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륙천자-8화 (9/31)

第 8 章 보이지 않는 大陸의 主人

휘리리리...... 릭.......

허무의 공간을 휘감고 흩어지는 낙엽은 누구의 고뇌인가?

지옥의 문을 돌아 차갑게 뼛속으로 스며드는 삭풍은.......

하늘은 베면 당장이라도 섬뜩한 핏물을 뚝뚝 흘려낼 듯 새파랗다.

이 늦은 가을의 하늘은.......

그리고 그의 눈은 그 모든 것을 담고 있었다.

“.......”

야트막한 구릉.

혁리혼은 이미 오랫동안 거기 앉아 있었다.

파르르.......

서찰을 움켜쥔 손을 떨면서.......

‘할아범.......’

혁리혼의 얼굴은 자꾸만 무릎 사이로 파고들었다.

‘나는 정말이지, 이 서찰을 보지 않으려 했지요. 서찰을 읽으면 고통스러웠던 것이 아닙니다. 할아범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던 거지요.’

그랬던가?

‘하지만 보지 않으려 하나 자꾸만 서찰은 나의 손에 쥐어집니다.’

혁리혼의 무릎 사이에 파묻힌 두 눈이 자꾸만 찰랑인다.

‘고독하기 때문이지요.......’

서찰.

그것은 갈극척이 마지막 숨을 거두며 가리켰던 관 속에 있었다.

서찰은 갈극척이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남긴 것이다.

그외에 관 속에는 두 가지 물건이 더 들어 있었다.

하나의 시리도록 하얀 옥적(玉笛)과 또 하나의 아름다운 팔찌.......

보지 않으려 하나 서찰은 혁리혼의 흐릿한 물기로 찰랑이는 시선 속으로 자꾸만 파고든다.

<소공야...... 어쩌면 이 늙은이는 죽음을 예견하고 이 글을 쓰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소공야께서 제일 알고 싶어하시는 것들일 것입니다.......>

서찰은 그렇게 시작된다.

갈극척의 고통과 슬픔이 서리서리 담긴 글로.......

<소공야의 부모님은 저 중원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하셨던 십대천세주 대군이십니다. 또한 어머님은 천왕...... 바로 환공의 장중보옥(掌中寶玉)이셨소. 대군께서는 십대천세주이기 이전에 천왕제군대척의 십천황야 중 마지막 십황야(十皇爺)이셨음을 밝힙니다.>

십황야―!

십천황야는 바로 천왕제군대척을 사실상 이루고 있는 열 개의 하늘이다.

<소공야! 대군과 화후께서는 결코 환공을 배반한 것이 아니었소. 대군께서는 화후를 너무도 사랑하셨고, 화후 역시 그러하셨었소. 허나 대군은 화후를 사랑했던 죄로 하나의 팔과 다리를 잃었소. 천왕제군대척의 율법에 의해서...... 율법은 잔인하오. 대군은 결국 거의 죽음의 상태로 망혼곡에 버려졌소. 그때 화후께서는 대군을 모시고 천왕제군대척을 몰래 떠났던 것이오. 사랑의 힘이지요. 그녀가 모든 것을 희생한 것은.......>

“......!”

<허나 그분들은 소공야를 낳은 후 천왕제군대척으로 돌아오려 했습니다. 아무리 밉다 하더라도 역시 환공의 손자일 테니까...... 환공은 용서해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말입니다. 허나...... 불운은 바로 소공야가 태어나던 날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대군의 애제자였던 갈무좌에 의해서......!>

갈무좌.

꽃뱀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무서운 야망의 칼을 가진 잔인한 사내.

대륙의 가장 위대한 마의 집권자 마황제일존.

<그는 대군 몰래 이미 십대천세의 중추세력인 구천세군을 손안에 넣었었고, 마침내 소공야께서 탄생한 그날...... 넘치는 기쁨에 방심하고 있던 대군 부부의 목에 무서운 배반과 야욕의 칼을 꽂았습니다. 그리고 대군 부부는 너무도 어이없이 목을 베였고...... 이 늙은이는 그분들의 주검과 핏덩이 소공야를 안고 필사의 도주를 했던...... 아아...... 그날은 바로 악몽의 밤이었소.......>

엄청난, 그리고 무서운 사실이 서찰 속에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혁리혼의 두 눈이 물기 속에서 야수처럼 빛났다.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을 발하는 이슬의 예기처럼.......

‘야욕의 칼...... 멋진 말이다! 허나 먼 훗날...... 갈무좌―!’

<소공야...... 이 무서운 일에 대해 반드시 응보가 있어야 합니다. 복수가...... 그 일은 바로 소공야가 하셔야 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관 속에는 시체가 있습니다. 그 시체의 밑을 뜯으면 두 가지 물건...... 하나의 옥적과 팔찌가 나올 것입니다. 그것은 대군과 화후님의 마지막 유물입니다. 허나 그 물건들이 무엇이며...... 어떤 이름을 지니고 있는지는 이 늙은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분들의 주검 속에서 찾아낸...... 그분들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라는 것밖에는...... 소공야...... 부디 십대천세의 영광을......!>

서찰은 거기에서 끝나고 있었다.

허나 갈극척은 한 가지 사실을 혁리혼에게 감추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마황제일존 갈무좌!

그가 바로 갈극척,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이 한 가지 사실이 훗날 혁리혼에게 만들어 줄 무서운 결과를......!

혁리혼은 차게 웃었다.

“큿...... 복수라? 할아범...... 누구를 위해 말이외까? 누구를.......”

억겁의 연화(年華)와도 같은 고통과 암울함이 그의 야수 같은 눈빛에 앙금처럼 내려앉았다.

그것은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영고(靈苦)와도 같은 아픔이었다.

“리혼은 부모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그들의 정조차 모르고 야수처럼 자라났소...... 헌데 느닷없이 그들의 복수라니...... 할아범은 나에게 덧없는 허공을 움켜쥐어 주려 하오......? 그것은 허무외다. 이율배반이고, 덧없는 것이기도 하오.”

스르르...... 르.......

허공을 맴돌다 떨어지는 낙엽이 그의 어깨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콰― 직!

혁리혼은 낙엽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하지만...... 해주리라, 복수를! 할아범, 당신의 정을 꿀처럼 먹으며 살아왔던 나...... 당신의 부탁이면 들어주리라!”

파란 하늘이 그의 눈 가득 부어져 내렸다.

파란 물감이라도 흘러내릴 듯 출렁이는 하늘.......

그것을 담고 있는 혁리혼의 눈빛도 끊임없이 흔들린다.

‘허나...... 그것은 세상을 야수처럼 혼자 살기로 한 이 리혼에게 한 가지 일의 뒷전에 있을 일이오.’

야수.

늘 고독하고 강함을 키우는 짐승.......

“할아범이 죽음을 강요받은 것도, 도주를 해 이곳까지 온 것...... 그리고 나의 부모라는 분들이 죽었던 것도, 모두 진정한 강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오.”

벌떡―!

혁리혼은 격하게 몸을 일으켰다.

“허나 나는 다르오. 진정한 강자가 될 것이오! 할아범에게 죽음을 강요했던, 그리고 나에게 저주를 주었던 나의 외할아버지인 그...... 천왕을 나의 발치 아래 초라하게 무릎 꺾게 하고!”

― 천왕을 초라하게 무릎 꺾게 하겠다!

그의 눈은 차디찬 짐승의 눈을 닮았다.

먹이를 노리는.......

그러나 그 속엔 인간의 가공할 혼(魂), 투혼(鬪魂)이 담겨 있음이 무섭다.

“그리고 이곳을 미련 없이 떠나겠소. 중원으로...... 대륙의 보이지 않는 위대한 주인, 대륙천자가 되기 위해서!”

무언가 모를 무서운 폭풍을 야기시키는 암시가 담긴 말이다.

난세(亂世)의 냄새가 담긴.......

“나는 나의 생을 걸고 시험하리라! 도박하리라! 이 대륙의 거대한 땅덩어리를 놓고...... 손안에 넣을 수 없으면 내가 죽을!”

꽈― 악!

혁리혼은 자신도 모르게 양 주먹을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

휘이이이이― 이이― 잉!

바람[風].......

‘그러기 위해서는 망혼곡의 잃어버린 혼을...... 나는 다시 찾아 거둘 것이다...... 반드시!’

휘리리릭!

혁리혼의 보기 좋게 늘어진 긴 흑발이 바람에 휘감겨 하늘로 솟아올랐다.

그의 시선이 구릉의 오른쪽으로 돌려졌다.

초옥의 굴뚝.

연기.

한 가닥 가물거리는 연기가 초옥의 굴뚝에서 피어올라 허공으로 무산된다.

대장간.

일년 내내 쉬는 날 없이 망치 소리가 흘러 나오는 곳이다.

‘반로(半老).......’

혁리혼은 대장간을 내려다보며 이상스런 눈빛을 흘렸다.

그는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큿...... 너무 차가운 늙은이다. 되지 못하게스리.......’

스― 윽!

혁리혼의 신형은 이미 바람처럼 구릉 아래로 내려서고 있었다.

헌데 그가 막 구릉에서 사라진 직후, 한 인물이 흡사 환상처럼 스스스...... 모습을 드러냈다.

분명 대낮인데도 그의 형상은 섬칫하리만치 흐릿했다.

유령처럼.......

“리혼...... 많이 컸구나. 아주 많이...... 허허허...... 하긴 벌써 저놈이 이곳에 들어온 지 칠년이 넘었으니까.......”

웃음은 공허하나 부드럽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 웃음 속에 깔린 진하디진한 아픔을.......

“허허...... 나 천왕을...... 이 할아비를 초라하게 무릎 꺾게 하겠다고......?”

천왕―!

“그렇다. 이 할아비뿐만 아니라...... 너는 하늘조차 네 앞에 무릎꿇게 해야 한다. 너는 이 보이지 않는 대륙의 주인 천왕의 하나뿐인 손자이니까!”

손자―?

그는 혁리혼을 망혼곡에 저주를 주며 버리지 않았는가?

“너는 이 할아비를 원망해도 훗날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암......!”

고독.

그것은 진정한 절대자가 되어 보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절대자 환공만의 고독이다.

“한당(寒黨), 우황(牛黃)......!”

문득 환공은 허공을 향해 그렇게 입을 열었다.

“예, 왕야(王爺)!”

보이지 않는 허공 중에서 한 줄기 짧은 대답이 흘러내렸다.

누군가 그 빈 허공에 있음인가?

환공은 혁리혼이 사라진 구릉 아래로 여전히 시선을 준 채 물었다.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허공 중에서 즉시 대답이 흘러내렸다.

“그는 교활하고 차가운 늑대의 근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광망하고!”

“히힛...... 계집년 궁둥이는 끝내 주게 후리겠는데요?”

한당과 우황!

얼음장처럼 차갑고 음색(陰色)한...... 각기 다른 두 마디 대답이 허공에서 진동했다.

환공의 흐릿한 인영은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감동한 음성.......

“장차 너희들의 주인이 될 것이다.”

* * *

땅땅...... 땅...... 땅.......

쇠를 두드리는 소리.

그 소리는 보잘것없는 토담으로 만들어진 초옥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대장간.

이곳은 망혼곡의 유일한 생명의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그 옆을 지나치노라면 늘 쇳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일을 한다는 것은 곧 살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쇳소리는 생동감의 소리다.

화르르― 르― 륵!

시퍼런 불꽃이 솟구쳐 오르는 화덕.

노인은 그 앞에 앉아 전신에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쇠를 담금질하고 있었다.

시퍼런 불꽃을 받아 노인의 얼굴은 귀광(鬼光)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죽음.

노인은 분명 일을 하고 있으나 늘 몸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그래서 일하는 것조차 기계적이다.

두 눈은 눈알이 후벼 파인 채 시꺼멓게 뚫려 있다.

그리고 두 팔 중 왼팔만.......

두 다리 중 오른쪽 다리는 쇠로 만들어진 독각.......

얼굴 또한 수십, 수백 개의 검흔(劍痕)으로 쪼개어져 있다.

흡사 나찰과도 같은 모습.......

사람들은 그를 반로라고 부른다.

신체의 모두가 반쪽만 있는 늙은이.

반로는 기계적으로 망치질을 하며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아예 야수가 되어 가는군. 걸음 소리마저...... 먹이를 노리는 야수의 걸음이다, 저 어린놈은!’

땅땅...... 따...... 앙.......

‘화사와 광유자의 몸 속에 있는 수천 가지 잡동사니를 모조리 훔쳐 배운 뒤...... 더욱 그러해진다!’

스으.......

하나의 인영이 먼지 하나 일으키지 않고 대장간 앞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흡사 살쾡이같이.......

혁리혼이었다.

씰룩.......

반로의 검흔투성이 얼굴이 소름 끼치도록 꿈틀거렸다.

“네놈은 내 눈 없음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냐?”

일체의 감정이라고는 모두 거세해 버린 음성.

만약 시체가 말을 한다면 그와 같은 소리일 것이다.

주춤.......

혁리혼은 몸을 세우며 반로를 노려보았다.

바로 반로의 쫑긋 서는 귀를.......

“방정맞은 놈의 귓구멍......!”

혁리혼은 슬그머니 대장간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반로의 망치질이 멈칫 멈추었다.

“들어오라고는 하지 않았다.”

“누군 들어오고 싶어서 들어왔나?”

“......?”

“반로가 날 유혹하니까 들어왔지.”

“유혹이라고?”

혁리혼은 능글맞게 흐늘거리며 웃었다.

“그래, 내가 이곳에 온 지 몇 년이 되었어도 반로는 나에게 한마디도 해본 적이 없잖아?”

땅...... 따...... 앙.......

반로는 다시 망치를 두드려댔다.

“네놈 따위와 말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이 바로 나의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유혹이지.”

“네놈이 싫다. 짐승의 냄새가 나서!”

반로는 차갑게 내뱉었다.

혁리혼은 더 차갑게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야. 반로의 몸에서는 죽은 짐승의 썩은 악취가 나!”

‘죽은 짐승......!’

부르르―!

망치를 막 들어올리던 반로의 손이 허공에서 심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그는 살기 어린 웃음을 흐드러지게 떠올린다.

“쿠쿠쿠...... 큿...... 죽어 있다고?”

“.......”

“그렇지, 어차피 노부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은 모두 환공의 미움을 사 율법에 따라 갇혀 있으니 모두 죽어 있는 것이지. 노부도!”

격동.

짧은 순간에 일으키는 그의 격동은 혁리혼이 이 망혼곡에 들어선 이래 처음으로 보는 그의 표정이랄 수 있는 것이다.

허나 너무도 짧은 순간에 그의 격동은 사라졌다.

허공.

반로는 그 쇠를 부어 만든 듯한 무표정한 얼굴로 허공을 향하고 있었다.

“네놈은 죽음보다도 더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그는 눈도 없으면서 허공의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가?

“그것은 절망이라는 것이다.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 있음을 못 느끼는...... 모든 희망이 죽어 버린 절망.......”

“그 절망은 반로가 자처한 것이 아닌가?”

“......!”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환공의 유일한 맞수였던 패검비마후(覇劍飛魔侯) 사림(邪林)...... 천왕의 존좌에 도전했다가 반초 차이로 패해 망혼곡에 유배된 늙은이!”

“......!”

“그 아픈 상처를 짓씹으며 그래서...... 오백 년 동안 고철 나부랭이나 두드리고 있는 건가? 한 자루 검도 못 만들면서, 두 눈마저 뽑아 버린 채!”

반로, 아니 패검비마후 사림!

그가 그랬었던가?

환공의 유일한 맞수로서 그런 과거비사가 있는 사람이었던가?

순간 반로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강기가 분노처럼 짓터져 나왔다.

우르르르― 릉―!

토담집을 그대로 날려 버릴 무서운 기세다.

“어...... 어떤 미친놈이 그러더냐?”

격동, 가장 아픈 곳을 찔렸음인가?

콰― 악!

“커억!”

그는 혁리혼의 숨통을 분질러 놓을 듯 목줄기를 움켜잡았다.

허나 혁리혼은 곧 죽어도 입술을 나풀거렸다.

“광유자, 유대가가 그러더군. 천왕에게 도전했다가 반초 차이로...... 컥...... 억울하게 패해서 천왕과 무언가 약속을 한 뒤...... 이곳 망혼곡에 갇혔다고! 약속이 무언지는 모르지만.......”

반로는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어 몸을 떨었다.

“끄응...... 죽일 놈! 광유자!”

그러다 문득 혁리혼의 목줄을 잡아 그대로 밖으로 내던졌다.

휙!

꽈다다다당― 퍼억!

혁리혼은 먼지를 뒤집어쓰며 나동그라졌다.

허나 혁리혼은 곧 궁둥이를 털며 일어나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큿...... 그렇듯 쓰잘데없는 죽어 버린 혼이라면 나에게 팔아. 내가 반로의 죽어 버린 혼을 아주 비싼 값으로 쳐주지!”

“미친놈!”

“나는 빈말은 해본 적이 없어.”

땅...... 따...... 앙.......

“크흐흐흣...... 경망된 놈! 나의 육백 평생을......? 네놈이......?”

육백 평생.

망혼곡, 아니 천왕제군대척의 두 명의 불가사의한 인물.

천문학적 숫자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인간 아닌 인간 두 명.

천왕과 또 한 사람 반로!

땅...... 땅...... 따...... 앙.......

반로는 어이없는 웃음을 메마른 입가에 떠올리고 있었다.

‘도대체가 광오하고 건방지기 이를 데 없는 놈...... 나의 혼을 산다고 함은 곧 천하를 산다는 말......!’

― 천하(天下)!

반로는 끝없이 웃었다.

“크흐흐...... 큿큿큿...... 큿.......”

“그 값은 천왕을 꺾어 주는 것으로 하지!”

순간 반로는 웃다가 심장이 하마터면 밖으로 튀어나올 뻔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왼손은 너무도 놀라 그만 자신의 발등을 찍어 버리고 말았다.

“천왕을...... 네가......?”

반로는 얼굴을 혁리혼에게 돌렸다.

그는 혁리혼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움푹 패인 그의 눈은 혁리혼과의 중간쯤에 있는 허공에서 맴돌고 있었다.

무섭도록 오감(五感)이 발달해 있는 그다.

허나 그는 이 순간 육백 평생에 없었던 엄청난 놀람과 충격 속에 잠시 혁리혼의 존재를 감각으로 못 느끼고 있는 것이다.

푸르르......!

반로의 난도질당한 얼굴 근육이 진동을 일으킨 것도 짧은 순간, 그는 미친 듯한 광소를 터뜨렸다.

“쿠하하하핫...... 핫.......”

웃음이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그의 쇠 같은 얼굴에서.......

혁리혼은 그런 반로를 바라보며 고귀하게 웃었다.

야수의 냄새가 나는 그의 몸에서 그렇듯 고귀함은 보는 여인으로 하여금 심장의 박동조차 멈추게 하는 충격을 주었다.

이상한 마력을 갖고 있는 소년이다.

“믿지 않는가 보군.”

순간 반로는 언제 입을 벌렸냐는 듯 광소를 그쳐 버렸다.

뚝!

“믿지!”

반로는 믿을 수 없게도 그렇게 말했다.

‘천룡(天龍)을 꺾을 수 있는 것은 그 피를 이어받은 천룡의 새끼뿐이다. 나는 저놈의 말을 최소한 칠 할은 믿는다. 그리고 저놈에 이르는 천기가 이미 발치 끝에 다가왔기 때문에 더욱...... 칠절성좌류의 천기가......!’

그는 모조리 알고 있었다.

인간으로서 읽어낼 수 없는 불가해한 칠절성좌류의 힘까지도.......

문득 반로는 예의 무감동한 음성을 흘려냈다.

“방안에 하나의 석탁이 있다. 그 왼쪽 함랍을 열면 물건이 있다. 갖고 나와라.”

“그럼.......”

“말이 많은 놈을 나는 제일 경멸한다. 그만큼 마음도 헤픈 놈일 테니까.”

반로는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화덕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아주 무심한 표정으로.......

불길은 화덕에서 타오르는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반로의 죽어 버린 잿빛 얼굴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마치 욕망의 불길처럼!

히죽......!

혁리혼은 어깨를 으쓱하며 환한 빛을 얼굴에 담았다.

화르르륵......!

화덕 속의 불길은 미쳐 있었다.

독사와도 같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이제 막 먹이를 발견하고 물어 버릴 듯한 기세로.

‘크크크...... 참으로 재미있는 일이다, 와룡수(臥龍首)!’

와룡수―!

바로 환공의 이름이 그것이다.

또한 반로에게 있어서 평생 잊지 못할 이름이기도 했다.

‘너는 죽을 것이다, 와룡수...... 네가 키운 자들...... 바로 삼후태작(三侯太爵)의 음모에 의해!’

삼후태작!

음모......!

‘나는 네놈과의 언약에 따라 저 어린놈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려 했다. 와룡수! 네놈이 죽은 뒤......! 그래야 나는 약속을 지키고 또 네놈에게 가문의 무궁한 영광을 이어 주지 않게 하지!’

언약!

결국 그는 환공에게 패해 자신의 모든 것을 환공의 후예에게 주기로 했었던가?

그것이 패자의 언약이었다.

허나.......

‘한 번의 패배를 빙자로 너는 나의 영혼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 빈 껍데기 육신마저 이 망혼곡에 가두었다. 오백 년 동안이나......!’

오백 년!

‘와룡수, 너는 잔인했다. 또 하나의 강자가 있음으로 해서 가문의 세력이 분리될까 우려해 나를 이곳에 생매장시켰다. 크흐흐.......’

메마른 입가에 독사의 웃음이 피어올랐다.

아주 차고 냉혹한 살무사의 웃음이.......

‘이제 생각이 달라졌다. 이제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저 어린놈에게 줄 것이다. 네가 나에게 강하도록 키워 달라던 저놈에게......!’

그랬던가?

‘너는 삼후태작에 의해 죽기 전에 가장 고통스럽게 네놈의 손자에게 죽을 것이다. 저놈은 네놈...... 와룡수에게 한을 갖고 있다, 나처럼!’

깡깡...... 까깡.......

‘와룡수, 너는 살아 나올 수 없는 깊은 늪에 빠져 지푸라기를 잡으려다가 어쩌면...... 시퍼런 칼끝을 잡았는지도 모르겠군.’

그의 망치 두드리는 소리는 점차 살기를 담아 가고 있었다.

‘큿큿...... 어차피 그렇지 않아도 나의 혼을 주어야 하는 운명이다. 저 어린놈에게 주는 방법과 시기가 좀 달랐을 뿐이지...... 크흐흣.......’

깡...... 까...... 앙.......

살기는 망치 소리에서 점차 사그라져 들었다.

‘늑대 같은 놈......!’

혁리혼이 발소리를 죽여 뒤쪽에서 다가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품속에 안고 있는 물건을 내려다보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제기랄...... 나는 또 무슨 대단한 물건이라도 되는 줄 알았지.’

물건.

혁리혼이 안고 있는 물건은 다름아닌 고철덩어리였다.

거무튀튀한.......

순간 반로의 소름 끼치도록 메마르고 섬뜩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모양을 보고 무엇이든지 평가하는 놈이냐? 네놈은......?”

찔끔.......

혁리혼의 입꼬리가 일그러졌다.

‘귀신이 다되었군. 남의 속까지 읽어 버리다니...... 징그러운 늙은이다.’

“육백 년을 살았으니까.”

“......!”

혁리혼은 그만 바보가 되고 말았다.

반로는 마치 혁리혼의 몸 속에 있는 듯이 내심으로 뇌까리는 소리를 모조리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귀신 같은 늙은이......!

혁리혼은 반로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는 볼멘 소리로 물었다.

“이젠 뭘 하지?”

“마광한옥빙괴(磨光寒玉氷塊)...... 그 속에는 노부의 혼...... 죽어 버린 혼이 담겨 있다. 육백 평생의......!”

마광한옥빙괴!

그것은 수만년 동안 삼라만상에 산재해 있는 온갖 마성을 먹고 일만년이 또다시 지나야 주먹만큼 커진다는 전설의 마괴!

헌데 그런 엄청난 광물질이 혁리혼의 품에 들려 있었다.

그것도 족히 사람 주먹의 오십 배는 되는!

혁리혼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어 버린 혼이...... 이 속에......? 이까짓 게 무슨 주머니라도 되는가? 담겨 있게?’

화르르르르―!

반로는 막 담금질하던 쇳조각을 또다시 불속에 디밀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타오르는 불길보다 더 광란하는 광기가 담겨 있었다.

그는 늘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는다.

오늘 이 순간뿐이다.

“두드려라! 오늘부터......! 하나의 검이 탄생할 때 너는 나의 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

“너는 어차피 나의 죽어 버린 혼을 얻고자 했다.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혁리혼은 의혹의 시선으로 마광한옥빙괴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이내 무궁한 머릿속의 의혹을 물으려 했다.

허나 그는 이내 입을 꼭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왜냐하면 반로는 이미 혁리혼에게 완전히 등을 보이고 돌아앉았으므로.......

혁리혼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 반로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에게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천왕에 의해 버려진 이곳 망혼곡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죽어 버린 모든 혼을 사 버릴 테다! 과거 내가 이곳에 들어온 칠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혁리혼은 오른손에 망치를 집어들었다.

‘훗날...... 천왕은 자신이 버린 쓰레기 같은 인간들의 혼에 의해서 무참하게 무너질 것이다. 한다! 반드시! 대륙천자가 되기 전에 나의 할 일이다!’

땅...... 따...... 앙.......

혁리혼의 손에 들린 망치가 내리쳐졌다.

마광한옥빙괴를 향해.......

하나의 매듭을 시작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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