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6 章 잔인한 祖孫의 만남
무림에서 듣도 보도 못한 공포의 괴절초(怪絶招).
전율할 백색의 공포를 만들어 내고 있는 백의복면인들.
이미 지옥의 문은 닫혀 있었다.
마교의 수많은 고수들은 몸뚱이가 으스러져 육괴(肉塊)가 된 채 일도양단이 되어 모조리 지옥으로 달려가고 말았다.
독목나찰마자.
그는 사지가 잘려진 채 머리통이 부서져 골수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
마교의 고수들은 무섭도록 강했다.
허나 백의복면인들은 더 강했다.
정적.
욕실 안은 한순간 시체가 산처럼 쌓인 채 미칠 듯한 정적과 고요가 내려앉았다.
그리고 늘어선 복면인들 중 중앙의 금의복면인.
그의 입에서 시체들 위로 흘러내리는 무감동한 음성이 스며 나왔다.
“소공야의 옥체에 칼을 들이댄 죄로 너희들은 죽었다.”
소공야!
한순간 금의복면인은 자신의 복면을 벗었다.
쓰윽......!
그리고 드러나는 얼굴.
서릿발이 차갑게 깔린 중후한 기품을 지닌 중년유생.
이 얼굴을 아는가?
환공, 그 아래 구천황야의 일인!
일순 중년유생을 중심으로 백의복면인들은 모조리 복면을 벗어내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았다.
“구천황야 중 구야(九爺) 제갈현후(諸葛玄候), 지엄하신 대륙천자 소공야를 뵈오이다.”
“소공야!”
장엄하기 이를 데 없는 경앙의 외침은 어둠을 깨치며 공간을 뒤흔들었다.
“모...... 모든 것은 끝났다! 이...... 오랜...... 방황과 도피는......!”
스르르...... 터억!
갈극척의 구부정한 꼽추의 몸은 가슴을 들끓게 하는 엄청난 감동에 그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칠년...... 그 오랜 고통이 무너지는 소리다.
* * *
거대한 대륙 중원.
어느 날 그곳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 천향화루의 괴멸!
수천 명의 기녀와 천향화루의 식솔들의 떼죽음.
악양은 온통 그들의 시체 썩는 냄새와 혈향(血香)으로 진동을 일으켰다.
너무나 참혹한 상황.
허나 무림이라는 세계에 있어 이와 같은 혈겁은 그리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거대한 세력의 흥망이 하루아침에 바뀌는 곳이니까.
허나 천향화루 수천여 식솔의 떼죽음 속에 마교의 초극강고수 일천(一千)이 목 없는 시체로 발견된 것은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 마(魔)― 교(敎)―!
뉘라서 대저 그들에게 공공연한 도전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마교 최극강의 고수 일천을 모조리 혼돈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무공이 대륙 위에 존재한단 말인가?
그것도 하룻밤 사이에.......
도대체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불가능한 가공의 괴사가 일어난 것이다.
중원은 숨을 죽이고 말았다.
― 수천년 무림사를 통해 최강의 세력으로 평가되는 만마(萬魔)의 대성전(大聖殿), 마교!
이 가공할 집단에서는 무슨 보복을 준비하고 있을까?
사람들의 살갗을 파고 전율이 스며들었다.
* * *
<천단마애(天斷魔涯)>
사천성(四川省) 벽산(碧山)의 중앙에 위치해 희뿌연 안개 속에 흡사 하늘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기둥처럼 솟아 있는 마(魔)의 절벽.
천단마애의 정상에 오르노라면 사면은 모두 그 끝도 내려다보이지 않는 벼랑으로 이루어진 채 가히 거대한 중원대륙을 한눈에 굽어본다.
허나 당금에 이르러 천단마애가 유명한 것은 바로 그 아래 벽산을 꽉 채워 놓듯 자리하고 있는 웅장한 성루 때문이다.
― 마교!
영원한 마의 성전.
마교는 바로 그 천단마애를 등지고 천험의 요새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밤.
어둠과 차가운 월광이 잘게 부서져 내리는 밤이다.
겨울의 차가운 삭풍은 매섭다.
특히 천단마애의 정상에서 맞는 삭풍은 전신의 피조차 얼음 조각으로 얼려 부서지게 하는 무서운 기세다.
휘리리리릭― 휘잉!
달과 별과 어둠.......
그 모든 것을 조용히 포용하고 있는 공활(空豁)한 암천.
그 깊이를 모르도록 검은 하늘은 늘 사람들에게 끝없는 동경과 경외심을 불어넣어 준다.
사내.
그는 이미 오랫동안 천단마애의 정상에 선 채 그 끝없는 어둠......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일신에는 백설보다도 흰, 그래서 차라리 푸른빛이 감도는 듯한 백의를 입고 있는 그.
이마에는 한 마리 용이 정교하게 수놓아져 있는 용건(龍巾)을 두르고 있다.
대략 이십칠팔 세의 청년.
헌데.......
월광의 차가운 빛을 받아 드러나 보이는 그의 얼굴.
아름답다.
흡사 월하미인(月下美人)을 보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나는 사내의 용모는 너무도 여인처럼 아름다워 요기롭기까지 했다.
섬세한 콧날과 아름다운 눈.......
매혹적인 입술.......
그 입가에 흐르는 화려한 웃음기.......
그것은 그야말로 살인적인 요기로움의 극치미(極致美)였다.
도대체 사내의 모습이 이렇듯 아름답고 요기로울 수도 있는 것인가?
사내의 오른쪽 어깨 위.
어둠 속에서 화려한 빛을 발하는 금빛의 독수리[金鷹]가 칼끝 같은 안광을 흘려내며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사내의 발치 아래, 한 인물이 깊숙이 부복을 하고 있었다.
일신에는 폐포를 걸쳤고, 머리를 풀어헤친 봉두난발의 중년인.
허나 그의 한 쌍의 눈은 신비롭도록 맑고 현기(玄氣)로웠다.
어둠의 고요한 정적.......
문득 그 정적을 깨치며 아름다운 백의사내가 화려한 입술을 떼었다.
“그들이.......”
“......!”
“본좌는 다만 추측했을 뿐인데...... 그 추측이 현실로 나타나다니!”
아름다운 사내는 어둠을 향해 알 수 없는 뇌까림을 흘렸다.
순간 봉두난발의 중년인이 머리를 사내의 발치 아래 박았다.
콱―!
“존주(尊主)의 추측은 한치도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
“그로 보아 나머지 세 개의 세력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하늘의 힘을 제외하고 바다와 대륙의 끝...... 바람이 시작되는 곳과 뇌(雷)와 비[雨]가 시작되는 곳에!”
하늘[天].......
바다[海].......
대륙(大陸)의 끝, 바람[風]이 시작되는 곳.......
뇌(雷)와 비[雨]가 시작되는 곳.......
네 개의 세력.
아름다운 사내는 습관처럼 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고 다닌다.
지금처럼.......
“막연한 생각이었다. 대군 혁파후, 그가 하늘의 세력과 한 가닥 끈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
“그의 죽음 직전에 이르러 최후의 마지막 초식이 바로 오천 년 전 난세의 주역들 중 일인의 것임을 본좌 갈무좌는 알았기 때문에 그런 추측을 했던 것이지.”
오천 년 난세의 주역!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헌데...... 지금 이 아름다운 사내는 자신을 가리켜 갈무좌라고 칭했는가?
마황제일존(魔皇第一尊) 갈무좌(葛武座)―!
마도역사가 시작된 이래 최강의 인물로 평가되는 위대한 마황!
이 아름다운 사내가 바로 그란 말인가?
놀라운 일이다.
“때문에 본좌는 그 추측을 확신하기 위하여 대군의 후예에게 죽음의 너울을 씌워 도주케 하고 추적한 것이지. 칠년 동안.......”
“......!”
“정녕 그 하늘의 힘과 대군이 관계한다면 필시 자신의 후예를 그곳으로 보낼 것이므로 본좌는 끈기를 갖고 지켜보아 왔었다. 헌데.......”
마황제일존 갈무좌는 천천히 손으로 자신의 어깨에 앉아 있는 금응의 날카로운 부리를 쓰다듬었다.
여인일지라도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옥수(玉手)......!
그에게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마치 조물주의 영원한 걸작처럼.......
“오천 년 난세의 주역 사황검류대척(邪皇檢流大 )이 전설 속에서 살아 꿈틀거리고 있었다니!”
― 오천 년 난세의 주역 사황검류대척!
하늘[天].......
바다[海].......
대륙의 끝, 바람이 시작되는 곳.......
뇌와 비가 시작되는 곳.......
네 개의 힘! 네 개의 전설! 사황검류대척!
“후훗.......”
마황제일존 갈무좌는 어둠을 향해 웃었다.
너무도 요기로운 극치의 아름다움을 보이는 미소.
“오천 년 전 난세의 주역 사황검류대척과, 또다시 당금에 이르러 난세의 신화를 창조하려는 네 개의 마성(魔星)...... 그들 모두를 일컬어 팔황대마성좌(八皇大魔星座)......!”
팔황대마성좌(八皇大魔星座)!
어둠[暗].......
하늘[天].......
그리고 여덟 개의 별[星].......
갈무좌는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그 여덟 개의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후훗...... 하늘은 오직 하나의 주인을 택할 것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불변했던 것처럼...... 저 여덟 개의 팔황대마성좌 중에서 주인을 택할 것이다!”
봄바람처럼 여인의 방심을 뒤흔드는 음성.......
허나 그 속에는 무서운 야망의 칼끝이 번들거린다.
문득 그의 부드러운 웃음을 비집고 쇠를 박박 긁는 듯한 괴소가 부복해 있는 폐포의 중년인에게서 흘러 나왔다.
“큭큭큭...... 큭...... 마존이시여! 흥미있지 않습니까?”
“.......”
“오천 년 난세의 주역 사황검류대척과 당세의 난세를 창조하려는 네 명의 주역...... 그들의 시공을 초월한 대격돌!”
이 무슨 가공한 말인가?
“큭큭...... 허나 그 누구도 꿈에서조차 상상치 못할 것입니다. 이 엄청난 대역사 오천 년 시공(時空)을 초월한 또 하나의 난세지난세(亂世之亂世)를 만들어 내고 있는 진정한 주역을......!”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이 깊숙이 품고 있는 의미는.......
폐포중년인의 깊숙이 침몰해 있는 현기로운 시선은 갈무좌를 바라보고 있었다.
“십년(十年)...... 그 세월은 반드시 그 대역사를 마무리지어 줄 것입니다. 마존의 힘에 의해서!”
“.......”
“그리고 마존의 계책에 의해 그들 난세의 주역들은 하나하나 올가미에 목이 걸리게 될 것입니다. 낚시 끝에 매달린 고기처럼!”
무언가 무궁한 음모의 냄새가 물씬 피어오르는 말이다.
십년!
폐포중년인은 그 말을 음미하는 듯 이빨을 드러내 놓고 웃었다.
음악하게.......
마황제일존 갈무좌도 웃었다.
그의 웃음은 심혼조차 휘감아 버릴 듯한 요기로운 웃음이다.
“그럼 십일 년(十一年) 후에는 어떻게 되느냐, 혈뇌마겁(血腦魔劫)?”
혈뇌마겁!
그렇다면 십대천세를 대군과 함께 이루고 있던 구천세군(九天勢君) 중 일인 혈뇌마겁 단소현(丹素玄)이라는 말인가?
구천세군 중 가장 약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나 무서운 모사(謀士)로 알려진 그!
중원은 말했었다.
과거.......
― 구천세군 중 혈뇌마겁 단소현이 가장 약하나 어쩌면 그의 모사는 나머지 팔천세군의 합한 힘보다 강할지도 모른다!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
최소한 십대천세가 과거 무림에 독보적인 힘과 영화를 누린 것은 혈뇌마겁 단소현의 힘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테니까.
그는 무서운 강자다.
두뇌의 힘에 있어서는.......
헌데 그가 지금 마황제일존 갈무좌 앞에 고양이처럼 구부리고 있는 것이다.
십대천세의 허리를 꺾었을 때, 마황제일존 갈무좌는 제일 먼저 구천세군을 힘으로 손안에 넣었던 것이다.
혈뇌마겁 단소현은 의혹 어린 시선으로 갈무좌를 올려다보았다.
“예? 무슨......?”
“훗.......”
갈무좌는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다.
그는 사람을 죽일 때에도 그런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문득 갈무좌는 암천을 향해 입을 떼었다.
“패검노옹(覇劍老翁), 십왕마존(十王魔尊), 벽천마도군(碧天魔刀君)...... 그대들은 구천세군 중 서열 육(六), 칠(七), 팔(八) 위를 점하고 있는 참으로 강한 사람들이다!”
“......!”
“헌데 만약...... 그대들이 합공으로 혈뇌를 공격한다면 어찌될까?”
미묘한 의미가 함축된 말이다.
그는 무슨 의미에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묻는 것인가?
“......!”
혈뇌마겁 단소현의 입꼬리가 까닭 모를 잔경련을 터뜨렸다.
허나 그의 얼굴은 어둠 속에서 바닥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갈무좌가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어둠...... 그 칙칙한 공간 속에서 사람은 보이지 않는데 뼈를 부수는 듯한 전율의 마음(魔音)이 흘러 나왔다.
“마존이시여―! 그는 구천세군 중 마지막 서열의 인물...... 속하들의 합공이라면 능히 십초(十招) 이내 그의 목은 끊어질 것입니다!”
“.......”
“분명한 사실입니다!”
갈무좌는 이를 드러내 놓고 하얗게 웃었다.
“후후...... 그런가?”
애매모호한 말이다.
빙글.......
갈무좌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대들은 혈뇌를 모르는군.”
“무슨......?”
암중에서 의혹의 음성이 흘러내렸다.
허나 갈무좌는 그 의혹을 무시한 채 문득 고개를 돌려 혈뇌마겁을 바라보았다.
습관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혈뇌, 네 머릿속에 있는 십일 년 후의 일은 지워 버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으면 장수에 지장이 있지.”
“......!”
무언가 소름 끼치도록 섬칫한 의미가 그의 말속에 담겨 있었다.
갈무좌는 금응의 철과 같은 부리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후후...... 사군(邪君)...... 이 녀석의 부리는 철보다 강해 한 사람의 심장 정도는 쉽게 빼먹거든? 후후후.......”
캬― 아악―!
그의 오싹한 말에 뒤이어 금응, 사군의 몸이 당장이라도 갈무좌의 어깨를 떠날 듯 날갯짓을 해대고 있었다.
부르르르......!
혈뇌마겁은 어둠 속에서 문득 으스스한 몸서리를 쳤다.
그는 사군의 부리가 자신의 심장을 짓잡아뜯는 착각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다.
‘아아...... 무서운 자! 소리장도(笑裏藏刀)...... 웃음 속에 칼을 담고 있는 자만큼 무서운 자는 없다고 했다......!’
갈무좌는 이미 어둠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겨 사라지고 있으나 혈뇌마겁은 아직도 하얀 웃음, 갈무좌의 웃음이 눈앞을 떠나지 않고 있는 착각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의 내심까지 읽고 있었다. 욕망을 위해 친부(親父)의 목에 칼을 들이댔던 저 악마는......!’
혈뇌마겁의 얼굴색은 점차 어둠을 닮아 가고 있었다.
아주 시꺼멓게.......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사내.......
그의 이름은 악마.......
* * *
죽음의 땅을 아는가?
살인적인 불[火]을 토하며 이글거리는 태양.......
장장 이만 리(二萬里)에 걸쳐 끝없이 펼쳐져 있는 모래와 사구(砂丘).......
<찰합이성(察哈爾省)>
그것은 분명 지리상으로 새북(塞北)의 절반을 점하고 있는 거대한 땅이나, 단 한 사람은커녕 살아 있는 생물체조차도 없는 곳이다.
오직 태고 이래의 미칠 듯한 적막과 고요가 깔려 있을 뿐이다.
하늘과 땅이 개벽한 이래 그 누구도 발을 들여놓지 못한 곳.
사람들은 그곳을 일컬어 죽음의 성― 사성(死省)이라고 했다.
― 사성(死省)!
영원한 죽음의 대지가 그곳이다.
허나 그 누구도 상상치 못하는 세계가 그 죽음의 대지에 신기루(蜃氣樓)처럼 존재하고 있음을 아무도 모른다.
모조리 죽음의 껍데기만 뒹구는 그곳에.......
안개[霧].
수백 리 방원을 둘러 꿈틀거리는 안개의 형성은 그야말로 대지의 또 하나의 신비요, 기적이 아니겠는가?
이 살인적인 열기만이 존재하는 사막 위에 안개라니......?
안개는 지맥(地脈)을 통하는 극한의 냉기와 열기가 만남으로 해서 공기 중에 수포화(水泡化) 현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허면 이 사막의 밑으로 그런 극랭기운(極冷氣運)이 흐르고 있단 말인가?
뭉클...... 뭉...... 클.......
쓰쓰...... 쓰으으.......
불가사의한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안개의 장막을 걷고 그 안을 보라.
신세계(新世界).
그 끝도 보이지 않는 광활한 또 하나의 세계가 펼쳐져 있지 않은가?
끝간데없는 초원.
온갖 기화이초(奇花異草)와 풍요롭게 노닐고 있는 가축의 무리들.
그리고 하나의 거대한 고성루각(古城樓閣).
이미 수천 년 자연의 우풍각(雨風閣) 속에서도 고고히 그 자태를 버티어 온 것처럼 고풍이 물씬 풍기는 고성은 일면 괴괴롭기조차 했다.
놀라운 것은 그 고성의 건축양식이 오천 년 전 은조(殷祖)시대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고성은 오천 년의 엄청난 연륜을 지니고 있다는 말인가?
<천왕제군대척(天王帝君大 )>
고성의 첨단루각에는 그 여섯 개의 글자가 금판장(金版狀)에 웅후하게 쓰여져 있었다.
천왕이 군림하는 곳이란 뜻인가?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 * *
거대한 황금의 대전.
천장을 떠받치고 있는 황금의 기둥, 대전을 장식하고 있는 황금조각상(黃金彫刻像).
황금이 아닌 것은 열두 명의 사람뿐이다.
황금대전의 중앙.
그곳에는 백팔 개의 계단이 왼쪽으로 나 있고, 그 계단의 끝에는 휘황한 황금의자가 놓여 있었다.
노인.
일신에 곤룡포(袞龍袍)를 걸쳤고, 서리가 앉은 듯한 하얀 백발을 바닥까지 늘인 노인.
깡마른 체구에 자그마한 키는 노인에게 별다른 특징을 주지 못했다.
허나.......
이것은 분명히 착각일 게다.
노인은 분명 황금의자에 앉아 있으나 앉아 있지 않았다.
앉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 그의 깡마르고 작은 체구는 거대한 황금의자를 짓누르고 있는 태산의 형상을 그렸고, 앉아 있지 않다고 느끼는 순간 노인은 흡사 당장이라도 무(無)로 화하여 흩어져 버릴 듯한 안개와 같이 모호했다.
마치 환상처럼.......
도대체 이것이 인간의 몸에서 느낄 수 있는 불가사의한 기도란 말인가?
백팔 개의 계단이 내려져 끝나는 황금대전의 바닥.
그곳에는 아홉 명의 인물들이 무릎과 손을 바닥에 댄 채 머리를 꺾고 있었다.
좌례(坐禮).
그것은 바로 무인(武人)으로서 하늘을 향해 하는 최대의 경예(敬禮)였다.
헌데.......
일신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공할 기운을 지닌 구 인(九人)은 지금 그런 경예를 황금의자에 앉은 노인에게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하늘이었다.
그리고 구 인의 양편으로 갈라진 중앙.
일노일소(一老一少)가 노인은 역시 좌례를 했고, 소년은 당당하게 서 있다.
노인은 구부정한 꼽추의 몸.
그들은 바로 사교대존황 갈극척과 혁리혼이 아닌가?
콱―!
갈극척은 바닥에 머리를 찍었다.
“무림말학 갈극척이 가장 위대한 대륙의 주인 천왕을...... 뵈옵니다!”
그의 음성에는 두려움과 격동이 한꺼번에 어우러져 있었다.
헌데.......
― 가장 위대한 대륙의 주인 천왕!
이 무슨 엄청난 말인가?
혁리혼의 여린 눈망울이 미묘한 파문을 일으켰다.
‘천...... 왕? 하늘의 주인.......’
혁리혼과 갈극척.
그들은 마교 고수들에 의해 결정적인 죽음의 순간 구천황야 중 마지막 구야에 의해서 구함을 받은 뒤 그에 의해 이곳까지 인도된 것이다.
천왕제군대척까지......!
“너희들이 본 왕(本王) 앞에 오게 된 의미를 아는가?”
우르르릉― 우웅―!
황금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의 입에서는 나직한 음성이 흐르나 그 음성은 황금대전을 붕괴시킬 듯 진동했다.
갈극척의 조그만 몸이 진동을 일으켰다.
“그...... 그것은.......”
“삼십 년 전...... 십야 혁리혼, 아니...... 대군이 된 그놈...... 그 짐승만도 못한 놈이 본 왕의 하나뿐인 여식 상하(霜遐)를 데리고 은밀히 본가를 떠난 뒤 본 왕은 하루에도 수백 번 마음속으로 그놈을 죽였었다!”
무궁한 한이 맺힌 음성이다.
그리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뼈를 가르는 살기!
“처...... 천왕이시여!”
갈극척은 몸서리치며 외침을 토했다.
천왕, 아니 환공이라고 불리는 노인의 말이 의미함을 갈극척은 잘 알고 있었다.
“헌데 아쉽게도 그것들을 찾았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다. 헌데......!”
“......!”
“그 짐승만도 못한 것들이...... 갈극척, 네놈의 말을 빌자면...... 그놈들이 자신들의 후예를 본 왕에게 맡기려 했었다? 뻔뻔스러운...... 이 짐승 같은 놈들이!”
그그그― 긍―!
노인 환공의 주름진 손이 움켜쥐고 있는 황금의자가 무섭게 요동쳤다.
피조차 싸늘하게 식혀 버리는 무서운 분노다.
갈극척은 그런 환공을 향해 격동의 음성을 터뜨렸다.
“천왕께서는 그분들의 진실한 사랑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또한 당시 십천황야(十天皇爺) 중 마지막 십야이셨던 대군을...... 단 한 가지 화후를 사랑했다는 죄만으로 척살의 명을 내리셨습니다!”
“갈(喝)!”
“때문에 화후께서 이미 사경을 헤매는 대군을 데리고 이곳을 떠났던 것입니다. 그것은 천왕의 잘못도 다분히.......”
“이...... 이노오옴!”
엄청난 분노가 터졌다.
벌떡!
환공은 황금의자를 박차며 일어서서 두 눈에서 뇌의 가공할 빛을 뿜어냈다.
파파파― 팍! 퍽!
안광이 쏘아져 부딪히는 곳은 모조리 가루로 화하고 만다.
“그...... 그놈들은 본가의 반역자일 뿐이다. 그놈들의 자식도 역시! 그...... 반역의 피를 이었으니!”
주체 못할 무서운 분노가 그의 말을 떨리게 했다.
“천왕...... 이시여......!”
갈극척은 환공의 말이 의미하는 것을 확연하게 느끼며 안색에 핏기를 잃고 말았다.
환공의 백발이 허공 위로 뻣뻣이 곤두섰다.
“네가 혁파후, 그놈과 오랫동안 같이했었다니 알겠구나!”
“......!”
“본가의 율법이 반역자의 존속(尊屬)에게 어떠한 대가를 돌려주는가를!”
“......!”
“오천 년 전 난세의 주역이며, 본 천왕제군대척의 전신(前身)이었던 천왕군림검척(天王君臨劍 )...... 가문의 율법이 그랬거니와 오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은 지켜져 왔다.”
경천경악(驚天驚愕)!
― 오천 년 난세의 주역...... 천왕군림검척!
정녕 이렇듯 전설 속에서 군림하고 있었는가?
무서운 일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세 개의 가문...... 그들의 주역은?
“반역자는 물론 그 존속은 모조리 할복(割腹)으로 명예스럽게 생을 마치도록 되어 있다!”
― 할복(割腹)!
허나 갈극척은 여태까지의 전율함은 씻은 듯이 얼굴에서 지운 채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렇다면...... 율법에 따라야지요.”
“......!”
“허나 천왕께서도 그리하셔야 할 것입니다.”
“무슨 뜻이냐?”
“천왕의 뜻은 아니었으나 천왕께서는 피치 못하게도 소공야의 외할아버지가 되시는 존속이 아니오이까? 그것도 가장 가까운!”
‘저...... 저분이 나의 외할아버지라고......!’
혁리혼의 눈망울은 커질 대로 커지고 말았다.
부모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혁리혼.
그에게 이것보다도 더 엄청난 충격적 사실은 없는 것이다.
‘저...... 저분이...... 나의......!’
환공(幻公)!
그는 순간 안면 근육을 푸들푸들 경련했다.
“뭐...... 뭣이? 네...... 네...... 이노오옴―!”
허나 그의 무서운 분노에도 아랑곳없이 갈극척은 망연히 환공을 올려다보고 있는 혁리혼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소공야, 저분이 외할아버님이십니다.”
분노와 회한이 뒤범벅이 된 채 황금대전에 깔린 상황은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또한 장차 소공야를 대륙의 주인으로서 키우실 위대한 어른입지요.”
“네...... 네...... 이 미친놈이......!”
환공의 수염까지 날리는 엄청난 분노에 아랑곳하지 않고 갈극척은 차고도 강경하게 다시 말했다.
“소공야, 외할아버님께 무릎을 꿇으십시오!”
환공은 전신을 주체 못하고 떨었다.
“본 왕에게는 손자가 없다!”
장내는 순간 얼음장처럼 냉각되고 말았다.
헌데 혁리혼의 입에서 악물린 음성이 터져 환공의 말을 이어 버리고 말았다.
“무릎을 꺾지 않아! 나 리혼은!”
“......!”
“......!”
“할아범은 리혼에게 말했잖아! 대륙천자는 그 누구에게도 허리를 꺾지 않는다고!”
상황은 혁리혼의 악물린 외침에 또다시 급변하고 혁리혼의 전신에서는 어린 소년의 그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엄청난 기운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래...... 나는 대륙천자야! 그리고 결심했어!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겠다고!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며, 하늘이라 할지라도 리혼의 무릎을 꿇게 할 수는 없을 거야! 천왕도 당연히!”
너무도 엄청난 말이지 않은가?
‘피...... 피는 속일 수 없다!’
바닥에 좌례를 하고 있는 구천황야는 크게 안색이 변했다.
갈극척은 안색이 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혁리혼이 이렇듯 엄청난 말을 할 줄은 꿈에도 상상치 못했던 것이다.
그는 황금의자에 앉아 있는 환공의 몸이 이십여 장의 먼 거리에서도 엄청난 떨림을 보이고 있음을 분명히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갈극척은 다급하게 외쳤다.
“소...... 소공야! 하지만...... 저분은......!”
그 순간 싸늘하게 피조차 식혀 버리는 음성이 환공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반역자의 자식은 역시 그 더러운 피를 받아 광오할 뿐이다. 또한 화근의 존재일 뿐!”
무서운 결정을 암시하고 있는 말이다.
갈극척은 순간 이마를 피 터지도록 바닥에 찍었다.
칵―!
“처...... 천왕이시여!”
황금으로 만들어진 대전의 바닥에 그의 선연한 핏물이 확 번졌다.
허나 환공의 마음은 이미 식어 버린 지 오래다.
“반역자의 자식은 그 짐승 같은 어버이를 둔 죄로 율법에 따라 영광스럽게 죽는다!”
잔인한 결정!
그 한마디면 모든 것은 끝났다.
환공, 그의 한마디는 곧 지상의 가장 위대하고 꺾을 수 없는 천명인 것이다.
“처...... 천왕이시여!”
“아...... 그것은 아니되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소공야를...... 대륙천자를.......”
경악의 외침.
비단 갈극척뿐만 아니라 구천황야, 환공의 위엄에 숨죽이고 있던 그들조차 피갈의 외침을 터뜨렸다.
“후예가 없는 본가를...... 천왕께서는 생각하셔야 합니다. 천왕이시여!”
그러나 환공의 입에서 터지는 다음 말은 더욱 잔혹한 명령이다.
“그리고...... 그 어미와 아비의 유골이 들어 있는 저 관은 짐승의 먹이로 준다!”
이보다 더 잔혹한 명령이 있을까?
순간 혁리혼은 화다닥 조그만 관을 끌어안으며 외쳤다.
“안 돼! 이 관 속에는 리혼의 엄마랑 아버지라는 사람이 들어 있다고 했어! 누구도 이 관을 만질 수는 없어!”
‘엄마랑 아버지라는 사람? 그럼...... 저놈은 고아로......!’
환공의 고요한 두 눈이 순간 흔들렸다.
허나 그뿐이다.
스스...... 스.......
그는 황금의자에서 몸을 일으켜 이내 몸을 돌려 대전을 빠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손의 만남.
그것은 너무도 잔인했다.
순간이다.
번― 쩍!
푸욱......!
한 자루의 시퍼런 비수가 갈극척의 손에 들려 핏물을 뿜어냈다.
“천왕―!”
그의 하복부에서 뿜어지는 핏물보다도 더 진한 피갈이 그의 입에서 짓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칼로 할복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 할아범!”
혁리혼은 경악과 함께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갈극척의 구부정한 몸을 끌어안았다.
허나 갈극척은 혁리혼을 보지 않았다.
그의 죽음이 일렁이는 시선은 비정하게 걸음을 옮기는 환공에게 매달려 있었다.
그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배의 이 죽음으로...... 소공야의 죽음을 대신하게...... 해주십시오......! 천왕이시여! 제발...... 소공야는 부모의 얼굴은커녕 정조차 받아보지 못한 채...... 성장해 왔소...... 헌데 이제...... 당신의 칼에 죽는다면...... 너무...... 너무도...... 잔인하지 않소이까...... 천왕―!”
피...... 피가 흐른다.
갈극척의 하복부에서도...... 눈에서도...... 그리고 피갈을 터뜨리는 입에서도.......
그의 피 흘리는 혼(魂)의 외침이 환공의 차가운 마음을 녹였음인가?
우뚝!
환공의 잔인한 걸음이 멈추어졌다.
“구천황야, 율법을 거둔다. 그의 목으로 배반자의 목을 대신해도 좋을 테니까. 허나...... 그 자식은 영원히 저주를 준다. 저주를 안고 태어난 추명(醜名)을 장차 저 아이의 부인이 되게 하여 죽을 때까지 저주를 받고 자라게 하라!”
홱―!
구천황야의 안색이 시꺼메졌다.
“헉! 그...... 그것은......!”
“천왕―!”
“그리고 그 처소 역시 죽음의 망혼곡(亡魂谷)에 둔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한마디 차가운 말을 남기고 환공은 대전을 걸어 나갔다.
무서운 결정.
그것은 저주가 깃들여진 결정이다.
허나 그 속에는 혁리혼을 살린다는 다른 색깔의 의미가 담겨 있음이니!
“아아......! 천왕의 하해에 감사드립니다!”
“오오...... 천왕이시여!”
구천황야는 움츠렸던 감정의 봇물을 터뜨리듯 대전이 떠나가라 감동의 외침을 터뜨렸다.
스르르르― 터억!
갈극척의 조그만 몸은 서서히 바닥에 뉘어지고 있었다.
그는 죽음이 감도는 잿빛의 시선으로 멀어져 가는 환공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어르신...... 당신은 비록 냉혹하나...... 역시 당신의 가슴속에 소공야는...... 손자였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알지요...... 홀로 외로이 군림하는 절대자의 아픔과 고독을.......’
“할아범―!”
혁리혼은 죽어가는 갈극척을 마구 흔들어댔다.
“죽으면 안 돼! 죽으면......!”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된 혁리혼.
갈극척은 웃고 있었다.
늘 혁리혼을 향해 더 이상 따스할 수 없이 웃던 그 웃음으로.......
‘소공야...... 이젠...... 되었소...... 이젠.......’
말은 입 밖으로 흘러 나오지 못했다.
이미 죽음이 자신의 숨통을 노려보고 있음을 그는 보았다.
발딱!
혁리혼은 조그만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미 휘장 뒤로 사라져 가는 환공과 구천황야를 향해 눈물의 외침을 터뜨렸다.
“우리...... 할아범을 살려...... 줘! 빨랑...... 어...... 어서...... 흑......!”
그러나 그들은 냉혹하고도 잔인한 걸음으로 황금대전을 빠져 나가 버렸다.
부르르―!
갈극척의 주름진 손이 진동을 일으키며 혁리혼의 발을 잡았다.
“소...... 공...... 야.......”
“할아범! 죽으면 안 돼! 이 바보야...... 흑......!”
“저...... 관 속에...... 모든 것을...... 남...... 겼.......”
툭!
갈극척의 깡마른 손이 혁리혼의 발목에서 떨어졌다.
죽은 것이다.
“할아― 범―!”
혁리혼의 울부짖는 외침.
허나 그것은 이내 황금대전, 그 텅 빈 대전 속에서 허무한 메아리가 되고 만다.
할...... 아...... 범.......
그리고 어린 혁리혼의 눈빛은 점차 식어 가고 있었다.
식어 버린 할아범의 주검처럼.......
야수처럼.......
하나의 거성(巨星)이 지던 날.
그날은 몹시도 눈이 내렸다.
너무도 하얀 눈.......
마치 그의 고독한 주검을 포용하려는 듯.......
눈은 자꾸만 보잘것없는 봉분을 덮어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