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8 章 훗날 主君의 목을 베리다,
처참하게......!
“떠나려는가?”
“내 앞에는 할 일이 너무나 많이 놓여 있소.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수 없을 만치!”
그 두 마디를 끝으로 혁리혼과 타하륵의 사이에는 기이한 침묵이 앙금처럼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의 침묵이 더 흘렀을까?
그 침묵을 타하륵이 깨고 말았다.
“내가 무엇을 도와야 하는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소?”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치며 점차 아주 강한 불꽃을 일으켰다.
그리고.......
“내 야망이 나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네.”
타하륵의 서리 묻은 칼끝과도 같은 차갑고 조금은 날카로운 음성이 흘러 나왔다.
나의 야망이―!
순간 혁리혼은 얼굴에 감탄의 미소를 떠올렸다.
“훗...... 흑뇌마자, 당신은 아주 무서운 사람이오.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제일!”
이어 혁리혼은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말은 꽤나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타하륵은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네.”
혁리혼은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며 담담히 입술을 떼었다.
“같이 떠나길 바라지 않소? 그대는?”
“......!”
“그래야 우리의 마지막 승부가 시작될 테니까!”
승부?
타하륵의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혁리혼, 그는 정확하게 타하륵의 내심을 꿰뚫어 보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군사(軍師)라는 자격으로 떠나는 것이오.”
혁리혼은 그 한마디를 자연스럽고 담담히 이야기했고, 흑뇌마자 타하륵의 얼굴은 그만 치욕으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그러다 문득 타하륵은 냉혹하게 웃었다.
“후후...... 만약 이 승부의 마무리가 나의 승리로 끝난다면.......”
“......?”
“주군의 목을 가차없이 베도록 하지요.”
주군!
그의 말투는 급작스럽게 변했고, 그 말속에는 무서운 죽음의 향기가 구름처럼 묻어나고 있었다.
“아주 처참하게!”
* * *
안개.
뭉클...... 뭉클.......
짙은 안개는 늘 그랬던 것처럼 당고랍산맥을 휘감아 돌고 있었다.
혁리혼은 그 안개 속에 있었다.
흑양밀전을 굽어보며.......
그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고졸하고도 냉혹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흐르고 있는데.......
‘아주 똑똑하고 계산이 빠른 자! 그는 이미 나의 심중을 알고 계산까지 해놓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굴복하지 않는다면 흑양밀전은 오늘로써 제명될 것을 알고...... 그는 나에게 굴복의 빛을 비추었다. 허나 완전히 굴복한 것은 아니다. 그는 마지막 승부를 내걸었다!’
혁리혼은 미묘한 시선으로 흑양밀전의 구중심처를 바라보았다.
바로 타하륵이 마지막 흑양밀전을 떠나기 위해 정리를 하고 있는 구층 누각을.......
‘그는 그 마지막 승부라는 말로 흑양밀전을 존립시켰고, 나에게 완전한 굴복이 아님을 비춘 것이다...... 후훗...... 허나 흑뇌마자, 너는 곧 자신의 능력을 알고 아주 참담하게 내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일순 그의 신형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르게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슈르르르...... 르.......
“이제 천극마분도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 큿...... 그곳에서 아주 많은 것이 결정될 테지!”
천극마분도!
흑뇌마자는 그곳의 소문을 죽음이 부르는 소리라고 했다.
그때였다.
파― 팟!
한 줄기 인영이 악다물린 음성을 터뜨리며 혁리혼의 뒤를 쫓았다.
“우라질! 내 밥줄이 도망간다. 크크...... 하지만 내가 놓칠 줄 아느냐?”
대머리를 번들거리며 승포를 펄럭이면서 혁리혼의 뒤를 쫓는 자.
자칭 부타성승이라고 부르는 돌팔이 중이다.
그의 뒤를 따라 이 가는 소리가 허공에서 들렸다.
“쳐죽일 놈의 돌중! 저놈 때문에 이 우황의 세 끼 밥줄이 자꾸만 줄어든다. 돼지같이 많이 먹어서!”
* * *
비.
만상의 속삭임에 우는 여인처럼.......
봄을 적시는 폭우는 애조를 띠고 있었다.
쏴아아...... 쏴아.......
사내.
그는 한 소녀를 안고 있고, 흡사 철로 만들어진 듯한 그의 무표정한 얼굴에는 잘게 경련이 일고 있었다.
“미랑......! 그토록 그를 사랑하게 되었느냐?”
운명처럼 대륙으로 흘러들어오게 된 낭인, 죽마인예!
그의 눈빛은 빗물을 담고 흔들리고 있었다.
공허와 슬픔을 두 눈에 담은 채 소녀는 빗속의 잿빛 우울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쏴아아― 아아―!
후두두둑...... 둑.......
빗속으로 죽마인예 영목태랑의 음성이 아픔처럼 맴돌았다.
“나는......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해줄 것이다. 말하라! 미랑......!”
파르르.......
미랑의 아름다운 두 눈이 물안개를 피워올리며 잘게 떨렸다.
허나 그녀는 이내 고개를 힘없이 내저었다.
‘자부께서는 해주실 수가...... 없어요. 이것...... 만은.......’
“미랑!”
죽마인예의 그녀를 끌어안은 손에 힘이 가해졌다.
결국 그녀의 눈가에서 찰랑이던 물기는 양볼을 타고 주루룩 흘러내렸다.
너무도 깨끗한 이슬방울이다.
“아시잖아요...... 이 미랑의 어머니는 화녀(花女)였고, 아버지는 누구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가슴을 저미게 하는,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가슴 가득 끌어안아 주고 싶은 소녀다, 그녀는.......
“미...... 미랑!”
영목태랑의 의식적으로 차가워지려는 안색이 순간 격한 파문을 일으켰다.
한순간 하나의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영상이 그의 무심하기만 한 뇌리 속으로 파고든다.
그 영상의 주인은 아주 아름다운 여인이다.
쏴아아...... 쏴아...... 쏴아.......
폭우 속에 피어오르는 물안개처럼 떠오르는 여인.
‘혜사(慧士)...... 더러운 피가 찌꺼기처럼 흐르는 너는...... 이제 죽어갔으나 이렇듯 나의 영혼을 잡고 있다...... 미랑의 영혼마저도......! 미랑은 깨끗한 영혼을 지닌 아이다. 제발...... 제발...... 그녀의 영혼을 놓아...... 주어라.......’
미랑의 창백한 볼을 쓰다듬는 영목태랑의 손이 아주 가는 흔들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음속의 주체할 수 없는 격정 때문이다.
“미...... 미랑! 우리 이제 그런 말은 하지 말자!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제발.......”
허나 미랑은 점차 영목태랑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입술을 잘강 씹었다.
눈물을 삼키기 위함이다.
“아무도...... 아무도 그런 나를 사랑해 주지...... 않을 거예요...... 나는 알아요.......”
부르르.......
아픔처럼 진득한 고통이 주체 못하도록 영목태랑의 가슴을 저미어 왔다.
“미랑...... 너는 사랑하고...... 사랑받을 권리가 있다...... 너의 영혼은 그 어떤 여인보다도 순수하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미친 듯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영목태랑은 주체 못할 격정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무도 너를 무시하지는 못한다! 그런 자가 있다면...... 이 자부(刺父)의 칼이 그의 목을 끊어 버리고 말 테다, 미랑!”
미랑의 가녀린 비 맞은 몸을 끌어안은 그의 두 눈에서 무서운 살기가 피어올랐다.
“너...... 너는 죽으면...... 안 된다! 결코!”
죽음.
소녀의 밀랍처럼 창백한 얼굴은 죽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녀는 서서히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득 미랑은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파리하게 떠올리며 잿빛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환상을 보고 있었다.
“아...... 내가 죽기 전에...... 노을을 보았으면...... 해요...... 그날처럼 아름답던...... 노을을 말이에요.......”
주루룩!
죽마인예의 뺨 위로 두 줄기 빗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울고 있는 것인가?
감정을 지녀서는 안 되는 인자가......?
영목태랑은 격하게 몸을 일으켰다.
“가자, 미랑!”
“어디로요? 우리가 갈 곳은...... 아무 데에도 없잖아요.......”
뭉클.......
영목태랑은 하마터면 감정이 폭발하고 말 뻔했다.
그는 입술을 잘게 떨고 있었다.
그랬다.
그들은 대륙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제 그에게 가는 것이다.”
그?
순간 미랑의 몸이 애처롭게 떨림을 일으켰다.
“아아...... 저는 갈 수가...... 없어요...... 그분은 나를 받아주지 않을 거예요...... 더러운 화녀의 피가...... 나의 몸 속에 흐른다고...... 두려워요.......”
스― 슷!
죽마인예 영목태랑은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그는 아주 조그맣게 뇌까렸다.
“그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나는 안다...... 허나 만약......!”
쏴아아...... 쏴아.......
“그러한 이유로 그가 너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나는 그를 죽이리라!”
그의 두 눈에서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 쭈욱 뻗어 나왔다.
* * *
광동성(廣東省) 뇌주반도(雷州半島)!
중원대륙의 제일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치 하나의 혹이 달린 듯 대륙과 이어지는 이곳은 하나의 끝없는 갈대밭을 연상케 하는 곳이다.
천태만상의 갖가지 독충이 우글거리며 서식하기 때문에 아주 오래 전에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 곳이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 사지(死地)에 무수한 무림인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었다.
야망의 칼!
그들은 무섭게 불타 오르는 야망의 칼을 가진 사람들이다.
삼마겁의 전설― 바다가 지닌 환상의 꿈!
바로 천극마분도를 향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폭풍!
이미 한 가닥 야망의 칼끝이 대륙을 뒤흔든 지 오래다.
이미 바다로 향한.......
* * *
“후훗...... 나는 분명 혁리혼이란 인물이 아님을 밝혔다.”
그는 아주 차갑게 웃으며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휘리리리리― 릭!
뇌주반도의 끝없이 펼쳐진 갈대가 바람에 휩쓸려 뉘어질 때, 사내의 주위를 둘러싸고 무수한 인물들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모습이 언뜻 비추어 들었다.
차갑게 웃고 있는 자.
그는 수중에 한 자루 고색창연한 보검을 들고 있는데, 용모는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비록 남장의 모습이나 섬세한 여인의 굴곡과도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인물.
순간이다.
“카카― 혁리혼, 네놈의 생명을 인수하겠다. 아극마세의 이름으로!”
“크크크― 발뺌이라니...... 그렇게 소인이었던가?”
갈대밭 어디에선가 독사의 울부짖는 듯한 음성이 바람결에 울려 왔다.
사내는 흑포를 바람에 펄럭이며 실소를 흘렸다.
“후훗, 웃기는 아이들이군. 사람을 착각해도 유분수지, 내가 어찌 혁리혼이란 말인가!”
동시에 그의 신형이 바람 따라 솟아올랐다.
슈슈...... 슛.......
그리고 그의 수중에 있는 고색창연한 고검이 공간을 짓찢어발겼다.
카아아아!
“미친놈들! 가라!”
“크아아악―!”
“커― 헉!”
갈대밭 속에서 피가 뿜어져 오르며 지옥문을 파괴하는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으...... 역시 소문대로...... 악마 같은 자다!”
“본 아극마세의 초극강고수 일천여 명을 도륙한...... 자...... 저놈은 악마다!”
꽈아아― 꽈아― 꽈아―!
무시무시한 검의 기운이 무지갯살처럼 허공을 가르는 가운데 사내는 은은한 놀라움과 의혹을 느꼈다.
‘아극마세 초극강의 고수를 일천여 명이나? 혁리혼, 그자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그는 중원에 들어 혁리혼, 그 세 글자의 이름을 무수히 들었다.
대륙을 하루아침에 풍운 속으로 몰아넣은 신비 속의 인물...... 혁리혼!
‘빌어먹을! 중원에 들어 나의 귀를 거슬리게 하던 놈의 이름이 결국은 나를 곤궁에 몰아넣다니!’
그는 꽤나 울화가 치미는 듯 무지막대한 검강을 덮쳐드는 자들에게 퍼부으며 심장 짓떨리는 음갈(陰喝)을 내뱉었다.
카아아아아― 아앗―!
“아극마세주( 克魔勢主) 혈군대마작(血君大魔爵) 아극탑막( 克塔幕)! 그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다. 감히 나를 그런 뜬소문 속의 놈으로 간주하고 칼을 들이대다니!”
슈우우우욱!
파― 팟! 버― 언― 쩍!
족히 이백여 명의 가공할 고수들의 합벽검세!
그 기세는 태산조차 눈 깜짝할 사이에 날려 버릴 가공할 힘이었다.
허나 사내는 강했다.
그것도 아주.......
문득 덮쳐드는 수십 명의 고수들의 병장기를 향해 사내는 오른손을 가볍게 움켜쥐어 갔다.
“미...... 미친놈!”
“죽으려고...... 칼을 잡다니......!”
아극마세의 고수들은 독사처럼 웃었고, 그 웃음은 이내 졸지에 경악으로 일그러지고 말았다.
와드드득― 꽈직!
“후후...... 어린아이 장난감들인가?”
사내의 손아귀 속에 들어간 십여 자루의 병장기들이 그대로 가루로 화하여 부서져 날리는 것이 아닌가?
“아앗......!”
“헉! 맨손으로 쇠라도 무처럼 베어 버리는 검을...... 으으.......”
아극마세의 고수들은 안색이 시꺼멓게 변하여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순간 사내의 입에서 꽤나 잔혹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크흣...... 그냥 갈 텐가? 주었으면 받아야지.......”
동시에 그의 수중에 가루로 변하여 있던 병장기의 조각들이 그의 손을 떠나 공간을 쑤시고 들었다.
피피피― 핑!
쐐애애― 애― 애― 액!
“끄아아아악!”
“컥!”
“카― 흑! 무서운...... 놈이...... 다.......”
아극마세의 고수들은 순식간 목줄을 잡고 갈대밭 속으로 고꾸라졌다.
“중원에 들어 멋진 장식을 하게 되는 셈인가? 모조리 죽이면?”
사내의 입술 사이로 섬칫한 극사의 음성이 흐르는가 싶자 그의 양손은 허공을 향해 괴이무비한 원을 그렸다.
“후후...... 나는 강아지 새끼들과 어울려 놀 시간이 없는 사람이다.”
순간이다.
하늘을 향해 원을 그리는 그의 장심을 중심으로 무시무시한 강기가 회오리쳐지는가 싶었다.
카카카카― 카오오―!
그것은 이내 공포스럽게 강기의 폭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르르르― 릉!
파파파― 팟!
방원 백여 장 주위의 땅거죽이 진동을 일으키며 모조리 폭죽 터지듯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가랏!”
찰나 사내의 두 손이 일순 아극마세의 고수들을 향해 쭈욱 뻗어졌다.
“허억―!”
“피...... 피하랏! 저것은...... 죽음의 바람...... 크아아악―!”
찌르르르릉― 찌릉―!
콰아...... 콰아...... 콰콰콰...... 쾅......!
대지를 모조리 뒤집어 놓은 엄청 가공할 죽음의 바람!
이 어찌 인간의 몸에서 터지는 미증유의 능력이란 말인가?
콰르르르― 릉―!
쩌― 어― 억―!
거대한 암석이 균열을 일으키며 쪼개어지는가 싶자 이내 가루로 화하여 날린다.
그리고 그 속에 흩어지는 것은 인간의 소름 끼치는 골편(骨片), 육편(肉片)이었다.
휘리리리리― 후두둑...... 툭.......
“쿠쿠쿠...... 쿠.......”
지옥을 통째로 바수어 놓은 듯한 공포스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웃는 자.
그는 흡사 악마처럼 자신이 만든 주검을 구경하고 있는 듯 이를 드러내 놓고 웃고 있었다.
* * *
“크으...... 악마 같은 놈!”
“우리가 잘못 짚었다...... 저놈은 혁리혼이란 자가...... 아니다...... 커억!”
퍼퍼― 퍽!
갈대밭은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쥐죽은듯한 고요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아아―!
강한 바람이 갈대를 눕히며 왈칵 피비린내를 풍길 때, 사내는 흡사 조금 전 이백의 고수를 죽인 것이 자신이 아닌 것처럼 꽤나 담담한 웃음을 흘리며 두 손을 털었다.
탁! 탁......!
“후후...... 너희들은 너무 늦게 알았다. 감히 본 옥면마존(玉面魔尊) 사무향(私武香)을 혁리혼인가 애송이인가 하는 놈에게 비견하다니!”
휘리리리링― 링―!
서늘한 바람이 불어 그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휘말아 올린다.
악마의 손바닥을 가졌으나 아주 아름다운 손을 지닌 자.......
“혁리혼? 다음에 만나면 이 빚은 배로 받아낼 것이다. 지금은 천극마분도로 가야 할 바쁜 몸이니까 접어둔다.”
동시에 그의 신형은 천천히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마치 계단을 밟듯이.......
* * *
“악마의 바람을 지닌 자...... 옥면마존 사무향! 후훗.......”
언제부터인가?
한 인물이 구릉 위에서 느긋하게 팔짱을 낀 채 갈대숲에서 사라져 가는 옥면마존 사무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입가에 차고 퇴폐적인 미소를 지니고 있는 자.
그의 옥면마존 사무향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는 두 눈은 흑청빛 대해의 심유함을 닮았다.
그는 고개를 야릇하게 갸웃거렸다.
“후훗...... 나에게 빚을 배로 받아낸다고?”
혁리혼, 바로 그였다.
그는 으쓱 어깨를 치켜 올리며 자신의 코끝을 가볍게 퉁기며 조그맣게 뇌까렸다.
“팔황대마성좌 중 하나의 오천 년 전 난세주역의 후예인...... 대륙과 바람이 시작되는 곳의 힘! 큿...... 생각보다는 괜찮은 인물인데?”
오천 년 난세의 주역― 대륙과 바람이 시작되는 곳의 힘이라니!
옥면마존 사무향이?
고운 손에 악마의 손바닥을 지닌 자.
혁리혼은 문득 갈대밭에 누워 있는 주검들을 내려다보며 싸늘한 빛을 얼굴에 떠올렸다.
“혈군대마작 아극탑막, 이로써 나를 척살하기 위해 자신의 초극강고수들을 여섯 차례에 걸쳐 천이백을 잃은 셈인가?”
아극마세의 고수!
그들은 혁리혼이 흑양밀전을 떠난 뒤에도 꽤나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어리석은 자! 너는 힘은 갖고 있으나 머리를 갖고 있지 않은 어리석은 자다, 아극탑막!”
바람이 분다.
“아극마세의 중추이자 기둥이랄 수 있는 초극강고수 일천이백의 희생은...... 이것은 그에게 엄청난 타격을 준다. 최소한 아극마세가 부활하기 위해서는 일년 이상이 걸려야 될.......”
혁리혼은 고졸한 웃음을 입가에 물었다.
“후훗...... 혈뇌마겁, 그의 독계(毒計)는 통쾌하게 적중된 것인가? 이렇게 되면?”
일순 혁리혼의 신형이 서서히 안개가 흩어지듯 그 자리에서 사라져 갔다.
파스.......
“고마운 일이다. 혈뇌마겁...... 후후...... 너는 얼마 후 너의 모든 독계가 혁리혼을 위한 것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피를 토하게 될 것이다. 우후후.......”
* * *
천극마분도!
바다의 꿈과 영원한 환상에 휩싸여 있는 그곳.
무림인이라면 이제 삼마겁의 전설과 천극마분도를 모르는 이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자라면 모두 바다로 갔다.
꾸역...... 꾸역.......
― 바다에 내 야망의 칼을 꽂으리라!
― 삼마겁의 전설을 취하여 대륙의 주인이 될 것이다, 나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폭풍의 야기(惹起)!
허나 뉘라서 아는가?
그것은 죽음이 부르는 악마의 소리다.
바다의 꿈은!
* * *
호화로운 대전.
도대체 하늘 아래 이보다 더 호화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내실이 있을까 싶은데.......
보라!
그 이름조차도 알 수 없는 영롱한 보석의 칠채보광(七彩寶光)을 뿜어내고 있는 조각과 시리도록 아름다운 산호의 장식들.......
바닥을 깔고 있는 천축 특산의 어잠백린피(魚潛白鱗皮)로부터 대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세인의 눈을 부릅뜨게 하는 보석뿐이다.
마치 이곳은 하나의 거대한 보고(寶庫)와도 같았다.
“이것은 음모?”
여인은 백 가지의 보광을 발하는 아주 눈부신 보의에 앉아 파리하게 입술을 떨고 있었다.
보의에서 뿜어지는 백 가지의 광채보다도 더 신비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
노기가 서린 그녀의 아름다운 옥태는 태어날 때부터 타인을 굽어보고 명령만을 내린, 그런 고귀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꽤나 고고하고 오만한 빛이 엿보이는 여자.
그녀의 발치 끝에는 네 명의 신태비범한 노인들이 머리를 박고 있었다.
“도...... 도주(島主)......!”
“이럴수록 침착하셔야 합니다!”
“본 천극마분도를 위해서라도...... 참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가늘게 몸을 떨고 있는 자들.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보의에 앉아 있는 여인을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헌데 천극마분도라니......!
지금 네 명의 노인은 분명 그렇게 말했는가?
― 천극마분도!
중원대륙과 수만리나 떨어져 있는 환상의 섬!
바다의 꿈을 지니고 있는 곳.......
잘강!
도주라고 불린 보의의 여인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창 밖에 펼쳐져 보이는 망망대해를 돌아보았다.
“삼마겁의 전설...... 이미 오천 년 동안 내려온 그것을 우리는 모조리 얻었다!”
― 삼마겁의 전설을 이미 얻었다!
그렇다면 중원대륙을 폭풍의 와중으로 몰아넣은 그 소문은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깨어났다고 했다.
삼마겁의 전설이...... 잠 속에서......!
“한데 그것이 아직 존재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문이 중원에 퍼지다니?”
“......!”
“......!”
“본 도주는 이틀 전에 그 삼마겁의 전설을 파괴하고 출관을 했다. 꼭 십 년 만에!”
그랬던가?
여인은 꽤나 오만한 시선으로 용틀임을 일으키는 바다의 포말을 바라보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친 듯이 솟구쳐 올라 하늘을 찌르는 파도!
우르르르― 릉!
콰아아아...... 아.......
여인의 해맑고 조금은 차가운 빛이 담겨 있는 두 눈은 그 파도를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하늘을 굽어보듯이.......
“이제 중원 진출을 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우리가 중원무림으로부터 합공을 받다니!”
그녀는 세차게 이를 갈았다.
“이것은 누군가가 본 도의 세력을 파괴하고, 천하무림의 힘을 거세해 버리자는 어부지리(漁父之利)의 획책이다!”
순간 네 명의 신태비범한 노인은 피 터지도록 머리를 바닥에 박았다.
콰― 직!
“허나 천하무림은 파괴되나 본 도의 힘은 절대 파괴되지 않을 것입니다.”
“크크...... 중원인들은 지금 죽음의 덫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아주 품위 있는 자태로.......
그리고 창 밖으로 보이는 끝없는 망망대해를 향해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차게 웃었다.
“호호...... 물론이다. 본 도주 천극화련(天極花蓮) 빙여설(氷如雪)은 이제 망망대해를 피로 물들여 놓겠다. 그리고 보여 주리라. 오천 년 동안 웅크리고 있던 잠룡의 포효를!”
피[血]!
소름 끼치도록 비릿한 피냄새가 물씬 풍기는 말이다.
“호호...... 호...... 준비하라! 죽음의 꿈을 먹기 위해 찾아드는 중원의 벌레들을 모조리 수장(水葬)시켜 버릴 지옥의 문을!”
“천명(天命)을 받드오이다!”
“크크...... 지옥의 문은 이미 열려 있습니다.”
“흐흐...... 그들이 도착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은 마무리지어질 것입니다.”
죽음의 꿈.
분명 환상적이고, 야망의 칼을 꽂을 바다의 꿈은 아니다.
* * *
창망대해(蒼茫大海)!
하늘과 땅이 개벽한 이래 늘 인간에게 무한한 신비를 준 바다.......
오늘도 말없이 바다는 포효한다.
우르르르― 르릉!
콰르르...... 처― 얼― 썩!
헌데 망망대해를 까맣게 뒤덮고 있는 거대한 철갑선(鐵甲船).
마치 하나의 작은 성을 방불케 하는 철갑선은 미친 듯한 파도의 광란을 가르며 유연히 미끄러져 가고 있었다.
그런 거대한 철갑선이 한 척도 아닌 무려 백여 척.......
우르르르― 릉!
그들의 기세는 가히 당장이라도 바다를 뒤덮어 버릴 듯 가공했다.
흡사 하나의 포진(布陣)을 이루듯 끝없는 수평선을 향해 빠르게 치달리고 있었다.
촤촤촤― 촤― 촤아―!
맨 앞 선두를 달리고 있는 거대한 철갑선.
그것은 포진을 형성하고 있는 중심부를 점하고 있었다.
그 위.
한 인물이 맞부딪쳐 오는 해풍을 받으며 태산처럼 우뚝 서 있었다.
일신에는 바다의 빛깔을 닮은 흑청빛 유삼을 걸쳤고, 준미수려한 용모에 고졸한 미소를 지니고 있는 자.
그에게는 아주 특이한 기운이 있었다.
바로 야수와 같은.......
서생의 옆에는 한 마리의 거대한 백표범이 웅크리고 앉은 채 기이한 듯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바다를 처음 보는 어린아이처럼.......
크르르릉― 크르르―!
파도가 철갑선에 부딪쳐 올 때마다 백표범은 나직한 포효를 터뜨리고 있었다.
서생의 눈에서는 꽤나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후훗...... 허허실실(虛虛實實)의 계다! 패하면 다시는 중원땅을 밟지 못하리라. 허나 승리한다면......!’
문득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
흡사 칼을 꽂으면 쨍그랑 하고 깨어져 내릴 듯 하늘은 그렇게 파랗다.
서생은 그 하늘을 두 눈 가득 담으며 패도굴강의 빛을 입술 끝에 물었다.
‘나 혁리혼은 하늘이 되리라!’
― 하늘이 되리라!
그때였다.
스슷―!
하나의 인영이 빠르게 갑판 위 혁리혼의 뒤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일신에 칠흑과도 같은 흑의를 입고 있는 자.
그의 두 눈은 특이했다.
끝없는 밤하늘의 유심함과 수천만 개의 흐르는 유성의 빛과도 같은 현기(玄氣)가 두 눈 속에는 있었다.
‘흑뇌마자 타하륵!’
혁리혼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의 존재를 의식한다.
자신의 주위에 그렇듯 강한 기운을 지닌 자는 꼭 한 명, 그뿐이기 때문이다.
“준비는......?”
혁리혼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고, 흑뇌마자는 차가운 미소를 얄팍한 입술에 베어물며 허리를 약간 접어 보였다.
“아주 완벽합니다, 주군!”
“.......”
“백 척의 마갑대척쇄(魔甲大斥鎖)에 타고 있는 본 흑양밀전의 일만여 고수들은 평생 동안 수중 속에서 키워진...... 수중에 관한 한 무적이랄 수 있는 고수들입니다.”
마갑대척쇄!
그것은 흑양밀전이 자랑하는 가공할 바다의 마물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리고 천왕제군대척의 절반이랄 수 있는 힘이 마갑대척쇄에 각각 승선해 있습니다.”
“.......”
흑뇌마자 타하륵은 두 눈에서 아주 강렬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는 하늘과 중원대륙조차 오만하게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다.
그런 눈으로 그는 지금 바다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었다.
“후후...... 그 무엇이든 본 백 척의 마갑대척쇄가 펼쳐 놓은 수중광폭멸겁진(水中狂暴滅劫陣) 속에 갇힌다면 모조리 가루로 화하여 사라질 것입니다.”
그의 말은 꽤나 담담한 음성이나 그 속에는 듣는 이의 피조차 말리는 무서운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의미를 되씹으면서 혁리혼은 문득 흑뇌마자 타하륵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늘 타하륵으로 하여금 경외심을 주어 억누르는 유심하고도 야수 같은 눈빛.
“허나 군사, 천극마분도의 오천 년 동안 잠자던 힘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후훗...... 본 전의 힘 역시 무시할 것은 못됩니다, 주군!”
“믿지, 최소한 군사의 능력을!”
이어 혁리혼은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백표범 백상을 향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백상, 안됐지만 네 먹이는 천극마분도에는 없다.”
“......?”
흑뇌마자의 눈빛이 순간 묘하게 빛을 발했다.
카르르르릉― 카오오―!
백상의 포효가 바다 위로 터져 오르며 혁리혼의 말은 몰아쳐 오는 포말 속에 묻혀 올랐다.
“허나 중원대륙으로 돌아가는 날...... 후후...... 네게 배가 터지도록 포식을 하게 해주마. 그 동안 이빨이나 튼튼히 갈아 두어라!”
카오오― 오―!
혁리혼은 울부짖는 백상의 머리를 툭툭 치며 느릿하게 몸을 돌렸다.
선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혁리혼의 등을 바라보는 타하륵의 눈빛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이미 그것까지...... 모조리 계산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것―?
부르르......!
해풍과 몰아치는 파도의 거셈 때문인가?
혁리혼...... 해풍.......
흑뇌마자 타하륵의 몸은 잘게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 그와 같이 생활한 지 꼭 한 달...... 하늘 아래 나 타하륵이 모르는 것이 두 가지 생겼다.’
그는 문득 짓푸른 바다를 굽어보았다.
‘바로 저 바다의 깊이와 그보다 더 깊은 한 인간의 머릿속이다...... 혁리혼......!’
영원히 알려고 하나 알 수 없는 자.
그리고 아주 짙은 야망을 지닌 야수 같은 사내.
타하륵은 그 한 사내가 서서히 자신의 전신을 소리 없이 압박해 들고 있는 것을 착각처럼 느꼈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
“허나...... 그와 나의 승부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깨끗이 밟아 놓으리라!”
그는 아주 조그맣게 뇌까리며 천천히 몸을 돌렸다.
* * *
그와 같은 시각.
일백 척의 마갑대척쇄와는 다른 방향에서도 엄청난 세력이 물밀듯이 바다를 메우며 쏘아져 가고 있었다.
“크크...... 천극마분도는 이제 곧 나의 눈앞에 모습을 나타내리라!”
“으흐흐...... 바다의 꿈...... 삼마겁의 전설은 나의 손에 의해서 파괴되리라!”
무서운 불꽃과도 같은 야망을 터뜨리며 바다를 가르고 있는 자들.
그들은 중원대륙을 질타하는 내로라하는 걸물들과, 거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는 자들이다.
꽈르르릉― 꽈아아―!
밀어닥쳐 오는 거대한 해일을 젖히며 일어나고 있는 가공할 죽음의 폭풍!
시작이었다.
한 시대가 마감되는 거대한 난세의 바람은!
바다.
바다로부터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