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6 章 도둑놈의 배짱
운남성(雲南省).
중원의 최남단에 위치하고 있는 중원 십삼 개 성 중 가장 광대한 땅덩어리를 차지하는 성이다.
산맥으로 성 전체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운남성은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아 늘 고요와 평화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불교문화(佛敎文化)가 가장 발달한 곳이기도 했다.
<낭아산(狼牙山)>
운남성 최고의 험산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흡사 그 생긴 모양이 이리의 이빨과 같이 생겼다 하여 낭아산이라고 부른다던가?
낭아산의 깊숙한 산중.
새록거리며 피어나는 초춘의 풀잎들은 영롱한 물방울을 머리 위로 이고 있었다.
며칠 동안 계속되는 폭우 때문이다.
쪼로로...... 롱.......
삐롱.......
새들의 울음소리가 마치 공명의 해맑은 음향과도 같다.
적막하리만치 고요한 산중의 공기를 깨는 아름다운 지저귐은.......
스스슷...... 슷.......
그는 이슬을 헤치며 꽤나 천천히 산중심로(山中深路)를 걷고 있었다.
‘추명의 말을 빌리자면 흑양밀전은 서장(西藏)의 가장 오지라고 알려진 당고랍산(唐古拉山)에 위치하고 있다고 했다!’
아주 아름다운 용모이나 붉디붉은 입술에는 처절하리만치 퇴폐적인 미소를 머금고 있는 서생.
그의 전신에서는 야수의 냄새가 나고 있었다.
혁리혼.
그는 지금 흑양밀전을 향하고 있는 중이었다.
‘흑뇌마자 타하륵! 그는 필요악(必要惡)과도 같은 존재다. 그의 힘을 얻어도 기실 나에게는 별로 커다란 힘은 되지 못한다.’
스스스.......
그의 걸음이 움직일 때마다 풀잎들은 비명을 지르며 누웠다.
‘허나 만약 그의 힘이 팔황대마성좌 중 그 누군가에게로 합세해진다면...... 주체 못할 무서운 힘이 된다!’
문득 혁리혼의 입가에 고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후훗...... 나는 그를 얻을 것이다. 필요는 없을지 모르나 명목상 나의 군사(軍師)로...... 그렇게 해서 그의 힘이 외부와 결합되지 않도록 발목을 묶어 놓는 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병법 중에서도 최우선의 병책은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지, 흣.......”
혁리혼은 꽤나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낭아산 능선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헌데 그때였다.
카아아아아― 오오―!
카르르르릉!
산중을 뒤흔드는 엄청난 맹수의 포효가 혁리혼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순간 혁리혼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 맹수의 울음소리는 그의 귀에 아주 익은 것이 아닌가?
“이것은......!”
일순 그의 신형은 연기처럼 능선에서 꺼져 버렸다.
팟......!
* * *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개 같은 놈들아―!”
중[僧].
대머리가 홀랑 까진 승포를 걸친 땅딸한 인물은 지금 길길이 날뛰며 있는 욕 없는 욕을 모조리 내뱉고 있었다.
콧구멍에서 불을 뽑아내면서.......
희한한 일은 그 욕설을 받고 있는 상대가 두 마리 짐승이라는 사실이다.
한 마리 핏덩이처럼 붉은 까마귀...... 혈오(血烏)와 또 한 마리 거대한 백표범.
빨간 까마귀는 날개를 푸득거리며 뾰족한 부리를 연방 놀려댔다.
― 까까...... 귀여운데? 그렇지 않냐? 백상?
백상―!
바로 천향화루가 파괴되면서 혁리혼과 헤어졌던 영물이 아닌가?
백상은 흡사 말 잘하는 까마귀의 말을 알아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울부짖었다.
캬르르르릉― 카아―!
‘귀...... 귀여워? 내가?’
반들한 대머리를 가진 중은 그만 얼굴이 대춧빛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노발대발 목탁을 휘둘렀다.
“몽땅 잡아 불고기를 해먹고 말겠다! 씨앙― 놈의 미물들!”
동시에 그는 불벼락처럼 목탁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릉― 콰아―!
순간 엄청난 강기가 목탁에서부터 쏘아져 나왔다.
“벌써 한 달 내내 본 부타성승(不 聖僧)을 쫓아다니며 내가 먹을 것을 몽땅 훔쳐먹다니!”
허나.......
헤로롱.......
혈오는 냉큼 부타성승의 강기를 피해 내며 주둥이를 놀렸다.
― 까까...... 우습다. 자기도 훔친 주제에.......
혈오는 사람의 말을 꽤나 잘하는 영물이다.
― 그리고 도둑놈 주제에...... 성승이래? 까까― 까―!
부타성승은 그만 얼굴이 무색해지며 두 눈에 불을 담았다.
“네놈들에게 음식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 달 동안 잠도 설쳤더니 살이 열 근은 족히 빠졌다!”
― 까까...... 그건 네가 잘못한 탓이지. 까까...... 벼엉신...... 나 같으면 속 편하게 몽땅 주고 잠을 청했을 테니까.......
말이나 못하면 울화나 덜 뻗치지?
부타성승은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말았다.
울화가 치밀어 아예 얼굴색이 타 버린 것이다.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까마귀 종자가!”
― 까까...... 까...... 좋아하네. 나이로만 따지면 내가 네 할아비지!
척하면 착이다.
부타성승의 콧구멍에는 결국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말았다.
“주둥이를 찢어 놓겠다. 이 꼴 보기 싫은 놈!”
동시에 강맹한 장력이 뻗어 나왔다.
꽈아― 꽈아― 꽈아아―!
우르르르― 릉!
혈오는 놀라 날개를 퍼덕였다.
― 백상, 저놈이 또 발광한다. 도망가자!
카오오오― 어흥!
혈오와 백상은 등을 돌려 도망을 놓았다.
“흐흐...... 도망? 그 동안 내 살이 축났는데 네놈들을 도망가게 놔둘 것 같으냐? 잡아 불고기를 해먹어 살을 보충하고 말겠다. 우라질타불.......”
부타성승은 이를 갈며 신형을 날렸다.
팟......!
카카아― 카아―!
화르르르― 르릉―!
순간 그의 손가락 끝에서 가공할 뇌의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 깍깍...... 저 돌팔이 중놈이 진짜 우리를 불고기 해먹을 작정인가 보다!
혈오는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이다.
파― 앗!
카르르르― 카릉―!
백상은 혈오를 낚아채 이미 오십여 장 밖으로 쏘아져 가고 있었다.
쉬이이이―!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빠름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그 일지(一指)에서 폭사되어 나온 뇌의 힘은 가공무쌍한 것이다.
콰아...... 콰아...... 콰아.......
방원 오십여 장의 숲을 모조리 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혈오와 백상.
그들은 순식간에 그만 까맣게 털을 그슬리고 말았다.
혈오는 울상이 되어 허덕거렸다.
― 까까...... 내 아름다운 깃털이...... 몽땅...... 타버렸다!
부타성승.
자신을 자칭 그렇게 부른 대머리 중은 그런 혈오와 백상을 바라보며 배를 내놓고 웃었다.
“낄낄...... 이제 진짜 까마귀년(?)을 닮았다. 건방진 까마귀년! 이번에는 속살까지 태워 버리고 말 테다!”
혈오는 입에 거품을 물도록 화가 치밀었다.
― 백상, 우리 저 돌팔이 중놈을 잡아 회를 쳐서 먹어 버릴까?
회?
정말 돌겠군.
부타성승은 눈을 뒤집었다.
“감히 본 성승을 모욕해!”
콰콰콰콰...... 콰― 쾃!
그는 울화가 극도로 치밀어 발작적으로 양손을 휘둘렀다.
그 가공할 기세라니!
― 까까...... 피하지 못한다! 저 돌팔이 중놈은 강하다!
카르르르― 카앙―!
백상과 혈오는 너무도 엄청난 기세에 갈팡질팡하고 말았다.
절체절명...... 백상과 혈오가 모두 익어 버릴 순간이다.
스슷―!
슈슈...... 슈.......
무언가 두 개의 인영이 백상과 혈오의 앞으로 내려섬과 동시 뇌의 강기를 향해 두 줄기 힘이 쏘아져 나갔다.
찰나 땅거죽이 폭죽 터지듯 튀며 지축이 흔들리는 파괴음이 허공을 갈가리 찢어발겼다.
꽈꽈꽈― 꽝!
우르르르릉― 콰앙!
“우욱......!”
“윽!”
그 흙먼지 속에서 동시에 두 마디 답답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어떤...... 놈이.......”
부타성승은 정말로 화가 치밀었다.
비틀.......
흙먼지 속에서 두 인물이 비틀거리며 칠 장여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우직하고 한 자루 시퍼런 도끼를 허리춤에 꿰어차고 있는 청년과 얼음 조각처럼 차갑고 무표정한 청년.
그들은 바로 우황과 한당이었다.
순간 혈오는 위기를 모면했다는 생각은 구만리 밖으로 집어던진 채 줄행랑을 치기 시작했다.
― 까까깍! 주인놈이다! 그 짐승 같은...... 도망가자!
주인놈?
허나 혈오는 냅다 도망을 치다가 무언가에 그만 목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 까르...... 륵...... 어떤 놈......!
“혈오, 나한테서 도망가더니 아주 살이 많이 쪘구나?”
혈오는 당황한 소리를 터뜨리다가 그만 슬그머니 머리를 날개 속에 처박았다.
손.
혈오의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은 아주 아름다운 손이다.
혈오는 그 손의 주인을 보지 않아도 잘 알았다.
‘매일 나를 쥐어박고 괴롭히던 주인...... 놈이다!’
혈오는 다 죽어가는 소리로 조그맣게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 끄으...... 조금밖에 살은 찌지...... 않았다...... 진짜다.......
그때였다.
우황과 한당의 안색이 굳어졌다.
“으으...... 무서운 자다! 천하에 우리의 협공을 받고도 꿈쩍 않는 자가 있다니......!”
“더욱이 우리가 칠 장여나 뒤로...... 밀리다니...... 수치다!”
그들은 일순 이를 갈며 각각 검과 도끼를 뽑아들었다.
일촉즉발의 형세.
순간이다.
“물러나라.”
혁리혼이 검미를 찌푸리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황과 한당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와...... 왕야!”
“다시 한다면 분명 우리가.......”
“너희들이 패한다. 그는 최소한 너희들의 상대가 아니다.”
혁리혼은 차갑게 입을 열며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혈오를 놓아준 채.......
‘왕...... 야......?’
부타성승의 눈빛이 미묘한 빛을 뿜어냈다.
혁리혼은 부타성승의 앞에 이르러 품위 있는 포권지례를 취해 보였다.
“귀존께 본인의 수하들이 실수를 한 점 널리 양해해 주시길.......”
뜻밖의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우황과 한당!
그들은 일순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혁리혼은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이렇듯 정중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단 한 사람, 금황제운 외에는.......
‘왕야께서......!’
‘저런 정중한 몸가짐을 하다니? 보잘것없는 미친 중놈에게......!’
부타성승은 입꼬리를 야릇하게 꼬며 욕설을 터뜨렸다.
“우라질타불...... 미안해 할 것 하나도 없다. 손해에 대한 배상만 해준다면 말이다.”
“하핫...... 그것은 당연히 해야지요.”
으쓱.......
부타성승은 양어깨를 득의한 모습으로 치켜 올리며 입을 함지박만하게 벌렸다.
“흐흐...... 역시 사람이 다르다. 배상은 다른 것이 아니고.......”
그는 혈오, 까맣게 그슬려 있는 혈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하얗게 웃었다.
“낄낄...... 저 건방진 까마귀놈을 본 성승의 뱃속에 넣어 버리게 하기만 하면 된다.”
순간 그의 말이 더 이어질세라 혈오의 주둥이가 빠르게 열렸다.
― 까까...... 돌겠군. 건방진 중놈이다! 까까...... 우리 주인이 그럴 것 같으냐? 얼마나 마음이 좋고, 인정이 많은데?
혈오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아부를 떨었다.
허나 혁리혼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말은 꽤나 차가웠다.
“귀존께서는 그렇게 하십시오. 저 녀석은 기실 본인에게 없어도 그만이니까.”
― 끄악―!
혈오는 그만 눈이 튀어나오도록 놀라 허공 높이 날아올랐다.
그는 조금 전의 아부는 아랑곳없이 욕설을 터뜨렸다.
― 주인...... 이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주인놈아! 깍깍! 우연히 산속에서 백상, 저놈을 만났더니...... 재수 없게 주인을 만났다!
파다다닥!
혈오는 까마득하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어? 내 밥......?”
부타성승은 도망가는 혈오를 다급하게 올려다보았다.
“이...... 이러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되는데......?”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혁리혼.
그는 이내 그에 아랑곳없이 빙글 신형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스슷―!
“익?”
부타성승은 질세라 잽싸게 혁리혼의 뒤를 따라갔다.
우황은 두 눈을 부라리며 고개를 돌렸다.
부타성승은 일이 장 뒤로 계속 추근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왜 따라오느냐? 이 돌팔이 중놈아!”
“낄낄...... 본 성승이 근 한 달 동안 저 찢어먹을 미물들에게 시주받은 음식을 빼앗겼으니 이제 한 달 동안 그 주인이 나를 먹여 살려야지!”
그는 아주 당연한 듯이 대답하며 연신 걸음을 옮겨 따라왔다.
우황이 눈꼬리를 쭉 찢으며 거품을 물었다.
“왕야께서는 혈오놈을 주었지 않느냐?”
“까마귀놈은 도망갔잖아!”
우황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눈을 부라렸다.
“왕야, 진짜 물귀신처럼 따라오는데요?”
부타성승.
그는 아예 술까지 느긋하게 마셔대며 혁리혼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되지 못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에헤야.......
계집의 속살은 불타(佛陀)의 미소보다도 더 부드럽고.......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맛은 그보다 더 부드럽다네.......
나는야, 이제 시종을 잘 둔 덕에 계집과 술에 빠져 살게 되었다네.......
에헤라...... 빌어먹을타불.......
“시...... 시종! 왕야, 저놈을......!”
한당은 시리도록 냉혹한 음성을 분노에 섞어 뱉어냈다.
허나 혁리혼은 뒷짐을 진 채 유유자적 걸음을 옮겨놓으며 담담히 뇌까렸다.
“한당, 그는 참으로 강한 자다.”
“......!”
“우리가 상대하려는 흑양밀전의 고수 따위는 그의 술병 안에 있는 술처럼 간단히 처리할 만큼이나.......”
“예―?”
한당과 우황은 그의 말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어리둥절 되물었다.
혁리혼은 문득 힐끗 전방을 주시하며 말을 돌렸다.
“너희들은 알 것 없다. 앞에 널려 있는 잡충(雜蟲)이나 잡아라. 귀찮은 녀석들이다.”
잡충......?
우황과 한당의 입꼬리가 위로 치켜 올라갔다.
아주 강한 살기를 담은 채.......
* * *
“크크...... 황금 백만 관의 대가를 치르는 목치고는 너무 볼 것이 없는데?”
그는 낭아산 첨봉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심장 짓떨리는 괴이한 웃음을 흘려냈다.
일신에는 먹물 같은 칠흑의 흑포를 걸치고 있는 자.
그의 가슴에는 한 마리 독사가 새겨져 있었다.
그 독사의 눈빛처럼 그의 좌우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눈에서 시퍼런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마교는 실수를 했다. 저런 애송이 따위를 제거하는 데 본 아극마세의 초특급고수 일천을 빌리다니!”
“히히...... 우리가 계산할 것이 못된다. 우리는 황금만 받으면 되니까!”
그는 아주 사악하게 웃는다.
독사의 웃음처럼.
“크크...... 그 황금 백만 관은 우리 아극마세가 중원을 집어삼키는 군자금이 될 것이다.”
“중원 놈들은 아주 어리석은 놈들이다.”
그때였다.
한 줄기 시리도록 냉혹한 음성이 그들의 뒤에서 들려온 것은.......
“꿈이 야무지군.”
순간 세 인물은 일신에 피가 얼음처럼 식어 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말았다.
“헉!”
“누...... 누가...... 우리들의 이목을 숨기고......!”
“믿을 수 없다! 중원에 이런 가공한 자가...... 있다니!”
그들은 불가사의한 빠름으로 신형을 돌리며 외침을 터뜨렸다.
그 한 동작으로 보아 그들은 꽤나 많은 실전을 경험한 노련한 고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허나.......
카아― 카아― 카아―!
버― 언― 쩍!
허공을 사납게 베며 소름 끼치는 차가운 검망이 세 사람의 목을 파고들었다.
전광의 속도!
“크와와왁!”
“느...... 늦었다! 커헉!”
세 인물은 채 자신의 목을 자른 사람의 얼굴도 확인하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목이 잘려진 채로.......
촤촤촤― 촤촤―!
촤아아아.......
심장 떨리는 전율의 핏물이 솟구치며 한 인물이 그 자리에 유령처럼 내려섰다.
스슷.......
시체보다 창백한 안색에 무표정한 냉혹성을 지닌 청년.
그는 한당이었다.
스르르...... 툭!
그는 하늘의 빛을 받아 섬칫하도록 새파란 검신을 따라 굴러 떨어지는 핏물을 무심히 바라보며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피를 본다는 것은 꽤나 흥미있는 일이다. 칼이 남의 살 속을 파고드는 그 감촉도.......”
“놈이 눈치를 챘다!”
“죽여라! 아극마세의 힘은 강하다!”
“우리는 천 명의 초특급고수이고, 놈들은 단지 네 명이다.”
낭아산의 산중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슈슈슈...... 슈.......
파아― 아아앗!
일천 여 살인병기가 무서운 살망을 만들며 허공으로 쏘아져 올랐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음악(陰惡)한 웃음이 솟구쳐 올랐다.
“으흐흐...... 네놈들은 말을 잘못했다. 그분은 죽을 분이 아니다. 네놈들이 죽을 놈들이지.”
동시에 무시무시한 도끼날이 허공을 그대로 난도질했다.
쩌르르릉― 쩌릉―!
화끈!
솟구쳐 오르던 아극마세의 고수들은 무언가가 목에 닿자 화끈한 충격을 받으며 그대로 추락해 내렸다.
“크으으.......”
“크아아― 악!”
“끄― 악!”
퍼억―!
정수리가 그대로 쪼개어져 허공에 뇌수를 터뜨리는 자.
오장육부가 걸레 조각처럼 흩어져 죽어가는 자.......
낭아산은 그야말로 지옥의 문턱으로 변하고 말았다.
혁리혼은 담담히 서서 흡사 낭아산의 험한 산경을 구경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아주 유심한 시선으로.......
벌컥...... 벌컥.......
“카아― 좋코!”
게트림을 하며 술을 마셔대는 부타성승을 조용히 바라보던 혁리혼은 말했다.
“훗...... 얻어먹자면 일을 좀 해야 되지 않겠소?”
순간 부타성승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우라질! 내가 왜 네놈의 일을 도와줘야.......”
허나 그는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두 눈을 찢었다.
콰아아아― 콰아―!
번― 쩍!
족히 수십여 명은 됨직한 칼바람이 그의 정수리를 쪼개어든 것이다.
“얼씨구?”
부타성승은 눈알을 데구르르 돌리다가 입 안에 든 술을 그대로 내뿜었다.
츄츄츄츄― 츄앗―!
피피피피― 핏!
찰나 덮쳐들던 자는 그대로 전신에 구멍이 나며 날아가 버렸다.
카아― 카아!
“죽엇!”
그러나 아극마세의 고수는 끝없이 달려들고 부타성승은 입만이 아니라 손발까지 놀림이 바빠졌다.
“이런...... 우라질...... 이...... 미친놈아! 너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그냥 서서 죽을 셈이냐? 멍청한 놈아!”
그는 바쁘게 몸을 놀리면서도 혁리혼을 향해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혁리혼은 저만치 멀찍이 물러나 부타성승의 몸에서 쏟아지는 가공한 죽음의 세례를 구경하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성승께서 모두 일을 해결하고 있는데...... 나는 별로 생각이 없소.”
꽈르르릉―!
꽈― 앙!
부타성승은 양손에서 열 줄기의 막강한 뇌강을 뽑아내며 얼굴이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이...... 도둑놈의 배짱!”
꽝!
꽈르르르― 릉!
“크아아아악!”
“켁!”
“저놈은 중이 아니라...... 아수라(阿修羅)다! 끄― 악!”
부타성승은 덮쳐오는 아극마세의 고수들을 향해 손을 쓰며 한편으로 혁리혼을 향해 이를 갈았다.
“내...... 내가 네놈의 종이냐? 나 혼자 네놈을 위해서 일을 해야만 하게?”
“종은 아니지만...... 명목상 본인의 밑에서 밥술이나 얻어먹는 주제가 아닌가?”
빠드득!
부타성승은 그만 할말을 잃고 부서져라 이를 갈았다.
“끄응.......”
그리고 그의 울화는 아극마세의 고수들에게로 터지고 말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소름 끼치도록 푸른 벽광이 쏟아졌다.
번― 쩍!
콰아...... 콰아...... 콰아.......
전신에서는 무지막대한 살강(殺 )이 우박처럼 쏘아져 나갔다.
“크...... 크아아악―!”
“케― 엑!”
“감히 본 성승의 불신(佛身)을 건드리다니!”
혁리혼.
그는 부타성승의 몸에서 쏟아지는 가공할 사공(邪功)을 예의 주시하며 입술을 잘근 씹었다.
‘분명하다. 저 파라사망벽뢰기(破羅死網闢雷氣)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파라사망벽뢰기!
‘이렇게 우연히 또 하나의 가공할 존재를 만나다니.......’
혁리혼은 천천히 낭아산의 구석구석을 쓸어보았다.
왈칵!
낭아산은 이미 완전히 죽음의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아극마세의 세력!’
일순 혁리혼은 입가에 아주 차가운 미소를 떠올렸다.
뼛골까지 얼려 바수어 버릴 듯한 아주 차가운 웃음.......
“큿...... 그렇게 되었나? 마교가 나를......?”
이미 낭아산을 울리는 지옥의 단말마는 줄어들고 있었다.
“크윽...... 이렇게 강한 놈들인 줄은...... 몰랐다......!”
“커― 헉! 무언가...... 잘못됐...... 다...... 이 일은...... 카으으윽!”
혁리혼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산중에 울려 퍼지는 듬성한 비명 소리를 들으며.......
“허나 마황제일존! 너는 실수를 했다.”
“무슨 소리냐?”
혁리혼은 고개를 돌렸다.
부타성승이 그의 옆에 와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공할 일은!
그를 덮쳐오던 수백의 고수들은 씨 하나 남기지 않고 모조리 바닥에 누워 있다는 사실이고, 그는 마치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었던 것처럼 지극히 고른 숨을 내쉬며 혁리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컥...... 벌...... 컥.......
그는 꽤나 울화가 섞인 얄궂은 시선으로 혁리혼을 바라보며 술병의 주둥아리를 입에 박고 있었다.
혁리혼은 피식 실소를 흘리며 중얼거렸다.
“아무 것도 아니오. 다만...... 뛰어난 자를 생각하고 있었소. 혈뇌마겁이란 자를.......”
“......?”
“바로 이 일을 만들어 낸 자 말이오.”
혁리혼은 주위에 널브러진 주검들을 둘러보며 그렇게 중얼거렸고, 부타성승은 아무래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스슷.......
혁리혼의 신형이 저만치 앞에 나갔을 때에서야 부타성승은 욕설을 터뜨리며 따라갔다.
“우라질! 나를 따돌리려고 헛소리를 하고 있었구나! 그렇다고 내가 떨어질 줄 아느냐? 지옥까지라도 따라가지!”
일천의 가공할 고수들의 죽음.
이내 공포스럽도록 고요한 적막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낭아산 속에.......
그 시간은 꼭 한 시진이 걸렸다.
* * *
당고랍산맥.
서장지방(西藏地方) 전체를 맥처럼 이루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산이다.
흡사 중원의 양자강(揚子江).
그것은 서장의 역사를 메고 있었다.
허나 그 어느 산과는 아주 다른 당고랍산맥은 일체의 살아 있는 생물은 없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천형의 오지였다.
그리고 모발을 곤두서게 하는 습하고 숨통을 조이는 자욱한 잿빛의 안개가 일년 내내 당고랍산맥을 뒤덮고 있다.
뭉클.......
쓰쓰쓰...... 쓰으.......
요사스럽게 꿈틀거리는 안개.
그것은 흡사 죽음을 안고 있는 악마의 숨결과도 같았다.
인간의 발길이 들어서지 못하는 영원한 죽음의 요람, 당고랍산!
헌데 두 개의 잔영(殘影)이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냈다.
스― 슷!
스― 윽!
수중에 하나의 까만 흑선을 든 서생.
그의 입가에는 아주 고졸한 야수의 웃음이 묻어 있었다.
그 옆.
“커― 억! 좋은데? 끄윽.......”
대머리가 반질하게 벗겨진 중이 술병의 꼭지를 입에 처박고 서 있었다.
혁리혼과 부타성승.
흑양밀전을 향해 당고랍산으로 떠난 그들이었다.
문득 부타성승은 무작정 따라오던 걸음을 멈추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몽롱한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던 그는 어깨를 움츠렸다.
“여기가 어디지? 설마...... 네놈은 나를 귀찮으니까 아예 이곳에다 땅을 파고 묻어 버리려고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니겠지?”
그는 짐짓 꽤나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중얼거리며 혁리혼을 올려다보았다.
혁리혼은 그런 부타성승을 쓴웃음으로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큿...... 도합 백팔 개의 가공할 사진(死陣)에다가 그 속에 비장된 무서운 암기들이라?”
“......!”
“그리고 일만의 은자(隱者) 고수들...... 이거야말로 아주 완벽한 죽음의 땅이로군!”
혁리혼은 눈가에 놀람의 빛을 떠올렸다.
“나는 흑양밀전을 너무 볼품없이 여겼었군.”
흑양밀전!
그렇다.
이곳이야말로 수천년 암흑 속에서 칼을 갈고 존재해 온 어둠의 태양이 있는 곳이다.
보라!
자욱한 잿빛의 안개 속에 흡사 악마가 있어 만들어 놓은 신기루처럼 서 있는 흐릿한 고루거각들을!
이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죽음의 땅에 어둠의 태양은 그 깊숙한 곳에서 불길을 토하며 숨쉬고 있었다.
악마처럼.......
“이 정도라면 그 누구도 흑양밀전의 구중심처까지 파고들기도 전에 뼈를 추리고 말 것이다.”
“괴...... 굉장한데?”
혁리혼의 감탄에 따라 부타성승은 몽롱한 시선을 안개 속으로 던지며 덩달아 뇌까렸다.
혁리혼은 문득 차게 웃었다.
“허나 이 정도라면 본인을 빼고도 세 명이면 충분히 파괴하고 들어갈 수 있다.”
“세 명?”
부타성승이 멀뚱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묻자 혁리혼은 어깨를 으쓱 추키며 대답했다.
“그렇소. 우황과 한당, 그리고 성승을 합해서 꼭 셋이 아니오?”
순간 부타성승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대뜸 욕설을 터뜨렸다.
“미...... 미친놈! 내가 저 속에 뛰어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는 여태까지 혁리혼을 따라다니며 혁리혼이 은연중 부려먹은 데 대해 그렇지 않아도 울화가 식지 않았던 판국이다.
혁리혼은 그런 부타성승을 바라보며 얄궂은 표정을 떠올렸다.
“후훗...... 그건 성승의 마음뿐이고, 흑양밀전의 고수들은 어쨌건 자신들의 세력 안으로 침입해 들어온 성승을 그냥 놔두지 않을 텐데?”
“여...... 여기가......?”
부타성승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꽤나 미묘한 잿빛의 안개.
부타성승은 무작정 혁리혼의 뒤를 따라왔다가 그제서야 이곳이 어떤 진세 안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이.......”
“설마 그냥 앉아 죽음을 받지는 않을 테지요?”
혁리혼은 미묘하게 부타성승을 바라보며 말했다.
부타성승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이 여우같이 교활한 놈! 이제 보니 아주 계획적으로 나를 이곳까지 끌어들였구나!”
그가 게거품을 물며 날뛸 때였다.
혁리혼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
“이상하군? 의식주를 해결해 달라고 따라올 때는 언제고?”
부타성승의 얼굴은 그만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입이 열 개라도 변명할 말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