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륙천자-14화 (15/31)

第 14 章 신비한 大皇父

‘아아...... 아름답다. 사내의 용모가 어찌 이렇듯 아름다울 수가 있단 말인가?’

장내에 미려하게 떨어진 서생.

백면유생은 일찍이 이렇듯 훤칠하고 아름다운 장부를 본 적이 없었다.

아름다움 가운데에도 미묘한 야성적 기질은 여인의 심혼조차 빼어 버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우황은 볼이 뚱뚱 부어서 투덜거렸다.

“왕야께서는 장차 저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빌어먹을......!”

왕야!

사내는 바로 혁리혼이었다.

‘잘못하다가는 저놈의 입에서 또 어떤 불만이 터질지 모른다.’

혁리혼은 얼굴을 붉히며 차갑게 웃었다.

“한당, 저놈에게 앞으로는 여자의 그림자조차 못 보게 감시해라.”

“익!”

우황은 눈을 뒤집었다.

“그건 나보고 아예 죽으라는 소리요, 왕야!”

한당이 그의 말에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후후...... 아예 칼로 잘라 버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감시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것도 괜찮겠는데?”

무엇을 잘라 버린다는 말인가?

“으아아―!”

순간 우황은 불식간 사타구니를 움켜쥐며 냅다 십여 장 밖으로 신형을 날렸다.

“한당, 이 씨×노옴의 자식―!”

‘더럽고 천박한 자들이다, 이놈들은! 조금 전의 사활림의 자객들보다도 더......!’

백면유생은 새롭게 가졌던 혁리혼의 모습을 깡그리 머릿속에서 지우며 경멸의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는 황가의 예의범절을 익힌 사람이다.

그는 아주 무표정한 모습으로 허리를 접었다.

“도와주신 데 대해 은공께 감사드립니다.”

“.......”

“소생은 금황예강(金皇刈剛)이라 하고, 그는 태궁이라 하여 본인의 아랫사람입니다.”

그의 태도는 황가의 예법을 배운 사람답게 아주 품위가 있었으나 그의 말은 퉁명스럽고 투박했다.

허나 혁리혼은 아랑곳없이 짧게 물었다.

“어디까지 가는 길이오?”

“금릉(金陵)입니다.”

“그럼 됐군. 나 역시 그쪽을 지나쳐야 하니까.......”

혁리혼은 그 말을 하며 몸을 돌려 저만치 걸음을 옮겨 버렸다.

그의 태도와 말투는 꽤나 투박했다.

금황예강은 휘적휘적 앞에서 걷는 혁리혼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자신이 상대를 무시하려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무시당한 기분 같은.......

‘묘한 인물이다.’

금황예강은 또 한 가닥 기이한 기분을 혁리혼에게서 느꼈다.

비록 갈고 닦지 않은 투박함이 있으나 그 속에는 오히려 한 번 본 사람이라면 영원히 잊지 못할 이상한 힘이 있었다.

마치 마력처럼.......

터벅...... 터벅.......

금황예강은 자신도 모르게 혁리혼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그는 태궁의 상처가 염려스러워 고개를 급히 돌렸다.

‘태궁!’

그때였다.

“에헤헤...... 왕야가 주는 금창약은 진짜 신기하단 말이야?”

우황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탁! 탁!

그는 태궁의 어깨를 치며 악의 없이 웃었다.

“됐다, 친구...... 이제는 상처가 모조리 아물었으니...... 헤에.......”

우황처럼 거대한 체구를 지닌 태궁은 신기한 듯 자꾸만 자신의 몸 이리저리를 살펴보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난 외상이 있던 그의 몸은 씻은 듯이 나아 있었다.

“진짜 다 나았는데?”

태궁은 어깨를 바보처럼 으쓱 치켜 올렸다.

한당이 차갑게 말하며 걸음을 옮겼다.

“이 곰 같은 놈아, 나중에 너는 왕야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분의 배려니까.”

금황예강은 혁리혼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태궁을 대신해서 또다시 포권을 취해 보였다.

“감사드리오, 태궁을 치료해 주셔서.”

허나 혁리혼은 그의 말에 아랑곳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다.

금황예강은 그만 얼굴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왕야라고 했던가?’

이미 거의 오 리 이상을 묵묵히 혁리혼의 뒤를 따르며 금황예강은 얼굴에 기이한 빛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황족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럴 리가...... 없다.’

그는 고개를 내저었다.

‘황족이라면 최소한 내가 모를 리 없거늘...... 서생 같으나 이상한 야수의 냄새가 나는 자다...... 저자는.......’

얼마나 갔을까?

문득 금황예강은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터― 억!

“으윽......!”

그는 황가의 사람이다.

아주 고귀하게 자란.......

더욱이 근 십리를 두 발로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큿.......”

혁리혼은 나직한 실소를 흘리며 금황예강의 손을 잡았다.

사내답지 않은 조그맣고 아름다운 옥수.

그 손은 꽤나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형장, 내가 힘이 되어 주겠네.”

혁리혼은 말과 함께 금황예강의 손을 잡아끌었다.

“흐...... 으...... 돼...... 됐소...... 나 혼자 걸을 수...... 있소.”

금황예강은 기이한 신음을 내뱉으며 혁리혼의 손을 뿌리쳤다.

허나 그는 꽤나 고통스러운 듯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으.......”

“후후...... 고집이 세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괜찮지 않겠소? 그대는 여인도 아닌 장부이거늘.”

덥석!

혁리혼은 투박하게 말하며 다시 금황예강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순간 금황예강의 양볼이 붉어졌다.

‘흐...... 음.......’

허나 그것은 순간뿐이었다.

* * *

금릉.

예로부터 왕조의 무수한 흥망이 있었고, 때문에 호화로움과 부귀로움이 깔려 있는 이곳은 평범한 사람이라면 어깨를 움츠리게 한다.

주작대로의 그 번들거리는 하나만으로도.......

휘적휘적.......

혁리혼은 금황예강을 이끌고 주작대로를 거슬러 올라갔다.

‘기이한 자다. 나약한 서생의 모습인가 하면 야수의 냄새가 나고...... 게다가 고강한 수하들을 지니고 있는 자.......’

금황예강은 혁리혼에게 이끌려 가면서도 꽤나 오랫동안 혁리혼을 생각하고 있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기괴한 인물...... 혁리혼!

‘또 시리도록 아름다운 얼굴을 지녔는가 하면 저속한 일면과 고상한 품위를 지닌 사람이다, 이 사람은.......’

그는 문득 머릿속에 혁리혼과 대조적인 사람의 영상을 떠올렸다.

그는 일신에 신비한 품위를 지닌 사람이다.

늘 농부의 옷차림에 한 자루 호미를 들고 생활하지만.......

‘대황부와는 다른 기도를 지녔지만 그와 유사한 기운을 지닌 사람이다...... 신비와 마력을 지닌...... 나는 이런 유의 사람을 조금 안다.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니다. 이런 기도를 지닌 사람은...... 그리고 흔하지 않은 유의 사람이다.’

그는 혁리혼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입술을 떼었다.

“외람되나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실는지......?”

혁리혼은 어리둥절하다가 일순 나직한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설마 술 값 꿔 달라는 것은 아닐 테고?”

금황예강은 그만 얼굴을 붉히다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매달았다.

그는 어느사이 혁리혼의 불순하고 투박한 행동에 젖어들고 있었다.

“오히려 소제가 도움에 감사하여 술을 한잔 대접할까 싶어 드리는 부탁입니다.”

순간 허공에서 우황의 음성이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왕야, 허락하십시오! 술이 있으면 계집도 있을 테니까!”

혁리혼의 눈썰미가 치켜 올라갔다.

“한당, 그놈의 물건(?)을 아직도 잘라 버리지 않았느냐?”

고요.......

쥐죽은듯한 고요가 뒤덮였다.

“하하.......”

금황예강은 이제 그들의 농담에 자연스럽게 웃기까지 했다.

혁리혼의 시선이 그런 금황예강을 바라보며 기이한 빛을 떠올렸다.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비록 나약한 사람이나.......’

그러다 문득 두 사람은 은연중 눈길이 마주쳤다.

혁리혼은 일순 멋쩍은 표정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것도 괜찮겠지.”

* * *

금릉성 주작대로를 지나 후미진 곳에 하나의 거대한 폐가(廢家)가 자리하고 있다.

<태원부(太元府)>

금릉의 사람들은 그곳을 그렇게 부르나 그것은 이미 백년 전의 말이다.

지금은 아무도 그곳을 돌아보지 않는다.

과거에는 송의 정통적 황가의 황부였으나 이제는 당금의 원(元)에 몰락하여 버린 곳.

‘이곳은......?’

혁리혼은 태원부 앞에 이르러 눈썹을 찌푸렸다.

거의 사람이 살 수 없는 폐가가 아닌가?

그의 심중을 아는 듯 금황예강이 나직한 음성으로 탄식처럼 말했다.

“혁형, 이곳은 송의 황가 후예가 살던 곳이오. 지금은 아주 몰락해 버렸지만.......”

“송의 몰락......? 황가......?”

혁리혼은 나직이 뇌까리며 금황예강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몇 개의 가산을 돌아서 일순 혁리혼은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그곳에는 넓은 인공연못이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몰락했다고는 하나 과거 황가의 화려함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연못이다.

자욱한 운무가 꿈틀거리는 가운데, 운무 속으로 하나의 정자(亭子)가 보였다.

밭.

이제 막 봄의 기운을 느낀 밭이랑은 파릇한 새싹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는 일신에 평범한 삼베옷을 걸치고 있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천한 사람들의 옷차림이다.

그의 옆구리에는 한 자루의 호미가 꿰어차져 있었다.

스― 윽!

그는 지금 호미 대신 오른손에 붓을 들고 화선지에 먹물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밭을 일구다가 지금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듯.......

방갓을 깊이 눌러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농부의 모습인데, 그는 지금 연못 속에서 유유히 부유하며 노닐고 있는 고기 떼를 그리고 있었다.

헌데.......

참으로 신기와 같은 일은, 그의 손에 의해서 화폭에 옮겨지는 고기 떼는 흡사 튀어나올 듯 생동감이 있게 화폭에서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이다.

스― 윽―!

한 번의 움직임에 또 한 마리의 금린(金鱗)이 꿈틀거렸다.

스스...... 스.......

또 한 번의 움직임에 흐르는 듯 수면 위를 미끄러지는 안개가 살아난다.

이 무슨 조화로움인가.

그는 그림을 그리며 아주 낮게 뇌까렸다.

“벌써...... 백년이다. 이 고통은.......”

고요한 연못가의 정적을 비집고 그의 음성은 꽤나 신비를 지닌 채 여운처럼 맴돌고 있었다.

“허나...... 언젠가는 날리라. 한 마리 금린은 어룡(魚龍)으로 변하여...... 그날...... 이 고통은 천배, 만배로 씻어지리라.”

그때 문득 그의 방갓이 미세한 떨림을 일으켰다.

‘으음...... 생각 이상이군. 나를 찾아올 사람의 능력은.......’

뭉클.......

일순 운무가 걷히며 두 사람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황부!”

방갓을 깊이 눌러쓴 인물은 순간 나직한 웃음을 흘렸다.

“허헛...... 예강, 자네인가? 어서 오라.”

농부의 모습이나 그의 언행은 품위로웠다.

‘신비한 인물이다. 그지없이 평범한 모습이나...... 이자의 저 몸 깊숙한 곳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은.......’

서서히 몸을 일으켜 돌리는 방갓의 촌부(村夫).......

허나 그 순간 혁리혼은 모든 공간이 순간적으로 정지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제왕의 기운!’

분명 순간적인 착각일 게다.

그의 몸이 돌려지는 순간 하나의 거대한 태산이 돌아서고 있는 듯한 엄청난 기운을 느낀 것은......!

‘오오......!’

혁리혼은 자신도 모르게 내심 격성을 흘렸다.

그리고 그는 방갓을 쓴 촌부가 그리던 화폭에 시선을 주는 순간 입술이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림.

그것은 아주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고기 떼를 그린 묵화(墨畵)였다.

유유히 부유하며 노닐고 있는 금린들.......

그것 외에는 단 한 가지, 그 그림의 수법이 지극히 고명해 생동감이 담겨 있다는 것뿐.......

허나 그 그림에 시선이 못박인 채 오랫동안 핏물이 전신에서 싸늘하게 식어 버리는 기분을 혁리혼은 느끼고 말았다.

‘무서운 예기(銳氣)가 저 그림 속에는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 마치 저 많은 금린이 모조리 하늘로 어룡이 되어 날아오를 듯한.......’

“......!”

‘저것은 무서운 패도의 기가 담긴...... 그림이라기보다는 야망을 담은 것이다!’

혁리혼은 그림 속에서 한순간 엄청난 저의를 느낀 것이다.

만약 금황예강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혁리혼은 오랫동안 그 그림 속에 휘말려 들고 말았을 것이다.

“하하...... 혁형, 이분은 소제의 유일한 대형으로 금황제운(金皇帝雲)이십니다. 금릉의 사람들은 곧잘 화농(畵農)이라고 부르지요.”

“그림을 그리는 농부......?”

혁리혼은 금황예강의 소개에 따라 촌부 화농에게 가벼운 목례를 취해 보였다.

“보잘것없는 서생...... 혁리혼이지요.”

순간 금황제운은 나직한 대소를 터뜨렸다.

“허허헛...... 무슨 말씀을...... 보잘것없는 서생이라니......!”

“......!”

문득 그는 웃음을 흐리며 정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귀공, 차가 식을 것입니다.”

‘차를?’

혁리혼의 입꼬리가 기이한 파문을 일으켰다.

차(茶).

정자 중앙에는 하나의 석탁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세 잔의 차가 놓여 있었다.

향긋한 다향을 흘리며.......

‘그는 이미 내가 이곳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석 잔의 차를 마련해 놓고 있지 않은가!’

혁리혼은 금황제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방갓을 벗고 있지 않았다.

‘볼수록 신비한 인물이다!’

일순 모두 자리에 앉자 금황제운은 방갓을 벗어 탁자 한 귀퉁이에 올려놓았다.

순간 혁리혼은 놀람의 빛을 얼굴에 떠올렸다.

그것은 기대를 벗어난 충격과도 같은 것이다.

보라!

농부 차림에 어울리지 않는...... 고고한 가운데 무한한 서기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얼굴.

그곳에는 너무도 신비하고 심유한 눈빛이 있고, 천하만상이 다가온다 해도 꺾이지 않을 굴강의 턱이 있었다.

제왕군상(帝王君相)!

만약 누군가가 그런 인물을 묻는다면 그 표상은 바로 금황제운의 얼굴일 것이다.

만남.

이 우연한 조우는 참으로 엄청난 운명과 숙명이 어우러진 암시였다.

다만 그들은 서로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혁리혼과 금황제운은 꽤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화젯거리는 대체로 문(文)과 그에 따른 잡기(雜技)에 관한 것이나, 시간이 흐를수록 혁리혼의 입에서 흘러 나오는 심오박대한 학문의 편력이라니!

‘나는 천기를 헤아려 나에게 더할 수 없는 귀인이 찾아올 것을 알았다.’

금황제운의 손은 아주 깨끗하고 마디가 긴 아름다운 손이다.

그 손은 지금 한 줄기 격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헌데...... 이렇듯 놀라운 인물이었던가?’

“......!”

‘참으로 놀라운 사람이다, 이 사람은......!’

금황예강은 붉디붉은 입술을 잘강거리며 씹었다.

그의 신비롭고 아주 맑은 시선은 혁리혼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야수 같은 냄새를 지녔고 말투조차 저속하게 했던 자.......’

그는 얼마 전 혁리혼을 만날 때 그의 모습을 되새기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너무도 완벽하리만치 다른 면모를 보여 주고 있는 혁리혼이었다.

‘사람이 이렇듯 한 몸에 여러 가지 기운을 함께 지니다니!’

금황예강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혁리혼에게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혁리혼은 이야기를 하면서 자주 삼 장여 떨어져 놓여 있는 화폭에 시선을 돌린다.

“......!”

벌써 여러 번째.......

금황제운은 나직한 웃음을 품위 있게 흘렸다.

“허허...... 귀공께서는 그림에도 조예가 있으신가요?”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남의 것이나 감상할 정도로.......”

“호오...... 남의 그림을 감상할 정도는 이미 고명한 경지에 이르지 않고는 힘든 일, 귀공은 겸손하십니다.”

“후훗.......”

혁리혼은 그만 멋쩍게 웃고 말았다.

처절하리만치 퇴폐적이고 어찌 보면 티 한점 없는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웃음과도 같은 웃음이다.

금황제운은 입가에 신비한 미소를 흘리며 혁리혼을 바라보았다.

“귀공께서는 혹시 이 촌부의 어설픈 장난을 보고 흉이나 보지 않으실는지 모르겠구려.”

“아닙니다. 아주 훌륭한 그림입니다. 다만.......”

“......?”

“한 가지만 저 그림 속에서 거세해 버린다면.......”

순간 금황제운의 안색이 희미하게 굳어져 버렸다.

그는 혁리혼을 직시해 본다.

그의 눈빛은 고요하나 감지할 수 없는 가공할 예광을 담고 있고, 그런 그의 눈을 바라보는 혁리혼의 눈빛은 야수적인 배타성을 지니고 있으나 기실 그 속에는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포용력과 흡력이 숨어 있었다.

“보시었소?”

짧은 침묵을 깨며 금황제운이 입을 열었다.

혁리혼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치 않게 보고 말았습니다, 선생.”

“후후...... 이 촌부는 그 한 가지를 위하여 살아왔고.......”

“......!”

“또 살아갈 것입니다.”

중년의 모습에 왕도(王道)의 기를 지니고 있는 그의 음성은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아끄는 힘이 있었다.

조용하고 품위가 있으나 굴강하게 느껴지는 음성.

혁리혼은 새삼스럽게 또다시 묵화를 들여다보았다.

금린들을 담은 한 폭의 묵화.......

‘저 속에는 야망이 꿈틀거리며 숨쉬고 있다. 아주 무서운 패도굴강의 야망이! 한 가지라 함은 바로 그 야망을 말함이다.’

야― 망―!

그것은 대장부의 끝없는 투혼 속에 살아 꿈틀거려 가슴 부풀게 하는 칼의 이름이다.

야망을 위하여 살았고, 살아가는 금황제운.......

왕군의 기를 가졌는가 하면 섬세하리만치 아름다운 손을 가졌고, 초야에 묻혀 농부로 살아가고 있는 그.......

그는 대체 누구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야망이기에 그에게 이렇듯 절박한 빛마저 엿보이고 있단 말인가?’

문득 금황제운은 화제를 돌리려는 듯 의식적인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이 촌부가 귀공에게 괜한 실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는가 보오. 귀인을 맞이하면 본가에서는 예로부터 천년구룡화주(千年九龍火酒)를 대접하는 관례가 있소. 귀공께서는 어떠신지?”

“후후...... 원래 이곳에 올 때에는 예강형이 술을 대접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하...... 그랬었지요.”

금황예강은 혁리혼의 말에 쾌소를 터뜨리며 시선을 정자 밖으로 돌렸다.

쓰쓰쓰...... 쓰.......

정자를 휘감고 도는 운무.

금황예강은 그 운무 속을 향해 입을 열었다.

“태궁, 대형께서는 본가에 있는 천년구룡화주를 몽땅 가져오라 하시었다!”

순간 운무 속에서부터 태궁의 우직한 대답이 들려왔다.

“예, 소공!”

금황제운은 그만 어이없는 웃음을 떠올리고 말았다.

“예강, 그대는 아예 천년구룡화주를 바닥내려고 작정을 했군?”

“대형, 귀인에게는 그보다 천 배나 보배로운 것도 아껴서는 안 된다는 옛 성인들의 말씀이 있습니다. 설마 아까워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겠지요?”

금황예강이 눈을 크게 뜨며 웃음기 섞인 말을 뱉자 혁리혼이 한마디 거들었다.

“하하...... 그럼 본인이 그 술 값을 쳐서 드리리까?”

“어이쿠! 이거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두 방을 연거푸 맞는군.”

금황제운이 어깨를 움츠리자 혁리혼과 금황예강은 악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후후후.......”

술[酒].

술이란 참으로 미묘한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슴 밑바닥까지 뒤집어 감정의 찌꺼기까지 우려내는.......

혁리혼은 내력을 풀었다.

무인, 그것도 막대한 내력을 지닌 사람이라면 많은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법이다.

허나 술이란 어차피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니던가?

혁리혼은 그런 생각에서 내력을 푼 채 술을 마신 것이다.

휘영청 밝은 십오야(十五夜).

그리고 사내다운 사내들이 모여 기울이는 한 잔의 술은 미주(美酒)가 아니라도 좋다.

혁리혼과 금황제운은 꽤나 비슷한 점이 있는 대장부들이었다.

특히 야망이라는 데에서는.......

혁리혼은 취기 어린 시선으로 금황제운을 바라보고는 있으나 그는 경이의 빛을 눈 속에 감추고 있었다.

‘처음과 다를 바가 없다. 그의 자세는.......’

자세?

금황제운은 모습에 있어서 굴강한 기운이 흐르나 아주 나약한 면모도 없지 않아 있는 사람이다.

흡사 진짜 농부처럼.......

‘처음 그가 찻잔을 들었을 때 나는 그것이 우연히 다법(茶法)에서 우러나오는 자세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의 허술하면서도 정갈한 자세는 술잔을 기울이면서도 같다. 완벽하리만치 빈틈이 없는 자세는!’

쭈― 욱!

혁리혼은 기분 좋게 술잔을 비우며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사위는 먹물을 풀어놓은 듯한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심야.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자세! 무인으로서 검예지경이 최극상승에 이르러야만 저렇듯 자연스런 모습이 표출됨을 나는 안다! 그는 정녕 평범한 농부이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야망이라는 것 역시 평범한 것만은 아니리라!’

그때 문득 금황제운은 술잔을 높이 들어올리며 혁리혼에게 호쾌한 음성을 뱉었다.

“허허...... 이 아름다운 밤, 향기로운 미주와 더불어 귀인을 맞았음은 영웅에게 최대의 낙이 아니겠는가?”

그는 풍류를 아는 사람이다.

혁리혼을 향하는 그의 웃음은 꽤나 운치가 있는 웃음이다.

“귀공, 이 촌부가 소제라고 불러도 과한 욕심이 아닐까 모르겠소?”

“하하...... 그것은 제가 바라던 바입니다. 대형이라고 부르고 싶었습니다.”

“허허...... 나 금황제운 생애최대의 밤이 되겠군!”

“후훗...... 이 금황예강은 이제 또 한 분의 훌륭한 이형(二兄)을 모시게 되어 기쁩니다.”

혁리혼은 두 사람과 술잔을 들어올리며 쾌소를 터뜨렸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과거 삼국시대(三國時代)의 유비와 관우, 그리고 장비의 술잔이 이렇듯 향기로웠을 것입니다.”

“하하핫.......”

얼마나 담소가 이어졌을까?

“만약.......”

금황제운이 술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문득 혁리혼을 향해 입술을 떼었다.

“......?”

“우형의 생각이 틀리지 않는다면 둘째와 나는 똑같은 물[水]을 먹고 있는 것이다. 아닌가?”

“......!”

“만약 그렇다면...... 그 똑같은 물을 섞을 수도 있다, 둘째......!”

금황제운은 아주 신비하고 기이한 빛을 두 눈에 담고 있었다.

한 가닥 형용할 수 없는 갈망이 숨은 그런 눈빛이다.

물!

꽤나 의미심장한 말이 아닌가?

“그리고 그 물을 둘이 같이 마실 수도 있다.”

“......!”

문득 혁리혼은 시선을 어둠...... 그 공활한 암천으로 던졌다.

‘그는 지금 야망의 물을 말함이다. 그리고 나와 힘을 같이할 것을 바라고 있다.’

야망이라는 물!

잠깐 동안 혁리혼의 두 눈은 영롱한 별무리를 담았다.

“대형의 물과 나의 물이 같을 수도 있소. 허나.......”

“......?”

“다르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혁리혼은 마지막 술잔을 입 안에 깨끗이 털어 넣으며 쓰윽 소맷자락으로 입가를 닦아냈다.

“나는 오늘밤 대형의 정이 서려 있는 술 한잔을 몸 속에 담고 갑니다.”

그는 지금 금황제운의 뜻을 칼끝처럼 잘라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금황제운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굳어져 갔다.

혁리혼은 암천에 시선을 던지다가 이내 금황제운을 향했다.

“똑같은 물이라도 소[牛]가 마시면 힘이 되어 인간에게 이로우나...... 뱀이 마시면 무서운 독이 되는 법입니다.”

칼의 말이다.

생각할수록 의미심장한.......

“대형께서는 분명 전자의 것을 지니고 있으실 것입니다.”

“......!”

혁리혼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품위 있게 포권지례를 취해 보였다.

“대형, 우리는 반드시 가까운 시일 내에 다시 만날 것입니다. 그럼.......”

다음 순간이다.

스― 읏!

혁리혼의 신형은 아득한 어둠 속으로 쑤욱 솟아올랐다.

“셋째, 잘 있게. 다음에 만날 때에는 자네의 주량이 좀 늘어야 할 것이다. 계집처럼 얼굴을 붉히는 습관도...... 하하하핫......!”

금황예강은 취해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양볼은 새색시의 붉어진 양볼과 같았다.

그런 양볼이 지금은 더욱 붉어지고 있었다.

‘설마...... 그가!’

그는 어둠 속에서 혁리혼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강거리며 씹었다.

계집애처럼.......

그때였다.

“대황부시여!”

어둠의 공간 속에서 굳은 음성이 흘러내렸다.

“그를 그냥 돌려보내면 아니되십니다. 그는 범상치 않은 인물입니다. 어쩌면 대황부께 최대의 적이자, 맞수가 될......!”

“겁사(劫邪)!”

허공에서 흘러내리는 음성은 금황제운의 짧은 말에 끊기고 말았다.

겁사?

어둠 속에 있는 인물을 말함인가?

금황제운은 차게 입을 열었다.

“물러가거라.”

금황예강은 금황제운을 향해 얼굴을 붉힌 채 허리를 접었다.

“제 불찰입니다. 그를 완전히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욕심이.......”

“.......”

“대황부께서 그를 받아들이면 우리의 힘은 배가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너무도 신비로운 금황제운의 눈.

그 한 쌍의 눈은 어둠을 담고 있었다.

마치 암천을 모두 담고 있는 듯했다.

“예강, 그는 걸물(傑物)이다. 최소한 인간의 밑에 있지 않을 인물이지.”

“......!”

“그리고 그가 이곳에 온 것은 자네의 뜻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었다. 숙명이라는 이름의.......”

스스...... 슷.......

금황제운은 천천히 어둠을 밟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헌데...... 믿을 수 없게도 그는 지금 허공 삼 장여 위를 무릎조차 구부리지 않은 채 미끄러져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진정 어둠을 밟으며.......

‘숙명이라는 이름―!’

금황예강은 굳은 듯 서서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금황제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몸을 잘게 떨고 있었다.

가슴을 부여잡은 채 그 떨리는 손은 너무도 섬세한 기운을 주고 있었다.

금황제운!

그는 대체 어떤 인물인가?

그리고 이제 시작되려는 거대한 난세의 폭풍 속으로 어떤 힘을 지니고 나타날 것인가?

절대의 신비와 흑막에 가려진 그의 존재.......

우리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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