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륙천자-24화 (25/31)

第 24 章 破天魔商鈴의 의미

‘나는 과거 그 말을 그저 무심코 흘려들었었는데......?’

문득 꽤나 강렬한 충동이 그의 마음속에서 일었다.

어떤 형용할 수 없는 의혹과 함께...... 파천마상령을 흔들고 싶어하는 충동이......!

딸랑...... 딸랑딸랑......!

혁리혼은 파천마상령을 마구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후훗...... 얼음할아버지는 내가 그 당시 어리다고 아주 공갈을 그럴듯하게 쳤는데...... 마치 이 파천마상령이 무슨 요술방울이나 되는 듯이 말이다...... 후훗.......”

딸랑딸랑...... 딸랑.......

파천마상령은 청아한 울음을 계속 터뜨렸고, 혁리혼은 그 소리에 파묻혀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요술방울이 아님을 나도 이제는 알지만...... 후훗...... 나는 이 방울을 영원히 간직할 것이다. 얼음할아버지의 마음이 들어 있는 방울이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이것은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속하, 파천마상로(破天魔商老)가 태상지존(太上至尊)의 명을 받습니다!”

공간을 은은히 짓떨어 울리는 엄청난 우레음이 백여 장 밖에서부터 들려오는가 싶자.......

팟스스스.......

이내 하나의 괴영이 서재 바닥에 오체투지(五體投地)의 모습으로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허리에는 황금으로 만들어진 금반산(金盤算)을 꿰어차고 있고, 고고한 학사(學士)의 모습을 지닌 연륜을 추측할 수 없는 노인!

그의 전신에서는 범상치 않은 서기로움이 구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

혁리혼은 잠깐의 시간이 흐를 동안 멍한 표정으로 노인을 굽어보고 있었다.

도대체가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혁리혼은 그때까지도 어리둥절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이오, 노인? 그리고...... 당신은 누구요?”

“속하는 대상천각(大商天閣)의 서열 일 위이며, 파천마상령주(破天魔商鈴主)이시며 태상이신 각주를 호위하는 파천마상로입니다.”

“태상? 누가...... 말입니까?”

혁리혼은 여전히 얼떨떨 물었고, 노인 파천마상로는 격동에 몸을 떨며 이마를 바닥에 재차 박았다.

콰― 악!

“파천마상령을 지니고 있는 분...... 그분이 곧 대상천각의 주인이시자 파천마상령주이며 태상이십니다!”

“내...... 내가?”

혁리혼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고졸한 웃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말했다.

“귀하는 무언가 잘못 알고 있는 듯하오. 이 파천마상령은 과거 내가 어렸을 때...... 금적산노 황금충이란 분이 주신 것으로.......”

“그분은 본 각의 노태상(老太上)이십니다. 태상이시여!”

혁리혼은 입술이 굳어져 버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그...... 그분이...... 노태상...... 이라고......?”

* * *

달은 차면 기우는 법이라던가?

혁리혼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월광이 잘게 부스러져 창문을 통해 드는데에도 아주 오랫동안 그곳에 석상처럼 서 있었다.

‘얼음할아버지가......?’

혁리혼은 이제 지난 과거가 그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편월이 가득 차여져 이내는 둥근 보름달을 만드는 것처럼.......

그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에게 숨겨져 있던 것들을 깨닫고 있었다.

부르르.......

혁리혼의 넓은 어깨가 잘게 부서졌다.

‘얼음할아버지......! 당신은 나에게 그렇듯 많은 것을 주었는데도...... 나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후훗...... 리혼은 꽤나 바보스러운 아이입니다. 꽤나 말입니다.......’

그와 파천마상로는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가?

혁리혼은 주체할 수 없는 격정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분은...... 어디 있는가? 상로?”

파천마상로.

그는 조용히 허리를 접은 채 혁리혼의 맞은편에 있다가 입술을 떼었다.

“중원에 드시면 태상께서는 노태상을 제일 먼저 만나시게 될 것입니다...... 태상이시여!”

혁리혼은 꽤나 마음이 급한지 서재 안을 맴돌았다.

“중원에 들어 제일 먼저라......? 흠.......”

그러다 문득 그는 입가에 예의 퇴폐적이고 차가운 웃음을 습관처럼 떠올렸다.

“후훗...... 할아버지와의 재회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면 안 되지! 후훗......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해놓았다. 그것을 할아버지께 드리리라.”

“......!”

“상로!”

파천마상로는 깊숙이 허리를 꺾었다.

“태상......!”

“후훗...... 대상천각은 세인들에게 많은 시간을 끌어 왔다. 상인(商人)들의 모임이라는 보잘것없는 자들로.......”

“......!”

“후훗...... 그것을 나는 중원에 돌려주리라. 두 가지로 하여.......”

두 가지.

혁리혼은 파천마상로에게 꽤나 많은 이야기를 전음으로 흘렸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음으로 받고 있던 파천마상로의 어리둥절하던 눈빛은 이내 차차 극도의 경악으로 뒤집히고 있었다.

“그...... 그건......!”

부르르......!

그는 전신을 엄청난 진동 속에 떨고 있었다.

경악과 두려움...... 그리고 한 인간의 위대함을 보는 듯 그는 이내 머리를 바닥에 처박았다.

“태...... 태상―!”

혁리혼은 고졸한 웃음을 떠올렸다.

“후훗...... 할아버지께서 그 정도의 선물이라면 기뻐하실까 모르겠는데?”

“그분에게...... 가장 멋진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런가?”

선물!

그들은 무슨 말을 한 것일까?

“사흘 후...... 내가 중원에 도착하는 그날...... 그 선물은 반드시 그분 앞에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두 가지 중 한 가지가......!”

혁리혼은 아주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파천마상로는 격동과 흥분으로 몸을 떨었다.

“태상의...... 명을 반드시 완수할 것입니다!”

“후훗...... 가시게, 상로!”

파스스스...... 스.......

순간 상로의 신형은 방안에서 안개 흩어지듯 사라져 버렸다.

그를 바라보던 혁리혼은 문득 몸을 돌리며 조그맣게 뇌까렸다.

“사흘 후...... 중원으로 간다. 피를 밟으며......!”

무언가?

이 밤은 심장을 굳게 하는 무서운 의미가 담겨 있었다.

혁리혼의 마지막 말.

― 피를 밟으며......!

그 한마디는 꽤나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여운처럼 맴돌고 있었다.

* * *

차디찬 월광이 대지 위에 소리 없이 내리는 밤.

바다는 그 아름다운 달을 담았고, 그 바다와 달은 그녀의 두 눈에 소리 없이 새겨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빼앗긴 여인.

그녀는 한 야수 같은 사내를 생각하면서 몸이 야위어 갔다.

가공한 내력을 지닌 여인답지 않게.......

맨 처음, 그녀는 그 사내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고 증오했었으나 그것은 마음 저 한구석으로부터 점차 사라지더니.......

“아아.......”

그녀는 꽃잎 같은 입술 사이로 영고(靈苦)가 가득 찬 신음을 터뜨렸다.

허무와 고독의 잔상은 아주 오래 전부터 그녀의 얼굴에 생긴 것이다.

한 사내가 천극마분도로 들어서게 되면서부터.......

그녀는 문득 창가에 매달려 있는 새장을 바라보았다.

한 쌍의 아름다운 백매조(白梅鳥)!

뾰르르릉...... 쫑쫑.......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

하나 빙여설은 이미 그 새의 노랫소리에 대한 의미를 잊고 있는 여인이다.

‘나는 너희들의 아름다운 지저귐이 새의 노랫소리인 줄 알았으나...... 새의 울음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강한 인간에 의해서 갇혀 사는 너희들의 슬픔이 담긴.......’

그녀는 가만히 새장을 만져 갔다.

“너희들은 나를 닮았구나. 자유를 잃고 가진 것을 모두 빼앗긴.......”

뾰르르르릉...... 뿅뿅.......

빙여설은 입가에 아름다우나 허무의 빛이 드리워진 미소를 떠올렸다.

“하지만 너희들은 둘이니...... 얼마나 좋으랴.......”

그녀는 새장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날아라! 아주 멀리......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서 사랑을 하고...... 많은 것을 찾고 살려무나.......”

파드드드득―!

화드득.......

두 마리 새들은 어둠 속을 날갯짓하여 날아올랐고, 그들이 밀어낸 어둠은 빙여설의 몸에 자욱한 고독과 슬픔의 덩어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주루룩......!

그녀의 악문 입술가로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어느샌가 물렸다.

“짐승 같은 자.......”

그녀는 잘게 어깨를 떨었다.

미워하고 증오했으나 그녀의 뇌리 속을 영원히 떠나려 하지 않는 하나의 영상.

“아아...... 하지만 그를 욕하려 하나...... 나의 마음속에 이는 이것은 무어란 말인가? 고통도 아니고 슬픔도 아닌 이 빛깔은.......”

알 수 없는 분홍빛 빛깔이 그녀의 가슴을 감싸고 있다.

누구를 향한 것일까?

잘강.......

그녀는 화편과도 같은 입술을 세차게 피가 나도록 물었다.

“나의 몸에 더러운 피가 있다...... 짙은 욕정을 가진 더러운 피가......!”

왈칵......!

그녀는 품속에서 하나의 화려한 해옥석으로 만들어진 비수(匕首)를 불현듯 꺼내들었다.

번― 쩍!

월광을 받아 차디찬 빛을 뿌리는 칼.......

“이 더러운 피를...... 씻어내 버리자...... 아주 깨끗하게.......”

그녀는 처절하게 중얼거렸고, 칼은 그녀의 따스한 심장이 고동치는 심장을 깊숙이 찔러들었다.

파아아앗―!

바로 그 순간이다.

턱......!

하나의 손이 빠르게 그녀의 심장으로 쑤셔드는 칼을 붙잡았다.

월광을 받아 차가우나 시리도록 아름다운 손.

사내.

그것은 한 사내의 손이다.

빙여설, 그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손이기도 한.......

“헛―!”

빙여설은 놀라 빠르게 몸을 돌렸다.

“그 피는 그리하여도 씻기지 않는다, 여설......!”

그녀의 뒤.

언제부터인가 한 사내가 조용히 서 있었다.

“너...... 네놈은...... 혁리혼......!”

빙여설은 사내의 입가에 흐르는 퇴폐적이고도 야수의 냄새가 짙게 풍기는 미소를 보며 하얗게 얼굴빛을 탈색시켰다.

혁리혼은 조금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 피는 바로 사랑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씻어내도 씻기지 않을 것이다......!”

사랑......?

빙여설은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사...... 사랑......?”

“후훗...... 사랑이지.”

“미...... 미친...... 자식! 네 마음대로......?”

“사실이다. 너는 속이고 있을 뿐이지. 위선이라는 아주 질기디질긴 가죽을 너는 얼굴에 쓰고 있다.”

혁리혼은 조금은 차게 말했다.

빙여설은 입술꼬리를 잘게 부수며 발작적으로 외쳤다.

“더럽고 추잡한 자식! 죽여 버릴 테다! 본녀를 모욕한 죄로!”

동시에 그녀는 저돌적으로 혁리혼을 향해 비수를 사나운 기세로 그어 갔다.

카아...... 카아...... 카아.......

허나 혁리혼은 차게 웃었다.

“훗...... 빙여설, 너는 바보다. 아주 못난 계집애지.”

찰나간 그는 가볍게 그녀의 비수가 들린 손을 홱 뿌리쳤다.

“아앗―!”

그녀는 짧은 비명을 터뜨리며 덮쳐들던 기세를 멈추지 못하고 혁리혼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거세게 발버둥쳤다.

“놔! 이 짐승 같은...... 읍......!”

그녀는 한순간 터뜨리던 외침을 뚝! 그쳐 버리고 말았다.

입술.

늘 차다고 보아 왔던 사내의 입술이 너무도 뜨거운 불길을 토하며 그녀의 입술을 막아 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뿐이었다.

“흑.......”

그녀는 이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분노한 얼굴로.......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있는 혁리혼의 입가에 부드러운 기운이 머물렀다.

“여설, 나와 함께 저 광활한 중원대륙으로 가자.”

“네놈을...... 네놈을...... 나는 증오해...... 네놈을......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네놈을 증오하고 말 테다!”

그녀는 혁리혼의 말을 거부하며 그의 품속을 빠져 나오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허나 혁리혼의 손은 뜻밖에도 강하게 그녀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나 혁리혼의 여인의 자격으로 가는 것이고, 너는 영원히 혼자이지 않아도 된다, 여설...... 이것은 나의 진심이다.”

허나 빙여설은 혁리혼이 말을 거듭할수록 더욱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거부했다.

“나를 유혹하지 마...... 나는 너를...... 증오하니까.......”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과도 같다고 하던가?

특히 여인의 마음에 있어서는.......

그중에서도 자존심이 강한 여인일수록 그렇다고 하던데?

와락......!

혁리혼은 거세게 그녀의 허리를 죄어 안았다.

“훗...... 나는 알지. 빙여설, 네 마음속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계속 거부해 보렴.......”

혁리혼은 조금 얄궂게 말을 하며 빙여설의 붉디붉은 입술을 또다시 빼앗았다.

“흐읍......!”

탁! 탁......!

그녀는 몇 번인가 혁리혼의 가슴을 두 주먹으로 치며 거부했으나 얼마지 않아 스르르 전신의 힘을 잃고 말았다.

와르르......!

그녀는 꽤나 많은 것이 가슴속에서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맞아......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라.......’

월광이 두 사람의 입술 끝에서 화려한 폭발을 일으키며 은가루를 뿌렸다.

빙여설은 점차 눈부시도록 희디흰 팔을 둘러 혁리혼의 목을 감싸 가고 있었다.

‘아아...... 사랑의 악마야...... 당신은......!’

빙여설.

그녀는 그 말을 오랫동안 입 안에서 뇌까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푹신한 곳에 쓰러지고 있다는 것을 몽롱한 와중에 아련히 느끼고 있었다.

사내의 손이 거칠게 자신의 모든 것을 유린할 때.......

파르르......!

그녀는 몸을 떨었다.

손.

늘 거부해 왔으나 또한 마음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타협을 모르는 무례한 사내의 손을.......

“아아...... 아.......”

시리도록 하얀 월광이 잘게 부서지는 여인의 가지런한 치아는 고혹적이고도 아름답다.

불이었다.

무례한 사내의 몸은.......

언제나 녹을 줄 모르는 빙석(氷石)을 순식간에 녹여 버리고야 마는.......

사내는 아주 뜨거운 불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나는...... 당신을...... 사랑했지요...... 하아...... 진심입니다...... 이것만은.......”

새하얀 월광이 하늘 저편으로 기울어질 때, 그녀는 사랑이라는 애매모호한 것을 아주 잘 아는 여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 * *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덮고 있는 수백 척의 거선(巨船).

촤촤촤촤― 촤촥―!

파아아아.......

그것은 모조리 중원대륙을 향해 기선을 돌리고 있었다.

파파팟― 팟!

미친 듯한 해풍이 물보라와 함께 그의 전신을 삼켜 버리고 있는데도 그는 무섭도록 차가운 시선으로 지평선 저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하나의 땅.

사나이의 거대한 야망을 무지개처럼 펼칠 수 있는 대륙, 중원이 있다.

한 장의 서찰.

혁리혼의 손에 들린 서찰 속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마존...... 천극마분도에 도착한 육황대마성좌는 본 교의 계산처럼 양패구상한 것이 아닙니다―(중략)―계산에 변경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한 첩자에 의해서 마황제일존 갈무좌에게 전서구로 날아가던 서찰이다.

반로 등에 의해서 거두어졌고, 바꿔치기되었던.......

문득 혁리혼의 손에 들려 있던 서찰이 그대로 한줌 재가 되어 해풍에 날렸다.

파쓰쓰...... 쓰...... 치익!

“이렇게.......”

혁리혼의 입에서 무감동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너는 대륙의 영원한 고혼으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갈무좌!”

위이이이잉― 위잉!

해풍은 미친 듯이 혁리혼의 몸을 날려 버릴 듯이 불어왔다.

촤아아아...... 촤아.......

처― 얼― 썩!

뱃전으로 무섭게 부딪쳐 오는 파고.

그리고 한 사내의 무서운 눈동자.

한 마리 늑대의 눈을 지닌 그의 얼굴이 중원을 향했다.

* * *

“후훗...... 혈군대마작 아극탑막, 그대는 이 서찰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내.

하늘 아래 존재하고 있는 아름다움과 온갖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는 사내.

아름답다.

사내의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표현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와 같은 끝없는 감탄뿐이다.

손.

차라리 눈이 부셔 인간의 손이랄 수조차 없는 옥수.

그런 사내의 손에는 한 통의 서찰이 들려 있고, 그 서찰은 또 한 사내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일신에는 섬뜩한 핏빛의 혈포를 입고 있고, 머리와 눈과 얼굴...... 그리고 몸 전체가 핏빛 일색을 띠고 있는 공포스러운 모습을 지니고 있는 인물.

아름다운 사내는 그를 가리켜 혈군대마작 아극탑막이라고 하던가?

결단코 그와 같은 이름은 당세에 둘이 될 수 없는.......

― 천축제일군림좌(天竺第一君臨坐) 아극마세( 克魔勢)!

그 악마의 주인.

오직 그 한 사람에 국한될 수 있는 이름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존재에게 하대할 수 있는 인물은 단 한 사람...... 마황제일존이라는 마도의 영원한 신뿐이다.

마황제일존 갈무좌!

그는 부드러운 시선으로 혈군대마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찰.......

<마존, 우리의 계산은 한치의 틀림도 없습니다. 육황대마성좌는 모조리 양패구상하여 원래의 힘 대부분을 잃고...... 결국 이들 육황대마성좌는 칠 일 후, 중원으로 돌아갈 듯한 기미를 보입니다. 마존이시여! 이 순간을 놓치시면 안 될 것입니다!>

꽤나 급박한 필체로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반로와 광유자 등이 바꿔치기한 전서구의 서찰이 아니던가?

혈군대마작 아극탑막은 그 서찰을 들여다보는 순간 눈에서 무서운 혈광을 뿜어냈다.

“크흐흐흣...... 이 서찰대로 그들은 머지않아 이곳 뇌주반도로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분명 마존의 칼 아래 모조리 중원을 밟기도 전에 도륙될 것입니다. 본 마교의 첩자는 늘 정확했으므로.......”

순간 갈무좌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시선을 끝없이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굽어보며 바람결처럼 또 다른 쪽을 향해 묻는다.

“혈뇌, 너도 같은 생각이냐?”

혈뇌마겁.

마도의 영원한 제일지(第一智)라고 평가되어지고 있는 그.

그는 음악한 웃음을 입꼬리에 매달며 허리를 접었다.

“쿠쿠쿠쿳...... 마존이시여! 첩자의 서찰 따위를 정녕 믿으신다면...... 혁리혼이란 자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그의 능력이라면 첩자 한 사람 따위는 눈감고도 찾아낼 수 있는 인물입니다.”

꽤나 의미 있는 말이다.

다시 말한다면.......

― 그 서찰은 가짜입니다.

그 말이 아닌가?

갈무좌의 입가에 봄바람처럼 훈훈한 미소가 맴돌았고, 혈군대마작은 그 웃음이 흡사 독사의 요악한 웃음처럼 느껴졌다.

“혈군대마작, 이것이 너로 하여금 초강의 힘은 있으나 중원을 가질 수 없는 조그맣고도 엄청난 차이임을 너는 아느냐?”

“......?”

혈군대마작은 그의 심중을 깨닫지 못하는 듯 의혹의 빛을 얼굴에 떠올렸다.

갈무좌의 눈가에 순간 차가운 빛이 칼끝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어리석은 자...... 만약 네 머리가 혈뇌의 반...... 아니, 열 중 하나만이라도 쫓아간다면 능히 하나의 하늘이 되고도 남으리라.”

그 말.

혈군대마작을 혈뇌마겁의 아래로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혈군대마작의 얼굴은 그만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허나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철저하게 길들여진 곰처럼.......

갈무좌.

그에게는 무서운 마력이 있었다.

아름답고 처절하리만치 고혹적인 미소이나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빨아들였고 독사의 웃음처럼 무서운 악마의 숨결이 그 미소 속에 숨겨져 있었다.

그 웃음을 대하는 자는 늘 허리를 꺾고야 만다.

그 누구이든.......

촤촤촤촤― 촤아.......

처― 얼― 썩!

뇌주반도의 해변을 후려치는 파도는 거셌다.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갈무좌의 입술이 떼어진 것은 꽤나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후훗...... 어서 오라...... 육황대마성좌여!”

파다다닥!

바닷바람에 그의 옷자락이 아주 멋들어지게 휘날렸고, 그는 당당하게 거대한 대해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은 거인과도 같다.

아주 아름다운 거인......!

“우후후...... 본좌는 너희들의 힘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안다.”

그는...... 모두 알고 있었는가?

무서운 자, 마황제일존 갈무좌!

“혁리혼, 너는 그것을 감추고 오히려 힘이 흩어져 있는 것처럼 허(虛)를 위장해 본좌를 속이고 본좌가 방관해 있을 것을 계산하여 허를 찌르려 했는가?”

“......!”

“그러나 본좌는 그것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한다.”

그때였다.

쿠― 쿵―!

대해의 수평선에 까만 흑점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와...... 왔습니다, 마존!”

혈뇌마겁과 혈군대마작의 입에서 순간 격동의 외침이 숨가쁘게 터졌다.

갈무좌의 얼굴에 떠오르는 기색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평정했고, 그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은 무섭도록 소름 끼치도록 악마의 숨결을 닮아가고 있었다.

“허를 찌른다고 생각하면서 중원대륙을 밟으려 하나...... 후훗...... 나는 그 허 대신 이곳에 죽음을 깔아 놓았다. 오십만 마도최강의 고수와 이십만 아극마세의 정예를 말이다.”

도합 칠십만의 고수!

이것이야말로 하늘 아래 마도의 힘을 모조리 합한 것이 아니겠는가?

바다에 있는 자는 퇴로가 없기 마련이다.

때문에 힘은 절반으로 줄어 버리나 땅을 딛고 있는 자는 오히려 힘이 배가된다.

그것은 병법(兵法)의 첫장을 기술하는 아주 간단하고도 정연한 병리(兵理)!

“우후훗...... 저 수백 척의 거선에 타고 있는 고수들...... 대륙의 흙을 밟기 전에 모조리 수중고혼으로 만들어 놓으리라!”

이를 드러내고 하얗게 웃는 그.

그를 바라보는 혈군대마작은 부르르 몸을 진동시켰다.

‘으으...... 저 수많은 사람들을 모조리......! 악마......! 나 혈군대마작은 잔인하다. 최소한 수백 명의 인물을 파리 죽이듯 했던...... 허나 그는 나보다 수백 배 더 잔인한 악마 같은 자다!’

혈군대마작은 심장 짓떨리는 냉기를 들이키고 말았다.

혈뇌마겁은 급격히 허리를 꺾으며 칙칙하고도 음습한 웃음을 흘렸다.

“쿠쿠큿...... 마존이시여! 이제 볼 것도 없습니다, 이 대결은!”

“.......”

“본 마교의 승리는 잠시 후면 눈앞에서 현실로 굳혀질 것입니다.”

혈뇌마겁은 아주 자신 있게 결정했고, 마황제일존 갈무좌는 단애 위에서 해상을 굽어보며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그는 문득 하늘을 본다.

뜬구름만큼이나 아름답고 부드러운 사내.

“우훗훗훗...... 참으로 긴긴 세월이었다. 저 하늘의 주인이 되기 위해 보낸 세월은.......”

하늘의 주인!

너무도 무섭고도 엄청난 패도광망의 말이 아닌가?

허나.......

마황제일존 갈무좌...... 그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이백여 장 앞으로 밀려드는 수백 척의 거선을 굽어보고 있던 혈뇌마겁은 시뻘건 잇몸을 드러내며 음악한 웃음을 흘려냈다.

“쿠쿠쿠...... 쿠...... 마존께서는 이제 그 긴 세월의 의미를 보시게 될 것입니다.”

이어 그는 수중에 들고 있던 하나의 흑색 깃발을 빠르게 허공에 들어올렸다.

파라라락......!

찰나 보라!

스스스...... 스슷.......

휘이이― 익―!

해변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인물들.......

그 수는 족히 수십만에 이르는 숫자인데 그것은 순식간에 중원대륙조차 파괴시켜 버릴 가공할 힘의 기세였다.

위이이이― 잉― 위잉―!

해풍은 아주 차갑게 죽음의 기운을 싣고 허공을 가르는데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악마 같은 미소가 그 속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후훗...... 혁리혼, 너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으리라. 네놈의 계산 속에 있는 허를 찌르는 본좌의 계를! 우하핫핫핫...... 핫.......”

애초 전서구를 통해서 상대에게 허를 보이도록 조작했던 혁리혼의 계!

허나 그것은 마황제일존 갈무좌의 손바닥 안에 있던 계산이었다.

그리고 이제 갈무좌는 그것을 역으로 치는 것이다.

죽음.......

뭉클.......

무시무시한 죽음의 바람이 뇌주반도를 후려치고 있었다.

* * *

촤촤촤― 촤아아아.......

미친 듯한 파도.

그리고 파도를 밀치며 장엄하게 밀려드는 수백 척의 거선!

언제부터인가?

“.......”

“.......”

맨 선두의 호화로운 거선의 갑판에는 오 인(五人)이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뇌주반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혁리혼을 선두로 한 죽마인예, 마뢰사불, 천극화련 빙여설, 그리고 흑뇌마자 타하륵이었다.

그들은 지금 해변의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헤아릴 수도 없는 엄청난 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마교와 아극마세의.......

무섭도록 갑판 위로 깔리는 긴장과 죽음의 냄새.

그것은 사람의 숨통을 턱턱 막는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기운이었다.

문득 그 죽음의 갈증을 비집고 혁리혼의 입에서 차가운 조소가 흐릿하게 피어올랐다.

“후훗...... 마황제일존 갈무좌, 과연 멋진 자다. 나의 계책을 완전히 뒤에서 후려치다니...... 허나......!”

그의 입가에는 꽤나 묘한 냉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문득 혁리혼은 자신의 옆에 웅크리고 앉아 으르렁거리며 포효를 낮게 흘리고 있는 백상의 섬뜩한 이빨을 매만지며 흑뇌마자를 향했다.

“흑뇌마자.......”

그들의 눈빛이 순간 허공에서 꽤나 의미 있게 뒤엉켰고, 흑뇌마자는 어둠과도 같은 음습한 웃음을 흘렸다.

“쿠쿠...... 주군, 본 전의 오십만 고수로 하여금 저들의 뒤를 치게 하도록 안배해 놓았습니다. 마황제일존 갈무좌가 깔아 놓은 세 가지 죽음의 벽을 모조리.......”

세 가지 죽음의 벽!

그러면 흑뇌마자는 이미 모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단 말인가?

가공스럽도록 무서운 지혜를 지니고 있는 자.

혁리혼은 그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시선을 해변으로 돌렸다.

죽음을 만들기 위해 모여드는 자들.......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는가?”

그의 음성은 꽤나 담담했다.

흡사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들을 보고 있는 것처럼.......

흑뇌마자는 힐끗 한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뇌주반도에 솟아 있는 하나의 단애.

그 위에서 굽어보고 있는 세 사람을.......

“저들의 뒤쪽에 은밀히 준비해 놓은 본 흑양밀전의 세력과 지금 수백 척에 이르는 이백만의 고수들을 풀어 마교와 아극마세의 세력을 가운데로 몰아 합공한다면...... 한 시진!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 한 시진!

참으로 가공스럽도록 전율하리만치 무서운 말이 아닌가?

무서운 책략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인간 불가사의 흑뇌마자 타하륵!

부르르.......

주위에 있던 중인들은 몸서리치는 진동을 전신에 심고 말았다.

“하...... 한 시진!”

“무...... 무슨......?”

‘우우...... 흑뇌마자, 무서운 자다! 저자는.......’

‘저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수의 목을 단 한 시진 안에 모조리 도륙하겠다니...... 으으...... 가공할 지략이다.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니......!’

허나 혁리혼은 아주 차갑게 입을 열었다.

“흑뇌마자, 나를 실망케 하는군. 한 시진이라니...... 너무 늦다.”

“......!”

“최소한 마성에 물든 자들을 한 시진 동안 더 살도록 놔둔다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다.”

― 너무 늦다!

이것은 또 무슨 가공한 말인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흑뇌마자조차 얼굴을 하얗게 탈색시키고야 마는 무서운 뜻이 함축된 말.......

“예......?”

흑뇌마자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완전히 이 순간 그의 무서운 두뇌는 텅 비어 버린 느낌이다.

혁리혼은 입꼬리를 냉오하게 말아올리며 말했다.

“단 일각이다. 갈무좌, 그가 만들어 놓은 세 가지 죽음의 벽을 파괴하는 데...... 그 이상의 시간은 필요가 없다.”

단 일각!

이 무슨 소름 끼치도록 가공한 말인가?

그리고 너무도 광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해변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는 마도의 고수들.......

그들의 힘만으로 따져도 하늘 아래 모든 마도의 힘 중 절반 이상이랄 수 있는 엄청난 것이다.

헌데 흑뇌마자는 그들을 모조리 죽음 속으로 집어넣는 데 한 사진이라고 했는데, 그 역시 어찌 보면 불가능이랄 수 있는 것이거니와.......

단 일각이라니......!

혁리혼의 차가운 음성은 이어졌다.

“그리고 선박에 타고 있는 우리의 힘마저 쓸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저들의 힘은!”

광오의 도를 지나치는 엄청난 말이다.

푸르르......!

혁리혼의 말에 흑뇌마자는 얼굴 가죽을 짓떨었다.

“주...... 주군...... 그 무슨......!”

허나 그의 의혹이 깃들여진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파아아아...... 앗―!

혁리혼의 손이 허공을 가르며 떨쳐졌다.

콰콰콰― 쾅―!

우르르르...... 르릉...... 쾅!

그 순간......!

“크아아아악―!”

“크― 왓!”

“케― 에엑―!”

보라.

가공하게도 해변을 가르는 십여 리 길이의 백사장이 무시무시한 대폭발과 함께 모조리 허공 수십여 장 위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허억―!”

“으으...... 으.......”

“포...... 폭발이라니......?”

흑뇌마자 등 사 인의 얼굴은 극도의 경악과 공포의 빛으로 물들어 버렸고, 허공을 갈가리 찢는 처절한 비명이 지옥의 문을 열었다.

“크와와와왁―!”

“컥!”

“카― 악―!”

꽈르르릉― 꽈릉―!

콰아...... 콰아...... 콰아아.......

박살!

해변가에 존재하는 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가루로 화하여 허공으로 치솟아 오르는데.......

혁리혼은 그것을 바라보며 아주 차갑게 웃고 서 있었다.

“마도의 영광이여......! 후훗...... 당금을 시점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공포와 잔혹의 극치여!

눈 깜짝할 순간, 해변― 뇌주반도의 해변은 모조리 죽음의 냄새로 뒤덮이고 있었다.

왈칵......!

심장이 얼어붙도록 끼쳐 드는 전율과 죽음의 기운에 선박에 타고 있던 고수들은 모조리 입술이 굳어져 버렸다.

“......!”

“......!”

그리고 그들의 귓전으로 한 사람의 음성이 뇌전처럼 파고들고 있었다.

여운이 되어.......

― 마도의 영광이여...... 당금을 시점으로 모든 것은 끝났다!

죽음과 공포의 대혈사(大血史)!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너무도 뜻하지 않은 방향에서 너무도 가공한 한 인간의 능력으로......!

혁...... 리......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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