴을 숙이면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으니까.......
“나는 하나도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노야.......”
“허허...... 네 녀석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냐?”
“제기랄...... 나는 하나도 노야가 반갑지도 않은데 눈물이 나올 리가 없지요!”
혁리혼은 시선을 돌려 황금충을 바라보았고, 그의 얼굴에는 그의 말과는 달리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리혼......!”
“하...... 할아버지......!”
황금충과 혁리혼은 결국 서로의 몸을 격하게 끌어안으며 몸을 떨었다.
혁리혼은 황금충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 동안...... 고독했지요? 이 리혼이 없어서.......”
“허허...... 하나도 고독하지 않았다. 네 녀석과 나는 늘 혼자였고...... 또 나는 믿고 있었다. 네 녀석이 나에게 돌아올 줄을...... 늘 믿고 있었지.”
두 사람의 시선은 아주 따사롭게 허공에서 붙어 있었다.
휘이이이잉...... 휘잉.......
해풍은 꽤나 차가운데 사람들은 가슴이 이상스럽게 덥다고 느꼈다.
그리고 한 마리 거친 야수에게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처음 알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혁리혼은 잘게 떨리는 격동의 입술을 떼었다.
“할아버지, 이제 가요.”
“어디로 말이냐?”
“훗...... 이제 오랫동안 리혼과 같이 있는 겁니다. 이젠 할아버지를 보내지 아니하렵니다. 진심이에요, 리혼의.......”
노인 황금충은 아주 자애스런 웃음을 해풍에 날려보냈다.
“허허허...... 나는 이제 알거지가 되었는데...... 네놈에게 모든 것을 다 주고 말이다...... 해서 꽤나 조바심을 했지.”
“그게 무엇인데요?”
“네 녀석이 이 늙은이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말이다.”
“후훗......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시고 계셨는데요?”
“응?”
“저도 할아버지를 만나면...... 할아버지가 저를 모른 체하면 어찌할까 생각했으니까요......!”
“어허허...... 허헛...... 헛.......”
밤.
밤이 오려는가 보다.
아주 따사로운 해후의 밤이.......
* * *
마도사상 최대의 혈사!
그것은 정녕 무림사에 존재하고 있지도 않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가공할 대참사였다.
뇌주반도를 한 달 동안 피비린내와 시체 썩는 악취로 진동케 한 마도최강의 고수 칠십만 인의 죽음.......
그것이 단 일각(一刻)의 시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뉘라서 그 끔찍한 사실을 믿으려 하겠는가?
야수!
만마를 향해 무섭도록 번들거리는 야망의 칼을 내민 그를 향해 사람들은 한 마리 야수라고 했다.
그의 이름은.......
― 대륙천자(大陸天子) 혁리혼!
어느 날 갑자기 중원 십팔만리의 가공할 집권자로 부상한 자.
그의 힘은 순식간에 대륙을 뒤덮었고, 마교는 극도의 쇠약함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한 달.
그 짧은 시간에 뇌주반도의 여세를 몰아 천왕제군대척과 흑양밀전, 그리고 대상천각의 고수는 대륙천자 혁리혼의 지휘 아래 마교의 대륙에 깔려 있는 크고 작은 일만여 분타를 모조리 파괴해 버린 것이다.
대지를 질타하며 구르기 시작한 하나의 거대한 혈륜(血輪)!
쿠쿠쿠― 쿠쿵―!
쿠르르르...... 릉.......
그리고 그와 함께 터지는 한 사람의 추상 같은 명령!
― 마도의 수천년 영광은 끝났다! 허리를 꺾지 않는 자, 모조리 그 허리를 잘라 버려라!
뉘라서 주저할 텐가?
그것은 대륙의 집권자, 대륙천자의 지상명령인 것을......!
― 마도무림은 이제 끝났다! 영원히 군림하지 못하리라!
― 대륙천자가 중원을 집권하고 있는 한은......!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그 한마디에 지배되었고,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숨막히는 전율을 서서히 느끼기 시작했다.
― 마교는 패했으나...... 절대 이렇듯 허무하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또다시 엄청난 피보라를 부르고야 말 것이다. 마도의 영광을 위하여......!
중원인들은 오매불망 그 한 가지 닥쳐올 혈운을 불안처럼 머리 위에 이고 다녔다.
침묵.
아주 싸늘하게 식어 버린 침묵과 고요가 대륙을 서서히 밟아 내리고 있었다.
고요와 정적.
그것은 때때로 그 어떤 유의 공포보다도 더한 전율을 사람의 가슴속에 안겨준다.
서서히 숨통을 노려보며 소리 없이 다가서는 죽음과도 같은 전율을.......
* * *
사천성 벽산.
모든 어둠이 그곳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뭉클...... 뭉클.......
대지를 깔아 내리는 짙은 야색(夜色)은 벽산을 굽이돌아 요사스럽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천단마애.
벽산의 중앙, 어둠 속을 비집고 괴괴하게 솟아 있는 마애절벽(魔涯絶壁).
그것은 흡사 영원한 마의 상징처럼 어둠 속에서 음악한 악마의 숨결을 토해내고 있었다.
휘리리링...... 휘.......
천단마애의 정상.
그곳에는 방원 백여 장에 달하는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그곳에는 하나의 찬연한 황금루각(黃金樓閣)이 오연하리만치 그 당당한 품위를 드러내고 서 있었다.
벽산을 굽이돌아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고루거각.
아는가?
이곳이야말로 지상최강의 만마(萬魔)가 숨쉬고 있는 곳임을!
마(魔)― 교(敎)―!
그곳은 어둠이 시작되는 곳이며 악마의 성전이었다.
마교를 굽어보고 있는 천단마애 정상의 구층 황금루각.
그곳은 영원한 마도를 지배하는 마신(魔神)의 성전이다.
― 천단(天壇)!
바로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처소였다.
번― 쩍!
어둠 속에 휘황한 빛을 뿌리며 서 있는 그.......
* * *
“천마대밀(天魔大密)이라고?”
사내.
너무도 호화로운 태사의에 너무도 아름다운 자태를 묻고 있는 사내.
그는 참으로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아름다움까지 모조리 일신에 지니고 있는 사람과 같다.
그는 높은 태사의에 고고한 품위로 앉아 있었고, 그 좌우로는 일백여 명의 가공할 마기를 뿌리는 인물들이 허리를 접은 채 시립해 있었다.
그 열병(閱兵)의 끝.
그곳에는 지금 한 미장부가 섬칫하리만치 무표정한 모습으로 뻣뻣이 서 있었다.
대략 이십여 세 가량 되었을까?
걸물의 품위를 지닌 청년은 좌우로 십여 명의 범상치 않은 인물들을 대동한 채 태사의의 사내를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아래 그 누구라도 이렇듯 당당한 모습으로 태사의에 앉아 있는 인물을 바라볼 수는 없을진대.......
왜냐면 그는 마도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마황제일존 갈무좌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라도 그의 앞에서 허리를 뻣뻣이 펴고 설 수 없다!
그것은 이미 마도를 지배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율법이 된 지 오래다.
“후후훗...... 마존은 아마도 처음 듣는 세력일 것이오.”
걸물의 모습을 지닌 청년은 꽤나 담담히 말을 했고, 갈무좌는 입꼬리를 아주 묘하게 말아올렸다.
‘천마대밀이라니...... 그런 세력이 대륙에 있었던가?’
갈무좌는 이 순간 끝없는 의혹에 싸여 있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의 눈앞에 있는 미청년은 대략 반시진 전에 마교를 찾아들었다.
열 명의 범상치 않은 수하를 대동하고.......
이름을 마랍격(魔拉格)이라고 했던가?
그는 아주 당당히 마교로 들어섰고, 느닷없이 들어서는 그들을 향해 마교의 고수들은 당연히 저지를 했으나.......
그들은 미청년의 수하에 의해 처참하게 허리를 꺾이고 말았다.
가히 존재한다고는 믿을 수도 없었던 엄청난 고수!
그들은 순식간에 마교 고수를 꺾어 버리며 이곳 천단까지 들이닥친 것이다.
너무도 당당히.......
허나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안색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담담했고, 그들을 맞이하는 모습은 너무도 고요했다.
“이곳까지 들어온 기세를 본좌는 높이 사지. 그리고 천마대밀이라는 세력의 주인이라는 그대의 방문도 환영하오.”
천마대밀?
미청년 마랍격은 그곳의 주인이라 했다.
그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나.......
“허나 본좌를 방문한 것이...... 별 의미가 없는 것일진대...... 본 교를 무시하고 본 교의 고수들을 죽였던 것이라면.......”
갈무좌는 꽤나 아름다운 미소를 얼굴에 떠올리며 마랍격을 바라보았다.
웃음.
그것은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웃음이나 아름다운 뱀의 웃음이다.
“......!”
“마랍격, 그대와 열 명의 그대의 수하들은...... 이곳에 목을 잘라 놓아야 할 것이네.”
그의 모습은 아주 품위가 있었다.
그는 어떤 말을 어떤 상황에서 하더라도 그런 품위를 늘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순간 마랍격은 차갑게 웃었다.
“후훗...... 마존은 본좌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오.”
자격이라니?
그는 지금 마황제일존 갈무좌에게 자격이라고 했는가?
갈무좌의 얼굴이 일그러졌고, 대전을 메우고 시립해 있던 백여 명의 고수들은 일제히 칼을 뽑아들었다.
촤촤촤― 촹!
“미친자!”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그 따위 망발을 해대다니!”
“목을 잘라 개에게 주리라!”
마교 고수들의 얼굴은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살기를 폭출시켰다.
허나 갈무좌는 가볍게 한 손으로 그들의 분노를 저지하며 조용히 웃는다.
“후후...... 그대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가?”
“본좌 역시 마도를 걷는 사람이기 때문이오.”
마랍격은 주위에서 쏟아내는 엄청난 살기에도 아랑곳없이 아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갈무좌는 순간 눈가에 이채를 띠었다.
‘걸물이다......! 꽤나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다. 최소한 나 갈무좌와 버금갈 수 있는.......’
놀라운 사실이었다.
당금 무림에 그와 버금갈 수 있는 인물이라니.......
갈무좌는 내심 감탄을 흘리며 붉디붉은 입술을 떼었다.
“후훗...... 같은 마도를 걷는 사람이라고? 그런 이유 때문에?”
“그대 마존은 마도의 역사에 수치스러운 오점을 남긴 사람이오. 정도구류(正道九流)의 족속들에게 치욕을 당하다니......!”
“......!”
“마도를 걷고 있는 본좌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이외다!”
순간 갈무좌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켰다.
치욕!
그렇다.
그것은 비단 마도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갈무좌 자신에게도 엄청난 치욕을 안겨준 것이 아니던가?
마도최강의 고수 사십만여의 떼죽음.
마랍격은 꽤나 차가운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본좌가 찾아온 것은 실추된 마도의 영광을 다시 찾고자 함이오!”
― 마도의 영광을 다시 찾자!
마랍격의 얼굴에서는 한순간 무지막대한 마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본좌 마랍격은 나 일개인의 이익을 위함이 아니오. 또한 천마대밀을 위함이고자 하는 것도 아니오. 오로지 낙후되고 실추되어지는 마도의 영화를 다시 찾고자 당신을 찾은 것이오. 또 마교와 손을 잡고자 함이외다!”
― 손을 잡자! 마도의 영화를 위하여!
평범한 말이나 이것은 엄청난 대역사를 조성하자는 의미 있는 말이 아닌가.
꿈틀.......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얼굴에 묘한 경련이 일었다.
그는 야망이 남다른 사람이다.
허나 지금.......
마교는 엄청난 힘의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 아닌가?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나 마도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손을 잡고자 하는 인물이 나타나다니......!
침잠해 들던 갈무좌의 심중에 야망이 또다시 번들거리는 칼빛을 뿌린 것이다.
갈무좌.
그러나 그 위인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자가 아니다.
지금처럼.......
“마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더 좋을 것은 없네. 허나...... 무엇으로 본좌가 그대를 믿고 또 천마대밀과 함께 세력을 같이할 수 있겠는가?”
“그대에게 천마대밀의 무상령부(無上令符)를 주지!”
마랍격은 결연한 음성으로 단호히 입을 열었다.
― 무상령부를 주겠다!
그것은 모든 세력을 갈무좌에게 넘겨주며 마랍격, 그 자신 또한 마교의 사람이 되겠다는 말이 아닌가?
꿈틀.......
갈무좌의 두 눈에서 한 줄기 새파란 마광이 쏟아져 나오며 안면이 진동을 일으켰다.
눈.
“......!”
“......!”
두 사람의 눈이 허공에서 아주 강렬한 빛으로 맞닥뜨렸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아름다운 입술을 비집고 잔잔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마도의...... 영광을 위하여......!”
순간 대전을 꽉 메우고 있던 백여 명의 고수들의 입에서 어둠을 갈가리 찢는 경악의 외침이 짓터져 나왔다.
“마도를 위하여―!”
“위하여!”
천단의 밤.
그것은 또 하나의 마력을 탄생시키고 있었다.
아주 무서운 마의 힘을.......
무섭도록 침잠해 드는 마교의 세력에 한점 기름을 부어 불을 태우는 이 의미는 무엇인가......?
* * *
차가운 달.
계집아이의 탐스러운 둔부만큼이나 하얗고 아름다운 십오야(十五夜).
그 아름다운 달은 호수의 수면 위에도 있었고, 호수의 수면보다도 더 아름다운 사내의 눈 속에도 있었다.
스― 윽!
그는 꽤나 오랫동안 호수변을 걷고 있었다.
야수의 냄새가 짙게 나는 자.
호수를 중심으로 끝없이 펼쳐진 황금의 고루전각들.
바로 천왕제군대척이다.
사내는 바로 그 천왕제군대척의 위대한 주인이며 대륙의 천자로 불려진다.
혁리혼.......
‘나는 잊고 있었다. 천극마분도에서 마교에 대한 생각만을 하고 있었던 터에...... 옥면마존 사무향...... 그녀가 돌연 소리 없이 어디론가로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이다......!’
그는 옥면마존 사무향의 이유 없는 실종을 기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이미 중원을 떠난 것일까?’
자꾸만 그녀를 되새겨 생각하다가 문득 그는 미묘한 웃음을 물었다.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그녀의 옷을 벗겨야 했던 일을.......
피식......!
혁리혼은 실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에게 있어 그와 같은 일은 최소한 아무런 의미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원을 떠났다면 오히려 그녀에게 좋은 일이고, 나 또한 번거롭지 않아 좋다. 기억에서 그녀의 모습을 잊어버리자. 좋은 일일 테니까.......’
문득 그는 가볍게 섭선을 펼쳤다.
촤라라라락―!
그것은 흑천마황선이었다.
흑뇌마자가 그에게 준 것으로 흑양밀전의 지고한 영부(令符)와 같은 것이다.
화라라락......!
그는 가볍게 섭선을 부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그에게 야망과 강렬한 포부를 안겨주는 어둠의 하늘...... 그 경외감!
시리도록 차갑고 환한 월광......!
그 월광은 은가루처럼 잘게 부서져 주위의 수많은 꽃잎 위에도 떨어졌고, 호수와 혁리혼의 얼굴에도 부어지고 있었다.
일순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혁리혼의 고요로운 눈빛이 아프게 흔들렸다.
저 하늘...... 저 수많은 별들을 보고 있노라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리혼에게 가장 따스하게 해주던 사람.......
가장 추악한 얼굴에 꼽추의 등마저 갖고 있으나.......
혁리혼...... 너에게는 부모 이상으로 따스한 정을 주던 사람.......
아아...... 할아범.......
‘할아범...... 할아범은 가셨지만...... 당신의 마음은 늘 이 리혼의 가슴속에 남아 따스하게 맴돕니다.......’
문득 그는 가슴이 저미어 오는 아픔을 느꼈다.
칼.......
한 자루 칼이 할아범의 가슴을 저미고 들 때.......
그 모습이 어렸던 과거 혁리혼의 가슴을 멍들게 했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할아범.......’
혁리혼은 입술을 물었다.
그때였다.
사르르륵.......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야음을 타고 혁리혼의 가까이로 들려왔다.
“......?”
혁리혼은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