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5 章 건방진 사내와 망아지 같은 계집
과거로 돌아가 본 적이 있는가? 그대는?
참으로 가슴을 부여안고 아파했던 과거로.......
그것은...... 아쉬움과 고통의 찌꺼기가 맴도는 허무다.
사내.
그는 꽤나 오랫동안 창문 밖으로 미친 듯이 퍼부어지는 폭우를 보고 있었다.
쏴아아아― 아―!
후두두두둑.......
오른손에는 한 잔의 술을 떠받친 채, 그 손은 아주 오랫동안 허공에 머물러 있었다.
폭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는 이를 함몰시켜 버릴 듯했고, 붉디붉은 입술가에는 퇴폐적인 기운이 맴돈다.
그리고 허무와 고통이 전신에서 느껴지는 자.
‘얼음할아버지도 이미 오래 전에 저곳을 떠났다고 했다.......’
그의 시선은 폭우를 뚫고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금대루(金貸樓)>
번화한 악양성(岳陽城)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는 보잘것없는 전당포.
‘어디로 간 것일까? 그리고 그 옛날 천향화루가 있던 이곳은 만기청관(萬技靑關)이라는 기루로 바뀌어 있다.......’
빗물은 폭우를 바라보는 사내의 눈 속에서도 쏟아지고 있었다.
그의 술잔을 잡은 손끝은 아주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모두 보고 싶은 사람들.......’
그의 뇌리 속으로 많은 사람들의 영상이 스치고 있었다.
자신을 가장 아껴 주었던 꼽추노인과 차가운 얼굴을 갖고 있던 구두쇠 노인.......
그리고 꽤나 많이 기억되고 있는 기녀들.......
‘허나 이제 나 리혼의 곁에서 모두 떠난 사람들이다.’
혁리혼.
그는 지금 아득한 과거로 돌아와 있었다.
그 과거가 숨쉬고 있는 악양성에.......
그는 조금 전 금대루를 거쳐 이곳 천향화루가 있던, 지금은 만기청관이라는 곳에 이른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의 가슴에 그리움이란 갈증을 주곤 하는 사람들.......’
혁리혼은 단숨에 술잔의 그득한 술을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술은 아주 독했다.
“큿.......”
문득 혁리혼은 텅 빈 웃음을 허공에 날렸다.
그러다 일순 그의 눈빛이 무의식적인 양 허공에 던져지며 기이한 색을 띠었다.
허나 그는 이내 술잔에 몰두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스르르.......
방문이 열리며 한 가닥 코를 아리게 하는 기향이 스며들었다.
기녀.
꽤나 차가운 용모를 지니고 있는 기녀가 소리 없이 방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은 특이했다.
기녀라기에는 아까운, 품위에 비하면 입꼬리에 사내의 심혼을 빼앗아 버릴 듯한 요요로운 미소가 담겨 있는.
기녀는 특이한 미를 지니고 있는 미기(美妓)였다.
흡사 한 송이 장미의 붉디붉은 요요로운 극미와 같다고나 할까?
“흠...... 나는 기녀를 청하지 않았는데......?”
혁리혼은 힐끔 미기를 바라보다 이내 시선을 돌리며 조금은 투박하고 무뚝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사르르.......
미기는 혁리혼의 앞으로 다가앉으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호호호...... 본 루(本樓)의 주대(酒代)는 참으로 비싸지요. 때문에 손님이 청하든 안 청하든 반드시 기녀로서 술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호호...... 만약 손님이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은 천박한 웃음이다.
그녀의 양볼에 패는 귀여운 보조개는 꽤나 인상적이다.
“후훗...... 그런가? 그렇다면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
“어차피 술이 있으면 계집도 있어야 구색이 맞을 테니까.”
“호호...... 풍류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공자께서는!”
“큿...... 배를 타면 사공이 되기 싫어도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호호호.......”
술은 쉴새없이 혁리혼의 술잔에 따라진다.
그리고 그 술잔은 미기의 손에 옮겨져 붉디붉은 입술 사이로 스며든다.
여인이란 참으로 미묘한 존재다.
아이를 안고 있는 순간이면 현모양처의 모습이 되나, 그 손으로 칼을 잡으면 독부(毒婦)가 되고, 술잔을 잡으면 요부(妖婦)가 되는.......
여인은 한 몸에 여러 가지 색깔을 지니고 있다.
발그레하게 홍조가 올라 있는 미기의 모습은 참으로 곱다.
조금 전까지의 천박한 웃음과는 아주 다른.......
혁리혼은 취했고, 여인은 아름다웠다.
취하고 싶을 만큼이나.......
그랬기 때문일까?
“크크큿...... 아주 매혹적인 여인이다, 너는!”
혁리혼은 얄궂은 웃음을 흘리며 미기의 가는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
생각보다도 미기의 몸은 가녀린 데가 있었다.
그녀의 가녀린 몸은 조그맣게 떨리고 있었다.
“큿...... 사내가 처음인가? 떨고 있군?”
혁리혼은 취중무중(醉中無中)에 한 손을 쑤욱 미기의 가슴속으로 디밀었다.
물컹.......
“음.......”
미기는 움찔하며 의식적으로 혁리혼의 손을 피했다.
그 순간 그녀의 목에는 쫘르르...... 하나의 목걸이가 영롱한 빛을 뿌리며 나타났다.
흑옥석(黑玉石)으로 만들어진 흑양(黑陽)의 목걸이.......
여인이라면 누구나가 보석을 좋아한다던가?
혁리혼은 취기 어린 시선으로 목걸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아름다운데? 젖가슴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호호...... 취하셨군요, 아주 많이.......”
미기는 입을 가리며 까르르 웃는다.
그녀의 목덜미와 손이 유난히 아름답고 고왔다.
문득 혁리혼은 그런 그녀의 허리를 더욱 세게 껴안으며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큿...... 아무래도 그래야 네가 나를 죽이기에 편할 것 같아 취하려고 애쓰나 그것도 잘 안 되는군. 그럼 골치 아픈데? 그렇지?”
미기는 순간 얼굴이 밀랍처럼 탈색되고 말았다.
파르르.......
그녀의 입술 끝이 잘게 떨렸다.
“아...... 알고 있었구나! 너는.......”
순간이다.
슈욱!
그녀의 손이 허리춤에 이르는가 싶자 비수가 혁리혼의 허리를 쑤시고 들었다.
믿어지지 않을 만치 빠른 수법이었고, 혀를 내두를 만치 변화가 무쌍한 여인의 표정이다.
“호호호...... 네놈은 그래도 조금 많이 살 수도 있었는데.......”
허나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까까까― 깡!
혁리혼의 허리를 사납게 쑤시고 들던 비수가 바수어지며 시퍼런 불꽃을 튀겼다.
그녀는 말끝을 중간에서 흐리며 자지러질 듯 놀라 뒤로 물러났다.
“그...... 금강불괴!”
그러나 그녀는 채 혁리혼의 품을 벗어나기도 전에 또다시 붙잡히고 말았다.
“아윽!”
혁리혼의 품속으로 더 깊숙이.......
혁리혼은 기녀를 얄궂은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독을 지니고 있는 꽃이군. 넌 누구지?”
기녀는 혁리혼의 품속에서도 여유롭게 웃어댔다.
“호호호...... 네놈이 알 필요는 없다. 죽어 주기만 하면 된다. 네놈은.......”
웃음과 함께 고른 치아가 그녀의 요요로운 입술을 비집고 드러났다.
혁리혼은 그 웃음이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웃음은 기녀의 웃음이 아니다.
최소한 남을 명령해 보고, 또 그런 고고한 자리에서 자란 여인의 습관적이고도 오만함이 그 미소에 담겨 있었다.
혁리혼은 고개를 갸웃했다.
“내가......?”
“호호호...... 네놈은 오늘 어차피 죽게 되어 있다.”
그녀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아주 여유로운 모습으로 혁리혼의 품에 안겨 있었다.
“왠지 아느냐? 네놈은 건방진 놈이다. 감히 나와 내 언니를 한꺼번에 자신의 여인으로 만들 생각을 한 놈이니까!”
“......!”
“그래서 나는 네 건방진 사내놈의 목을 자르기로 했다.”
그때였다.
천장과 바닥에서 괴이한 웃음이 심장 짓떨리는 냉소와 함께 어우러져 흘러 나왔다.
“우후후...... 이 따위 물건들에 의해서 말이냐?”
“에헤헤...... 헤...... 이것들이 계집이라면 꽤나 기분이 좋았을 텐데...... 쩝! 아쉬운데?”
동시에 천장에서 열 개의 물건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투투...... 투......!
퍼― 퍽!
두 눈을 경악과 공포로 까뒤집고 있는, 그것은 바로 열 개나 되는 사람의 머리가 아닌가?
댕강 잘려진 채 이미 시꺼먼 핏물이 굳어 있는.......
“허헉! 누...... 누가 이들 자환십사(刺幻十邪)를......!”
기녀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하고 말았다.
자환십사!
늘 그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초극강고수들의 얼굴이며, 그녀로서는 당연히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자들의 목이다.
혁리혼의 눈썰미가 찌푸려졌다.
“한당, 우황...... 기분 잡친다. 치워라! 이 기분 좋은 곳에 사람의 머리라니!”
순간이다.
슈슈슈슈...... 슈.......
팟!
열 개의 수급은 그대로 허공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혁리혼은 기녀의 허리를 잡아 일으키며 괴이한 웃음을 얼굴에 떠올렸다.
“큿...... 기분 좋은데? 비도 축축이 내리는 날에......?”
“네...... 네놈......!”
기녀는 그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 혁리혼이 자신을 어떻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성숙한 여인으로서.......
“나......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죽여...... 버리고 말 테다!”
“흐흥!”
“너는 나를...... 이 타마야( 摩耶)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왜지?”
혁리혼은 묘하게 웃으며 되물었다.
기녀 타마야는 핼쑥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아주...... 처참하게 죽을 테니까!”
“큿...... 행동과는 아주 딴판으로 귀여운 데가 있는데?”
“......!”
“설마 어떤 미친자가 사위를 죽이겠는가? 흑뇌마자 타하륵이?”
흑뇌마자 타하륵!
바로 묘강으로부터 폭풍을 안고 왔던 사내.
그는 흑양밀전, 어둠의 태양이라 불리는 세력의 주인이라 했던가?
혁리혼은 타마야의 목에서 흔들거리는 흑양이 조각된 목걸이를 바라보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이 목걸이는 흑양밀전의 지고한 신분의 표시가 아닌가? 최소한 타하륵의 여식 정도라야만이 걸 수 있는?”
“......!”
“타하륵이 그러던가? 네가 장래 어쩌면 나의 여인이 될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고삐 풀린 망아지같이 나를 찾았군? 칼을 들고! 빠르기도 해라.......”
“......!”
“흑양밀전의 무림에 대한 정보가 그렇게 빠른가? 몰랐는데?”
“이...... 이 손을 놔...... 라!”
“비도 촉촉이 내리는데 요깃거리로 아주 제격이군. 큿......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던가?”
타마야!
졸지에 떡이 된 셈인가?
“미...... 미친 자식!”
“잠자리에서는 아무래도 미쳐야 되는 것이다. 이 멍청한 여자야!”
혁리혼의 느물거리는 말에 타마야는 그만 얼굴이 붉어졌다가 시꺼멓게 변하고 말았다.
그녀는 발작적으로 혁리혼의 품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비틀었다.
“이...... 이...... 죽여 버리겠다! 짐승 같은 자식!”
혁리혼은 그런 그녀를 끌어안고 몸을 일으켜 침상으로 걸어갔다.
“이미 오래 전에 너는 나의 여인으로 정해져 있었다. 너는 그런 협박은 하지 않는 것이 평생 애로사항을 미연에 방지하는 척도가 될 것이다.”
순간 벽 속에서 한 줄기 괴이한 웃음이 흘러 나왔다.
“에헤헤...... 그럼요. 제까짓 게 나중에 볼장 다 보고 지아비님이 어쩌구 알랑거려 봐야 말짱 헛일이지요. 그래서 일삽여무언(一 女無言)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
일삽여무언?
“계집은 말이 필요 없이 한 번만 삼삼하게 눌러 주면 된다는...... 에헤헤헤.......”
우황의 노골적인 말이 벽 속에서 불이 붙어 빠르게 튀어나왔다.
혁리혼은 순간 벽 쪽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
“그래도 되겠군. 한 번만 눌러 주면 말이 필요 없겠다, 네놈은!”
“그러믄입...... 카악!”
우황의 돼지 멱따는 듯한 비명이 벽 속에서 터져 나왔다.
혁리혼의 오른손이 허공에서 가볍게 퉁겨짐과 동시 천장에서 한당의 차가운 경멸의 음성이 흘러 나왔다.
“미친놈! 아혈(啞穴)을 점혈당해도 싸지. 감히 왕야님의 좋은 일(?)을 훔쳐보다니!”
혁리혼의 눈썰미가 치켜져 올라갔다.
“한당.”
“저...... 저는 그렇지 않아도 지금 막 사라지려고 하던...... 참입니다.”
팟!
천장 위에서 한당이 꺼지는 소리가 가벼운 음향과 함께 들려왔다.
혁리혼은 천장을 쳐다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큰일이군. 저 음흉스러운 놈들을 이제 죽을 때까지 데리고 다녀야 하다니!”
말이 끝나는 순간이다.
휘― 익!
일순 그는 타마야의 몸을 침상 위에 아무렇게나 집어던지며 짧게 말했다.
“벗어라!”
“흥! 미쳐도 보통 미친 자식이 아니다, 네놈은!”
타마야는 이를 갈았다.
동시에 그녀는 두 손가락을 꼿꼿이 세워 무서운 기세로 혁리혼의 두 눈을 찔러 왔다.
파파― 팟!
그녀의 손가락은 한순간 피처럼 붉게 변한 채 섬뜩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죽어랏! 이 짐승 같은 자식!”
“큿...... 라마혈불지(羅魔血佛指)라? 아직도 정신을 덜 차렸군.”
혁리혼은 코끝을 찡그리며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순간 엄청난 흡력이 생기며 타마야의 교구를 무섭게 빨아들이고 말았다.
“헉!”
눈 깜짝할 사이 어쩌고 할 틈도 없이 그녀는 허무하게 혁리혼의 품속에 떨어지고 말았다.
새장을 도망 나갔던 새가 다시 새장 속에 갇히듯이.
“너...... 너...... 놔! 이 망할 자식아!”
타마야는 새파랗게 사색이 되어 발버둥쳤다.
혁리혼은 타마야의 치마를 훌렁 벗겨 내리며 이죽거렸다.
“힘들다면 내가 벗겨 주지.”
“악!”
타마야는 하얗게 질린 채 급히 손으로 치마를 잡으려 했으나 혁리혼의 손은 더 빨랐고, 졸지에 그녀의 탐스럽도록 희고 앙증맞은 엉덩이가 그대로 모습을 드러내 놓고 말았다.
“이...... 짐승 같은.......”
“큿...... 짐승이라......? 모르지, 아직은! 계집애들은 처음에는 다 그런 말을 하지.”
비.
쏴아아아아― 아아―!
비가 내린다.
아주 신나는 비다, 그 비는.......
* * *
“악― 악! 너...... 너......!”
타마야는 입술이 새파랗게 변하여 자지러지고 말았다.
혁리혼의 손은 아주 빠르게 그녀의 옷을 모조리 벗겨 버린 것이다.
어쩌고 할 사이도 없이.......
손바닥만한 고의만을 남긴 채.
혁리혼은 갸웃거리며 웃었다.
“괜찮은데?”
침상 위.
타마야가 나신의 몸으로 웅크린 채 독 오른 꽃뱀처럼 혁리혼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 만약 나를 건드리기만 하면 혀를 깨물고...... 죽어 버리고 말 테다! 정말이다, 이 짐승 같은 자식아!”
너무도 아름다운 나신.......
풍염하도록 솟아오른 젖가슴과 흐르는 듯 미끄러지며 둔부에 이르는 궁륭.......
잘록한 허리와 시리도록 하얀 속살의 눈부심은...... 아아.......
대체 이 아름다움을 무엇을 표현해야 좋을까 싶은데.......
혁리혼은 으쓱 어깨를 치켜 올렸다.
“이상하군? 너는 분명히 파양호변에서 사내놈을 발가락에 끼고 다닌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헌데 이제는 사내 때문에 죽어 버린다니?”
“너...... 너...... 이미 모두 알고 있었구나!”
타마야는 입술을 깨물고 말았다.
타마야!
그렇다면 그녀는 혁리혼과 죽마인예가 파양호변에서 사라진 다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던.......
바로 그녀였다.
턱―!
혁리혼은 그녀를 격하게 끌어안았다.
“헉―!”
“큿...... 너는 애초에 나를 찾지 말았어야 했다, 타마야!”
“이...... 이.......”
그녀의 무언가 외치려 했던 말은 중간에서 뚝 끊기고 말았다.
입술.
혁리혼의 입술이 꽃잎을 베어물 듯 그녀의 입술을 덮었고, 그의 손은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흐윽...... 읍...... 음.......”
파르르르.......
타마야의 나신은 일순 잘게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
휘리리...... 릭.......
그녀의 은밀한 곳을 가리고 있던 고의 조각마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비는.......
처음에는 아주 가는 가랑비였으나 점차 엄청난 폭풍을 몰고 대지를 후려쳤다.
대지는 그 비를 거부하려 했으나 결코 비를 거부하지는 못한다.
비는 꽤나 거세었기 때문이다.
혁리혼.
그는 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아주 강한.......
“흡...... 아흑.......”
타마야는 몇 번인가 아득한 심연 속으로 떨어졌었다.
사내는 분명 자신을 취하지 않으나 그것은 오히려 더한 갈증에 불을 지피고 말았다.
“아흑...... 너...... 너는.......”
“짐승이지.”
혁리혼은 그녀의 허벅지를 상큼 베어물며 중얼거렸다.
부르르.......
타마야는 조금 전까지도 앙금처럼 솟구쳐 오르던 자존심은 잊은 채 몸을 떨며 헛소리처럼 뇌까렸다.
“아...... 아니에요...... 당신은...... 하윽!”
순간이다.
터― 억!
혁리혼은 가볍게 그녀를 밀어내며 차게 웃었다.
“타하륵, 그는 나를 과소평가했군. 너 같은 정조관념조차 없는 계집을 나에게 주겠다고 했으니!”
“......!”
타마야는 순간 머릿속이 텅 비는 충격에 몸을 떨었다.
혁리혼은 이미 방문을 밀치고 나가고 있었다.
“돌아가서 타하륵에게 일러라. 나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무릎을 꿇고!”
쿵―!
이어 방문은 꽤나 차가운 바람을 일으키며 닫히고 말았다.
“으...... 으...... 이 야수 같은...... 자식......!”
순간 타마야는 몸을 떨며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사내를 발가락 사이에다 끼고 다니겠다던 그녀가.......
너무도 어이없이 혁리혼의 품에서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녀의 정조관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피가 터지도록 입술을 짓깨물었으나 혁리혼의 기묘한 손놀림은.......
그녀의 몸 위에서 움직이는 혁리혼의 손끝은 그녀의 혼을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너무도 절묘한 손놀림에.......
“색마! 감히...... 나를...... 우롱하다니!”
그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무도 곱게만 자란 그녀였다.
때문에 짓밟힌 자존심은 그녀의 마음속에 독이 되어 담기는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빚은...... 몇백 배로 돌려받고 말 테다! 혁리혼! 이 야수 같은 자식! 흐흑.......”
순간이다.
쉬이이이― 익!
쉬이이익!
그녀의 신형은 흡사 안개가 흩어지듯 방안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 * *
쏴아아아― 아―!
비는 더욱 미쳐 버린 듯이 퍼부어대고 있었다.
“크큿...... 흑뇌마자 타하륵......! 나는 그를 잠시 잊고 있었군.”
혁리혼은 빗속을 향해 이를 드러내 놓고 웃었다.
‘그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다. 용중용이랄 수 있는...... 나는 생각을 바꾸어야겠군. 애초 천극마분도를 향하던 길을 바꾸어 먼저 한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한다.’
혁리혼은 나직한 목소리로 뇌까리며 천천히 기루를 나서기 시작했다.
“한 마리 용을 잡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나는!”
한 마리 용을 잡는 일.
일순 혁리혼의 신형이 폭우 속으로 솟구쳐 올랐다.
츄우우...... 우.......
미친 듯한 폭우.
악양성은 이내 그와 함께 서서히 어둠 속으로 묻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