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1 章 허(虛).......
“......!”
“......!”
우황과 한당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뇌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아주 뛰어난 두뇌를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다만 이제껏 그 뛰어난 두뇌의 힘이 혁리혼의 지혜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뿐, 그들은 반로의 한마디에 순간 전신을 진동하는 엄청난 대각을 느끼고 있었다.
‘무재의 묘......를......!’
‘아...... 아...... 그것이다!’
순간 그들은 전신의 팔만 사천 모공을 일제히 일깨워 세우는 외침을 터뜨리며 두 눈을 감아 버렸다.
그리고 전신의 모든 오감을 죽여 버린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이다.......
이것은 공(空)이여, 대허무(大虛無)이니.......
공간을 휩싸고 도는 허(虛)가 바로 나의 존재이니.......
우매의 공감을 깨고 무(無)로 드는 것이라.......
슈슈슈...... 슈.......
파아아...... 파아.......
반로, 그리고 우황과 한당의 신형은 아주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들의 병장기는 차디찬 무지갯빛을 뿜어내며 휘몰아 돌았다.
카아...... 카아...... 카카.......
꽈아아...... 꽈아.......
“호호...... 홋...... 눈을 감다니! 미쳤다! 일백사검의 개벽이 터뜨리는 공세를 막아낼 생각은 하지 않고...... 오히려 눈을 감다니...... 호호...... 홋.......”
빙여설은 태사의에 앉은 채 광장을 내려다보며 꽤나 냉소적인 웃음을 터뜨렸고, 혁리혼은 몸을 일으켰다.
“반로......! 나의 뜻을 그대는 깨달았구나.”
“......?”
“이 격돌은 이제 끝났다. 일백사검의 개벽의 패배로!”
혁리혼은 아주 차갑게 웃었다.
그의 그런 모습에 천극화련 빙여설은 까르르 교소를 터뜨렸다.
“일백사검의 개벽이 패한다고...... 호호...... 어리석은 자다! 나는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눈앞에 드러날 뻔한 사실조차 판별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너 같은 자가 어떻게 죽음의 삼관을 뚫고 들어왔......!”
그녀의 입술은 순간 굳어지고 말았다.
도대체가...... 있을 수도 없는 일이 그녀의 망막으로 파고들고 있지 않은가.
보라!
파아...... 파아...... 파아.......
츠츠츠츠― 츠― 츠―!
반로, 그리고 우황과 한당의 부(斧), 검(劍)은 허공에 아주 유연한 호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는데 일백사검의 개벽은 일순지간 영문 모르게 포진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꽈르르르릉― 꽈릉―!
우르르르― 르르르― 릉!
세 사람이 쏟아내는 엄청 가공할 강기의 막에 모조리 맥없이 갇히고 마는 것이 아닌가?
“허억―!”
“크으...... 말도 안 된다. 이것은...... 세 사람의 무형의 힘으로 우리 일백사검의 개벽을 가두어 버리다니...... 으으...... 죽음뿐이다!”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절망과 급박함이 죽음과 함께 그들의 얼굴에 빛을 드리웠다.
완벽한 무재의 묘!
그리고 죽음의 천라지망!
한순간 반로의 입에서 뼈를 바수고 살을 짓갈라 버리는 무심냉혹의 음성이 으스스하게 피어올랐다.
“움직이는 자는 모조리 도륙해 버릴 것이다.”
― 움직이는 자, 모조리 도륙한다!
무섭도록 치떨리는 공포스런 말이 아닌가?
정적과 무섭도록 공포스러운 정적이 눈 깜짝할 사이에 광장에 내려앉았다.
한 사람.
그는 전신을 무섭게 떨고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자칭 부타성승이라던 자.......
우르르릉.......
그의 몸은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무서운 자다! 아아...... 수하들에게 무언중 가공한 검의 묘리를 깨우치게 하여 상대를 꺾게 하고 있는 자! 혁리혼...... 그는 무서운 자다! 이런 능력을 지닌 자가 인간으로 태어나다니...... 아아...... 가공한 일이다.......’
그는 이 한판의 승부가 비록 반로 등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있지만 그 힘은 아득한 철루에서 굽어보고 있는 혁리혼에게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 파괴되었다!
일백사검의 개벽― 바로 삼마겁의 전설을 낳게 한 가공할 검세는......!
“이......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없다...... 일백사검의 개벽이...... 지닌 오천 년의 가공할 함이 허무하게 파괴되다니......!”
빙여설은 마혈이 점혈당해 굳어 있는 몸이나 입술이 시꺼멓게 죽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경악과 회의의 시선으로 혁리혼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거만하고 아주 차가운, 그리고 퇴폐적인 미소를 입가에 문 채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혁리혼이라는 자.
“......!”
빙여설은 그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또다시 뼛속까지 얼어 버리는 한기를 느끼고 말았다.
‘짐승이 먹이를 잡아 놓고 천천히 그 피맛을 음미하면서 먹듯 결과를 바라보는 이자...... 이놈은 야수다! 야수 같은 승부사 기질을 지닌 놈이다......!’
그때였다.
광장으로부터 반로의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이 허무처럼 공간을 울렸다.
“왕야, 모조리 죽이리까?”
그야말로 살 떨리도록 무서운 말이 아닌가?
삼마겁의 전설을 낳은 오천 년 바다의 힘...... 일백사검의 개벽!
그들은 순식간 도마 위에 올려 있는 생선이 되어 버린 것이다.
씨익.......
혁리혼은 아주 퇴폐적인 미소를 물었다.
그리고 차디찬 음성이 그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반로, 그들은 꽤나 존재 가치가 있는 사람들이다.”
― 살려 주어라!
그 뜻이다.
찰나 광장을 뒤덮고 있던 모든 죽음의 기운이 사라졌고, 그 기운을 대항하며 버티고 있던 일백사검의 개벽은 모조리 무기력하게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퍼퍼퍼퍽― 퍼...... 퍼...... 억......!
일신의 모든 기운을 한순간 탈진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이었다.
빙여설은 몸뿐만 아니라 혀마저 굳어졌고, 심혼조차 빠져 나가고 말았다.
“네...... 네놈을...... 죽여 버리고 말 테다...... 언제인가는!”
쉬― 익!
혁리혼은 가볍게 일지를 퉁겨 그녀의 마혈을 풀어주었다.
“주둥이를 다물어라, 여설!”
허나 몸까지 자유롭게 된 그녀가 입을 다물어 줄 리는 만무했다.
“그래서 이 한을 씻고 말 테다! 이 야수 같은 자식!”
문득 혁리혼은 백상을 향해 시리도록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이를 드러내고.
“백상, 너는 지금 임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순간이다.
번― 쩍!
카아아아― 오오― 오―!
백상은 두 눈을 시퍼렇게 뜨며 빙여설에게 덮쳐 갔다.
기막히게 맛 좋을 팔 하나를 향해.
“아악―!”
순간 빙여설은 기절초풍할 듯이 놀라 혁리혼의 품속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하하하핫핫...... 하핫...... 이제 끝난 것인가?”
혁리혼은 호쾌한 대소를 터뜨리며 마침 자신의 품속으로 뛰어든 빙여설을 냉큼 허리춤에 꿰차고 몸을 돌렸다.
“헉! 너...... 너...... 이 자식......!”
빙여설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고 혁리혼은 이내 내실을 빠져 나가고 있었다.
“후훗...... 모든 것은 끝났다. 아주 멋있게!”
바둥.......
“이 악마―! 놔―! 나를 내려놓으란...... 말이다―!”
빙여설은 전신을 바둥거리며 혁리혼에게서 벗어나려고 몸을 뒤틀었다.
“하하핫핫...... 핫.......”
* * *
하나의 화려하고 말쑥히 단장된 침실.
방안은 여인의 방향(芳香)이 은은히 맴도는 가운데 꽤나 호화롭게 치장되어 있었다.
<화련현정(花蓮玄亭)>
바로 천극마분도 최고의 지존이 거처하고 있는 곳이다.
바로 천극화련 빙여설이.......
“악―! 무...... 무슨......!”
찢어질 듯한 놀람의 비명을 터뜨리는 여인.
하늘이 시샘하리만치 아름다운 미와 꽤나 오만한 기운을 지닌 여인은 사내의 억센 힘에 의해서 침상 위에 던져진 채 얼굴이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손.
사내의 손이 여인의 풍염한 젖무덤이 있는 가슴속으로 아주 무례하게 파고든 것이다.
도대체 언제 그녀가 이런 수치를 받아 본 적이 있던가?
천극마분도 최고의 지존인 그녀가......?
“큿.......”
혁리혼은 이상한 웃음을 흘리며 여전히 빙여설의 가슴속에 손을 넣고 있었다.
물컹......!
미묘한 감각이 혁리혼의 손을 타고 전해졌다.
“너...... 너......!”
“이것인가?”
혁리혼은 문득 작게 중얼거리며 그녀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들었다.
옥함(玉函).
그것은 해옥석(海玉石)으로 정갈하게 깎아 만든 하나의 옥함이었다.
딸깍......!
혁리혼은 가볍게 옥함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순간이다.
스스스...... 스스...... 스으.......
파아아.......
눈을 현란하게 하는 채광과 함께 뼈를 얼리는 엄청난 한기가 옥함 속에서 짓쏘아져 나왔다.
옥함의 안.
그곳에는 하나의 어린애 주먹만한 무색투명의 기단(奇丹)이 담겨 있었다.
옥함의 안쪽에 하얗게 서리를 만들며 일견하기에도 결코 평범치 않은 물건.
혁리혼의 눈빛이 꽤나 강렬한 빛을 흘렸다.
“후훗...... 이것이 바로 오천 년 만에 개화되어 만들어진다는 오직 하나뿐인 빙극우혈화의 빙정인가?”
― 빙극우혈화의 빙정(氷精)!
“꽤 괜찮은 물건인데?”
혁리혼은 시큰둥한 입을 열었고, 빙여설의 얼굴은 시꺼멓게 타들어갔다.
“그...... 그것은.......”
빙여설의 몸은 분노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혁리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이 간직하고 있는데?”
“이...... 도둑놈! 날강도 같은 자식!”
빙여설은 일순 참을 수 없는 분노로 발딱 몸을 일으켰다.
“그럼...... 네게 먹여 버릴까?”
혁리혼은 문득 한걸음 그녀 앞으로 다가서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먹이다니......?
그 한 알의 빙정은 무섭도록 강한 미약의 성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복용하는 순간 몇 날 밤을 사내와 함께해야 하는.......
빙여설은 도로 침상 위로 도망치듯 물러났다.
“아...... 안 돼! 그...... 그것은.......”
그녀는 한순간 혼이 달아나도록 놀랐다.
복용한 뒤의 상황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스친 것이다.
사내의 몸과 뒤엉켜야 할.......
그리고 그 사내라는 것이 이 눈앞의 악마 같은 자식일 테고.......
피식......!
혁리혼은 실소를 흘리며 어깨를 으쓱 치켜 올렸다.
그리고는 빙극우혈화의 빙정이 담긴 옥함을 품속으로 쑥 집어넣어 챙겼다.
“그럼 내가 갖는 수밖에.......”
“......!”
문득 혁리혼은 빙여설을 바라보았다.
“앞으로 당분간은 내력을 끌어올리면 안 된다. 참마제쇄(慘魔制 )라는 수법을 네 몸에 풀어놓았으니까.”
“......!”
“내력을 끌어올리기만 하면 역혈과 함께 근육이 썩어 버리는 아주 무서운 금제수법이지.”
혁리혼은 이내 빙글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방안을 나가 버리자 빙여설은 참고 있던 분노가 와르르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흐흑...... 흑...... 악마 같은 자식! 도둑놈! 너는 언젠가...... 나에게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날강도 같은 자식!”
어깨를 들썩이며 끊임없이 외치고 있는 그녀.......
허나 아주 기이한 사실은 그녀가 그렇듯 욕설을 퍼붓고 있는데도 그녀의 내심에서는 꽤나 묘한 기운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그것은 여인이 성숙하여 가질 수 있는 미묘한 것이다.
그래서 초여름의 날씨와 개구리 뛰는 방향과 여인의 마음은 알 수 없다던가......?
* * *
화르르르......!
착각일지는 모르나 하늘과 바다는 불이 붙어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백사장도.......
그리고.......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