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9 章 바다의 꿈은 죽음의 꿈이었다
해상(海上) 십오 일(十五日)째.......
혁리혼은 한 척의 마갑대척쇄의 내실에 앉아 기묘한 눈빛을 발하고 있었다.
물안개.
돌연히 십오 일째 되는 날 일백 여 마갑대척쇄의 면전에 거대한 수십 개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을 혁리혼은 발견한 것이다.
흑뇌마자 타하륵!
그 역시 혁리혼의 뒤에 서 있다가 그 괴이한 물안개들을 바라보며 검미를 꿈틀 치켜 올렸다.
“저것은......!”
“후훗...... 대라마혈천뢰무척(大羅魔血天雷無 )이다! 이미 일만년 전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 무서운 전설의 사진(死陣)이다!”
대라마혈천뢰무척!
“저곳에 갇히는 순간 아주 강한 뇌의 기운이 물안개 속에서 터져 나온다. 그 기운은 천하의 무엇이라도 가루로 만들 것이다. 허나......!”
촤르르르륵......!
혁리혼은 수중에 있는 섭선을 가볍게 펼쳤다.
과거 흑뇌마자 타하륵이 그에게 선사했던 신비의 묵광을 발하는 섭선.
“후후...... 만상에는 상극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약점이 있는 법이지......!”
촤르르...... 르...... 차악!
그는 섭선을 다시 접어 손바닥 위를 가볍게 때리며 고혹적인 붉은 입술을 떼었다.
“후후...... 대라마혈천뢰무척은 그 무엇으로라도 파괴할 수 없으나...... 진이 펼쳐지는 그 밑은 진의 힘이 미치지 못한다.”
밑―?
수면 위가 대라마혈천뢰무척의 가공할 힘이 미치는 곳이라면 그 밑은 힘이 미치지 아니한다.
‘기상천외의 파진(破陣)이다. 마갑대척쇄의 능력을 이용한!’
흑뇌마자는 혁리혼의 뇌까림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역시 눈앞의 이 가공한 사진을 파괴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기에 함구무언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너무도 쉽고 어처구니없는 방법으로 그러나 기상천외하게 그 사진을 간단히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혁리혼은!
“천극화련 빙여설, 너는 나를 아주 우습게 보았다. 때문에 너는 그 대가를 조만간 치러야 할 것이다!”
혁리혼은 꽤나 차갑게 입술을 떼며 타하륵을 돌아다보았다.
“군사......!”
순간 흑뇌마자 타하륵은 허리를 접고 말았다.
그는 혁리혼이라 할지라도 결코 그렇게 쉽게 허리를 꺾을 사람이 아니다.
허나 이 순간 그는 혁리혼의 불가해한 지혜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타하륵은 입가에 고졸한 미소를 머금었다.
꽤나 의미가 심장한.......
“후후후...... 주군, 단 일각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 * *
“크아아아악―!”
“카― 악!”
“크으...... 우리가 천극마분도를 너무도 우습게...... 봤다...... 으으...... 이것은 죽음의 진이다.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그러나 우리는 이미...... 죽음의 진 속에 갇히고 말았다. 그 누구도...... 이제 빠져 나가지 못한다...... 크아아악―!”
대라마혈천뢰무척!
그것은 그야말로 지옥의 문과도 같은 것이다.
버― 언― 쩍!
자욱한 안개 속으로 멋모르고 들어서던 무수한 무림인들.
그들은 느닷없이 숨통을 쪼개고 드는 가공전율할 섬광에 그대로 숯이 되어 바스러져 해수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우르르르― 릉―!
번― 쩍―!
가공할 뇌의 힘이여......!
도대체 이 무시무시한 뇌의 기운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가?
아무도 몰랐다.
다만 두 가지.......
이것은 하나의 가공할 죽음의 진이라는 사실과, 그에 의해서 죽는다는 사실만을 품고 무림인들은 추풍낙엽처럼 해수 속에 고혼이 되어 사라졌다.
“커― 헉!”
“끄으...... 공포스러운 뇌의 기운...... 이다...... 컥!”
“바다의 꿈은...... 죽음의 꿈이었다. 크으...... 빌어먹을.......”
“커컥―!”
“카카― 카― 어리석은 중원 놈들! 죽음을 자초해 들다니...... 카카― 모조리 죽음 속으로 밀어 넣어라!”
대라마혈천뢰무척.
그 뒤편에서 아가리를 하늘로 쳐든 채 웃고 있는 자.
그는 천극마분도를 구성하고 있는 천여 개의 섬 중 운극마도(雲極魔島)의 도령(島令)인 사운마뢰(邪雲魔 ) 뇌후(腦候)라는 인물이다.
그는 지금 꽤나 득의한 모습으로 전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 대라마혈천뢰무척의 안을.......
사운마뢰 뇌후의 뒤.
족히 일천은 됨직한 천극마분도의 고수들이 밀집해 있었다.
설혹 대라마혈천뢰무척에서 운이 좋게 빠져 나올 수 있는 자들이라도 곧 그들의 칼에 수중고혼이 되고 말 것이다.
아주 완벽한 죽음!
“카카― 캇! 삼 단계의 죽음의 계책을 만들 필요도 없다. 이곳에서 중원의 모든 잡동사니들은 죽을 것이다. 하나도 남김없......!”
사운마뢰 뇌후는 신나게 떠들어대다가 한순간 입술이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보라!
우르르르― 릉―!
콰아아아.......
엄청난 물기둥이 그의 앞에서 솟구쳐 오르는가 싶자 거대한 괴물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철갑선.
그것도 한 척이 아닌 무려 백여 척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수중에서 치솟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쩌― 억―!
사운마뢰 뇌후의 입이 찢어질 듯 벌려졌다.
“저...... 저럴 수가......! 천하에 저런 배가...... 있었다니!”
너무도 거대한 철갑선.
그들의 출현은 가히 대해를 뒤집어 놓을 기세였다.
“헉! 어떻게 물 속에서.......”
“으으...... 놈들은 대라마혈천뢰무척의 약점을 알고...... 수중을 통해 파괴하고 들었다.”
“마...... 막아라!”
대해는 발칵 뒤집힌 채 천극마분도의 고수들은 빛살 같은 기세로 배를 몰아 철갑선을 덮쳐들었다.
허나 이런 경우를 가리켜 이란격석(以卵擊石)이라 하던가?
꽈꽈꽈꽈― 꽝―!
꽈드드득― 꽈꽉!
“크아아악―!”
“크으...... 커컥!”
“크으......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저것은 배가 아니라 마물이다!”
천극마분도의 고수들이 타고 있는 배는 모조리 철갑선에 부딪혀 바스러져 버리고 있었다.
철갑선의 위.
한 인물이 아주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파괴되는 천극마분도의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큿...... 애초 나 혁리혼의 앞을 막지 말았어야 했었다!”
혁리혼.
그들은 마갑대척쇄를 이용해 수중으로 스며들었던 것이다.
대라마혈천뢰무척의 약점을 통해.......
“후훗...... 마갑대척쇄, 꽤나 괜찮은 물건인데?”
“쿠쿠...... 주군께서는 이제 곧 마갑대척쇄가 왜 바다의 마물이라고 불리는지 아시게 될 것입니다.”
혁리혼의 뒤에서 죽음이 만들어지고 있는 바다를 굽어보고 있던 흑뇌마자 타하륵의 두 눈에서 무서운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콰아―!
꽈르르― 릉―!
“크아아아악―!”
“으으...... 이럴 수가...... 수중에 관한 한 본 천극마분도의 적수는 없는데.......”
“저...... 저놈들은...... 수중에 귀신 같은 놈들...... 이다! 크으.......”
“저...... 철갑선의 주인은.......”
일백여 척의 마갑대척쇄.
그것은 아주 미묘한 방향에서 천극마분도의 일천여 고수가 타고 있는 배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콰콰콰콰― 콰아― 앗!
그에 따라 수십 장 위로 헤아릴 수도 없는 물기둥이 솟구쳐 올랐고, 천극마분도의 고수들을 태운 배들은 허공으로 붕 떠오르며 모조리 박살나고 있었다.
콰콰― 콰콰― 콰―!
“크아― 악―!”
“카흑...... 우리는 지금...... 이름도 모를 엄청난 수중진(水中陣)에...... 걸려 버렸다......!”
“말도...... 안 된다...... 천극마분도의 해상에서의 힘이 이렇듯 허무하게...... 허물어지다니! 크으으......!”
그야말로 무참한 패배!
“후후후...... 후...... 감히 본 전의 마갑대척쇄...... 바다의 마물을 건드리다니......!”
흑뇌마자 타하륵은 살기 어린 웃음을 떠올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그는 한곳에 시선이 이르러 부르르 전신을 진동시켰다.
그는 아주 무표정한 얼굴로 무너지는 천극마분도의 고수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전신에서는 괴이한 기운이 스멀거리며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 그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타하륵은 내심 이빨 저린 신음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치 잡아 놓은 먹이를 천천히 조롱하며 입 안에 구겨 넣는 야수처럼.......’
타하륵은 불식간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그의 전신에서 이는 것은 가공할 승부의 기질과 무서운 패군의 기운이다!’
문득 혁리혼의 입에서 해풍을 타고 짧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후훗...... 강하지 않으면 꺾여야 한다, 빙여설. 네가 내 앞에 무릎을 꺾을 때까지 이 죽음의 문은 계속 열려 있을 것이다!”
* * *
“도주! 현재 본 도를 좁혀들고 있는 세력은 자그마치 크고 작은 일백여 세력입니다! 그들은 이미 두 번째 죽음의 관문조차 파괴한 상태입니다! 특히 그들 중 혁리혼이란 자가 이끄는 백여 척의 철갑선은 무섭도록 파죽지세의 힘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책을......!”
사해마공은 꽤나 다급한 기색으로 얼굴이 시꺼멓게 굳어 있었다.
파르르......!
천극화련 빙여설은 붉은 입술을 잘게 떨었다.
“혁리혼? 도대체 어떻게 생긴 자이기에?”
“놀라운 자입니다. 그가 두 번째 관문을 돌파하는 방법을 뒤따르던 중원의 다른 세력이 똑같이 응용하기 때문에 본 도에서는 힘조차 쓸 수 없습니다! 그로 하여 본 도의 오만여 세력이 수장되는 참변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해마공의 눈빛은 절망으로 물들었고, 바닥에 찧고 있는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허나 천극화련 빙여설!
이 오만한 한 송이 꽃은 일순 조그만 어깨를 흔들며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 호...... 상대가 없는 싸움은 무의미한 것이다. 그런 상대가 있어야 승리한다 해도 의미가 있는 것이지...... 호호.......”
“......!”
“뱀 새끼가 수백 마리가 있다 해도 태산을 허물 수는 없는 것이다.”
“허나 그들 중 다섯은 뱀 새끼가 아닌 용중용(龍中龍)입니다!”
사해마공이 고하자 천극화련 빙여설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아주 사악하게 웃었다.
“안다. 팔황대마성좌의 인물들이 그 속에 끼여 올 것이라는 것은!”
“......!”
“그리고 제삼관이라는 죽음의 문을 만들어 놓은 것은 바로 그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더냐?”
제삼관!
사해마공은 그 한마디에 일순 낯빛이 밝아졌다.
‘삼관...... 그것이면 그들을 막기에 충분하다! 염라대왕이라 한들 그것을 뚫지 못하고 수중고혼이 되고 말 것이다! 확신한다!’
망망대해.
언제나 보아도 끝없는 힘이 용솟음치는 그곳.......
천극화련 빙여설은 십년 동안의 고통 속에서도 그 바다를 보며 고통을 감수해 온 여인이다.
그녀는 아주 강했다.
남자 이상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에서 무서운 뇌의 빛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아무리 강하고, 또 두 개의 관문을 파괴했다 해도 역시 수중에 관한 한 본 도 이상의 강함을 지니지 못한 자들이다!”
그녀는 문득 요악한 미소를 입술에 묻었다.
“나는 확신한다. 이번 세 번째 관문으로 그들 모두의 죽음을 책임질 것이다.”
“......!”
“만약 세 번째 관문을 파괴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인간이 아닌 신일 것이다!”
* * *
일체 불필요한 동작을 거세한 죽음의 칼!
카아― 카아― 카아―!
그는 한 조각 나무토막 위에 두 발을 디딘 채 불가사의한 속도로 허공을 칼로 끊고 있었다.
사내의 표정은 마치 쇠를 부어 만든 듯 무표정하고 차가웠다.
“크아악―!”
“크으...... 무서운 검기다! 오십여 장 밖의 적을...... 허리를 끊다니!”
저주의 칼!
사내는 등에 한 소녀를 업고 있는데도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칼을 쓰고 있었다.
그는 중원의 복장이 아닌 동영의 인자가 갖추는 특이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나 영목태랑의 칼은 무정하다. 그리고 잔혹하다......!”
그는 소름 끼치도록 무감동한 음성을 흘려냈고, 그의 칼에서 수십여 장이나 쏘아져 나오는 가공한 검기는 부딪쳐 오는 천극마분도의 고수를 그대로 토막내 버리고 있었다.
“후후...... 후...... 나의 칼을 막지 마라. 나의 칼이 분노를 일으키면 지옥의 문을 베고 염왕의 목조차 베고 만다......!”
카아아아― 앗―!
시퍼런 죽음의 검기.......
실전의 살인검.......
그 모든 것은 인자로서 죽음 속에서 터득한 가공할 괴검의 수법이다.
일체의 형식을 배제한 오직 죽음만을 만드는 괴검!
스― 슷―!
그가 밟고 서 있는 나뭇조각은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갔고, 무수한 비명 속에 잠겨 죽마인예 영목태랑의 무심하나 참담한 음성이 피어올랐다.
“나에게는...... 할 일이 있다! 나의 육신이 얼마지 않아...... 마지막 생의 불꽃을 태우며 꺼지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죽음이―?
“크아아― 아악―!”
“케엑―!”
카카카카― 카카― 카아.......
저주와 죽음의 칼바람이다, 그것은!
* * *
“하하핫핫...... 빙여설, 그 계집은 분명 미쳤거나 어디가 잘못된 계집이다......!”
악마의 바람!
우르르르릉― 우르릉!
콰아아― 콰아― 콰아―!
대해를 모조리 뒤집어 놓을 듯한 가공무비한 강기의 폭풍을 밀어내고 있는 자.
그는 꽤나 아름다운 손을 지니고 있었다.
“크아아악...... 악! 저놈은...... 상대할 놈이...... 아닌...... 악마 같은 놈이다......!”
“허억! 인간의 몸에서 이런 공포스런...... 강기라니......!”
“케― 에엑!”
사내는 조그만 조각배에 몸을 실은 채 무서운 죽음의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꽈꽈꽈꽈아아― 아―!
쿠쿠― 쿵―!
솟구쳐 오르는 물기둥과 죽음을 부르는 악마의 바람 소리.......
그 속으로 천극마분도의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고수의 죽음이 고기 떼처럼 물기둥을 타고 치솟아 올랐다.
“크아아― 아―!”
“끄― 악!”
그 지옥도를 보고 미친 듯이 웃는 미공자!
“후후...... 하핫...... 본 옥면마존 앞에 이런 따위의 별볼일 없는 자들을 놓아두다니!”
위이이잉― 위잉―!
“우후후후...... 삼마겁의 전설은 본존의 것이 될 것이다! 그 미친 계집년을 손바닥으로 꺾어 버린 뒤...... 하하하핫핫...... 핫...... 가랏!”
콰콰― 콰아― 콰아―!
“크아아― 악!”
“사...... 사신에게 걸렸다...... 커헉!”
헌데 그때였다.
돌연 수면 백여 장 방원을 모조리 뒤집는 수십여 개의 엄청난 물기둥이 해면을 가르며 솟구쳐 올랐다.
쿠쿠쿠쿠쿠― 쿠우―!
꽈르르릉― 쾅!
가공할!
그것은 마치 바다가 개벽을 하는 듯한 엄청난 기세였다.
“헉―!”
옥면마존 사무향은 두 눈을 부릅뜨며 솟구쳐 오르는 수십 개의 물기둥을 올려다보았다.
“이...... 무...... 무슨......?”
보라!
대해를 가르며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른 것은 수십, 아니 그 이상의 가공스럽도록 괴괴로운 혈탑(血塔)!
쿠쿠쿠쿠― 쿠쿵―!
콰아아― 아―!
더도 덜도 아닌 백팔 개의 혈탑인데.......
그 혈탑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무시무시한 죽음의 강기를 폭출시키고 있었다.
그 혈탑들은 천극마분도로 향하고 있는 고수들을 원형으로 포진하며 좁혀들고 있었다.
우르르르릉― 우릉!
꽈꽈꽈아.......
혈탑이 스스로 움직이며 좁혀지다니.......
“크아아아― 악―!”
“켁! 마...... 마물이다!”
“으으...... 숨통을 조이는 강기는 둘째...... 치더라도...... 저 마물들이 완전히 좁혀진다면 우리는 모조리 육괴가 되어 바수어져 버리고 말 것이다...... 크으.......”
천극마분도를 향하던 고수들의 안색은 사색이 되고 말았다.
옥면마존 사무향!
그의 얼굴이 시꺼멓게 변하여 이지러지고 말았다.
“으헉! 무언가...... 잘못되었다. 이것은 전설의...... 백팔유옥철마사탑(百八幽獄鐵魔死塔)...... 벗어나야 한다! 문이 기관에 따라 움직이기 전에.......”
백팔 개의 혈탑은 완전히 철옹성처럼 수천 명의 고수들을 가두어 버렸다.
가가가가― 가― 강―!
기관이 움직이는 으스스한 음향과 함께 백팔 개의 혈탑에 나 있는 문이 일제히 열렸다.
순간 갇혀 있던 고수들은 그 문을 향해 일시에 몰려들었다.
“저...... 저 문으로 빠져 나가면 된다!”
“으으...... 살았다―!”
허나 그들이 혈탑의 백팔 개의 문을 향해 솟구치는 순간이다.
콰아...... 콰아...... 콰아.......
찌르르르릉―!
그 수도 헤아릴 수 없으리만치 무서운 암기가 우박처럼 고수들의 전신을 쑤시고 들어왔다.
“크와와왁―!”
“크으...... 생문이 아닌...... 죽음의 문이다...... 저곳은.......”
문.
그것은 모조리 죽음을 만들어 놓은 구유사문(九幽死門)이었다.
카카카카― 카아.......
“커― 헉―!”
옥면마존 사무향은 안색이 대변한 채 쏘아 가던 신형을 허공에서 멈추었다.
“빌어먹을...... 이미 기관은 작동되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출구는 위다!”
찰나 그의 신형은 믿을 수 없으리만치 빠르게 허공을 격하며 위로 솟구쳐 올랐다.
파파파팟―!
헌데 그 순간이다.
“크크...... 어리석은 놈이다. 위로 솟구치다니!”
“흐흐...... 무적의 호신강기와 만년한철이라도 꿰뚫어 버린다는 파라마골전(破羅魔骨箭)이 놈의 심장에 바람구멍을 내고 말 것이다!”
음악한 독사의 웃음이 혈탑에서 울려 퍼짐과 동시.......
꽈르르르릉―!
찌르르― 르르― 릉―!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가공할!
허공을 가득 메우며 옥면마존을 향해 쏘아져 가는 것은 족히 그 크기만도 열 자가 넘는 마전(魔箭)!
“헉!”
옥면마존 사무향의 얼굴이 완전히 시체처럼 변하고 말았다.
찰나 화끈한 충격과 함께 그는 그대로 혈탑을 넘어 대해 속으로 낙엽처럼 떨어져 내렸다.
“크으...... 악―!”
* * *
“훗훗...... 백팔유옥철마사탑? 애들 병정놀이를 하자는 것인가?”
혁리혼은 꽤나 차갑게 웃고 있었다.
타하륵은 혁리혼의 뒤에 선 채 느닷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백팔유옥철마사탑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 치켜 올렸다.
“최소한 본 전의 일백 마갑대척쇄는 수중에 관한 한 무적이다. 흐흐흐...... 수중의 마물인 마갑대척쇄의 두 번째, 세 번째 위력을 너희들은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오른손에 들고 있는 하나의 백색 깃발을 허공에 들어올림과 동시, 세차게 백색 깃발을 허공에 갈랐다.
파라라라락―!
순간이다.
끼끼끼끼― 끼끼―!
과과과과과― 과광―!
치떨리는 기괴한 음향이 일백 척의 마갑대척쇄의 동체로부터 짓터져 나왔다.
촤촤촤촥!
까까까― 깡!
보라!
일백 척의 마갑대척쇄의 동체 좌우로부터 일제히 거대한 날개와 같은 괴이한 물체가 튀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날개의 길이는 족히 이십여 장의 길이나 되는데, 날개의 한쪽 날은 모조리 톱날처럼, 이리의 이빨처럼 섬뜩한 날을 갖고 있었다.
파라라락―!
한순간 타하륵의 손에 또다시 적색의 깃발이 들려 허공을 찢었다.
순간이다.
츄츄츄츄...... 츄.......
츄와와― 왓!
일백 척의 마갑대척쇄는 무서운 속도로 앞으로 질주하며 백팔 개의 혈탑, 백팔유옥철마사탑을 향해 부딪쳐 갔다.
그 가공할 기세라니!
화르르르릉......!
화르르― 릉!
무시무시한 폭화뢰(爆火雷)가 일제히 백 척의 마갑대척쇄에서 폭출해 나갔다.
찰나!
콰두두두둑!
콰― 콱!
“크아아악―!”
“컥―!”
믿을 수 없게도 도검에도 흔적조차 만들어지지 않는 백팔유옥철마사탑이 통째로 허리가 끊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크하하핫핫...... 핫...... 모조리 끊어 버려라! 그리고 부딪히는 것은 폭화마천뢰(爆火魔天雷)로 모조리 녹여 버려라!”
흑뇌마자 타하륵의 미친 듯한 광소가 대해를 찢어발기며 백 척의 마갑대척쇄는 무서운 기세로 백팔유옥철마사탑을 통째로 날려 버리고 있었다.
꽝......!
두와두두두― 둑! 꽈르르릉......!
“크― 악―!”
“컥...... 우리가 잔인하다 하나...... 놈들은 수백 배 더 잔인하다!”
‘과연 마갑대척쇄는 수중의 마물이라 불러 한점 잘못될 것이 없다!’
혁리혼은 눈앞에 펼쳐지는 가공할 기세에 혀를 찼다.
문득 그의 시선이 수백 장 앞으로 던져졌다.
섬[島].
족히 일천여 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군도가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자욱한 안개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 출렁이는 가운데 환상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거대한 섬들......!
바다의 꿈을 먹으며 억겁의 신비를 간직한 채 신비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섬.
‘천극마분도......!’
혁리혼의 눈에서 아주 강렬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 천극마분도!
해상 삼십여 일째.
마침내 그 신비의 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후훗...... 천극마분도, 오늘 나 혁리혼의 수중에 떨어질 것이다.”
혁리혼은 나직이 중얼거리다가 일순 전신에 얼음 조각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한기를 뿜어냈다.
“아니면...... 모조리 수중의 고혼이 될 것이다!”
휘이이잉―!
해풍이 사납게 불어와 그의 머리결을 휘말아올렸다.
아름다운 사내.
그는 처절하리만치 퇴폐적인 미소와 시리도록 아름다운 손을 갖고 있으나 그의 전신에서는 아주 강한 야수의 기질이 흐르고 있었다.
“빙여설, 너는 나의 적수가 아니다, 최소한......!”
그는 해풍 속에 곧 흩어져 버리는 나직한 뇌까림을 흘렸다.
그러다 문득 그의 눈가에 꽤나 기묘한 빛이 떠올랐다.
그의 시선이 해면의 한곳에 머물렀다.
그곳에는 지금 한 인물이 나뭇조각을 부둥켜안은 채 떠내려오고 있었다.
혼절을 하고 있는 듯 미동조차 안 하고 있는 사내.
“훗...... 묘한 인연이군?”
혁리혼은 통나무에 실려 떠내려오고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일순 혁리혼은 오른손을 들어 해수에 떠내려오는 사내를 향해 가볍게 움켜쥐며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스― 윽!
순간 통나무와 사내가 통째로 혁리혼의 수중으로 빨려들었다.
츄우우우우.......
무서운 흡력이다.
천마접인(天魔接印)!
바로 광유자가 미완성해 놓은 불가사의한 수법이다.
혁리혼은 그것을 이미 완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극성까지 익히고 있었다.
혁리혼은 품속으로 날아든 사내를 바라보았다.
사내는 섬세하도록 꽤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계집아이라면 뭇 사내의 눈이라도 뒤집을 정도로.......
“계집애처럼 잘생긴 놈! 나를 만나면 빚을 배로 받아내겠다고 했던가? 후훗.......”
빚―?
옥면마존 사무향.
혼절해 있는 사내는 바로 그였다.
그는 백팔유옥철마사탑에서 쏘아지는 가공한 공세에 허벅지를 꿰뚫린 채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혼절한 모습으로 해수에 떠내려온 것이었다.
“훗...... 오히려 내가 빚을 받아내야겠는데? 뇌주반도에서 나를 대신해 아극마세의 고수들과 싸워 준 것을 제하고도 말이야.......?”
혁리혼은 야릇하게 웃으며 빙글 몸을 돌렸다.
스― 슷―!
그는 이내 빠르게 선실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 * *
선실.
그 안에는 거대한 치장이 만들어져 있었다.
마치 하나의 성을 방불케 하는.......
마갑대척쇄는 해상 위에 존재하는 하나의 철옹성과도 같다.
<군림대좌현(君臨大坐玄)>
마갑대척쇄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하나의 화려 거대한 침실이다.
그것은 타하륵이 혁리혼을 위해 안배해 놓은 곳이다.
침상.
상아로 만들어 백호피를 씌워 놓은 커다란 침상 위에는 지금 한 사내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바로 옥면마존 사무향이었다.
그 앞.
혁리혼이 침중한 신색으로 선혈이 낭자한 사무향의 몰골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쯧...... 몰골이 말이 아니군? 그렇듯 팔팔하던 사람이......!”
상처 중 가장 심한 곳은 사무향의 허벅지를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화살촉이었다.
그것은 중간이 부러져 있는 상태였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당장 지혈을 하고 치료하지 않으면 꽤나 골치를 썩겠는데?”
혁리혼.
그는 이미 광유자와 화사에게서 많은 의학을 배운 사람이다.
또한 어릴 때부터 책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들었던 그.
그중에서도 특히 그는 인간의 몸 구조와 의술을 꽤나 밝힌 사람이다.
“우선 옷부터 벗겨야 치료하기에 편하겠군. 상처는 전신에 무려 수십 군데가 넘는다.”
혁리혼은 사무향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허나 해수에 젖어 몸에 착 달라붙은 옷은 피까지 응고되어 벗겨지지 않았다.
혁리혼은 얼굴을 찡그리며 혀끝을 찼다.
“골치 아프군. 할 수 없지.......”
그는 일순 사무향의 옷을 잡아당겨 그대로 찢어 버렸다.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찌― 익! 부우― 욱―!
꽤나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사무향의 옷은 순식간 홀랑 찢겨져 나가 버렸다.
헌데 한순간 혁리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