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5 章 그의 이름은 邪敎大尊皇
어둠.
그리고 너무도 극한의 고요가 천향화루의 깊은 밤을 휘감고 있었다.
때때로 고요와 정적은 그 어떤 살기와 공포보다 사람에게 더 두려움을 준다.
지금처럼.......
동물들을 가두고 있는 우리는 기이했다.
그저 허술하게 막대기를 듬성듬성 꽂아 놓은 것에 불과한데.......
커― 어엉―!
우우우우― 어헝!
동물들은 그 허술한 우리 안을 빠져 나가지 못하고 서성인다.
사실 이 보잘것없는 우리이나 하늘 아래 그 누구도 이 막대기들 사이를 비집고 들지 못한다.
바로 악마라도 가둔다는 전설 속의 마마환상멸환진(魔魔幻像滅換陣)이 동물의 우리 대신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짐승들의 감각은 인간 이상으로 예민한 것이다.
그들은 멀리서 오는 죽음의 냄새를 빠르게 맡는다.
끄...... 응.......
우우우우...... 우.......
짐승들은 무엇에 놀란 듯 마마환상멸환진 안을 자주 맴돈다.
한 소년의 눈치를 보며.......
소년은 이 마마환상멸환진의 생로를 아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며, 동물들의 대장이다.
또 한 사람은 바로 혁리혼을 제외한 화노였다.
“에이...... 차암.......”
혁리혼은 동물들 사이에 기대고 앉아 투덜거렸다.
그의 조그만 몸을 뒤에서 푹신하게 받쳐 주고 있는 것은 거대한 백상이었다.
“왜 할아범은 나한테 여기에서 꼼짝도 말고 있으라는 거지?”
그러다 문득 혁리혼은 조그만 입이 찢어져라 하품을 했다.
“아― 함! 쩝쩝...... 졸려.......”
쓰― 윽!
백상이 그의 얼굴을 장난스럽게 핥아댔다.
“아갸! 이놈이 징그럽게 애교는.......”
혁리혼은 괜히 백상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콱!
끄응.......
“가만히 있어. 심심해 죽겠는데...... 참 그렇지!”
혁리혼은 일순 손뼉을 치며 무언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몸을 일으켰다.
그는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혁리혼의 눈길이 많은 짐승 중에서 한 마리 캥거루에 이르러 반짝 빛을 발했다.
전체가 까무잡잡한 털로 뒤덮인 멍청해 보이면서도 또릿한 두 눈을 가진 캥거루였다.
“소낭(小囊)...... 이리와 봐라.”
까닥.......
혁리혼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까무잡잡한 캥거루를 불렀다.
화두두두.......
혁리혼이 부르자 캥거루 소낭은 잽싸게 혁리혼의 앞으로 달려왔다.
“히히...... 이 녀석과 같이라면 할아범도 감쪽같이 속일 수 있지. 아무리 밖에 나가 다니더라도!”
* * *
천향화루의 깊숙한 내실.
그곳은 바로 혁리혼이 기거하는 아담한 침소였다.
스― 슷!
문득 한 잿빛의 인영이 다급하게 내실로 들어섰다.
구부정한 꼽추에 추악한 용모, 바로 갈극척이었다.
‘관! 대군과 화후의 관 속에는 그분들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관.
혁리혼이 늘 끌고 다니던 관은 침상 밑에 있었다.
스슷!
갈극척은 미끄러지듯 침상 앞에 이르러 조그만 관을 집어들었다.
‘어서 소공야와 함께 이곳을 빠져 나가야 한다!’
이어 그의 신형은 연기처럼 실내를 벗어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꽝―!
“쿠쿠쿠쿠...... 큿! 갈극척, 가라!”
사면팔방의 벽이 모조리 박살났다.
카아앗!
츄츄츄츄― 츗! 번쩍!
동시에 무시무시한 검광이 어둠을 갈가리 찢어발기며 갈극척의 몸을 분시해 들었다.
어림잡아 수백 자루의 검이 일시에 터뜨리는 죽음의 빛이라니!
‘늦었다!’
팟!
콰르르르― 릉!
갈극척은 안색이 크게 변하며 흩어져 날리는 누각의 잔해를 비집고 어둠 속으로 재차 퉁겨져 올랐다.
허나 그의 죽음을 위해 모든 것은 너무도 완벽했다.
그가 어둠 속으로 솟구쳐 오르는 순간이다.
“크카카캇― 캇! 갈극척, 너는 지옥의 문으로 드느냐?”
갈가마귀 울부짖는 듯한 광소와 함께 탄폭화뢰(彈爆火雷), 검, 암기(暗器) 등이 우박처럼 갈극척의 몸을 뒤덮었다.
쐐애애액―!
찌르르르― 릉― 파아아아!
그것은 한치의 빈틈도 없는 죽음의 천라지망이었다.
“헉―! 네놈은 독목나찰마자(獨目羅刹魔子) 혈추(血 )...... 컥!”
퍼퍼퍼퍽!
화르르르― 릉―!
엄청난 불길과 함께 어둠 속으로 피가 튀었다.
불식간 갈극척의 왼팔이 어깻죽지에서부터 뭉툭 잘려 나간 것이다.
그의 팔을 자른 것은 독목을 지닌 자의 핏빛 마검이었다.
그러나 갈극척은 자신의 팔이 잘려져 나간 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소공야에게...... 가야 한다!”
카― 캉!
그는 다급하게 하나뿐인 오른손을 사면팔방으로 날려댔다.
우우우둑― 퍼퍽!
캉― 까깡―!
가공한 일이다.
그의 하나뿐인 손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그의 손에 부딪히는 병장기와 사람의 목뼈가 모조리 부러져 나갔다.
“놈들이 이렇듯 미리 죽음의 안배를 해놓았었다면...... 마마환상멸환진도 어쩌면......!”
“쿠쿠큿...... 갈극척, 너는 마교...... 특히 마황제일존의 힘을 우습게 보았다.”
독목의 괴인 독목나찰마자 혈추가 어둠 속에서 이빨을 드러낸 채 새하얀 웃음을 흘렸다.
섬뜩하도록 사악한 웃음.......
“천하제일의 마마환상멸환진이라 할지라도...... 지금쯤 그곳은 깨졌다. 네가 그 대군의 후예인 어린놈을 찾으려면 지옥으로 먼저 가는 것이 빠를 것이다. 쿠쿠쿠큿...... 큿.......”
“뭐...... 뭣이! 안― 돼!”
카앗!
위이이잉― 잉―!
푸욱......!
갈극척의 복부에서 또다시 댓줄기처럼 피가 튀어올랐다.
“헉!”
너무나 경악한 나머지 마음이 흐트러진 순간 한 자루의 검이 그대로 쑤셔 박혀 든 것이다.
꽈― 직!
“커억......!”
허나 갈극척은 자신의 복부에 검을 쑤셔 박은 살수의 목을 그대로 움켜잡아 으스러뜨리며 신형을 날렸다.
“아...... 안 돼! 소공야를...... 해한다면......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비켯―!”
갈극척은 미친 사람처럼 오른손으로 강기를 쏟아냈다.
우르르르르릉!
콰― 꽝― 꽝!
“크헉!”
“카― 악!”
독목나찰마자 혈추는 그런 갈극척을 어둠 속에서 바라보며 악마처럼 웃고 있었다.
“흐흐...... 사교대존황, 네놈은 강하다. 어쩌면 본 교의 일천여 고수로도 어쩔 수 없을 만치...... 허나 네놈은 실수했다. 흥분을 하다니!”
혈추의 웃음이 비릿한 피비린내를 풍겼다.
“네놈은 이제 천 자루의 검을 맞고 죽으리라! 크카카캇...... 이로써 십대천세는 그 뿌리째 대륙에서 사라진다!”
* * *
너무도 넓은 천향화루.
한곳에서는 엄청난 피보라가 야공 속으로 터져 오르는데...... 또 한곳에서는 끝없는 향락이 이어진다.
“까르르르...... 아이.......”
“호호...... 홋.......”
비릿한 기녀들의 음소가 긴긴 겨울밤을 지새며 어둠 속으로 흐드러진다.
<향춘매관(享春梅館)>
그곳은 천향화루의 은밀한 곳에 위치한 곳으로 기녀들이 손님을 받는 곳이다.
천향화루는 기녀들의 수준을 크게 넷으로 나눈다.
그것은 곧 네 곳의 사대천향관(四大天香館)으로 나뉘어지고.......
<설향천관(雪香天館)>
이곳이야말로 진기(眞妓)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진기가 머무르고 있는 곳이다.
때문에 그 화대가 엄청난 탓에 범인이라면 결코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설향천관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고 있는 거대한 대리석 욕실.
뭉클...... 뭉...... 클.......
욕실 안은 뜨거운 물안개로 가득 채워진 채 형용할 수 없으리만치 휘황한 빛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그것은 욕실의 사면과 바닥, 그리고 천장이 천축(天竺)의 특산인 자면옥경(紫面玉鏡)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히 한 조각만으로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을 먹고 살고도 남을 보경(寶鏡).
그야말로 호화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호호호홋.......”
“뜨...... 뜨겁다! 얘는.......”
“킥킥.......”
대략 이십여 명의 여인들이 물장구를 치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헌데.......
눈부셨다.
여인들은 모조리 나신(裸身)의 모습이 아닌가!
푸른 이국(異國)의 눈을 지닌 미녀...... 남만(南蠻)의 여인.......
천하의 모든 미녀가 그곳에 다 모였는가?
그리고 시리도록 하얀 살결과 서로의 아름다움을 자랑이나 하려는 듯 굴곡이 져 드러나 보이는 십전십미(十全十美)의 몸매.......
풍염한 젖가슴과 미끄러지는 아랫배의 곡선.......
뇌살적인 둔부와...... 궁륭.......
대리석을 다듬어 놓은 듯 늘씬한 다리와 허벅지가 만나는 곳의 비지(秘地).......
모조리 다 보였다.
천향화루 최고의 기녀!
그녀들은 사면이 은폐된 욕실에서 아무도 보고 있지 않다는 상상 아래 제멋대로 옷을 벗어 던진 채 놀고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드르르.......
느닷없이 욕실의 문이 활짝 열렸다.
“억―!”
“누...... 누구......!”
순간 기녀들은 욕실의 문이 열리자 대경실색하며 욕조 안으로 개구리처럼 와르르 뛰어들었다.
헌데 욕실의 문을 열고 냉큼 들어선 무법자......?
한 마리 캥거루가 아닌가?
“꺄꺄꺄꺄.......”
기녀들은 욕조의 수면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가 눈썰미를 상큼 치켜 올렸다.
“소낭......!”
“소공야! 또 장난이시군요!”
느닷없이 욕실로 들이닥친 캥거루는 바로 소낭이었다.
순간이다.
쏘옥......!
“히히.......”
혁리혼의 머리가 캥거루의 아랫배에 나 있는 주머니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욕조 안으로 뛰어들었던 기녀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혁리혼 앞으로 몰려들었다.
“호호홋...... 소공야!”
“어......?”
혁리혼은 기녀들이 갑작스럽게 덮쳐들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잽싸게 캥거루 소낭의 주머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전번에처럼 또 그 무서운 손톱으로 할퀼라!’
허나 기녀들은 소낭의 주머니 속에서 혁리혼을 잡아 끌어냈다.
“어...... 어...... 놔!”
혁리혼은 발버둥쳤다.
“호호.......”
“소공야가 나는 제일 좋더라. 후훗...... 이리와요.”
기녀들은 혁리혼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발버둥치는 것을 끌어다 욕조 속에 담갔다.
첨― 벙!
“읏......!”
기녀들은 혁리혼의 앞에서 자신이 완벽한 나신이라는 사실을 잊은 걸까?
혁리혼은 이미 수십 번도 더 욕실 안으로 놀러왔었으니까.
취접(翠蝶).
그녀는 설향천관 중에서도 최고의 미녀로 꼽히는 이국의 기녀다.
슬프도록 푸른 벽안(碧眼)을 지닌 여인.......
그녀는 특히 혁리혼을 좋아했다.
혁리혼도 그녀를 좋아했다.
특히 그녀의 슬픈 눈을.......
지금도 혁리혼은 취접의 나신에 안겨 그녀의 푸른 벽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히...... 취접의 눈은 정말 아름다워.......”
“훗...... 소공야님의 눈은 더 아름다운 걸요?”
그녀는 말을 하며 벽안을 찰랑인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화노의 준엄한 한마디를.......
― 그 누구도 소공야의 내력을 알려고 하지 마라! 살신(殺身)의 화가 있을 테니까!
때문에 그 누구도 혁리혼에게 그의 내력을 묻지 못한다.
‘내력은 알 수 없으나 소공야의 눈 속에는 너무도 슬픈 빛이 운명처럼 담겨 있다. 흡사 우리들처럼.......’
그랬나?
세상에 나와 온갖 고통과 슬픔을 운명처럼 지니고 살아가는 기녀들.......
그녀들이 혁리혼을 그토록 사랑하고 있는 것은 그렇듯 슬픔이란 공통의 매개체가 있음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물락...... 꼬물락.......
혁리혼은 취접의 요염하도록 팽만한 젖가슴을 주무르며 이상하게 웃었다.
“힛...... 좋은데? 리혼은 언젠가 취접말고 다른 여자의 젖가슴을 이렇게 만져본 듯도 한데.......”
“.......”
“이상하지? 나는 취접말고는...... 없는데.......”
그랬다.
혁리혼의 아득한 기억속에 안개처럼 뿌연 그런 기억이 있었다.
확실히 그 여인의 얼굴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취접을 올려다보는 너무도 슬픈...... 그래서 더 신비로운 혁리혼의 눈망울.
취접은 순간 그 시선을 마주하며 가슴에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소공야...... 어쩌면 그분은 당신의 어머님일지도 모릅니다. 젖먹이 때부터 혼자 자란 소공야의 머릿속에 그렇듯 남아 있는 여인이라면.......’
허나 취접은 이내 혁리혼을 욕조 속에 던져 넣었다.
그녀는 최소한 혁리혼에게 슬픔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았다.
“어...... 어...... 취접, 너......!”
풍― 덩―!
혁리혼은 놀란 눈을 추스르기도 전 그만 욕조 물 속으로 빠져 버리고 말았다.
“호호호...... 호.......”
취접의 아름다운 교소가 앵두 같은 입술 사이로 흘러 나올 때였다.
“까르르.......”
“소공야.......”
그녀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물 속에 넣으며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아푸...... 푸...... 아고! 물먹었다...... 아푸.......”
“호호홋.......”
“깔깔.......”
헌데 그때였다.
버― 언― 쩍!
빠르다.
가공할 뇌(雷)의 빠르기와 같은 차디찬 한광이 욕실 안을 쪼갰다.
퍽― 퍼퍽!
싹둑......!
동시에 모발이 곤두서는 오싹한 음향과 함께 욕실 안을 맴돌던 기녀들의 옥소(玉笑)가 일시에 그쳤다.
돌연히 찾아든 괴괴한 정적.
혁리혼은 물 속에 머리를 숨긴 채 어리둥절했다.
‘이상하다! 왜 갑자기 장난이 멈추었지?’
혁리혼은 의혹 어린 표정으로 머리를 수면 밖으로 쏘옥 내밀었다.
순간 혁리혼은 심장 튀어오르는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헉―!”
보라!
이십여 명의 미기(美妓)들.......
공포스럽게도 모조리 목이 잘려져 있지 않은가.
콰르르륵!
콸콸.......
너무도 고요한 정적을 깨치며 미기들의 잘려진 목에서 뿜어지는 핏줄기 소리가 전율처럼 욕실을 울렸다.
“취...... 취접......!”
혁리혼은 일순간 새파랗게 얼어붙은 입술을 달싹였다.
취접.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안고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 역시 목이 잘린 채 공포스럽게 전신에 핏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여전히 팔을 벌리고 앉은 채로.
공포!
전율!
“이...... 게...... 이게...... 왜......?”
혁리혼은 이 느닷없고도 돌연한 가공할 상황에 혼절할 듯 몸을 떨고 말았다.
그때였다.
“키키...... 키...... 저 어린놈을 죽이면 모든 것은 끝난다.”
“목을 마저 잘라 버리고...... 어서 돌아가자!”
“으흐흐...... 본 마교의 눈을 칠년 동안 피해 다니더니.......”
카― 앗!
피를 말리는 전율의 괴소가 욕실을 울림과 함께 한 줄기 시퍼런 검광이 그대로 혁리혼의 목을 쑤시고 들었다.
꽝―!
순간 욕실의 한쪽 벽이 그대로 짓터져 나가며 잿빛 피투성이의 인영이 쏘아져 들었다.
“아...... 안 돼!”
미친 듯한 부르짖음.
찰나 혁리혼의 조그만 몸뚱이는 피투성이의 인물에 의해 감싸졌고, 자욱한 핏줄기가 욕실 안으로 뿌려진 것은 정녕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크으으으윽!”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가?
비틀.......
피투성이의 인물은 기어코 혁리혼의 몸을 끌어안은 채 삼 장여 뒤로 쓰러질 듯 물러섰다.
갈극척.
나타난 인물은 바로 그였다.
전신을 난도질당한 듯 검상과 피범벅이 된 모습으로 악귀처럼 혁리혼을 안고 물러서는 그.
죽음의 그늘이 짙게 그의 추악한 몰골을 뒤덮고 있었다.
스스스...... 슷.......
슷!
한순간 욕실 안으로 독목나찰마자 혈추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들이 귀영처럼 스며들었다.
“크크크카카...... 카...... 사교대존황 갈극척, 놀라운 놈! 천여 명의 초극강살수들의 천라지망을 뚫고 이곳까지 오다니...... 너무도 가공한 놈이다, 네놈은!”
“으으...... 마교 총순찰 독목나찰마자...... 혈추...... 네놈이......!”
갈극척은 두 눈에 시퍼런 녹광을 쏟아내며 피갈의 신음을 흘렸다.
가히 그 극사(極邪)의 눈빛만으로도 상대의 숨통을 끊어 버릴 기세였다.
독목나찰마자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허나 네놈은 죽는다! 그 어린놈과 함께 오늘 이곳에서......!”
그 말이 채 여운을 남기기도 전이다.
카아― 카아―!
슈― 각!
갈극척과 혁리혼을 둘러싸고 있던 마교의 고수들이 가공할 기세로 갈극척을 덮쳐들었다.
“오너라! 모두 죽여 버리겠다!”
슈욱―!
갈극척의 두 눈에서 순간 무시무시한 사광이 폭사되었다.
“어헉! 저...... 저것은...... 사안대혼멸폭공(邪眼大魂滅暴功)! 피...... 피해랏!”
“받으면...... 죽는다!”
독목나찰마자의 입에서 혼이 빠진 듯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꽝! 우르르르.......
박살!
갈극척의 두 눈에서 쏟아진 안광 사안대혼멸폭공에 부딪히는 것은 모조리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커흑!”
“칵! 악마의...... 무공이다...... 놈의 무공은.......”
“으으...... 인간도 아니다! 일신에 그토록 엄청난 중상을 입고도...... 컥컥!”
갈극척.
그는 이미 악마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몸조차 돌보지 않은 채 추기 시작하는 광란의 사무(邪舞).
죽음의 춤.......
“카아아아악!”
“커― 헉!”
“끄아아아.......”
우우우우― 웅!
쩌르르릉!
그의 전신에서 폭출되는 강기.
그것은 죽음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쿠쿠...... 쿠...... 오너라! 지옥의 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쿠쿠.......”
“저...... 저놈을 죽여라! 죽여랏! 어서!”
독목나찰마자는 미친 듯이 발작적인 폭갈을 터뜨렸다.
갈극척.
과거 백년 이래 사교의 황제였던 그.
그것은 결코 허언만은 아니었다.
그의 능력은 가공! 그 한마디의 표현으로도 부족했다.
허나 이미 왼팔을 잃고 전신에 수백 개의 검상을 입은 그.
그리고 마교의 고수들은 허수아비가 아니다.
“으으...... 으.......”
사교대존황 갈극척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피눈물이다.
‘진기가 모조리 바닥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죽음...... 무좌......!’
갈무좌!
죽음의 눈이 자신의 숨통을 노려보는 지금 이 순간에 갈극척의 노안을 비집고 드는 그 영상은.......
허허허헛...... 헛.......
나의 아들아.......
이 싸움은 결국 네 녀석이 이기는가 보다.
후련하느냐?
네 욕망이라는 칼이 이제 이 아비의 심장을 쑤시게 될 것이.......
어허허...... 허.......
웃는다.
갈극척은 끊임없이 메마른 입술을 툴툴거리고 있었다.
분노인지, 격정인지, 참혹함인지.......
검.
한 자루 시퍼런 섬광을 뿌리는 검이 환각처럼 갈극척의 옆구리를 쑤시고 들었다.
푸욱! 촤촤촤― 촥!
허공에 흩뿌려지는 핏물의 아름다움.......
그 속에서 갈극척은 자신의 죽음을 읽었다.
비틀.......
‘이제...... 끝인가? 나의 목...... 소공야의 죽음.......’
번― 쩍!
수십 자루의 검이 혁리혼과 그의 몸을 난도분시(亂刀分屍)해 들었다.
‘대군, 화후이시여...... 이 노복을 용서하소서...... 이 노복을.......’
갈극척은 눈을 감아 버렸다.
핏물을 흘리는 눈을.......
헌데 그때였다.
“끄아아아악! 커컥!”
“케엑!”
공간을 갈가리 찢는 심장 튀어오르는 단말마가 욕실 안을 울렸다.
‘소공야와 나의 목이 아니다!’
갈극척은 급히 눈을 떴다.
순간 갈극척은 두 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
보라!
어둠 속에서 흐릿하게 움직이는 유령 같은 백영(白影).
퍼퍼퍼퍽― 퍽!
꽈드드득!
번― 쩍!
그들이 뿌리는 검광과 기괴절초(奇怪絶招)는 순식간에 마교 고수들의 몸을 죽음의 혼돈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컥! 끄으.......”
“흐아아아악!”
“카― 악!”
일체의 한마디도 없이 모조리 도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추풍낙엽.
가공할 마교의 고수들이나 그들의 상대가 아니다.
이곳이 바로 지옥의 문인가?
― 지옥의 문은 열렸다!