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륙천자-7화 (8/31)

第 7 章 아그르르르......?

세월여류(歲月如流)라 했던가?

흐르는 세월.......

뉘라서 그것을 막으랴!

봄[春], 여름[夏], 가을[秋]은 앞을 다투어 옷을 입었다 벗고 바쁘게 대륙의 저편으로 도망쳐 갔다.

그렇게 몇 번인가?

참으로 긴 세월이 또 지나갔다 싶은데.......

하늘은 음울한 잿빛을 띠고 있었다.

<망혼곡(亡魂谷)>

이름 그대로 혼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그곳은 천왕제군대척의 제일 보잘것없고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림받은 사람들.......

천왕제군대척주 환공에게 미움을 받고 버려진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벌레처럼.......

* * *

약초(藥草) 밭.

망혼곡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이 약초밭은 제법 큼직했다.

그 주인은 한 미친 사람이다.

― 광유자(狂儒子)!

망혼곡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책(冊)과 약초에 그는 미쳤고, 허풍떠는 데 미친.......

또 있었다.

그는 무공이라는 무공에는 한 달을 굶어 가며 미쳐 버리는 인물이다.

하여튼 그는 자칭 천하에 자신이 모르는 것은 없다는 미친 유생(儒生)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유별나 눈도 사팔뜨기다.

하늘에는 수도 헤아릴 수 없는 약초가 심어져 있었다.

벌레도 기어다니고, 나무도 심어져 있었다.

“......!”

그는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였다.

머리를 동인 유생건은 몇 년은 빨지 않은 듯 꼬질한 때가 반질하게 묻어 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

그래도 얼굴은 제법 그럴듯한 중년의 모습인데.......

안타깝게도 한 쌍의 눈은 사팔뜨기다.

떼구르르.......

그는 초점이 헛갈려 있는 눈을 연신 굴리며 득의한 웃음을 흘렸다.

“낄낄...... 천지혼원심역법(天地混元心逆法)을 다 완성했다. 낄낄낄...... 이제 하늘의 힘과 땅의 힘만 각각 발바닥의 용천혈(湧泉穴)과 장심혈(掌心穴)에 모으면 된다. 손바닥의 장심혈에.......”

아연실색.

하늘과 땅의 힘이라니!

“낄낄낄...... 누가 뭐래도 이제 삼라만상(森羅萬象), 우주의 힘은 모조리 나 광유자의 것이다.”

광유자!

망혼곡 최고의 미친 인간.

“향후 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최고의 강한 자가 될 것이다.”

미쳐도 아예 단단히 미쳐 버린 상태다.

그는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채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득의한 웃음을 지었다.

평생 닦지도 않았을 듯싶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그는 물구나무를 선 채 약초밭을 둘러보았다.

“흐흐...... 그리고 저 많은 약초를 몽땅 먹어 버리면 내공 면에서도 최고의 강자가 된다!”

꿈[夢]......?

그는 아예 꿈속에 미쳐 있었다.

헌데 돌연 그는 약초밭을 둘러보다 어느 한곳에 시선이 가는 순간 얼굴이 시꺼메지고 말았다.

‘헉!’

그의 사팔뜨기 눈 속으로 약초밭 사이로 걸어오는 소년이 보인 것이다.

위에는 다 떨어지고 헐렁한 삼베옷에 반팔.

아래에는 무릎까지 오는 짧은 반바지를 입은 소년.

허리까지 길게 늘어진 흑발이 소년의 묘한 특징을 더한다.

대륙 십사오 세 가량 되었을까?

헌데...... 소년의 용모는 아름다웠다.

여인의 그것처럼.......

그리고 사내만이 지닐 수 있는 미묘한 매력까지 담고 있는 소년의 얼굴은 보는 이의 심혼조차 말려 버릴 듯하다.

입꼬리에 매달린 고집과 얄궂은 웃음만 빼면.......

‘저...... 저 죽일 놈이 또...... 왔다!’

광유자는 소년을 발견하는 순간 몸서리를 쳤다.

저벅...... 저벅.......

소년은 광유자의 앞에 이르러 눈망울을 또르르 굴렸다.

“뭐 해?”

“흐흥! 네놈이 알아 좋을 일 없다!”

광유자는 사팔뜨기 눈을 치켜 뜨며 이 갈리는 소리를 터뜨렸다.

소년은 호기심 어린 시선을 광유자에게 주며 연방 눈알을 굴렸다.

“그래도.......”

‘리혼...... 헤헹! 네놈에게 내가 가르쳐 줄 것 같으냐? 내가 한 달을 꼬박 새우며 만든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심법(心法)인데...... 어림도 없다!’

“.......”

‘도둑놈이다, 네놈은! 무엇이든 봤다 하면 훔쳐 배우니까!’

그랬던가?

헌데 리혼이라고 했는가?

그렇다.

이 소년은 혁리혼, 바로 그였다.

그는 이미 십오 세의 소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환공의 저주 속에서.......

혁리혼의 양볼이 불룩해졌다.

심통이 난 게다.

“몽땅 뽑아 버릴까?”

혁리혼은 약초밭을 돌아보며 조그만 소리로 중얼거렸다.

순간 광유자의 얼굴이 다급하게 변했다.

“이...... 이건 천지혼원심역법이라는 거다! 조금 전에 내가 창출한...... 그러니까 하늘과 땅.......”

얼마나 급했던지 광유자는 바람처럼 구결(口訣)까지 순식간에 몽땅 내뱉었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모으는 심법?

“설마......?”

혁리혼은 의심스레 광유자를 바라보다가 또다시 약초밭에 눈길을 돌렸다.

꾸울...... 꺽!

입 안에 한 움큼의 침까지 삼키면서.

‘여...... 여우 같은 놈! 의심은...... 꼬리가 아홉 개는 달린 여우놈! 하지만 이 여우 같은 놈은 한번 마음먹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저 약초들만은 안 된다! 절대로!’

광유자는 혁리혼이 행동을 옮기기 전, 뒤질세라 입술을 불이 나도록 여닫았다.

“정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하늘의 기운을 용천혈에 모으고 있는 것이다. 봐라―!”

그는 큰소리를 치며 목에 핏대를 세웠다.

“하늘과 땅의 모든 기운으로 부딪치는 것은 초토화된다! 그 모든 기운은 나의 손으로......!”

광오한 외침과 함께 광유자는 힘차게 오른손을 앞으로 밀었다.

팍―!

순간이다.

피식.......

그의 손에서 김빠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큿...... 풀[草]이 땅 위에서 화려하게 피는 것이...... 요즘은 초토화라는 건가?”

혁리혼은 코방귀를 뀌었다.

광유자는 그만 얼굴이 무색해져 시뻘겋게 변하고 말았다.

“내공이...... 약해서...... 그렇다! 정말이...... 다!”

하긴 처녀가 아기를 배는 데도 이유는 있으니까.

꿀― 꺽!

혁리혼은 약초밭을 바라보며 자꾸 침을 삼킨다.

“유대가(儒大哥), 배가 고픈데?”

“네놈 사정이지!”

광유자는 여전히 물구나무를 선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혁리혼은 광유자를 돌아보며 친근한 체 웃었다.

“나 저 약초...... 위에 있는 것 좀 뜯어먹으면 안 될까?”

“위...... 위의 것?”

“그래.”

광유자의 사팔뜨기 두 눈이 가운데로 몰렸다.

그것은 그가 심각하게 생각할 때마다 나타나는 습관 같은 것이다.

‘다행이다. 이 도둑놈이 웬일로...... 낄낄...... 역시 네놈은 어리다. 만년삼왕(萬年蔘王)의 뿌리를 뺀 잎사귀야 별볼일 없는데 못 줄 거야 없지!’

광유자는 다리를 흔들며 이상하게 웃었다.

거꾸로 섰으니까 어깨를 흔드는 대신.......

“흐흐...... 얼마든지 먹으려무나. 나는 언제나 인심이 후해서 말이야.”

“정말?”

“......!”

“먹어두 괜찮지?”

“그...... 그래.......”

광유자는 일순 찜찜한 대답을 했다.

왠지 혁리혼의 빛나는 눈이 켕긴 것이다.

순간 혁리혼은 화다닥 약초밭으로 뛰어들었다.

“배고파......!”

헌데 그는 만년삼왕을 지나 곧장 매괴천화과(梅怪天花果)를 향해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매괴천화과(梅怪天花果)!

이것은 흡사 복숭아같이 생겨 열매가 열리는데 꼬박 천년(千年)이 지나야 하는 것이다.

지금 매괴천화과는 완전히 익을 대로 익어 보기 좋도록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히힉.......”

혁리혼은 맛좋게 보이는 매괴천화과를 마구 따서 입 안에 쑤셔 넣었다.

광유자의 사팔뜨기 눈이 튀어나올 듯 불거졌다.

“헉! 그...... 그건...... 안 돼―! 이 도둑놈아!”

팟! 슈아아아앙―!

광유자는 지면을 박차며 뇌의 빠르기로 신형을 날렸다.

혁리혼은 입 안 가득 매괴천화과를 쑤셔 넣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위에 있는 것 먹으랬잖아?”

미치고 팔딱 뛸 말이다.

슈아아아앙―!

광유자는 엄청난 빠르기로 혁리혼의 옆을 스쳐 갔다.

“아...... 아니다! 위에 있는 것 말고.......”

가공할 신법이다.

허나 광유자는 신형을 멈추지 못했다.

그가 만든 무공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하늘과 땅 사이의 기운을 모으면 헛바람 빠지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신법이라고 만들어 놓으면 멈추는 방법은 못 만드는.......

“쩝......!”

혁리혼은 자꾸만 약초밭만 빙빙 돌며 서지 못하는 광유자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하긴...... 조금 쓰긴 하겠지만 그것도 괜찮겠지.”

혁리혼은 이내 나무에서 주르르 내려서며 만년삼왕이 가득한 약초밭으로 가 만년삼왕을 쑥쑥 뽑아 씹었다.

와직...... 쩝쩝.......

광유자는 그만 눈이 뒤집히고 말았다.

“으악―! 저...... 저.......”

슈아아아앙―!

그는 약초밭 주위를 돌며 신형을 멈추지 못한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이...... 이놈! 위에 있는 것을 먹어라!”

“쳇! 변덕은.......”

혁리혼은 다시 매괴천화과 쪽으로 달려간다.

그쪽이 위의 것인 것이다.

“히히...... 역시 이쪽 것이 빨갛고 맛좋게 생겼다.”

와직...... 와구.......

광유자는 피가 거꾸로 돌고 말았다.

“이...... 이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구미호(九尾狐) 같은 놈...... 아이고......!”

그러다 돌연 그는 눈빛을 빛냈다.

‘이...... 있다! 부딪칠 것이......!’

약초밭 왼쪽에 나 있는 조그만 토담집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바로 광유자, 그가 사는 초옥(草屋)이다.

허나 지금 그에게 그런 사실은 따지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꽝―!

“왑......!”

광유자는 초옥을 들이받아 폭삭 뭉개며 마침내 신형을 세웠다.

와수수수.......

광유자는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비틀거리며 뛰쳐나왔다.

“이 때려죽일 놈! 리혼! 멈추지...... 못.......”

허나 그는 약초밭으로 뛰쳐나온 순간 아래턱이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텅.......

만년삼왕이 모조리 뽑힌 약초밭은 아가리를 하늘로 벌린 채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매괴천화과는 어떻고?

그 보기 좋게 익어 있던 열매는 몽땅 사라져 버린 헐벗은 모습이다.

“리...... 리혼...... 이 개...... 같은 자...... 식이...... 아그르르르.......”

퍼― 억!

광유자는 게거품을 흘리며 땅을 베고 누워 버렸다.

울화가 치밀어 이내 혼절해 버린 것이다.

* * *

“맛있는데?”

혁리혼은 앞섶 가득 싸든 매괴천화과와 만년삼왕을 주섬주섬 입 안에 넣으며 걸음을 옮겼다.

배는 동산만해 가지고.......

“꺼― 억! 배부르다.......”

혁리혼은 이내 남은 것들을 바지와 웃옷 주머니에 꾸역꾸역 챙겨 넣은 뒤 손을 털었다.

“하여간 이상해...... 이것들은 먹기만 하면 온몸에 힘이 넘쳐 좋단 말이야?”

툭...... 툭!

혁리혼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럴 수밖에.......

만년삼왕(萬年蔘王)!

매괴천화과(梅怪天花果)!

이게 다 무언가?

그중 단 한쪽만 먹어도 엄청난 내력을 지닐 수 있는 천고보물(千古寶物)이 아닌가?

헌데 그것을 하나 둘도 아닌 약초밭에 있는 것을 모조리 먹어치웠으니 힘이 나는 정도가 아니겠지!

저벅.......

혁리혼은 지금 끝없이 펼쳐진 화원을 걷고 있었다.

사르르르.......

꽃잎이 공간 가득 날리며 싸아한 꽃향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좋다! 이곳엔 언제 와도 늘 기분이 좋아...... 그 냄새 나는 계집애와 마누라만 없으면 더 좋은데.......”

냄새 나는 계집?

그리고 마누라라니?

설마...... 제 마누라는 아닐 테고?

이제 혁리혼의 나이는 기껏해야 십오 세밖에 안 되었으니까.

* * *

운무(雲霧).

화원의 중앙에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운무가 출렁이고 있었다.

뭉클...... 뭉...... 클.......

기이한 일이다.

운무는 특이하게도 화원의 중앙에만 몰려 있는 것이다.

터...... 벅.......

“......?”

혁리혼은 자욱한 운무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눈꼬리를 치켜 올렸다.

“또 바뀌었네?”

혁리혼은 얼굴이 뚱뚱 부어 올랐다.

그는 찬찬히 화원의 요모조모를 뜯어보았다.

“전번에는 화령사사파황진(花靈邪邪破皇陣)이더니......? 아예 나를 못 들어가게 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으쓱.......

혁리혼은 조그만 어깨를 들썩였다.

그는 냉소를 쳤다.

“큿...... 하지만 될까 몰라? 내가 들어가겠다면 들어가는 거지! 어떤 진식(陳式)이든 만들어 놓기만 해봐라. 몽땅 바수어 버릴 테니까.”

스― 윽!

혁리혼은 자욱한 운무 속으로 걸음을 디밀었다.

* * *

초옥.

비록 마른풀을 엮어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집이나 겉모습은 정갈하기 이를 데 없었다.

허나 초옥의 안은 달랐다.

우글...... 우글.......

비릿한 역겨움을 뿜어내며 우글거리는 그것들은 모두 소름 끼치는 독충(毒蟲)들이 아닌가?

독전갈(毒全 ), 독와(獨蛙), 독사(毒蛇)...... 그리고 온갖 독을 지닌 동물에 이르기까지.......

초옥 안은 흡사 독충들의 세계와 같았다.

방안의 오른쪽 구석.

그곳에는 하나의 침상이 놓여 있었고, 그 침상 위에는 한 여인이 죽은 듯이 미동조차 않고 누워 있었다.

대략 십칠팔 세 가량 되었을까?

헌데 여인은 완전히 나신의 모습이 아닌가?

이 독충만이 우글거리는 곳에서......?

그녀는 죽으려고 환장이라도 했단 말인가?

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나신을 뒤덮고 발라져 있는 것은 섬칫하리만치 푸른빛을 띠고 있는 독즙[毒液]이 아닌가?

농염하게 솟아오른 젖무덤과 미끄럽게 빠진 아랫배.......

급격히 꺼지는 궁륭(穹 )에 이은 펑퍼짐한 둔부.......

그리고 한점의 빛조차 받아 보지 않은 듯한 시리도록 새하얀 허벅지와 여인의 은밀한 비소(秘所)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독이 발라져 있는 것이다.

허나 그녀의 이 기괴한 행동과는 달리 용모를 보라!

하늘 아래 모든 아름다움을 모아 지니고 있는가?

마치 한 송이 얼음꽃[氷花]처럼...... 흡사 요정처럼.......

여인은 아름다웠다.

만약 어떤 사람이 그녀의 용모를 그 천한 주둥이로 표현한다면 당장이라도 욕을 삼태기로 퍼부어 줄 만치.......

그것은 아예 모욕일 테니까.

“......!”

눈을 감고 있던 여인은 문득 스르르...... 눈을 떴다.

그 순간 또다시 추가되는 아름다움이여!

여인의 눈빛은 암천에 떠 있는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유성을 닮았다.

그녀는 그런 눈으로 침상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까딱...... 까딱.......

한 조그만 소녀가 졸음에 겨운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었다.

대략 십여 세......?

구석에서 번들거리는 구렁이만큼이나 징그럽도록 못생기고, 하늘 아래 존재하는 모든 추악함이 다 소녀의 얼굴에 붙어 있었다.

여인과 소녀.

이런 경우를 보고 극과 극이라고 하던가?

여인은 이내 방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놈! 천광검혼마괴진(天光劍魂魔怪陣)마저 뚫고 들어섰다. 나의 모든 심혈을 쥐어짜 만든 가공할 절진인데.......’

천광검혼진!

‘최소한 하늘조차 가둘 수 있는 진이다. 허나 놈의 발자국 소리가 이미 파해(破解)할 수 있는 진로에 정확히 들어맞고 있다!’

놀라운 말이 아닌가?

최소한 하늘조차 가둘 수 있다니.......

‘나는 이미 수천 종의 가공할 절진을 만들어 놈이 이곳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었다. 허나...... 그때마다 번번이 저놈에게 파괴되고 만다. 무섭다......! 저놈의 두뇌력이.......’

여인, 그녀는 화사(花邪)라고 불리는 여인이다.

그녀에게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진법에 관한 한 무섭도록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이 있었고, 독(毒)에 있어 공포스러울 만치 가공할 독신(毒神)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 방면에 있어서는 천왕제군대척주인 천왕, 환공조차 인정할 만치!

헌데 그런 그녀가 지금 한 소년에게 무궁한 두려움을 품고 있는 것이다.

다름아닌 진의 능력에 관해서.......

파르르......!

여인 화사는 떨리는 눈꺼풀을 감아 버렸다.

그때였다.

덜― 컥!

방문이 무례하게 젖혀지며 한 소년이 들어섰다.

혁리혼이었다.

순간 혁리혼을 향해 한 마리 거대한 곰이 달려들었다.

칵!

전신이 푸른 독기를 발하는.......

흑천마웅(黑天魔熊)!

바로 천산(天山)의 독지에서 자라는 독웅(毒熊), 독곰이다.

한번 스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순식간에 독수로 만들어 버리는.......

혁리혼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져 올라갔다.

“얼씨구? 이게 누굴 겁줘?”

쓰― 윽!

혁리혼은 오히려 달려드는 독곰을 향해 주먹을 들어올렸다.

화다다닥!

찰나 거구의 독곰은 들어온 사람이 혁리혼임을 확인하자 기겁을 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거대한 덩치답지 않게 머리까지 자라처럼 움푹 집어넣었다.

“잘 빠졌다. 덩치하고는...... 벼엉신!”

콱―!

“끄윽.......”

혁리혼은 독곰의 불룩한 배를 발길로 걷어찼다.

독곰은 조금 전의 기세와는 달리 고양이 앞의 쥐처럼 변하고 말았다.

“네깟 놈 정도의 독으로 나를 어떻게 하려고?”

부릅......!

혁리혼은 눈을 부라리며 잡아먹을 듯 독곰을 올려다보았다.

“가서 발바닥이나 핥아라...... 꼭 머저리 촌닭 같애 가지구!”

끄― 응―!

독곰은 혁리혼의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비실비실 한쪽 귀퉁이로 쪼그리고 물러앉았다.

혁리혼은 침상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눈빛을 빛냈다.

“어? 화사, 요즘 제법 몸에 살이 오르는데? 방뎅이도 커졌고.......”

십오 세 소년치고는 주둥이가 개주발이다.

화사는 눈을 떴다.

그녀의 눈 속에는 요악한 빛이 담겨 있었다.

‘짐승 같은 놈......! 저놈의 눈빛은 꼭 늑대를 닮았다.’

그녀는 악독하게 입을 열었다.

“방해하지 마라.”

“독공을 연마하고 있군.”

으쓱.......

혁리혼은 습관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천년독갈즙(千年毒 汁)을 모조리 몸 속으로 흡수해서 체내에 융화시키면 누구도 이르지 못했다는 독황(毒皇)이 되지.”

천년독갈즙.

그것은 독중지황(毒中之皇)이라는 가공할 독즙이 아닌가?

하면 화사가 몸에 바르고 있는 것은 바로 천년독갈즙이란 말인가?

쓰― 윽!

혁리혼은 오른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나신을 만지기 위함이다.

순간이다.

“만지지 마라! 만지면 네놈은 아무리 독을 잘 안다지만 죽는다! 혈수(血水)로 녹아내리면서!”

“큿!”

혁리혼은 일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의 손은 그대로 화사의 아랫배, 까칠한 음모가 나 있는 비지를 움켜쥐었다.

콱―!

“헉―!”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수천 가지 죽음의 사진(死陣)을 만들 만큼 사악하다. 허나 너는 사악하지 못해......!”

화사는 비지에 와 닿는 거친 손길에 몸을 잘게 떨었다.

“네가 진정 사악했더라면...... 내가 네 몸을 만지고 죽도록 내버려두었을 것이다. 큿...... 너는 조금 더 사악해질 필요가 있다.”

불신과 경악의 빛은 화사의 진저리치는 전율 속에 담겨 있었다.

‘믿을 수 없어.......’

스윽―!

혁리혼의 손이 이번에는 화사의 농염한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흐윽―!’

그녀는 수치심에 잘게 화편 같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얼굴을 새파랗게 굳혔다.

“네놈이 환공의 손자가 아니었다면 벌써 죽여 버렸을 것이다!”

“큿...... 너는 나를 죽일 수가 없다. 최소한 광유자의 몇 초 마절기예(魔絶技藝)만 빌려도 너를 막을 수는 있지.”

“너...... 네가!”

화사는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뜨고 말았다.

혁리혼은 그녀의 그런 표정에 아랑곳없이 말을 이었다.

“매일 악독해지는 연습을 해라! 어쩌면...... 너는 나를 위해 일을 해야 될지도 모르니까.”

“너...... 너...... 본녀의 모든 것만 훔쳐 배운 것이 아니라 광유자의 모든 것까지...... 훔쳐 배웠구나!”

그녀는 이빨 저린 외침을 자신도 모르게 터뜨렸다.

혁리혼은 화사의 몸에서 손을 떼며 피식 웃었다.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

“단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광유자가 멈출 수 없는 신법을 만들었는데 내가 그것을 배워 멈추는 방법을 광유자에게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지.”

화사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혁리혼의 말은 너무도 놀라운 말이 아닌가?

‘그...... 그럼...... 이놈은 광유자가 창출한 가공할 무공...... 하지만 미완성인 그것들을 모조리 완벽한 무공으로 바꾸었다는 말인가......!’

“......!”

‘그리고 그것을 오히려 훔쳐 배운 주제에 주인에게 되돌려 가르쳐 줘? 아무리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말도 있지만...... 그럴 수가......!’

너무도 무서운 두뇌력인 것이다.

혁리혼은 돌아섰다.

‘도둑놈!’

화사는 혁리혼의 등뒤에다가 악독한 눈빛을 쏘았다.

‘허나 너무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다. 저놈이 이 망혼곡에 들어온 지 몇 해에 지나지 않는데...... 우리가 몸 속에 지니고 있는 것은 모조리 자신의 몸 속으로 옮겨놓다니! 그것도 훔쳐서.......’

설레...... 설레.......

그녀는 누운 채 고개를 내저었다.

‘저놈에 대한 불가사의는 한두 가지뿐이 아니다. 저 늑대 같은 놈에게는!’

스르르.......

그녀는 아예 두 눈을 감아 버렸다.

끄덕...... 끄덕.......

추악하게 생긴 소녀는 주위에서 천둥이 몰아쳐도 깨어나지 않을 듯싶었다.

소녀는 연방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며 졸고 있었다.

갸웃.......

혁리혼은 추악한 소녀를 바라보며 의심스레 입을 열었다.

“화사, 추명(醜銘)이 크면 예뻐질까?”

추명!

추악한 소녀의 이름이다.

바로 환공이 혁리혼에게 저주를 안겨주기 위해 장차 부인으로 내정한 소녀.......

인간이 지닐 수 없는 추악함까지 모두 지니고 태어난 소녀.

때문에 사람들은 그녀를 가리켜 저주를 받고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화사는 눈을 감은 채 악독하게 웃었다.

“호호홋...... 크면 네놈과 어울리는 한 쌍일 것이다.”

그녀의 독설에 혁리혼은 딴소리를 해댄다.

“그래......?”

혁리혼은 그러면서도 내심 혀를 찼다.

‘쯧...... 진짜 못생겼는데? 매일매일 좋게 보려고 그래도...... 큰일인데?’

콕!

혁리혼은 밉도록 추악한 추명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뻐지지 않으면 어쩌지?”

추명은 혁리혼이 쥐어박는 바람에 그만 잠에서 깨어나고 말았다.

추명은 혁리혼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헌데 아주 믿지 못할 일은, 추명의 두 눈이다.

눈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최소한 아름다운 눈을 지닌 화사의 눈보다는 백배만큼이나.......

혁리혼은 자신을 말똥히 올려다보고 있는 추명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추명, 만약 이뻐지지 않으면 나는 너를 이뻐하지 않을 거야!”

“.......”

추명은 졸린 눈을 크게 뜨며 일시 쭈삣쭈삣하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이뻐질 거야.......”

씨익.......

혁리혼은 득의한 웃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는 화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화사, 나 한 가지 갖고 싶은 것이 있는데?”

화사는 눈을 뜨지도 않고 입도 열지 않았다.

혁리혼은 방안 가득 널려 있는 징그러운 독물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혈오(血烏)를 다오.”

“네놈이 언제 허락받고 가져간 것이 있느냐?”

혁리혼은 어깨를 치켜 올리며 히죽 웃었다.

이어 한쪽 보이지 않는 구석을 향해 눈꼬리를 찢어 올렸다.

“혈오! 이리 나오지 않겠니?”

순간이다.

끄으.......

한 마리 까마귀가 다 죽어가는 모습으로 비실거리며 걸어 나왔다.

까마귀는 까마귀인데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털빛은 섬뜩한 핏빛이다.

혈황오(血皇烏)!

북해의 빙산 중에서도 가장 극한지기 속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져 있는 독오.

또한 그것은 몸 전체가 도검수화(刀劍水火) 불침의 특이한 체질을 지니고 있었다.

혈황오는 평범한 동물에 비해 높은 지혜를 지니고 있다.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말조차 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닌 것이다.

혁리혼은 비실거리며 걸어 나오는 혈오를 향해 주먹을 들어올렸다.

“이게 몇 번 쥐어박았더니 아예 슬금슬금 숨어 다녀? 한 방 그냥!”

끽......!

혈오는 급히 겁나는 모습으로 머리를 깃털 속에 처박았다.

“너는 이제 내 거야! 알았어?”

끄― 으―!

혈오는 쥐어박힐세라 잽싸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 았...... 다...... 주인이다.......”

혁리혼은 만족한 웃음을 입가에 떠올리며 방을 나섰다.

“화사, 이제 간다.”

푸드드드.......

혈오가 그의 뒤를 따라 날아올랐다.

혁리혼이 방 밖으로 나가 버린 순간이다.

벌떡!

화사는 침상 위에서 몸을 일으키며 얼굴이 새파래졌다.

화사는 방안 가득 모여 있는 독짐승과 영물을 향해 이를 갈아붙이며 교갈을 터뜨렸다.

“앞으로 저놈이 또 이 방으로 들어오면 무조건 뜯어먹어라! 거역하면 네놈들을 내가 뜯어먹고 말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