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20 章 그는 神인가?
혁리혼의 얼굴은 벌레를 씹은 꼴이 되고 말았다.
사무향.
그는 이 순간 겉옷이 모조리 찢겨져 나가 벌거숭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것은 여인의 몸이 아닌가?
젖가슴은 하얀 헝겊으로 둘둘 말려 남자의 가슴처럼 묶여 있는 채 허벅지 사이를 가리고 있는 것은 여인의 앙증맞은 고의였다.
“여...... 인이었다니? 옥면마존 사무향이...... 여인이었다니......!”
혁리혼은 일시 넋이 나가도록 놀라 망연자실 중얼거렸다.
순간 혁리혼은 눈앞이 현란해짐을 느꼈다.
아찔......!
비록 핏물이 군데군데 엉겨붙고 상처를 이곳저곳에 많이 지닌 몸이지만 사무향의 몸매는 흡사 현란한 금린(金鱗)을 지닌 인어(人魚)를 해수 속에서 막 끌어낸 것 같았다.
섬세하고도 균형 잡인 몸매와, 펑퍼짐한 둔부.......
그리고 한점의 빛조차 받아 보지 못한 듯 새하얀 허벅지와 늘씬하도록 곧게 뻗은 사지.......
“으음.......”
혁리혼은 자신도 모르게 꽤나 미묘한 침음성을 흘리고 말았다.
“치료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고 보면.......”
혁리혼은 입술꼬리를 일그러뜨렸다.
“빌어먹을...... 잘못하다가는 사무향, 이 여인에게 빚을 받는 것이 아니라 톡톡히 빚을 안기는 꼴이 되고 말겠는데?”
혁리혼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내 사무향의 가슴을 동인 헝겊과 허벅지 사이를 가린 고의마저 벗겨 버렸다.
불쑥......!
압박하고 있던 헝겊을 풀어 버리자 눈처럼 희디흰 농염한 젖가슴이 튀어올랐다.
아주 요염하리만치 뇌살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젖가슴.
사내라면 그 누구라도 그 젖가슴을 탐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리고 고의가 벗겨져 나간 곳은.......
“......!”
혁리혼은 그곳으로 무의식인 양 시선을 돌리다가 그만 질끈 눈을 감아 버리고 말았다.
‘제길...... 두 눈이 있는 게 원망스럽군.......’
혁리혼은 이마에 송글송글 식은땀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는 어떤 상황이라 해도 그렇듯 식은땀을 흘리는 사람이 아니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마치 억겁과도 같은 일수유(一須臾)의 시간이 흐른 것처럼, 한순간은 꽤나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다.
쓰윽......!
혁리혼은 이마에 맺혀 있는 땀을 팔소매로 닦아내며 문득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매달았다.
“이제 옷만 입혀 놓으면 감쪽같다...... 그녀는 내가 자신의 속살을 훔쳐본 꼴이 된 지금의 상황을 절대로 모를 것이다. 계집이란 잘못하면 오히려 짐만 되니까.”
허나 그는 고개를 돌리다가 일순 얼굴이 구겨지고 말았다.
옷.
사무향이 입고 있던 옷은 이미 자신이 모조리 찢어 놓았지 않았던가?
“크...... 큰일났군! 어서...... 똑같은 옷을.......”
혁리혼은 일순 당황하여 화다닥 내실을 빠져 나갔다.
똑같은 옷을 찾아 나선 것이다.
* * *
“똑같은데?”
혁리혼은 으쓱 어깨를 추스르며 수중에 있는 옷을 내려다보았다.
바로 옥면마존 사무향이 입었던 옷과 똑같은 흑의.......
“후훗...... 이것을 감쪽같이 입혀 놓고 오리발을 내민다? 괜찮은데......? 후후.......”
혁리혼은 옷 한 벌을 구해 들고 득의만면해 내실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드르르― 륵!
허나 혁리혼은 일시 어리둥절 침상 위를 바라보며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엇......?”
침상 위.
그곳에는 사무향의 그림자도 없었던 것이다.
“아니? 그새 어디를...... 갔지?”
“누구를 찾나요?”
돌연 혁리혼의 뒤쪽에서 꽤나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혁리혼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 침상 위에 있던 여인......!”
허나 그의 말은 채 모두 입 밖으로 흘러 나오지 못한 채 입술 끝에서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의 시선이 돌려진 거기.
사무향이 전신을 한 겹 헝겊으로 가린 채 요염하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호호...... 옷을 구하러 갔다오셨나 보죠?”
혁리혼은 그만 머쓱하게 변하고 말았다.
그는 더듬거렸다.
“미...... 미안하오. 사실...... 치료를 하자면.......”
헌데 돌연 사무향이 몸을 비틀거렸다.
“아......!”
그녀의 얼굴에는 꽤나 고통스런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혁리혼은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
“아...... 아직 움직이면 안 되오.”
그 순간이었다.
사무향의 입가에 아주 새하얀 미소가 떠오른 것은!
“색마...... 죽엇!”
꽝!
“윽......!”
혁리혼은 급작스런 그녀의 공격을 피하지 못한 채 신음과 함께 다섯 걸음이나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헌데 두 눈이 뒤집히도록 놀란 것은 오히려 사무향이었다.
‘이...... 럴 수가......! 나의 십성의 내력에도 끄떡없다니! 비록 상처가 완치되지 않아 감소되어 있어 완전히 발휘하지 않은 내력이지만...... 만년한철이라도 가루로 바수어 버릴 능력이 있는 공세였다!’
그녀는 불신과 경악의 얼굴을 이지러뜨렸다.
혁리혼은 불식간 말을 더듬으며 당혹해 했다.
“대체...... 왜......?”
“흥! 왜냐구? 이 말아먹어도 시원치 않을 색마!”
사무향은 혁리혼을 노려보며 바르르 몸을 떨었다.
‘새...... 색마라고? 내가......?’
순간 혁리혼은 언뜻 짚이는 것이 있었다.
그는 뭐라고 할말을 잃은 채 난색을 짓다 입을 열었다.
“사무향,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사실...... 이번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었소.”
그 말에 사무향의 눈꼬리가 매섭게 치켜져 올라갔다.
“흥! 어쩔 수 없었다고? 그래서 능욕을......!”
그녀는 수치심과 함께 왈칵 눈물이 솟구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혁리혼은 그녀를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능욕이 아니라 난 단지 치료를 하기 위해서......!”
“닥쳐라! 더러운 놈! 네놈을 갈가리 찢어 개에게 주고 말 테다!”
동시에 그녀는 앞으로 한걸음 나섰다.
그녀는 아예 무언가 끝장을 보려는 심산이었다.
순간 혁리혼은 아주 차갑게 웃었다.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다. 나는 다만 너라는 계집을 구해 준 것뿐이고, 네가 뇌주반도의 갈대숲에서 나를 위해 수고했던 것에 대한 보답을 해주었을 뿐이다.”
“네...... 네놈이 그럼 혁리혼이라는......!”
허나 혁리혼은 이미 몸을 돌리고 꽤나 차가운 표정으로 내실을 걸어 나가고 있었다.
아예 그녀는 무시해 버린 채.
순간 사무향은 울화가 구름을 뚫고 일만 장 꼭대기까지 치밀어 올랐다.
“네...... 네놈이 나를 무시하다니......!”
동시에 그녀는 양손을 쭈욱 뻗으며 혁리혼의 몸을 쪼개어 왔다.
파파파― 팟!
꽝!
허나 그녀의 공세는 그대로 내실의 문짝을 박살내 버린 것뿐, 혁리혼의 몸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혁리혼의 무뚝뚝한 음성이 밖으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옥면마존 사무향이 벌거숭이 모습으로 대낮에 설치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뭐라 할까?”
무뚝뚝하나 얄궂은 말이다.
순간 그녀는 얼굴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말았다.
“어― 맛!”
벌거숭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고 있지 않은 모습이 지금 그녀의 모습이었다.
한 겹 헝겊으로 나신을 감싸고 있던 그녀.......
조금 전 혁리혼을 공격하며 울화를 터뜨리다 그 헝겊마저 떨어져 나간 것조차 그녀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화다다닥......!
그녀는 다급하게 침상의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고, 이불 속에서 이를 갈았다.
“이 찢어죽일 색마! 이곳을 나가면 네놈을 제일 먼저 쳐죽여 버릴 테다!”
글쎄......?
“헌데...... 그놈이 나 옥면마존을 알고 있었다니? 그놈이......!”
그녀는 자꾸만 이를 갈아붙였다.
* * *
“이미 천극마분도는 주군의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습니다.”
흑뇌마자 타하륵은 입가에 미묘하고도 신비한 웃음을 떠올리며 혁리혼을 바라보았다.
그는 득의해 하고 있었다.
이 대단한 성과를.......
단 두 시진 만에 천극마분도의 고수들을 모조리 밀어젖힌 것이다.
“이제 주군께서는 식탁에 올려진 음식을 취하시기만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허나 혁리혼은 고졸한 웃음을 떠올렸다.
“두 시진이라...... 너무 늦었군.”
“......!”
* * *
천극마분도.
오천 년의 신비와 침묵을 지닌 채 고고히 군림해 온 바다의 제국 일천여 개의 크고 작은 땅덩어리.......
<화수궁(花水宮)>
천여 개의 군도는 은연중 그 하나의 오만한 고궁을 포진한 채 둘러 있었다.
화수궁은 바로 천극마분도주인 천극화련 빙여설이 군림하고 있는 곳이다.
대해의 주인이며, 아름다운 꽃 한 송이가 숨을 쉬고 있는 곳.
그녀는 호화롭기 이를 데 없는 태사의에 교구를 묻은 채 오랫동안 망망대해를 굽어보고 있었다.
얼만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 가득 차 있던 그녀의 안색은 이 순간 꽤나 굳어져 있었다.
그녀의 뒤쪽.
네 명의 노인이 굳은 듯 부복하고 있었다.
“도주, 우리가 만들어 놓은 죽음의 삼 단계는 모조리 뚫리고 짓밟힌 상태입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결과입니다.”
“혁리혼이라는 자...... 그는 신입니다. 결코 인간이 아닌!”
그들의 음성은 격하게 떨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하나의 거대한 인간의 영상이 시시각각 그들의 숨통을 조여 옴을 그들은 착각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파르르......!
아주 아름다운 옥수.
빙여설의 태사의 모서리를 움켜쥐고 있는 티 한점 없는 손이 잘게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강호에 그런 자가...... 있었다니...... 믿을 수가 없어.......”
그녀는 지금 화수궁으로 들어서는 거대한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해마공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바닥을 짚은 두 손을 격하게 움켜쥔다.
“허나 그들은 결코 섬을 밟으나 살아 남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일백사검(一百邪劍)의 개벽에 의해서!”
“크으...... 그것만은 확신합니다, 도주이시여!”
문득 빙여설의 차고 아름다운 봉목에 이채가 스쳤다.
‘왔다......!’
그녀의 시선은 화수궁으로 드는 길목에 매달려 있었다.
그곳.
스스스...... 슷.......
쉬이이이익―!
무수한 인영들이 야조처럼 솟구쳐 올라 화수궁의 과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미 삼관을 모조리 파괴하고 천극마분도로 들어서고 있는 인물들.
흑양밀전과 천왕제군대척의 고수들이었다.
문득 빙여설은 섬뜩하리만치 새하얗고, 고른 치열을 드러내며 웃었다.
“호호...... 홋...... 그렇다. 놈들이 죽는 것은 매일반이지. 다만 장소만 틀릴 뿐.......”
“......!”
“본 도주는 놈들의 무덤을 저 광장에 만들어 놓으리라. 특히 혁리혼이란 놈의 것은 크고 아주 거대하게...... 호홋...... 홋.......”
그때였다.
아주 시리도록 냉혹한 음성이 허공 중에서 들려왔다.
“생긴 것은 곱게 생겼는데 뱃속에는 사갈(蛇蝎)이 들어 있는 계집이군.”
순간이다.
“허억―!”
“누...... 누구냐?”
사해마공의 안색은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본 도주의 이목을 숨기고 삼 장여 안까지 스며들다니......!’
천극화련 빙여설은 경악과 회의의 빛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채 고개를 홱 돌렸다.
꽝―!
순간 내실의 오른쪽 벽이 박살이 나며 두 개의 잔영이 빛살처럼 쏘아져 들어왔다.
동시에.......
빠빠빠빡― 퍽!
“헉!”
“크으...... 믿을 수 없다...... 우리 사해마공을 일시에 점혈하다...... 니.......”
쿠쿵...... 쿵......!
사해마공은 눈 깜짝할 사이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모조리 마혈을 점혈당해 전신이 굳어진 채 쓰러져 버린 것이다.
불가사의한 수법!
사해마공은 천극마분도 최극강의 고수들이었다.
최소한 도주라 한들 그들의 합공을 어찌할 수 없는.......
헌데 한순간에 그들을 모조리 점혈하다니......!
벽이 파괴되고 그들이 점혈하기까지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천극화련 빙여설은 한순간 전신이 굳어져 버렸다.
“사해마공을...... 단 한 수에......!”
그녀의 시선은 지금 한곳에 머문 채 부릅떠져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내실에는 한 명의 서생과 백설보다도 더 하얀 털을 지닌 표범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다.
차디찬 눈빛과 퇴폐적인 미소를 붉디붉은 입술에 물고 있는 사내.
사내는 아주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었다.
바로 혁리혼과 백상이었다.
“흠...... 좋은데?”
혁리혼은 천천히 창가로 다가서서 밖을 내다보며 고졸한 표정을 얼굴에 담았다.
그제서야 빙여설은 흠칫 정신을 차리며 차게 입술을 열었다.
“네...... 네놈은......?”
그녀는 분노를 두 눈에 떠올리며 발딱 몸을 일으키는데, 혁리혼은 그녀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굳이 일어날 필요도 없다. 이제 천천히 광장에서 일백사검의 개벽이 어떻게 파괴되는지 구경만 하면 되니까.”
“미...... 미친놈!”
빙여설은 무례하게 자신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혁리혼의 손을 뿌리침과 동시 불가사의한 빠름으로 혁리혼의 심장을 쑤시고 들었다.
파파파파― 팟!
그녀의 두 손은 순식간 섬뜩하리만치 시뻘건 혈광을 발하는 혈옥강수(血玉 手)로 변해 있었다.
팟......!
“헉―!”
허나 일순 빙여설의 입에서 심장 튀어오르는 헛바람이 터졌다.
혁리혼.
그는 너무도 가볍게 그녀의 공세를 차단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의 두 손목을 모아 쥐었다.
도대체 그는 언제 그녀의 공세를 차단하고 또다시 언제 그녀의 손목을 낚아챈 것인가?
정녕 불가해한 빠름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이.......”
빙여설의 얼굴은 아예 극도의 경악으로 밀랍처럼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혁리혼은 그런 그녀를 돌아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었다.
“후훗...... 너는 나의 상대가 아니다.”
“......!”
“빙극우혈화를 복용했다면 모르지만...... 너는 빙극우혈화를 복용하지 않았으니까.”
“네...... 네놈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악―!”
그녀의 입에서 끝내 짤막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혁리혼이 가볍게 일지를 퉁겨 그녀의 마혈을 제압했기 때문이다.
털썩......!
그녀는 무력하게 전신이 굳어 버리며 태사의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두 눈은 경악으로 물든 채 혁리혼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혁리혼은 꽤나 무뚝뚝하게 창 밖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빙극우혈화를 복용하게 되면 아주 강한 미약의 효력이 나타난다. 때문에 남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지.”
그랬던가?
빙극우혈화에 아주 강한 미약(迷藥)의 힘이 있었던가?
삼마겁의 전설이 말하는 세 가지 중 하나― 일마겁, 빙극우혈화......!
“허나 네 팔에는 아직도 처녀의 청백지신을 나타내는 수궁사(守宮絲)가 있다. 후훗.......”
수궁사―!
빙여설은 불식간 자신의 옷소매가 걷혀져 하얗게 드러난 팔을 움찔했다.
그녀의 팔은 아주 하얗고 아름다웠다.
마치 빙옥으로 억겁의 세월을 통해 깎아 놓은 듯이.......
그 팔 중앙에는 한 줄기 붉디붉은 혈흔과도 같은 선이 나타나고 있었다.
혁리혼은 꽤나 차가운 웃음을 얼굴에 떠올렸다.
“후후...... 지금 너를 보며 생각하니까 네가 왜 빙극우혈화를 복용하지 않았는지 알겠구나.”
“......!”
“그 오만한 콧대가 하늘도 찌를 모습이니...... 평생 과부상이다, 네 얼굴은!”
독설(毒舌)!
청백한 여인에게 이보다도 더한 독설이 있을까?
빙여설은 새파랗게 안색이 변하며 지지 않고 꽃잎 입술을 나풀거렸다.
“네놈은 홀아비상인데?”
“내겐 이미 백 명도 더 되는 첩이 있는 몸이다.”
“도둑놈!”
빙여설은 그만 욕설을 터뜨리고 말았다.
허나 혁리혼은 태사의에 느긋하게 앉으며 이제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창문을 통해 화수궁의 드넓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혁리혼의 눈빛이 순간 경직되고 있었다.
광장.
그리고 백 명의 사람.
백 자루의 칼.
헌데 그들의 전신과 칼에서 솟구쳐 오르는 무형의 기운이라니......!
그것은 가히 주위 백여 장 방원을 모조리 숨통 짓끊는 가공할 사기(邪氣)가 아닌가?
그들은 일면 평범하나 어찌 보면 기괴하기 이를 데 없는 괴진(怪陣)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들의 가운데에는 지금 세 사람이 굳은 듯 서 있었다.
우황과 한당, 그리고 반로였다.
파파파파― 팟!
파아아...... 아.......
백 명의 인물들은 그저 서 있을 뿐이나 그들의 전신에서 뿜어지는 소름 끼치는 죽음의 사기는 허공에 가공할 불꽃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사람의 몸에서 쏟아지는 기운이 마치 인광(燐光)처럼 뻗어 나오다니.......
혁리혼은 자신도 모르게 나직이 뇌까렸다.
“일백사검의 개벽이라 불려지는 백 인의 무장...... 과연 삼마겁의 전설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상상 이상이다......!”
감탄!
혁리혼은 일찍이 그 무엇에도 이렇듯 절실히 감탄을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순간 빙여설의 독소가 까르르 터졌다.
“호호...... 호...... 네놈의 수하들은 결국 모조리 죽게 될 것이다. 일백사검의 개벽에 의해서...... 그리고 네놈까지!”
그녀는 아주 희디흰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찌 보면 오만하고도 소름 끼치는 사악한 웃음.......
문득 혁리혼은 코끝을 가볍게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꽤나 담담하게.......
“백상.”
그가 부르는 순간 백상이 그의 뒤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시뻘건 이를 드러내며 포효를 터뜨렸다.
캬아아아― 오오오― 캬아.......
혁리혼은 차게 웃으며 냉혹하게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이 계집이 주둥아리를 열면 몸에서 무엇이든 하나씩 뜯어먹어 버려라.”
오싹한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말이다.
몸을 뜯어먹으라니.......
“헉! 네...... 네놈......!”
대경실색 분노의 빛을 얼굴에 떠올리던 빙여설은 불식간 피가 나도록 벌려지려는 입술을 깨물었다.
백상.
캬르르릉...... 캬아.......
그가 바로 빙여설의 옆에 다가와 웅크리고 앉아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어디에 붙은 살이 맛이 좋을까 싶어 고르고 있는 듯한 눈초리로.......
오싹!
빙여설은 전신을 부르르 떨며 혁리혼에게 눈길을 돌렸다.
혁리혼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눈초리.
그 눈초리를 받은 혁리혼은 아주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거든.”
* * *
문득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한 눈빛이나 그녀의 용모는 소름 끼치도록 추악했다.
그녀의 얼굴은 나찰(羅刹)의 얼굴이었다.
그녀의 손에는 막 자수를 수놓던 눈처럼 희디흰 백의가 들려 있었다.
‘아아, 그분은 결국 이 싸움에 지시고 말 것이다. 패할 것이다......!’
시리도록 차갑고 파란 하늘.......
그녀는 늘 그 하늘을 보고 산다.
그 하늘은 한 사람을 닮았기 때문이다.
꽤나 아름다운 용모에 고고한 지위를 갖고 있는 미공자.
‘왕야는 너무도 강한 승부의 기질을 갖고 계신다. 때문에 그분은 패하고 말 것이다.......’
추명.
운명이 저주스러운, 그런 이름을 갖도록 한 여인.
그녀는 추악한 얼굴을 잘게 떨고 있었다.
‘어젯밤...... 하나의 이름 모를 성좌가 천기 속에 섞여 떠오르고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름 모를 성좌.
‘그것은 아주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팔황대마성좌 중 그 어떤 성좌보다도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잘강.......
그녀는 입술을 짓물었다.
‘그 힘은 왕야를 어쩌면 능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성좌 옆에는 아주 신비스러운 지다성(知多星)이 떠올랐다.’
그녀의 입술에 빨갛게 피멍이 맺혔다.
‘그것은 바로 그 성좌를 돕고 있는 인물 중에 무섭도록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섭다......!’
지다성좌!
‘반드시 막아야 한다. 만약 막지 못한다면...... 그 두 개의 성좌는 왕야의 목을 취하게 되리라...... 아아.......’
그녀의 입가에는 짙은 고통과 고독의 빛이 함께 떠오르고 있었다.
중원의 밤.
그리고 고뇌하는 여인.
‘그분은 비록 나를 사랑하시지는 않지만...... 나는 그분을 위해서 살아가기로 했다. 나만의 사랑으로.......’
주루룩.......
문득 그녀의 추악한 양볼을 타고 축축한 물기가 흘러내렸다.
‘그것이 나의 운명이니까...... 나는 그분의 미움도 달게 받아들이리라. 나의 소망이 하나 있다면...... 그분을 아주 오랫동안 보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눈물은 아주 고독하고 추악한 여인의 얼굴을 타고 흐르는데, 그녀의 입술 끝에는 추악하나 티 한점 없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사내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과거의 외할아버지가 주던 저주가 기억나 그녀를 피하기까지 한다.
혁리혼은.......
허나 추명은 그런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녀는 늘 자신의 가슴속에 혁리혼의 모습을 담고 사는 것을 기쁨으로 아는 그런 여인이다.
문득 추명은 방문 쪽을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무화(無花).......”
그녀의 부름이 있자 허공에서부터 한 줄기 요요로운 여인의 대답이 들려왔다.
“태후(太后), 복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작할 때다. 아주 많은 것을...... 너는 이제 그 일을 하도록 하여라!”
“명을 받드옵니다, 태후!”
추명은 아주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고, 보이지 않는 요요로운 여인의 음성은 다시는 들려오지 않았다.
추명은 이내 천천히 백의에 놓던 자수를 마저 놓기 시작했다.
“그분이 돌아오는 날...... 이 옷을 주리라.”
스...... 슥...... 슥.......
자수의 그림은 한 마리 거룡(巨龍)이 황금의 빛을 발하며 승천하는 웅장한 모습이었다.
“나의 마음을 그분은 받아주시지 않지만...... 이 한 벌의 옷을 그분이 입으심으로 해서 나의 마음은 영원히 그분과 함께하리니.......”
추악한 나찰의 얼굴을 지니고 있으나 선녀와도 같은 마음을 가진 여인.
그녀의 눈에는 슬픔과 고독이 앙금처럼 내려앉아 있으나 자수를 놓는 시간이면 그녀는 흡족한 미소를 입가에서 잃지 않는다.
자수 속에는 그녀의 마음이 담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아름다운.......
― 이제 시작할 때인가 보다......!
추명의 이 한마디.
그리고 무화...... 라는 요요로운 여인의 음성.
이 모든 것은 태후라는 이름과 함께 결코 천왕제군대척에는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추명에게서 시작이라는 말이 나올 이유가 없는데......?
그녀는 꽤나 자연스럽게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무언가?
또 하나의 성좌와 지다성!
그리고 추명의 입에서 흘러 나온 시작이라는 말의 의미는?
* * *
하루 밤낮의 일대 격돌!
그것은 무림사를 통틀어 존재하지 않았던 무시무시한 가공의 격돌이었다.
일백사검의 개벽.
그들의 사광마광(邪光魔光)은 천극마분도 전체를 뒤집어 놓았고, 부딪히는 것은 모조리 가루로 화하여 날았다.
또한 주위에서 관망을 하던 자들 중 내력이 약한 인물들은 검은 핏덩이를 쏟아내며 나동그라졌다.
번쩍― 버― 언― 쩍!
카아...... 카아...... 카아.......
“끄아아아― 아― 악―!”
“커헉...... 악마의 검이다...... 백 장 밖에서 관망하고 있는 우리들의 숨통을 끊어...... 오다니...... 크으.......”
반로와 우황, 한당......!
그들은 이 순간 동녘으로 떠오르는 여명을 받으며 전신은 온통 핏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우우...... 무섭다! 이들의 합벽검진은 천하최강이다!’
‘격돌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런 악마의 검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으리라! 그것도 백여 명씩이나.......’
그들의 안색은 밀랍처럼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반로, 그리고 환공의 모든 것을 분신처럼 지니고 있는 우황과 한당.......
그들은 이 순간 몸을 잘게 진동하고 있었다.
허나 일백사검의 개벽이 펼치는 공포스런 악마의 검을 음미할 시간은 짧았고, 시시각각 지옥의 문은 열려 그들의 숨통을 압박해 들고 있었다.
꽈아...... 꽈아...... 꽈꽈아.......
슈르르르륵.......
일백사검의 개벽을 구성하고 있는 백 인.
그들은 흡사 벙어리처럼 일체의 어떠한 말도 입 밖으로 흘려내지 않았다.
심장이 굳어지리만치 경직된 고요 속에 터져 나오는 미증유의 거력.
꽈꽈꽈꽝― 꽈앙―!
까까까까― 깍!
“우욱......!”
“크― 으―!”
우황과 한당은 점차 격돌이 거듭될수록 입가에 실낱 같은 핏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들의 능력이 인간 이상의 불가사의한 것이나 일백사검의 개벽이 지닌 능력은 말 그대로 개벽의 거력이었다.
허나 반로.......
그는 기이하게도 일백사검의 개벽의 힘에도 하등의 그렇다 할 피해를 받고 있지 않았다.
그의 능력이 우황과 한당의 몇 단계 위이나, 그와 같은 상황은 상대의 무섭도록 가공함에 비해 아주 이상한 모습이었다.
꿈...... 틀.......
반로의 두 눈이 휑하니 뚫린 귀기스러운 얼굴이 한순간 묘한 꿈틀거림을 일으켰다.
‘나는 전신에 그렇다 할 압박을 받고 있지 않으나...... 우황과 한당은 아주 강한 힘을 받고 있다, 무형중에...... 이 기이한 묘(妙)를 깨우치기 위하여 나는 하루 밤낮을 이들의 상대에 휘말렸다......! 이제 나는 안다!’
칼!
반로가 천공을 향해 찌를 듯 치켜 들고 있는 칼빛이 순간 요사스런 기운을 내뿜었다.
휴르르르릉...... 파아아...... 아.......
느닷없는 마광!
반로의 몸이 서서히 어떤 격동의 물결 속으로 휘말려들고 있었다.
‘일백사검의 개벽...... 이들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이 공포스런 능력의 출처는 바로 저들의 몸에서 뿜어지는 사기에 있다. 아주 강렬한 사기는...... 상대의 능력을 절반으로 감소시키고 있다!’
휘류류류...... 륭...... 파아...... 파아.......
그의 시퍼런 칼끝에서 쏟아지는 요사스러운 기운은 점차 강렬해졌다.
‘저들의 그런 기운은 마물만이 지닐 수 있는 인간 이상의 것이다. 이것을 막는 방법이 인간에게 있다면 오직 하나...... 그것을 느끼지 않는 것뿐이다. 극사의 기운을......!’
극사의 기운―!
일백사검의 개벽이 폭출시키는 사기는 진정 불가해한 것이다.
그 기운만으로 주위의 모든 것을 파괴시켰고, 그 기운이 검에 실리는 순간 수백 장 안팎에 있는 무림인들의 숨통을 끊어 놓고 있었다.
꿈틀...... 꿈틀.......
반로의 흉측한 얼굴이 더욱 세찬 경련을 일으켰다.
‘그것을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는 것은...... 우황과 한당은 엄청난 압박을 그 극사의 기운에서 느끼나 나는 지극히 옅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막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무재(無在)의 묘!’
무재의 묘라니......!
‘내가 있으되...... 없는 것과 같은 무재의 묘! 그것만이 저들의 가공할 사기를 파괴할 수 있다! 인간의 몸에서 쏟아지는 모든 기운을 중단하고...... 오감을 끊은 채 두 눈을 감는다......!’
대각(大覺)!
어떤 엄청난 깨우침이 반로의 얼굴에 떠오르며 그것은 이내 회광(恢光)의 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주군은 애초 우리가 이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바로 이 무재의 묘를 깨우쳐 주기 위함으로 우리를 이들과 상대케 한 것이다. 아아...... 나는 주군의 깊은 뜻을 이제 앎이라......!’
문득 그는 급히 우황과 한당에게 전음을 터뜨렸다.
꽤나 격동한 음성으로.......
(모든 오감을 차단하라...... 우황, 한당......! 이것은 자신의 존재를 없애는 것으로 상대에게 공격의 목표를 잃게 하는 묘리다! 아느냐? 이 간단하고도 어려운 진리를......?)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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