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3 章 진짜 맛(?)도 좋겠지?
스스― 슷―!
혁리혼은 어둠을 가르며 아주 빠르게 신형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문득 입을 열었다.
“한당, 우황...... 그를 보며 느낀 것이 없느냐?”
“그는 중원인이 아닌 동영의 무장입니다.”
“최소한 일신에 무서운 검예를 숨기고 있는.......”
어둠 속에서 한당과 우황의 음성이 흘러내렸다.
혁리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그렇다. 그는 아주 무서운 자이지. 가공할 폭풍을 지니고 있는.......”
혁리혼의 입꼬리가 기묘하게 말아올려졌다.
‘죽마인예! 팔황대마성좌 중 금세기 동영이 낳은 최고의 인자...... 그가 중원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알고 있었는가?
죽마인예 영목태랑의 존재를......?
* * *
“천왕마성이?”
그는 피보다 붉디붉은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하늘 아래 가장 아름다운 사내.
대전 안으로 스며드는 아름다운 월광조차 사내의 얼굴에 이르러 아주 천박한 빛으로 변하고 만다.
<마황대군전(魔皇大君殿)>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냐? 혈뇌?”
우르르르― 릉!
마교의 구중심처(九重深處)에 자리하고 있는 호화로운 대전은 이 순간 사내의 분노지성(忿怒之聲)에 진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콰― 직!
일신에 낡디낡은 유생의 옷차림을 하고 있는 인물은 순간 바닥에 이마를 피 터지도록 짓찧었다.
혈뇌마겁!
마도제일뇌(魔道第一腦)라고 인지되는 그다.
“이 순간 천왕마성은 일천여 분타와 함께 모조리 붕괴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 자리에 천왕제군대척이라는 거대한 황금성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왕제군대척!
혈뇌마겁의 안색이 월광만큼이나 하얗게 변해 있었다.
부르르......!
늘 아름답고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다니는 사내 마황제일존 갈무좌!
그의 아름다운 옥수는 이 순간 태사의의 귀퉁이를 움켜쥔 채 잔떨림을 일으키고 있었다.
“도...... 대체 누가?”
“천왕제군대척주는 본 교가 알아낸 바로...... 혁리혼이란 자입니다. 과거 십대천세주 대군의 후예였던......!”
“이...... 이.......”
콰직!
파파파― 팟!
만년한철(萬年寒鐵)로 된 태사의의 귀퉁이가 갈무좌의 손안에서 그대로 가루로 변하고 말았다.
“그...... 놈이......?”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져 버린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내.......
그리고 늘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미소를 붉디붉은 입술에 담고 있는 그.
그런 그가 무서운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천왕마성.
그 존재는 바로 갈무좌의 한 팔과도 같은 것이다.
“본좌가 실수를 했다. 놈을 과거...... 깨끗이 죽였어야 했던 것을!”
버― 언― 쩍!
일순지간 그의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혈광이 쏟아져 나왔다.
“오천 년 난세의 주역...... 사황검류대척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만 치중하여 놈의 생사를 잠시 도외시했던 것이 실수였다!”
“.......”
“그 실수로 호랑이 새끼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꼴이 되고 말았으니.......”
그의 분노는 꽤나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천왕마성의 붕괴!
그야말로 갈무좌로서는 잠자다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꼴이 아닌가?
허나 혈뇌마겁은 이를 드러내 놓고 웃고 있었다.
“쿠쿠...... 마존께서는 신경 쓰실 일이 못되는 하찮은 일입니다.”
“계(計)가 있느냐?”
“이 기회를 본 교는 오히려 세력을 더 강화할 수 있는 계기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마존!”
혈뇌마겁의 유리알처럼 투명한 눈 깊숙이 한 가닥 잿빛의 기운이 솟아올랐다.
음습하고도 축축한 죽음의 잿빛.
그것은 혈뇌마겁의 머릿속에서 무서운 계책이 떠오를 때마다 나타나는 기이한 특징 같은 것이다.
“마존께서는 아극마세를 알고 계십니다.”
“......!”
“천축 최강의 세력인 그들을.......”
아극마세.
바로 팔황대마성좌 중 또 하나의 가공할 세!
갈무좌의 안색은 꽤나 평온한 기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름다움이 살아 몸 구석구석에서 꿈틀거리는 사내.
그의 모습을 한 번이라도 여인이 본다면 스스로 몸을 던져 버릴 요기롭기까지 한 극치미를 갈무좌는 가지고 있었다.
“그들 아극마세는 지금 중원을 넘보고 있습니다. 허나 주저하고 있습니다.”
“.......”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혈뇌마겁은 꽤나 자신 있는 투로 얄팍한 입술을 열었다.
천부적으로 무서운 지혜를 타고난 그.......
“첫째, 바로 본 교의 힘이 너무도 가공함이고 둘째, 그들의 백오십만(百五十萬) 고수가 중원으로 들어와 장기간 체류할 수 있는 엄청난 자금이 없기 때문입니다.”
뭉클.......
혈뇌마겁의 두 눈에서 피어오르는 잿빛의 음습한 기운이 더욱 짙어졌다.
“그들은 그 두 가지로 하여 가공할 힘을 갖고 있으나 중원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쿠쿠...... 큿.......”
혈뇌마겁은 아주 소름 끼치는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들을 중원으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순간 갈무좌는 차갑게 웃었다.
“혈뇌,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냐?”
“......?”
“천하를 얻으려는 본좌에게 오지 않는 적을 오히려 만들려고 하다니......!”
병법에서도 작은 적이라 할지라도 만들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그것이 크건 작건 간에 그 적을 막기 위해 힘이 분산된다는 사실은 대적(大敵)을 상대하는 데에 치명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데 혈뇌마겁은 오히려 그 적을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엄청난 세력인 아극마세를.......
혈뇌마겁은 한 술 더 뜬다.
“그냥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황금을 주어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갈무좌는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아예 적을 만들어 날개를 달아 주자는 이야기인 것이다.
“혈뇌, 너는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이야기인가?”
“쿠쿠...... 마존! 그렇게 그들을 황금을 미끼로 끌어들여 혁리혼이란 자를 척살케 한다면......!”
“살인청부를......?”
갈무좌의 얼굴은 이제 아예 불에 덴 듯이 붉게 변하고 말았다.
마교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강하다.
헌데 살인청부라니!
“이것은 기실 본 교의 위신이 크게 떨어지는 일이나.......”
혈뇌마겁.
그는 방통과 주유, 제갈공명의 머리를 합한 것보다 더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갈무좌의 얼굴이 흐려지는 것을 재빠르게 간파하며 말을 돌렸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진중한 빛을 얼굴에 떠올렸다.
“마존이시여!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
“천하를 얻기 위해 일보 나아가는 것이 그 하나이고.......”
“.......”
“또 하나는 오히려 한보 물러서는 것이 그것입니다.”
“......!”
“헌데 지금 마존께서는 한보 물러서야 할 시기입니다.”
“......!”
“절대로 본 교의 위신 따위가 추락하는 조그만 일은 가차없이 무시해 버려야 할 것입니다.”
문득 갈무좌는 입가에 웃음을 떠올렸다.
아름다우나 독을 지닌 꽃뱀의 웃음.......
그는 혈뇌마겁의 능력을 가장 인정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리고 그의 늘 기상천외한 궤변론(詭辯論)은 때로 자신의 마음을 충족시킨다.
지금처럼.......
“말하라, 혈뇌......!”
혈뇌마겁은 입가에 야릇한 웃음을 베어물었다.
“쿠쿠...... 아극마세에 살인을 청부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득이 있습니다.”
“.......”
“혁리혼, 그 애송이가 주인으로서 결합된 지 얼마 안 되어 조직력이 강화되지 않은 천왕제군대척은 머리를 잃음으로써 손쉽게 와해될 수 있는 것이 하나이고.......”
“.......”
“혁리혼이란 자는 아주 강한 자입니다. 아극마세의 초극강고수 일천을 능히 감당할......!”
“.......”
“때문에 아극마세는 혁리혼이란 애송이를 척살한다 해도 꽤 많은 최고의 고수들을 잃고 말 것입니다. 일천의 초극강고수를 잃는다는 것은 엄청난 힘의 균형을 잃는다는 의미이고, 그것은 본 교에 상당한 이득을 주게 됩니다.”
“......!”
“그리고 아극마세의 그런 취약점을 이용해 그들의 세력을 힘으로 본 교 예하 세력으로 끌어들인다면......!”
세 가지 이득!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계책이 아닌가.
한보 물러섬으로 해서 돌아오는 엄청난 세 가지 이득의 계!
“그리고 나머지 육대마황성의 세력들은 마지막 계에 의해 수중고혼(水中孤魂)으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 계―?
갈무좌는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미소를 베어물었다.
어미의 배를 째고 나오는 살무사의 웃음을.......
“후후...... 혈뇌, 아주 멋진 일을 만들었구나, 너는.......”
어둠.
천왕마성이라는 거대한 세력을 집어삼킨 어둠 그 저편에서는 또 하나의 가공할 음모가 무르익고 있었다.
바로 마교의 구중심처에서.......
* * *
강서성.
그곳은 조양(朝陽)이 동녘을 붉힘과 동시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 천왕마성의 괴멸!
그 어마어마한 사실도 그렇거니와, 그 천왕마성이 있던 자리에 생긴 엄청난 황금성!
― 우우...... 도대체 저럴 수가......!
― 어제 저녁까지 저곳에는 분명 천왕마성이 있었다. 헌데...... 하룻밤 사이에 황금성이 세워졌다니......!
보라!
버― 언― 쩍!
아침 조양 속에서 동공이 파열될 듯한 엄청난 황금의 광휘가 짓터져 오르는 가운데 드러난 황금성을.......
거대했다.
그리고 너무도 눈부시도록 아름답지 않은가.
기적과 사상최대의 불가사의를 안고 당당히 파양호변에 건립된 천왕제군대척!
충격과 함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숱한 의문이 구름처럼 피어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천왕제군대척의 주인은 누구인가?
― 이 불가사의를 만든 인물은 필시 신이거나 인간 이상의 능력을 지닌 인물일 것이다!
의혹은 소문을 낳고, 소문은 마침내 구르는 눈송이처럼 중원 십팔만리를 질타하며 커졌다.
그리고 무림은 서서히 알 수 없는 진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의 태동!
사람들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천왕마성의 붕괴!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분명 마교는 보복할 것이다!”
“천왕마성은 그들의 오른팔 격인 엄청난 세력이었으니까.”
중원의 귀추는 모조리 이 하나의 불가사의와 기적을 끌어안고 있는 천왕제군대척을 향했다.
아주 극도의 긴장을 품은 채.......
허나 마교는 잠잠했다.
흡사 이 천왕마성의 붕괴를 모르고 있는 듯.......
아니면 그들의 괴멸을 당연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듯이.......
그런 와중에 또 하나의 엄청난 소문이 중원대륙을 질타하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의 욕망이라는 칼을 끄집어내게 하는.......
* * *
도대체 이 소문은 어디에서 흘러 나온 것인가?
― 환상의 섬 천극마분도를 아는가?
― 그곳은 바로 오천 년 난세의 주역...... 바다로 간 힘의 후예들이다!
― 삼마겁(三魔劫)의 전설이 그곳에서 잉태되고 있다.
― 무림의 영웅이여! 그것을 취하여 중원으로 드는 마의 힘을 누르는 제마멸사의 영웅이 되지 않으려는가?
삼마겁의 전설!
오천 년 이래 끝도 보이지 않는 심연한 바다의 꿈이다.
그것은 일백의 사검(邪劍)이 겁사(劫邪)의 개벽을 하고, 한 송이 빙극우혈화(氷極優血花)는 마의 꿈을 먹고 마침내 깨어난다.
그것을 얻어 한 마극의 종주가 태어나리라.......
인간의 욕망을 부르는 칼의 소리.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허나 간다!
사람들은 바다의 꿈을 먹으러 욕망의 칼을 빼들고 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의 야망이 깨어 일어날 것이다. 천극마분도에서......!”
“가자! 천극마분도로...... 그곳에는 나의 꿈과 바다의 꿈과 야망의 칼이 잠자고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깨울 것이다!”
바다의 야망의 칼!
그리고 무겁(武劫)의 난세를 일으키는 가공할 폭풍―!
* * *
호북성(湖北省).
중원 최고의 산수절경을 지니고 있는 성이다.
― 중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디인가?
사람들은 중원에 들어 그 한마디를 묻고, 중원인이라면 꼭 한 가지 대답을 한다.
― 그것을 느끼려면 무산(巫山)으로 가라. 그곳에 이르면 그대는 취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그 아름다움에......!
대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
그곳이 바로 무산이다.
<무협(巫峽)>
계곡을 굽이치고 돌아 열두 개의 크고 작은 강줄기와, 그 강줄기를 따라 병풍처럼 펼쳐진 열두 개의 봉우리는 가히 절경 중에서도 빼어난 절경이다.
그 옛날 선녀조차 이곳을 지나가다 그 빼어난 절경에 도취되어 머물러 무산 중에는 신녀봉(神女峰)이라는 곳이 있다던가?
꽈르르르르― 릉―!
꽈아― 쿠르르르―!
굽이쳐지는 강물과 떨어져 내리는 크고 작은 무수한 폭포.......
‘진정 아름다운 곳이다. 마치 신의 걸작처럼.......’
사내.
그는 이미 오랫동안 무협의 굽이치는 강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득한 무협의 절벽 위에서.......
사내의 용모라고는 믿을 수 없으리만치 아름다운 용모.......
그러나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은 기묘한 야수의 냄새다.
이와 같은 특이한 기운을 지닌 사람은 하늘 아래 오직 한 사람.
혁리혼, 바로 그였다.
“대자연은 언제 보아도 나에게 아주 커다란 감동을 준다......!”
그는 나직한 탄성을 입술 사이로 흘려냈다.
무산은 그만큼 아름다웠다.
특히 무협은.......
“이 아름다움에 비하면 사람들은 얼마나 더럽고 추한 존재.......”
문득 그는 중얼거리던 뇌까림을 끊었다.
한 가닥 엄청난 기운이 무협의 한 계곡 위로 솟구쳐 오른 것이다.
그것은 가히 형용할 수 없는 살을 가르고 뼈를 바수는 가공할 기운이었다.
‘살기!’
그랬다.
허공으로 무형중에 솟구쳐 오르는 아주 강렬한 기운은 바로 사람의 몸에서 뿜어지는 살기인 것이다.
‘누군가? 이런 엄청난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자는......?’
문득 그의 신형이 둥실 허공으로 비산해 올랐다.
파아아......!
‘가 보자!’
태고의 정적을 지고 있는 무협.
어둠이 대낮에도 짙게 깔려 있는 그곳에는 언제부터인가 살을 가르는 가공할 살기를 품고 있었다.
정적.
무릇 정적이라 함은 때때로 그 어떤 공포보다도 더 강한 두려움을 준다.
지금 무협의 정적이 그렇듯이.......
그때였다.
우두두두― 두우―!
무협의 산모퉁이를 돌아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이 정적을 깨며 울렸다.
마차(馬車).
“하― 아―!”
촤아아아―!
하나의 팔두마차(八頭馬車), 그리고 마부석에는 한 거구의 장한이 미친 듯이 채찍을 휘두르며 마차를 끌고 있었다.
팔두마차는 무협의 산모퉁이를 돌아 막 관도로 나서고 있었다.
두우― 두우― 두두둑!
“아― 하―!”
흡사 장비(張飛)의 풍채를 닮은 고슴도치의 수염에 구 척(九尺) 거구를 지닌 마부.
두 눈에는 연신 가공할 전광(電光)을 번뜩이고 있었다.
절대로 평범하지 않은 마차다.
마부의 신위가 그 정도라면.......
문득 달리는 마차 안으로부터 차디찬 음성이 흘러 나왔다.
“본인을 황실로 부르다니...... 이것은 대황부(大皇父)와 나를 떨어뜨려 놓아 나를 척살시키려는 계책이다!”
우두두― 두우.......
크르르르.......
“어서 돌아가자! 태궁(太弓), 아직 멀었느냐?”
마차 안에서 꽤나 다급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차― 앗!”
그러자 마부 태궁은 더욱 미친 듯이 말채찍을 휘두르며 투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소공, 이제 십리 남짓 남았습니다.”
“더욱 빨리 달려라! 나의 목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으으...... 한족(漢族)의 재기는 마지막이다! 내가 죽는다면.......”
한족의 재기?
콰르르르르― 륵―!
마차는 미친 듯이 달렸고, 태궁의 채찍질은 더욱 거세어졌다.
“어서...... 가자! 차― 앗!”
촤아아악―!
이미 마차는 무협을 끼고 도는 대로에 완전히 모습을 나타냈다.
그때였다.
파파파파― 팟!
콰아아― 아!
대로의 땅거죽이 그대로 폭죽 튀듯 튀어오름과 함께 이십여 자루의 시퍼런 칼빛이 가공할 기세로 태궁의 정수리를 쪼개어 들었다.
살수!
일신에 핏빛의 혈의를 입은 이십여 명의 합벽살수는 그야말로 완벽한 천라지망을 만들고 있었다.
“여기까지......!”
태궁의 안색이 홱 변함과 동시 말을 향해 휘두르던 채찍을 괴이한 수법으로 휘둘렀다.
위이이이― 잉!
조금 전 말을 후리던 기세와는 엄청난 차이의 기세.
바로 그때였다.
카아아아― 아―!
카아― 카아― 카아―!
무협의 숲 속에서부터 엄청난 살기가 마차를 향해 퍼부어졌다.
태궁의 허점을 노리는 시간차의 마차 안을 향한 살수.
가히 완벽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태궁의 황소 눈만한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자신의 앞을 막자니 마차는 파괴되고 그 안의 인물은 죽는다.
“이...... 놈들이...... 모조리 머리통을 바수어 버리고 말겠다! 비...... 비켜랏!”
카아아아― 앙!
퍼퍼퍽! 콰직―!
“크으.......”
“카― 악!”
가공할 기세.
채찍에 부딪히는 자는 모조리 몸통이 찢어져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동시에 태궁은 다급하게 마차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꽝―!
빠직.......
“으윽......!”
마차가 박살이 나며 마차 안으로부터 한 유생이 퉁겨지듯 튀어나왔다.
순식간에 피를 뒤집어쓴 듯한 형상을 하고 있는 유생.
시리도록 아름다운 얼굴에 너무도 유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에는 이 순간 처참한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으으...... 네놈들은 바로 사활림(死活林)의 자객들.......”
그는 피를 물며 이빨 저린 음성을 터뜨렸다.
허나 이십여 명의 살수들은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오싹하리만치 섬뜩한 표정에, 만약 시체가 표정을 지니고 있다면 그와 같을 것이다.
헌데 사활림이라고 했는가.
바로 당금 최강의 살수조직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어둠과 죽음의 주인!
그것은 곧 무림의 공포스런 죽음의 대명사다.
“으으...... 황상(皇上)이...... 시키더냐......? 나를...... 죽이라고......?”
황상?
그는 지금 당금 황제인 환무제(幻武帝)를 일컫는 말인가?
어찌 황상의 지고한 이름으로 살인청부를!
그때였다.
“으흐흐...... 역시 황부제일뇌(皇府第一雷)라더니...... 아주 계산이 빠르다, 너는!”
마치 갈가마귀가 터뜨리는 듯한 괴이한 울부짖음의 흉소가 숲 속으로부터 흘러 나오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백포로 감싼 복면인이 발 없는 유령처럼 미끄러져 나왔다.
스― 윽―!
이마.
그곳에는 한 가지 핏빛의 편월이 그려져 있었다.
사활림을 말하는 특이한 문양이다.
유생은 피를 문 채 안색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번― 쩍―!
백포복면인의 복면 사이로 보이는 두 눈에서 피를 말리는 독사의 눈빛이 흘러 나왔다.
“그 정도까지 계산하고 있었다면 오늘...... 네 목이 잘려질 것이라는 것도 계산했겠구나.”
“네놈들 따위의 천한 족속들이...... 감히 황부를 건드리다니...... 으으.......”
“황부? 크크...... 황금만 준다면 당금 황제의 목이라도 자를 수 있는 것이 우리다.”
무서운 말이다.
유생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하고 말았다.
마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본 것처럼.......
“이...... 이 무엄한 놈!”
백포복면인은 문득 오른손을 가볍게 허공으로 올리는가 싶자 팔을 무감동한 행동처럼 내렸다.
스― 읏!
“잘 가게, 똑똑한 친구!”
순간이다.
카아― 카캇!
슈슈슈...... 슈.......
주춤했던 이십여 명의 살수들이 가공할 기세로 백면유생을 덮쳐 갔다.
“이...... 노옴들―! 감히 어디에 칼을 들이대......!”
카캉― 캉!
태궁의 불벼락 같은 노갈은 도중에 끊어지고 말았다.
자신을 가로막은 이십여 명의 살수에 의해서.......
“이...... 이...... 비켜랏!”
다급한 외침과 함께 그는 신형을 날렸다.
허나 이십여 자루의 살검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백면유생의 목을 비집고 드는 칼은 이미 절체절명의 순간이고!
찰나다.
퍼퍼퍼퍽―! 퍽!
“크으...... 비켜랏!”
태궁은 다급한 외침과 함께 덮쳐드는 칼을 그대로 몸으로 맞으며 백면유생에게 날아갔다.
파파― 팟!
동시에 태궁은 백면유생을 옆구리에 안음과 함께 십여 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칼!
태궁은 거대한 자신의 몸에 족히 십여 군데의 깊은 검상을 입고 있었다.
“으...... 으.......”
비틀.......
태궁은 거대한 몸을 심하게 비틀거렸다.
“태궁...... 너...... 너는......!”
백면유생은 감동과도 같은 잔떨림의 음성을 흘렸다.
거대한 체구를 지닌 아주 우직한, 그리고 충렬의 피를 가진 사람이다, 태궁은.......
그는 어릴 적부터 백면유생과 같이 살아왔다.
비록 종복의 차이는 있으나 친형제처럼.......
“크크...... 소공, 괜찮...... 습니다, 저는.......”
그는 고통스러우나 이를 드러내 놓고 웃었다.
“소공은 죽지 않을 것입니다. 저놈들이 덤빈다면...... 내 몸으로 막을 것입니다.......”
그는 바보처럼 자꾸만 웃는다.
“괜찮은 놈이군. 하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 탓이다. 네가 죽는 것은!”
백포복면인은 영활한 독사의 음성을 내뱉으며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순간 도합 이십여 명의 살수는 두 사람의 전신을 짓쪼개어 들었다.
콰아...... 콰아...... 콰콰.......
엄청난 검광이 허공을 난도질했다.
순간 태궁은 당황하여 두 눈을 부릅떴다.
“이...... 이...... 모조리 덤비면...... 나는 진다. 네놈들은 사내도 아니다!”
그는 일순간 백면유생을 자신의 넓은 품안에 껴안으며 나뒹굴었다.
어찌 보면 바보 같은 인물이나 눈물겹도록 충직한 인물이다.
자신의 몸으로 주인을 지키다니.......
카아아아― 아―!
절체절명의 위기!
그 순간이었다.
“우후후.......”
“헤헤...... 조무래기 같은 놈들!”
허공 중에서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과 함께 익살스런 웃음이 같이 피어올랐다.
번― 쩍!
위― 이이잉!
찰나 한 자루 섬칫한 도끼와 시퍼런 검광이 허공을 무자비하게 베어들었다.
빠르다!
아니, 그것을 느끼는 순간 이미 이십여 개의 주인 없는 목은 허공 중으로 피를 뿌리며 솟구쳐 올랐다.
“와와와왁―!”
“커― 컥!”
촤촤촤― 촤―!
섬칫한 피보라를 뒤집어쓰며 백포복면인은 두 눈을 뒤집었다.
“헉! 이...... 이.......”
후두둑...... 투둑.......
퍼― 퍽! 떼구르르.......
얼마가 지나서야 이십여 구의 시체는 그대로 땅 위에 머리를 박으며 무너져 내렸다.
스슷!
스으으― 으―!
두 개의 인영이 흡사 흩어졌던 안개가 뭉쳐지듯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다음 순간이다.
면도날 같은 얄팍한 입술과 냉혹한 얼굴을 지닌 청년과, 오른손에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시퍼런 도끼를 꼬나쥔 황우(黃牛) 같은 청년.
그들은 주위를 쓰윽 돌아보며 아주 작은 소리로 뇌까렸다.
“왕야께서 너희들의 목을 원했다.”
“그분이 원하는 목은 반드시 잘려야 하지.”
부르르......!
백포복면인은 으스스 몸을 떨었다.
“으으...... 이런 빠름의 무공이...... 천하에 존재하다니...... 믿을 수...... 없다...... 나는.......”
순간이다.
힐끗.......
두 청년은 백포복면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너의 목도 원하셨다, 왕야께서는......!”
“안됐지만 그만 가 줘야겠다.”
꽤나 무감동한 음성에 백포복면인은 두려움과 함께 이를 갈았다.
“미친놈들! 감히 사활림을...... 건드리다니......!”
그는 불가사의한 빠름으로 허리춤에서 장도를 꺼냈다.
슈각―!
“크크...... 안 믿는군, 저놈은?”
냉혹한 조소와 함께 냉혹한 청년의 소름 끼치도록 시퍼런 칼은 그대로 백포복면인의 몸뚱이와 칼을 토막내 버렸다.
카아아― 아― 카아!
“카― 악!”
퍼― 억!
백포복면인은 허리가 동강난 채 바닥에 처박혀 있는데, 두 눈은 그때까지도 불신과 경악으로 부릅떠져 있었다.
자신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으...... 으.......”
백면유생과 태궁은 불식간 부르르 몸을 떨었다.
너무도 공포스러운 도륙이 아닌가.
순식간에 중원을 떨어 울린 사활림의 자객 이십여 명을 모조리 허리를 끊어 버리다니!
‘너...... 너무 잔인하다...... 으.......’
한 가닥 전율이 가슴 사이로 폭포수 같은 진땀을 만들어 놓았다.
“헤헤...... 그 자식, 계집애처럼 되게 이쁘게 생겼는데? 왕야보다는 좀 추남이지만.......”
문득 황우 같은 청년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며 백면유생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
“에헤헤...... 한당, 이리와 봐라. 이놈이 계집애라면 진짜...... 맛도 좋겠지?”
맛?
맛이라니?
“이...... 이 무례한 놈―!”
백면유생은 그만 얼굴이 시커멓게 변하고 말았다.
그는 고고한 황족인 것이다.
그런데 계집이라는 소리도 그렇거니와 맛(?)이라니!
쓰윽.......
냉혹한 얼굴의 청년은 시퍼런 장도에 묻은 핏물을 죽은 자의 옷에 닦으며 몸을 돌렸다.
한당과 우황!
두 청년은 바로 그들이었다.
“우황, 너는.......”
한당이 차갑게 말을 이으려는 순간이다.
“우황, 무례해서는 안 된다.”
아주 나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우황은 입꼬리를 일그러뜨렸다.
“칫, 계집들은 손목도 못 만지게 하면서 계집 같은 녀석과 빈말도 못합니까?”
“네놈에게 계집을 가깝게 해주면 천하에 계집은 씨가 말라 버릴 것이다.”
동시에 하나의 푸른 인영이 숲 속에서 미끄러지듯 떠올랐다.
스― 으―!
백면유생의 얼굴이 붉게 변해 버렸다.
‘이런 추잡한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다니...... 더럽고 천한 놈들이 틀림없다.’
그는 경멸의 시선으로 우황과 한당을 바라보다 아예 시선을 돌려버리고 말았다.
더러운 퇴물을 보듯.......
허나 다음 순간 그의 생각은 머릿속에서 씻은 듯이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아......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